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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한 마르크스의 생애

때때로 2012. 5. 5. 21:40

오늘(5월 5일)은 마르크스가 태어난 날입니다. 어쩌다보니 오늘 한 독서모임에서 류동민 교수가 쓴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를 읽고 얘기를 나눴습니다. 기왕 얘기가 나온 김에 마르크스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 제가 아는 한에서 간단하게 끄적거려 봅니다.


1882년 병으로 머리카락과 수염을 자르기 전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 알제리에서 머리카락을 모두 자른 마르크스는 1882년 4월 28일 엥겔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내 예언자의 턱수염과 왕관처럼 머리를 덮었던 영광을 없애버렸네."


마르크스는 1818년 5월 5일 독일의 트리어 지방에서 태어납니다. 마르크스는 개종한 유대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유대인임을 밝힌 바는 없습니다. 이사야 벌린의 '칼 마르크스: 그의 생애와 시대'에 따르면 자신의 유대인 혈통에 저주에 가까운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고는 합니다.

당시 독일은 영방국가들로 이뤄져, 아직 프랑스나 영국과 같은 전국적인 통일된 정치체제가 만들어지지 않았었죠. 영방국가 체제에서 산업의 발전은 여전히 제약받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독일이 프랑스와 영국에서와 같은 발전을 빗겨갈 수는 없었습니다. 더디지만 산업은 성장하고 있었고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 또한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특히 헤겔의 영향을 받은 이들 중 일부는 교회와 권위주의적 국가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헤겔 좌파, 흔히 '청년헤겔파'라고 부르죠. 헤겔과 동시대의 지성 다수가 그러했 듯이 헤겔도 젊은 시절 프랑스 혁명에 강하게 열광했죠. 노년의 헤겔이 프로이센과 구체제를 옹호하는 철학자로 몰렸던 것과 달리 그의 철학은 혁명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많은 부분을 담고 있었습니다. 청년헤겔파는 헤겔을 급진적으로 해석하며 좌파로서 교회와 구체제를 비판했죠.

고향을 떠나 본에서 법학을 전공하게 된 마르크스는 곧 자신의 전공을 철학으로 바꾸고 베를린으로 학교를 옮깁니다. 마르크스 또한 청년헤겔파와 교류합니다. 이미 대학에서 급진주의가 힘을 잃어가던 시기, 마르크스는 학교에 자리 잡지 못하고 '라인신문'의 편집장으로 첫 정치 생활을 시작합니다. 라인신문은 자유주의적 좌파로서 명성을 떨치게 됩니다. 국가의 검열을 피한 마르크스의 신랄한 비판 덕이죠. 이 시기 마르크스는 처음으로 인간의 물질적 생활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평생의 친구인 엥겔스를 만난 것도 라인신문 시절입니다. 마르크스는 이 시기 아직 공산주의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공산주의자들에 대해 비판적이었죠. 그가 공산주의자로 변하는 것은 탄압 때문에 라인신문이 폐간되고 파리로 간 이후입니다.

파리에서 그는 당대의 여러 혁명가들과 교류합니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엥겔스겠죠. 파리에서 다양한 공산주의ㆍ사회주의 흐름을 검토한 그는 이 시기 헤겔과 자신의 관계를 정리하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공산주의자가 됩니다. 물론 그는 이후에도 자신이 헤겔의 제자임을 결코 숨기지 않았고, 그의 여러 저작들에는 헤겔적 방법이 중요하게 사용됩니다. 파리에서도 결코 혁명 활동을 중단하지 않고 '독불연보'를 통해 독일 상황에 영향을 미치고자 노력합니다. 이 독불연보에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이 실리죠. 마르크스는 파리에서도 추방돼 브뤼셀로 자리를 옮깁니다.

브뤼셀에서 마르크스는 독일 노동자 조직인 '공산주의자 동맹'의 의뢰로 '공산당 선언'을 씁니다. 이 선언은 1848년 2월에 처음 출간됩니다. 선언 출간 후 곧 1848년 혁명의 서막이 프랑스에서 열립니다. 브뤼셀에서도 쫓겨난 마르크스는 다시 파리로 갑니다. 프랑스 혁명의 불꽃이 독일로 옮겨붙자 마르크스는 다시 쾰른으로 돌아가 '신라인신문'을 창간합니다. 당시 독일 공산주의자들이 부르주아지와의 동맹을 거부했던 것과 달리 마르크스는 이번 혁명에서 부르주아지와의 동맹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합니다. 물론 이후에는 부르주아지와 노동자의 동맹을 주장하지 않죠. 하지만 당시의 정치적 태도는 정치에 대한 그의 기본적 입장을 보여줍니다. 때론 불가피한 동맹을 통해서라도 정치적 개입을 유지하지 않는다면 노동자 계급은 정치적으로 타 계급에게 종속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신랄한 어조로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을 비판하지만 공산주의자들이 노동자 계급의 정당과 별개의 정당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이후 제1인터내셔널에서도 그러한 동맹과 협력을 결코 피하지 않습니다. 상황이 바뀌었을 때 과감히 관계를 청산하는 것 또한 그의 정치개입이 가지는 특징입니다.

독일에서의 혁명은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다 결국 패배로 끝납니다. 마르크스의 신라인신문 또한 폐간되죠. 신라인신문 마지막 호는 붉은색 잉크로 인쇄됐다고 합니다. 혁명의 물결이 지나간 후 그는 다시 여러 국가들에서 쫓겨나 당시 가장 자유주의적인 국가인 영국으로 건너갑니다. 이후 그는 죽을 때까지 런던에 머물죠.

런던에서의 첫 10년은 그의 가장 고통스러운 시절이었습니다. 가난과 질병은 그의 아이들 목숨을 앗아갔죠. 상황 때문에 정치 활동을 계속할 수 없었던 그는 대영 박물관에서 그의 필생의 역작인 '자본론' 저술 작업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자본론은 20여년이 지난 1867년에야 발간됩니다. 마르크스는 생계를 위해 뉴욕 트리뷴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잘 모르거나 관심 없는 주제에 관한 의뢰는 엥겔스에게 맡기기도 했죠. 물론 기사는 '마르크스' 이름으로 나갔고, 고료도 마르크스에게 돌아갔죠. 마르크스를 따라 영국에 자리잡은 엥겔스는 멘체스터에 방직공장을 운영합니다. 당시엔 아직 수입이 많지 않아 그도 마르크스의 빈곤한 상황의 개선에 큰 도움이 되진 못했습니다. 그저 기꺼이 마르크스를 대신해 뉴욕 트리뷴 기사를 써주긴 했습니다.

1857년의 공황에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기대했던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유럽에서의 자본주의 발전은 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합니다. 1864년 런던에서 제1인터내셔널(국제노동자협회)이 출범합니다. 제1인터내셔널은 제2인터내셔널이나 제3인터내셔널처럼 단일한 정치를 지닌 정치집단은 아니었습니다. 프랑스와 남부 유럽의 아나키즘적 경향, 영국의 노동조합주의, 독일의 라쌀레주의가 혼재한 상황이었죠. 그러함에도 마르크스는 대단한 카리스마와 술수로 제1인터내셔널을 최대한 자신의 의도와 전략대로 운영합니다. 바쿠닌과의 갈등은 심각한 상황을 불러올 수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1870년까지는 잠재적이었습니다.

보불전쟁(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 발발은 인터내셔널에게 결정적 상황을 맞게 합니다. 프로이센의 점령 하에서 우유부단한 부르주아지의 대응(나폴레옹 황제는 이미 프로이센 황제의 포로가 된 상황)에 분노한 파리의 상퀼로트는 봉기합니다. 1871년 파리코뮌이 바로 그것입니다. 파리코뮌의 성립 전까지 마르크스는 준비되지 않은 봉기를 반대하며, 공산주의자들은 대중을 최대한 자제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파리코뮌이 만들어지고 잔인하게 탄압받자 그는 가장 앞에서 파리코뮌을 방어합니다. 당대사의 모범으로 받아들여지는 '프랑스 내전'은 바로 이 과정에서 쓰여집니다. 이 책은 1848년 혁명을 다룬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과 함께 '프랑스 혁명사 3부작'으로 불립니다.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으로 불리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파리코뮌으로부터 그 구체적 상을 얻습니다. 노동자 계급의 평균적 임금을 받는 언제나 소환 가능한 대표, 입법과 행정의 통일 등은 이후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핵심으로 자리잡습니다.

파리코뮌의 진압 후 인터내셔널은 그 배후로 지목됩니다. 물론 사실과는 다르죠. 파리코뮌에는 공산주의자들 뿐 아니라 자코뱅주의자, 프루동주의자, 블랑키주의자들 그야말로 다양한 경향들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어쨌든 파리코뮌 이후 이러저러한 상황으로 마르크스는 인터내셔널의 해산해야 겠다고 마음 먹습니다. 바쿠닌과의 갈등도 더 이상 참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마르크스는 인터내셔널 총평의회를 미국으로 옮김으로써 자신의 계획을 실현합니다. 공식적 해산은 더 이후지만 1872년 미국으로의 이전으로 실질적인 해산이 됐다고 봐야죠.

인터내셔널 해산으로 마르크스의 공식적인 정치활동은 마무리됩니다. 물론 이후 독일사회민주당이 성장하면서 그의 추종자들에 대한 충고와 의견교환은 계속됩니다. 1875년 라쌀레의 추종자들과의 통합을 통해 만들어진 독일사민당을 마르크스주의 정당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고타에서 만들어진 강령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강력한 비판을 받죠. 그 서한은 '고타 강령 비판'이라고 불리며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에 대한 유명한 정식, '각자의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다'가 나옵니다.

말년의 마르크스는 런던 망명 초기보다 생활이 한결 나아졌지만 그 시절의 가난은 그의 건강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겨놓았습니다. 당대의 사람들에 비해 짧게 산 것은 아니지만 그는 각종 질병으로 고통받았죠. 결국 1883년 마르크스는 런던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지금 그는 하이게이트 묘지에 묻혀있습니다.

200년 전에 태어난, 150여년 전 사람의 글과 지혜를 우리가 참조할 필요가 있는가? 자주 받는 질문입니다. 우선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공자는 그보다 더 오래전 사람이지만 그들의 지혜는 인류의 유산으로 우리에게 여전히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고 말하게 됩니다. 마르크스도 마찬가지라는 것이죠. 특히 현대 사회과학의 방법에 그가 미친 영향은 결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 이사야 벌린도 인정하는 바입니다. 둘째로 그가 자본론을 쓰던 시절, 영국과 몇몇 국가에서나 그 발전의 초기 상태를 보여주던 자본주의는 지금에 와서 지구 전체를 뒤덮으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그가 분석했던 자본주의적 생산의 자기파괴적 방식에 의해 지구와 인류의 생활이 지배받고 있습니다. 체제를 옹호하는 언론과 지식인들조차 위기가 반복될 때면 마르크스의 귀환을 목소리 높여 외치곤 합니다.

당연히 그의 글이 현대사회 문제의 해결책을 담고 있진 않습니다. 마르크스의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인 접근법은 그의 어떤 글에서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진 않습니다. 소련 공식철학자들의 '변증법적 유물론' '역사적 유물론' 체계와 달리, 마르크스의 방법은 어떤 상황의 변수만 주어지면 이를 대입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방정식이 아닙니다. 그가 '자본론'의 기본적 개념들을 1840년대 이미 갖고 있었지만 '자본론'으로 묶어내기 위해 무려 20년 가까이 영국 대영박물관의 열람실에서 현실의 증거들을 찾은 데서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그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도 파리코뮌이라는 현실의 운동으로부터 이끌어내진 것이죠. 타협하지 않는 냉철한 지성은 현실에 대한 치밀한 탐구로부터 비롯합니다.

2008년 금융위기는 잠시 진정되는 듯 싶었습니다. 국가 부문으로 전가된 부채는 체제 전체를 더 위험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그 첫 희생자는 남부 유럽입니다. 위기가 언제나 혁명적 상황으로 이어지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 체제에 대한 의문은 점차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비록 자살이라는 개인적 절망의 형태일지라도 말이죠. 이러한 개인적 절망은 집단적 저항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마르크스의 지혜는 집단적 저항을 만들기 위한 유용한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보다 많은 분들이 마르크스를 만나고 그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볼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마르크스주의를 만날 수 있는 비교적 짧고 이해하기 쉬운 몇몇 추천도서를 아래 붙입니다.

마르크스주의 개관
마르크스 사용 설명서|다니엘 벤사이드 지음|양영란 옮김|에코리브르
칼 맑스의 혁명적 사상|알렉스 캘리니코스 지음|정성진, 정진상 옮김|책갈피

마르크스의 생애
마르크스 평전|프랜시스 윈 지음|정영목 옮김|푸른숲
칼 마르크스 : 그의 생애와 시대|이사야 벌린 지음|안규남 옮김|미다스북스

주요 저서 1 : 마르크스주의의 요체
공산당 선언|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강유원 옮김|이론과실천
공상에서 과학으로|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나상민 옮김|새날

주요 저서 2 :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임금 노동과 자본|칼 마르크스 지음|김태호 옮김|박종철출판사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칼 마르크스 지음|김호균 옮김|중원문화

주요 저서 3 : 마르크스의 역사·정치 이론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칼 마르크스 지음|최형익 옮김|비르투
프랑스 내전|칼 마르크스 지음|안효상 옮김|박종철출판사

주요 저서 4 : 마르크스의 철학
헤겔 법철학 비판|칼 마르크스 지음|강유원 옮김|이론과실천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강유원 옮김|이론과실천

다큐멘터리 '칼 맑스'(2010년 12월 ZDF 방영, 찬별님 자막ㆍ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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