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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스와 버냉키의 도토리 키재기 … 위기 논쟁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개입 본문

쟁점/세계경제위기

서머스와 버냉키의 도토리 키재기 … 위기 논쟁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개입

때때로 2013. 12. 31. 16:15

미국 중앙은행은 12월 18일 양적완화 축소를 발표했다. "현재 월 850억 달러인 자산매입 규모를 내년 1월부터 750억 달러로 100억 달러 축소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2008년 경제위기 이후 5년 동안 3조 달러 이상의 돈을 시장에 풀었다. 중앙일보는 "세계경제, 링거는 뽑았다"며 경기 회복의 신호탄으로 풀이했지만 상황이 간단치는 않다. 사실상 제로인 금리는 2015년이냐 돼야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점쳐졌다. 실업률은 여전히 7%대다(중앙일보 12월 20일 6면).

이 양적완화 축소를 두고 11월 한 차례 논쟁이 있었다. 11월 8일 워싱턴에서 열린 IMF 위기 대응 포럼에서 래리 서머스와 버냉키가 맞붙었다. 서머스는 미 중앙은행의 제로금리ㆍ양적완화 정책에도 "2009년 이후 4년 동안 미국인의 삶이 개선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한국경제 11월 11일 15면). 그는 양적완화와 제로금리 정책이 "어떤 효과도 없었다"며 "이후로 우리는 명목 이자율이 0인 상황이 경제활동을 만성적이고 체계적으로 억제하는, 우리 경제가 잠재성장률 아래에 머무는 상황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즉 우리가 상황을 감당해내기 위해 인플레이션에 겁먹지 말고 양적완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양적완화 축소를 앞장서 주장해왔던 이였기에 충격은 컸다. 정태인은 이를 두고 '개과천선'이라고까지 주장했다(프레시안). 정태인의 소개에 의하면 폴 크루그먼도 서머스의 '개과천선'을 반기며 격찬하는 글을 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의 위기에 대한 진단은 여전히 피상적이거나 외생적이다. 마이클 로버츠는 이 논쟁에 마르크스주의적으로 개입하며 크루그먼이 '인구 성장률' 저하라는 경제 외적 자연법칙에서 위기의 뿌리를 찾는 것을 비판한다. 사실 이는 혜성의 주기에서 경제법칙을 추정했던 신비주의적 경제학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파이낸셜타임즈의 '명 칼럼니스트'인 마틴 울프도 비판한다. 울프에게 "위기는 '과잉 소비'에서 비롯했고 현재 불황은 '과잉 저축' 때문에 생겨났"기 때문에 결국 "자본주의는 단지 하나의 상황
[과잉 소비]에서 다른 하나[과잉 저축]로 반복"하는 진자운동으로만 파악한다고 비판한다. 정부의 어떤 역할을 기대하는 이러한 케인즈적 전통은 자본의 이윤율에 생긴 문제를 도외시한다는 것이 그의 비판의 핵심이기도 하다. 1930년대 대공황, 그리고 그 이전의 공황들 모두는 자본의 대규모 파괴를 통해서만 이윤율을 회복하고 경제성장의 정상적 궤도로 돌아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단지 민간 부문을 '자극'하거나 (일시적으로) 대체하기 위해 계획된 더 많은 정부지출은 묘책이 되지 못한다"며 이러한 방책으로는 현재의 '장기 침체가 끝나기 전에 "또 다른 침체를 예상"해야만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마이클 로버츠는 이윤율을 강조하지만 그것이 자본주의 축적 법칙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이 글에서 자세히 설명하진 않는다. 하지만 최근의 양적완화와 위기를 둘러싼 논쟁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어떤 입장에 서있는지를 개괄적으로 파악할 수는 있을 것이다. 아래 그의 글을 옮겨놓는다.


케인즈적 불황인가 마르크스적 불황인가?
2013년 11월 20일 마이클 로버츠 블로그

이 블로그를 읽어왔던 독자라면 세계경제가 현재 자본주의 선진국가들이 이끄는 장기간의 불황 상태에 있다는 것이 내가 주로 이야기해온 것 중 하나라는 걸 알 것이다.

경제성장이 이전 성장률 수준보다 지속적으로 낮아지며 실업률은 대공황 이전 수준 이상이 되고 디스인플레이션(속도가 느려진 인플레이션)이 디플레이션으로 전환되는 것(물가 하락)이 내가 말하는 '장기 불황'이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생산 자본에 대한 투자가 회복의 기미 없이 이전의 평균적 수준보다 낮은 경제적 환경을 말한다. 게다가 이 불황은 현재 소위 '신흥
[시장] 경제'라고 불리는, 막대한 규모의 값싼 노동력과 신기술을 갖춘 나라에까지 도달하면서 [이들 나라에서] 실질GDP의 성장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


세계경제 성장률

['장기 불황'이라는] 이러한 호칭은 지금까지는 어떤 이론적 경향의 경제학자들에게도 많은 지지를 얻지 못해 왔다. 그런데 갑자기 '영구 불황'이라는 이야기가 '위대하고 훌륭한' 주류 경제학에서 부상하기 시작했다. 골드만삭스의 전 경영진이자 미국 재무부 장관, 하바드 대학 총장이었고 [최근]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 후보를 사임한 래리 서머스는 최근 위기의 원인에 대한 IMF 콘퍼런스에서 아주 낮거나 제로인 금리를 통해, 또는 정부에서 '돈을 찍어내' 정부와 사적 부문의 채권을 사들이는 양적완화의 방식으로 경제를 회생시키려는 중앙은행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제는 '정상적 성장'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거대한 거품조차도 총수요를 진작시키는 데에는 충분치 못했다…… 수요를 자극하기 위한 인공적인 조치, 이 모든 재정상의 경솔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어떤 효과도 볼 수 없었다." 따라서 "이후로 우리는 명목 이자율이 0인 상황이 경제활동을 만성적이고 체계적으로 억제하는, 우리 경제가 잠재성장률 아래에 머무는 상황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명백히도 '전통적이지 않은' 통화 정책들은 새로운 거품(통화 팽창을 일으키지 않는)인 주가 상승을 제외하고는 경제를 위한 묘책이 되지 못한다. 폴 크루그먼, 전 골드만삭스 수석 이코노미스트이자 파이낸셜타임즈 블로거인 가빈 데이비스, 파이낸셜타임즈 칼럼니스트이자 그들 모두의 친구인 마틴 울프와 같은 케인즈 후예들의 장황한 설명이
[지난] 여름 내내 울려퍼졌다. 그들은 자본주의가 '균형 성장'으로 복귀하는 방향으로 '자동적'으로 작동할 수 없으며 디플레이션 압력은 새로운 지배적 힘이 된 것으로 파악한다.

크루그먼은 블로그에서 '영구 침체'라고 표현했다. "우리가 지난 5년 동안 겪어온 삶이 새로운 정상이라면 어떻게 될까? 불경기 비슷한 상황이 또다른 한 해 또는 두 해 만이 아니라 10년 간 계속 제 궤도를 유지할 것이라면? 그렇다면 '그 경우'는 '장기정체
[미국의 케인스주의 경제학자 알빈 한센이 주장한 것.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하면 경제성장률이 점차 감소되며 파국에 이르게 될 위험이 있다는 이론]' 아닐까? 완전 고용이라는 것을 극히 드문 오래전의 일회적 사건으로 만드는, 불경기가 계속되는 이 상황이 정상이 아닐까?" 크루그먼은 계속해서 "[지난] 여름 우리는 단지 완전 고용에 가까운 어떤 것을 성취하기 위해 아마도 거품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라고 답했다. 거품의 부재로 경제는 마이너스 금리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갖게 됐다. 그리고 이것은 2008년 금융 위기 때부터만 진실이었던 것은 아니다. 1980년대부터 심각함이 증대돼 왔지만 그것은 틀림없이 사실이었다"고 말한다. 이런, 그래서 결국 주요 자본주의 경제는 더 이상 마이너스 실질 금리에서도 완전 고용에 도달할 수 있는 성장은 불가능한 것이 분명해졌다.

이것은 이제 위대한 경제 스승이 세계 자본주의 경제의 상태에 대해 내게 동의한다는 것을 뜻할까? 글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여름께부터의 불황에 관한 이러한 새로운 '러브인
[히피들이 갖던 사랑의 집회]'의 크루그먼과 울프가 나와 (그리고 내가 마르크스의 설명이라고 고려하는 것들과) 왜 다른지 설명해보겠다. 우선 케인즈주의자에게 불황은 '유효수요' 부족으로 이어지는 자본가에 의한 화폐 퇴장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크루그먼류의 주장은 이러한 퇴장이 왜 갑작스럽게 일어나는지, 그리고 마이너스 실질 금리에도 불구하고 왜 끝나지 않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그들의 설명을 따르면] 우리는 실물경제에서 지속되는 상황들에 대처하는 금융 부문과 중앙은행의 조치들 외에 다른 것들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본주의 하에서 자본의 이윤율에 무언가 일이 벌어졌음을 뜻한다.

크루그먼은 이제 전쟁 직후에 완만한 성장 둔화를 의도해 케인즈의 이론에 외삽된 신 케인즈 학파 경제학자인 알빈 한센의 주장 또는 보다 최근의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서 혁신성과 생산성의 붕괴에 관한 로버트 고든의 사상이에 대해서는 을 되풀이하며 1980년대 이후 자본주의의 '장기 침체'에 관해 말한다.

현재 크루그먼은 점진적으로
[경제]성장이 둔화된다는 것을 케인즈 이론에 외삽한 신케인즈 학파 경제학자인 알빈 한센의 주장, 또는 보다 최근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서 혁신성과 생산성의 붕괴에 관한 로버트 고든의 사상을 되풀이하며 1980년대 이후 자본주의의 '장기 침체'에 관해 말한다.

크루그먼은 이러한 장기 침체는 아마 유효수요를 낮게 만드는 '인구 성장률 저하' 또는 '오르내리긴 했지만 결코 사라지진 않은' 1980년대부터 부각된 '만성적 무역 적자'로부터 비롯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의 설명은 어떤
[경제]외적 자연 법칙으로 자본 축적 운동의 외부를 살피며, 두 번째는 세계 경제로써 자본주의보다는 자본주의 경제들 사이의 불균형에서 원인을 찾는다. 두 설명 모두 현대 자본주의 작동의 기초에 존재하는 어떤 결함을 부정한다. 그리고 둘 모두 설득력이 떨어진다.

마틴 울프 또한 '스태그네이션'이라는 주제를 파이낸셜타임즈에 있는 그의 블로그 최근 글에서 계속 이어가며 왜 미래는 불안하게 보이는가라고 묻는다. 울프에게 이 새로운 불황의 원인은 '세계적 저축 과잉' 또는 투자를 꺼리는 자본가들의 저축에 따른 '과도한 퇴장'에서 비롯한 '투자 결핍'이다. "세계 경제는 매우 낮은 금리에서조차 사업에 사용될 것보다 더 많은 저축을 만들어내 왔다. 이것은 미국에서뿐 아니라 대부분의 중요한 고소득 경제에서 사실이다." 그렇기에 장기 불황의 문제는 낮은 이윤율이 아니라 이윤의 과잉에 있다.

이것은 현 연방준비제도 의장인 벤 버냉키가 2000년대 초반 미국과 영국의 '만성적 무역 적자'의 원인이 아시아와 OPEC 국가들의 '흑자'로 인한 '너무 많은 저축'에 있다고 주장한 것에 뿌리를 둔 진부하고 오래된 생각이다. 그렇기에 과도한 신용 확장과 뒤이은 신용 붕괴는 진실로 일본이나 중국과 같은 나라들이 미국의 상품을 충분히 구입하지 않은 잘못이었다! 지금 그것은 충분히 소비하지 않은 모두의 잘못이 됐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의문은 왜 모두는 충분히 소비하지 않는가이다. 보통의 가구들이 소득과 고용의 감소로 심각하게 훼손됐을 때 이러한 질문에 답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왜 미국과 영국, 유럽의 자본주의적 기업들은 더 투자하지 않는가? 울프는 거대한 경기후퇴 전 신용 확장 기간에 구축된 '과도한 빚'에 그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위기는 '과잉 소비'에서 비롯했고 현재 불황은 '과잉 저축' 때문에 생겨났다. 자본주의는 단지 하나의 상황
[과잉 소비]에서 다른 하나[과잉 저축]로 반복해서 움직일 뿐이다!

또 울프는 투자 부족은 더 이상 생산 자본에의 투자를 원하지 않고 대신 주식시장에서의 활동과 금융자산의 구입을 더 선호하는 자본주의적 기업 문화의 변화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위대한 자본주의 체제는 '금리생활자' 경제가 된 것이다. 나는 전에 이 블로그에서 이러한 주장들과 상대해 왔고 이후 이 주제로 되돌아올 생각이었다. 일단 다시 말하자면 크루그먼과 울프의 설명에는 결국 이윤 생산을 위한 투자로 정의되는 영리경제에서 자본의 이윤율이라는 생각이 전적으로 결여돼 있다.

케인즈주의 불로거인 노아 스미스는 최근 어떻게 불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를 검토했다. "저성장과 (비자발적) 실업 증가의 해법은 비교적 단순하다. 결국 누군가는 유휴 자산을 다 써버리기 시작할 것이다. 이것은 민간 부문이 독립적으로 야생적 충동에 의해 침체를 벗어나거나 정부에 의해서 일어날 것이다." 오, 그렇지 '야생적 충동'이 되돌아올 것이다. 아니면 그들이? 스미스는 "경제가 그래왔던 것처럼 부채 상환 압력에서 기인한 매우 낮은 금리, 저조한 기대감과 자신감 등을 지닌 채 불황으로 남아있을 수 있다는 것이 전적으로 타당해 보이기" 때문에 그들이 바로 그러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불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많은 부채가 여전히 상환되고 있고 (이윤에 대한?) '기대는 낮고' (무엇에 대한?) '자신감은 저조하다'. 여기에서도 이윤율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스미스는 "비이성적으로 꼬인 불황 상태에 있는 시장이 유휴 자원을 바로 써버리기에 적절치 않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대리인은 정부다. 정부는 (유휴 노동을 사용할)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유휴 자본을 이용한) 돈을 빌릴 수 있고 금리를 올리고 실업률을 낮출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은 누구에게도 미래에 대한 정확한 예측을 요구하지 않는다. 단순히 시장경제와 정부가 유휴 자원이 사용되지 않고 있을 때 이것을 이용할 것만 요구한다. … 그리고
[이러한 방법은] 내가 대개 시장 경제를 선호하며 주목하는 것들이다. 정부의 개입은 최소한의 필요를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정부 투자는 민간 투자가 충분치 못할 때 최소한을 유지시킴으로써 곤경을 면하게 할 수 있다.

"실업률 저하와 유휴 자본의 사용으로 (가급적이면 공공 사회기반시설과 과학기술 프로젝트, 신 사업에 대한 대출을 섞어) 더 많은 사업이 만들어질 수 있다." 정부가 구제자 역할을 하면 우리는 정상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물론 곧 아니면 조금 후에 민간 부문은 되살아나 자원을 사용하기 시작할 것이다." 문제는 정상 상태가 "매우 매우 매우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다. 우리가 새로운 세계를 위해 조절된, 변화가 계속됨으로써 조절이 계속되는 생산 체계를 원한다면 막대한 양의 자원을 유휴 상태로 놓아두는 것은 그것을 위해 나쁜 행동이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잘 설정된 재정정책"이 필요하다. 구제를 위한 정부
[말이다].

다시 말하자면 왜 자본이 사용되지 않은 채 놓여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수익성이 충분히 없어서일까? 이윤율을 회복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축적된 비생산적 자본의 가치를 파괴함으로써 (남아있는 가치의) 이윤율을 상승시키고 축적 과정의 재개를 가능케 하는 침체를 관통하는 것이다. 지난 20년간 실물자본과 가공자본 모두가 엄청나게 축적된 후 자본주의는 대공황의 시기에 들어섰다. 1930년대 대공황은 죽은 자본의 대량 파괴 없이 이 침체를 벗어날 수 없었다. 2차 세계대전이 그것을 해냈다. 1880년대와 1890년대에도 계속된 성장을 재개하기 전에 중요한 침체를 겪었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단지 민간 부문을 '자극'하거나 (일시적으로) 대체하기 위해 계획된 더 많은 정부지출은 묘책이 되지 못한다. 자본 축적을 대체한 정부가 계획한 투자는 단지 생산을 이끄는 하나의 방편일 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장기' 침체가 끝나기 전 겪어야 할 또 다른 침체를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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