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7

« 2019/7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  

①[드림디퍼드] 내전으로 향하는 우크라이나: 반동적인 전투에서 어느 편도 지지할 수 없다(링크)
②[좌익반대파] 오직 노동자 운동 만이 우크라이나에 이는 전쟁의 불꽃을 멈출 수 있다(링크)
③[자율노동조합] 키예프 정권과 동부 군사정권 모두 반대한다!

※의역이 많고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잘못된 번역에 대한 지적은 언제든 환영합니다. 대괄호 안은 이해를 위해 추가한 것입니다.


키예프 정권과 동부 군사정권 모두 반대한다!
동부의 충돌에 대한 키예프 자율노동조합 성명서
키예프 자율노동조합(AWU)|2014년 5월 14일ㆍ링크

노동 인민 일부분을 다른 부분에 맞서 적대감을 갖게끔 속임수를 쓰고 있는 [우크라이나] 지역과 러시아의 지배계급 집단들 간의 대립이 계속되면서 우크라이나는 내전의 상황에 이르고 있다. 마리우폴 사건은 이러한 대립의 전형[적 결과]이다. 전투원과 시민, 징집된 병사와 장교, 뿐만 아니라 자원한 군인들까지 대립하는 양편의 많은 사람이 '반테러 작전'의 결과로 고통받아 왔다.

이는 노동자들에게 위기다. 정부는 모든 시위를 반(反)마이단 운동 취급하고 있다. 군인들은 자신이 누구를 쏘는지 알지 못하고 총에 맞는 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위해 죽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대립하고 있는 양편은 자신의 '보병'들에 특유의 냉소주의를 조장하고 있고 이 때문에 노동자들은 자신의 계급적 이해에 맞는 공통의 어떤 것도 지니지 않은 이념을 위해 싸우고 있다. 우크라이나 군대와 다른 무장 단체들은 조국애와 '국가의 통일'이라는 무의미한 이념을 위해 싸우고, 분리주의자들은 국가의 건설 또는 러시아와의 통합을 위해 싸운다. 이 모두는 관료ㆍ경찰ㆍ판사ㆍ교도소ㆍ자본가와 가난한 이들이 함께 존재하는 부르주아 민족국가를 목적으로 할 뿐이다.

이 두 반동적 운동의 충돌 결과로 지금 이미 수십 명이 희생당하고 목숨을 잃었다. 한편으로는 군사적 무능, 다른 한편으로는 전투원들의 부패가 피해를 크게 가중시키고 있다.

반마이단 운동의 고위 관계자들은 보통 퇴역 군인들과 이에 더해 전 정권에 충성심을 유지하고 있는 고위 경찰간부들로 구성돼 있다. 따라서 독재적인 법집행과 강제력에 의한, 진정 군사정권의 방식이 우크라이나 동부 '인민공화국'을 이끈다.

이 운동 내 파시스트 단체와 범죄자의 존재는 매우 반동적이고 동부 지역 노동 인민의 계급적 이해와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군사정권의 전반적 특징을 주조한다.

친러시아 선동에서는 분리주의 전투원들이 반파시즘 저항 투사로 묘사된다. 이러한 선동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정부가 개시한 '반테러 작전'은 '라이트 섹터
[프라비 섹토르ㆍPravy Sektor]'의 우크라이나 파시스트가 한 공격을 빼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러한 공격과 다른 많은 사건들에서 이들의 역할은 불안을 가중시키게끔 균형을 깨뜨리는 것이다.

'라이트 섹터'는 몇몇 극우파 단체의 형편없는 동맹이다. 그것의 사회적 구성은 극우 청년들과 범죄자 모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민공화국' 전투원의 사회적 구성도 주로 10대ㆍ깡패 등 하층계급의 일부로 비슷하게 이뤄져 있다. 현재 운동에서 '라이트 섹터'의 대중적 매력은 매우 낮다(완전히 신뢰를 잃은 우크라이나공산당ㆍCommunist Party of Ukraine보다도 낮다). 게다가 '라이트 섹터'는 우크라이나 정부와 비공식적인 전쟁을 치르고 있는 상태다.

국제 사회에서 계속되는 거짓 반파시스트 선전 때문에 '라이트 섹터'는 강력하게 조직돼 우크라이나 정부의 거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다는, 전혀 사실이 아닌 무시무시한 이미지를 얻었다. 물론 우리는 우크라이나에서 파시스트 운동의 문제를 과소평가하길 바라지 않는다. 극우파의 폭력, 특히 좌파를 표적으로 삼는 폭력은 야누코비치 정권 시절인 2012년 이미 확대되기 시작했다고 AWU
[자율노동조합]는 반복해서 강조했다. AWU 활동가 역시 공격받았었다. 우리 동지 중 한 명은 네오나치에 의해 칼로 공격받아 거의 죽음 직전에까지 갔었다. 또한 올해 노동절 행진 장소도 극우파와의 충돌 위협 때문에 변경됐었다.

우크라이에서 파시스트 운동에 맞서는 것은 오랫동안 아나키스트 운동의 주요 목표 중 하나였다. 서구에서 '반파시스트'를 자처하는 많은 스탈린주의 후예들과 달리 우리는 이 문제를 인터넷이 아닌 직접적인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와 우리 동지들은 노동절 아나키스트 행진을 사회주의ㆍ반자본주의ㆍ반민족주의를 주제로 키예프와 카리프, 지토미르에서 조직해냈다.

아나키스트는 나치와 우익 자유주의 정부에 양보할 의도가 없다.
[5월 12일 현재] 여당인 '바티키프쉬나[조국당]'에 맞서 급진 좌파적 저항 캠페인을 조직한 것도 바로 AWU다.

우리는 정부와 자본, 그리고 이들을 옹호하는 극우파에 맞선 싸움을 계속할 준비가 돼 있다. 그러나 이 투쟁은 정부ㆍ교회ㆍ경찰 구조와 파시스트 운동이 하나의 세력으로 단결했을 때 100배는 더 어렵다. 돈바스의 상황이 바로 그렇다.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군대'를 이끄는 것은 러시아 정부의 첩자이자 과거 차르 백위군의 열렬한 지지자인 이고르 스트렐코프다. '돈바스 정교회(Orthodox donbass)' 운동의 제안자로 국민투표를 제안한 이는 소비에트 해체 후 네오나치 운동을 이끈 것으로 유명한 알렉산드르 바르카쇼프와 협력하고 있다. 반마이단 운동의 활동가들은 유럽 파시스트의 또다른 상징인 알렉산드르 두긴을 존경하며 그와 연대를 표하고 있다.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정부'의 부의장인 데니스 푸실린은 공개적으로 1917년 혁명을 '유혈 참사'로 부르며 차르를 끝장낸 것에 대해 유감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선언과 문서들은 사회주의적 구호와 맞지 않는다. 그 문서들엔 계급 간 평화와 '소기업'의 이익에 관한 문장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동부의 범죄자들과 파시스트 군사정권은 현재 노동조합 활동가들의 납치와 고문을 자행하고 있다.

민족주의는 노동자들에게 치명적인 적이다. 이는 현재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노동계급을 물리적으로 제압하려는 지배계급을 양편의 파시스트들이 돕고 있다는 데서 입증됐다. 문제는 우크라이나 프롤레타리아트가 이를 깨닫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과 파괴를 겪어야만 할 것이냐다.

우리는 키예프 정부가 지금 즉시 도시에서 병력을 철수시킬 것을, 동부 군사정부는 평화적인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을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모든 전선에서 저항을 계속하는 것, 어떤 역경에도 혁명적 노동운동을 건설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우리는 영토를 지키거나 독립하기 위한 무의미한 싸움이 아니라 평화와 연대를 통해 계급의 공통된 이해를 중심으로 전선을 구축할 것을 우리 우크라이나 노동 인민 동지들에게 호소한다. 계급투쟁은 권력의 재분배를 위한 싸움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정부와 분리주의자의 대립에서 누가 승리하든 그것은 우리의 패배일 것이다. 이는 우리가 무엇보다
[양편 모두를] 거부하는 이유다. 정부의 결정을 무시하고 군사적 대결을 포기하는 것. 혁명적 노동운동과 파업을 조직하는 것. 바로 이것들이 우리를 이용하는 전쟁에 맞서 싸울 무기다. 우리는 오직 우리 자신, 그리고 다른 급진 좌파 조직과의 국제적 연대에만 의지할 수 있다. 우리가 지금 당장 일어서지 않는다면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다.

상품도, 주인도, 국가도, 국경도 모두 반대한다!
전 세계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Posted by 때때로

①[드림디퍼드] 내전으로 향하는 우크라이나: 반동적인 전투에서 어느 편도 지지할 수 없다(링크)
②[좌익반대파] 오직 노동자 운동 만이 우크라이나에 이는 전쟁의 불꽃을 멈출 수 있다
③[자율노동조합] 키예프 정권과 동부 군사정권 모두 반대한다!(링크)

※의역이 많고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잘못된 번역에 대한 지적은 언제든 환영합니다. 대괄호 안은 이해를 위해 추가한 것입니다.


오직 노동자 운동 만이 우크라이나에 이는 전쟁의 불꽃을 멈출 수 있다
좌익반대파|자카르 포포비치|2014년 5월 12일ㆍ링크

※자카르 포포비치(Zakhar Popovych)는 우크라이나 정치단체 '좌익 반대파(Left Opposition)'의 지도적 회원이자 경제학자다. 좌익반대파 홈페이지는 gaslo.info.

2014년 5월 오데사에서 참혹한 충돌과 '노동조합 본부'의 화재로 4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폭력 행위는 대립하는 양편 모두에서 비롯했고 여기에는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다. 사태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선 매우 신중한 조사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는 단지 처음 받은 느낌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사건은 소위 친러시아 활동가들이 '우크라이나의 단결'을 위한 행진을 방해하면서 폭력이 유발된 것처럼 보인다. 5월 2일 전 오데사에서는 양편 모두 시위를 하기 위해 반대자들을 훼방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러한 행진 방해는 분명히 공격적인 행보다. 전에는 친러시아 시위가 방해받는 일이 절대 없었다. 두 시위대가 서로를 향해 날릴 단단한 돌멩이와 포석에 각각 다가갔을 때였다.

그 순간 '친러시아' 진영에서 먼저 총격이 있었다고 증언한 목격자를 우리는 확보했다. 오데사 친러시아 운동의 일부인 '보로트바(Borotba)'조차도 총격을 먼저 시작한 것이 그들 편은 아니라고 반박하지 않는다. 대부분 자동소총이었지만 게중에는 산탄총도 있었다.

당시 오데사 시내 소보르나야 광장의 '우크라이나의 단결' 시위대가 자신들 행진이 '친러시아' 진영에 의해 가로막혀있는 동안 총을 쐈다는 확실한 목격자는 찾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기관총이 발포됐다는 증거를 갖고 있다. 첫 사망자와 심각한 부상자가 기관총 사격에 의한 것이다. 목격자는 '친러시아' 진영에서의 총격이 경찰의 뒷편에서 그들의 비호 아래 이뤄졌다고 말한다. 여기서는 대부분의 목격자가 충돌에 참여했었고 사태를 매우 감정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걸 강조하는 게 중요하다. 이 사태에 대한 공정하고 편견 없는 조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편 총격 이후 '친러시아' 진영은 '친우크라이나' 시위대에 의해 잔인하게 구타당했다. 그들 중 많은 수가 심각하게 부상당했고 몇몇은 어쩌면 목숨을 잃었다. 게다가 '친우크라이나' 시위대는 오데사 주요 역 가까이의 쿨리코포 폴 광장의 '친러시아' 농성장을 야만스럽게 습격해 때려 부쉈다. 수분 만에 천막이 불타버렸다. 우리는 당시 '친우크라이나' 시위대 또한 총을 사용했다는 확실한 첫 목격자 또한 확보했다. 그 다음 '친러시아' 시위대는 '노동조합 본부'로 몸을 피했다. 밖에서 던져진 '화염병' 때문에 건물에 불이 붙었다(불이 건물 안에서부터 시작됐다는 이론은 매우 의심스러운 주장이다). 물론 우리는 경찰 첩자가 할 수 있는 역할의 가능성을 제외할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불길 속에서 숨이 막혀 죽거나 불에 타 목숨을 잃었다. 어떤 사람은 창문으로 뛰어내리다 목숨을 잃었다. 어떤 이는 화재 대비 사다리와 줄을 사용해 탈출했다. 제정신을 차리고 불길에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나선 '친우크라이나' 시위대가 있었다는 목격자도 있다. 그들은 사다리를 몇몇 창문에 대고 몇몇 창문 앞에는 땅과 충돌 시 충격을 줄이기 위한 타이어를 가져다 놓으려 시도했다.

그러나 사다리를 이용해 불길에서 탈출한 사람들과 이 사다리를 설치한 이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 증거 또한 있다. 불길로부터 벗어난 '친러시아' 시위대는 항복하길 원치 않았고 탈출을 위한 싸움을 시도했다. 몇몇 목격자는 저항하지 않은 몇몇 '친러시아' 시위대가 구타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증거들이 모순되기에 사건에 대한 편견 없는 조사 없이 무엇이 일어났는지 확신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1년여 전 공동행동에 참여했던 급진 좌파 활동가들이 지금은 서로의 목숨을 앗아간 양편의 행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27세 프로그래머이고 '보로트바'의 회원인 안드레이 브랴이프스키는 '노동조합 본부'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는 친러시아 준군사조직인 '오데스카야 드루지나 (Odesskaya druzhina)'에 소속돼 있었다. '반파시스트' 축구 팬 운동에 참여했던 또다른 청년은 소보르나야 광장에서 총격을 당했다.

모든 민족과 인종에서 우크라이나 노동계급 이해와 관련 없는 것이 명백한 전쟁에 좌파 활동가들이 총알받이 보병이 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좌파는 마이단 동안의 키예프 전투에서 경찰에 맞서다 목숨을 잃었었다(33세의 아나키스트 세르게이 켄스키가 2월 20일 인스티투츠카 거리에서 살해됐다는 것을 기억하라). 지금 반마이단 편에서 전투에 참여하고 있는 좌파들 또한 살해당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이 적대적 운동 중 어느 것에도 참여하지 않고 있고 그 때문에 두 운동은 계속해서 사회적ㆍ계급투쟁적 의제로부터 민족문화적인, 민족적인, 마침내 애국주의적인 것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양편에는 사회보장과 노동자 권리에 관한 모든 쟁점보다 우크라이나 국가의 존재의 정당성에 관한 질문이 더 중요하다.

노동자들은 자신이 참여하는 곳에서 폭력을 허용하지 않는다. 동부 또는 서부에 상관없이 우크라이나 모든 지역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산업도시 크리프이리(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 주)의 반마이단 세력이 마이단 활동가를 공격하고 구타하기 위해 용병을 사용하려 했을 때 광부들의 자기방어 조직은 선동가들을 진압하는 방법을 손쉽게 발견했고 그 누구도 목숨을 잃지 않았다.

크라스노돈(루간스크 주)의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가 봉기 기간 도시를 자신의 통제하에 효과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을 때 어떤 사망자도 없었다. 노동자들은 반마이단 또는 친마이단 세력 중 그 누구도 자신을 이용하게끔 놔두지 않았다. 그들은 '친러시아' 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에서 티모센코 또는 다른 어떤 부르주아 후보 지지에 자신들을 이용하도록 허락하지도 않았다.

크리프이리와 크라스노돈에는 노동자가 있지만 오데사ㆍ도네츠크ㆍ루간스크 또는 슬라뱐스크나 크라마토르스크의 거리엔 조직된 노동자가 없다. 대체적으로 노동자는 그 운동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 우리는 우크라이나 중부에서는 독립 노동조합과 연관된 몇몇 징조를 찾았지만 동부의 운동에 노동조합이 연관을 맺고 있다는 신호는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 우크라이나에 불타오르는 내전의 비극에서 핵심이다.

우크라이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균질하다. 우크라이나 전국 각지에 많은 러시아 민족과 우크라이나 민족이
[섞여] 있다. 그리고 그들을 싸우게 만드는 것은 전국 각지에서 민족적 대립이 벌어짐을 뜻할 것이다. 마이단과 반마이단 또는 소위 '친우크라이나'와 '친러시아' 운동의 사회적 구성을 추측해봤자 아무런 소용없다. 그것은 거의 같은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물론 룸펜과 푸티부르주아적 요소까지 양편 모두에 존재한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살고 있는 도시에서는 더 많은 노동자들이 마이단과 반마이단 양편에 참여한다.

여기엔 또한 많은 우파와 매우 약한 노동자 운동이 공존한다. 소련의 스탈린주의는 우리 나라에서 노동자의 자기-조직화 전통을 파괴했고 독립적인 노동운동은 현재 겨우 시작하는 수준이다. 그러함에도 이 단계는 중요하며, 총파업이 시위의 의제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이미 보여줬다.

그리고 이 전쟁을 중단시킬 유일한 힘은 권력으로부터 올리가르히 몰아내는 것과 사회 정의를 요구하는 것을 중심으로 연대한 노동자들의 운동에 있다. 우크라이나가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가능성은 여기에 있다.

우리는 경찰이 능력이 없을 뿐 아니라 그 누구도 보호할 수 없음이 오데사에서 입증되는 것을 목격했다. 우리는 노동자들에게 파업위원회의 통제를 받는 그들 자신의 독립적인 자기방어 조직을 구성할 것(루간스크에서처럼)과 크리프이리의 '광부' 수백 명처럼 독립적인 노동조합을 만들 것을 호소한다.

마이단과 우크라이나 정부의 차이

우리는 이 정부를 절대 지지하지 않아 왔다.

우리는 정부를 일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결코 지지하진 않는다. 여기서 이 정부를 군사 정부로 간주해선 안되는가라는 또다른 의문이 제기된다. 아직은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키예프는 군사정권은 아니지만 슬라뱐스크는 군사정권이 맞다. 키예프에서 당신은 분명히 적기를 들고 어떤 종류든 선전전단을 나눠주며 시위를 벌일 수 있다. 노동절 시위는 이를 명백히 보여줬다. 키예프에선 모든 민주적 자유가 보장되지만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에선 아니다. 아마 당신은 언론인과 평범한 사람들의 잦은 납치사건에 관해 들었을 것이다. 부활절에 나는 키예프로 표시된 등록증 때문에 기관총으로 무장한 사람들로부터 알몸 수색을 당했다. 나는 보석금을 내준 지역 주민에 의해 무사할 수 있었다. 내 어떤 친구는 슬라뱐스크의 SBU(the Security Service of Ukraineㆍ우크라이나 보안국) 건물 지하 어딘가에 아직도 갇혀있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을 위한 감옥으로 만들기 위해 행정관서를 이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키예프 중앙정부를 살펴보자면 이 정부는 우크라이나 동부의 그 누구도 대표하지 않기도 하지만 서부와 중부에서도 사실 많은 신뢰를 받고 있진 않다. 마이단은 정의, 우선순위의 첫째로 사회정의라는 사상에 고취돼 일어난 대중운동이었다. 우리가 1월과 2월 마이단에서 공개적으로 토론할 때 사람들은 이제 곧 야누코비치가 물러나 부패를 끝장내고 사회적 기준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사람들은 새 정부가 바로 야누코비치처럼 긴축정책과 복지의 삭감을 시행할 수 있다는 발상에 분노했다. 누구도 이를 믿지 않았지만 정부가 IMF 지원을 받기 위해 현재 하려고 하는 것이 정확히 이것이다.

정부는 지금 그 관심을 국가안보로 돌리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민족주의적 히스테리는 마이단과는 그 어떤 관계도 없다.

이 정부는 한때 마이단에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 정부는 분명 마이단이 받아들일 수 잇는 최악의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더 이상 친마이단이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2013년과 2014년 사이 겨울에 있었던 우리가 알고있는 마이단 운동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는 이제 마이단의 사회정의 의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는 정부를 마이단의 진정한 정수로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새로운 마이단, 노동자들의 마이단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현재 '프라비 섹토르'가 군대를 통제하거나 거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몇몇 우파 정당 회원이 개인적으로 군대에 참여할 수는 있지만 지금까지 그들은 그 속에서 작은 소수파일 뿐이다. '프라비 섹토르'는 거의 러시아 TV에만 존재하는 매우 작은 정당이다. 그러나 "러시아 침략으로부터 우크라이나 민족을 방어하자"는 민족주의적 의제로의 전환이 급진 우파를 더욱 더 중요하게, 그리고 군대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하게 만들 것이라는 점 또한 사실이다.

동부의 운동

동부의 운동이 키예프 마이단보다 더 적은 규모이며 덜 야단스럽다는 점은 분명하다. 예를 들면 그들은 지난달 도네츠크에서 강경파 1500명 이상이 참여한 한 대중적 가두행진을 조직하는 데 실패했다. 그 행진에는 매우 적은 전단과 신문만 배포됐고 사실상 어떤 토론도 없었다. 한달 전 슬라뱐스크와 크라마토르스크의 대중 시위에서조차 공개적인 토론장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현재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군대의 통제하에서 그와 같은 장소는 분명히 없다. 그들은 토론 대신 위성으로 중계되는 러시아 TV를 보는 공공장소를 만들고 있다.

러시아 시민이, 심지어 무장 단체까지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가장 적극적인 참여자들은 물론 지역 주민이다. 예를 들면 크라마토르스크에서는 두 개의 주요 지역 범죄단체가 '자기방어' 의용군의 지도적 역할을 맡고 있다. 슬라뱐스크 '그린맨' 부대에서 다수는 러시아 시민이고 몇몇은 러시아 보안군에서 퇴역한 군인 출신이다. 실제로 러시아 관계자 누군가가 개입하고 있을까? 물론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러시아 당국의 개입은 확실해 보인다.

다른 한편 운동이 시작될 때 조직화에 나선 주요 세력이 러시아 정부가 아니라 지역 올리가르히인 것은 분명하다. 야누코비치ㆍ모길레프ㆍ프숀카 등이 얼마만한 규모로 개입했는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우크라이나의 주요 올리가르히이고 사람들이 '돈바스의 주인'이라고 부르는 아흐메토프가 알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동의에 의해 시작된 것은 분명하다.

물론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특히 슬라뱐스크 군사 쿠데타를 지도한 것은 우파 배타적 애국주의자들이다.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군대 사령관은 의식적인 군주제 지지자이고 데니킨
[러시아 혁명 당시 백군의 지도자]의 열렬한 팬인 스트렐코프(전직 FSBㆍ러시아연방보안국 요원인 지르킨)다. 이 사람들 모두는 우크라이나 독립이 되돌려야 할 역사적 실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이해한 대로 이것은 대부분의 우크라이나인에게, 심지어 돈바스에서도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이 운동을 조금도 반파시스트 운동이라고 부를 수 없다. 이 운동은 마이단 운동보다 덜 파시즘적이지 않다. 내게는 지금 이들이 행동하는 방식에서 더 파시스트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주일 전 도네츠크에서 이 '반파시스트' 시위대가 '친우크라이나'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공격했던 것을 떠올려보라. 금속봉으로 잘 무장한 300명의 사람들이 800여 명의 더 강고한, 하지만 조금의 무장도 하지 않은 친마이단 시위를 공격했었다. 친마이단 편에서 모두 12명이 심각한 부상을 입어 여전히 병원에 있고 150명 이상이 구타를 당했다. 이 '반파시스트'들은 이른바 그들이 부르기로 '마이둔스(maiduns)'를 해산하고 구타를 끝낸 후 바로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원문에는 DNR이라고 쓰여있는 데 DPR의 오기인 듯싶다] 본부로 돌아갔다. 자신들을 숨기려는 어떤 노력도 없이 말이다.

이 운동에 참여하는 좌파는 이들의 배타적 애국주의 의제를 부추기고 있으며 이 운동을 어떠한 국제주의로도 끌어오는 데는 실패했다. 지금 이들은 러시아 제국주의가 미국보다는 덜 나쁘기에 "우리는 러시아 제국주의를 지지할 것"이라며 자신을 옹호하고 있다. 이는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좌파와 마이단' 콘퍼런스 결산

우크라이나에서 소위 '유로마이단' 운동은 복합적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은 한층 더 복잡하다. 우리는 마이단에 대한 것들을 정리하기 위해 4월 12일 키예프에서 콘퍼런스를 개최했다[1]. 물론 우리는 모든 점에서 마지막 결론에 도달하진 못했다. 그러나 나는 주요 내용을 두 가지로 요약해 보겠다.

▶ '마이단'은 분명 좌파적이지 않지만 본질적으로 좌파적 개념인 사회정의와 사회 변혁이라는 발상에 매우 예민했다. 마이단의 많은 사람은 매우 급진적인 좌파 구호인 올리가르히에 대한 누진세 적용, 공개적인 회계, 직접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노동자 통제와 심지어 부르주아지의 선거권 제한(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부자들의 선출과 정부 요직 임명 금지를 제안했다)까지도 지지했다.

▶ 좌파의 주요 문제는 자신의 사상을 충분히 표현하는 데 있어서의 무능력인 것으로 보인다. 좌파들은 흩어져 있다. 몇몇은 대중운동과 그 자신을 철저히 떨어뜨려 놓고 있고 다른 대부분은 그
[대중운동] 속에 녹아 사라졌다.

주요 실패는 협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보로트바 활동가 데니스 레빈이 마이단에서 네오나치에게 공격받던 시간에 그곳에선 두 개의 다른 좌파 행사가 있었다. 그곳으로부터 300m 떨어진 마이단의 중심부에선 '직접행동' 동맹에서 온 학생 30명이 학생의 자기조직화에 관한 발표를 준비하고 있었다. 500m 떨어진 곳에선 다른 좌파와 반파시스트 200명이 경찰 폭력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사실상 혼자 자신의 노동조합 전단을 나눠주던 데니스 레빈을 네오나치가 공격한 것은 놀랍지 않다. 그가 속한 보로트바는 그를 돕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가 그와 함께하기 위해 갔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었다.

2014년 5월 8일, 키예프에서

[1] "국가적인 배타적 애국주의와 성차별주의, 동성애 혐오증, 인종차별을 규탄하고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개입과, 좌파와 노동조합 활동가 또는 비무장한 시위대를 향한 모든 폭력에 항의하기 위한 좌파의 조직화와 계획"을 위한 이 콘퍼런스에는 크리프이리와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에서 온 자유노동조합연맹(the confederation of Free Trade Unions) 소속의 광부 몇 명을 포함해 다른 조직의 활동가 80명이 참여했다. 인터내셔널뷰포인트(International Viewpoint) 협력자 캐서린 사마리(Catherine Samary) 또한 발표했다.

Posted by 때때로

5월 25일 우크라이나 대선에서 율리아 티모센코가 아닌 페트로 포로셴코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우크라이나 최대 올리가르히 중 하나인 포로셴코는 유명한 초콜릿 회사 로셴의 회장이다. 지역당과 조국당(바티키프쉬나)의 두 날개를 이용해 우크라이나를 공고히 지배해온 올리가르히가 정치의 전면에 나섰다. 그는 야누코비치 실각 전 EU와 러시아 사이에서의 좌충우돌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올리가르히다. 야누코비치가 러시아에 맞서려 할 때 푸틴은 포로셴코의 로셴 수입을 전면 금지했었다. 2009년 러시아와의 수상쩍은 가스 협정에서 보인 티모센코와 바티키프쉬나의 우유부단함과 갈팡질팡은 포로셴코가 전면에 나서게끔 했을 것이다. 그 사건으로 감옥에 갖힌 티모센코는 (주로 EU와 서방 정치인들에 의해) 야누코비치 독재에 맞선 저항의 상징으로 떠올랐지만 다른 한 편 그녀 또한 부패한 정치인의 일부라는 증거로 대중에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티모센코의 '의외'의 추락은 이미 '예상'됐던 것 중 하나다.

포로셴코의 당선으로 러시아와의 충돌 가능성이 낮아질 것이라는 예상이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에 배치한 군대 4만여명의 대부분을 철수시켰다.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등 동부의 반란 세력이 러시아와의 연관성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는 것과 달리 러시아는 그 관계를 부정하고 있다. 5월 30일 있었던 EUㆍ우크라이나ㆍ러시아 3자 에너지 협상에서는 가스 공급을 둘러싼 갈등에 어느정도 해결의 실마리가 잡혔다.

그러나 동부에서의 군사적 갈등은 5월 2일 오데사에서의 충돌 이후 더 강화되고 있다. 애초 대중의 운동이었는지는 의심스럽지만 형식상 대중운동 사이의 충돌이 현재는 군사적 충돌로 비화하고 있다. 이 끔찍한 충돌의 한 편인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을 반파시스트 운동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박노자 교수는 동부의 운동을 "반미 반파쇼 투쟁"이라고까지 말한다. 따라서 이 운동은 "나름의 진보적 함의와 가능성"을 지녔고 박 교수에게 러시아 좌파의 임무는 "그들을 도와주고 양쪽 계급동맹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매우 위험한 주장이다.

첫째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을 비롯한 동부의 운동을 '반미 반파쇼 투쟁'의 일부로 부를 수 있다면 푸틴 또한 '반파쇼 투쟁'의 일부로 봐야 할 것이다. 크렘린궁의 공식적 부인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퇴역군인 내지 정보국 요원들의 개입 증거가 제시되고 있다. 러시아 파시스트 운동의 대부 알렉산드르 데긴과 동부 민병대들의 연관성도 폭로되고 있다. 동부 운동을 '반미 반파쇼 투쟁'으로 고려하는 건 말도 안되는 것이다. 둘째 러시아 좌파가 도와야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동부의 '독립 운동'을 돕는 것을 뜻한다면 매우 위험한 얘기다. 이는 우크라이나 노동계급의 단결을 파괴하고 친러시아 민족주의와 친우크라이나 민족주의의 충돌을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결과만 낳을 것이다. 셋째 "양쪽 계급동맹의 구축"은 매우 모호하다. 왜냐면 동부에서 노동자들은 계급으로서 운동에 참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직 개인으로서, 파시스트적 애국주의에 매몰된 개인으로서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즉 이러한 계급동맹은 현실에서 친러시아 애국주의 세력과의 동맹으로만 가능하다. 실제로 러시아 파시스트는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우크라이나 동부의 '반파쇼 투쟁'에 연관을 맺고 있다.

5월 우크라이나 동부에서의 충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글 세 편을 옮긴다.

이 세글에는 각자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존재한다. 가장 큰 차이는 우크라이나 외부의 좌파인 드림디퍼드의 첫 글과 다른 두 우크라이나 내 좌파의 글 사이에 있다. 드림디퍼드(www.dreamdeferred.org.ukㆍ링크)는 키예프 정권(포로셴코 집권 전)을 파시스트 군사정권 취급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내 좌파인 좌익반대파(gaslo.infoㆍ링크)와 자율노동조합(avtonomia.netㆍ링크)은 서부와 중부의 파시스트 위협은 과장됐거나 진정한 사정을 잘못 파악한 것이라고 본다. 좌익반대파 활동가는 서부보다 동부가 더 파시스트에 가깝고 거의 확실한 군사정권이라고 주장한다. 자율노동조합은 파시스트가 야누코비치 시절인 2012년경부터 확산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글 세편은 모두 "늑대는 문 밖, 우크라이나 외부에 있"고 외부의 "이 제국주의 경쟁 체제에서 좋은 제국주의란 없다"는 점에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드림디퍼드는 우크라이나가 분할된다면 "노동계급 인민이 큰 값을 치러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자율노동조합은 이 둘로부터 독립적인 "혁명적 노동운동과 파업을 조직하는 것, 바로 이것들이 우리를 이용하는 전쟁에 맞서 싸울 무기"라고 힘주어 말한다. 좌익반대파는 좌파에 "협조가 부족했기 때문"에 실패했다며 노동계급 운동 건설을 위해선 좌파의 공동행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주장들은 우리가 사태의 전개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열쇠다.

포로셴코가 대통령에 당선된 상황에서 추가적인 사건의 추적과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①[드림디퍼드] 내전으로 향하는 우크라이나: 반동적인 전투에서 어느 편도 지지할 수 없다
②[좌익반대파] 오직 노동자 운동 만이 우크라이나에 이는 전쟁의 불꽃을 멈출 수 있다(링크)
③[자율노동조합] 키예프 정권과 동부 군사정권 모두 반대한다!(링크)

※의역이 많고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잘못된 번역에 대한 지적은 언제든 환영합니다. 대괄호 안은 이해를 위해 추가한 것입니다.


내전으로 향하는 우크라이나: 반동적인 전투에서 어느 편도 지지할 수 없다
드림디퍼드|타시 시프린|2014년 5월 5일ㆍ링크


친우크라이나 시위대가 오데사의 노동조합 건물에 화염병을 던지고 있다. 건물 안의 반마이단 시위대 수십 명이 불에 타 숨졌다. [Reauters]

5월 2일 친러시아 '반마이단' 시위대와 친우크라이나 유로마이단 활동가 사이에 광범위한 충돌이 벌어진 이후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의 사망자 수가 46명에 다다랐다.

친우크라이나 시위대가 반마이단 활동가들이 점거한 건물에 화염병을 던져 불을 지르면서 끔찍한 결과에 직면한 것이다.

이후 반마이단 시위대가 장악한 동부 슬라뱐스크에서 우크라이나군이 통제권을 되찾으려 하면서 최소 수십명이 더 목숨을 잃었다.

충돌의 무시무시한 확대는 우크라이나를 갈래갈래 찢어놓을 것처럼 보인다. 거울로 마주본 것 같은 반동적 전투는 경쟁적인 두 반동적 제국주의의 지원을 받는 양편에 이를
[우크라이나의 분할] 강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내전의 위기에 처해 있다.

러시아가 몇 주 동안 4만 명의 병력을 국경에 배치해놓고 있으면서 전면적인 침략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미국도 이에 대한 대응으로 국제적 긴장을 증가시키는 개입을 확대하고 있다.

입증

지난 2월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의 실각과 뒤이은 키예프의 새 정부 구성 이후 우리가 드림디퍼드에서 제시한 분석이 최근의 암울한 사건으로 입증되고 있다.

그 분석에서 우리는 내전 위험을 경고했다. 실제로 우리는 2월의 그 글로 되돌아가 우크라이나 위기의 이번 단계가 시작된 지점과 당시 이미 내전 가능성을 걷잡을 수 없이 키우던 사태 전개를 살펴볼 가치가 있다.

▶2014년 2월 야누코비치 퇴진 직후의 분석
야누코비치 실각에 슬퍼하지도, 새 정부와 파시스트를 응원하지도 말라(링크)


우리는 러시아에 뿌리를 둔 키예프의 새 친EU 정권에 반대하는 '반마이단' 운동의 시작을 보고했다. 그리고 유로마이단이 준군사조직 결성으로 타락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 남부와 동부의 반마이단 시위가 이미 그들 자신의 준군사조직을 어떻게 조직하고 있는지 전했다.

유로마이단이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영향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반마이단 운동은 러시아 국기와 지역 또는 옛 소련의 깃발을 들었다.

이 두 개의 추한 민족주의는 상처받은 우크라이나 노동계급에게 오직 더 큰 분열만 내놓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은 양편 모두에서 조직된 파시스트와 낡아빠진 인종주의, 반유대주의 반동에게 유리한 환경이었다.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를 잃을 가능성과 나라가 피투성이로 해체될 위험성을 우리는 2월에 지적했었다.

현재 사망자 수가 증가하면서 키예프 정부는 남부와 동부 친러시아 준군사조직과의 전투를 위해 징집병을 복귀시키고 있다. 핵심에 파시스트를 포함한 유로마이단 준군사조직, 소위 '자기방어' 조직인 사무보로나(Samooborona)의 일부는 새로운 방위군, 실질적으로 특정 정파와 당파의 권력인 군의 일부로 통합됐다.

프라비 섹토르(Pravy Sektorㆍ극우파 연합)의 독립적인 파시스트 대원들 또한 우크라이나 '민족 혁명'을 위한 전투에 열정적으로 그 자신을 내던지고 있다.

분열과 파괴

그러나 우크라이나 보통 사람들에게 오직 분열과 파괴만을 가져올 유혈 충돌의 양편을 후원하는 것에 그 누구도 끌리진 않을 것이다.

유로마이단을 진보 또는 반자본주의로 파악하고 이에 대한 지지를 주장했던 몇몇 좌파가 있다. 시위대 다수가 더 나은 민주주의를 진심으로 바랐고 경제위기에 진정 분노했음에도 운동으로서 유로마이단은 진보적이지 않다고 우리는 드림디퍼드에서 주장했다.

대개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는 서부와 중부 지역으로부터 주로 지지를 받아온 친EU 유로마이단 운동은 남부와 동부 노동자와 손잡을 수 있는 노동계급 요구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 대신 운동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의 외피를 썼고 이 운동에서 파시스트의 역할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유로마이단 시위의 확대, 특히 준군사조직의 발전에서 파시스트가 해온 중요한 역할을 드러냈다. 우리는 주류 언론보다 앞서 키예프 정부에 파시스트가 장관으로 입각했음을 폭로했다.

현재 또 다른 좌파는 광범위한 친러시아 그룹 또는 '분리주의자' 시위대와 그들의 경쟁자인 유로마이단을 모방한 준군사조직이 정부 청사를 점거하고 검문소를 세우면서 이들에게서 어떤 구원을 찾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들에 대응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한 키예프 정부와 군사적 대결을 시작했다.

양편 모두 아니다

나는 이 암울한 전투에서 양편 어디든 지지하는 것에 맞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키예프 정부의 합법성을 믿지 않으며 프라비 섹토르와 다른 유로마이단 준군사조직으로부터 위협을 느낀 그 지지자들 다수의 진정한 두려움과 분노에도 불구하고 동부의 운동은 자신의 거울 이미지인 유로마이단보다 더 이상 진보적이지 않다.

유로마이단과 마찬가지로 반마이단 시위는
[지역간] 분열을 넘어 지지받을 수 있는 종류의 정치적 노동계급 요구를 명확히 표명하지 않았다.

그 대신 반마이단에는 종종 스탈린주의의 그늘 아래 있는 러시아 민족주의가 만연하다. 러시아ㆍ소련 깃발이 눈에 많이 띄고, 검은색과 주황색 줄무늬로 된,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이 수여했던 훈장에 사용된 성조지의 리본
[Ribon of St. Georgeㆍ현대 러시아에서 군사적 용기를 상징하는 것. 소련은 2차 세계대전 승전을 기념하며 수여된 훈장의 리본으로 사용됐다]이 운동에서 단결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이는 우크라이나를 편입시켰던 위대한 러시아 제국의 나날들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반마이단을 주도하는 친러시아 또는 러시아 민족주의 정치는 파시스트 단체에 최적의 조건이다. 반마이단 운동의 보다 혼란스러운 조건에서, 유로마이단에 존재했었던 것과 같이 세력을 규합한 파시스트를 알아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들이 그곳에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우크라이나의 가장 큰 파시스트 단체 스보보다와 프라비 섹토르를 구성한 단체들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파시즘과 반동

더 작은 규모긴 하지만 우크라이나에는 러시아 나치인 러시아민족통일당(Russian National Unity Party)과 연관된'슬라브족의 단결(Slavic Unity)'과 같은 러시아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파시스트 단체가 있다. 러시아에 뿌리를 둔 이들 파시스트 단체 몇몇은 지난해 11월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에서 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그 직후 유로마이단 시위가 폭발했다.

지금 그 단체들이 반마이단에 집중하고 있을 수 있다. 왕정 지지자들의 검정과 황금ㆍ백색 깃발이 우크라이나 남부와 동부를 통합한 '새로운 러시아' 또는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시를 장악한 '대러시아'라는 구호와 함께 극단적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그리고 반 유대주의 흐름이 또다른 인종주의ㆍ동성애혐오주의 요소와 함께 반마이단 운동 구호를 오염시키고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반마이단 운동은 스스로를 '반파시스트'라고 칭하길 선호한다. 그러나 이는 반동적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반파시스트'라고 부르는 것 만큼 매우 허황된 소리일 것이다.

진정한 반파시스트 운동은 그 경쟁자인 민족주의자 또는 배타적 애국주의자 이념을 촉진하는 것으로 건설되지 않는다. 일일이 셀 수 없이 많은 무장 준군사조직을 구성한 청년들의 작은 단체들에 의해서도 아니다. 이는 오직 스보보다와 프라비 섹토르 세력의 거울 이미지만 만들어낼 뿐이다.

특히 가짜 '반파시스트' 수사와 진짜 반유대주의의 일그러진 조합은 프라비 섹토르의 나치가 유대인 또는 유대인이 조정하는 조직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만들어낸다.

반마이단 운동에서는 유로마이단의 지도자들과 같은 잘 알려진 정치적 인물이 부족하다. 몇몇 도시에서 반마이단 시위가 매우 크게 벌어졌지만 통일된 요구안 또는 키예프 독립광장('마이단'의 원본)과 같은 저항의 중심은 불분명하다.

적ㆍ청ㆍ흑 깃발을 든 '도네츠크 인민공화국(People's Republic of Donetsk)'이라고 알려진 것을 포함해 돈바스 인민의용군(the Donbass People's Militia), 동부 전선(the Eastern Front), 남동부 군대(the South-Eastern Army) 등 일련의 단체와 민병대가 동부와 남부의 주들에 등장했다.

이들은 이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람을 지도자로 내놓았다. 투표로 뽑은 것도 분명 아니다. 그들은 비도덕적으로 보이는 패거리다. 과거에 피라미드 사기꾼이었지만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의 '의장'에 앉은 데니스 푸실린도 거기에 포함된다.


돈바스 인민의용군(the Donbass People's Militia) 지도자 파벨 구바레프(Pavel Gubarev)가 과거 파시스트 준군사조직 러시아 민족단결단(Russian National Unity)과 함께하고 있다. 앞줄 왼쪽에서 셋째다(뒷쪽 문의 문양은 러시아 파시스트의 상징으로 쓰인다). [Pauluskp]

돈바스 인민의용군은 파벨 구바레프(Pavel Gubarev)가 이끈다. 그는 파시스트 준군사조직 러시아 민족단결단(Russian National Unity)과 우크라이나 진보사회주의자당(the Progressive Socialist Party of Ukraine)의 전 회원이었다. 우크라이나 진보사회주의자당은 이름과 달리 러시아 파시스트 알렉산드르 두긴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유라시안 청년동맹(the Eurasian Youth Union)과 동맹을 맺었다.

슬라뱐스크 '시장' 비야체스라프 포노마리오프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했던 퇴역군인이고 비누공장의 전 경영진이다. 그는 자신의 민병대 지지자들을 '의심스러운 사람'이라고, 특히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는 이들을 그렇게 불렀다고 알려졌다. 그리고 어떤 무명의 무장 강도는 4월 포노마리오프의 명령으로 로마인
[집시] 가족의 집을 공격해 도둑질 했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친우크라이나 활동가들이 프라비 섹토르 전투원들과 함께 5월 2일 오데사의 참혹한 충돌에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수가 축구 훌리건 집단 '울트라'인 이들은 전투를 계획하기 위한 예행 연습으로 축구경기를 이용했다
[4월 27일 하리코프에서 드니프로와 메탈리스트의 경기에 모인 훌리건 5000여 명은 프라비 섹토르 활동가와 함께 키예프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대 300여 명의 평화로운 행진을 공격했다ㆍ링크]. 파시스트 단체들은 자신의 회원 중 한 명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그리고 오데사 반마이단 단체 '남부 전선(Southern Front)'은 5월 2일 '걱정스러운 거주자들'이 '오데사 방어에 함께' 참여해줄 것을 재촉하는, 러시아 파시스트들이 사용하는 검정과 황금ㆍ백색 깃발과 마스크를 쓴 전투원을 그린 이미지를 배포했다.


5월 2일 반마이단 활동가들을 동원하기 위해 사용한 이미지. 러시아 파시스트 집단이 선호하는 검정과 황금ㆍ백색으로 된 깃발이 담겨있다.

진정한 분노

중요한 것은 이것이 반마이단 운동을 지지하거나 심지어 거기에 참여하는 이들 모두 혹은 대다수가 파시스트라는 걸 말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당연히 다수는 파시스트가 아니다. 5월 2일 참혹한 죽음을 맞이한 반마이단 활동가 가운데는 스스로 반마이단 운동에 참여한 주요 정당 지역당(Party of Regions) 소속 오데사 지방의회 의원과 조그만 주변부 좌파 단체인 보로트바(Borotba) 활동가도 있다.

반마이단 지지자 다수는 유로마이단 지지자 다수와 마찬가지로 경제 붕괴와 부패한 정치 제도에 대한 진정한 분노 때문에 움직였다. 덧붙여 키예프국제사회연구소(the Kiev International Institute of SociologyㆍKIIS)가 우크라이나 남부와 동부 여덟 개 주에서 4월 둘째 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 새 정부가 합법적이라고 믿는 사람의 수는 기껏 세 번째였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키예프 정부는 유로마이단 여파로 집권했다. 그런데 운동은 러시아어 사용 인구가 집중돼 있고 문화와 경제에 있어 러시아와 강하게 연관돼 있는 우크라이나 남부와 동부 지역에서 약간의 지지만 얻었다.

준군사조직이 핵심 건물을 점거하는 것에 대해 이 조사의 12% 만이 지지했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사실 조사에서 표현된 가장 큰 걱정거리 두 개는 '약탈 확대'(43%)와 경제 붕괴(39%)였다. 내전 위협(32%)과 월급ㆍ연금의 미지급(25%)이 그 뒤를 따랐다.

이러한 두려움은 서부와 중부 인민들 역시 공유할 법한 것이다.

또한 눈에 띄는 것은 여론조사가 우크라이나의 경제와 정치인 대다수를 조정하는 소수의 올리가르히와 실질적으로 대결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24%가 올리가르히 재산의 국유화를 지지하고 또다른 41%는 올리가르히가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재산의 국유화에 찬성한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그러나 동부에서 유로마이단과 친러시아 운동 모두는 우크라이나 전역의 노동자를 단결시킬 수 있는 정책과 요구를 제시하지 않았다.

견고한

그들은 전통적인 정치적 분할속에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는 예전에 우크라이나 올리가르히의 두 날개로 동맹을 맺은 정당들에 대한 투표로 표현됐다. 그중 한 편은 이익이 EU에 달렸고 다른 한 편은 러시아에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현재 이 출구 없는 정치는 군사적 활동으로 대치되고 있다. 이는 그 자신의 동학을 지니고 있다. 형식적 국가구조가 어찌할 도리 없이 그 내부로부터 붕괴되는 것으로 겉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있다.

유로마이단 운동은 야누코비치 실각 이후 흩어졌지만 자위를 위한 준군사 조직과 프라비 섹토르 세력은 해산하지 않았다. 몇몇 도시에서 그들은 경찰이 있든 없든 '순찰'을 하고 있고 거기에 강도질을 벌이고 구타와 침입을 자행하며 인종적 공격과 정치인ㆍ정부 관료에 대한 습격을 하고 있다.

인권단체 '개인에 대한 범죄정보 그룹(the Information Group on Crimes Against the Person)'은 지역 신문에 보도된 이런 사건들에 대한 목록을 수집해 왔다. 이들은 또한 지금까지 반마이단편에 의해 자행된 폭력적 공격행위의 수가 더 적은 데 주목한다.

우크라이나 서부와 동부에서 정부 청사와 경찰서는 어느 쪽 단체에 의해서든 그들을 포위 공격한 이들에 의해 손쉽게 점령돼 왔다. 키예프 정부는 동부에서의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워싱턴도 모스크바도 아니다

늑대는 문 밖에, 우크라이나 외부에 있다. 러시아를 한편으로 하고 미국과 EU를 한편으로 하는 주요 제국주의 세력은 오랫동안 제국주의 전장으로 피흘려온 우크라이나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워싱턴과 모스크바는 우크라이나 인민에게 도움이 될 어떤 제안도 하지 않았다. 양편은 오직 그 자신의 자본주의 블록의 이익을 위해 평범한 사람들이 비용을 치를 세계의 분할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전략적ㆍ경제적으로 훨씬 더 중요하다. 그래서 러시아는 대규모 군사적 개입을 준비하고 있다. 4만여 명의 병력을 국경에 모아 언제든 침략할 수 있게 준비하는 것으로 대규모 파괴와 참혹한 전쟁의 위협을 가하고 있다.

미국과 EU 편은 주로 러시아의 확장을 저지하는 것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곳이 어디에 있든 자신의 제국주의 '뒷마당'이라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의 이해관계 수준에 맞춘 미국과 EU의 지금까지 개입에서는 주요 무기로 탱크보다는 약간의 제재를 이용한 부드러운 방법이 사용됐다. 물론 이는 위기가 고조되면, 특히 러시아가 움직인다면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가의 사회주의자들은 미국 또는 EU가 군사적 행동으로 방향을 튼다는 신호에 맞춰 저항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공연하게 지지했었다. 우리는 스보보다의 파시스트 올레흐 티아니보크를 포함해 유로마이단 지도자들이 EU 관료, 미국 고위 대변인과 함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 캐서린 애슈턴(Catherine Ashton)이 올레흐 티아니보크, 비탈리 클리츠코, 아르세니 야체뉵과 함께 찍은 사진(링크)

▶미국 국무부 대변인 빅토리아 눌런드(Victoria Nuland)가 올레흐 티아니보크, 비탈리 클리츠코, 아르세니 야체뉵과 함께 찍은 사진(링크)

그리고 서방의 권력은 새 정부를 재빠르게 인정했다. 우크라이나 인민 대다수가 그 정부를 불법적이라고 여기고 있음에도 상관없이 말이다.

새 정부의 집권은 그 즉시 국제통화기금(IMF)의 270억 달러 차관 지원으로 축하받았다. 키예프 정부에 따르면 5월 1일부터 가스 요금 50% 인상을 포함한 긴축정책의 완료와 함께 지급될 차관이다. 우크라이나 노동자들이 대가를 지불하게 된 것이다.

미국은 역시 군사적 행동을 포함시켰다. 존 브래넌 CIA 국장은 4월 키예프를 공공연하게 방문했다. 서방 언론에서는 부정적 언급 없이 취급했지만 말이다. 미군 공수부대가 폴란드에서 훈련을 실시하고 추측건대 미국은 우크라이나 군대에 '비군사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이라크에서 전쟁이 자신들에게 좋은 것이라고 여겼으면서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반대하는 미국과 유럽 지도자의 위선에 그 누구도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러시아가 개입을 핑계로 내놓은 덫에도 빠져선 안 된다. 이 제국주의 경쟁 체제에서 좋은 제국주의란 없다.

대립하는 양측이 경쟁하는 제국주의의 지원을 받으면서 우크라이나 내 전투 사망자 수가 증가하면 선전 전쟁은 강화될 것이다.

그러나 선택할 수 있는 좋은 편은 없다. 반동적 준군사조직과 그들의 후원자이고 경쟁하는 제국주의인 워싱턴과 모스크바 모두는 분할 혹은 그 이상의 유혈사태라는 위협과 다른 어떤 것을 제안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전국의 평범한 노동계급 인민은 나라가 분할된다면 큰 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Posted by 때때로

아래 글은 3월 6일 참세상에 기고한 글이다. 글이 공개된 후 유럽연합과 미국을 한 편으로 하고 러시아를 다른 한 편으로 한 갈등이 크림자치공화국의 지위를 중심으로 더 격화되고 있다. 나토(NATO)는 폴란드에 F-16 등 전투기를 배치하고 미국은 알레이버크급 이지스 구축함을 흑해에 파견했다. 러시아도 대규모 군사훈련을 반복하며 군사적 긴장 강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국내의 긴장도 친유럽연합이냐 친러시아냐를 중심으로 커져가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나토는 꾸준히 러시아 국경을 향해 동진해왔다. 발트3국(에스토니아ㆍ라트비아ㆍ리투아니아)의 2004년 나토 가입은 러시아에게 결정적 위협으로 다가왔다.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바로 앞까지 서방의 군대가 진격한 것이다. 유럽연합의 경제적ㆍ정치적 확장도 마찬가지다. 유럽연합은 2009년부터 우크라이나를 포함해 몰도바ㆍ조지아ㆍ벨로루시ㆍ아르메니아ㆍ아제르바이잔 6개 옛 소련 공화국과 유럽연합-동부 파트너십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이전 발트3국과 중동부 유럽 국가들이 유럽연합에 가입할 때와 마찬가지로 이 협상에서도 유럽연합은 러시아가 추진하고 있는 경제구상에 가입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즉 러시아와의 적대 관계를 분명히 밝히고 어느 편에 설것인지를 결정하라고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아래 글에서 밝히고 있듯이 우크라이나에서의 국내적 갈등은 제국주의 갈등을 빼놓고선 이해할 수 없다. 제국주의 열강의 대립하에 정치적 선택의 여지가 좁은 국내 정치인들의 우유부단함이 대중적 불만을 촉발시켰다. 물론 대중적 저항의 배경에는 신자유주의적 경제 개혁에서 비롯한 광범위한 불만이 존재한다. 최근 우크라이나 야권(현 과도 임시정부 세력)이 2월 18~19일 사이 1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저격의 배후라는 폭로가 있었다. 같은 저격수들이 시위대와 경찰 모두를 공격했다고 한다. 여기서 어떤 음모,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음모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유로마이단이 야누코비치의 실각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 극우파가 단호하게 거리에서 전투를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광범위한 대중적 불만과 저항에 대한 지지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 저항이 극우 파시스트에 의해 납치됐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음모를 밝혀내는 것은 그 나름대로 중요하겠지만 지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제국주의적 갈등을 배경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 과도 임시정부를 구성한 정치세력도 이 갈등에서 독립적이지 못하다. 따라서 이들도 우왕좌왕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내부의 갈등이 표출될 것이다. '유럽'으로 표현됐던 대중의 광범위한 사회적 불만을 이들 정치세력이 해결해주지 못할 것도 뻔한 이치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사태 1막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했던 좌파에게 기회는 아직 남아있다. 여전히 과제는 유럽연합과 미국의 서방제국주의와 러시아의 동방제국주의 둘 모두에 독립적인 대안을 건설하는 것이다.

참세상에 기고한 글을 그대로 다시 옮겨놓는다.


제국주의 변경 우크라이나, 세계를 흔들다
참세상 3월 6일

지난해 11월 말 시작된 우크라이나 위기가 2월 22일 야누코비치의 실각 이후 흑해를 중심으로 한 세계적 위기로 발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 후 세계경제의 일원으로 편입됐다. 그에 따라 세계경제의 위기로부터의 영향도 강해졌다. 옛 러시아 제국의 회복을 꿈꾸는 푸틴과 러시아 지배계급도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규정하는 중요한 힘이다. 우크라이나 지배계급이 친러시아와 친유럽을 시계추처럼 오락가락 하게 만든 것이 이 두 조건이다. 이 과정에서 소비에트 몰락 후 형성된 과두지배계급 올리가르히는 우크라이나 정치를 자신의 뜻대로 주물러왔다. 장기판의 졸처럼 제국주의 세계경제와 자국 내 올리가르히의 지배에 시달려온 우크라이나인들은 자신의 독립적인 정치적 대안을 건설하지 못했다. 이는 과거 소비에트 시절 지배 세력인 공산당이 현재는 민족주의적 정치에 굴복하고 대중의 진정한 열망에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과 관련이 있다. 불행히도 키예프의 거리로 나선 우크라이나인 다수는 '좌파'를 공산당과 연관지어 생각한다. 다른 좌파는 정국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너무 약하다. 지난 세 달 간 우크라이나의 위기에서 극단적 민족주의 세력, 파시스트가 정국을 주도한 이유다. 하지만 이들도 게임의 최종 주재자는 아니다. 러시아의 군사적 개입은 우크라이나를 세계적 경쟁의 주요 격전지로 만들고 있다. 결국 3개월을 이어온 싸움은 현재 야누코비치가 쫓겨난 후 러시아와 서방의 국제적 분쟁으로 발전하고 있다. 1853~56년 자본주의 성장을 주도하던 프랑스ㆍ영국은 오스만투르크를 부추겨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에서 옛 제국 러시아와 전쟁을 벌였다. 제2차 세계대전 땐 독일과 소련이 맞부딪힌 전장이었다. 우크라이나는 다시 한 번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의 전장이 될까? 2013년 11월 이후 우크라이나 위기의 배경과 전개를 살펴본다.



1월 22일에서 23일 사이 키예프 거리의 바리케이트. 1월 16일 집회와 시위를 강력하게 규제하는 11건의 '반시위법'이 의회에서 통과된 후 거리 시위가 다시 격화됐다. [사진=Ilya Varlamov]

배경 1 충돌사고 일으킨 야누코비치의 방향전환

2013년 11월 30일 새벽,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유럽연합(EU)과의 협력협정 체결을 중단한 것에 항의하는 키예프의 마지막 시위대는 기껏 400여 명정도로 알려졌다. 그러나 무언가에 쫓긴 듯 야누코비치는 이 시위에 경찰 특수부대 베르쿠트(Berkut) 2000명을 투입해 강제 해산시켰다. 주로 학생인 시위대는 베르쿠트의 진압봉에 맞아 거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33명이 체포됐다.

21일부터 열흘째 이어오던 시위는 1일 정권과의 정면 충돌로 발전했다. 경찰의 강경진압에 분노한 키예프 시민은 독립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이전 열흘 간 수만명 규모였던 시위는 순식간에 수십만명 수준으로 늘어났다. 언론에 따라 35만~50만명이 1일 시위에 참여했다고 보도했다. 광장에는 텐트가 설치됐고 시위대 일부는 시청 등 정부 건물들을 점거하기 시작했다. 연병장 또는 광장을 뜻하는 '마이단(Maidan)'은 이 때부터 이 운동의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마이단, 또는 유로마이단으로 불리는 이 운동이 시작된 것은 2013년 11월 21일 우크라이나 정부가 EU와의 협력협정 체결 중단을 발표하면서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전환은 현기증이 느껴질 만큼 급격한 것이기도 했다. 다름 아닌 야누코비치 스스로에 의해 유럽화 만이 우크라이나가 살 길이라는 선전이 협정 중단 직전까지 계속됐기 때문이다. 당연히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EU와의 협력을 추진했던 것도, 그것을 포기한 것에도 모두.

2008년과 2010년 두 차례 IMF로부터 차관을 지원받을 만큼 우크라이나 경제상황은 안좋다. 실업률은 준수한 편으로 나타났지만(2012년 7.5%, 세계은행) 실제로는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떠나는 사람이 늘고 있었다. 독일의 옛 동독지역으로 일자리를 찾아온 외국인 중 우크라이나인의 수는 네 번째로 많다. 러시아의 산업지역에서도 부족한 생산인력을 우크라이나인이 주로 메꾸고 있다. 조지아ㆍ폴란드와 비교했을 때 GDP의 변화는 가장 급격해 불안정한 우크라이나 경제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경제위기 여파로 2009년엔 1인당 GDP 증가율이 -14.4%까지 떨어졌다. 같은 해 조지아는 -4.37%, 폴란드 1.53%, 전 세계는 -3.25%였다. FTA까지 포함된 EU와의 포괄적 협력협정은 이러한 경제불안의 탈출구로 제시됐다.

EU와 협력을 강화하려는 야누코비치의 노력이 위선은 아니었다. 협상을 시작한 후 러시아 정부의 간섭이 계속됐지만 충돌을 불사하고 추진됐다. 2013년은 첫날부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가시 돋친 설전이 펼쳐졌다. 러시아 외무부 경제협력국 알렉산드르 고르반 국장이 "우크라이나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 하고 있다. 자기들을 그렇게 반기지 않는 EU에 가입하려 애쓰면서 동시에 (러시아가 주도하는) 관세동맹에도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참여하길 원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를 "조금만 임신을 하는 법은 없다"고 비꼬았다. 다음 날엔 우크라이나 외무부 공보국 올렉 볼로쉰 국장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주도의) 관세동맹은 물론 EU를 비롯한 모든 국제기구와의 협상에서 전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우크라이나의 이러한 정책은 독립국가로서 당연한 권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갈등은 2013년 내내 계속됐다. 7월 말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제과업체 '로셴'의 제품 수입을 금지했다. 8월 22일에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우크라이나가 EU와 경제협력을 맺는다면 관세동맹 국가들으 그에 따른 보호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11월 11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로부터의 가스 수입을 전면 중단했다. 비록 일주일만에 수입은 재개됐지만 그동안 천연가스를 목줄로 우크라이나를 압박해온 러시아에게는 예상치 못한 역습이었다. 2012년부터는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수출된 천연가스를 적은 규모로 역수입하면서 우회로를 찾고 있었다. 천연가스 공급가를 놓고 2005년과 2009년 두 차례 갈등이 있었지만 매번 우크라이나의 항복으로 끝이 났었기 때문이다.

최근의 언론 보도와 달리 야누코비치를 뼛속까지 친러시아파로 몰기에는 그의 집권 후 행보가 많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EU와의 협정을 성사시키기 위해 감옥에 갇혀있던 그의 정적 율리아 티모센코 전 총리를 석방하는 방법까지도 진지하게 고려했었다. EU는 협력협정의 조건으로 티모센코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던 터였다. 비록 그렇게 되지는 않았지만 10월 17일에는 "현재 우크라이나에는 티모센코가 외국으로 나갈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률이 없"지만 "의회가 이문제를 해결해 관련 법안을 승인하면 나도 서명할 것"이라고 밝혔었다.

그러나 EU와의 협정 체결이 효과를 낼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상황이 급박해졌다. 신흥국들을 중심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금융위기 징후에서 우크라이나도 자유롭지 못했다. 지난해 8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의하면 우크라이나의 외환보유액은 5~7월 10% 가까이 감소했다. 당시 미콜라 아자로프 총리는 국제통화기금(IMF) 추가차관 지원 조건도 EU와의 협정을 포기한 이유로 꼽았다. 그는 IMF가 가스ㆍ난방비 40% 인상, 월급 및 최저임금의 현 수준 동결, 에너지 분야 보조금 인하 등 우크라이나 정부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시위가 격화된 12월 2일 야누코비치는 메지히리야에 있는 자신의 별장에서 가진 인터뷰 시간의 4분의 3을 가스가격 등 경제문제를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여기에 러시아의 압박으로 우크라이나는 더 궁지에 몰렸다. 야누코비치의 지역당 원내 대표 알렉산드르 예르레모프는 지난해 가을 3개월 간 러시아와의 교역 감소로 50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천연가스라는 목줄을 쥐고 있고 관세 보복까지 언급하는 러시아에 맞서기엔 유럽이라는 희망은 너무나 불투명했다. 야누코비치는 수출의 21.2%, 수입의 28.4%를 러시아에 의지하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홀로 서기에는 너무 약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전투 1 주먹과 대화, 오락가락 야누코비치

야누코비치가 EU와 협상을 중단한 것 자체가 결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야당과 일부 학생의 시위를 키예프 시민 전체의 반란으로 발전시킨 건 11월 30일 새벽의 강제진압이다. 키예프-모힐라 대학의 미하일로 비니츠키 교수는 "토요일 이른 아침 폭동진압경찰에 의해 독립광장의 시위대 농성장이 공격당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고 증언한다. 정부는 법원을 움직여 1일 시위를 금지했지만 2004년 오렌지 혁명 이후 최대 규모의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오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 화염병과 돌멩이가 하늘을 가르고 몽둥이와 경찰의 방패가 충돌했다. 우크라이나의 반란을 전 세계에 알린 대통령 관저를 향해 돌진하는 불도저의 사진이 찍힌 것도 이날이다.

시위가 격화된 후에도 야누코비치의 오락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12월 1일 시위를 금지하고 경찰 특수부대 베르쿠트를 투입하는 한편으로 야누코비치는 그날 긴급 성명에서 "EU와의 협정체결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12월 1일 시위에서부터 "우크라이나의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더 이상 EU 통합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 그것을 요구할 때조차 지엽적인 요구일 뿐"이라고 비니츠키 교수는 지적했다.

12월 3일 야당은 여당인 지역당이 불참한 가운데 의회에서 내각 불신임암을 표결에 부쳤지만 부결됐다. 이날 아자로프 총리는 의회에서 강경 진압에 대해 사과했지만 광장에서의 시위는 계속됐다. 9일 야누코비치는 야당과의 협상, 체포된 시위대의 석방 등 유화책을 제시하는 듯싶었다. 10일 전직 대통령 3인을 만난 자리에서 그는 법률 위반 정도가 심하지 않은 이들을 석방하라고 "빅토르 프숀카 검찰총장에게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야권 시위에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다"고도 밝혔다. 그러나 바로 그 날 경찰은 키예프 독립광장의 시위대 농성장을 습격해 바리케이트 해체를 시도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야누코비치의 혼란은 새해에도 계속됐다. 1월 16일 의회는 집회와 시위를 강력하게 규제하는 11건의 법률을 통과시켰다. 이들 반시위법엔 정부 건물 출입을 차단하면 최대 10년형, 공공장소에 무대와 앰프ㆍ텐트를 설치하면 최대 15일 구류, 마스크와 헬멧의 착용 금지 등이 포함돼 있다. 이 법의 통과는 끟는 물에 기름을 부은 게 됐다. 거리에서의 전투는 다시 격렬해졌다. 21일에는 시위가 시작된 후 첫 사망자가 나왔다. 이튿날에도 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 야당은 두 번째, 세 번째 희생자가 경찰 저격수의 총을 맞고 숨졌다고 주장했다. 야누코비치는 다시 물러서야 했다. 24일 종교단체 지도자와 만난 자리에서 내각 개편과 반시위법의 개정을 암시했다. 25일에는 바티키프쉬나(조국당) 대표 "야체뉵이 총리직을 받아들이면 바로 내각 총사퇴 결정이 내려질 것"이라며 양보안을 내놓았다. 대통령 권한을 축소시키는 헌법 개정도 언급했다. 주먹과 대화를 오락가락하던 야누코비치는 결국 2월 18일의 충돌 이후 19일 양보안을 내놓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이후 21일까지 계속된 거리 전투는 최대 100여 명이 목숨을 잃는 참극으로 이어졌다. 결국 야누코비치는 수도에서 쫓겨나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도네츠크로 도망쳤다. 22일 알렉산드르 투르치노프 의장이 대통령 대행으로서 이끄는 임시정부가 들어서면서 마이단의 1막은 내려졌다.



마이단의 준군사조직 모습. 정면을 바라보는 사람의 헬멧에 있는 문양은 울프스앵글로 파시스트의 상징 중 하나다. 극우파는 거리 전투를 주도하며 마이단을 극단적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로 납치했다. [사진=Giles Clarke]

배경 2 마이단, 사회적 불만의 민족주의적 왜곡

지난해 11월 마이단이 처음 시작됐을 때는 바티키프쉬나와 비탈리 클리츠코의 민주개혁동맹(UDAR), 학생들이 시위를 이끌었다. 12월 1일 전국적인 투쟁으로 확산되면서 우크라이나 곳곳에서 키예프로 시위대가 모여들었다. 키예프에 방문하고 있는 제4인터내셔널 러시아 활동가 일리야 부드라이츠키스는 "마이단에는 억압받고 있는 서로 다른 사회적 집단의 사람들, 노동자, 실업자, 빈민과 학생들"이 함께 투쟁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EU와의 협정 중단, 경찰의 강경진압이 계기가 됐지만 그 배경에는 더 광범위한 불만이 도사리고 있다. 우크라이나자율노동조합(Autonomous Worker's UnionㆍAWU) 활동가는 "경제위기와 사회적 불평등, 부패, 공공 서비스의 쇠퇴, 가난, 실업"이 "사람들을 오늘날 거리로 나오게 만들었다"고 강조한다. 야누코비치가 2010년 대통령 자리에 오르면서부터 밀어붙인 신자유주의 정책이 배경에 있다는 것이다. AWU 활동가 데니스에 따르면 야누코비치 정부는 천연가스 요금을 올리고, 완전 보장을 포기한 의료보험을 도입하려 했고, 노동법을 개악시키려 했으며, 여성의 연금 수령 연령을 높이려 시도했고 철도 민영화도 추진했다. 물론 이 정책 다수는 중단되거나 철회됐다. 그러나 데니스는 이렇게 말한다. "노동계급의 복지나 일반적인 경제상태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보다 못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의 기준을 요구하는 것이 마땅한 상황이다."

이러한 사회적 불만은 유럽에 대한 환상으로 표현됐다. 데니스는 사람들이 유럽을 "매우 유토피아적인 이상, 부패 없는 사회, 높은 임금, 사회보장, 법에 의한 지배, 정직한 정치인, 미소 띈 얼굴, 깨끗한 거리"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권은 물론 야누코비치 자신에 의해서도 지속적으로 유럽에 대한 환상이 유포됐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유럽에 대한 환상은 러시아에 대한 두려움과 연결돼 있다. 부드라이츠키스에 따르면 "버스를 타고 키예프로 와 시위에 참여"한 서부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에 지배받는 것을 두려워" 한다. 그들은 야누코비치가 "우크라이나를 다시 러시아 식민지로 되돌리려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AWU 활동가는 이러한 상황을 "유럽연합은 그들의 모든 희망이 집약된 신화다. 세계에 대한 이 신화적 관점에서는 러시아가 모르도르(영화로도 만들어진 소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어둠의 군주 사우론의 왕국이 있는 땅) 취급을 받고 있다"고 설명한다. 두 차례의 가스 공급 중단, 반복되는 경제적 압력, 크림반도 세바스토폴의 흑해함대 주둔 등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들 마이단 사람들이 푸틴의 러시아를 증오하며 두려워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특히 러시아와의 갈등도 불사하며 친유럽 정책을 추진하던 야누코비치가 11월 말 갑작스럽게 친러시아로 돌아선 상황에선 이 모든 사태의 배후로 푸틴을 떠올리지 않기가 오히려 더 이상하다.

바로 이 틈을 노리고 개입해 성공을 거둔 것이 스보보다와 프라비섹토르(Pravy Sektor, Right Sectorㆍ극우 파시스트 단체의 연합)다. 이들이 떠오른 것은 거리에서 경찰과 격렬한 충돌이 벌어지면서부터다. 이들은 가장 전투적이고 적극적으로 거리 시위를 주도했다. 특히 스보보다는 12월 8일 레닌 동상을 쓰러뜨리는 장면, 1990년대 초반 동유럽 소비에트 체제가 무너질 때를 연상시키는 모습을 연출해 주목을 받았다. 스보보다는 지난 2012년 총선에서 12%의 지지를 받아 의회에 처음 진출했다. 프라비섹토르는 스보보다 더 급진적인 네오나치 전투 조직들의 광범위한 연합이다. 이들은 사제 군복과 무장을 갖추고 경찰ㆍ티투슈키(Tituskhisㆍ야누코비치가 고용한 정치깡패)와의 싸움에 가장 앞장선다. 자신의 천막에 침구와 난방시설ㆍ주방을 갖춘 이들은 서부에서 온 젊은이들을 수용해 전투에 앞장설 수 있도록 했다. 이들은 운동에 개입하기 위해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위장하기도 했다. 이들은 동성애자 인권과 같은 가치를 유럽적 퇴폐로 규정해 유럽연합에 반대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이 쟁점이 중요치 않다는 듯이 '야누코비치와 맞서 싸우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며 회피한다. 때론 '자율'과 같은 좌파적이거나 아나키스트적인 용어를 사용한다. 아나키즘을 표방하지만 남성우월주의와 외국인 혐오를 앞세운 조직도 있다. 물론 이들 극우파 단체들이 완전히 단결해 있는 것은 아니다. 켈트십자가, 울프스앵글, 독수리 문양, 가운데 세 손가락 등 다양한 상징들을 사용하는 이들은 그 상징의 숫자 만큼이나 서로 갈라져 경합하고 다툰다. 프라비섹토르는 스보보다의 합법적 지위와 주도력을 욕심내고 있고 스보보다는 준군사조직을 포기하지 않고 프라비섹토르와 경쟁한다.

극우파가 성장한 비옥한 토양은 마이단 이전에 이미 풍부하게 존재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민족주의적 레토릭은 우크라이나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다. 2004년 오렌지 혁명의 결과로 대통령에 오른 빅토르 유센코도 예외는 아니다. 부드라이츠키스는 유센코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우크라이나 SS(나치 친위대)가 실제로는 애국자였다고, 왜냐면 그들이 외국 소련의 지배에 맞서 싸웠기 때문에 애국자였다고 주장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유센코는 퇴임 직전 SS의 가장 중요한 지도자 중 하나였던 스테판 반데라에게 영웅 칭호를 내렸다. 현재 우크라이나에는 20여 개의 스테판 반데라 동상이 세워져 있다. 2014년 1월 1일에는 그의 탄생을 기념해 1만5000명이 횃불과 그의 초상화를 들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야누코비치가 그의 실제 정책과 달리 확고한 친러파로 받아들여진 것도 마찬가지다.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그는 대선 당시 러시아어를 우크라이나어와 함께 공식어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AWU 활동가 데니스에 따르면 "선거 후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다가 2012년 총선 전에야 이 법을 통과"시켰다.

전투 2 주도권을 쥔 극우파, 기 못펴는 좌파

우크라이나의 정치 지형은 극단적으로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위에서 예로 든 야누코비치와 지역당, 유센코 뿐 아니라 최근 마이단 시위에서 스타로 부상한 클리츠코도 그렇다. 그 중 가장 자유주의적인 정당의 지도자인 그는 최근 "두려워 말자, 우리는 우크라이나인"이라는 운동을 선포했다. 그런 그는 강한 러시아어 억양을 사용한다.

우크라이나 공산당의 역할은 더 결정적이다. 이들은 야누코비치의 충실한 협력자였다. 1월 16일 반시위법에도 찬성표를 던졌다. 만약 이들이 반대표를 던졌다면 이 법은 통과되지 않았을 것이다. 공산당이 마이단의 민족주의에 비판적이긴 하다. 그렇지만 부드라이츠키스는 "국제주의적 관점에서 그런 건 아니다. 그보다는 러시아 애국주의에 대립하기 때문에 반대한다. 이건 비열한 짓"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크라이나노동조합연맹(the Confederation of Free Trade Unions of Ukraine)은 뒤늦게 '마이단 시민 위원회' 구성에 참여하며 자유주의적 대안 건설에 뛰어들었지만 결코 좌파적이진 않았다. 이들은 운동 초기에 중립을 지켰다. 물론 애초 노동자들의 집단적 참여는 눈에 띄지 않았다. 12월 몇몇 기업에서 임금 등의 문제와 관련한 쟁의가 있었지만 마이단과 연결되진 못했다. AWU 활동가에 따르면 지방정부는 이들 쟁의가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최우선적으로 밀린 임금을 지급했다.

지극히 불리한 환경에서 마이단에 개입하기 시작한 좌파는 우파와의 물리적 충돌을 감수해야 했다. 시위 초기 마이단에 있던 노동조합 활동가들의 텐트는 극우파에 의해 '앞잡이'라고 지목받아 공격받았다. 붉은 유럽 깃발을 들고 무상의료ㆍ무상교육 등 좌파적 구호를 외치던 이들도 폭행당했다. 좌파와 아나키스트가 마이단을 방어하기 위한 연합 조직을 만들려고 모인 자리에 극우 파시스트가 난입해 훼방을 놓기도 했다. 몇몇 좌파는 극단적 민족주의를 핑계로 마이단과 거리를 뒀다. 그러나 데니스는 이러한 태도는 "정부 지지자들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1월 16일 반시위법의 통과는 극적이진 않지만 좀 더 적극적인 좌파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AWU 활동가는 "좌파 활동가 또한 저 법들에 의해 극심한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1월 19일 이후 좌파 대부분이 시위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좌익반대파(Left Opposition)의 지도적 회원이자 경제학자인 자카르 포포비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조금씩 활동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고 1월 중순 이후 좌파의 상황을 설명했다. 좌파는 "조직적으로 우크라이나 청중들에게 개입하고 있다. 좌파의 책과 소책자들, 우리가 발표한 선언인 10가지 테제 수천 부를 마이단에 배포하고 대중적 토론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이단 대중의 의미 있는 일부를 끌어들이기엔 좌파는 여전히 너무 약하다. 단지 다수의 좌파는 인도주의적 개입의 일환으로 병원의 부상자들을 경찰의 체포ㆍ연행으로부터 보호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좌파가 고군분투하는 사이 우파는 새로 구성된 임시정부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 마이단의 결실을 나눠가졌다. 스보보다 36명 의원 중 한 명인 올렉산드르 시치는 부총리에 임명됐다. 스보보다는 환경부 장관과 농업부 장관 자리도 차지했다. 그보다 전에 검찰총장에 임명된 올렉 모흐니츠키도 스보보다 소속 의원이다. 더 중요하게는 마이단의 준군사조직 사무보로나(Samooborona) 지휘자였던 안드레이 파루비가 국가안보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됐다. 그는 바티키프쉬나 의원이긴 하지만 파시스트다. 그는 과거에 스보보다 현 대표 올레흐 티아니보크와 함께 파시스트 단체 우크라이나민족사회당(the Social-National Party of Ukraine)을 만들었다. 단지 과거인 것만은 아니다. 파루비는 그의 대변인으로 프라비섹토르의 핵심 지도자인 드미트로 야로쉬를 지명했다. 드림디퍼드(dream deferred) 사이트의 타시 쉬프린은 새 임시정부의 이런 성격을 "사실상 신자유주의자들과 파시스트의 동맹"이라고 설명한다.



우크라이나를 관통해 유럽으로 가는 러시아산 천연가스. [그래픽=AFP]

배경 3 올리가르히의 마리오네트 인형들

새 정부는 신자유주의적 보수파 바티키프쉬나가 주도하고 스보보다와 프라비섹토르가 보조를 맞춰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올리가르히를 빼고는 우크라이나의 정치적 변동을 설명하기 어렵다. AWU 활동가 데니스는 야누코비치가 위기 전 그의 후원자인 올리가르히와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올리가르히 권력의 애완견"에 불과했던 야누코비치 스스로 2010년부터 스스로 사업가로 변신하면서 그의 후원자였던 리나트 아흐메토프, 드미트리 피타쉬와 싸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흐메토프는 150억 달러의 재산을 가진 거부다. 슈피겔지에 의하면 "30만 명의 노동자를 고용한 100개의 회사를 거느린 SCM홀딩스(System Capital Management Holdings)의 수장"이다. 그가 거느린 회사엔 "철강과 파이프 공장, 은행, 부동산 업체, 휴대전화 회사와 거대 언론사"가 포함돼 있다. 슈피겔은 그를 '돈바스(우크라이나 동부의 산업지대)의 지배자'라고 설명했다. 피타쉬 또한 아흐메토프에 필적하는 거부다. 그의 기업들은 천연가스 수송에 특화돼 있다. 물론 피타쉬 또한 아흐메토프처럼 거대 언론기업을 소유해 우크라이나의 언론을 통제하고 있다.

이 둘은 야누코비치 정권에서 중요한 자리를 자신의 사람들로 채워왔다. 슈피겔지에 의하면 야누코비치 정권의 경제장관은 아흐메토프의 사람이고 천연가스 담당 부총리는 피타쉬와 가까운 사이다. 야누코비치가 이끈 지역당 의원의 상당수도 이 둘의 친구들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야누코비치가 이 위기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면서 이 둘이 소유한 방송국의 보도 태도는 극적으로 변했다. 마이단 시위를 객관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슈피겔지에 따르면 자신이 후원하는 지역당 의원들을 탈당 시켜 다른 당으로 이적하게 했다. 바티키프쉬나와 UDAR 등 다른 정치적 대안도 모색했다. 아흐메토프는 티모센코의 후계자인 아르세니 야체뉵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피타쉬는 마이단의 스타 비탈리 클리츠코를 지원하고 있다. 바로 올리가르히가 우크라이나의 정치를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조정하는 방법이다. 부드라이츠키스는 스보보다조차 올리가르히의 후원이 없었다면 그렇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키예프의 반파시트 활동가 미라는 프라비섹토르가 상당한 후원을 받아 그들의 조직원들 모두에게 새로운 유니폼을 맞춰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우크라이나 좌파 활동가 포포비치는 올리가르히가 이러한 힘을 이용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고 고발한다. 야누코비치의 실각 후 언론은 메히지리야에 있는 그의 화려한 별장을 샅샅이 훑으며 우크라이나의 국고가 빈 책임을 그에게 돌리려 했지만 포포비치는 올리가르히에게 그 책임을 묻는다. "올리가르히가 정치권을 움켜쥐고 있는 결과 대기업들은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고 있다. 모든 세금은 노동자와 작은 회사들이 내고 있다. 나라에 충분한 자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금고가 텅비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물론 이들 올리가르히의 이해관계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야누코비치의 두 후원자 중 아흐메토프는 유럽과 좀 더 가깝고 반대로 피타쉬는 러시아와의 관계가 그의 사업에 더 중요하다. 슈피겔에 의하면 바티키프쉬나에 대해 아흐메토프가 유화적인 데 반해 피타쉬는 2009년의 협정, 바로 티모센코를 감옥에 갇히게 한 바로 그 러시아와의 협정 때문에 더 적대적인 태도를 지녔다.

전투 3 상처받은 러시아, 쩔쩔매는 서방

아흐메토프와 피타쉬의 차이, 친유럽과 친러시아의 간극은 국제관계에서도 그대로다. 우크라이나가 EU 협력협정을 추진하면서부터 끊임없이 압박을 가해오던 러시아는 3월 1일 전격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무력개입을 개시했다. 이미 2월 27일 친러시아 무장세력이 정부청사ㆍ주의사당ㆍ공항등 주요 시설을 점거했고 1일에는 러시아 상원이 우크라이나 내 군사력 사용에 대한 푸틴의 요청을 승인했다. 상원은 그 즉시 푸틴의 요청을 승인했고 그는 6000명의 병력을 크림반도에 배치했다. 그와 동시에 우크라이나와의 접경 지대에서의 대규모 훈련도 진행됐다. 푸틴이 직접 훈련을 참관하기도 했다.

2012년 세 번째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 푸틴은 서방의 동유럽으로의 확장에 맞선 옛 소련권의 재통합을 최우선 외교 과제로 삼았다. 옛 소련권 국가의 관세동맹, 유라시아경제공동체, 집단안보조약기구가 그 세 축이다. 2000년대 라트비아ㆍ리투아니아ㆍ슬로바키아ㆍ루마니아ㆍ불가리아가 잇따라 나토에 가입하면서 러시아의 두려움은 커져갔다. 2008년 조지아와의 전쟁은 압하스와 남오세티야의 러시아 주민 보호를 내세웠지만 사실 서방의 군사적 포위에 대한 응전이었다. 우크라이나는 조지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지역이다. 2월 소치 겨울올림픽을 핑계로 흑해에 대규모 군사력을 배치한 것은 서방과 흑해 연안 국가들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다. 소치는 우크라이나와 조지아 사이에 위치해 있는 흑해 연안 도시다. 더구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에 있는 세바스토폴은 러시아 흑해함대가 주둔하고 있는 중요한 군사기지다. 중동과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개입을 강화하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뺏길 수 없는 전략적 거점이다. 압하스와 남오세티야처럼 러시아계 주민이 60%나 된다는 것은 좋은 핑계 거리다. 게다가 크림반도엔 크림자치공화국이 상당한 자치권을 누리고 있었다.

푸틴 입장에서는 온전히 맘에 들진 않았지만 그나마 제어할 수 있다고 여겼던 야누코비치의 실각은 심각한 위협이었을 것이다. 특히 러시아가 유럽으로 수출하는 천연가스의 80%가 우크라이나에 있는 가스관을 통과한다는 걸 고려해야 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잃는 것은 막대한 손실이 될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압박하는 한편 벨로루시를 경유하는 가스관으로의 수출을 늘리고 흑해를 관통하는 가스관 건설에 착공한 것은 천연가스 수출에서 우크라이나의 역할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물론 흑해를 통과하는 가스관이 완공되고, 만약에 상당량의 천연가스가 흑해 가스관으로 수출된다고 할지라도 흑해에 대한 러시아의 통제권을 유지하기 위해 크림 반도와 우크라이나는 여전히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우크라이나를 우회할 만한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다. 실질적인 군사적 압력에도 불구하고 푸틴이 3월 4일 기자회견에서 러시아군을 파병하지 않았다고 잡아뗀 것은 우크라이나의 지배자들을 달랠 필요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꼭 대화일 필요는 없다. 푸틴은 과거 그래왔듯이 언제든 주먹으로 대화하는 카드를 꺼낼 수도 있다.

러시아 개입에 대해 미국은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의 크림 반도 군사개입이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직접 키예프로 날아가 "빠르면 이번 주부터 미국은 러시아에 대한 포괄적인 제재를 시행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케리는 야체뉵 임시정부 총리와 만나 경제적ㆍ기술적 지원도 약속했다고 한다. 위기 전 까다로운 자금지원 조건을 내세웠던 IMF도 우크라이나에 실사단을 파견에 구제금융 지원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의 반응은 뜨뜨미지근 하다. 3월 4일 영국 언론에는 영국 정부가 "당분간 무역 제재나 대러시아 금융기관 폐쇄안을 지지하지 말 것"이라고 적힌 기밀 서류가 포착돼 보도됐다. 우크라이나 동서 분열 가능성이 떠돌고 있지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야누코비치가 실각한 후인 2월 24일 일찌감치 우크라이나의 영토적 통합성 유지에 뜻을 모았다. 물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체에 대한 영향력을 놓치지 않겠다는 뜻일 것이다. AFP에 따르면 천연가스 36%를 우크라이나를 통해 러시아산을 수입하는 독일로서도 러시아의 심기를 거슬리긴 어려울 것이다. 미국은 연일 강경한 말을 쏟아내고 있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중앙아시아에서의 실패로 전체 병력을 줄이며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기 위해 동아시아 지역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지적처럼 "제국주의는 단지 미국의 지배로만 환원될 수 없"으며 "제국주의는 선진 자본주의 열강들이 경제적ㆍ지정학적 경쟁을 벌이는 체제다".

경제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맞물리고 제국주의 체제가 다극화 되면서 자본주의 선진국들 사이의 경쟁은 더 격화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제국주의의 최근 국면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세계경제의 위기는 우크라이나 국내에서의 정치적 격변으로 이어졌다. 세계의 지배자들과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 정치인들은 이 국내의 위기를 제국주의 국가간 충돌로 비화시키고 있다. 전쟁 위협이 가시화되면서 우크라이나의 소수 좌파와 아나키스트는 "민족을 위해선 단 한방울의 피도 흘릴 수 없다"며 러시아와 서방의 개입을 비판하고 있다. 국가ㆍ민족 간 전쟁을 계급 사이의 내전으로 전화시키자는 레닌의 공식이 이들 좌파에 의해 다시 제기되고 있다. 1막에서 기회를 놓쳤던 좌파가 제국주의 전쟁과 갈등이라는 2막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주목해볼 일이다.

Posted by 때때로


[사진 Revolution News]

급한 불은 끄게 된 것일까. 우크라이나에서 정부와 여야의 타협안 소식이 들려온다.

●[연합뉴스] 우크라 정부-야권 유혈사태 해법 담은 타협안 서명(종합2보)

요지는 조기 대선 실시와 대통령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헌법 개정이다. 현재 운동의 초점이 야누코비치 대통령 퇴진에 맞춰졌던 걸 고려하면 지금의 유혈사태를 진정시킬 어떤 돌파구가 될 수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이 운동의 별명이 '유로마이단'이라는 걸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다. 생디칼리스트인 키예프의 한 노동조합 활동가에 의하면 시위 초기 거리에 나선 우크라이나 인민에게 유럽은 "부패 없는 사회, 높은 임금, 사회적 안전, 법에 의한 지배, 정직한 정치인들, 미소 짓는 얼굴, 깨끗한 거리 등"을 뜻했다. 여기에는 단지 대통령의 과도한 권력, 정치적 지배구조의 문제만 포함돼 있지 않다. '높은 임금'이 상징하듯 여기엔 우크라이나 경제에 대한 사회적 불만이 배경으로 깔려있다. 지난해 유럽연합과의 협력협정을 추진했던 것도, 그리고 시위를 촉발시킨 그 협정의 중단도 모두 경제적인 배경에 놓여 있다(거기에 유럽연합과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갈등으로 연결됐다).

실제로 마이단에서 목숨을 걸 각오를 서슴지 않고 말하던 한 사람, 아마도 파시스트일 가능성이 큰 무장 사수대 한 명은 "저는 10년 전 떠나 상선의 선원이 됐습니다. 저는 그것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이제 저는 되돌아와 제 아이들과 함께 살고 싶습니다. 제가 여기서 투쟁하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연합뉴스에 보도된 합의안에는 바로 이 문제, 우크라이나의 평범한 노동자와 농민, 청년들의 경제적 삶에 대한 언급이 빠져 있다(이는 상대적으로 시위가 격화되면서 거리에서의 물리적 충돌 자체가 쟁점이 된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타협안으로 거리의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까울 것이다. 게다가 이 합의에는 스보보다(자유)도 포함돼 있다. 극우 파시스트인 이들은 합법정당이지만 불법적인 준군사 조직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18일 유혈 참극의 두 주범 중 하나다(다른 하나는 야누코비치 정부다). 거리에서 무장하고 일정 지역을 자신의 통제하에 두던 이들 파시스트를 새로 구성된 정부에서 완전히 무시하진 못할 것이다. 저들은 합법적으로 어떤 권력을 공유하게 되면 더 기고만장해져 거리를 활보할 것이다. 마치 1930년대 독일 나치처럼 말이다.

유럽연합과 러시아 정부로서는 우크라이나에서의 갈등이 자신들이 바랐던 것 이상으로 격화되는 데 놀랐던 듯싶다. 속보에 의하면 이번 타협에 이 둘 모두 참여했다고 한다. 그것은 중요한 석유와 가스 송유관이 지나고 흑해 북안의 중요 산업지대인 우크라이나가 내전으로 갈라지거나 파괴되는 것이 그들에게도 이익이 될 것처럼 보이지 않아서였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유럽연합과 러시아 정부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다. 조지아에서처럼 러시아 정부는 러시아계 주민 보호를 이유로 군사적 개입을 감행할 가능성이 크다. 유럽연합도 과거 발칸 반도에서 그랬던 것처럼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바로 옆 소치에서 열리는 겨울올림픽을 핑계로 흑해에서 군사 시위를 벌이고 있는 러시아에 당장 맞서는 것은 유럽연합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러시아 정부로서도 현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유럽연합과 러시아를 비교하는 것은 물론 중국과도 자신을 비교하며 상황을 재고 있는, 즉 우크라이나 내 친러시아 세력의 규모나 역할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군사적 개입이 어렵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더 큰 국내적ㆍ국외적 충돌을 준비할 여유 시간을 갖는 것, 아마도 이번 타협의 첫번째 가능성은 바로 이것일 것이다. 그보다 더 나은 상황으로 떠올릴 수 있는 것도 파시스트의 활보와 권력 강화라는 끔찍한 것 뿐이다.

그러나 아직 다른 가능성이 남아있다. 키예프 시내에서의 격렬한 물리적 충돌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노동계급은 아직 본격적으로 행동에 나서고 있지 않다. 생디칼리스트 활동가의 지적처럼 키예프를 벗어난 "다른 지역에서 기업 활동이 아무런 방해 없이 평상시처럼 계속 진행"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노동조합연맹은 중립을 지키고 있다. 임금과 관련된 소수 작업장에서의 저항도 "정치적 저항과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바로 이러한 사정이 거리에서의 충돌을 격화시키고 시위대에서 파시스트의 주도력을 강화시킨 원인이기도 했다. 결국 적은 가능성이지만 노동계급의 단결된, 그리고 유럽연합과 러시아 둘 모두로부터 독립적인, 파시스트와 정부로부터 자유로운 행동 만이 우크라이나를 구할 것이다. 이는 최근 혁명을 시작한 보스니아 인민이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바다. 불과 20여년 전, 민족ㆍ종교 간 참혹한 내전을 치뤘던 보스니아 인민은 노동계급 투쟁을 통해 민족과 국가ㆍ종교의 경계를 뛰어넘어 단결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활동가들이 이로부터 보다 큰 영감을 얻어 과감한 행동에 나설 수 있길 바란다.

Posted by 때때로



1월 22일에서 23일 사이 키예프 거리의 바리케이트. 1월 16일 집회와 시위를 강력하게 규제하는 '독재법'이 의회에서 통과된 후 거리 시위가 격화됐다. [사진 Ilya Varlamov]

지난해 11월 우크라이나 정부는 유럽연합과의 통상 강화 협상을 중단하고 친러시아 정책으로의 복귀를 천명했다. 대외정책 전환은 이후 3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거대한 거리 시위를 촉발시켰다. 가라앉을 듯 보이던 시위는 새해에 다시 폭발하고 있다. 1월 16일 시위를 억압하는 강력한 법안들이 의회에서 통과하면서부터다. 바리케이트가 세워지고 화염병이 날라다니는 모습이 외신을 타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시위는 지난해 터키ㆍ브라질ㆍ이집트와 달리 국제주의적 좌파에게 큰 관심을 받고 있지 않다. 시위 초기 외신을 탄 레닌의 동상을 쓰러뜨리는 모습 때문이었을까. 실제로 그 사진의 시위를 주도한 것은 스보보다
(Svobodaㆍ자유)라는 이름의 극우파 정당의 당원들이었다. 이후 거리에서의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것도 극우파다.

처음부터 극우파가 시위를 주도한 것은 아니다. 유럽연합과의 협상 중단에 항의하는 학생 시위가 지난해 11월 30일 경찰에 의해 잔인하게 진압당한 후 눈앞의 경찰폭력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나서기 시작했다. 12월 초 며칠 간 시위가 계속되면서 유럽연합과의 통합은 시위의 중요 의제에서 벗어났다. 이 저항이 여전히 '유로마이단'이라고 불림에도 말이다. 키예프-모힐라 대학의 미하일로 비니치키야
(Mychailo Wynnyckyj) 교수는 12월 1일 시위에 직접 참여한 후 "키예프의 상황은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에서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인민들은 더 이상 유럽연합과의 통합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들이 그것을 요구할 때조차 지엽적인 것일 뿐이다"고 평가했다. 경찰의 폭력적 시위 진압에서 드러난 야누코비치의 권위주의적 통치, 임박한 경제위기에 대한 불안에 쌓여온 불만이 폭발했다(최근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이후 우크라이나는 모건스탠리에 의해 서든스톱 위험이 가장 높은 네 개 나라 중 하나로 꼽혔다).

야누코비치가 이끄는 동부 산업지대 기반의 지배집단은 지금의 위기를 통제할 능력이 없다. 그 배경엔 세계적 경제위기와 함께 러시아와 서방의 점증하는 제국주의적 갈등이 있다. 2010년 빅토르 유센코의 실각 후 다시 정권을 잡은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유럽연합과 러시아, 심지어 중국까지 끼어든 갈등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수출의 21.2%, 수입의 28.4%가 러시아와 사이에서 이뤄지고 있고 석유와 가스는 전적으로 러시아에 의지하는 나라에서 친서방 정책으로의 전환은 쉽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러시아는 이러한 관계를 이용해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정책을 견제해 왔다. 유센코가 집권하고 있던 시기인 2005년 말부터 2006년 사이 원유가격 갈등으로 러시아는 공급을 중단했고 우크라이나는 결국 두 배 인상된 가격으로 수입을 재개할 수 있었다. 지난해 우크라이나가 친유럽연합 행보를 이어가자 러시아는 8월부터 우크라이나로부터의 수입과 가스공급을 중단하겠다고 협박해 왔다
(지난해 시위가 시작된 뒤인 12월 17일 러시아를 방문한 야누코비치에게 푸틴은 150억 달러 지원과 가스가격의 33% 인하라는 '통큰' 선물을 전해주기도 했다. 이와 함께 야누코비치가 12월 초 중국을 방문하는 등 위험한 줄타기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드네프르 강 동쪽의 산업지대에 기반한 야누코비치로는 대외 관계는 물론 국내적 지지기반 때문에도 러시아와의 거리 두기가 쉽지 않다. 실업과 빈곤에 시달리는 우크라이나 젊은이들에게 야누코비치가 인기가 없는 이유다. 게다가 야누코비치가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쓰는 상황은 서부 농업지대의 젊은이들이 극우파의 민족주의적 정서에 손쉽게 동질감을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이것이 극우파 성장의 첫 이유다.

극우파 성장의 두 번째 이유는 역사적 경험 때문이다. 동부의 러시아인들, 특히 크림반도의 러시아인들은 상당한 자치권을 누리고 있다.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동부에서도 자치를 요구하기도 한다. 우크라이나인에게는 소련 시절 옛 지배자들이 여전히 권력을 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과거 소련이 실제 정체와 상관없이 마르크스주의를 공식 이데올로기로 삼았다는 사정 때문에 마르크스주의적 좌파가 성장할 공간은 여전히 비좁다.

그렇다고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야당이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도 아니다. 2004년 오렌지 혁명 때는 유센코라는 명확한 대안이 있었다. 그러나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이 유센코가 통치한 우크라이나가 지금의 우크라이나, 또는 과거의 우크라이나보다 더 나은 사회인지는 분명치 않다. 집권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급격히 하락한 경제성장률과 지지부진한 개혁 때문에 최악의 인기를 이어갔다. 유센코는 2010년 대선 땐 3위권의 군소호보로 전락했다. 2010년 야누코비치와 겨뤘던 율리아 티모센코 전 총리는 직권남용 혐의로 수감돼 있다
(그것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좌파가 부재한 상황에서 제도권 정당의 허약함은 극우파의 성장을 부채질하고 있다.

가능한 정치적 대안의 부재는 극우파 성장을 위한 비옥한 토대가 되고 있다. 여기에 권위주의적 통치에 맞서 가장 적극적으로 거리 시위를 이끌면서 이 비민주주의적 집단이 가장 '민주주의적' 집단으로 대중의 정서적 공감을 얻고 있다. 결국 극우파의 성장은 단호한 좌파 정치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의 저항을 현재 극우파가 주도한다고 해서 좌파가 기권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게다가 1월 16일 독재법의 통과 이후 적은 규모지만 좌파 또한 거리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위치, 역사적 경험, 정치 전통이 여러모로 좌파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들에서 우리와 비슷한 여러가지를 확인할 수 있다. 국외자로서 우리가 우크라이나 좌파의 분투로부터 적지 않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이유다.

아래는 우크라이나 아나키스트의 인터뷰다. 마흐노 반란의 역사가 있기에 마르크스주의적 좌파와 손잡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아나키스트와의 이 인터뷰는 사실은 부족할지언정 진실의 측면에서 많은 것을 들려준다.

※ 의역을 했기에 원문과 상당히 다릅니다. 오역도 많이 있으니 퍼가거나 인용하시려거든 꼭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대괄호 []는 이해를 위해 덧붙인 것입니다.



1월 22일에서 23일 사이 키예프 거리의 바리케이트. 시위대가 힘을 합쳐 거대한 새총으로 화염병을 던지고 있다. [사진 Ilya Varlamov]


우크라이나 아나키스트와의 인터뷰
유로마이단 "우리는 당신 투쟁을 지지하지만 파시스트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레볼루션 뉴스, 2014년 1월 30일

키예프의 자율 노동조합(Autonomous Workers' Union) 조합원과의 이 인터뷰는 2014년 1월 28일 이뤄졌다. 이 인터뷰는 유로마이단을 둘러싼 사건들 몇 가지를 해명해준다. 저항 이면의 원인들, 대통령에 초점이 맞춰진 분노, '오렌지 혁명'과의 차이, 우익의 역할, 사회적 투쟁의 약점과 가능한 시나리오들을.

Q: 키예프의 사진을 보면 바리케이트에 모든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든 것 같다. 그들이 함께 하게 된 이유를 당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바리케이트의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그 지지자들은 무엇을 토론하고 있나? 단지 경찰에 맞선 싸움이 실제 쟁점인가? 아니면 바리케이트와 그 밖의 곳에서 그들의 집회 또는 어떤 다른 형태의 토론 '조직'이 이뤄지고 있는 것인가?

A: 현재 벌어지고 있는 시위의 주요 동기는 극단적으로 인기가 떨어진 대통령에 있다. 물론 실제 원인은 경제위기와 사회적 불평등, 부패, 공공 서비스의 쇠퇴, 가난, 실업에 있다. 이러한 불만의 목록이 사람들을 오늘날 거리로 나오게 만들었다. 이건 좌파의 견해만은 아니다. 사람들은 이 모든 쟁점들에 대해 말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부엌 구석에서 투덜거리기를 그만두고 큰 소리로 저항하게 된 것은 야누코비치 대통령에 대한 그들의 감정 때문이다. 대통령 사임 요구는 가장 근본적인 요구다. 유감스럽게도 이것이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급진적인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경찰력에 대한 순수한 분노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시위대는 단지 경찰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만은 않는다. 이는 그들의 지도자 중 한 명인 유리 루첸코가 내무장관이었던 것과 관련이 있다. 베르쿠트
[우크라이나의 특수 경찰]와 다른 특수 경찰력이 늘 그래왔듯이 행동했을 때 루첸코 그 자신은 최루 가스를 사용해 시위 군중을 해산할 것이라고 발표했었다. 그래서 지금 역시 그와 같은 (이곳의 모든 사회 계급들 사이에서 악명이 자자한) 경찰에 맞선 시위는 비교적 무해한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내 생각에 대통령과 그의 정부, 경찰이 주요 토론 주제다. 시위대의 주요 목표는, 그들이 보기에 지역당
[야누코비치가 이끌고 있는 우크라이나 여당]을 몰아내는 것, 그것 뿐이다. 일부에선 헌법의 권력 균형을 대통령에서 의회로 바꿀 것에 대해 토론하기도 한다. 그러나 물론 주요 주제는 사실 최루 가스, 음식, 방패, 화염병, 거리 전투의 전술과 끝없는 루머와 목전한 국가비상사태 선포 위협, 스나이퍼, 폭동진압경찰(그들이 러시아인인지 아닌지, 그들이 얼마나 더 오랫동안 개입할 것인 지 등)과 같은 실제적인 것들이다.

집회에 관해서 말하자면, 난 아무 것도 모른다. 내 생각에 상황은 매우 역동적이고 불안정해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그렇지만 현재 바리케이트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직접민주주의로 발달하는 기미는 확인하지 못했다.

Q: 정부 청사에 대한 많은 공격과 점거가 있는 것 같지만 도시에서 '일상적' 삶은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런가? 키예프에서 사람들은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바리케이트로 가는 것인가? 시위대가 하는 다른 형식의 역할은 무엇인가? 내가 듣기론 점거된 대학교도 있던데? 이를테면 최근 임금 미지급에 맞서 작업장에서 어떤 다른 것이 진행되고 있는가?

A: 물론 그것은 사실이다. 다른 지역에서 기업 활동이 아무런 방해 없이 평상시처럼 계속 진행되는 동안 키예프 중심가만 시위의 영향을 받고 있다. 전국적인 정치 파업 선언 시도가 있었지만 불행히도 실패했다. 반대파는 이를 위한 어떤 수단도 가지지 못했고, 어떤 정치조직도 작업장에 뿌리내린 전국적 조직을 갖지 못했으며, 단순히 인민 자신이 파업과 같은 경험이 전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론적으로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인 오래된 관료주의적 우크라이나 노동조합연맹(the Federation of Trade Unions of Ukraine)은 중립을 지키고 있다. 학생조합인 '직접행동(Direct Action)'은 학생 파업을 시도했지만 지금까지 오직 하나의 대학, 키예프-모힐라 대학에서만 부분적으로 가능했다. 네, 그렇게 사람들 대부분은 업무와 학업을 계속하며 그들의 자유시간 만을 바리케이트에서 보내고 있다.

아우토마이단이라고 불리는 자가용 소유자들의 모임은 그들의 차로 교통, 특히 중요한 정부청사 부근이나 권력자들의 주거지 인근의 교통을 차단하는 행동을 주도하고 있다. 근로자들이 벌이는 저항 형식 중 하나는 지역당 소속 자본가들이 만든 상품들에 대한 불매운동이다. 최소한 몇몇 보도에 의하면 이러한 운동은 비교적 성공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지금까지 한 대학에서 점거가 있었지만 그것이 실제로 당신이 말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직접행동'에 속한 우리의 동지는 모든 캠퍼스를 점거하고 그곳의 모든 활동을 중단시키려 시도하고 있지만 내가 알고 있기로는 여전히 실질적인 점거는 아니다.

임금 등과 관련된 작업장에서의 저항은 지금까지는 정치적 저항과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일례로 도시 교통을 통제하는 공기업인 키예프패스트란스
(Kyivpastrans)의 노동자들이 12월 시위를 벌였고 몇몇 좌파 조직이 그들을 도왔지만 지금까지 그들은 준법투쟁(이탈리아식 파업 Italian strikeㆍ준법투쟁 내지 태업과 같은 형식의 노동쟁의를 이르는 속어)조차 시도하지 않았고 마이단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실제로 12월 말 지방정부는 최선을 다해 밀린 임금을 지급해 그들의 시위를 가라앉혔다.

Q: 우크라이나에서 최근 있었던 가장 거대한 시위는 '오렌지 혁명'이다. 오늘날과 비교했을 때 차이점은? 누군가는 그 '역사'를 고려하겠죠? 시위대는 '민주주의'에 대해 어떻게 말합니까? 그리고 유럽연합 가입을 원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A: 무엇보다도 '오렌지 혁명'은 매우 개인적인 것에 맞춰진 저항이었다. 사람들은 그들의 지도자인 빅토르 유센코를 대통령 자리에 앉히겠다는 구체적 목표에 집중했다. 유센코의 정치체제는 대중을 꽤 치밀하게 통제했고 모든 것을 매우 부드럽게 조직했다. 현재 야당 지도자 세 명은 시위대 다수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대통령과의 협상에서 마이단을 대표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그럴 권한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지난 목요일[1월 23일] 그들은 군중으로부터 야유를 받았고 마이단은 그들이 야누코비치와 협상한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치인들은 화가 났지만 대중을 따라야만 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들의 '대표자들'보다 더 급진적이다. 11월의 모든 시위는 그들에게 뜻밖의 일이었고 그 이후 그들은 사태를 통제하고나 이끄는 게 불가능했다. 이러한 진공상태는 곧 극우파에 의해 채워졌다.

또 다른 차이점은 2004년에는 토론되는 쟁점의 범위가 더 넓었다는 것이다. '혁명' 전체는 대통령 선거에 바쳐졌지만 여전히 좌파적 의제를 합법적으로 제안할 수 있었고, 사회적ㆍ경제적 쟁점을 토론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과거의 저항은 현재의 시위보다 더 비주류적이었다. 현재는 오직 부르주아 정치에 관해서만 말할 수 있다. 당신이 다른 쟁점을 제기하고자 하면 당신은 곧 '선동가'로 딱지 부쳐질 위험에 처할 것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2004년의 사건과 현재 시위의 유사점을 떠올려보라고 말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당시 아동이었던 새로운 젊은 세대가 지난 10년 사이 등장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시위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두 번째로 빅토르 유센코는 '오렌지 혁명'의 참가자 모두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주었다.

당연히 시위대는 법치가 이뤄지는 진정한
(부르주아적) 민주주의 정부를 원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발상에서 그들을 구별해주는 유일한 것으로 빅토르 야누코비치를 떠올릴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유럽연합 가입이 민주주의 또는 번영과 그 밖에 좋은 모든 것과 같은 뜻이라고 확신한다. 유럽연합은 그들의 모든 희망이 집약된 신화다. 세계에 대한 이 신화적 관점에서 러시아가 모르도르[반지의 제왕에서 사우론이 왕국을 세운 암흑의 땅을 이르는 명칭] 취급을 받는 동안 말이다.

Q: 우파 정당과 파시스트 그룹도 시위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은 실제로 얼마나 중요한가? 그들은 많은 지지를 받고 있나? 다른 시위대는 그들과 어떤 연관을 맺고 있나?

A: 극우파 정당 스보보다는 시위를 이끌고자 노력 중인 세 개의 큰 정치집단 중 가장 조직적이다. 그들은 다양한 지역에 실질적 활동에 기반한 실제로 활동하는 세포조직을 지닌 유일한 정당이다. 그래서 세 곳 중 가장 조직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조직으로서 그들은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스보보다를 제외하면 네오나치 전투 조직의 광범위한 연합이 있다. 그들은 '라이트 섹터(Right Sector)'라고 불린다. 그들은 시위 초기에 형성돼 비정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큰 명성을 얻는 성공을 거뒀다. 그들은 공개적인 전투성과 공격성으로 가장 큰 인기를 얻고 있고 대중은 이 기민하고 젊은 애국자들의 어떤 잘못도 보지 않고 있다. 최근 네오나치 훌리건들이 경찰, 친정부 폭력배와 맞서 싸운 주요 돌격대로 드러나면서 같은 형태가 반복되고 있다.

1월 19일 시위에 비정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심지어 좌파인 여러 부류의 다른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때까지 파시스트의 헤게모니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것은 1월 16일 통과된 '독재법
[최고 5년형과 고액의 벌금형, 노동교화형을 시위 참가자에게 내릴 수 있게 한 11개의 법안. 이 법은 의회에서 찬성 450표, 반대 235표로 통과됐다]' 폐지로 시위 의제가 바뀌면서 그렇게 됐다. 그로 인해 극우파가 약간 후퇴했지만 결국 이 시위에서 누가 승리하든 극우파가 큰 이득을 얻을 것이라는 건 분명하다. 반대파가 승리할 경우 그들은 그들 자신을 위한 경찰력과 특수기구 등을 얻게 될 것이다. 만약 야누코비치가 이긴다면 그것은 나라의 절반이 극우파, 추측컨대 독재와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애국주의적 급진파로서 극우파의 확고한 지지자가 될 것이라는 걸 의미한다.

좌파 활동가 또한 저 법들에 의해 극심한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1월 19일 이후 좌파 대부분도 시위에 참여했다. 그들은 자신의 역할이 비상병동에서의 간호와 같은 사회기반 활동들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경찰과 폭력배들이 부상자를 납치하는 것을 막기 위해 거기에 머물러야만 했다. 좌파가 활동하는 다른 영역은 위에서 언급했던 정치 파업 시도다.

Q: 외부에서 보기에 시위는 지난해 이스탄불과 많은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물론 확실히 강도는 다르지만 …). 키예프 혹은 우크라이나 다른 곳의 시위대에게서 지난 몇 년 간 세계적 봉기와의 연관성을 볼 수 있는가?

A: 확실히 몇몇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지만 주관적 관점의 우크라이나 시위대는 저 다른 시위대를 눈에 담고 있지 않다. 그들은 이 사건을 저항의 국제적 물결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역사에 위치지우려 노력하며 순수한 민족적인 투쟁으로 바라본다.

Q: 마지막으로 앞서 말한 것에 덧붙여 질문하자면, 당신은 운동이 시작될 때부터 그것을 뒤따라왔다. 그리고 나는 당신이 발표한 몇몇 보고서를 읽었다. 당신이 시위에서 바라는 것,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긍정적 결과는 무엇인가? 당신이 떠올리는 최악의 결과는 무엇인가? 당신은 우크라이나 외부에 어떤 종류의 지지를 바라는가?

A: 내가 말했던 것처럼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야누코비치의 승리다. 이는 1970년대 남아메리카의 독재를 닮은 냉혹한 권위주의적 체제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야누코비치가 나라를 다스리는 데 많은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는 기껏해야 절반의 대중에게 지지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독재는 그와 같은 조건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그래서 가능한 시나리오는 1980~90년대 북아일랜드 IRA와 다르지 않은 게릴라 운동 하에서의 군사적 대립의 증가다.

다른 결과는 야당의 최종적 승리가 될 것이다. 이는 허약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공화국에서 정치적으로 불안정하지만 기본적 자유는 유지되는, 우크라이나에서 2005~2009년 사이와 비슷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파시스트가 권력의 전당과 거리 모두에서 더 강해질 것이다.

여기 세 번째, 아마도 최악의 하나가 될 시나리오도 있다. 그것은 한 편으로는 우크라이나 서부와 키예프를 포함한 중부 사이에, 다른 한 편으로는 남부와 동부 사이에 본격적으로 내전이 벌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양편의 민족주의적 괴물을 위해 싸울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는 최악의 참사가 될 것이다. 다른 한 편 우크라이나와 같이 거대한 산업국가에서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질 것 같지는 않다. 유럽연합과 러시아와 다른 세계적 권력들은 주요 가스ㆍ석유 송출관과 15개의 원자로를 가진 나라가 전쟁의 혼란에 빠지는 걸 보고만 있진 않을 것 같다.

내 생각에 그와 같은 조건에서 해외로부터의 최상의 지원은, 하지만 극우파와 연대하지 않는 지지는 우크라이나 정부를 물러서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당신의 투쟁을 지지하지만 당신의 파시즘적 주장엔 동의하지 않는다"와 같은 메시지가 해외에서 압박을 가하기 위한 최선의 형태일 것이다.

Posted by 때때로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안토니오 알타리바 글|킴 그림|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도서출판 길찾기

1931년 스페인에선 공화국이 수립된다. 인민에 기반한다고 주장하는 공화국이지만 실상은 소수의 지주, 대자본가, 귀족에게 지배받았다. 노동조합 활동가는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해 작업대 한켠에 권총과 수류탄을 올려놓고 일해야만 했다. 언제 자본가가 사주한 우파의 테러가 일어날지 몰랐기 때문이다. 1936년 2월 좌파들이 모여 만든 인민전선은 총선에서 크게 승리한다. 인민전선 정부가 수립됐지만 불안한 평화는 야심찬 장군 프랑코에 의해 끝난다. 모로코로 좌천됐던 프랑코가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그는 스페인 식민지 모로코에서 민족해방운동을 진압한 공을 인정받아 젊은 나이에 장군에 올랐다. 1935년에는 노동자 봉기를 진압해 악명을 떨쳤다. 인민전선의 승리에 맞서 쿠데타를 일으키기에 그 만큼 적격의 인물은 없을 것이다.

피카소의 '게르니카',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오웰의 '카탈로니아
(카탈루냐) 찬가'. 최근으로 오면 켄 로치의 '랜드 앤 프리덤'. 모두 1936~39년의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1917년 러시아에서의 승리 기억이 생생히 남아있던, 1929년 시작된 대공황으로 자본주의는 이제 끝장인 것처럼 보였던 시절 스페인에서의 내전은 세계의 많은 젊은이들의 용기 있는 행동을 이끌었다. 아마도 스페인 내전에서의 '국제 여단'과 같은 경험은 유일무이할 것이다.

스페인의 젊은이들도 다르지 않았다. 작은 땅뙤기를 차지하기 위해 아웅다웅 하는 농촌의 갑갑함을 젊은이들이 버티긴 어려웠을 것이다.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안토니오 알타리바 글, 킴 그림,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도서출판 길찾기)의 주인공 안토니오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것이 현실에 대한 어떤 이데올로기적 반발에서 비롯한 것은 아니다. 도시에 대한 시골 청년의 동경은 어느 시대나 비슷할 것이다. 안토니오는 한 번 실패하지만 두 번째는 실패하지 않는다. 그는 도시로 가 꿈에 그리던 운전면허를 딴다. 그러나 그에게 자동차 운전은 여전히 먼 일이다. 실업이 도시를 옥죄고 있었다. 임금도 나날이 떨어진다. 누군가가 알려주지 않더라도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가 아나키즘에 이끌린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대립보다 화해, 갈등보다는 협조. 정치적 대립을 접한 대다수 사람의 반응일 것이다. 안토니오도 다르지 않았다. 미싱 외판원을 하던 당시 그는 자신의 미싱이 천을 꿰듯 갈등과 대립으로 갈라진 스페인 인민을 하나로 만들어줄 수 있기를 꿈꿨다. 꿈은 오래지 않아 깨졌다. 프랑코가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프랑코군에 징집된 안토니오는 목숨을 걸고 전선을 넘는다. 그는 의용군의 총격 앞에서 파시스트 군대가 아님을 알리기 위해 'CNT-FAI'
(전국노동자연맹-이베리아무정부주의동맹)라고 외쳤다.

여러번 언급되지만 안토니오가 CNT와 FAI에 활동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까지 포함해 고작 네 명의 작은 동맹에 가입한 것이 다다. 전선에서 만난 그들은 총알을 모아 만든 반지를 나눠 끼는 것으로 자신들의 아나키즘에 대한 신념을 맹세한다. 안토니오는 전선에서야 자신의 꿈이었던 운전을 하게된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사회에 대한 희망도 품는다. 희망은 오래가지 않는다. 프랑코군의 공세가 강화된 것도 고통스러웠지만 의용군의 정규군화는 더 고통스럽다. 켄 로치가 '랜드 앤 프리덤'에서 그리듯 정규군화는 의용군이 싸우는 '의미'를 빼앗는 짓이었다. 이어지는 패배. 이후 그의 삶은 패배와 배반으로 계속된다.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은 스페인 내전 당시를 가장 많은 분량으로 다룬다. 그러나 이 만화가 특별한 것은 그것이 패배 이후의 삶을 다룬다는 것이다. 그것은 매우 고통스럽지만 특별한 경험이다. 이 책에서도 언급되는 아나키스트 혁명가 두루티는 1936년 내전 초기 목숨을 잃는다. 어쩌면 그는 이른 죽음으로 배반과 패배를 겪지 않았기에 더 행복했을런지 모른다. 진짜인지 알 수 없지만 안토니오는 친구로부터 물려받은 두루티의 신발과 함께 스페인과 프랑스에서의 전선을 누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배반을 겪으며 그는 스스로 그 신발을 태운다. 가까스로 지키던 아나키즘에 대한 신념은 결혼과 함께 옛 동료에게 맹세의 반지를 되돌려 보내며 끝낸다. 종교적 결혼의 맹세가 아나키즘에 대한 맹세를 대체한 것이다.

1975년 프랑코가 죽으며 스페인의 독재도 끝난다. 안토니오와 동지들이 찾던 자유와 해방된 사회가 온 것일까.

"스페인은 민주국가니까요."

이 말보다 더 잔인하게 그를 파괴한 것은 없을 것이다. '민주국가' 스페인은 절차와 형식 속에, 그의 노쇠한 몸 속에 그를 가뒀다. 안토니오는 모든 실패 속에서 자신의 모든 걸 포기하고 두더지가 자신의 가슴을 파먹도록 내버려뒀다. 동지들의 패배를 핑계로 자신의 신념을 배반한 삶을 사는 것은 그 만큼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던 듯 싶다. 자신의 마지막 존엄과 자유를 위해 그는 양로원의 5층 창에서 뛰어내린다. 그는 아흔에 다다라 스스로 비상한다. 이 책의 원제가 'El Arte de Volar'(비상의 기술)인 이유다.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의 안토니오는 스스로 맹세의 반지를 뺀다. 그러나 그는 곧 그 반지를 뒤늦게 얻은 자식의 손에서 발견한다. 실제로 이 책은 그의 아들 안토니오 알타리바가 썼다. 게다가 최근 스페인에서는 그의 후예들이 다시 저항에 나서고 있다. 맞서 싸운 대상은 다르다. 그러나 인민의 고통스러운 삶을 조장하는 자본가들, 그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인민의 뜻을 무시하는 정치가들의 권력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지금의 싸움은 안토니오의 싸움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래서 그의 비상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 지금은 절판된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죽음'(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 지음, 변상출 옮김, 실천문학사)은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에 중요하게 언급되는 부에나벤투라 두루티의 삶과 죽음을 다루고 있다. 아마 두루티에 관한 한국에서 거의 유일한 책일 것이다.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란 제목은 아마 이 책에서 따온 듯 싶다. 스페인 내전과 아나키즘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Posted by 때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