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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11 한미FTA

한미FTA의 간접수용에 대한 보상 규정과 투자자-국가소송제의 문제점

때때로 2011. 10. 31. 14:37

한미FTA에는 '간접수용'이라는 개념과 함께 투자자-국가소송제(ISD)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간접수용을 포함한 수용에 대한 정부의 적절한 보상을 FTA(BIT를 포함해서)에서 규정하는 것은 생소한 법체계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국가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재산권을 본국에서와 같이 보장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간접수용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실행할 수 있는 체계로 투자자-국가소송제(ISD)가 마련된 겁니다.

이게 문제가 되는 것은 '간접수용'이라는 개념이 우리 법률체계에 없을 뿐 아니라 이 개념의 규정이 지나치게 모호하고 광범위하기 때문입니다.

11-나 3. 제11.6조 제1항에 다루어진 두 번째 상황은 간접수용으로서, 당사국의 행위 또는 일련의 행위가 명의의 공식적 이전 또는 명백한 몰수 없이 직접수용에 동등한 효과를 가지는 경우이다.
-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 자유무역협정 2007. 5. 25일자 협정문 부속서

간접수용은 우리나라에는 없는 법률적 개념으로 미국의 '규제적 수용'에서 발전해온 것입니다. '수용'은 정부가 개인(법인)의 재산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것을 뜻합니다. '간접수용'은 이 '수용'의 개념을 확장해 직접적인 정부의 몰수나 명의의 이전 없이도 정부 정책에 의해 투자자가 손해를 입는 것을 포함합니다.

물론 투자자가 손해를 입는 모든 사항을 간접수용으로 규정하진 않습니다. 사안별로 사실에 기초해 판단하기로 돼 있죠. 부속서의 이어지는 항목에서는 "정부 행위가 투자에 근거한 분명하고 합리적인 기대를 침해하는 정도" "목적 및 맥락을 포함한 정부행위의 성격" "공익을 위하여 투자자 또는 투자가 감수해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것을 넘어선 특별한 희생을 특정 투자자 또는 투자자에게 부과하는지 여부" 등을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미FTA 제11.6조 1항에서는 ①공공의 목적을 위한 경우 ②외국인에게 비차별적인 방식을 따르는 경우 ③적법한 절차와 당사자 간의 충분한 이해의 보호, 국제관습법에 따르는 경우는 간접수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문형석, '간접수용 및 투자자-국가소송제에 관한 연구')

한미FTA에서 간접수용이 가장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우선 부동산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 법에서 사문화되어있긴 하지만 우리의 부동산 제도는 토지공개념에 입각해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 설립 당시 무제한에 가까운 공급량의 토지를 가졌던 미국에는 이러한 개념이 없죠. 우리는 토지공개념에 입각해 개발이익환수제, 개발제한구역, 용도별 토지의 구분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게 현재의 상태 그대로 유지될 때는 그리 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변화하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규제와 제도ㆍ분담금 등의 신설이 한미FTA와 충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입니다.

이는 또한 환경 문제로 연결됩니다. 멕시코ㆍ캐나다ㆍ볼리비아에서 발생했던 ISD의 문제는 거의 모두 환경과 건강에 대한 것들입니다. 악화되는 환경문제에 있어 새로운 규제와 제도의 신설은 거의 필수적인 것으로 예상되지만 한미FTA가 비준된 상황에서 이러한 제도의 신설은 필연적으로 미국 투자자(또는 미국 투자자가 참여하고 있는 한국 기업)의 '합리적 기대'라는 것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 볼리비아의 경우 미국과 직접 FTA를 체결했던 상황은 아니었지만 볼리비아의 상수도 공급권을 가지고 있던 벡텔사는 볼리비아와 BIT(투자협정, FTA는 보통 BIT 내용을 포함합니다)를 체결했던 네덜란드의 유령기업을 이용해 볼리비아 정부를 국제중재로 몰고 갔습니다.

즉 간접수용에 대한 보상과 ISD 규정은 개별 주권국가의 역사와 전통에 입각한 법률 체계를 침해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실제로 캐나다에서는 지금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위헌'논란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최근 여야 합의로 중소상권 보호를 위한 기업형 수퍼마켓(SSM) 규제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걸 한EU FTA와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며 김종훈이 협박한 사례가 있습니다.

※ 11월 4일 23시41분 : 오해를 살까봐 추가합니다. 한EU FTA에는 ISD 조항이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럽연합 회원국 22개 나라와 한국이 맺은 BIT에는 이 ISD 조항이 포함돼 있습니다. 물론, 양자간투자협정에서의 ISD는 FTA에서의 ISD와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
조선일보 2011년 10월 31일 A3면(한겨레나 경향을 근거로 내세우면 안 믿는 분들이 있어서 조선일보를 링크겁니다.)

이 조항들(간접수용에 대한 보상과 ISD)은 실제로 미국 투자자에게 이용되기보다 한국 기업들에 의해 이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FTA에 의해 규정된 투자자는 미국인의 직접적인 투자뿐 아니라 주식ㆍ특허ㆍ대출 등을 통한 지분 참여도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위의 벡텔사 사례에서 보이 듯 한국 기업이 자신의 기업에 참여하고 있는 미국인 투자자를 이용해 정부의 규제 시도를 저지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이 보여주는 것은 FTA의 확대가 결국 1인 1표의 평등한 정치적 권리에 입각한 민주주의 정치체를 부정하고 투자자와 대기업의 권력에 더 큰 힘을 몰아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투자자의 재산권 보호는 어떻게 보장받는지?" "한국 기업이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 투자할 때 어떻게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와 같은 문제들이 제기됩니다. 이미 현재에도 대부분의 대규모 투자에서 해당 국가와 별도의 분쟁조정 절차에 대한 합의를 거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를 총괄적으로 인정하는 것과 개별 투자에 있어서 합의를 하는 것과는 그 수준이 다른 것이죠. 그렇기에 호주는 미국과 FTA를 체결하면서 이 조항(ISD)를 제외했을 뿐 아니라 최근에는 앞으로 체결할 모든 FTA에서 이 조항을 제외할 것을 결정했습니다.

FTA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충분히 많은 교역을 통해서 발전해왔습니다. 그리고 교역의 방법이 꼭 투자자와 기업의 권력을 무제한으로 보장해주는 FTA와 같은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남미의 좌파블록(쿠바,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니카라과)은 '아메리카 대륙을 위한 볼리바리안 대안(ALBA)'라는 호혜에 입각한 무역체계를 시험하고 있습니다. 투자자와 기업의 이익이 아닌 환경과 공공선을 위한 무역협정이죠. 베네수엘라의 석유 때문에 가능한 대안이긴 하지만 세계적 차원에서 시도한다면 불가능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미FTA가 체결된다고 해서 평범한 노동자ㆍ서민의 삶이 지금 당장에 최악의 구렁텅이로 빠지진 않을 것입니다. 이미 볼리비아의 사례(벡텔사의 시도는 혁명으로, 정부의 붕괴로 이어졌죠) 때문이라도 그들이 그토록 과격한 방법을 직접적으로 시행하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주 좋은 경우에라도 한진중공업과 같은 사례를 더 많이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미 자본에게 국적이라는 게 큰 의미가 없어졌지만 그 최소한의 제한도 풀려졌을 때 우리는 더 많은 일자리를 잃게 될 것입니다. NAFTA의 결과가 미국 내에서 일자리의 축소와 멕시코에서 저임금 일자리의 증가로 나타났듯이 말입니다. 우리의 미래가 미국이 됐든 멕시코가 됐든 평범한 노동자들에겐 둘 모두 바람직한 대안이 아니죠. 농산물 가격이 조금 싸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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