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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간략한 역사> - 데이비드 하비 / 최병두
신자유주의 사상의 창시적 인물들은 인간의 존엄성과 개인의 자유에 관한 정치적 이상을 근본적인 것, 즉 '문명의 핵심 가치들'로 설정했다. 이 가치들은 감동적이고 매력적인 이상이기에 그들의 선택은 현명했다. 그들은 이렇나 가치들이 파시즘, 독재정권, 공산주의뿐만 아니라 선택의 자유를 가지는 개인의 판단을 집단적 판단으로 대체하려는 국가 개입의 모든 형태들에 의해 위협받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 제1장/21

'자유주의는 진보적일 수 있는가'의 필자들은 진보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신자유주의)는 다른 것이라고 단호히 말합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주창자들도 진보적 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존엄성'과 '개인의 자유'를 정치적 이상으로 제시하고 있죠.

 

미국 전통에 오랜 뿌리를 두고 있는 자유의 사고는 최근 미국에서 탁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9ㆍ11사태가 일어나자마자 이를 자유에 대한 공격이라고 해석했다. ……

이라크에 대해 선제 전쟁을 치르게 된 다른 모든 이유들이 입증되어야 하는데도, 부시 미 대통령은 이라크에 자유를 부여하는 그 자체가 전쟁을 적절하게 정당화해준다는 사고에 호소했다. …… 그러나 문제는 어떤 종류의 '자유'가 선사되는가이다.

- 제1장/22

자유의 이상은 모두에게 똑같은 것을 의미할까요? 하비는 최근 '자유'가 가장 높이 천명되었던 세계적 사건인 미국의 이라크 침략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부시 대통령은 무엇보다 자유를 앞세워 이라크를 침략했으니까요(심지어 파가니스탄에서의 작전명은 '항구적 자유'기도 합니다). 부시가 천명한 '자유'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 계속 살펴보죠.

 

이 의문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답변은 2003년 9월 19일에 구체화되었다. 이 날 연합 임시정부의 대표, 브리머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규정들을 공포했는데, 여기에는 "공적 기업의 완전한 민영화, 이라크에서 경영하는 외국 기업들의 완전한 소유권, 외국 이윤의 완전한 송금, …… 이라크 은행의 외국 통제에 대한 개방, 외국 회사들을 위한 국가적 대우, 그리고 … 거의 모든 무역장벽의 제거"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 모든 영역에 응용되었다. 석유만이 유일한 예외였다. 다른 한편 노동시장은 엄격하게 규제되었다. - 제1장/22~23

노동자의 자유가 아닌 것 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기간산업에서 파업의 금지는 물론 노조 결성도 제한됐으니까요. 너무나 분명하게도 '외국 기업'이 이라크에서 사업을 벌여 이윤을 본사로 이전할 거의 완벽한 자유를 천명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시장과 무역의 자유가 부를 증진시킬 뿐 아니라 국민의 복지와 개인의 자유 확대를 보장한다고 주장합니다. 미국의 침략 후 이라크에서 세워진 국가는 바로 이와 같은 미국의 오래된 이상을 구현한 것이죠. 하비는 이러한 국가를 '신자유주의적 국가'로 부르자고 제안합니다.

 

신자유주의적 국가 구성의 첫 실험은 이라크로부터 30여년 전인 1973년 9월 11일 미국의 후원을 받은 피노체트의 쿠데타 이후 이뤄졌습니다.

(※ 피노체트 쿠데타에 대해서는 '기억하라, 우리가 이곳에 있음을'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이 책에 대한 소개는 제 블로그 글http://babodool.tistory.com/129을 읽어보세요.)

 

시카고 대학에서 밀턴 프리드먼의 지도를 받은 일군의 경제학자들이 있었죠. 미국 정부는 남미의 좌파적 경향을 견제하기 위해 칠레 경제학자의 교육을 재정적으로 지원했습니다. 칠레의 기업가들은 시카고에서 돌아온 이들을 후원하며 반 아옌데 운동을 지원했죠. 피노체트는 집권 후 신자유주의를 신봉하고 시카고 대학에서 공부한 이 경제학자들을 정부로 끌어들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이론에 따라 경제를 재구조화했다. 국유화를 역전시키고, 공공 자산들을 민영화했으며, 규제되지 않은 민간의 (대개 원주민들의 권리를 짓밟으며 자행되었던) 자연 자원 활용을 허용했고 사회보장을 민영화했으며 해외직접투자와 자유무역을 장려했다. 외국 회사들은 그들의 칠레 기업들로부터 이윤을 송금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았다. - 제1장/25

2003년 이라크에서 미국에 의해 직접 이뤄졌던 작업이 1973년 칠레에서는 미국에서 교육받은 칠레인에 의해 이뤄지네요. 그러나 그 내용은 대동소이 합니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죠. 잠시 좋아지는 듯 싶었지만 1982년 남미 지역의 부채위기로 이상주의적 신자유주의 정책은 한계를 드러냅니다. 하지만 이러한 실험의 결과 실용적으로 정리된 정책이 이후 대처와 레이건에 의해 영국과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 모델이 되죠.

 

이렇게 국가 장치의 재구조화와 관련해 명백히 유사한 두 가지 사건이 미국의 강제적 영향 아래, 다른 시기에 세계의 전혀 다른 지역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은 1970년대 중반 이래 전 세계에 걸쳐 신자유주의적 국가형태가 급속하게 증식된 이면에 미국의 제국적 권력의 무자비한 확산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 제1장/26

그렇다고 세계적 차원의 신자유주의적 전환을 미국의 제국주의적 힘 만으로 설명할 순 없습니다. 미국의 압박 때문에 중국과 영국이 신자유주의로 방향을 틀었다고 설명할 순 없죠.

 

신자유주의가 세계적 힘을 얻게 된 이유를 알기 위해선 좀 더 많은 고찰이 필요합니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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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메타스 2012.02.03 13: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자유주의적 경제 기조가 힘을 얻게 된 데에는 70년대를 거쳐간 장기불황에 큰 원인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 시기에는 거의 대부분 국가(특히 유럽과 미국)의 케인즈주의적 경제정책이 이를 극복하는 데도 실패를 했구요. 이 때문에 결과적으로 정부의 강력한 개입이 아닌 시장의 무제한적인 자유를 부르짖는 최소정부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이 세를 확장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2. 24601 2012.02.06 2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메타스// 지적하신 부분이 뒷 부분에 이어집니다. 1970년대의 위기(석유파동과 스태그플레이션, 노동계급의 반란 등)를 빼놓고 신자유주의의 등장을 설명하기는 어렵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