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7

« 2019/7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  


'제국주의론' 하면 보통 레닌을 떠올린다. 하지만 부하린의 '제국주의와 세계경제'의 성취는 레닌에 못지 않다. 이정로(본명 백태웅)가 옮긴 부하린의 '제국주의와 세계경제'는 당시의 검열 때문에 원작자의 이름이 표기되지 못하고 본문에서도 몇몇 문장을 삭제하고 어떤 표현은 순화시켜 옮겼다. 레닌이 쓴 서문이 빠진 것은 당연하다. 이를 대신해 서문으로 실린 엥겔스의 '유토피아에서 과학으로의 사회주의의 발전' 3장조차도 여기저기 '완화'된 표현으로 인쇄돼야만 했다. 우선은 여기 레닌이 쓴 서문을 옮긴다. 이곳저곳 눈쌀 찌푸리게 할 의역과 오역이 많으니 원문을 꼭 참조하길 바란다. 대괄호[]는 옮긴이가 덧붙인 것이고 소괄호()는 원문에 있는 것이다.


부하린의 제국주의와 세계 경제, 레닌의 서문[1]
원문: N.I. Bukharin: Imperialism and World Economy - Introduction(링크)

니콜라이 부하린이 이 글에서 다룬 주제가 중요하고 시의적절하다는 것에는 다른 어떤 특별한 설명도 불필요하다. 제국주의 문제는 가장 근본적인, 최근 자본주의의 변화한 형태를 고찰함에 있어서 경제학 영역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우리는 말해야 할 것이다. 경제뿐 아니라 오늘날 사회 생활의 어떤 본령에 관심을 가진 모두는 이 문제와 연관된 여러 사실들, 가장 최근 구할 수 있는 자료 중에서 필자에 의해 세밀하게 선별된 사실들을 숙지해야만 한다. 말할 필요도 없이 제국주의의 본질을 완전히 이해하는 데 있어서 그 근거로 경제적이고 정치적 측면 모두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최근 전쟁에 대한 구체적인 역사적 분석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분석 없이 최근 10년 간 경제적이고 외교적인 상황의 이해에 접근하기란 불가능하며 그러한 이해 없이 전쟁에 관한 올바른 판단의 형성을 말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짓일 뿐이다. 근대 과학의 요건을 가장 명확하게 표현하는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는, 외교 '문서'들 또는 일상의 정치적 사건들 여기저기서 끌어모은, 한 나라의 지배계급에게 유익하고 편리할 뿐인 그와 같은 고립된 사실들로 구성된 방법의 '과학적' 가치와 전쟁에 관한 이러한 일련의 분석들에는 오직 비웃어줄 뿐이다. 이렇게 해서, 예를 들면 이제 완전히 마르크스주의와 결별한 플레하노프는 현대에 최고조로 발달한 원숙하고 과숙한 자본주의와 연관된 경제체제로서 제국주의의 근본적인 특징과 경향을 분석하는 대신 푸리시케비치와 밀류코프의 비위에 맞춘 사소한 사실들에 눈높이를 맞추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하에서 제국주의의 과학적 개념은 위에서 언급한 러시아 제국주의자 두 명의 당면한 경쟁자, 적수, 반대자를 향해 내뱉어지는 욕설 수준으로 축소됐다. 그들의 계급적 기반이 외국 경쟁자ㆍ반대자들과 전적으로 같음에도 말이다. 잊혀진 단어, 포기된 원칙, 혼란에 빠진 세계에 대한 개념, 버려진 해법과 엄숙한 약속,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리 놀랍지 않다.

특히 니콜라이 부하린 작업의 과학적 의의는 분명히 가장 고도로 발전된 자본주의 단계로서 제국주의와 전체적으로 연관된 근본 사실을 조사했다는 데 있다. 유럽의 선진국들에서 봉건제를 극복했을 때, 여전히 점령되지 않은 막대한 지역과 아직 최종적으로 자본주의 소용돌이로 끌려들지 않은 나라들로 ‘평화롭게’ 퍼져나가며 비교적 평온하고 조화롭게 발달하는 위치에 있었을 때는 비교적 '평화로운 자본주의' 시대였다. 물론 그 시대에조차, 대략 1871년부터 1914년까지 '평화로운' 자본주의는 군대와 전체 계급이 이해하는 진정한 평화와는 매우 먼 삶의 조건들을 만들어냈다. 선진국 거의 대부분의 대중에게, 식민지와 후진국 인민 수억 명에게 이 시대는 '평화'가 아닌 압제와 고문과 공포의, 끝이 없어 보이기에 더 두렵게 보인 시대였다. 이러한 시대는 영원히 지나가 버렸다. 돌연한 변화와 재앙, 갈등으로 가득찬 비교적 더 충동적인 시대, 그렇지만 힘든 노동에 종사하는 대중에게 더 이상 끝없는 두려움으로만 나타나지 않는, 그러한 공포를 완전히 종결시킬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뒤를 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자본주의와 일반화 된 상품생산[사회]의 뿌리 깊고 근본적인 경향의 직접적인 발전, 성장, 지속에 의해서만 이뤄진 것이란 걸 염두에 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상품교환의 성장, 대량생산의 성장은 전 세계의 나라들에서 관찰되는 근본적인 경향이다. 발달하는 교환의 어떤 단계에서, 성장하는 대량생산의 어떤 단계에서, 다시 말해 대략 19세기가 끝나고 20세기가 시작될 즈음 도달한 단계에서 상품교환은 다음과 같은 것을 만들어냈다. 막대한 규모의 대량생산 증가를 동반하고 독점이 자유경쟁을 대체하기 시작한 경제관계의 세계화와 자본의 세계화. 나라 안과 국가 간 교역에서 기업들의 자유로운 경쟁이 아닌 기업가들의 독점적 동맹, 즉 트러스트가 만연한 형식이 됐다. 특히 유동적이고 신축적인, 특히 국내외적으로 뒤얽힌, 특히 개성이라곤 전혀 없고 직접적인 생산과정과 분리된, 특히 집중되기 쉬운 권력인 금융자본, 이미 집중의 길로 매우 큰 걸음을 성큼 걸어와 문자 그대로 전 세계의 운명을 손에 움켜쥔 억만장자와 백만장자 수백 명의 권력인 금융자본이 세계의 전형적인 지배자가 됐다.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추론은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마르크스주의와 결별했던) 카우츠키가 내렸던 결론, 현재는 자본의 거물들이 하나의 세계 트러스트로 단결할 시기, 즉 국민적 한계를 지닌 금융자본의 경쟁과 투쟁이 세계적으로 단결한 금융자본으로 대체될 때를 그리 멀리 남겨두지 않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결론은 지난 세기의 90년대 '스트루베주의자'들과 '경제주의자'들이 도달한 것과 유사한 결론으로서 추상적이고 단순하며 부정확한 것일 뿐이다. 후자, 자본주의의 혁신적 본질과 불가피성, 러시아에서 자본주의의 최종적 승리로부터 유래한 이들은 어떤 때는 (자본을 숭배하고 자본과 평화조약을 맺고 자본과 싸우는 대신 자본을 찬양하고) 옹호하며, 어떤 때는 비정치적이 되고(즉 정치 또는 정치의 중요성을 거부하고 일반적인 정치적 격변을 부인하는 등 이러한 것들은 '경제주의자'들이 특히 자주 범하는 실수다), 어떤 때는 다름 아닌 '파업'을 설교하기까지 한다(그들에게 '총파업'은 신격화 한 파업운동이다. 그것은 다른 형태의 운동이 잊히거나 무시당할 위치로까지 고양된다. 그것은 한 번의 공격만으로도 자본주의를 파괴할 수 있는 목숨을 건 도약이다). 어느 정도 속물적인 자유경쟁의 '낙원'과 비교되는 자본주의의 의심할 여지없는 혁신성과, 세계의 선진국에서 '평화적' 자본주의에 대한 제국주의의 피할 수 없는 최종적 승리 또한 수없이 다양한 정치적 혹은 비정치적 실수와 불운으로 이어질 것임을 나타내는 징후가 있다.

특히 카우츠키에 관해 말하자면 공개적으로 마르크스주의와 절연한 그는 정치를 거부하거나 체념한 것도, 무수하고 다양한 정치적 갈등과 격변, 특히 제국주의 시대 성격의 변화를 대충 건너뛴 것도 아니다. 제국주의의 옹호자가 된 것도 아니다. '평화로운 자본주의'를 꿈꿨을 뿐이다. '평화로운' 자본주의는 평화적이지 않은, 군사적이고 파멸적인 제국주의로 대체됐다. 카우츠키는 이것이 지나간 시대의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이미 1909년 발표한 특별한 책
[2]에서 결론처럼 이끌어내며 동의한 것이라는 걸 인정해야만 한다. 그렇게 해서 단순하고 직접적이고 직설적으로 제국주의에서 '평화로운' 자본주의로 되돌아간다는 꿈이 불가능하다면, 본질적으로 프티부르주아인 이들이 '평화로운' 초제국주의에 대한 순진무구한 기대를 꿈꾸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초제국주의라는 이름으로 가장 불편하고 가장 불안정하며 가장 혐오스러운, 그렇기에 프티부르주아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전쟁이나 정치적 격변과 같은 갈등을 없애 민족적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국경으로 나뉜) 제국주의의 국제적 단결을 쟁취할 수 있다면, 모든 종류의 갈등과 재앙으로 가득찬 그 맨얼굴을 백일하에 드러낸 이미 도래한 현 제국주의 시대를 외면하면 안 되는 것일까? 그래 비교적 평화롭고, 상대적으로 갈등이 덜하며 재앙이 없는 초제국주의의 순진한 꿈으로 돌아가 보자. 현재 유럽을 지배하는 제국주의 시대에 제기되는 '까다로운' 목표도 한쪽으로 제쳐둬 보자. 아마 이제 곧 지나가버릴 이 시대를 헛되이 보내기보다 그 뒤를 이어 곧 도래할 '과격한 목표' 따윈 필요하지 않은 비교적 '평화로운' 초제국주의 시대를 상상해보는 것도 좋다. 그러나 카우츠키는 직접 이렇게 말했다. 어쨌든 "그와 같이 자본주의의 새로운 (초제국주의) 단계는 고려해볼 만하다. 그러나 그것이 실현될 수 있을지 이 질문에 대답하기에 우리는 아직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하다"고 말이다.(신시대ㆍNeue Zeit, 144쪽, 1915년 4월 30일)[3]

현존하는 제국주의를 회피하려거나 '초제국주의' 시대라는 몽상에 빠져드는 이러한 경향에는 마르크스주의적 요소가 조금도 없다. 이러한 이론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을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지금 자본주의의 현 단계를 고려하면 이 이론은 실현 가능성의 측면에서 그 이론의 창안자 자신에 대한 신뢰를 보장하는 데 실패했다. 그는 우리에게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모순을 두루뭉술하게 만드는 프티부르주아적이고 매우 반동적인 경향을 제안한다. 카우츠키는 다가오는 불안과 파국의 시대, 1909년 목전의 전쟁에 관해 글을 쓰면서 예견했고 분명히 인정해야만 했던 그런 시대에 마르크스주의자로 행동할 것 같이 보였던 때가 있다. 그 시대가 도래한 것이 절대적으로 명백해진 지금 카우츠키는 다시 다가올, 하지만 언제 도래할 지 알수 없는 초제국주의 시대에 마르크스주의자로 행동할 것을 단지 약속할 뿐이다! 다시 말해 현재의 조건, 지금 이 순간에서가 아니라 언젠가 다른 시대에 마르크스주의자로 행동하겠다는 몇몇 약속만 있을 뿐이다. 우리는 내일을 위한 미래의 외상 마르크스주의를 얻었다. 마르크스주의는 약속으로서 연기됐다. 우리는 오늘날 모순을 두루뭉술하게 만드는 현재의 프티부르주아 기회주의적 이론-이론만 그런 것은 아니다-을 얻었다. 그것은 모국과 동맹국들을 제외한 어떤 나라, 즉 적국에 한해서라면 모든 국제주의적 표현에 공감하며, 그들 동맹국들과의 협정이 유지되는 한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동맹 가입자격이 있는 나라가 복속시킨 나라가 아닌 곳에서만 '민족자결권'에 동의하는 우리 시대의 열정적인, 더 이상 열정적일 수 없을 정도로 열정적인 ,국제주의자와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 만연한 수출을 위한 국제주의와 같은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 시대 만연한 수천 가지 위선 중 하나다.

그렇다면 추상적으로 제국주의의 뒤를 이은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 다시 말해 초제국주의 단계의 '가능성'도 거부할 수 있을까? 아니다. 추상적으로 그와 같은 단계는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유연한 미래의 목표를 핑계로 과격한 오늘날의 목표를 거부하는 사람은 기회주의자일 뿐이다. 이론적으로 그것은 자신을 현재의 실제 삶에서 전개되는 사태에 뿌리내리지 못했고 자신을 꿈을 핑계로 그것으로부터 분리시켰음을 의미한다. 모든 기업과 국가를 예외 없이 집어 삼킨 하나의 세계 트러스트를 형성하는 방향으로 사태가 전개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사태는 하나의 세계 트러스트가 도래하고, 개별 나라의 금융자본이 '초제국주의' 세계 연맹을 만들어내기 전까지 앞에 언급한 압력ㆍ속도ㆍ모순ㆍ갈등ㆍ격변-경제적인 것 뿐 아니라 정치적이고 민족적인 것들에서 또한-하에서 전개될 것이고 제국주의는 필연적으로 파국에 이르러 그 반대물로 전화할 것이다.

1915년 12월

각주
1_ 이 서문은 원래 레닌의 익명인 'V. Ilyin' 서명으로 작성됐다[marxists.org 편집자].
2_ 카우츠키의 팜플렛 '권력으로 가는 길(Der Weg zur Macht)'.
3_ 이 구절은 카우츠키의 논문 '다시 사고하기 위한 두 단계(Zwei Schritte zum Umlernen, 신시대ㆍNeue Zeit 5호, 1915년)에서 가져온 것이다.

Posted by 때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