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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나무에서 의욕적으로 펴내고 있는 問라이브러리의 세 번째 책은 최장집 교수의 '한국민주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입니다. 은퇴를 전후해서도 의욕적인 활동을 펼치며 한국 민주주의에 있어 협애한 이념적 기반의 정당체제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최 교수는 올해 상반기를 뜨겁게 달군 촛불시위를 경험하면서 한층 더 깊어지 통찰력을 이 책에서 보여줍니다. 급하게 준비된 느낌이 역력한 이 책은 문장과 논지의 전개에 있어서 최 교수의 이전 책들보다 덜 다듬어졌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지만 87년 6월 항쟁과 비견될만한 촛불시위가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어떻게 진화해야 하는지를 짧지만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10월 11일, 6월과 7월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사람이지만 수천 명의 무장한 전투경찰의 위협과 보수 언론들의 데마고기를 고려한다면 매우 의미있는 수의 사람들이 청계광장에 모여 촛불을 다시 밝혔습니다. 촛불 시즌2를 준비하는 분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합니다.

한국 민주주의 무엇이 문제인가  최장집|생각의나무|問라이브러리 003


민중과 시민-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두 개의 다른 방법

그러나 이러한 투쟁을 통해 만들어진 민주화된 정치환경에서 민주화라는 하나의 단일목표를 통한 최대연대는 자동적으로 형성되지 않기 때문에 그 행동원리는 급진적으로 달라진다. 여기서는 평화적 선거를 통한 다수표 획득을 위한 경쟁이 기본원리가 된다. 어떻게 최대다수연합을 유지할 것인가? 이제 문제는 민주화투쟁을 주도했던 민중동맹이 민주화된 이후에는 그 단일성과 일체성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민주화최대동맹은 ㅁ니주화된 이후까지 단일동맹을 유지한다는 암묵적 연대에 기반한 것이 아니다.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는 완전히 열려있는 문제이다. 최대동맹은 민주주의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사회경제적 지위와 역할에 따라, 계층적 이익에 따라, 북한문제를 생각하는 관점에 따라, 문화적 가치에 따라, 출신지역과 지방의 배경에 따라, 공동체의 성격을 이해하는 것에 따라, 수많은 요인들 그 중에서도 특히 실제 대중들의 삶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회경제적, 계층적 지위와 역할에 따른 이해관계의 차이라는 요인이 작용한 결과 필연적으로 해체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를 갈등이라고 말하며, 민주주의는 간단히 정의해서 갈등과 그 타협에 기초한 정치체제이다. 갈등을 어떻게 조직하고, 어떤 정당과 정당체제를 통해 이를 정치적으로 대표하고, 이들이 어떻게 선거경쟁의 대립 내지 경쟁축을 형성하는가 하는 문제가 민주주의 정치의 성격과 그 방향을 결정짓는 데 관건이 된다는 말이다.
26~27pp.

[운동권의 반정당적 태도의] 두 번째 요인은 민주화가 혁명은 아니기 때문에 정치의 권력구조와 정당을 제도화하는 데 있어 대체로 구체제의 내용을 승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정당과 정당체제뿐만 아니라 주요 정치인들까지 구권위주의체제와 뚜렷한 연속성을 보였으며, 차이는 이들이 참여하는 게임의 규칙이 민주적으로 변했다는 점에 국한되었다. 기존의 정당과 정치인들이 정치공간을 선점하였기에 변화를 주도한 중심세력의 제도권 참여는 제한적이었다. 이는 새로운 정치적 가치와 개혁목표를 가진 운동권세대들이 주도적으로 새로운 정치체제를 만들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이들의 정치참여는 극히 제한적이고 개별적이고 부분적이었으며, 그들이 대면했던 정치체제, 정당체제, 선거제도는 구체제로부터 지속된 것이기에 비민주적이고 부패한 부분이 많았다. 따라서 민주화 이후 정치제도와 정치질서는 개혁의 중심대상으로 부상했고, 그 개혁의 가치와 기준에는 이들 새로이 유입된 운동권적인 요소들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 내용은 그들의 도덕주의적 정치관을 토대로 정치에 있어 투명성, 효율성, 그리고 전문성의 가치를 증대시키는 것이었다.
38~39pp.

한국의 노동ㆍ복지 개념은 여전히 전자(물질적 급부)의 경우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그것은 민주주의의 근본가치로서의 시민권 개념이 아니라, 한국의 조선조로부터 권위주의 시기에 이르는, 그리고 민주화 이후 2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지속되는, 또는 영국의 14~17세기 초 구빈법의 정신이 되는 빈자에 대한 온정주의적 구제의 가치관에 입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양극화를 말하고 사회복지를 말하고 약자에 대한 보호를 말할 때, 말하는 자는 언제나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스스로를 온정을 베푸는 자혜로운 엘리트로 생각한다. 민주적 시민이 문제를 보는 방식은, 보편적 가치를 향유해야 할 사람들 스스로가 정치과정에 참여하고 있느냐 아니냐의 관점에 바탕을 둔다. 그렇지 못한 경우라면 이들은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한다. 이러한 시민적 민주주의관이 저절로 획득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민주주의를 위한 개혁이 필요하다면, 다른 무엇보다도 그것은 민주주의를 직접 경험하고 이를 학습하는 교육과 실천의 기회를 넓히는 일이며 이를 위한 제도개혁이라고 하겠다.
54~55pp.


정치적 민주화-한국 민주주의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에서 민주화는 해방 이후 오랜 권위주의 정치체제가 구축해놓은 기존 질서의 조건에서 발생했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의 민주화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데, 하나는 민주주의 제도와 규칙을 민주화 이전의 구체제에 부과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동안 제도권 밖에 위치했던 민주화운동 세력과 그들의 대의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정치에 참여함은 물론 그 요구들이 민주주의체제 내로 일정하게 수용되는 것을 뜻한다. 말하자면 구체제에서 성장한 기득이익 세력과 이에 비판적인 민주화운동 세력을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제도적 틀 속에 함께 위치시키는 것으로, 두 세력들이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제도화된 정치의 틀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혁명의 형태가 아닌 그 어떤 민주화도 이러한 경로를 피할 수는 없었다. 민주주의의 내용적 발전이든 진보든 이 틀 안에서 경쟁을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의 여러 갈등과 균열이 정치적으로 대표되고, 조직될 수 있는, 즉 이들 다양한 갈등과 이익을 정치적으로 포괄할 수 있는 정당/정당체제의 제도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민주주의제도 가운데서 정당을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중심적인 집단적 행위자라 말하는 이유는, 정당이야말로 정치의 틀 안에서 사회의 주요 갈등과 균열을 대변하고 조직하는 가장 중요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60~61pp.

한국사회에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특히 국제금융위기의 효과와 더불어 가속화되는 상황과 민주화가 시기적으로 일치한다는 것은 두루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동안 신자유주의는 사회의 지배적 가치로 사회화 및 교육되고, 경제정책 뿐만 아니라 문화교육정책을 비롯한 주요 영역에서의 정책의 기조로 수용되고 추진됐다. 여기에서 신자유주의의 긍정적, 부정적 효과를 포함하여 이를 평가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신자유주의가 정치적 수준에서 민주주의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필요하다. 이 문제에 관련하여 정치학자 필립 쉬미터-테리 칼의 말을 들어본다. 신자유주의의 이념형적 극대화는 자율적 시장을 중심으로 한 사익의 극대화라 하겠고, 그 다른 반대의 극에는 사적 재산권과 시장의 기능이 국가의 개입에 의해 극도로 축소된 공적 영역 중심의 사회주의적 체제가 있는 것으로 상정해볼 수 있다. 그러할 때 사익의 극대화를 실현하는 것이 가능한 극단의 조건에서는, 공익을 실현할 수 있는 국가와 정치의 역할이 최소화되고 시장자유화의 실현이 극대화된다. 다른 한편의 극에서는 공익이 극대화되는 어떤 조건, 여기에서는 국가의 역할과 아울러 공적 영역이 극대화되고, 사적 시장영역의 최소화와 더불어 재산권을 포함하는 사적 이익의 추구도 어려워진다. 전자를 신자유주의적 자유시장이 완벽하게 실현된 상황, 그러므로 집합적 필요를 충족시키고 정당한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기반을 해체하는 상황이라 할 때, 후자는 사회주의적 상황으로서 개인적 선호를 만족시키고 정당치 못한 정부행위를 제한할 기초를 파괴하는 결과를 만들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초점은, 그 어느 쪽이든 양극에 가까이 갈수록 민주주의의 존립기반이 약화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이 양극의 중간지점 어딘가에서 적절한 기반을 가질 때만이 존립이 가능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민주화 이후 한국의 상황은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의 해게모니에 있어서나 정부정책의 이념적 기반에 있어서나 신자유주의적 극을 향하여 내달아왔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민주주의의 가치는 약화되고, 그 사회적 기반이 크게 위축된 것이 오늘의 현실인 것이다.
75~76pp.


이명박 정부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게 되나?

[대선 투표 결과를 국민들의 우경화로 해석하는 것에 대해] 무엇보다 이러한 해석이 간과하는 것은 투표자의 관점에서 선택의 구조가 되는 정당체제와 경쟁을 구성하는 후보들에 대해서이다. 그것은 특정의 구조를 상정한 여론조사를 통해 나타난 결과에 불과하거나 투표의 집합적 결과만을 두고 편의적,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투표자들은 자신들의 선호에 맞게 자유롭게 정당과 후보를 선택지에 포함시켜 투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경쟁의 틀(Format)을 형성하는 주어진 정당들과 그 후보들 사이에서만 결정할 수 있을 뿐이다. 즉 유권자는 주어진 것 가운데서 상대적으로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같은 상대적 선택마저도 어려운 경웅 그들은 선택을 거부하고 기권을 선택하게 된다. 물론 기권에는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주의에서 비롯된 소극적인 것도 있겠지만, 주어진 선택의 구조로서의 정당체제를 거부하는 적극적 기권도 엄연히 존재한다. 그리고 비교적 관점에서 한국의 유례없이 낮은 투표율[2007년 대선에서 63%, 37%가 기권]은 후자가 상당하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한다.
100p.

그렇다면 한국에서 투표율이 왜 그토록 낮은가의 해답은 비교적 분명해 보인다. 그것은 한국의 정당체제가 전체적으로 보수화함으로써 유권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정당대안들이 모두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보수화한 것은 투표자들의 이념정향이 아니라, 경쟁의 틀이고 선택의 구조인 정당체제인 것이다.
101p.

민족문제는 한국정치에서 과도하게 정치화되어 이데올로기의 정치, 또는 정치의 이데올로기화를 불러왔다면, 그와는 다르게 노동문제는 과도한 정치화는커녕 거의 정치화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노동문제에서 탈정치화가 발생하게 된 것은, 민족문제가 불러온 정치의 이데올리기화가 노동문제 영역으로까지 확산된 효과 때문이다. … 냉전이념은 권위주의 시기 현실정치의 변화를 요구하고 이를 시도한 비판세력들을 제압하는 데 사용된 한국 보수파들의 커다란 정치적 자산이자 자원이었다. 한국의 보수파들이 냉전반공주의를 통해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로 유지하면서, 그에 의존하려는 정향 내지 태도는 민주화 이후 상황에서도 권위주의 시기의 그것과 별반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인다. … 그러나 민족문제를 둘러싼 이데올로기의 정치가 순전히 보수파들만의 책임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민주화 이후 진보파들 역시 보수파의 냉전반공주의를 비판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그들의 정치적, 도덕적인 자원으로서 급진적 민족주의 이념을 적극적으로 불러들였기 때문이다.
105~107pp.

[국가적 차원의 중대한 프로젝트의 추진 과정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다음과 같은 방식을 띤다. 제일 먼저 문제의 시작으로서 하나의 권력이 수립된다. 그리고 최고결정자는 무엇이 국가이익이며 전체사회를 위한 공익인가를 정의한다. 다음으로 최고결정자는 그를 둘러싼 극소수의 테크노크라트와 함꼐 이를 정책화, 프로그램화하는 결정을 내린다. 여기에서 공익의 내용은 경제발전, 경제성장과 이를 성취하는 속도를 핵심요소로 포함한다. 그 정책의 내용과 결정의 동기는 실제로 국가이익을 위한 것일 수도 있고, 통치자의 권력확대나 사적인 개인이익의 추구일 수도 있다. 이러한 결정은 어느 날 대통령의 의지가 담긴 정부정책의 이름으로 사회에 공표되며, 국가 내지 정부의 모든 기구들은 '국익'의 실현을 위해 동원되고, 그것은 또한 과격하고 급속하게 추진되다. 이를 뒷받침하는 데 있어 그 정책의 정당성을 공중의 여론으로 만드는 주류언론들의 역할 또한 지대하다. 이 과정에서 반대여론이 세력화되고 운동으로 표출될 때, 그것은 국익에 반하는 '정치논리' 또는 사회전체 이익에 반하여 특수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기주의'의 발로로 비판되며, 자주 이데올로기적 언사를 통해 규탄된다. 이러한 과정은 분명 권위주의하에서 실천되는 전형적인 정책결정 방식이다. 그러나 이 결정방식은 지난 정부의 한미 FTA 협상정책이나 현 정부의 쇠고기수입협상에서 나타난 특징을 요약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단지 그것은 권위주의에서는 권력이 어떤 초법적 힘의 사용에 의해 수립되는 반면, 민주주의에서는 선거에 의해 통치자가 선출된다는 것 뿐이다.
114~115pp.


촛불집회가 제기하는 한국 민주주의의 과제

우리는 민주화 이후 깊숙이 변화된 사회를 한편으로 하고, 보수적 리더십이 갖는 민주주의에 대한 협애한 이해와 구시대적 통치방식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양자 사이에는 위태로울 만큼 커다란 간극을 보게 된다.
139p.

[강력한 대통령이 허약한 입법부와 사법부를 압도하는 구조적 특성] 그것은 정당-의회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한 집행부에 아무런 견제력을 갖지 못하고, 정책결정의 이니셔티브를 포함하여 의미 있는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즉 국가기구 내지는 정부구조 내에서 이른바 삼권분립의 원리가 작동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정부 밖에 존재하며 사회경제적 균열과 갈등으로부터 발생하는 시민들의 다양한 사회경제적 이익과 가치, 요구와 의사들을 조직하고 대표하는, 이익집단을 포함하는 자율적 결사체들의 발전수준 역시 매우 허약하다는 사실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다.
142p.

촛불집회는 민주주의의 제도들이 무기력하고, 작동하지 않고, 그 중심적 메커니즘으로서의 정당이 제 기능을 못할 정도로 허약할 때 그 자리를 대신한 일종의 구원투수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이 점에서 촛불집회는 한국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143p.

오늘의 촛불집회는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갈등과 불만을 해소하는 평화적 제도로서의 종이돌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사태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촛불집회로 제기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민주주의제도를 넘어서는 어떤 방법으로서가 아니라, 그 제도를 더욱 강화하고 발전시키는 방법을 통해서이다.
147p.

이번 촛불집회가 가지는 중요한 의미 가운데 하나는 시민들이 민주화라는 큰 얘기가 아니라, 그들의 실생활과 직결되는 구체적인 사회경제적 정책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중요한 전환이다. 민주화 이후 한국의 정당들은 그것이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그 이념적 호칭과는 별개로, 시민들의 실생활문제와 직결되고 그에 기초한 대안적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을 갖지 못했다. 참여의 기반을 확대한다는 것은 그동안 참여로부터 소외된 사회세력의 대표성을 넓히고 강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참여의 폭의 변화는 정책의 내용과 결과를 바꾸는 변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치참여의 폭을 넓히고 이를 통해 제도의 변화를 가져왓어야 했다는 측면에서 볼 때, 앞선 6월항쟁이 남긴 유산은 그렇게 성공적인 것이라 평가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는 오늘의 촛불집회가 참고해야 할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오늘의 촛불집회가 참여의 폭을 확대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한다면, 그것은 21년 전 6월 항쟁이 남긴 긍정적 유산의 목록에 더해질 것이다.
148~149pp.

Posted by 때때로


출판사 '생각의나무'에서 問라이브러리라는 새로운 문고판 인문ㆍ사회 시리즈를 시작했습니다. 첫 6권으로 김우창, 도정일, 최장집, 장회익, 강수돌, 윤평중의 책이 나왔죠.

6권을 한 번에 사서 장식만 해두는 것보다 한권씩 차분히 읽어보는 게 좋을 듯 해서 도정일 교수의 '시장전체주의와 문명의 야만'과 최장집 교수의 '한국 민주주의 무엇이 문제인가'를 선택했습니다.

도정일 교수의 책은 95년부터 2007년까지 여러 곳에 실렸었던 6편의 글을 모아놨습니다. 그 중 3편은 1999년도에 쓰여진 글이죠. 꽤 긴 시간을 사이에 두고 쓰여진 글들이지만 이 단편적인 글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제목에서 쓰였듯 '시장전체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91년 동구 '현실 사회주의'권 국가의 몰락 이후 시장의 원리를 사회 조직의 기본원리로 격상시키고자 하는 신자유주의 지지 세력의 기세는 나날이 강해져서, 사실 최근 미국의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그리 크게 그 지위가 손상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 책에서 도정일 교수가 누누히 얘기하는 것은 이러한 시장 근본주의가 그들이 내세우는 목표와 달리 오히려 인간의 자유와 선택을 억압하고 인간의 존재 조건을 더욱 야만화시킨 다는 것이죠.

지난 10년의 민주화 세력의 집권 기간에도 결코 약해지지 않았고 오히려 그 세를 확산시켜왔던 신자유주의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노골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럴 때 더 시의적절하게 다가오는 글들인 것 같습니다. 물질적 풍족이 아니라 정신적 자유로움과 풍요를 꿈 꾸는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시장전체주의와 문명의 야만  도정일|생각의 나무|問라이브러리 002


'경쟁력, 수월성, 창의성의 비극' 《비평》 15호|2007년 여름

가장 무시무시하고 살벌했던 것은 정부 차원에서 퍼뜨린 '생존논리'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 한다"는 말을 원본으로 해서 (그게 한 시절 대통령의 말이었으니까) 세계화 시대에는, 또 무슨 시대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 경쟁력 없으면 죽는다, 바뀌어야 산다, 뒤처지면 죽는다 식으로 이어졌던 것이 '생존논리'다. 무엇무엇 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말하는 이 위협의 논리가 국민들에게 준 겁박 효과는 상당하다. "경쟁력이 머시여? 그거이 없으면 죽는다든디?"로 요약되는 것이 겁박의 효과다. 게다가, 그 "죽는다"는 말은 1997년 아이엠에프 금융위기를 겪고 있던 사람들 앞에 겁박 이상의 현실적 가능성이 되어 나타난다. 실직, 파산, 자살, 노숙자 등을 보면서 국민들은 그 일련의 위기가 남의 얘기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에게 닥칠 수 있는 일이라는 가능성 앞에서 몸서리친다. 한겨울 지하철 역사를 메운 노숙자들의 모습은 세기말 한국인의 뇌리에 '트라우마(외상)'와도 같은 깊은 상처와 충격을 안겨놓는다. 실직과 도산으로 자기 자신이 사회적 열패자가 되고 낙오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은 가감 없이 '거세공포' 그대로다. 그렇게 해서, 겁먹고 주눅 든 국민들 사이에 '공포의 문화'라고 부를 만한 불안심리, 자신과 가족의 안전한 생존부터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의 정신상태가 조성된다. 근년 들어 한국 사회를 쪼개 놓은 빈부 양극화 현상도 불안과 공포를 한국인의 거의 항구적인 심리적 현실로 만들어놓고 있다.
110~111pp.


'시장전체주의와 인문 가치' 《녹색평론》 48호|1999년 9~10월

사회갱신에 결정적으로 필요한 것이 기억, 상상력, 이성의 작동이다. 기억과 상상력과 이성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그러므로 어떤 사회체제에서도 포기될 수 없는 인간의 대표적 정신기능들이다. 기억은 여기서 '과거 섬기기'를 위한 메커니즘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오류수정의 정보를 공급받고 그 정보를 미래의 시간에 되먹이기 위한 창조기제이다. 상상력은 인간의 일과 역사가 온갖 종류의 오만과 뜻밖의 실수와 의도되지 않은 우행들로 뒤덮일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사유능력이며 과거규범과 현실원칙들의 적용이 정지되 수 있는 대안세계의 상상적 제시능력이다. 이성은 오류를 판단하고 착각을 인지하며 미망을 진단한다. 지금은 이성의 오만에 대한 반성이 치열한 시대이다. 그러나 어떤 사회도, 어떤 역사시대도, 어떤 사유체계도 이성의 능력에 작동 중지령을 내리지 못한다. 이성의 능력에 모라토리엄이 걸리는 순간 시대는 암흑 속으로 돌입한다. 프랑크푸르트 이론가들이 늘 말했듯, 이성의 오류를 잡아내고 그 실수를 치유하는 것도 이성이다. 기억, 상상력, 이성 - 이들 세 가지 능력이 제대로 작동되고 상호견제하고 균형을 유지할 때에만 인간은 그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며 그것을 잃었을 때 되찾을 방법을 궁리하고, 무엇이 그 상실의 원인인가를 안다. 기억의 능력을 최대화하려는 것이 역사이고 상상의 능력을 최대화하려는 것이 문학을 포함한 예술이며, 이성의 능력을 최대화하려는 것이 철학이다. 문사철(文史哲)은 그래서 인문학의 대종을 이룬다. 사회적 관점에서 말하면 인문학의 이 분과 갈래들은 기억, 상상력, 이성으로 대표되는 인간능력의 공적 사회적 사용과 그 능력 에너지의 공급을 안정화하기 위한 체계이며, 이 체계는 이미 사회제도이다. 이것이 인문학의 사회적 의의이고 대학에 인문학이 존재하는 사회적 이유이다.
185~186pp.

나치 독일의 파시즘과 스탈린의 소비에트 전체주의는 정치독재와 기술을 결합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기술적 방법지와 실용교육을 강조했던 것이나 반지성주의를 취택했던 것도 두 체제의 공통점이다. 두 체제의 관점에서는 비판적 지성이니 지식인이니 하는 것은 국가의 적이고 사회의 똥이다. 파시즘을 피해 영국으로 도망치면서 칼 만하임은 "나치의 군홧발에 독일의 모든 지성이 침묵했다"고 술회하고 있다. 지식인은 때로 허황되고 추상과 관념에 빠져 공론이나 전개하고 딴지걸기를 장기로 삼는 버릇을 갖고 있다. 그러나 나치 독일과 소비에트가 몰락한 데에는 비판적 지성의 학살이라는 어리석은 선택이 큰 요인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망각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음울한 가능성은 권력-자본-기술의 3자 연정이며 이 연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이 새로운 형태의 시장전체주의이다. 시장전체주의는 정치전체주의보다 훨씬 날씬하고 세련되고 화려하고 풍요롭다. 시장 체제에는 외견상 자유가 있어 보이고 자유경쟁과 자유선택, 자율결정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시장전체주의적 시장의 신은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를 박탈하고 선택의 이름으로 선택을 제한하며 다양성의 이름으로 다양성을 죽인다. 시장의 신이 벌이는 풍요의 잔치는 그 풍요성의 외관에도 불구하고 영혼을 거지 만드는 정신의 비참한 궁핍화, 공허한 가치, 내적 빈곤의 기원이기도 하다. 시장의 신은 오락, 소비, 향락의 문화로 세상을 장악하며 비판 지성을 침묵시키고 사회의 창조적 에너지들을 고갈시킨다. 인문학 위기론은 이런 궁핍화, 침묵, 마비의 가능성에 대한 경고이다. 지식기반 사회의 건설을 국정목표의 하나로 내세우고 있는 정부는 경박한 지식행상들로부터만 알량한 공식과 신조어를 공급받을 것이 아니라 인문학 위기론이 무엇을 문제 삼고 있는지를 숙고함으로써 정권의 당면 이해관계나 수임기간을 넘어서까지 사람과 사회의 장래를 생각하는 장기적 정책비전을 세우고 그 비전에 폭과 깊이의 차원을 줄 필요가 있다.
198~199pp.

Posted by 때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