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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간략한 역사> - 데이비드 하비 / 최병두
이러한 형태의 정치-경제적 조직은 오늘날 보통 '착근된 자유주의(embedded liberalism)'로 불리고 있다. 이는 시장 과정과 기업 활동들이 경제ㆍ산업 전략의 방법을 유도하는 사회적ㆍ정치적 제약들과 규제 환경의 그물에 의해 어떻게 둘러싸여 있는지 알려준다. 국가 주도적 계획이나 어떤 경우 기간 부문의 국가 소유가 드문 경우는 아니었다. 신자유주의적 프로젝트는 이러한 제약들로부터 자본을 탈착근시키는 것이다.
- 제1장/28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전쟁 전과 판이한 모습을 띠게 됩니다. 어디서든 국가의 시장 개입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이는 국제적으로 미국의 군사적 보호와 달러 중심의 고정환율 체제(이 둘은 불가분의 관계죠)에 의해, 국내적으로는 노동조합과 자본가의 '계급 타협'에 의해 보장됐습니다.

이를 흔히 '착근된 자유주의'라고 부르죠. 번역자마다 좀 다른데, 저는 차라리 '통제된 자유주의'라고 부르는게 의미에 더 맞지 않나 싶네요.

유럽과 미국, 그리고 몇몇 제3세계 국가(일본과 한국)에서 보여준 성과가 놀랍긴 하지만 이러한 체제는 남반구(가난한 나라들)로 확산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1970년대로 들어서면서 이러한 새로운 자본주의도 그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가 동시에 진행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시작된 것이죠. 미국의 달러를 준비금으로 하는 고정환율의 국제적 통화 체계가 흔들렸습니다. 결국 무너졌죠.

위기에 대한 대응의 첫번째 모습은 경제에 대한 국가의 통제와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에서조차 70년대 초반 많은 규제들이 도입됐습니다. 스웨덴의 '렌-마이드너 계획'이 나온 것도 1976년이었습니다. 이 계획은 임노동자기금을 조성해 기업의 지분을 점차로 흡수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었습니다. 68년의 반란 이후 여전히 거세게 확산되고 있던 노동자들의 투쟁과 함께 이러한 계획은 자본가들에게 자신의 지위에 대한 실질적 위협으로 다가갔습니다. 경제적 위기까지 겹쳐 실제로 자본가들의 몫이 줄어들기도 했습니다. 33쪽에 제시된 그림1-2 '19709년대 부의 붕괴: 미국 국민 상위 1%가 소유한 자산의 몫' 그래프를 보면 1%의 몫이 1970년대 급격히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상위 계급들은 정치적ㆍ경제적 파멸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단호하게 행동해야만 했다. ……
뒤메닐과 레비는 자료들을 세심하게 재구성한 뒤, 신자유주의화는 애초부터 계급 권력의 회복을 위한 프로젝트였다고 결론을 내렸다.
- 제1장/33

'자본의 반격'이 위기에 대한 두번째 대응이었습니다. 이후 가장 급진적인 부의 역진적 재분배가 이뤄졌죠. 부동산세는 철회되고 투자 소득 및 자본이득에 대한 조세는 감면됐습니다. 대신 노동자들에게 부과되는 임금과 봉급에 대한 조세는 그대로였습니다. 버핏이 말한, 자신보다 직원이 더 많은 세금을 낸다는 상황이 바로 이것의 결과였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미국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진행됐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신자유주의화를 국제적 자본주의의 재조직화를 위한 이론적 설계를 실현시키려는 유토피아적 프로젝트, 또는 자본축적의 조건들을 재건하고 경제 엘리트의 권력을 회복하기 위한 정치적 프로젝트로 해석할 수 있다. 이어지는 내용에서 나는 이 중 두 번째가 실제 지배적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 제1장/36

데이비드 하비는 신자유주의가 '유토피아적' 성격과 '정치적' 성격을 함께 지니고 있고, 그 중 '정치적' 성격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경제적 위기를 해결하는 데는 큰 효과를 보지 못했지만 '경제 엘리트'의 권력을 회복하는 데는 효과적이었죠. 신자유주의의 유토피아적 성격은 이러한 정치적 성격을 정당화하고 합법화 하는 데 이용됩니다. 그렇기에 그들이 천명하는 이상으로서의 신자유주의는 현실에서의 신자유주의에서 그 원칙이 폐기되거나 왜곡되곤 합니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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