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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대선, 보수파의 승리일까

때때로 2012. 12. 20. 15:32


19일 대선 개표방송을 지켜보고 있는 민주당 지도부. [사진 한겨레]


어제(19일) 18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75.8%의 투표율을 기록하며 승패의 향방은 안개속에 숨은 듯 했다. 투표율이 17대보다 무려 12.8% 급증한 것이다. 유권자 수가 늘었다는 걸 고려하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한 것이다.

1. 17대 대선과의 비교 … 보수가 결집했는가

6시 투표가 마무리되고 출구조사가 발표되면서부터 야권에 어두운 그림자가 짙어지기 시작했다. 여론조사와 출구조사를 통해 '박빙'으로 예상되면서 밤 11시가 지나야 향배가 갈릴 것이라는 보도가 이어졌지만 결과는 의외로 싱겁게 드러났다. 대략 20%의 개표가 이뤄진 저녁 8시30분쯤부터는 벌어진 표차가 줄어들지 않았고 10시가 넘어서면서부터 방송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당선확실'하다고 보도하기 시작했다.

안철수가 양보하고, 심상정ㆍ이정희와 같은 '진보 진영' 후보까지 사퇴해 표를 몰아준 상황에서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김소연ㆍ김순자 후보의 표는 별 영향 없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한겨레는 이렇게 적고 있다.

"'똘똘 뭉친 보수의 위기의식과 박근혜 후보의 인물 경쟁력'.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처음으로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의 맞대결 구도로 18대 대선에서 승리한 요인은 이렇게 요약된다." - 한겨레ㆍ링크

한겨레는 보수의 결집을 박근혜 승리의 제1 요인으로 꼽고 있다. 그러나 막상 드러난 표를 보면 그리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2007년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얻은 표는 1149만2389표다. 같은 보수 진영이라고 할 이회창 무소속 후보가 얻은 표는 355만9963표다. 이 둘을 합치면 1505만2352표로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가 얻은 1577만3128표보다 겨우 72만776표 적다. 여러 야권 후보들이 사퇴라는 방식으로 문재인 후보에게 힘을 몰아준 것을 진보의 '결집'이라고 말한다면 박근혜 후보 또한 16대의 이인제, 17대의 이회창과 같은 표를 갈라먹을 보수 후보가 없었다는 점에서 보수의 '결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박근혜를 후보로 선출하면서부터 예전과 달리 이러저러한 잡음을 일찌감치 제거했다. 문재인과 안철수의 단일화보다 훨씬 일찍부터 말이다. 즉 보수가 진보의 결집에 '위기의식'을 느껴 결집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한겨레의 분석이 옳다고 하려면 이명박 정권의 낮은 인기에 위기의식을 느낀 보수가 일찌감치 결집해있었다고 주장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궤변일 수밖에 없다. 경향신문은 이렇게 말한다.

"정부ㆍ여당의 승리가 아닌 '박근혜의 승리'라고 평가될 만했다. 정권교체 여론은 60% 가까이 됐지만, 대선 결과는 반대였다." - 경향신문ㆍ링크

애시당초 보수 진영이 이명박 정권의 위기에 동질감을 느꼈다면 '정권교체 여론'이 60% 가까이 됐다는 건 틀린 사실이 된다. 여론조사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매우 높은 비율로 정권교체 여론이 존재했다는 것은 거의 틀림 없을 것이다. 그래서 조선일보는 이렇게 쓰고 있다.

"지난 5년간 이명박 대통령과 갈등을 밎으면서 '여권내 야당'으로 자리매김했던 점도 작용했다. 특히 이 대통령의 세종시 수정 반대는 그 입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박 당선인의 대선 출발점이자 박 당선인이 신뢰의 정치인으로 평가받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 조선일보ㆍ링크

결국 이번 대선의 결과가 대한민국 유권자 정치의식의 '보수화'를 나타내거나 보수 진영의 '결집'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투표수가 698만8605표였음에도 박근혜가 이명박보다 더 가져간 것은 겨우 72만776표다. 즉 한나라당-새누리당은 지난 5년간 잃은 것도 없지만 얻은 것도 없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물론 당시 이명박ㆍ이회창에게 투표한 1500여 만 명이 이번에도 박근혜에게 투표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에 반해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1469만2632표를 얻었다. 이는 지난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정동영ㆍ권영길ㆍ문국현이 얻은 826만2300표보다 643만332표 더 많은 것이다. 이 수치는 이번에 늘어난 투표수 698만8605표에 육박하는 수치로 늘어난 투표수의 대부분을 문재인 후보가 얻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물론 이도 마찬가지로 지난 대선과 이번 대선에서의 투표성향 변화에 대한 추적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그저 가정일 뿐이다). 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가 얻었던 1201만4277표 48.91%의 득표와 견주어도 0.89% 덜 얻었을 뿐 이다.

결론적으로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정권교체의 열망'을 받아안아 자신들의 지지를 지켰다. 문재인과 민주당은 진보정당의 표까지 합쳐 자신들이 얻을 수 있는 최선의 지지를 얻었다고 보인다.

2. 민주당이 얻지 못한 민심은 어디에 있을까

여기서 더 필요했던 건 새누리당과 박근혜 지지층을 분열시키고 그들을 야권의 표로 획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안철수 지지자와 진보정당 지지자들을 획득할 순 있었지만 새누리당 지지자에 뿌리내리진 못했다. 왜그랬을까. 이를 위해서는 우선 박근혜의 지지자가 어떤 사람들인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추측일 뿐 정확한 연령별ㆍ계층별 투표 성향에 대한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조심스럽지만 '시사오늘'에서 12월 13일 '박근혜 지지율의 재발견 … 목소리 작은 사람들'(링크)이라는 기사에서 제시한 수치가 유용할 것 같다. 이 자료는 동아일보와 리서치앤리서치가 11일 조사한 것이다.

● 직업별 지지율
-농림 임업 어민: 朴 55.2-文 37.1%
-자영업: 朴 50.2-文 37.1%
-화이트칼라: 朴 32.7-文 53.5%
-블루칼라: 朴 43.1-文 48.1%
-가정주부: 朴 55.6-文 32.3%
-학생: 朴 27.9%-文 57.7%
-무직: 朴 60.4-文 19.3%

● 월(月) 소득별 지지율
-200만 원 이하: 朴 56.1-文 27.6%
-201만~300만 원: 朴 40.1%-文 47.6%
-301만~400만 원: 朴 43.5-文 47.3%
-401~500만 원: 朴 39.4-文 50.6%
-501만 원 이상: 朴 40.8-文 46.4%

● 학력별 지지율
-중졸 이하: 朴 63.9-文 23.5%
-고졸 이하: 朴 52.8-文 33.1%
-대재(大在) 이상: 朴 37.4-文 49.6%

노동자 계급 다수는 문재인을 지지하고 있음을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의 지지율 성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월 소득별 지지율'과 비교하면 '계급투표'의 현실을 확인할 수 있다. 노동계급 다수가 문재인을 지지함에도 월 소득 200만원 이하에서는 박근혜에 대한 지지가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은 야권이 정규직 대기업 노동자에게는 지지를 받고 있지만 비정규직 중소기업 노동자에게는 지지를 받고있지 못하다는 뜻이다.

이는 통계청이 올해 3월 발표한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3월 정규직 임금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211만3000원, 비정규직 월평균 임금은 143만2000원이다. 같은 조사에 따르면 전년 대비 늘어난 비정규직 임금근로자의 대부분을 60대 이상 고령층이 차지하기도 했다. 60대 8만3000명, 50대 4만1000명, 40대 2만2000명이 늘었다. 즉 부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50대 이상의 박근혜 지지와 박정희 향수는 현재의 경제정책 실패로 인한 불만에서 기인할 것이라는 것이다.(경향신문ㆍ링크)

여성에 대해서도 비슷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8월 조사한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자료에 따르면 여성 임금근로자 월평균 임금은 149만7000원이다. 이는 남성 임금근로자 월평균 임금 255만9000원보다 100만원 이상 적은 것이다. 게다가 절반 이상은 59.4%가 사회보험 혜택이 없는 비정규직 일자리에서 일하고 있다.(뉴시스ㆍ링크)

즉 민주당은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 노동자와 같은 더 소외되고 억압받는이들에게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슬로건으로서는 철회했지만 거의 일관되게 '대한민국 남자' 컨셉트의 선거운동을 펼쳤다. 첫 선거광고에서는 일하고 있는 아내 옆에서 자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남편의 실업, 자식의 불안한 일자리에 50대 여성은 가장 하층의 노동으로 밀려나고 있다. 편의점ㆍ패스트푸드점 알바, 식당 서빙, 건물 청소ㆍ관리, 파출 등. 이들에게 '박정희 향수'가 있다면 그것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은 현실의 고통 때문이다. 정치적 억압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70~80년대 실질소득의 증가를 경험했다. 삶의 질도 크게 변화했다. 단칸방에서 시작한 신혼 살림은 그것이 대출로 이루어진 것일지라도 번듯한 아파트 살림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1997년 이후의 삶은 그들을 열악한 노동시장으로 내몰았다. 남편과 자식들을 도와 (또는 그들을 대신해) 소득을 얻는 데 몸을 던지지 않으면 안되게 됐다.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욱 남편은 가부장적 권위를 내세워 이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그런데 박근혜를 독재자의 딸로 비난하며 자신을 민주진보 세력이라고 내세우는 후보와 그 정당은 바로 그 권위주의적 남편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을 첫 광고로 내보낸 것이다. 50대 주부들에게는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패악을 민주당이 이어받고 그 성과를 박근혜가 이어받았다고 보여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들 50대 주부들이 이 광고 때문 만은 아니겠지만 가정주부의 절반 이상이 박근혜를 지지하고 문재인을 지지하는 것은 3분의 1이 안됐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물론 이는 하층 노동에 종사하는 50대 주부의 다수가 박근혜를 지지한다는 '가정'하에서 성립할 얘기다. 이 것을 길게 쓴 것은 선거 후 '못 배웠고' '시어머니 노릇 하려는' 50대 가정주부에 대한 비하와 비난이 비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3. 민주당으로부터 독립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브루주아 민주주의 선거는 일반적으로 회고투표적 성격이 강하다. 즉 현재의 정권에 대한 심판의 의미로 표를 던지는 게 많다는 것이다. 이를 고려한다면 박근혜의 이명박 정권과의 선긋기, 즉 야당 전략이 성공적이었다는 것이다. 앞에서 인용한 부분에 나오 듯 조선일보 또한 박근혜의 '여권 내 야당' 전략이 주효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선거운동 막바지 그 본색을 드러내긴 했지만 '경제민주화'라는 쟁점을 선점한 것도 분명히 새누리당이었다. 박근혜 캠프의 권영세 종합상황실장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 당선인이 경제민주화와 복지 이슈를 작년 말부터 먼저 제기함으로써 민주당의 공세를 무력화한 측면이 크다"고 평가했다. 한편 이는 민주당이 이명박 정권의 반대편에서 현실적 대안으로 자신을 입증하지 못했다는 뜻일 게다.

종종 좌파들은 민주당의 '반성'을 요구했다. 이는 그들이 김대중ㆍ노무현 10년간 만든 현재의 사회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밝혀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운동 기간 한명숙이 강정에서 도망치 듯 떠냐야 했듯이 대다수의 이명박 정권 정책이 김대중ㆍ노무현 정권으로부터 비롯됐다는 점에서 그들은 그럴 수 없었다.

이는 민주당이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의 지지를 획득하지 못하는 데 결정적이었을 수 있다. 교수나 지식인, 문화계 종사자와 같은 중간계급에게 한나라당-새누리당 정권은 매우 끔찍한 것이었겠지만, 다수의 저임금 노동자에게 이명박과 노무현 정권의 차이가 분명치 않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임금격차나 고용형태의 변화에 대한 간단한 자료로부터도 유추할 수 있다. 물론 정책 실행의 강도라는 측면에서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선거 결과가 보여준 것은 박근혜를 지지한 다수에게 그 차이는 크게 보이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안철수가 민주당의 오른편에서, 새누리당과 민주당 사이의 위치를 점했음에도 상당히 파괴력 있는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민주당과 각을 세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문재인 지지를 호소하는 위치에서도 결코 민주당과 한몸이 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어제(19일) 투표를 마치자 마자 미국으로 떠났다. 투표의 결과가 승리가 되든, 패배가 되든 그것을 민주당과 함께하지 않겠다는 뜻일 게다.

그렇다면 진보세력의 과제는 민주당으로부터 독립적이고 통일된 좌파적 대안을 건설하는 것일 게다. 사실 이러한 사실은 이번 선거 이전부터 여러 곳에서 그 신호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민주당의 민주/독재 구도, 반MB 전략에 휘말린(또는 직접 주도한) 진보세력은 이명박 정권에 대한 '대중적 반감'을 이유로 속속 민주당에 몸을 의탁하고 만다. 진보세력의 이러한 태도는 민주당을 왼쪽으로 견인할 힘조차 상실케 했다.

좌파의 지리멸렬과 분열, 무능력에 대한 질타는 이러한 평가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다시 필요한 것은 독립적이고 통일된 좌파적 대안의 건설이다. 당장 내년이나 내 후년 세계를 휩쓸 경제위기의 파고에서 노동자 투쟁의 건설을 위해서도 이는 매우 시급한 일이다.

이를 위해선 뼈아프지만 살을 도려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통진당과 진정당 또는 다른 진보세력이 민주당으로부터 독립된 대안의 건설에 동의하지 않거나 미적된다면 과감히 그들과의 연대를 배제해야 할 것이다. 시작은 이 대안에 동의하는 사람과 세력으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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