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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시간 660㎞ … 별이 뜨지 않은 밤바다 본문

기록/기억

13시간 660㎞ … 별이 뜨지 않은 밤바다

때때로 2012. 7. 8. 20:00

어제(7일)는 운전면허를 딴 후 가장 긴 거리를 자동차로 운전해 갔다왔습니다. 딱히 계획도 없이 동해바다를 봐야겠다는 마음에 카메라만 달랑 들고 차에 올랐지요.

호법분기점에서 영동고속도로에 접어든 직후 잠깐 막힌 걸 제외하고는 수월하게 갔습니다. 아직 본격적인 휴가철이 아니기 때문에 덜 막힌 것 같습니다. 중부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36번 국도를 거쳐서 향한 곳은 울진의 망양해수욕장입니다.

비교적 최근에 개통한 중앙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리다 단양휴게소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영주에서 36번 국도에 들어설 계획이라 이보다 더 가면 마땅히 쉴 곳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단양휴게소는 고속도로에서 바짝 붙어있지 않았습니다. 진입로로 한 5분 정도 더 올라가야 휴게소가 나옵니다. 처음 가본 단양휴게소는 삭막한 고속도로에 허파와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산꼭대기에 있어 전망도 좋고 사람도 많지 않아 정말 '쉬는' 맛이 나더군요. 휴게소 매점 뒷편의 공간도 아기자기하니 예쁜 공원으로 꾸며놓았습니다.





울진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15년여 전 기억 때문입니다. 여름방학 농활을 봉화에서 한 동아리는 농활MT를 울진 망양해수욕장으로 갔습니다. 동해에 위치한 해수욕장이지만 모래사장의 경사가 급하지 않아 놀기 좋았던 기억도 있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았던 것은 봉화에서 울진으로 가던 그 길이었죠. 봉화에서 울진으로 이어지는 36번 국도는 불영사 계곡으로도 유명하지만 꼭 그 계곡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그 어떤 곳보다 빼어난 풍경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오후 2시께 출발했기에 오후 6시가 다 돼서야 36번 국도에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깊은 산길이라 해가 일찍 지고 있더군요. 산등성이로 넘어가는 해를 보니 운전을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특별한 바위와 물길이 있지는 않았지만 지는 해가 아쉬워 잠시 멈췄다 출발했습니다.





이 36번 국도에서 혼자 운전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더군요. 길이 험난해서라기보다 주변의 풍광이 너무 매력적이라 차를 멈추고 싶다는 충동이 수시로 일기 때문입니다. 산이 많기에 계곡도 많은 우리나라지만 이런 풍경이 그리 흔치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특히 불영사 계곡이라고 표시된 곳은 들어서자마자 숨이 턱 막힐정도의 모습으로 제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어떤 곳에서 또 이런 모습을 만날 수 있을까요. 이미 해가 산 너머로 지고 있는 상황이라 이 모습을 차분히 더 감상할 수 없다는 게 너무 아쉽더군요. 그러나 불영계곡을 제외한 36번 국도 주변 곳곳에는 공사가 한창입니다. 자동차 전용도로 공사장과 산사태를 예방한다는 명목으로 도로 주변의 드러난 바위에 축대를 쌓는 현장이 계속 이어집니다. 많이 아쉽죠. 물론 시원하게 뚫린 도로 덕분에 편하게 이곳까지 달려왔지만 제가 달린 그 도로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파괴하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36번 국도에서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달려 망양해수욕장에 도착한 것은 저녁 8시가 다 돼서였습니다. 이미 해가 졌기에 바다의 모습을 제대로 보긴 어려웠습니다. 구름도 많이 껴 별도 뜨지 않은 밤바다는 무섭더군요. 파도소리와 끝이 안보이는 어둠 만이 이 곳이 바다임을 알려줬습니다. 멀리 떨어진 울진 시내의 희미한 불빛을 사진에 담은 것은 바다의 어둠이 너무 깊어 카메라에 다 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녁식사 시간이 약간 지난지라 우선 식당에서 특미횟밥을 주문해 먹었습니다. 아무래도 혼자 여행을 다니다보면 먹을 게 가장 큰 문제더군요. 물론 어디든 가서 뭘 못먹으랴만은 혼자기 때문에 먹고 싶은 메뉴를 마음대로 주문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죠. 그래서 주문한 것이 특미횟밥입니다. 맛있게 먹었지만 이번 식사 역시 경상도 음식에 대한 제 편견만 강해진 것 같습니다. 횟감은 좋은 것 같지만 비비라고 나온 밥은 떡져 있었고 함께 나온 매운탕은 고춧가루 맛이 음식에 어울리지 않고 따로 놀더군요.





특미횟밥을 먹고 잠시 파도소리를 듣다가 바로 강릉으로 출발했습니다. 동해바다 하면 강릉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죠. 딱히 강릉에서 뭘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7번 국도를 한번 달려보고 싶다는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자동차 전용도로로 변신한 7번 국도는 예전의 그 매력을 많이 잃었더군요. 물론 자동차들은 시원하게 달리더군요.





안목해수욕장은 최근 카페거리로 이름을 얻고 있습니다. 매력적인 카페 몇몇이 보였지만 다수는 프랜차이즈 카페입니다. 구름이 많아 별도 뜨지 않은 밤바다에 프랜차이즈 카페와 횟집, 민박집의 간판 불빛이 가득합니다.







시간은 어느새 11시. 서울로 출발하기 위해 간단한 요깃거리와 음료수를 사들고 차로 갔습니다. 문득 하늘을 올려보니 이그러진 달이 고고하게 밤바다를 밝히더군요. 바로 카메라를 꺼내들고 부두로 향했습니다. 마침 부둣가에 머물던 작은 배 하나가 달과 함께 멋진 장면을 연출하더군요.

잠시 더 달을 보다 12시가 다 돼서야 서울로 출발했습니다. 서울에 도착한 것은 새벽 3시. 전날 오후 2시에 출발했으니 13시간 가까이 운전한 것이죠. 갑갑한 마음에 출발한 '드라이브'가 의외로 긴 여행이 됐지요. 모두 달린 거리는 660㎞. 비록 운전하는 데 급급해 제대로 된 휴식은 되지 못했지만 약간은 여유를 찾게 해준 주말여행이었습니다. 다음 여행은 좀 더 여유롭게 일정을 잡고 떠나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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