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지 못한…

멕시코, FTA, 우리 99%의 삶 본문

쟁점/11 한미FTA

멕시코, FTA, 우리 99%의 삶

때때로 2011. 11. 5. 01:40

한미FTA를 반대하는 주장에서 멕시코의 사례를 근거로 드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몇년 전 방영한 KBS 프로그램의 영향인 듯 싶어요. 그러나 근거의 제시는 정확해야 합니다다. 어설피 "NAFTA 이후 멕시코인의 90%가 빈민으로 전락했다"는 것과 같은 믿기 어려운 주장을 펴면 반격 당하기 딱 쉽죠. 오늘 낮 찾은 몇 가지 통계를 먼저 보여드리고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2000년대 후반 지니계수
- OECD 평균 : 0.31
- 한국 : 0.32
- 멕시코 : 0.48(칠레에 이어 2위)
※ 198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지니계수는 OECD 평균 0.3% 증가, 멕시코는 0.2% 증가 => OECD 평균보다는 덜 악화됐으나 소득분배가 악화됐음을 보여줍니다.
● [Society at a Glance 2011: OECD Social Indicators] Income inequality(링크)

2. 2000년대 후반 균등화 중위 가계소득의 50% 이하로 사는 사람의 수
- OECD 평균 : 11.1%
- 한국 : 15.0%
- 멕시코 : 21.0%(1위)
※ 198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빈곤률은 OECD 평균 1.0% 증가, 멕시코 0.1% 증가 => 지니계수와 마찬가지로 마찬가지로 OECD 평균보다는 덜 악화됐으나 소득불균형이 심해졌음을 보여주죠.
● [Society at a Glance 2011: OECD Social Indicators] Poverty(링크)

3. 미국 달러로 환산한 연간 균등화 중위 가처분 가계소득(2007년 경상가격과 PPP로 환산)
- OECD 평균 : 1만9000 달러
- 한국 : 1만9000 달러
- 멕시코 : 5000 달러(역시 끝에서 1위)
※ 198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후반(또는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중위 가계소득의 실질 연평균 성장은 OECD 평균 1.7%, 멕시코 1.2% 증가. => 실질적인 소득의 증가에 있어서 OECD 평균보다 떨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 [Society at a Glance 2011: OECD Social Indicators] Household income(링크)

4. 2008년 15~64세의 고용률
- OECD 평균 66.1%
- 한국 : 62.9%
- 멕시코 : 59.4%(끝에서 12위)
※ (이건 의미 없겠지만) 2007년에서 2009년 사이 고용률은 OECD 평균 1.4퍼센트포인트 감소, 한국 1.0퍼센트포인트 감소, 멕시코 1.6퍼센트포인트 감소. => 멕시코의 실업률은 OECD 국가 중 매우 낮습니다. 하지만 고용률로 보면 OECD 평균보다 많이 떨어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 [Society at a Glance 2011: OECD Social Indicators] Employment(링크)

5. 2009년 미국 국토안보부가 발표한 '불법체류 이민자 인구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1월을 기준으로 멕시코계 불법이민자가 730만명으로 1위를 기록. 2위인 엘살바도르의 57만명과는 큰 차이. 멕시코가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야겠지만 1990년대 이후 멕시코계 이민자의 급격한 증가는 멕시코 내부의 경제ㆍ사회적 상황의 부정적 변화를 반영하지 않나 싶습니다.
● [노컷뉴스] 미국내 한인 불법체류자 24만명, 국가별 6위(링크)

FTA 찬성론자라면 위의 통계가 아니라 NAFTA 이후 멕시코의 경제성장률과 GDP 등의 통계를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실제로 저는 그러한 통계 제시에 반박하기 위해 위의 통계를 찾았습니다). 제가 위 통계를 제시한 것은 NAFTA 이후 멕시코의 상황이 급격히 악화됐음을 증명하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멕시코의 경제성장률과 GDP가 NAFTA 이후 멕시코 노동자ㆍ농민의 삶을 못 보여주듯이 제가 제시한 통계도 멕시코 노동자ㆍ농민의 삶이 악화된 이유가 NAFTA 때문임을 입증하진 못합니다. 산업구조, 정치제도의 안정성, 정부의 정책적 의지, 기업의 경영능력, 노동자ㆍ농민ㆍ학생의 저항 등 멕시코의 사회ㆍ경제적 삶을 규정하는 요인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1970년대 이후 더욱 밀접하게 연관된 세계경제의 상황입니다.

FTA에서 간접수용에 대한 보상과 투자자-국가소송제(ISD) 조항이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때로는 이 조항만 없으면 FTA가 선의의 제도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조항이 상징하는 것은 FTA가 무엇보다도 투자자와 기업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는 것입니다. 인구의 다수를 점하는, 요새 표현으로 하자면 99%의 노동자ㆍ농민ㆍ청년ㆍ실업자들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게 아니라는 거죠. 오히려 이들 99%를 수탈하고, 억누르며, 착취하는 1%를 보호하기 위한게 이 FTA의 핵심 목표입니다.

즉 우리 99%의 삶을 악화시키려는 1%에 맞선 투쟁이 넘을 수 없진 않지만 꽤나 심각한 장애물이 FTA라는게 제 결론입니다. FTA 체결 이후 한국의 사회ㆍ경제적 상황이 멕시코처럼 악화될 수도, 때론 개선될 수도 있지만 그 자체는 사회 집단의 '의지'가 담긴 행동들에 의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심지어 악마의 조항처럼 느껴지는 ISD조차도 볼리비아 인민의 단호한 행동과 이에 연대한 세계적 투쟁을 통해 저지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①FTA 체결을 막고자 하는 단호한 결의와 행동하지만 FTA 체결로 우리가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이 세워지는 것은 아니라는 냉철한 판단입니다. 이를 위해서라도 FTA와 멕시코 사례에 대한 지나친 악마화는 피해야 합니다. 우리는 FTA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FTA를 체결한 나라들의 구체적 사례에 대해 충분히 살펴보고 적절히 인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FTA 그 자체로 한 나라가 '망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 나라 내부에서 계급ㆍ계층에 따른 손익이 갈릴 뿐이죠.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