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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윤리의 영역 밖에 놓일 수 있을까 본문

자본주의는 윤리의 영역 밖에 놓일 수 있을까

때때로 2010. 9. 20. 16:00

자본주의에 대한 다양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2008년 이후 지속되고 있는 경제위기로 자본주의의 효율성과 안정성 자체에 대한 의문도 크게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에 대한 가장 오래된 질문은 '이 경제체제가 윤리적인가?'겠죠. 이 의문에 답하며 좌파의 새로운 전략을 제시하고자 시도하는 책이 8월에 나왔습니다. 앙드레 콩트-스퐁빌이 쓴 '자본주의는 윤리적인가?'입니다.


자본주의는 윤리적인가? : 우리 시대의 몇 가지 우스꽝스러움과 독재에 대한 고찰
앙드레 콩트-스퐁빌 지음|이현웅 옮김|생각의나무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자는 자본주의는 윤리적이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비윤리적인 자본주의를 윤리적인 경제체제로 대체해야 하는 걸까요? 저자는 그렇게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있어 자본주의는 (경제-)과학-기술적인 차원의 문제입니다. 이는 가능성의 영역일 뿐 윤리적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과학에 있어서 윤리의 문제가 핵심이 아니 듯, 경제(자본주의)에서도 윤리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비윤리성은 경제적 차원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윤리적 차원에서 대응해야 할 문제라고 주장합니다.

실천적으로 자본주의의 문제를 대응할 때 경제적 차원에서 우리는 전문가들에게 맡겨두어야 한다는 거죠. 기업의 목표는 이윤이지 실업구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단지 우리가 비난할 수 있는 것은 기업이 비윤리적으로 정리해고를 할 때와 같은 것 뿐이죠. 여기서 비윤리적이라 함은, 기업이 대단히 많은 이윤을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리해고를 하는 그런 경우에 제한됩니다.

1970년대 이후 좌파가 직면했던 가장 큰 어려움, 자본주의 외에 더 나은 경제체제는 없는 것 처럼 보인 현실에 돌파구를 내기 위한 시도로 보입니다. 더 나은 '체제'를 발명하는 것보다는 이 체제를 인정하고 조금 더 윤리적으로 만드들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죠. 하지만 저자의 그러한 시도의 결과는 대개 현실의 여러 쟁점에 있어서 우파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실제로 그는 지난 몇 년간 프랑스를 뒤흔들었던 세계화, 실업, 유럽헌법 등의 쟁점에서 우파의 손을 들어줍니다.

저자의 이러한 정치적 태도는 그의 주장이 사실은 이 체제를 옹호하는 경제학자들의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데서 비롯한 것으로 보입니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많은 부분에서 이러이러한 문제는 경제적 문제이고 다른 대안은 불가능하다라며 흔히 우리가 '비윤리적'이라고 비난하는 것들에 대해 옹호하곤 하죠. 이를테면 '한미FTA와 같은 세계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혹은 '우선 기업이 살아야 고용도 가능하니 경제가 어려울 때 정리해고는 어쩔 수 없다'와 같은 주장들 말입니다.

물론 저자는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 윤리적 차원에서 대응하자고 합니다. 경제는 '원래' 비윤리적이니까 우리가 윤리적으로 되자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참으로 요원한 일이죠. 결국은 기업가들의 '자비'에 기대자는 얘기와 뭐가 다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그가 주되게 강의하는 대상은 기업가들이죠. 그는 '정치적 차원'의 문제와 동시에 사고할 것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책의 2부에서 질문과 답변 형식을 통한 매우 상세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 (경제-정치-윤리를 잇는) 연결고리는 불분명합니다.

최근 좌파들 내부에서 칸트로의 회귀가 눈에 띕니다. 하지만 이는 마르크스를 비롯한 정치-경제학자들이 이뤄냈던 발전을 거꾸로 되돌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명백한 지적 후퇴라고 생각합니다. 윤리학자인 애덤 스미스가 정치-경제학의 고전인 '국부론'을 썼던 것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죠.

제게는 우리 삶의 대부분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경제를 외면한 채 우리의 윤리적 삶,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꿈이 매우 허황돼 보입니다.

게다가 이 책에서 매우 갑갑한 것은 네가지 차원의 구분을 그토록 강조하면서도 경제가 왜 과학-기술적 차원에 놓여야 하는 지에 대한 논증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약간 비겁해보이기도 합니다.  그는 떳떳하게 경제-과학-기술적 차원이라고 쓰지 않고 (단어가 너무 길어진다는 핑계로) 과학-기술적 차원이라 줄여서 말합니다. 그의 이 책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경제가, 자본주의가 과학-기술적 차원의 문제라고 입증하는 것입니다.

도발적인 제목으로 독자를 유혹하지만 앙드레 콩트-스퐁빌의 책은 그 제목만큼 도발적인 내용은 담지 않고 있습니다. 대개는 이 체제를 옹호하며 몇몇 쟁점에 있어서 윤리적 태도를 견지하는 자유주의자의 그것과 다르지 않죠. 그래서일까요. 그는 스스로를 '좌파적 자유주의자'라고 칭합니다. 굉장히 솔직하면서도 정확한 평가인 듯 합니다.

앙드레 콩트-스퐁빌의 책은 정치적 주장에도  결점이 있지만 그 논증도 불철저한 듯 보입니다. 자본주의 체제에 새롭게 윤리적 의문을 갖게 된 분들에게 권하기에는 못미더운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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