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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피라미드 세계 … 워크 WORK 본문

우리가 사는 피라미드 세계 … 워크 WORK

때때로 2012. 6. 21. 11:11

워크 WORK: 열심히 일하면 어디까지 올라갈까
CrimethInc. 지음|박준호 옮김|마티

자본주의적 혁신은 어제까지 최신이었던 기술을 오늘 낡은 과거의 기술로 만들어버립니다.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격찬했던 부르주아지의 혁명적 역할은 오늘날까지도 그 기세가 약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더 빨라졌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생산과 생활에 필요한 각종 기술의 개발과 보급은 우리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여겨지곤 합니다. 그러나 실제 우리의 삶은 어떨까요. 예를 들어 세탁기ㆍ청소기ㆍ전자레인지ㆍ식기세척기 등 주방의 혁명적 변화를 이끈 전자제품들은 여성을 가사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라고 기대됐습니다. 현실은 그 기대와 다릅니다. 새롭게 쏟아지는 주방기기를 작동시켜야 하고, 사용법을 익혀야 합니다. 과거의 주방에서 필요치 않았던 활동이 최신식 가전기기로 무장한 주방에서 요구됩니다.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100년 전과 비교했을 때 큰 차이 없다고 합니다. 게다가 현대 여성은 매일 쏟아져나오는 신제품 주방기기를 구입하기 위해 직장에 나가 돈을 벌 것을 요구받기까지 합니다.

물론 붉은 마르크스 박사는 이러한 경향을 자본주의적 경제법칙 자체로부터 추측했습니다. 노동생산성의 향상은 자본주의적 생산이 지배적인 사회에서 노동시간의 단축이 아닌 노동강도의 강화, 노동시간의 연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죠. 그리고 그 주장은 현실에서 사실로 입증되고 있습니다.

'워크 WORK(CrimethInc. 지음|박준호 옮김|마티)'는 마르크스 박사의 주장을 따르진 않지만 바로 위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책입니다. 우리는 더 많이 일하고, 더 열심히 일하고, 심지어 집에서조차 내일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자기계발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미래를 더 풍족하게 해줄 것으로 기대되는 땀방울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흘릴 것이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요? 최근 한 베스트셀러의 제목처럼 '긍정의 배신'만을 되풀이해 맛볼 뿐입니다.

끊임없는 배신을 맛보면서도 우리가 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다며 하는 노동이 바로 자본주의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지적합니다. 우리가 노동을 중단하면 자본주의는 더이상 지탱될 수 없다는 것이죠. 물론 그것이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닙니다. 우선 우리는 우리의 노동이 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밝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 사회를 바꾸는 방법에 관한 힌트를 제공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워크 WORK'는 우리에게 노동을 통해 계급을 환기시켜줍니다. 세계의 수평적 분할(너희 나라와 우리나라, 여성과 남성, 흑인과 백인 …)이 아닌 수직적 분할, 즉 계급적 갈등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옳게 강조합니다. 따라서 좌파들을 오랫동안 무기력증에 빠지게 했던 '정체성 정치'와 같은 것들에 비판적이죠.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치인, 예를 들면 오바마와 같은 이들을 지지하는 것과 같은 활동도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워크 WORK'는 더 나아가 권력은 결코 자본주의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정치와 조직에 대한 근본적인 부정에서 이 책이 아나키즘의 전통을 따름이 드러납니다.

분명히 개인적 일탈에 불과한 개별행동보다는 집단적 저항을 강조하고 있는 이 책이 여전히 개인적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어쩔 수 없이' 일터에 나가는 이들, 못미덥지만 '현실적'으로 보이는 개혁 정치인을 지지하는 이들, 자기 집단의 이익에만 철저해보이는 노동조합에 자신의 월급줄을 거는 이들을 이해하지 않고 집단적 저항이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이 책이 잘 지적하고 있듯이 혼자서 일을 중단한다고 해서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단 하루를 하더라도 함께 해야지 잠시라도 자본주의를 중단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편견과 합리화의 숲을 헤치고 사람들을 모아내야 합니다. 단순히 "네 대안은 근본적이지 않고 적절하지도 않아"라고 부정한다고 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죠. 그러한 내용을 담은 책은 피라미드를 쌓고도 남을 것입니다.

물론 '워크 WORK'는 우리가 무시해버리기 쉬운 저항을 재발견해 그것을 집단적 행동의 기초로 삼고자 합니다. 도덕적으로 비난받기 일쑤인 절도에 저항적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 시도는 대표적입니다. 그렇다고 절도를 우리의 대안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 이러한 사려깊음이 노동조합과 정당, 집단적 저항의 오래된 전통에 대해서는 발휘되지 않는 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이 책은 CrimethInc.(링크)라는 아나키스트 노동자 공동체의 공동 활동 산물입니다. 이 책을 쓴 이들은 카페의 비정규직 바리스타이기도 하고 피자 배달부이기도 합니다. 또는 회사에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업무를 담당하던 화이트칼라 노동자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삶과 활동을 고백한 저항의 연애편지가 바로 '워크 WORK'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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