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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에 해당되는 글 3

  1. 2015.01.07 페이스북 백업 - 마르크스 발언의 진실 (2)
  2. 2013.12.20 전략은 불필요한가 (3)
  3. 2008.06.24 [스크랩] 혁명가, 에릭 홉스봄

2014년 11월 15일 작성, 일부 수정

자크 비데와 제라르 뒤메닐이 쓴 새 책이 나왔다. 제목은 '대안마르크스주의'. 이 책의 서론에는 다음과 같은 잘 알려진 이야기가 앞 부분에 나온다.

마르크스가 '마르크스주의'의 기초를 제공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사상적 스승을 찾고 있던 러시아의 [근대] 초기 혁명가들에게 "어떤 경우라도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고 응답한 것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 17쪽.

그래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 문장을 독자들은 마치 이 이야기가 플레하노프와 자술리치 같은 러시아 초기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대해, 혹은 더 직접적으로 레닌과 그의 동료들에 대해 한 얘기인 것처럼 이해하기 쉽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이와 관련해선 우선 프랑스 노동당 건설을 위해 쥘 게드와 마르크스가 함께 작성한 강령의 해설에서 이 이야기의 배경을 발견할 수 있다.

Accusing Guesde and Lafargue of "revolutionary phrase-mongering" and of denying the value of reformist struggles, Marx made his famous remark that, if their politics represented Marxism, "ce qu'il y a de certain c'est que moi, je ne suis pas Marxiste(what is certain is that I myself am not a Marxist)".
개혁을 위한 투쟁의 가치를 폄하하며 '혁명적 미사여구'만 늘어놓는 게드(프랑스 노동계급 지도자)와 라파르그(마르크스의 사위)를 비난하며 마르크스는 그의 가장 유명한 발언을 내놓는다. 만약 저들의 정치를 마르크스주의라고 부른다면 "ce qu'il y a de certain c'est que moi, je ne suis pas Marxiste(확실한 것은 내 자신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 1880년 프랑스 노동당 강령에 대한 편집자의 해설(링크)

이는 노동당 건설을 위한 강령을 의논하기 위해 게드와 라파르그를 만난 이후를 설명한 글이다. 마르크스의 이 언급은 엥겔스가 베른슈타인에게 보낸 편지(Marx and Engels, Werke, Vol.35 p.388)에 인용돼 있다.

Nor have you any other source, i.e. other than Malon at second hand, for your reiterated assertion that in France 'Marxism' suffers from a marked lack of esteem. Now what is known as 'Marxism' in France is, indeed, an altogether peculiar product — so much so that Marx once said to Lafargue: 'Ce qu'il y a de certain c'est que moi, je ne suis pas Marxiste(If anything is certain, it is that I myself am not a Marxist)'.
프랑스에서 '마르크스주의'가 존중받지 못해 고통받고 있다는 당신의 반복된 주장은 말롱(제1 인터내셔널에서 활동한 염색 노동자)을 통하지 않고서는 어떤 근거도 제시할 수 없다. 현재 프랑스에서 '마르크스주의'라고 알려진 것은, 정말로 완전히 기이한 결과물이다. 언젠가 마르크스가 라파르그에게 이렇게 말했을 정도로 말이다. "Ce qu'il y a de certain c'est que moi, je ne suis pas Marxiste(무언가 확실한 게 있다면 그것은 내 자신이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1882년 11월 2일 엥겔스가 베른슈타인에게 보낸 편지(링크)

엥겔스는 이 말을 1890년 슈미트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반복한다.

Just as Marx used to say, commenting on the French "Marxists" of the late [18]70s: "All I know is that I am not a Marxist."
마르크스는 1870년대 후반 프랑스 '마르크스주의자'에 대해 언급할 때면 꼭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가 아는 전부는 내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 1890년 8월 5일 엥겔스가 슈미트에게 보낸 편지(링크)

이 언급들 모두 매우 구체적인 상황에서 이른바 프랑스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두고 한 말이다. 그리고 이 사정에는 그의 사위 라파르그가 끼어있다. 실제로 마르크스 사후 엥겔스는 1889년 라파르그에게 이렇게 편지를 쓴다.

We have never called you anything but 'the so-called Marxists' and I would not know how else to describe you. Should you have some other, equally succinct name, let us know and we shall duly and gladly apply it to you.
우리는 너를 '사이비 마르크스주의자' 외에 어떤 것으로도 부르지 않았었고 그것 외에 어떻게 너를 묘사할 수 있을지 나는 알지 못했다. 간결한 이름 같은 다른 어떤 것을 네가 가졌다면 우리에게 알려주렴. 우리는 당연히도 기꺼이 너를 그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
- 1889년 5월 11일 엥겔스가 라파르그에게 보낸 편지(링크)

그런데 저명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런 구체적 맥락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물론 정확한 인용 표기도 없이 마구 사용되고 있다. 그것도 매우 눈에 잘 띄는 정치적 의도를 지니고 말이다. 최근 뒤메닐 글을 읽으며 자꾸 실망하는 데, 이번 글도 '서론'에서부터 실망스러운 것 투성이다. 그 앞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마르크스로 되돌아가 다시 시작하겠다고 한 말이 무색하게도 말이다.

저 문구를 그저 '일반적 상황'에 대입해 썼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터이다. 명백히 '프랑스' 마르크스주의를 대상으로 한 말을 '러시아의 근대 초기 혁명가'들에게 했다는 건 터무니없는 왜곡일 뿐이다.

'저명한 저자'라고 해서 의심 없이 읽어선 안 된다. 마찬가지로 내 글에도 심각한 오역이나 오류가 있을 수 있다.

Posted by 때때로
2013.12.20 12:33

전략은 불필요한가 쟁점2013.12.20 12:33

푸코가 1979년 5월 '르몽드'에 기고한 '봉기는 무용한가'를 읽었다. 1979년 이란혁명에 대한 이 글은 지금의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그러나 전략에 대한 폄훼 혹은 오해는 동의하기 힘들다. 이에 대한 느낌을 아래 적는다.

서정연씨가 옮겼다. 글을 읽으려면 여기: 푸코 '봉기는 무용한가'


1979년 샤에 맞서 무장한 군인 앞에 목숨을 걸고 나선 이란의 인민.

이란 혁명이 결국 호메이니와 종교 지도자들이 권력을 잡는 것으로 끝나자 이에 대한 비난이 좌와 우 모두에서 빗발쳤다. 최근 이집트 혁명과 아랍의 봄에 대해 여러 지식인과 언론이 그러는 것처럼 말이다. 푸코는 이렇게 말한다.

"'봉기[반란]는 무용하다. 언제나 그건 매한가지니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권력 앞에서 자신의 목숨을 거는 사람들에게 어느 누구도 지시를 내리진 않는다. …… 인민들은 봉기한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위대한 사람들이 아닌 아무나의) 주체성은 봉기에 의해서만 역사에 도입되며 역사에 자신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사실 봉기와 반란은 푸코가 거리를 두는 전략가들의 '전략'에 의해 일어나지 않는다. 반란의 우연한 계기들은 언제나 예측 불가다. 푸코가 봉기ㆍ반란과 구분하는 혁명도 다르지 않다. 일반적 특징들 몇몇을 꼽을 순 있겠지만 정확한 순간, 계기를 짚어내기는 어렵다.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가 일으킨 파장에서도 우리는 이러한 우발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전략은 불필요한 것인가. 푸코는 자신의 이론적 도덕이 '전략가'의 것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나의 이론적 도덕은 이들[전략가]의 것과는 정 반대다. 그것은 '반전략적'이다. 즉 하나의 특이성이 반란을 일으킬 경우에 [이를] 존중하는 것, 권력이 보편적인 것을 침해할 경우에 [이에 대해] 비타협적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푸코의 도덕은 전략가들에게 필요한 것임에 틀림 없다. 반란을 그 자체로 존중하는 것, 비타협적이 되는 것. 그러나 여기에는 석연찮은 무엇인가가 있다.

그것은 봉기와 반란을 순전히 우발적인 현상으로, 즉 인간이 어쩌지 못하는 자연현상으로만 바라보는 데서 오는 한계가 아닐까. 그렇기에 푸코가 주목하는 것은 목숨을 걸고 군대에 맞선 남녀다. 그러나 이러한 남녀가 거리에 나서게 된 계기가 순전히 우발적인 것 만은 아니다. 그들의 동료 형제, 혹은 가족으로부터 이어받은 어떤 의식적 경험들이 존재한다. 새롭게 촉발된 운동이 흔히 과거의 성공한(것처럼 여겨지는) 봉기의 형태를 모방하곤 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이것 뿐만은 아니다. 봉기와 반란이 촉발되는 구체적인 순간과 계기를 특정할 순 없지만, 이러한 계기가 모습을 드러내기까지는 적지 않은 의식적 반대파의 노력이 있어왔다. 인쇄술의 발달과 계몽주의의 확산은 프랑스 혁명의 전제였다. 러시아 혁명은 경찰과 황제까지도 무시하지 못할정도로 성장하던 노동자 운동의 역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비슷하게 1987년 6월 항쟁 앞서 수많은 불온 서적들이 대학가에 넘쳐났고 야학ㆍ서클ㆍ학회와 같은 학습ㆍ조직활동이 확산됐다.

봉기와 반란을 그 자체로 존중하는 것은 혁명적 전략가의 필수적 도덕이다. 인민으로부터 배우며 그 내부에서 전략을 세우는 게 전략가가 해야 할 임무다. 봉기와 반란이 자신이 예측 또는 계획한 데서 벗어났다며 기권하는 것은 결코 전략가적인 태도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들 반란을 그저 존중만 하는 게 꼭 비타협적 이론가의 태도도 아니다. 왜냐면 "넘어설 수 없는 법"에 "제한 없는 권리로 맞"서는 것은 언제나 인민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때때로
2008.06.24 23:13

[스크랩] 혁명가, 에릭 홉스봄 2008.06.24 23:13

역사는 시간을 뛰어넘어 반복되기도 하지만 그 장소가 꼭 같은 장소인 것 만은 아니죠. 지난 5월 초부터 시작된 촛불시위는 한국적 상황에서 시작되고 발전돼 왔지만 많은 부분 1968년 프랑스의 상황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운동의 원인과 발전 방향이 그렇다기 보다는 정부와 우파의 대응, 그에 맞선 시민들의 저항과 운동을 뒤쫓아 다니기에 급급한 좌파들의 모습이 그렇다는 거죠.

[1968년 5월의 혁명이 결국 드골의 승리로 끝나게 된 것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진정한 과오는 다른 데 있었다. 혁명운동의 관건은 기회 있을 때마다 바리케이드를 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정치조건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시기를 인식하고 그에 맞게 적절히 행동하는 데 있다. 프랑스공산당은 이렇게 하지 못했으며, 그 결과 자본주의를 타도(당은 이를 원하지 않았다)하기는커녕, (당이 확실히 원했던) 인민전선정부를 세우는 데도 실패했다. 투렌이 비꼰 것처럼 공산당은 혁명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개량적이었기 때문에 실패했다. 당은 시종일관 대중을 뒤쫓기에 급급했다. 바리케이드가 쳐질 때까지 학생운동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했으며, 자발적인 농성에 이끌려 노조 지도자들이 참여하지 않을 수 없을 때까지 노동자들의 무제한적인 총파업 의지를 인식하지도 못했고, 노동자들이 파업 타협안을 거부했을 때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혁명가' 24장 1968년 5월 313~314pp.


물론 지금 한국에서의 촛불시위는 사실 1968년 프랑스를 비교하기엔 많이 부족하죠. 물론 '명박산성'이라는 전도된 바리케이드가 세워지긴 했지만 시민들의 반란 수준, 또한 노동자 운동의 확산 정도에 있어서 비교할 수 없죠. 심지어 노동조합 운동 내에서조차 엄청난 폭발력을 지닐 가능성이 있었던 건설노조와 화물연대의 파업에서 실질적인 연대는 일어나지 않았어요. 하지만 느리긴 해도 끊임없이 발전해왔던 촛불시위에서조차 운동의 뒷꽁무니를 쫓기에도 벅차보이는 좌파의 모습은 1968년 프랑스의 공산당 모습을 떠올리게 해요.

하긴 대다수의 좌파 혹은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유주의 좌파에겐 이런 상황을 예상할 수 없었죠.(흠... 이것도 1968년 5월 이전에 그 어떤 좌파도 그런 폭발을 예상치 못했다는 점에서 또 비슷한 거네요) 아마도 그래서일거에요. 그래서 더 궁금해진 것은 도대체 저 시민들은 어떻게 거리로 나왔을까 하는 점이에요.

물론 국민의 건강에 대한 관심과 그에 반하는 정부의 검역주권 포기, 어륀지, 강부자, 고소영 논란 등 인수위를 포함한 이명박 정권의 여러 실책들 때문이라고 분석하곤 하죠. 또는 최근의 경제적 위기감 때문이라고도 해요. 하지만 사람들이 거리에 나서는 이유는 그렇게 단순할 것이라고 보이진 않아요.

사실 서민들에게 경제적 위기감, FTA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 각종 공공 서비스의 민영화는 노무현 때부터 시작됐었고 좌파들은 이런 쟁점들에 계속 개입해왔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기에 호응하지 않았었거든요.

에릭 홉스봄이 40여년 전에 쓴 이 글은 지식인이 왜 혁명가가 되는가에 대한 글이지만 지금의 상황을 고민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다시 말해서 사람들을 의식적인 혁명주의로 몰아가는 것은 목표에 대한 야심이 아니라, 그에 도달하는 모든 대안적인 방법의 명백한 실패, 모든 문들의 폐쇄이다. 집 밖에 있을 때 문이 잠기더라도, 참을성을 갖고 기다리기는 해야겠지만 다시 들어갈 가능성은 있다. 단지 그런 가능성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여길 때 비로소 문을 부술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럴 경우에도 문이 부서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되면 그렇게 하지 않을 여지가 크다는 점은 지적할 만하다. 혁명가를 만드는 것은 일정한 절망뿐만 아니라 희망이다. 잘 알려진 억압받는 계급들이나 인민들 사이에서 수동성과 행동주의가 전형적으로 번갈아 나타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혁명에 대한 헌신은 여러 동기들의 혼합에 달려 있다. 평범한 삶에 대한 욕망과 그 이면에서 실현되기를 기다리는 실질적으로 풍요한 삶에 대한 꿈, 출구가 모두 폐쇄되었다는 느낌과 동시에 그것을 무너뜨려 열 수 있다는 느낌, 인내와 개량 혹은 점진적인 개선에 대한 호소력이 먹혀들지 않는다는 절박한 느낌 등이 있다. 이처럼 상이한 비율로 혼합되는 동기들은 다양한 역사적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데, 우리는 그 중 두 가지 경우를 추출해낼 수 있다. 하나는 상대적이고 특수한 경우인데, 미국의 흑인처럼 사호 ㅣ내부의 특정 집단에게는 입구가 닫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열려 있거나 적어도 열릴 가능성이 존재한다. 다른 하나는 일반적이고 중요한 경우인데, 위기에 처한 사회는 어떻게 해도 사회 구성원 대부분의 요구를 만족시킬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그리하여-상대적인 소규모 집단을 제외하고-모든 집단은 혼란과 좌절을 느끼면서, 반드시 동일하지는 않겠지만 근본적인 변화의 필요성을 확신한다. 제정 러시아가 고전적인 사례이다. 그 사회에서는 아무도 미래를 믿지 않았다. 서유럽 세계의 선진국가들 대부분은 1848년 이후 한 세기 이상 첫 번째 유형에 속해 있었지만, 1960년대 이후에는 일부가 두 번째 유형으로 이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혁명가' 25장 지식인과 계급 투쟁 323~324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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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 : 역사의 전복자들  에릭 홉스봄 지음|김정한ㆍ안중철 옮김|도서출판길

Posted by 때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