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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계몽주의 개혁가 요한 스트루엔시, 덴마크 절대왕정의 군주 크리스티앙 7세, 영국에서 온 왕비 캐롤라인 마틸다.


경향신문은 '레 미제라블'의 흥행돌풍을 다룬 특집 기사에서 '비슷한 영화'로 로얄 어페어'를 소개한다. 이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지금의 정치적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다면 '로얄 어페어'를 추천한다. 정치는 그 시대 민중의 수준이라는 결론이 쉽게 와닿는다." - 경향신문 1월 14일자 8면(링크)

경향신문의 이런 주장은 박근혜가 당선됐으니 경상도 사람들은 민영화에 피해를 입어도 싸다는 주장을 떠올리게 한다. 박근혜 정책에 의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가난한 사람들이 왜 그녀에게 투표했는지 모르겠다는 질문에 "멍청해서"라는 답변이 달린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 '로얄 어페어'는 당대의 '멍청한' 대중을 탓하는 영화일까? 이 영화의 이야기를 찬찬히 재구성해 보자(이 글에는 영화 '로얄 어페어'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요한 스트루엔시는 계몽사상에 심취한 의사다. 볼테르와 루소의 책을 읽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익명으로 직접 자신의 생각을 담은 책을 펴내기도 했다. 그가 왕의 주치의가 되는 것을 꺼려했던 것은 당연해 보인다. 계몽사상가일지라도 호사스런 가발과 복장으로 차려입은 주치의 후보들 사이에서 약간은 위축되기도 한다.

그가 진료를 담당하게 된 크리스티앙 7세는 미친 왕이다. 영화를 다 보고난 지금에는 정말 '미친 왕'이었는지 의문이다. 타인과 교감하지 못하고 자신의 세계에만 빠져있는 이 왕은 귀족과 성직자들의 가면이었다. 의회와 내각은 그에게 서명만을 강요한다. 그는 법령을 읽고 고민하고 생각하고 제안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라면 왕이 저 귀족들과 교감을 시도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는 오직 연극을 통해서만 세계를 본다.

스트루엔시가 크리스티앙 7세를 처음 만났을 때도 이 왕은 오직 연극의 세계에만 속해 있었다. 이 계몽사상가는 당황했지만 그 왕과 함께 기꺼이 연극의 세계에 들어간다. 크리스티앙 7세는 기꺼이 자신의 세계에 동참해준 이 의사의 동료가 된다.

동료가 된 왕과 의사는 내각을 자신들의 연극-세계로 다시 만든다. 어차피 귀족과 성직자의 가면에 불과했던 왕이었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동료의 가면이 되는 것을 거리낄 이유는 없었다. 이들 동료는 고문을 없애고 언론ㆍ출판에 대한 검열을 중단한다. 천연두 예방접종이 전국적으로 실시된다. 귀족ㆍ성직자는 내각과 의회에서 쫓겨난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수십 년 전이란 걸 고려하면 볼테르가 크리스티앙 7세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북방의 빛'이라고 찬양한 것이 십분 이해된다.

이 빛나던 개혁의 시절 계몽주의의 세례를 받은 왕비 캐롤라인도 그들의 즐거운 동료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영국 왕실 출신의 왕비는 미친 왕의 완전한 동료가 되지 못한다. 그녀는 오직 스트루엔시를 통해서만 이들의 동료가 될 수 있었다. 이 둘의 관계를 눈치챈 크리스티앙 7세의 질투가 왕비를 탐한 스트루엔시에 대한 것인지 자신의 동료인 스트루엔시를 차지한 왕비에 대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둘의 관계가 이 개혁의 동료들을 위기로 몰아넣어지만 왕과 의사를 결정적으로 갈라놓은 계기는 아니다. 스트루엔시가 스스로 왕의 위치에 올랐을 때, 모든 법령에 대해 왕을 대신해 서명하려 했을 때 이 동료는 결정적으로 불화를 맞는다.

프로이센의 왕. 덴마크의 왕을 대신한 또 한 명의 왕이 섰을 때 더 이상 개혁은 지탱될 수 없었다. 봉건영지에 묶여있는 농민과 도시의 날품팔이ㆍ직인들은 스스로를 개혁의 주역으로 내세울 수 없었다. 그들은 오직 성직자와 귀족에게서만 자신의 정치적 표현을 찾을 수 있었다. 개혁군주의 가면은 처음부터 가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성난 군중이 왕실에 몰려와 왕의 얼굴을 보여달라고 요청했을 때 크리스티앙 7세는 그 앞에 설 수 없었다. 거기에는 오직 또다른 왕, 프로이센의 왕이 있었을 뿐이다.

실각한 스트루엔시가 단두대에 오르기 전 인민들에게 "나는 당신들의 편이오"라고 외친 게 공허한 것은 그 때문이다. 인민을 위한 개혁은 오직 인민 스스로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 이 영화 '로얄 어페어'는 그 인민의 얼굴을 왕의 가면으로 보여준다.

스트루엔시가 왕을 대신하려 했을 때, 그것은 프랑스 혁명 당시 인민을 대신하려 했던 로베스피에르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은 끊임없이 상승의 길을 걸었다. 성난 인민들은 오랫동안 쌓여왔던 분노를 자제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대의 역사적 발전 수준은 그들의 요구를 성취하기엔 너무나 부족했다. 결국 로베스피에르와 산악당은 자신들의 가장 든든한 동료였던 상퀼로트, 그리고 그들의 조직이었던 에베르파와 코르들리에 클럽을 억압하고 숙청해야만 했다. 로베스피에르가 모든 인민을 대신해 조국의 혁명을 방어하려 했을 때 더 이상 그를 지켜줄 인민은 남아있지 않았다
('로베스피에르, 혁명의 탄생' 소개ㆍ링크).

'로얄 어페어'의 개혁가 스트루엔시가 크리스티앙 7세의 보호를 받지 못했던 것도 마찬가지다. 그가 왕을 대신하려 하면서부터 진짜 왕은 그를 보호해줄 능력을 상실했던 것이다. 흔하디 흔한 왕실 치정극으로 보이는 이 '로얄 어페어'는 혁명가와 계급의 관계에 (또는 일반적으로 정치인과 대중의 관계) 대한 훌륭한 우화를 제시한다. "정치는 그 시대 민중의 수준이라는 결론이 쉽게 와닿는다"는 경향신문의 지적은 이 영화에 대한 너무 쉬운 이야기일 뿐이다. '로얄 어페어'가 제시하는 정치는 그보다 더 급진적이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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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르가니 2013.11.27 1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미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