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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_ 열한 살의 한잘라: 팔레스타인의 양심 나지 알 알리 카툰집
나지 알 알리 그림|조 사코 서문|강주헌 옮김|시대의창

'열한 살의 한잘라'라는 팔레스타인 만화가의 카툰집이 나왔습니다. 1936년 태어나 1948년 나크바 때 고향인 팔레스타인을 떠난 나지 알 알리는 레바논, 쿠웨이트, 영국을 오가며 팔레스타인에 관련된 카툰을 그려왔습니다.

주인공(?) '한잘라'는 그의 모든 카툰에 등장하는 뒤돌아서있는 허름한 차림의 소년의 이름입니다. 한잘라는 아마도 알리의 분신이겠죠. 비슷한 나이에 고향을 떠나야 했던 그의 마음은 성장을 멈춘채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이스라엘의 잔혹한 학살, 미국의 사기와 협잡, 중동 지배자들의 위선을 놓치지 않고 직시합니다. 그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무슬림의 편협한 시각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중동의 지배자들처럼 위선적인 타협을 선호하지도 않습니다. 열한 살 한잘라의 눈에는 레바논 기독교인의 아픔도 함께 담기곤 합니다. 그와 민족의 고통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고통에 비견되기도 합니다. 그는 미국과 팔레스타인의 잔인함과 욕심을 비난하는 데 촛점을 맞추면서도 중동 지배자들의 비열한 태도에 대한 비판을 놓치 않습니다. 1987년 그를 암살한 범인의 배후로 이스라엘과 함께 중동의 여러 나라들도 꼽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만화 '팔레스타인'으로 잘 알려진 조 사코가 서문을 썼습니다. 각 장과 카툰마다 간략한 해설이 있어 그리 어렵지 않게 카툰이 그리고 있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마이뉴스에 원혜진이 연재하고 있는 만화 '아! 팔레스타인'(링크)도 팔레스타인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2_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최장집 글|폴리테이아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은 최장집 교수가 경향신문에 연재했던 칼럼을 모으고 보충해 낸 책입니다. 잘 안알려져 있지만 최장집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은 '노동'문제였습니다. 민주주의에 관한 그의 학문적 여정의 출발점으로 돌아온 셈이죠.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을 방문했을 때 그는 30년 전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 위해 방문했던 영등포 공단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현대차 노조 사무실 앞에는 회사 관계자인지, 경찰인지 모를 인물들이 진을 치고 노조 사무실 방문자들을 상시 감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30년 전 '빨갱이' 색출을 위해 공단 입구에서 감시의 눈길을 돌리지 않던 군사독재 정권의 모습과 겹칩니다. 지난 30여년간의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노동'에게 민주주의는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일 뿐입니다. 이 에피소드는 최장집 교수의 관심과 주장의 핵심을 짚어줍니다. 책 제목에서 직설적으로 말하 듯 노동이 배제된 민주주의는 더 많은 상처를 안겨줄 뿐이라는 겁니다. 그 자체는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경제민주화, 보편적 복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에도 고언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는 복지를 시혜가 아닌 사회적 권리로서 바라볼 것을 주장합니다. 즉 혜택을 받는 이들을 무기력한 상태로 놓아둘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직접 그 권리를 요구하고 설계하고 시행할 민주적 권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주장입니다.

새로운 이론에만 눈을 희번덕 거리며 몰려다니는 요즘 세태와 달리 하나의 주제를 뚝심있게 탐구하는 노학자의 자세가 무척 존경스럽습니다. 출판사에서 있었던 저자와의 대화에 나온 최장집 교수는 칠순이라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생동감 넘치는 눈빛과 지치지 않는 목소리로 자신이 '배우고' 있는 것에 대해 3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이 책은 본격적인 이론을 펼치진 않습니다. 현대차 노동자, 건설노동자, 이주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소규모 봉제공장 노동자 등을 만나며 떠오른 화두를 제시한 책일 뿐이죠. 따라서 그가 말하는 '노동'은 아직 이론적으로 엄밀하게 정의된 것은 아닙니다. 그가 만난 사람들에서도 드러나듯 영세 자영업 '사장님'도, 농민도 '노동'이라는 범주로 얘기됩니다. 하지만 이는 영세 자영업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의 가장 강력한 반대자들이라는 점에서 정치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많은 모순을 내포할 수밖에 없습니다.

176쪽이지만 판형이 작고 글자가 커 쉬엄쉬엄 읽어도 두 시간이면 다 읽을 책입니다. 하지만 이 책이 던진 화두를 고민하기에 두 시간은 너무 짧은 시간입니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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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osaja 2013.01.17 0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올해의(이제서야!!) 첫책은 이것으로 해야겠네요.

최근 정치학 분야 출판에서 눈에 띄는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후마니타스 출판사의 박상훈 대표가 새 책을 내놨습니다. '정치의 발견 :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가 그 책입니다.


정치의 발견 :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
박상훈 지음|폴리테이아



이 책은 박상훈 대표가 지난해 진행한 한 강의를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심상정씨가 원장으로 있는 '정치바로 아카데미'에서 마련한 강의입니다. 강의의 대상이 됐던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주로 '진보'라고 불리는 진영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도 일차적인 대상이 '진보파'임을 밝히고 서술을 시작합니다. 그렇기에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에게 더 뼈아픈 비판이 곳곳에 자리합니다.

저자는 작정하고 진보파에 대한 고언을 준비한 듯 싶습니다. 이를 위해 그가 첫 교재로 택한 책은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입니다. 80년대 막스 베버 책을 들고 다니다가 '막스'와 '맑스'를 구분 못한 경찰 때문에 연행됐다는 선배의 우스갯 소리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긴 합니다. 그렇다고 가벼운 농담거리로 채워진 책은 아닙니다. 저자가 '맑스(마르크스)'가 아닌 '막스'를 택한 것은 진보의 이상주의적 정치관을 깨뜨리기 위한 것이죠. 현실에서 정치는 권력을 다뤄야만 합니다. 진보가 채질적으로 두려움 혹은 거리감을 가진 경찰, 군대, 관료ㆍ공무원 등의 조직을 움직여 목표로 한 무언가를 강제해야 만 하는 것이 정치입니다. 이런 것들이 더럽다고 해서 외면하면 현대 국가의 강권력은 보수파와 기득권 세력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따라서 정치인은 다뤄야만 하는 폭력, 권력, 권위 등을 외면할 것이 아니라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겸허히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정치에 관련된 모든 윤리적 문제의 특수성은, 인간이 만든 조직에 내재해 있는 정당한 폭력이라는 수단 그 자체에 의해 규정된다. … 정치가란 모든 폭력성에 잠재되어 있는 악마적 힘들과 기꺼이 관계를 맺기로 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정치가는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외면할 수 없습니다. 아니 외면하면 안된다는 것이겠죠. 수단과 과정에서의 절대적 윤리가 결과의 실패를 옹호해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윤리는 '악에 대해 폭력으로 대항하지 말라'고 말하지만 정치가에게는 거꾸로 '너는 악에 대한 폭력으로 저항해야 한다. 안 그러면 너는 악의 만연에 책임이 있다'라는 계율이 더 타당하다."

한마디로 정치가는 진흙탕에서 뒹굴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이렇듯 이 책은 진보에서 가지고 있는 민주주의와 정치에 대한 순수한 이념에 일침을 가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을 비판하고, 리더십ㆍ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에 대한 터부의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거리에서의 시위에 대한 순수한 신념이 그 목적과 달리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의 정치적 참여를 저해한다는 주장도 머뭇거리지 않습니다.

저자는 공산주의, 혁명의 신봉자들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웁니다. 하지만 묘하게도 저는 이 책을 읽으며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를 떠올리게 되더군요. 아마도 그에 대한 얘기는 다음에 할 기회가 있을 듯 싶습니다.

베버의 이야기로 시작한 이 책은 차례대로 사울 D. 알린스키의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버락 오바마의 '담대한 희망'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E. E. 샤츠슈나이더의 '절반의 인민주권', 셰리 버만의 '정치가 우선한다'를 교재로 정치가의 윤리, 정치의 실천,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 진보파의 실패한 과거를 짚어나갑니다. 저자는 '정치학 교과서'의 불가능함에 대해 여러번 언급하지만 이 책은 지금 시기에 진보진영에게 훌륭한 '정치학 교과서'가 될 수 있을 듯 합니다. 특히 2008년 촛불이 꺼진 후 무언가 답답함을 느끼며 어떠한 돌파구를 모색하고자 하는 분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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