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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1 00:52

시리아와 좌파 쟁점/15 OccupyWorld2015.12.11 00:52

2015년 11월 13일의 금요일 파리 테러 후 시리아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전장이 되고 있다. 그 전 이집트에서 여객기를 테러로 잃은 러시아의 폭격도 연일 계속되고 있다. 이미 전쟁터인 이곳으로 더 많은 서방제, 혹은 동방제 무기가 퍼부어지고 있다. ISIS 격퇴라는 명분으로 말이다. 파리 테러 후 ISIS는 인류 최악의 폭력 집단으로 여겨진다. 이들의 패퇴를 위해서는 기존의 갈등을 훌훌 털어버리고 하나로 뭉쳐야 한다고 말해진다. 그러나 시리아인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고 수백만 명이 고향을 잃고 국경 밖으로 떠돌고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들 패권 국가들의 인류애적 협력은 요원한 일로 보인다. 각 나라들은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폭격 목표를 제멋대로 정할 뿐이다. 이 와중에 러시아 전투기가 터키에 의해 격추되면서 시리아를 둘러싼 국제관계는 갈등을 더하고 있다. ISIS뿐 아니라 아사드 정권에 의해 자행되는 학살에 눈감고 있는 것도 빼놓아서는 안 될 사실이다.

아래 인터뷰는 1년 전인 2014년 11월 이뤄진 것이다. 시리아 반체제 인사의 말은 최근의 상황까진 담지 못했지만 시리아 외부에 있는 좌파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뼈저린 충고가 이어진다. 야신 알 하즈 살레(Yassin Al Haj Saleh)는 서구의 좌파가 시리아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다고 일침을 놓는다. 그들은 ISIS에만 주목하며 아사드 정권의 범죄행위에 눈을 감는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그가 꼽는 첫째 이유는 제국주의에 대한 피상적 이해 때문이다. 소련이라는 이미 사라진 아버지의 고아로 남은 좌파들은 오직 미국과 서방에만 제국주의적 혐의를 제기한다. 따라서 러시아와 우방국들의 지원을 받아 학살을 자행해온 아사드의 행위를 무시한다. 서방의 좌파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시리아 외부의 패권세력에 따라 시리아 내부의 갈등을 제단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또 다른 좌파는 미국이 시리아 혁명의 우군이라는 오해에 휩싸여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폭격은 ISIS 격퇴에 아무런 효과가 없었을 뿐 아니라 반군을 훈련시켜주겠다는 그들의 계획은 오직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미국의 '지원' '개입'에 단호히 반대한다.

살레는 서구의 좌파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서구 좌파들이 스스로 강해지는 게 시리아의 자유를 위한 저항 세력을 돕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시리아 자체를, 시리아인들의 삶과 사회ㆍ정치ㆍ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16년간 양심수로 갇혀있었던 시리아의 저항적 지성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자
(외국 세력의 시리아 군사 개입에 반대하는 또 다른 시리아 좌파의 목소리는 노동자연대 기사 '폭격은 죽음과 파괴의 악순환을 더 악화시킬 뿐'을 참고하라ㆍ링크).

※ 의역이 많고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인용하려면 반드시 원문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대괄호[ ]는 이해를 위해 옮긴이가 추가한 것입니다.


시리아와 좌파: 야신 알 하즈 살레와의 인터뷰
뉴폴리틱스(New Politics)ㆍ2015년 겨울 15권 2호 통권 58호ㆍ링크

야신 알 하즈 살레(Yassin Al Haj Saleh)는 시리아의 대표적인 반체제 인사 중 한 명이다. 그는 1980년에서 96년까지 감옥에 갇혀 있었고 2011년 시리아 봉기 때는 지성을 대표하는 목소리 중 하나가 됐다. 그는 시리아에서 21개월간 숨어 지냈지만 결국 이스탄불로 탈출했다. 뉴폴리틱스(New Politics) 공동 편집자인 스티븐 R. 샬롬(Stephen R. Shalom)이 2014년 11월 초 e메일을 이용해 그와 인터뷰했다.


뉴폴리틱스=당신은 시리아에서 계속되고 있는 진보를 위한 투쟁에 대해 감동적인 글을 썼습니다. 서구 대부분의 나라에서, 특히 미국에서 좌파는 상대적으로 작은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 생각에 시리아인과의 연대를 표하기 위해 서구 좌파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야신 알 하즈 살레=저는 힘겹게 투쟁하고 있는 시리아인들과의 연대를 서구 좌파가 표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나 하는 염려가 듭니다. 제가 항상 깜짝 놀라곤 하는 건 서구 좌파들이 시리아에 대해, 이곳의 사회ㆍ체제ㆍ인민ㆍ정치경제ㆍ현대사에 대해 거의 모른다는 점입니다. 그들의 분석 중 도움이 되는 견해나 정말 창의적인 생각을 찾기는 정말 힘듭니다. 이런 이상한 상황 때문에 그들은 진정 우리를, 우리에 대한 그 어떤 것도 보고 있지 않구나라고 느끼곤 합니다. 그들에게 시리아는 반제국주의에 대한 오래된 장광설을 늘어놓을 또다른 기회일 뿐이지 토론을 위한 생생한 주제가 아닙니다. 그런 그들이 진정 우리를 알 필요는 없겠죠. 그들에게 시리아는 그 내부 구조와 동학을 공부할 필요가 없는 블랙박스일 뿐입니다. 실제로 그들의 분석에 따르면 여기엔 내부 구조와 동학이 전혀 없습니다. 그 중심엔 서구와 국제관계가 함께 있을 뿐이죠.

그들의 편협한 반제국주의적 시선이 오직 오바마ㆍ푸틴ㆍ올랑드ㆍ에르도안
[터키 대통령]ㆍ하메네이[이란 최고 지도자]와 카타르 국왕 하마드, 사우디 왕 압둘라, 하산 나스랄라[레바논 헤즈볼라의 사무총장], 그리고 바샤르 알 아사드[시리아 대통령]만 바라보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들은 아마 IS의 리더 아부 바카르 알 바그다디에도 관심을 갖겠죠. 평범한 시리아인들, 난민, 여성, 학생, 지식인, 인권 활동가들, 양심수 …… 우리는 그들의 시야에 있지 않습니다.

제 생각에 이러한 국제관계ㆍ서구 중심적 세계관은 우파와 극우 파시스트에게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좌파 시리아인의 입장에서 서구의 누가 우파고 누가 좌파인지 판별할 수 없었습니다. 전 이게 그 나름의 파시스트 체제였던 소비에트 경험의 해로운 효과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서구 좌파의 다수는 이미 없어진 소련을 아버지로 둔 고아입니다.

또 그들은 무엇 때문에 바샤르가 희생시킨 이들을 보지 못할까요? 그들이 언제 한 번이라도 코바니
[시리아 북부 알레포주의 도시. ISIS가 점령했다가 2015년 1월 쿠르드족 민병대가 싸워 되찾은 도시]의 평범한 인민을 온전히 본적 있습니까? 지난 [2014년] 8월 데이르에조르[ISIS가 차지하고 있는 시리아 북부의 도시]에서 ISIS 빌어먹을 놈들의 손아귀에 700여 명의 인민이 학살당하는 데 조금의 관심도 없었던건 왜죠? 하나만 묻겠습니다. 누가 살인자냐에 따라서 희생자들은 다른 가치를 지니는 걸까요? 정부가 나라 곳곳을 폭격하면서 매일 수십여 명이 목숨을 잃는 것에 대해 서구의 좌파들은 왜 우파처럼 침묵하는 겁니까? 제1세계가 의심 없이 인정한 커플인 바샤르와 그의 우아한 부인이 시리아 내부의 제1세계를 상징하는 게 그 이유일까요?

시리아인을 돕거나 연대를 표하기 전에 서구 좌파의 주류는 그들 스스로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의 관점은 완전히 잘못됐습니다. 시리아의 사건이 바로 그들의 반동적이고 타락한 관점을 시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입니다.

시리아인으로서 저는 오직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할 뿐입니다. 시리아는 세계의 축소판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시리아 사건에서 이정도로 잘못된 입장을 지닌 그들의 세계 전체에 대한 이해와 정책이 어떤 방식으로든 더 나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이런 입장이 미국과 서방 세계에 소수의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좌파의 위엄을 갖춘 용기있는 반체제적 서구 좌파가 존재함을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뉴폴리틱스=몇몇 좌파는 서방 정부가 자유시리아군(the Free Syrian ArmyㆍFSA)이나 그밖에 주민 세력에 무기를 지원하는 데 반대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또 다른 좌파는 서방의 무장 지원을 호소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와 같은 지원을 호소하거나 반대하는 것 모두 안된다고 여기는 좌파도 여전히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요?

살레=제가 이미 말했지만 이에 대해 말하기엔 너무 늦었습니다. 이러한 논의는 이제 현지의 사실들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무장 저항이 파시스트 정부에 맞서 우세했던 때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FSA는 너무 약해졌고 이전보다 통일적이지 못합니다.

FSA에 대한 무장 지원을 반대하는 입장을 따져보자면 두 가지 조건을 고려해야 합니다. ①어쨌든
[아사드 정권에 대한] 러시아의 무장 지원과 이란ㆍ이라크ㆍ레바논의 인적 지원은 중단됐습니다. 그리고 ②정부는 정치적 해결책을 위한 진정한 각오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정부는 4개월간 권력을 나누려는 어떤 의지도 내보인 적 없습니다. 심지어 반대파와의 실질적인 협상도 고려하지 않았었죠[아사드는 2014년 6월 내전 와중에 대통령 선거를 강행해 재선됐다].

유엔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워싱톤이 이끈 '시리아의 친구들
[the Group of Friends of the Syrian Peopleㆍ반정부 시위를 유혈 진압한 시리아 정부를 규탄하고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유엔 결의안이 2012년 2월 러시아와 중국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되자 당시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가 제안해 만들어진 유엔 안보리 밖의 모임]'이 완전히 마비돼 있는 동안 시리아 인민을 보호하기 위해 무장이 필요한 사람을 당신들이 돕지 않고 수백, 수천, 혹은 수만,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살해당하도록 방치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사실상 점점 더 많은 시리아인들이 세계와 국제사회의 정의에 대한 신뢰를 철회하도록 당신들이 종용한 것입니다. 당신들이 허무주의를 키운 것입니다. 전 2012년 5월에 이에 대한 긴 글을 썼습니다. 투사들 사이의 허무주의는 바로 이때 시작됐었죠.

서구 좌파들에겐 미국이 시리아 혁명의 편에 섰다는 환상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이는 완전히 틀린 것입니다. 미국 정부는 아사드 정부에 맞서기보다는 혁명을 저지하는 데 더 적극적이었습니다. 우리 조직을 파괴하는 데는 이란이나 이라크가 했던 것보다 워싱톤의 역할이 더 컸습니다. 불과 몇 달 전 백악관의 하버드맨
[오바마 대통령을 말한다][온건파 반군이] 아사드 정부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여기는 농부와 치과의사들이라고 경멸적으로 말했었습니다[오바마 대통령은 2014년 5월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 NPR과의 인터뷰에서 "온건파 반군들은 농부, 치과의사, 또는 라디오 리포터 등 일반인들이 모인 집단"이라며 "이들이 알카에다와 연관된 지하디스트들에 맞설 기반을 닦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말했다]. 이러한 쓸데없는 논평은 러시아ㆍ이란 그리고 이라크와 레바논에 있는 이들의 추종자들로부터 탄탄한 지원을 받고 있는 안과의사[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말한다. 전 대통령 하페즈 알 아사드의 셋째 아들인 그는 영국에서 안과의사 수련을 받고 있었다. 장남이 사고로 목숨을 잃으면서 시리아로 돌아와 후계자 수업을 받았고 2000년 하페즈의 죽음 이후 시리아의 대통령이 됐다]와 (정부의 똘마니들인) 샤비하[알라위파 청년들로 구성된 친정부 민병대. 각종 학살사건과 연관 의혹을 받고 있다]가 이끄는 진영에게 '시리아의 친구들' 수장의 축복 속에 자신들의 학살 사업을 제약 없이 해나갈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되지 않았을까요? 따라서 2013년 9월 화학무기에 관한 협상도 양 편의 시리아인들에게 다르게 해석되지 않았을까요? 정부는 당연히 이를 다른 무기를 사용한 학살 사업을 계속해도 된다는 승인장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반대파는 정부의 해석에 동의할 수 없었죠[2013년 시리아 정부가 반군을 상대로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미국은 공개적으로 시리아 폭격이라는 수단의 사용을 검토했었다. 그러나 9월 러시아와 시리아 화학무기에 대한 유엔의 사찰과 폐기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협상을 타결한 뒤 미국의 군사 개입 계획은 중단됐다. 그러나 화학무기 폐기 외에 아사드 정부에게 부과된 제약은 없었다. FSA는 이 협상에 반대를 천명하고 정부에 계속 맞서 싸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덧붙이자면 미국은 2013년 8월 정부가 화학무기를 이용해 학살을 저지른 이후 이에 대해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국민들에게 죄악을 저지른 범죄 정권을 심판하는 것은 이제 세계 곳곳에서 이뤄졌던 미국의 상습적인 개입보다 공정하고 진보적인 일입니다. 이게 이뤄지지도 않은 개입 전에 이에 반대한 까닭을, 그리고 제 생각에 전보다 덜 윤리적이고 덜 공정한 현재의 개입에 맞선 움직임이 없는 까닭을 제가 이해하지 못한 이유입니다.

좌파들은 '제국주의적 중심부'가 시리아 혁명에 반대하는 것을 정말 모르는 걸까요? 전 그들이 이에 대해 모른다고 믿을 수 없습니다. 아마 그들은 자신들의 낡은 관점을 고수하는 것일 겝니다.

뉴폴리틱스=어떤 서구 좌파는 서방 정부가 FSA 또는 주민 세력에게 군사 훈련을 시키는 데 대해 반대해야만 한다고 믿습니다. 다른 좌파는 그 같은 군사 훈련을 지지합니다. 그리고 다시 몇몇은 반대도 지지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신 생각을 말해주십시오.

살레=글쎄, 전 미국의 의도를 믿지 않고 워싱톤에게 어떤 희망을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관계와 과정으로서 제국주의를 이해하지 않는, 모스크바나 테란이 아니라 오직 워싱톤과 그 밖에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에 실체가 자리해 있다는 본질주의적 반제국주의에 공감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지역에서 미국의 정책은 그러한 의심이 옮음을 보여줬죠. 허무주의와 파시스트 ISIS는 진공에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의 요소 중 하나는 국제법과 국제기구ㆍ질서에 대한 절대적 불신입니다(두 가지 주요 요소는 현대성과 연관된 이슬람의 병폐와 전제적인 부패 정권입니다).

일단 되돌아가 질문하자면 미국은 시리아 사람들을 무엇을 위해, 그리고 누구를 위해 훈련시키길 원할까요?

지난 두 달간 미국은 우리 조직을 자신의 '테러와의 전쟁' 아젠다에 종종 이용했습니다. ISIS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 그들은
[시리아] 정부가 2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을 살해했거나 그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은 사소한 것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ISIS라는 폭력 집단이 진정한 위험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당연히 미군의 [시리아 반군] 훈련은 시리아를 변화시키기 위한 우리 투쟁과의 협력이 아니라 시리아인을 그들(미국)의 전쟁 도구로 사용하기 위한 정책적 우선순위에 따를 것입니다.

정리하면 시리아인을 훈련시킨다는 미국의 계획은 약해진 FSA를 완전히 망쳐놓을 것이고 이들을 조직 없는 값싼 현지 용병으로 바꿔놓을 것입니다. 이들은 미국의 이익을 위해 앞으로는 파시스트 ISIS를 맞닥뜨릴 것이고 그들의 뒤에는 파시스트 아사드가 자리할 것입니다.

요컨대 저는 미국이 시리아인을 군사적으로 훈련시키는 데 대해 단호하게 반대하는 편에 설 것입니다.

뉴폴리틱스=미국은 이라크와 시리아에 폭격을 해왔습니다. 이 공격의 효과와 정당성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살레=효과는 제한적입니다. 명분 또한 도덕적이거나 보편적인 가치와 관련이 없습니다. 제 생각에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미국인들은 그 본심이야 정말 순수하겠지만 결국 살인자들을 살해하는 동안 바로 그 미국의 학살 현장으로부터 불과 수 백m 떨어진 곳에서 같은 시간 또 다른 학살자들이 살인에 바쁜 현장에 눈을 감고 있습니다. 명분은 이 중 어디에 있나요? 정의는 그렇다 치고 정치적 입장은 어떤가요? 정치도 일단 잊어보죠. 그러면 이 공격 후의 전략은 무엇입니까?

제 생각엔 이런 식의 전개로는 아무 것도 이뤄내지 못할 것입니다. 공중 폭격이 ISIS를 약하게는 만들 겠지만 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반격이나, 심지어 확장을 통해 지켜낼 것입니다. ISIS는 중무장한 군대도 거대한 시설물을 지닌 국가도 아닙니다. 즉 그들에 대한 공중 폭격 효과는 계속해서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코바니의 작은 마을 인근의 ISIS에 대한 두달여 간의 폭격에도 ISIS는 여전히 그 마을을 위협하고 있죠.

저는 '진보적인' 사람입니다. 사건의 어떤 주어진 상태에 매달리지 않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찾으려 애를 씁니다다. 이전에 개인적으로나 공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많은 경우에도 저는 새로운 가능성, 기대치 않던 기회, 삶과 온 세상ㆍ자유를 향한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 있었죠. 저는 시리아에서 벌이는 미국의 전쟁에서도 진보적인 가능성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헛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근본주의자나 허무주의자(이 둘 사이에 차이가 있을까요?)도 아닙니다. 하지만 전 제 나라에서 미국이 벌이는 새로운 전쟁에서 더 정의롭거나 창조적인 기회를 만들거나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 미국 '친구'들은 그들이 시리아의 상황을 전체적으로 더 낫게 만들것이라는 일반 대중에게 줄 수 있는 작은 희망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게 아닌 것 같은 인상을 보여줬습니다. 이는 아사드에게 크나큰 희망과 기대감을 갖게 하는 동안 일어난 일입니다. 정말 감동적이게도요!

저는 미국에 대해 근본적인 원한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수퍼파워는 제 나라에 대해 극단적으로 비인간적입니다. 그들이 벌이는 현재의 전쟁은 극히 이기적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시리아에서 미국의 정책을 고려할 때 워싱톤이 민주주의와 소외계층의 권리를 철저히 대립하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결론을 끌어 내는 것도 정말 가능합니다. 이는 시리아에서 그들의 전쟁이 반동적이라는 걸 뜻합니다. 따라서 그 전쟁은 이 나라와 이 지역 대부분의 모든 걸 악화 시킬 것입니다.

오바마 정부가 시리아와 그 국민들에게 저지른 비열한 죄는 그 어떤 것으로도 사할 수 없습니다. 역사는 이 범죄를 오랫동안 잊지 않을 것입니다.

뉴폴리틱스=서구 좌파가 자국 정부의 시리아 정책에 대해 무엇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나요?

살레=솔직하게 말하면 서구에서 좌파들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저도 알 수 없습니다. 제 말은 그들은 안락한 환경에 있고, 또한 여권을 가졌고 외국어를 배울 더 많은 기회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읽고 싶은 책을 살 수 있거나 최소한 볼 기회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 다수가 시리아에 대해 그토록 모르며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고 거의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게 이해가 안 갑니다.

바꿔 말하면 그들의 임무는 자신의 정부가 우리를 위해 무언가를 하게끔 하는 게 아닙니다. 해야할 일은 자신 스스로를 위해 자신의 나라에서 자신 스스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미국ㆍ영국ㆍ독일ㆍ프랑스와 그 밖의 나라에서 훌륭히 스스로를 조직해낸다면 이는 우리에게도 좋은 일입니다. 그들이 우리 투쟁의 편에 서거나, 최소한 우리 나라가 정체성정치ㆍ희생정치에 맞설 가능성과 우리 투쟁을 어느정도 이해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런데 현재 그들은 매우 서구 중심적이 국제관계 중심적인 반제국주의적 견해로 인해 우리 나라의 우파, 이른바 '근대주의자' 또는 이슬람주의자만 돕고 있습니다.

주류 우파의 핵심은 흔히 정체성ㆍ주권ㆍ외교입니다. 같은 질문에 다른 대답을 하는 것만으로는 좌파가 될 수 없습니다. 다른 질문에 같은 답변이라면 더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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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왕성'.

※아래 글에는 영화 '명왕성' '더 테러 라이브' '설국열차'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우승열패(優勝劣敗)'는 우리 시대 유일한 도덕률이다. 그렇다고 말해진다. 보다 나은 능력과 자원을 지닌 자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 사회가 나뉘어지는 것은 당연하게 치부된다. 승자독식은 우승열패 사회의 당연한 결과다. 믿을 것은 자신의 몸뚱이 뿐인 노동자는 "겁에 질려 주춤주춤" 자본가의 작업장으로 걸어들어간다. 탈출구는 교육이다. 물론 자신은 탈출하지 못한다. 자신의 자식만이라도 다른 삶을 살 수 있길 바랄 뿐이다. 교육은 상층 계급으로 올라갈 수 있는 동아줄이 되어 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기회의 동아줄은 많지 않았고 그럴 수록 동아줄을 잡기 위한 노동계급 자녀들의 경쟁은 치열해졌다.

평등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민주화 이전 사교육이 금지됐다. 하지만 이는 법의 단속을 피할 수 있고 금지로 인해 높아진 비용을 감당할 여지가 있는 상층 계급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민주화 이후 치열한 대입 경쟁을 완화하기 위해 대학 입학정원을 크게 늘렸으나 이는 치유책이 될 수 없었다. 이제 대학은 모두가 당연히 가야할 곳 취급 받았다. 국내의 명문대를 넘어 해외의 유명 대학ㆍ대학원으로 쌓아야할 스펙의 깊이는 더 깊어졌고 치뤄야 할 경쟁의 폭은 더 넓어졌다. 사회가 계급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현실, 그리고 상층 계급으로의 이동은 매우 제한적이라는 사실은 교육에서 경쟁을 제거하기 어렵게 만든다.

살아남기 위해 동료를 잡아먹어야만 했던 '설국열차'의 꼬리칸은 동료를 토끼사냥하는 영화 '명왕성'의 교실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최근 잇따라 개봉한 '명왕성' '더 테러 라이브' '설국열차'는 각자 다른 방향에서 이 '꼬리칸'의 문제를 다룬다. 물론 그 태도는 영화마다 다르다. 특정한 주제의식보다는 상황의 긴박함에서 오는 긴장감을 목적으로 소재가 다뤄지기도 한다. 따라서 이 글은 영화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될 수 없다. 단지 영화들에서 떠올릴 수 있는 우리 시대의 현실을 풀어 재구성해볼 뿐이다. 아래는 이 세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다.

명왕성의 김준

영화 '명왕성'은 이러한 교육이 만들어내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그린다. 서울 강북의 한 학교에서 꽤나 그럴듯한 성적을 올리던 한 학생은 명문고로 전학을 간다. 자신의 자그마한 세계에서 승자였을 그 학생, 김준은 자신이 원했던 더 높은 자리에서 자신의 위치가 이전과 다름을 알게 된다. 이미 한 번 더 높은 곳으로 자리를 옮기는 데 성공한 그에게 계급 상승의 욕망은 끊을 수 없는 마약과 같은 것이다. 비밀에 쌓여있는 '오답노트'를 얻기 위한 욕망은 자신의 동료를 배신하게 만든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뛰어넘기 힘든 계급의 장벽이 존재함을 그는 뒤늦게 깨닫는다. 그는 1%의 학생들이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사용한 일회용 도구에 불과했다. 교육을 통한 계급 이동은 기만이었다. 상층 계급의 동료가 될 수 없음을 깨달은 그는 자신과 그들을 폭력적으로 제거한다. 청소년 자살률이 계속해서 높아져왔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는 충분히 가능한 얘기이기도 하다(2010년 기준 10~24세 인구 10만명 당 자살자 수는 9.4명으로 OECD 평균 6.5명을 큰 폭으로 상회한다). 영화 '명왕성'에서 이다윗이 열연한 김준의 이야기다.

김준이 만약 자폭하지 않고 대학에 진학했다면 그의 세계는 아버지의 세계와 달라졌을까. 우리는 아주 높은 확률로 그가 경험할 사회가 학교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거대하게 가로막은 계급 장벽은 우리의 삶을 끊임 없이 좌절의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는다. 이러한 현실에서 영화 '더 테러 라이브'는 '김준이 자폭하지 않고 살아남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일 수 있다. 이다윗이라는 배우가 두 영화 모두에서 폭탄 테러를 저지르는 역할로 나온 것은 우연하게도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만들어준다.

더 테러 라이브의 박노신

'더 테러 라이브'에서 박노규는 그저 열심히 일하는 것 밖에 모르는 인물이었다. 야근수당 2만5000원을 더 받기 위해 마포대교 난간에 메달렸던 그는 한강의 어두운 물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세계의 지배자들이 모이는 자리를 위해 강행된 공사였다. 그러나 박노규의 죽음은 세계에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못한다. 세계는 여전히 성공을 위한 아귀다툼으로 가득할 뿐. 그렇게 잊혀져 간다. 경제개발 시절 스러져간 무수히 많은 노동자를 떠올릴 수도 있다. 산업역군으로 칭송받지만 지금 60~70대일 이들에게 남겨진 것은 비루한 삶 뿐이다. 아파트 경비 자리를 얻기 위해, 거리에서 폐휴지를 줍기 위해 자신의 또래들과 경쟁은 계속된다. 하지만 박노신의 아버지 박노규의 이야기는 또한 현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2011년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 수는 2114명으로 하루 6명 꼴이다. 박노신이 아버지 박노규의 죽음을 잊지 못하는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산업 현장에서 스러져가는 노동자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산업재해의 문제는 이 체제가 노동자를 다루는 더 근본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상층 계급으로의 이동을 미끼로 경쟁을 옹호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결국 체제를 유지하는 하나의 기계 부속품 이상이 되지 못한다. '명왕성'의 김준이 살아남았다 할지라도 그의 삶은 결국 자본주의 체제라는 거대한 기계의 일부분 이상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 '더 테러 라이브'가 보여주지 않는 테러범 박노신의 삶이 아마 그러햇을 것이다. 고등학생 시절 니트로글리세린을 이용한 폭탄을 만들 정도로 뛰어났을지라도, 대학 진학 후 더 높은 수준의 폭탄과 격발장치를 제작하고 경찰의 전화추적을 따돌릴 정도로 뛰어난 해킹 실력을 지니게 됐다고 할지라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기-승-전-치킨집이라는 IT노동자와 엔지니어들의 자괴감 가득한 농담을 떠올려보라.

성공한 샐러리맨 윤영화

박노규의 아들 박노신과 성공한 샐러리맨의 상징 윤영화 앵커의 만남은 이러한 계급 장벽이 사회 곳곳을 치밀하게 둘러싸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정우가 연기한 윤영화는 성공의 사다리에서 아주 잠깐 삐끗한 것처럼 보인다. 몇몇 불운이 있었지만 박노신의 테러는 다시 성공 사다리에 올라탈 기회로 보였다. 그는 차대은 국장에게 9시 뉴스 메인 앵커 자리를, 박정민 테러대응팀장에게 자신의 안전을 지켜줄 것을 요구하고 그것은 마치 성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상황을 주도한다는 윤영화의 생각이 잘못됐음은 바로 드러난다. 방송국과 차대은 국장은 오직 시청률에만 관심있었고 청와대와 경찰청은 테러범의 체포와 면책, 즉 정부의 유지에만 몰두했다. 이러한 체제에서 그의 명예와 생명은 아무런 가치도 지니지 못한다. 윤영화가 박노신과 공명하는 것은 이 부분에서다. 이러한 공감은 윤영화가 박노신에게 이어받은 폭탄 스위치를 누르게 만든다. 테러는 모두 끝났다는 정부의 뻔뻔한 발표에 엿먹이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다.

기묘하게 이어지는 이 두 영화에서 주인공 모두는 경쟁사회에서 계급 상승을 위한 사다리에 메달리고자 노력했다. 현실의 우리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지배 계급의 일회용 도구에 불과했다. 역시 우리 대부분이 그런것처럼. '명왕성'에서 김준은 스터디그룹 '토끼사냥'의 오답노트가 자신을 1%의 승리자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아니었다. '더 테러 라이브'에서 라디오로 밀려난 윤영화는 차대은 국장과 함께 다시 성공의 길에 올라설 수 있을 것이라 믿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거짓된 희망마져 사라졌을 때 그들이 선택한 것은 스스로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리기

이에 반해 영화 '설국열차'는 꽤나 희망찬 이야기를 전해준다. 체제-열차는 살아남은 인류를 관리해야 하는 기계의 일부분으로 다룬다. '명왕성'과 '더 테러 라이브'에서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러나 이 열차-체제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진지 오래고 그 현실은 더 노골적이다. 인간의 존재가 기계의 안녕을 위협할 땐 주저없이 제거된다. 하지만 체제-열차를 유지하는 것은 바로 그 인간이었다. 무한정한 시간 동안 스스로 유지할 수 있는 영구기관은 없었다. 그것이 폭로된 순간 체제-열차는 폭파되고 땅을 밟아본 적 없는 새 인류가 대지를 밟는다. '명왕성'과 '더 테러 라이브'에서 거대한 폭발에도 불구하고 체제가 그대로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과 비교하면 '설국열차'의 희망에 가득찬 태도는 더 명확해진다. 아직 현실은 '명왕성'과 '더 테러 라이브'에 더 가깝다. 안타깝게도 '설국열차'는 판타지일 뿐이다. 그러나 현실적 희망이 체제-열차의 안이 아닌 밖에 있음은 분명하다. 열차에서 내리려면 우리는 우선 이 기관차를 멈춰 세워야만 한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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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9 14:19

책으로 세상 읽기 … 복지국가와 해적 2012.03.09 14:19

1 정치가 우선한다; 지금 복지국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또 다른 사회는 가능하다; 마우스랜드; 비그포르스, 복지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국 부동산시장이 맥을 못추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정책적으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시도했지만 부동산시장은 요지부동입니다.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 한국 사회는 높은 성장률을 기반으로 한 임금 상승 덕에 '복지'에 대한 대중적 요구가 미미했죠. 1997년 위기 이후에는 자산가격 상승을 기반으로 한 개인 재산의 상승이 복지 요구를 대체했습니다. 대출 받아 산 아파트, 주식의 가격 크게 오르니 이자 부담도 없고, 개인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재산을 모아 자신과 가족의 단란한 삶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됐죠. 이명박 시대는 이 모든 것이 이제는 불가능한 꿈임을 입증한 시기였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는 결정적이었죠. 증세가 있을지라도 복지가 필요하다는 대중적 요구가 확산된 건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지에 대한 관심이 미미한 상황에서 이 요구를 주도해온 중도좌파 진영에게 '복지'는 거의 언제나 실현된 '정책'과 그 '효과'의 문제였습니다. "복지정책을 하면 이렇게 좋습니다"라며 복지 정책이 '좋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게 우선이었죠. '북유럽 모델'이라는 명칭에서 단적으로 드러나죠. 하지만 복지가 현실적 요구로 등장한 상황에서 깔끔히 정리된 정책 패키지는 더이상 문제가 아니게 됐습니다. 이제는 복지 정책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지가 문제가 되는 것이죠. 아마 그래서겠죠. '복지'에 관한 책이 '정책'에 대한 관심에서 '정치인'과 '정당',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가는 것은요.

최근 나와 가장 큰 관심을 끈 것은 셰리 버먼의 '정치가 우선한다'입니다. 이 책은 스웨덴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긴 하지만 부제목에서처럼 복지국가 체제로서 '유럽 전체'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은 '정치인'과 '정당'의 주체적 노력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 책과 함께 읽음으로서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것은 아스비에른 발의 '지금 복지국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입니다. 노르웨이의 노동운동가인 저자는 복지국가를 가능하게 했던 전제, 즉 노동운동의 대중적 힘을 적절하게 강조합니다.

사회민주주의 정치인에 관한 책도 몇 권 나왔습니다. 캐나다의 정치인 토미 더글러스와 스웨덴의 정치인 에른스트 비그포르스가 그 주인공입니다. 우선 토키 더글러스는 캐나다에 전국민 의료보험 체계를 도입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정치인입니다. '또 다른 사회는 가능하다'는 토미 더글러스의 삶과 무상의료 도입 과정을 다룬 책입니다. 쥐와 고양이 우화를 통해 노동계급이 노동자 정당에게 투표해야 함을 강조했던 토미 더글러스의 유명한 연설은 한주리가 각색하고 그림을 그려 '마우스랜드'라는 그림 책으로 나왔습니다.

칼 폴라니의 사상을 전하는 데 앞장서온 홍기빈은 스웨덴 정치인 비그포르스 사상의 핵심을 '잠정적 유토피아'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책인 '비그포르스,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를 내놨습니다. 프레시안에 함께 읽으면 좋은 리뷰(링크)대담(링크)이 실리기도 했죠.


2 노암 촘스키의 해적과 제왕

통합진보당 김지윤의 '해적' 발언이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현직 대통령을 '쥐새끼'라고 부르고 경찰을 '짭새'라고 부른다는 차원에서 '해적'이라는 발언이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차이는 있습니다. 군대는 대한민국 남성들에게 피할 수 없는 의무라는 것이죠. '해적'이라는 발언은 원치 않게 군대에 가야만 했던 이들의 자존감을 해치는 발언이죠. 비슷한 사례로 베트남 참전 한국군을 '용병'이라고 부른 것이 있습니다. 한국군이 실제로 '용병'과 비슷한 역할을 했음에도, 그 전쟁에 어쩔수 없이 참여해야만 했던 사병들도 '희생자'였음을 잊히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사려 깊은 단어 선택은 아니죠(물론 참전 군인이 정부와 군대를 비판하기 위해 자신의 과거를 스스로 그와 같은 단어로 규정하는 경우는 마땅히 지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 이 '해적' 발언이 이해할 수 있는 발언이긴 하나 한국적 상황에서 좀더 주의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 단어를 꼭 사용해야 겠다고 생각했다면, 계획적으로 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즉 한국과 미국, 미군의 세계전략에서의 한국군의 역할이라는 차원까지 논쟁을 확대시키기 위해 계획되고 준비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가 봐야 할 책이 있습니다. 제목부터 '해적'이 들어간 노암 촘스키의 '해적과 제왕'입니다. 이 책은 1980년대 중반 쓴 다섯 편의 글과, 2001년 9ㆍ11 테러 이후 쓴 두 편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출판사 서평에 의하면 촘스키는 이 책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부터 9ㆍ11 테러 이후까지 유럽ㆍ동남아시아ㆍ중동ㆍ남미ㆍ북미ㆍ아프리카 등 세계 전역에서 저질러진 '제왕'과 '해적'의 만행들을 자세히 분석"합니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 2004년 번역 출간됐습니다. 당시는 우파의 엄살이 심하긴 했지만 한국 정부가 기존의 군사전략에서 핵심인 한미일 삼각동맹에서 벗어나 보다 독립적인 군사세력으로 한국군의 위상 변화를 추진하던 시기입니다. '대양해군'과 '전략공군'이 그러한 차원에서 제기된 전략이죠. 아무래도 이는 미국과의 갈등을 동반할 가능성이 높았죠. 한국의 우파가 강조했던 점이 이것이고요. 물론 사태가 간단치는 않습니다. 한국정부는 이후 군사적 독립과 달리 경제 분야에서는 협력을 더욱 강화하려고 노력하니까요. 한미FTA가 바로 그러한 사례입니다. 어쨌든 '대양해군' 전략 하에서 추진된 것이 이지스함의 도입 확대와 제주 해군기지 건설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이명박 정부 들어 바뀝니다. 한국 우파에게 미국과 일본은 멀리할 수 없는 군사적 동맹입니다. 애시당초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북한과의 대결 뿐입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연근해 해군으로 방향을 튼 것은 그 결과죠. 그들에게 일본은 적대시할 수 없는 존재이고, 중국과 러시아는 군사적으로 한국이 대응할 수준의 나라가 아닌 겁니다. 오직 한미일 삼각동맹 체제의 유지 만이 동북아에서 한국의 생존을 보증할 수 있다는 게 우파의 생각이죠. 제주 해군기지에 대한 좌파의 비판에서 미군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촘스키의 '제왕과 해적'은 좌파의 이러한 비판을 살펴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촘스키는 주로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에서 1980년대 중반 대두하던 테러리즘의 원인과 현상을 분석합니다. 현재 한국의 좌파들은 동북아에서 이스라엘 역할이 바로 한국이 아닌가 의심하는 것이죠. 실제로 이 책의 출판사 서평에서는 "최근 미 공화당 정권의 요구로 볼 때, 그들은 한반도를 중국을 직접 겨냥한 전초기지로 삼고, 이스라엘처럼 세계 전역에서 용병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국가로 한국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는 점을 간파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중국을 둘러싼 동북아 상황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모순적 태도는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합니다. 중국은 미국의 최대 채권국입니다. 미국은 중국의 최대 수출국이죠. 이러한 상황에서 군사적 대결은 미국 경제에도 치명타를 가하게 됩니다. 그러함에도 미국은 때로 세계적 군사전략 하에서 중국을 견제합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은 한국의 가장 큰 교역 대상이기도 합니다. 분명히 중국을 둘러싼 동북아 정세가 매끄럽게 풀리진 않겠지만 전면적 군사 대결로 이어질 가능성도 현재로서는 그리 크진 않습니다. 이 책을 '반미'를 위한 증언집으로서가 아니라 냉정한 국제정세 분석을 위한 여러 자료 중 하나로 사용할 수 있다면, 미국의 세계전략에 대한 보다 차분하고 효과적인 대응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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