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지 못한…

자본론 1권 서문 발췌ㆍ요약 본문

마르크스/엥겔스/자본론 요약

자본론 1권 서문 발췌ㆍ요약

때때로 2012. 4. 19. 23:43

마르크스 '자본론 : 정치경제학 비판' 1권 발췌ㆍ요약을 진행합니다. 전공 선생님의 지도 없이 제 자신이 명료하게 이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자본론 1권의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따라서 잘못 이해한 부분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섣부른 현실과의 유비를 피하고 가능하면 마르크스 자신의 언어로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책을 읽어가면서 떠오르는 영감에 흥이 겨워 무모한 시도를 한 부분이 있습니다. 언제나 배우는 자세로 제가 잘못 이해한 것에 대한 지적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습니다. 책은 김수행 교수가 번역한 비봉판을 이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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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판 서문 발췌

“첫부분이 항상 어렵다는 것은 어느 과학에서나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도 제1장, 특히 상품분석이 들어 있는 절을 이해하기가 가장 힘들 것이다. 나는 가치의 실체와 가치량의 분석을 될 수 있는 한 쉽게 했다. 화폐형태로 완성되는 가치형태는 매우 초보적이고 단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지혜는 2000년 이상이나 이 화폐형태를 해명하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한 반면에, 훨씬 더 내용이 풍부하고 복잡한 형태들의 분석에는 적어도 거의 성공했다. 무슨 까닭인가? 발달한 신체는 신체의 세포보다 연구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경제적 형태의 분석에서는 현미경도 시약도 소용이 없고 추상력이 이것들을 대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노동생산물의 상품형태 또는 상품의 가치형태가 경제적 세포형태이다. 겉만 관찰하는 사람에게는 이 형태의 분석은 아주 사소한 것을 늘어놓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사실 그것은 아주 작은 것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 작은 것들은 미생물 해부학이 다루고 있는 그러한 종류의 작은 것이다.”
- 제1판 서문, 3~4쪽

“이 책에서 나의 연구대상은 자본주의적 생산방식 및 그것에 대응하는 생산관계와 교환관계이다. 이 생산양식이 전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나라는 지금까지는 영국이다. 영국이 나의 이론전개에서 주요한 예증으로 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 제1판 서문, 4쪽

“만약 독일의 독자가 누구든지 영국의 공업·농업 노동자들의 형편에 대해 위선적으로 눈살을 찌푸리든가, 독일에서는 사태가 결코 그렇게는 나쁘지 않다고 낙관적으로 자기를 위안하려 한다면, 나는 그에게 “이것은 너를 두고 하는 말이다!”라고 외칠 것이다.”
- 제1판 서문, 4~5쪽

“자본주의적 생산의 자연법칙들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적대관계의 발전정도가 높은가 낮은가는 여기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 법칙들 자체에 있으며, 움직일 수 없는 필연성을 가지고 작용해 관철되는 이 경향들 자체에 있다. 공업이 더 발달한 나라는 덜 발달한 나라에게 후자의 미래상을 보여주고 있을 따름이다.”
- 제1판 서문, 5쪽

“우리나라[독일]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이 완전히 확립되어 있는 곳[예컨대 진정한 공장]에서는, 공장법이라는 규제가 없기 때문에 사태는 영국보다 훨씬 더 나쁘다. ……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에 의해서 뿐 아니라 그 발전의 불완전성에 의해서도 고통을 받고 있다.”
- 제1판 서문, 5쪽

“독일과 서유럽 대륙의 기타 나라들이 사회통계는 영국의 통계에 비하면 형편이 없다. 그렇지만 그 통계는 메두사(Medusa)의 대가리가 보일 만큼은 면사포를 걷어 올려주고 있다.”
- 제1판 서문, 6쪽

“자본가와 지주를 나는 결코 장밋빛으로 아름답게 그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개인들이 문제로 되는 것은 오직 그들이 경제적 범주의 인격화, 일정한 계급관계와 이익의 담지자인 한에서다. 경제적 사회구성의 발전을 자연사적 과정으로 보는 나의 입장에서는, 다른 입장과는 달리, 개인이 이러한 관계들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개인은 주관적으로는 아무리 이러한 관계들을 초월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그것들의 산물이다.”
- 제1판 서문, 6~7쪽

“경제학이 취급하는 문제의 독특한 성격 때문에, 사람의 감정 중에서 가장 맹렬하고 가장 저열하며 가장 추악한 감정-즉 사리사욕(私利私慾)이라는 복수의 여신-이 자유로운 과학적 연구를 저지하는 투쟁 마당에 들어오게 된다.”
- 제1판 서문, 7쪽

“나는 과학적 비판에 근거한 의견이라면 무엇이든 환영한다. 그러나 내가 한 번도 양보한 일이 없는 이른바 여론이라는 편겨에 대해서는 저 위대한 플로렌스사람[단테]의 다음과 같은 말이 항상 변함없이 나의 좌우명이다. “제 갈 길을 가라, 남이야 뭐라든!””
- 제1판 서문, 8쪽


제1판 서문 요약

마르크스는 ‘자본론’이 상품의 분석에서부터 시작하는 이유를 제1판 서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는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노동생산물의 상품형태 또는 상품의 가치형태가 경제적 세포형태”(4쪽)라면서 자신의 연구를 생물학에서의 ‘미생물 해부학’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이 책을 독일의 독자를 위해 독일어로 썼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이론 전개에 필요한 중요한 예증으로 영국의 사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리학자가 “자연과정이 가장 명확한 형태로 나타나며 교란적인 영향을 가장 적게 받는 곳에서 …… 관찰하든가, …… 순수하게 진행될 수 있는 조건 밑에서 실험”을 하듯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전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나라는 …… 영국”(5쪽)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적 발전의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 “움직일 수 없는 필연성을 가지고 작용해 관철되는 이 경향들 자체”(5쪽)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영국에 비해 형편없이 부정확하고 부족한 당시 다른 나라들의 통계를 살피더라도 자본주의 발전 경향의 필연성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본주의의 자연법칙을 발견했다고 해서 현실에 순응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1775년의 미국혁명이 18세기 말 대륙의 부르주아지들에게 영감을 주었듯이, 1861~1865년의 미국 남북전쟁은 대륙의 노동자계급에게도 영감을 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영국에서는 자본주의 발전에 따르는 변혁과정이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죠(마르크스가 말하는 ‘변혁과정’은 아마도 1830대 시작된 차티스트운동과 그 결과인 선거법 개혁을 말하는 듯합니다). 마찬가지로 “대륙에서의 변혁과정은 노동자계급 그 자체의 발전 정도에 따라 더 가혹한 형태를 취하든가 더 인도적인 형태를 취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는 “어떤 국민이든 다른 국민으로부터 배워야 하며, 또 배울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한 사회가 비록 자기 발전의 자연법칙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자연적인 발전단계들을 뛰어넘을 수도 없으며 법령으로 폐지할 수도 없”지만 “그 사회는 그러한 발전의 진통을 단축시키고 경감시킬 수는 있다”(6쪽)고 강조합니다.

마르크스는 자본가와 지주 개인을 “경제적 범주의 인격화, 일정한 계급관계와 이익의 담지자”(6쪽)로서만 다룬다는 것을 지적해둡니다.

마지막으로 경제학이 취급하는 독특한 성격 때문에 “자유로운 과학적 연구”는 투쟁의 장에 들어서게 됐다고 강조합니다. 영국과 미국에서의 지배계급은 “오늘날의 사회가 딱딱한 고체가 아니라 변화할 수 있으며 또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유기체(有機體)”(7쪽)라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그는 여론의 편견에 흔들림 없이 과학적 연구에 기반해 “제 갈 길”을 갈 것이라며 서문을 마무리 합니다.


제2판 후기 발췌

“1848년 이래 자본주의적 생산은 독일에서 급속히 발전했고 현재는 벌써 투기와 협잡이 성행하는 시기에 들어섰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아직도 독일의 경제학 교수들에게 미소를 짓지 않고 있다. 그들이 편견없이 경제학을 연구할 수 있었을 때에는 독일의 현실에 근대적 경제관계가 존재하지 않았고, 이러한 관계가 나타났을 때에는 [부르주아적 시야를 가지면서도 그것을 편견없이 연구하는 것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 환경이 조성되어 버렸던 것이다. 경제학이 부르주아적인 한, 즉 그것이 자본주의제도를 사회적 생산의 하나의 과도적인 역사적 발전단계로 보지 않고 사회적 생산의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형태로 보는 한, 부르주아 경제학은 계급투쟁이 아직 잠재적 상태에 있거나 오직 고립적이고 불규칙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는 동안만 과학으로 존속할 수 있다.”
- 제2판 후기, 11쪽

“1830년에는 최종적인 결정적 위기가 닥쳐왔다.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부르주아지가 정권을 쟁취했다. 이 순간부터 계급투쟁은 실천과 이론 모두에서 더욱더 공개적이고 위협적인 형태를 취했다. 그와 더불어 과학적인 부르주아 경제학은 조종을 울렸다. 그 뒤부터는 벌써 어떤 이론이 옳은가 옳지 않은가가 문제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자본에 유리한가 불리한가, 편리한가 불편한가, 정치적으로 위험한가 아닌가가 문제로 되었다.”
- 제2판 후기, 12쪽

“마르크스에게 중요한 것은 …… 현상들을 지배하는 법칙만이 아니다. 그에게 더 중요한 것은 현상들의 변화의 법칙, 현상들의 발전의 법칙, 즉 한 형태로부터 다른 형태로의 이행의 법칙, 상호관계의 한 질서로부터 다른 질서로의 이행의 법칙이다. …… 사람들이 이 필연성을 믿든 안 믿든,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전혀 상관이 없다. …… 조사의 출발점으로 될 수 있는 것은 관념이 아니고 오직 외부현상이다. …… 조사에서 중요한 것은 …… 사실을 가능한 한 정확하게 탐구하고 실제로 그것들이 발전의 상이한 계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는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상이한 발전단계를 표현하는 일련의 순서·순차성·관련성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것이다. …… 현재에 적용되든 과거에 적용되든 동일[한] …… 추상적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반대로 각각의 역사적 시기는 자기 자신의 법칙을 가지고 있다…경제생활이 일정한 발전시기를 경과해 일정한 단계로부터 다른 단계로 이행하자마자, 경제생활은 다른 법칙에 의해 지배받기 시작한다. …… 마르크스는 예컨대 인구법칙이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동일하다는 것을 부인한다. 그는 반대로 각각의 발전단계는 자기 자신의 인구법칙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 이와 같은 연구의 과학적 가치는 일정한 사회유기체의 발생·생존·발전·사멸과 더 높은 다른 사회유기체에 의한 교체를 규제하는 특수법칙들을 해명하는 데 있다.”
- 제2판 후기, 16~18쪽

“물론 발표 방법은 형식의 면에서 조사 방법과 다르지 않을 수 없다. 조사는 마땅히 세밀하게 소재(素材: material)를 파악하고, 소재의 상이한 발전형태들을 분석하고, 이 형태들의 내적 관련을 구명해야 한다. 이 조사가 끝난 뒤에라야 비로소 현실의 운동을 적절하게 발표할 수 있다. 조사가 잘 되어 소재의 일생이 관념에 반영된다면, 우리가 마치 선험적인 논리구성을 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 제2판 후기, 18쪽

“변증법은 그 합리적인 형태에서는 부르주아지와 그 이론적 대변자들에게 분노와 공포를 줄 뿐이다. 왜냐하면, 변증법은 현존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의 부정[즉, 그것의 불가피한 파멸]을 인정하기 때문이며, 또 변증법은 역사적으로 전개되는 모든 형태들을 유동상태·운동상태에 있다고 가주함으로써 그것들의 일시적 측면을 동시에 파악하기 때문이며, 또한 변증법은 본질상 비판적·혁명적이어서 어떤 것에 의해서도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 제2판 후기, 19쪽


제2판 후기 요약

마르크스는 제1판에서 무엇을 변경했는지 후기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이어 독일 노동자계급 사이에서 자신의 이론이 급속히 흡수되는 데 반해 독일의 부르주아 경제학이 독창적인 발전이 불가능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들이 편견없이 경제학을 연구할 수 있었을 때에는 독일의 현실에 근대적 경제관계가 존재하지 않았고, 이러한 관계가 나타났을 때에는 [부르주아적 시야를 가지면서도 그것을 편견없이 연구하는 것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 환경이 조성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11쪽). 이는 제1판 서문에서 경제에 대한 “자유로운 과학적 연구” 자체가 투쟁의 마당에 들어왔다는 설명과 이어지는 분석입니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부르주아적 시야의 한계를 영국에서의 경제학 발전 과정을 예로 들며 설명합니다. 1830년대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자본주의 발전이 본격화되었고(1925년 산업공황의 첫 발발) “부르주아지는 정권을 쟁취”했습니다. 따라서 그 때부터 경제학의 핵심 문제는 “자본에 유리한가 불리한가, 편리한가 불편한가, 정치적으로 위험한가 아닌가”(12쪽)가 되었다는 것이죠. 결국 부르주아 경제학은 이후 “총명한 실무가”의 길을 걷거나 존 스튜어트 밀의 뒤를 따라 “천박한 절충주의”의 길을 따르게 됩니다.

이어 그는 독일 부르주아의 묵살과 무시에도 불구하고 ‘자본론’과 그 이론이 성공하고 있음을 주장합니다. 한편 파리에서는 그의 이론이 ‘형이상학적’이며 ‘사실의 비판적 분석’에만 머물고 있다는 모순적인 비난을 받고 있다고 지적하며, 그에 대한 대답으로 러시아의 지베르 교수의 답변을 제시합니다. 또한 마르크스는 ‘헤겔식 궤변’이라고 비난한 카우프만의 논문을 발췌해 “나 자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아주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그것이 바로 “변증법적 방법”이라고 되받아치기도 합니다(16~18쪽).

덧붙여 그는 자신의 변증법적 방법이 헤겔과 다를 뿐 아니라 정반대임을 설명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변증법의 핵심을 설명한 것은 헤겔임을 강조하며 자신을 “이 위대한 사상가의 제자라고 공언하고 가치론에 관한 장에서 군데군데 헤겔의 특유한 표현방식을 흉내내기까지 했다”며 1장에 표현방식에 대해 설명합니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에서 “신비로운 껍질 속에 들어 있는 합리적인 알맹이를 찾아”내 바로 세우는 것의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왜냐면 “변증법은 현존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의 부정[즉, 그것의 불가피한 파멸]을 인정하기 때문이며, 또 변증법은 역사적으로 전개되는 모든 형태들을 유동상태·운동상태에 있다고 가주함으로써 그것들의 일시적 측면을 동시에 파악하기 때문이며, 또한 변증법은 본질상 비판적·혁명적이어서 어떤 것에 의해서도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이죠(19쪽).

한편 “산업활동의 주기적 순환”이 본격화되면서 “신성 프러시아-독일제국의 졸부들의 머리 속까지 변증법을 새겨넣을 것”이라고 말합니다(20쪽).


프랑스어판 서문·후기 발췌

“학문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오직 피로를 두려워하지 않고 학문의 가파른 오솔길을 기어 올라가는 사람만이 학문의 빛나는 정상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 프랑스어판 서문, 21쪽

“이 프랑스어판에 어떤 문장상의 결함이 있다 하더라도, 프랑스어판은 원본과는 독립적인 과학적 가치를 가지므로 독일어판을 읽은 독자들도 이 프랑스어판을 참조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 프랑스어판 후기, 22쪽

제3판 서문 요약

제3판은 엥겔스의 책임 하에 출간됐습니다. 1883년 3월 14일 마르크스가 세상을 떴기 때문입니다. 엥겔스는 제3판 서문에서 편집 원칙을 밝힙니다. 이와 함께 마르크스의 인용 방식에 대한 비난에 답합니다.


영어판 서문 요약

제3판 서문에서와 마찬가지로 엥겔스는 영어판의 번역작업, 편집 원칙을 설명합니다. 또한 엥겔스는 마르크스가 사용한 용어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덧붙입니다. “경제학은 일반적으로 상공업계의 용어들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 사용하는 것에 만족해 왔는데 경제학은 그렇게 함으로써 그 용어들이 표현하는 관념들의 좁은 범위 안에 자신을 국한시키고 있다”(29쪽)며 마르크스의 용어가 일상생활과는 물론 경제학에서의 용어와도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이어 그는 제3판에서와 마찬가지로 마르크스 인용의 두 가지 방식(예증, 혹은 이론의 발전 관계를 표현)을 다시 언급하며, 마르크스가 인용의 주장을 마르크스가 인정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음을 강조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본론’이 유럽에서 ‘노동자계급의 성경’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다가올 변혁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마르크스는] 전 생애에 걸쳐 영국의 경제사와 경제사정을 연구한 뒤 자기의 전체 이론을 수립했고, 이 연구에 의거해 적어도 유럽에서는 영국만이 전적으로 평화적·합법적 수단에 의해 필연적인 사회혁명을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영국의 지배계급들이 ‘노예제도를 옹호하는 반란’ 없이 이 평화적·합법적 혁명에 굴복하리라고는 거의 기대할 수 없다고 첨언하는 것을 결코 잊지 않았다.”(31~32쪽)


제4판 서문 요약

엥겔스는 제4판의 편집원칙을 설명합니다. 이와 함께 마르크스의 인용의 정확성에 대한 그의 생존 당시로부터의 비난과 논쟁(?)에 대해 설명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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