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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지는 위기, 격화되는 갈등 … 2012년을 점령하라

때때로 2012. 1. 5. 17:52


새해가 시작된 지 닷새가 지났네요. 지난해 마지막 날,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강력한 이란 제재 방안이 포함된 국방수권법(NDAA: the National Defense Authorization Act)에 서명했습니다. 미 국방수권법의 발효는 이란의 핵 개발을 둘러싸고 중동지역의 긴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 법은 이란 중앙은행과 거래하는 어떤 경제 주체도 미국의 금융기관과 거래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금융시장에서 미국의 위상을 고려할 때 사실상 이란산 원유 금수조치인 것이죠. 한국 정부는 이란산 원유 수급에 차질을 빗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미국의 이 법이 국제법 위에 올라섰다며 공식적인 반대 의견을 밝혔습니다('中외교부, 美 국방수권법에 반대 표명' 연합뉴스ㆍ링크).

이 법이 이란과의 적대적 갈등만을 더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국방수권법은 '법 절차 없이 테러 용의자로 의심되는 미국 시민'에 대해 공판 없이 무기한 구금(indefinite detenition without trial)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법은 9ㆍ11 테러 이후 부시 전 대통령에 의해 주도적으로 만들어진 애국법(Patriot Act)를 떠올리게 합니다. 애국법이 대외적으로 이라크ㆍ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 테러리스트와의 전쟁을 위한 법이자, 대내적으로는 시민의 민주적 권리를 제한하는 법이었듯이 말입니다
('부시 향해 질주하는 오바마, 인권의 적은 누구인가?' 참세상ㆍ링크).

미국-이란의 갈등과 별개로 국방수권법은 미국 내에서 지난 한해 크게 성장한 점령하라 운동을 공격하는 데 사용될 가능성이 큽니다. 나오미 울프는 '알자지라'에 기고한 칼럼에서 "전 세계에서 시위에 대한 대처는 유사하게 나타났다"며 "국가와 기업들은 민주주의의 허울을 유지하면서 반대의 의견을 짓누르는 최선의 방법을 배우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울프는 그들이 배운 '방법'의 대표로 미국의 국방수권법을 들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영국에서 경찰이 SNS 계정과 스마트폰 감시 권한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 영국 군대가 런던에 대규모 SAS 주둔지를 건설하는 것, 이스라엘 정부가 취재활동 제한ㆍ좌파 단체에 대한 기부 금지를 포함하는 법안을 밀어붙인 것을 들고 있습니다
('2012년, 'SNS 시민들'과 초국적 자본 대충돌' 프레시안ㆍ링크).

하지만 울프는 "전 세계 시위에 대한 이러한 조직화된 대응은 …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정부와 기업들이 점점 더 교묘한 방법을 찾겠지만 지방 정부의 토지 강제수용에 맞서 벌어졌던 중국 우칸촌 주민 시위의 승리에서 보여지 듯이 가장 강력한 억압기구를 갖춘 정부도 단결한 인민에게 승리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울프는 SNS와 신기술이 효과적인 저항을 위한 유용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이하 OWS)도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는 글에서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 동영상 생중계(live video streaming)가 운동의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SNS는 더 선명하고, 잘 조직된 시위을 가능케 했다. 또 진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즉각적으로 전 세계에 전파하고 있다."
- '2012년, 'SNS 시민들'과 초국적자본 대충돌', 나오미 울프, 프레시안

"주류 언론이 우리의 이야기를 다루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 동영상 생중계를 이용해 우리의 목소리를 확산시키는 법을 튀니지, 이집트, 이란에서의 지도자 없는 저항 운동으로부터 배웠습니다. 우리는 정보를 만들고 공유하는 데 있어 중앙집권화, 기업의 투자를 받는 주류 언론으로부터 더더욱 무관한 급진적으로 민주화된 세계적 운동의 한 부분입니다. 정보의 신속한 교환은 우리가 신속하게 공동의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하고, 세계 곳곳에서의 보고와 제안을 토론할 수 있게 하며, 효과적인 직접행동의 동원, 경찰 폭력의 기록을 가능케 했습니다. 우리가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고 외칠 때 이것은 더이상 말뿐인 위협이 아니게 됐습니다."
- '2011: 반란의 해', OWS

정부와 기업의 강해지는 탄압에도 2012년이 지난해 못지 않은 반란의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건 단지 SNS와 인터넷 기술의 발전 때문만은 아닙니다. 튀니지의 청년 부아지지가 가난과 실업의 고통에 항거하며 스스로의 몸에 불을 붙였듯이, 위스콘신의 노동자와 시민들이 주 정부의 노동권 공격에 맞서 주 청사를 점거했듯이, 스페인의 청년과 노동자들이 실업과 빈곤에 맞서 광장을 점거했듯이 2011년의 투쟁은 2008년 이후 헤어나오지 못하고 반복되고 있는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99%의 절박한 목소리이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적인 정부의 재정위기는 2008년 금융위기로부터 기업들을 살려내기 위해 돈을 쏟아부은 결과입니다. 그러함에도 기업들은 바로 자신들에게 수혈된 그 돈 때문에 정부가 위기에 처했음은 깨끗이 잊은 체 노동자의 고통만을 강요하는 긴축과 노동권 축소를 목소리 높여 요구하고 있습니다.

위기를 벗어날 전망은 아직 뚜렷하지 않습니다. 그리스 정부는 3일 "1300억 유로 규모의 2차 구제금융이 집행되지 않으면 유로화를 버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유로존 탈퇴 가능성을 공식 언급했습니다. 이와 함께 "유로존에 머물기 위해서는 추가 긴축조치가 필요할 수 있다"는 언급도 잊지 않았죠. 헝가리에서는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저항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새해 두번째 날부터 수도 부다페스트에는 10만 명의 시민이 모여 집권 피데스당을 비판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올해부터 마트ㆍ음식점ㆍ술집이 일요일과 공휴일을 포함해 하루 24시간 영업할 수 있게끔 규제를 풀었습니다. 이에 상인연합회와 상인노동조합은 "영업시간 규제를 풀면 상당수 영세상인들은 문을 닫고 일자리를 잃게 된다"며 반발하고 있죠
('그리스, 유로존 탈퇴 첫 공식 언급 … 유로존 붕괴설 재점화' 프레시안ㆍ링크).

한국에서도 지난 한 해 예전과 다른 움직임이 눈에 띄었죠. 홍익대 청소ㆍ경비노동자 투쟁서부터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반대 투쟁까지, 예전과 달리 '시민'들의 공감과 연대가 확대됐습니다. 세계적인 저항이 한국으로 번질까 겁났던 것일까요. 한나라당은 지난해 말 '한국판 버핏세'를 통과시켰습니다. 하지만 이 법은 '무늬만 버핏세'라고 비난받고 있습니다. 게다가 세율구조 또한 기형적으로 만들어 통과되자 마자 재개편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편된다 한들 제대로 된 '부자증세'가 이뤄질지는 의문입니다.

정부와 여당은 버핏세와 반대로 부자를 위한 정책에는 팔걷고 나서고 있습니다. 12월 7일 국토해양부가 발표한 '주택시장 정상화 및 서민주거안정 지원방안'은 그 이름과는 달리 서민의 '주거안정'을 해치고 부자들의 주택 투기를 권장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담고 있습니다
('경제위기에 대한 지배자들의 대응, 계급전쟁' 24601 자유롭게ㆍ링크). 정부의 연이은 부동산시장 대책에도 불구하고 침체한 시장이 활기를 되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동산시장의 침체는 저축은행의 위기, 부패ㆍ비리 스캔들로 연결되고 있습니다('저축은행 사태, 저축은행 만으로 끝날까 24601 자유롭게ㆍ링크). 지난해 내내 금융 당구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저축은행 사태는 여전히 진정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해 영업정지 된 16개의 저축은행에 이어 다음 달 추가적인 영업정지 조치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죠('저축은행 5곳, 내달 건전성 평가 앞두고 긴장' 경향신문ㆍ링크). 정부의 바람대로 저축은행 만으로 이 불을 끌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부동산시장의 침체가 여전한 상황에서 쉽지 않아 보입니다.

경제위기와 긴축을 둘러싼 세계적 차원의 갈등에서 한국도 그리 예외로 보이지 않는 것은 이러한 이유들 때문입니다. 물론 두 번의 큰 선거를 앞두고 있고, 반MB 정서("이 모든게 이명박 때문이다")가 압도적인데다가, 경제 상황이 여타 위기에 처한 나라들보다는 그럭저럭 낫기 때문에 한국에서 위기와 갈등이 동일한 형태로 터져나오진 않을 것입니다. 지난해 말 돌아가신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이 블로그에 직접 올린 마지막 글에서 호소했듯이 총선과 대선, 두 번의 선거가 한국에서 위기와 갈등의 형태를 조형하는 틀이 될 것입니다
('2012년을 점령하라' 김근태ㆍ링크).

그렇지만 저는 2012년의 전투가 두 번의 선거에서 끝날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2002년의 환호가 절망의 비명으로 바뀌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듯, 미국의 오바마가 부시의 애국법과 다르지 않은 국방수권법을 만들었듯이 두 선거를 통해 만들어질 정부가 현재의 위기와 갈등의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미국의 작가 레베카 솔니트가 부아지지에게 쓴 편지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운동은 태동하기까지 3년이 지연됐습니다. … 미국 경제는 3년 전에 붕괴됐고, 당시에도 몇몇 분노한 이들이 있었지만 실제 반응은 미뤄졌거나 다른 방식으로 유인되었습니다. 당시 분노는 사실 우리를 위해 상황을 시정할 수 있는 대선 후보에 집중하는 강력한 풀뿌리 운동으로 나타났습니다. 아름다운 운동이었고, 희망에 가득 찬 운동이었습니다. 그 운동은 자신들의 후보[오바마]를 백악관으로 보냈습니다. 그러고 나서 대통령은 자신이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떠나버렸습니다. 운동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 저는 이 운동이 정치가와 선거에 대한 환멸을 느낀 다음 망가져 버린 제도의 힘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기 위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한 청년의 분신이 전 세계 99%를 일깨웠다', 레베카 솔니트, 프레시안

OWS는 "부자와 가난한 이 사이의 커지는 불평등, 극소수 엘리트만을 위한 정부 정책, 근본적인 경제적 불평등"을 '점령하라' 운동의 배경이라고 설명합니다. OWS는 추위와 경찰의 폭력에 그 위세가 많이 줄어들었음에도 결코 위축되지 않고 2012년을 또다른 반란의 해로 만들기 위한 행동을 시작했습니다. 3일 아이오와 코커스에서는 "진보/보수, 민주/공화의 이분법이 99%와 1%의 대결이라는 미국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실제 사회적 갈등을 은폐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상기시키기 위해 대통령 후보자들의 사무실을 점거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2011: 반란의 해' OWSㆍ링크).

이러한 불평등의 심화는 한국이라고 다를바 없습니다. 앞으로 전개될 노동자의 권리와 생존을 둘러싼 투쟁을 대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2011년의 '점령하라'는 한진중공업 크레인 85호와 희망버스였듯이 올해의 '점령하라'는 쌍용자동차 희망텐트에서 시작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는 새해를 해고통보를 받는 것으로 시작한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그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12월 31일 밤, 60대 비정규직 해고 날벼락' 프레시안ㆍ링크). 김진방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실업급여만 높이는 것은 시혜적 정책이다. 보수는 이것만 강조할 것이다. 하지만 쟁의 관련 정책을 바꾸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없애며 연대할 수 있게 만들면, 노동의 교섭력이 높아져서 제도를 바꿀 힘이 된다. 이런 정책에 관심을 기울이는 게 진보다"라고 말합니다('최고의 복지는 일자리 넘어선 근로빈곤의 해결' 한겨레ㆍ링크). 약자에게 시혜를 배푸는게 아니라 그들과 연대하고 단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진보라는 걸 진보를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올해는 단결과 연대가 더 큰 희망으로 자라는 한해가 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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