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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년 전의 유령을 불러오며

때때로 2008. 12. 10. 13:04

마르크스(左)와 엥겔스. www.marxists.org


마르크스를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시작은 '공산당 선언'이죠.

레이건과 대처가 대서양의 양안에서 동시에 시도한 신자유주의적 반동은 90년대 그들의 공식 정치에서의 반대자들-미국 민주당의 클린턴과 영국 신노동당의 블레어-에 의해 완성됐죠. "대안은 없다"는 대처의 유명한 말처럼 대다수에게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외의 대안은 없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회적 구제는 밑빠진 독에 물 붙기 처럼 불가능한 목표로 치부됐죠. 대중을 위한 공공 자원의 이용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됐다고 선언됐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신자유주의 찬가는 바로 그 가난한 이들을 위한 서민 주택금융 제도로부터 비롯된 위기로 돌연 끝나고 말았습니다. 비정규직은 그 이름과 달리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상'적인 노동의 형태가 됐죠. 임금의 상승은 물가의 상승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워킹푸어'. 직업이 없어 가난한 것이 아니라 직업이 있음에도 가난해질 수 밖에 없는 사회죠. 한난라당은 여기에 최저임금 제도를 약화시키려고까지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정정길 대통령실장은 실업이 내년 2월엔 체제를 위협하는 위기로 발전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피력하기도 했죠.

우리가 보았듯이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는 억압하는 계급과 억압당하는 계급의 대립에 근거를 두었다. 그러나 어떤 계급을 억압할 수 있으려면 억압당하는 계급에게 적어도 노예적인 존재라도 이어갈 수 있는 조건들이 보장되어야만 한다. … 이와 반대로 현대의 노동자는 공업의 진보와 함께 떠오르기는커녕 자기 계급의 조건 아래로 점점더 깊이 가라앉고 있다. 노동자는 빈민이 되며, 빈곤은 주민 수(數)와 부(副)보다 훨씬 더 빠르게 전개된다. … 부르주아 계급은 자신들의 노예에게 노예상태에서의 생존조차 보장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고 노예들이 자신들을 부양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노예들을 부양해야만 하는 처지에 노예들을 빠뜨리기 때문에 사회를 지배할 능력이 없다.
-『공산당 선언』pp.25~26, 마르크스ㆍ엥겔스, 강유원 번역, 이론과실천

새로운 위기는 과거의 유령을 다시 불러오고 있습니다. 마르크스. 일본에서는 공산당원의 수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자본'의 판매가 급격히 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지난 여름의 촛불 시위는 결과는 미치지 못했지만 20년 전 87년 6월 항쟁의 기억을 되살려줬죠.

다시 마르크스를 꺼내 드는 일은, 단지 그를 추억하기 위함만은 아닙니다. 그를 '예언자'로 보기 때문도 아닙니다. 자본주의적 자유-거래와 소유, 상업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궁극적으로 양립 불가능하며 자본주의적 자유의 승리는 대다수 노동자들의 비참한 처지로의 몰락에 대한 통찰은 마르크스 이전 프랑스 혁명의 주역들에게도 있던 것이죠.

곡물 교역의 자유는 우리 공화국의 생존과 양립할 수 없다. 우리 공화국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소수의 자본가와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누가 곡물 교역을 담당하는가? 소수의 자본가들이다. 왜 그들은 교역을 하는가? 부자가 되기 위해서이다. 어떻게 그들은 부자가 될 수 있는가? 소비자에게 비싼 값에 곡물을 되팔아서이다. 그러나 여러분은 또한 무제한적인 자유로 곡물가를 지배하는 이 자본가와 지주 계급이 노동자의 일당을 결정하는 데서도 지배자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 명의 노동자가 필요할 때마다 열 명의 노동자가 줄을 서 있고, 부자가 결정권을 갖기 때문이다. 부자들은 적게 요구하는 사람을 선택한다. 그는 노동자의 값을 결정하고, 노동자는 그의 법에 따른다. 노동자는 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필요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일당은 16~18수인 반면, 밀은 스티에(setier, 1스티에는 약 75킬로그램)당 36리브르(1리브르는 20수)이다……. 따라서 일당은 생존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
-1792년 11월 19일 국민공회에서 로베스피에르가 구종을 대신해 읽은 청원서

마르크스를 다시 불러오는 것은 무엇보다 그가 사회의 혁명적 개조에 있어서의 대중의 역할과 임무에 대해 신뢰에 기반해 작업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신뢰를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일하게 대중이 스스로의 열망과 의지를 표현할 기회로 주어진 선거에 갈수록 적은 수의 사람만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미국, 한국과 같은 보수 양당제 사회에서 대중은 자신의 선택권을 잃고 투표를 포기하거나 기껏해야 차악에 투표합니다. 더 나쁜 경우는 가난한 노동자들이, 농민들이, 실업자들이 부자들의 정당에 투표하는 것입니다. 민주화 20년, 진보정당 10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여전히 보수적 프레임에 갇혀 있습니다. 혁명적 변화가 '사회'적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것은 단지 몇몇 법률적 제도의 변화를 요청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사회'의 변화는 그 '사회'의 구성원, 대중의 변화를 요청합니다.

기습의 시대, 자각하지 못한 대중들의 선봉에서 자각한 소수가 수행하는 혁명의 시대는 지나갔다. 사회 조직의 완전한 개조가 문제인 곳에서는, 대중 스스로 함께 거기 있어야 하며,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그들이 신명을 바쳐 발을 들여놓는지를 그들 스스로 이미 파악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최근 오십 년의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바이다. 그러나 대중에게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이해하게 하는 데에는 장기간의 지속적인 작업이 필요하다.
-『단행본 서설』 p.442, 엥겔스(콜린 레인즈ㆍ레오 파니치 「'공산주의당 선언'의 유산」 『선언 150년 이후』 p.40에서 재인용)

마르크스의 분석과 통찰은 당시보다 현재에 더 들어맞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역시 그도 역사적 한계를 뛰어넘을 순 없죠. 세계화된 자본주의에 대한 그의 뛰어난 통찰력에도 불구하고 몇몇 부분은 이미 낡았거나 아직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현재에 마르크스를 다시 읽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의 뛰어난 '예언'에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방법론을 배우는 것입니다. 사회를 역사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사회가 고정된 것이 아닌 변화한다는 인식일 것입니다. 또한 이 역사는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에 의해, 그 의도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만들어져 간다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는 역사적 균형 감각을 유지해야만 한다. 새로운 대중적 노동자 계급 정당들이 직면하게 된 복잡한 문제-이에는 노동자 계급 자체 내의 이해 관계의 분할, 전문직 중간 계급의 등장, 그리고 그밖의 많은 문제들이 포함된다-는 맑스가 이룬 발전만으로는 거의 풀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 문제와 대결하면서 대중 정당(금세기의 역사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쳐왔던 공산주의 및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맑스와 엥겔스에 특유한 정치적 실천을 유지하는 데 실패했다.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해석에 기반한 사회과학적 분석을 자신들의 정치적 저작과 연설 팜플렛, 강연, 기사, 연설문, 보고서, 편지들에 결합시킴으로써, 맑스와 엥겔스는 자신들의 투쟁 경험에서 교훈들을 도출하는 방식으로 당대의 역사를 활동가들에게 이해시키고자 노력했으며, 보다 훌륭하게는 '자기 자신들의 역사를 만들고자' 할 수 있었다. 반면에, 사회민주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은 점차로 맑스의 사상을 텍스트나 습득물로서 다루길 즐겼는데, 특히 공산주의자들의 경우엔 이를 도그마(유사-신학적인 재해석에 꾸준히 종속된)로 추종하기 시작했으며, 사회민주주의자들의 경우엔 (반복된 수정 후에) 이를 거부했다. 그 정치적 영향력이 주변적이었던 (주목할 만한 활동가와 지식인들을 발굴했던 그들의 역할을 과소평가해선 안되겠지만) 수많은 군소 혁명집단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공산주의당 선언'의 유산」 『선언 150년 이후』 p.42, 콜린 레인즈ㆍ레오 파니치, 카피레프트 번역, 이후

다시 시작하는 마르크스 읽기. 이 독서의 끝이 무엇일지는 저도 자신하지 못합니다. 20대 초반의 자신감에 기반한 사회주의적 열정은 더이상 없습니다. 하지만 이 읽기가 굳어버린 제 머리에 새로운 상상력의 공간을 만들어주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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