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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앞에서 생산수단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은 생산물의 생산을 위한 동일한 노동과정의 한 단계로 취급될 수 있음을 살펴봤다. 생산수단의 가치는 생산과정에서 보존되어 생산물로 이전한다. 면화는 방적노동에 의해 소멸되어 면사의 형성요소가 된다. "생산수단의 사용가치의 원래의 형태는 소멸되지만, 그것은 오직 새로운 사용가치의 형태로 다시 나타나기 위해 소멸될 뿐이다"(265쪽).

"노동자가 소비된 생산수단의 가치를 보존하는 것[즉, 그것을 생산물의 가치성분으로 생산물로 이전하는 것]은 노동자가 노동일반(勞動一般)을 첨가함으로써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첨가되는 노동의 특수한 유용성(有用性), 그것의 특수한 생산적 형태에 의해 그렇게 하는 것이다."(265쪽)

그러나 노동자가 생산수단에 가치를 첨가하는 것은 오직 추상적인 사회적 노동으로서만 그렇게 한다.

"노동의 단순한 양적(量的) 첨가에 의해 새로운 가치가 첨가되며, 첨가되는 노동의 질(質)에 의해 생산수단의 원래의 가치가 생산물에 보존된다. 노동의 이중성(二重性)으로부터 생기는 이러한 이중의 효과는 여러 가지 현상들에 명백히 나타난다."(266쪽)

생산조건의 변화로 방적노동이 동일한 시간에 여섯 배의 면화를 면사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하자. 동일한 시간의 노동에 생산물로 이전되는 생산수단의 가치는 여섯 배가 된다. 그러나 여섯 배의 생산수단에 첨가된 노동량은 이전과 같다. 즉 1파운드의 면화는 이전의 1/6의 노동만이 첨가된다. 생산성이 변하지 않고 생산수단의 가치가 변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계산할 수 있다.

생산적 노동은 생산수단의 사용가치와 가치를 소멸시키고 가치를 새로운 생산물로 이전한다. 노동자는 원래의 가치를 보존하는 한에서만 새로운 노동을 첨가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첨가하는 노동은 반드시 특정의 유용한 형태이어야 하며, 생산물들을 새로운 생산물의 생산수단으로 사용해 그들의 가치를 새로운 생산물로 이전하지 않고서는 유용한 노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273쪽).

"가치를 첨가하면서 가치를 보존한다는 것은 활동중의 노동력[살아 있는 노동]의 자연적 속성이다. 이 자연적 속성은 노동자에게는 아무런 비용도 들지 않으나 자본가에게는 현존하는 자본가치의 보존이라는 큰 이익을 가져다 준다. 경기가 좋은 동안에는 자본가는 돈벌이에 눈이 어두워 노동의 이 무상(無償)의 선물을 보지 못하지만, 노동과정의 강제적인 중단, 즉 공황(恐慌)은 자본가로 하여금 이것을 절실하게 느끼도록 만든다."(273~274쪽)

정리하면 생산과정에서 소모되는 것은 생산수단의 사용가치다. 가치는 소비되지 않는다. "생산수단의 가치는 생산물의 가치에 재현(再現)"된다.

그러나 노동과정의 다른 요소, 활동하는 노동력의 경우는 다르다. 노동은 구체적 유용노동으로서 생산수단의 가치를 새로운 생산물로 이전하는동안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 앞의 7장의 예에서 방적공이 6시간의 노동을 하고 일을 마친다고 하자. 그는 12원의 생산수단에 3원의 가치를 덧붙인다. 이는 생산수단으로부터 이전된 가치(12원)를 넘는 가치다.

"이 가치는 이 생산과정 내부에서 발생한 유일한 본원적 가치(本源的 價値)이며, 생산물의 가치 중 이 과정 자체에 의해 생산된 유일한 부분이다."(275쪽)

물론 우리의 자본가는 자신이 노동력 구매를 위해 지출한 화폐(3원)를 들먹일 것이다. 지출된 화폐에서 보자면 3원이라는 새로운 가치는 재생산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적으로 재생산된 것이고, 생산수단의 가치처럼 외관상으로만 재생산된 것【가치가 이전된 것】은 아니다. 한 가치의 다른 가치에 의한 대체는 이 경우 새로운 가치의 창조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276쪽)

당연히 우리의 자본가는 6시간을 넘겨 노동과정을 지속시킨다. "따라서 노동력의 활동은 자기 자신의 가치를 재생산(再生産)할 뿐 아니라 일정한 초과가치(超過價値)를 생산한다. 이 잉여가치는 생산물의 가치와 그 생산물의 형성에 소비된 요소들[즉, 생산수단과 노동력]의 가치 사이의 차이(差異)이다"(276쪽).

마르크스는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한다. 그는 생산수단과 노동력 구입에 들어간 자본 중 생산수단에 투입된 것을 불변자본이라고 부른다. 이는 생산수단의 가치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시장에서 생산수단의 가치는 생산조건 등의 변화로 끊임없이 변동한다). 생산과정에서 생산수단은 그 가치를 보전하고 이전할 뿐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노동력 구입에 들어간 자본을 가변자본이라고 부른다. 노동력은 그 자신의 등가물을 재생산하고 그 이상의 초과분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Posted by 때때로

가치변화는 어디에서 일어나는 것일까? 우선 화폐 그 자체로는 가치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 구매수단과 지불수단으로서 화폐는 상품의 가격을 실현할 뿐이다. 화폐를 유통에서 빼내어 쌓아놓는 것(퇴장)이 가치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도 자명하다.

자본으로서 화폐의 유통을 다시 살펴보자. 구매한 상품을 다시 판매하는 과정(C-M)에서도 가치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는 상품을 현물형태로부터 화폐형태로 재전환시키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치변화는 구매(M-C)한 상품에 의해서만 일어날 수 있다. 이 상품의 가치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구매 또한 오직 그 가치대로 지불되는 등가물끼리의 교한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가치변화는 오직 그 상품의 현실적인 사용가치(使用價値)로부터, 다시 말해 그 상품의 소비(消費)로부터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한 상품의 소비로부터 그 가치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우리의 화폐소유자는 유통분야의 내부, 즉 시장에서 그것의 사용가치가 가치의 원천으로 되는 독특한 속성을 가진 상품[즉, 그것의 현실적 소비 그 자체가 노동의 대상화, 따라서 가치의 창조로 되는 그러한 상품]을 발견해야만 한다. 사실상 화폐소유자는 시장에서 이와 같은 특수한 상품을 발견하는데, 그것은 노동능력, 즉 노동력(勞動力: labour-power)이다."(218~219쪽)

화폐소유자가 노동력을 시장에서 상품으로 구매할 수 있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노동력의 소유자는 그것을 시장에 내놓기 위해서 자신의 노동력을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어야 한다. 노예와 농노는 노예주와 봉건영주의 의지로부터 자유롭게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에 내놓을 수 없다. 또한 노동력 소유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오직 한정된 시간 동안만 판매해야 한다. 자신의 전 생애를 모두 판매하게 된다면 그는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한 노예 혹은 농노와 같은 상태에 처하게 될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노예적 강제 노동을 오직 일탈로서만 받아들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개별 자본가의 이해와 달리 보통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의 정부는 노예적 강제 노동을 강력히 단속하려 한다).

노동력이 상품이 되기 위해서 필수적인 두 번째 조건은 노동력의 소유자가 그 자신을 시장에 상품으로 내놓는 방법 이외에 자신의 생활수단과 상품을 생산할 수단(생산수단)을 지니고 있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생활 유지 혹은 시장에 내놓을 상품의 생산을 위한 수단을 지닌 노동자는 그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에 내놓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화폐가 자본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화폐소유자는 상품시장에서 자유로운(free) 노동자를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이중의 의미를 가진다. 즉, 노동자는 자유인(自由人: free individual)으로서 자기의 노동력을 자신의 상품으로 처분할 수 있다는 의미와, 다른 한편으로는 그는 노동력 이외에는 상품으로 판매할 다른 어떤 것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으며, 자기의 노동력의 실현에 필요한 일체의 물건(物件)을 가지고 있지 않다(free of)는 의미다."(221쪽)

자유로운 노동자가 시장에서 화폐소유자를 만나게 되는 사연은 뒤의 제8편 '이른바 시초축적'에서 다룰 것이다. 다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러한 관계는 자연사적 관계도 아니며 또한 역사상의 모든 시대에 공통된 사회적 관계도 아니다"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과거의 역사적 발전의 결과이며, 수많은 경제적 변혁의 산물이며, 과거의 수많은 사회적 생산구성체의 몰락의 산물이다"(221쪽).

분명히 어느 정도 발전한 사회적 분업을 기초로 한 상품의 생산과 유통은 다양한 경제적 사회구성체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은 오직 생산수단과 생활수단의 소유자가 시장에서 [자기 노동력의 판매자로서의] 자유로운 노동자(勞動者)를 발견하는 경우에만 발생한다"(222쪽). 따라서 이 조건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지배적인 새로운 세계사를 형성한다.

우리의 관심을 다시 노동력이라는 상품에 돌려보자. 이 상품도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가치를 지니고 그 가치는 "[다른 모든 상품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이 특수한 상품의 생산과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규정된다"(223쪽). 노동력은 노동자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므로 이 상품의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이라는 것은 결국 노동자가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생활수단의 가치로 계산된다.

노동자가 정상적인 건강상태를 유지해 다음날 다시 노동과정에 투입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생활수단의 총량은 육체의 물리적인 한계에 의해서만 규정되진 않는다.

"그의 자연적 욕구는 한 나라의 기후나 기타 자연적 특성에 따라 다르다. 다른 한편, 이른바 필수적인 욕구의 범위나 그 충족 방식은 그 자체가 하나의 역사적 산물이며, 따라서 대체로 한 나라의 문화수준에 따라 결정되는데, 특히 자유로운 노동자 계급이 어떤 조건 하에서 또 어떤 관습과 기대를 가지고 형성되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므로 다른 상품들의 경우와는 달리 노동력의 가치규정에는 역사적 및 도덕적 【정신적】 요소(historical and moral element)가 포함된다. 그러나 일정한 시대의 일정한 나라에는 노동자들의 필요생활수단의 평균적 범위는 주어져 있다."(224쪽)

필요한 생활수단의 총량에는 또한 다음 세대의 노동자를 재생산하기 위한 생활수단들도 포함된다. 즉 출산과 육아를 위한 생활수단이 포함됨으로써 화폐소유자는 시장에서 노동력 판매자를 세대를 넘어 영원히 만날 수 있게 된다. 한편 작업의 숙련을 위한 교육 비용도 노동력 생산을 위해 지출되는 가치에 포함된다.

실제로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최저생계비(빈곤선)를 결정하는 데는 육체적 지속을 위한 상품들의 가격과 함께 출산과 육아ㆍ교육, 문명의 발전 정도가 반영된다. 한국의 경우 과거에 포함돼 있지 않던 통신비가 최근에는 필수적 항목으로 포함된다. 나라에 따라서는 적당한 문화생활(영화, 공연, 스포츠)을 위한 비용을 포함하기도 한다.

역사적 도덕적 조건과 함께 상품가치 변동은 노동력의 가치를 변화시킨다. 임금수준을 결정하기 위한 갈등에서 물가가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편 미국 노동자의 임금 1970년대 중반 이후 오르지 않았음에도 더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중국산의 싸구려 상품 덕이다. 대형 마트의 저가 상품은 저임금을 유지하기 위해 핵심적 역할을 한다.

노동력 상품은 구매와 동시에 사용가치가 실현되지 않는다. 노동력의 사용가치, 즉 노동은 일정한 시간에 걸쳐서 실현된다. 보통은 노동계약 후 일정한 기간 노동력을 발휘한 다음에 후불로 임금을 지불받는다.

우리는 지금까지 노동력이라는 독특한 상품의 구매와 판매에 대해 살펴봤다. 노동력 사용가치의 실현은 상품의 생산과정이며 잉여가치의 생산과정이다. 노동력의 소비는 다른 모든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유통의 밖에서 이뤄진다. 이제 우리는 마르크스를 따라 바로 그 현장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화폐소유자 및 노동력소유자와 함께 [모든 것이 표면에서 일어나고 또 누구의 눈에나 쉽게 띄는] 이 소란스러운 유통분야를 벗어나 이 두 사람을 따라 '관계자외 출입금지'라고 입구에 쓰인 은밀한 생산의 장소로 들어가 보도록 하자. 이곳에서 우리는 자본이 어떻게 생산하고 있는가 뿐 아니라 어떻게 자본 그 자체가 생산되고 있는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윤창조의 비밀도 드디어 폭로되고 말 것이다."(230쪽)

우리가 이 비밀을 파헤치기 전, 있는 그대로 보이는 상품교환과 유통분야의 모습은 천부인권이 지켜지는 참다운 낙원처럼 비춰진다. 노동력의 구매자도 판매자도 자신의 의지에 의해 자유롭게 행동한다. 그들은 동등한 상품소유자로서 평등하게 등가물끼리 교환한다. 이 상품소유자들은 자신이 소유한 것에 대해서만 처분권을 지닌다. 따라서 각자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을 지닌 이 모든 행동은 벤담의 공리주의가 설파하듯이 신의 섭리처럼 서로간의 이익, 사회 전체의 이익이 되는 일이 된다. 오직 상품의 유통과 교환의 영역에만 관심을 지닌 주류 경제학이 세상의 모든 것이 예정된 조화를 이뤄낼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으로 가득한 (따라서 위기와 파괴에 관심이 없거나 그것을 정상에서의 일탈로만 치부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다음 장부터 우리는 마르크스를 따라 생산영역에 따라 들어감으로써 가치와 잉여가치 생산의 비밀을 살펴볼 것이다. 우리가 가는 길에는 화폐소유자와 노동자가 앞서 가고 있다.

"이전의 화폐소유자는 자본가로서 앞장서 걸어가고, 노동력의 소유자는 그의 노동자로서 그 뒤를 따라간다. 전자는 거만하게 미소를 띠고 사업에 착수할 열의에 차 바삐 걸어가고, 후자는 자기 자신의 가죽을 시장에서 팔아버렸으므로 이제는 무두질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겁에 질려 주춤주춤 걸어가고 있다."(231쪽)

Posted by 때때로

1990년대 초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는 좌파에게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특히 대안 사회의 미래를 그리려는 시도를 꺼리게끔 했죠.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의 말을 빌려 현실의 모순을 지양하는 운동쯤으로만 취급됐습니다.

이런 상황은 2000년대 들어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합니다. 자본주의 경제는 단속적으로 파탄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에 저항하는 목소리는 높아져갔죠. 특히 세계사회포럼의 성장과 베네수엘라에서의 격변은 좌파들에게 큰 영감을 줬습니다. 새롭게 성장한 젊은 세대는 현실 사회주의를 경험하지 않았고 그 만큼 사회주의에 대한 레드콤플렉스도 적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좌파가 정치적 대안으로 성장하기 위해 보다 분명한 미래사회에 대한 청사진을 제기할 필요성이 제기됐습니다.

지역사회 차원에서의 대안 검토가 확산되고 있었죠. 지금은 진보정당의 기본 정책이 된 '참여예산제' 같은 경우 브라질 노동당의 경험이 큰 자산이 됐습니다. 생태적으로도 지속 가능한 도시에 대한 대안으로 브라질의 '꾸리찌바'가 관심을 끌기도 했죠. 녹색평론사에서 나온 박용남의 '꿈의 도시 꾸리찌바: 재미와 장난이 만든 생태도시 이야기(박용남 지음, 녹색평론사)'는 이 분야의 필독서가 됐습니다.

국가적, 세계적 차원에서의 대안도 제안되기 시작했습니다. 마이클 앨버트의 '파레콘(Parecom): 자본주의 이후, 인류의 삶(마이클 앨버트 지음, 김익희 옮김, 북로드)'이 여기에 대한 관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파레콘은 참여와 경제의 합성어, 참여경제(Participatory Economics)를 말합니다. 앨버트의 책이 당시 좌파에 충격을 던져준 것은 그것이 '시장'과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를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죠. 물론 마르크스를 따르는 고전적 좌파 안에서는 다수가 동의하는 내용일 겁니다. 소비에트 러시아의 실패 이후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시장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사적소유의 폐지를 앞세우는 것은 좌파를 자임하는 사람들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 됐지요. 이런 상황에서 마르크스주의 전통에 비판적 입장임을 숨기지 않는 마이클 앨버트가 시장과 사적소유의 폐지를 포함한 미래사회 청사진을 제기한 것입니다.

마이클 앨버트에 의하면 자본주의 이후 건설될 파레콘은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를 제거하고 노동자평의회와 소비자평의회가 할당과 생산, 분배 등 경제생활의 핵심 기구로 활용할 것입니다(할당이란 사회의 가용 자원을 어떤 부분에 얼마만큼 사용할 것인가,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각 부문별 투하비율을 결정하는 문제를 말합니다). 각각의 평의회는 그 내부에서, 또는 다른 평의회와 위계적이지 않은 합의 과정을 거쳐 경제의 문제를 결정합니다.

"평의회는 노동자와 소비자가 자신의 정책결정권을 행사하는 수단이며, 매우 다양한 수준에 걸쳐 조직된다. … 결정될 정책의 상이성에 따라 투표와 의결 방식 또한 달라진다. 고정불변의 방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정책 때문에 파생될 영향의 정도에 비례해서 구성원들이 그 결정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규범이 지켜지기만 하면 된다." ('파레콘' 25쪽)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앨버트의 '파레콘'을 반깁니다. 하지만 거기에 썩 만족할 수만은 없었죠. 왜냐면 마이클 앨버트는 중앙집권적인 계획과 조정에 일반적으로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앞서 제기된 질문은 이미 세계적으로 연결되고 융합된 경제를 평의회 각각의 파편화된 자율적 결정과 합의에 의해 조정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캘리니코스는 "자본주의에서 지속가능한 경제로 이행하는 데 필요할 엄청난 재건작업과 방향 전환" 같은 것을 고려할 때 파레콘에서 제안한 "[각 평의회들 간 합의의] 반복을 통해 전반적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과정"만으로는 부족하고 "집단적으로 결정하는 민주적 과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자본주의의 대안과 사회주의 가치 논쟁' 25쪽). 마이클 앨버트는 '비례적 결정권을 통한 합의'라고 부르는 것을 제안하면서도 그것이 좌파 내에서 "끝없는 논쟁을 야기"하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음을 인정하긴 합니다('파레콘' 161~171쪽). 이 문제는 꼭 앨버트의 '파레콘'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죠. 뒤에서 더 언급하게 될 것입니다.

한국에서 자본주의 이후 새로운 사회에 대한 관심은 김수행 교수에게도 이어졌습니다. 김 교수는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 만든 정년퇴임 기념 논문집의 주제를 새로운 사회로 잡아 발표했죠. 그 결과물이 서울대학교출판부에서 발표한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김수행ㆍ신정완 외 지음, 서울대학교출판부)'입니다.

2007년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가 나온 후 자본주의는 1929년 대공황에 비견되는 위기를 겪습니다. 위기가 극복됐다는 주장도 있지만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합니다. 남유럽에서의 위기로 EU 지도자들 사이에서 갈등의 불똥이 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갈등과 위기에도 한결 같은 것은 이 체제를 이끄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정부의 방만한 재정운용(복지 정책 등)이 문제라며 긴축정책을, 즉 노동자계급과 서민의 희생을 강요합니다. 애시당초 재정위기가 위기에 빠진 금융기업들을 구해주기 위한 행동들에서 비롯했다는 것은 깔끔하게 잊혀졌죠. 금융기업들의 잘못에 책임을 묻는 목소리는 사라지고 이 모든 게 게으른 남유럽 노동자들 때문이라는 목소리만 높습니다. EUㆍECB(유럽중앙은행)ㆍIMF 트로이카는 심지어 그리스의 노동자들이 주 6일 일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의 노동시간은 연간 2109시간으로 유럽에서 가장 긴데도 말입니다(링크).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아져가는 상황에서 김수행 교수가 쉬운 글로 '마르크스가 예측한 미래사회: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을 내놓았습니다. 김수행 교수는 이렇게 묻습니다.

""자본주의만이 인류의 등불"이라던 자본주의 옹호자들도 2007년 이래 세계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업자의 대홍수, 빈민들의 울부짖음, 모든 노동자의 프레카리아트(precariat: 불안정한 노동자계급 precarious proletariat)로의 전환, 민주주의의 후퇴, 제국주의적 침략의 확산, 성과 인종의 차별, 자연의 파괴 등에 직면하면서, 자본주의만이 살 길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4~5쪽)

김수행 교수는 이 책에서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길도 있음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길'입니다. 이미 완성된, 우리의 도착만 기다리는 유토피아는 아니라는 얘기지요. 그래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이행기'입니다. 이행기에 우리는 사회제도 뿐 아니라 개인들의 습관ㆍ의식 모두 바꿔야 합니다.

"'수탈자를 수탈하는' 정치혁명의 개시로부터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자개연)이 형성되기까지가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새로운 사회로 가는 '진정한' 이행기입니다. 이행기에는 무엇보다 먼저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사회적 점유'의 형태로 숨어 있는 '사회적 소유'와 '개인적 소유'를 현실화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노동자들로부터 분리ㆍ자립하여 그들을 착취하고 지배하는 생산수단을 자본가들의 손에서 빼앗아서,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자기의 것으로 상대하면서 공동으로 사용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노동하는 개인들이 자기의 노동력을 팔아야만 살 수 있는 '임금노예'의 상태를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행기에는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는 노동자들에게 광범한 교육과 훈련을 통해, 사회의 생산수단 전체와 개인의 노동력 전체를 사회의 차원에서 계획적으로 이용하는 것의 우월성을 인식시키고, 개인의 자유로운 발달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달의 기초가 된다는 것과 개인이 타인과 자연에 대해 '인류'의 입장에서 관계를 맺는 것이 모든 차별과 자연 파괴를 막는 길이라는 것을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97~98쪽)

김수행 교수는 자본주의 이후 사회로의 이행을 위한 준비가 이미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예를 들자면 주식회사와 협동조합이 그러한 가능성 중 하나입니다. 주식회사는 자본주의적 사적소유가 사회적 소유로 전환될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마르크스가 주식회사에서 "자본은, 이제 사적 자본과 구별되는 사회적 자본(직접적으로 연합한 개인들의 자본)의 형태를 직접적으로 취하며, 이런 자본의 기업은 사적 기업과는 구별되는 사회적 기업의 형태를 취한다(80쪽; '자본론' 3권 상 541쪽)"고 말한 것을 상기시킵니다.

이렇듯 자본주의 안에 숨어있는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로 가는 길의 이정표를 마르크스에 기대 찾을 수 있다는 게 김수행 교수의 주장입니다. 마르크스가 정리된 형태로 미래사회의 모습을 그려낸적은 없지만 그의 여러 저술 속에서 우리가 참고할 만한 중요한 자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김수행 교수가 미래사회의 명칭으로 제시한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의 모습이 '공산당 선언'에서 묘사되고 있습니다.

"계급들과 계급대립을 가진 낡은 부르주아 사회 대신에 각인의 자유로운 발달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달의 조건이 되는 연합이 나타나게 된다." (115쪽; '공산당 선언' 저작선집 1권 421쪽)

김수행 교수가 먼지 쌓인 마르크스의 책속에서만 미래사회의 가능성을 찾는 것은 아닙니다. 2007년 이후 세계경제위기라는 현실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듯이 그는 소련과 베네수엘라라는 과거와 현재의 사례들로부터도 교훈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소련은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뜨거운 감자입니다. 현실 사회주의로 인정하자는 주장에서부터, 관료적으로 타락한 노동자 국가, 국가자본주의, 새로운 계급사회 등 소련에 대한 다양한 규정이 좌파의 조직적ㆍ정치적 실천을 갈갈이 찢어놓았었습니다. 하지만 김수행 교수는 소련이 마르크스와 사회주의자들이 꿈꿨던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가 아니라고 부정합니다. 착취와 억압을 제거한다는 목표는 국가의 착취로 대체됐고, 사회적 소유라는 전망은 '국가소유' 아래 국가 관료의 전횡으로 실현됐다는 것입니다
(148쪽). 무엇보다 소련은 자유로운 연합에 기초한 개인들의 전면적 발달이라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오랜 이상과 배치됩니다.

소련의 이탈은 어디서부터 비롯한 것일까요. 스탈린은 '생산의 무정부성'을 자본주의의 가장 큰 폐해로 지적하고 이 무정부성을 극복하기 위한 '국가소유'와 '계획'을 사회주의(또는 공산주의)의 가장 큰 특징으로 앞세웠습니다. 하지만 이는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이 아닙니다.

"사회적 소유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공동으로 점유하여 사용하던 생산수단들이 정치혁명을 통해 자기들의 것으로 전환되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경우 '사회'는 개인들을 초월하여 자립적으로 존재하는 정치적ㆍ경제적ㆍ이데올로기적 존재가 아니라, 자각한 개인들의 연합을 가리키거나 연합한 개인들 그 자체입니다. 따라서 소련의 생산양식에서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가 폐기되어, 이런 연합한 개인들의 사회적 소유가 만들어졌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국가소유는 실질적으로 노멘클라투라의 소유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158~159쪽)

우리가 만들어야 할 미래사회를 고려할 때 '사회적 소유'라는 것은 여전히 모호하게 느껴집니다. 앨버트가 평의회의 수평적 자율관리 커뮤니케이션을 주장하고, 캘리니코스가 이를 보충하며 민주적 계획을 강조한 것은 이 모호함을 보충하기 위해서입니다('자본주의의 대안과 사회주의 가치 논쟁' 41~43쪽). 국가 혹은 이를 대체한 어떤 사회적 제도가 구성원 모두의 의사를 충분히 민주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면 국가 혹은 대체 제도의 소유가 곧 사회적 소유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이 현실성을 갖기 위해선 무엇보다 민주적 통제와 조정 과정 수립, 앨버트와 캘리니코스가 강조한 것 이상이 필요할 것입니다.

소련의 현실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미래가 아니라면 어떤 사례를 또 찾을 수 있을까요. 최근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베네수엘라를 매우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습니다. 김수행 교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베네수엘라 혁명을 이끌고 있는 차베스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닙니다. 마르크스주자들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조직된 노동운동도 베네수엘라에서는 기득권층의 입장에 섰었죠. 차베스의 주요 지지자들은 광범위한 빈민들입니다. 차베스가 대자본가들의 쿠데타로 대통령궁에 갇혔을 때 그를 구해낸 것은 빈민들의 힘이죠. 베네수엘라의 혁명적 변화를 위한 조치들도 아래로부터 대중의 자발적인 행동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차베스에 의해 위로부터 조직된 전형적인 '위로부터의 혁명'이었습니다. 제게 차베스는 매우 껄끄러운 존재였죠.

하지만 차베스가 우파 언론들의 데마고기와 자본가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인민의 참여에 기초한 대안 권력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더군다나 그의 정책이 남미에 뿌리 깊은 포퓰리즘 정치처럼 시혜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인민 스스로를 지배계급으로 조직화할 수 있도록 하는데 집중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입니다.

"차베스는 2001년 12월에는 전국적으로 볼리바르 서클을 조직해 빈민들을 정치에 참여하게 만들었습니다. 서클의 회원들은 빈민촌인 바리오에서 활동하면서 바리오의 상하수도ㆍ주택ㆍ의료ㆍ전기ㆍ노인복지ㆍ환경ㆍ취업ㆍ교육ㆍ범죄ㆍ질서유지ㆍ운동장ㆍ문화시설 등의 문제를 지역 주민들과 토론하여 각종 프로젝트를 만들고, 그 프로젝트를 실행할 자금을 정부의 '플랜 볼리바르 2000'으로부터 받아 주면서 지역주민들이 스스로 그 프로젝트를 완성하게 도와준 것입니다. 그러나 볼리바르 서클은 법적 근거가 없었기 때문에 2006년 4월에는 법적 근거를 가진 주민자치회가 새로 설치되어 빈민촌의 공동사업을 볼리바르 서클로부터 물려받았습니다." (179쪽)

차베스는 이러한 인민권력의 강화와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다섯 개의 인민권력법을 만들어 "주민자치회ㆍ정부연방주민자치회ㆍ코뮌ㆍ노동자치회ㆍ주의회ㆍ지방의회 등이 전국의 공공계획과 예산ㆍ결산을 토론하고 결정하며 감찰하는 과정에 참여"하게 만듭니다(192쪽). 이행기에 필요하다고 강조된 광범위한 교육과 훈련이 외부에서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인민 스스로의 자기계몽 과정이라는 특징이 여기에서 드러납니다.

물론 베네수엘라는 아직 매우 불안정한 이행기를 거치고 있습니다. 이 혁명이 진정한 혁명으로 거듭나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불확실합니다. 거대 기업의 자본가들과 언론, 미국의 방해와 견제가 여전히 심하기 때문입니다. 어쩔수 없는 측면도 있겠지만 차베스의 정책이 타협의 길로 이어진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가장 최근의, 그리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현장으로서 베네수엘라는 충분히 관심을 쏟을 가치가 있습니다.

이 책 '마르크스가 예측한 미래사회'는 '파레콘'에 비해 정밀하진 못합니다. 국가소유가 곧 사회적 소유는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개인적 소유의 회복으로서 사적소유의 철폐와 사회적 소유의 실현이 어떻게 가능할 지는 막연합니다. '계급투쟁'이란 것도 '99%' '서민' 등의 단어를 사용해 그 정체를 불분명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차베스를 지지하는 베네수엘라 인구의 60~80%에 달하는 '빈민'의 계급적 분석이 없다는 것도 아쉽습니다.

하지만 김수행 교수의 '마르크스가 예측한 미래사회'는 자본주의가 이후의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이들이 꼭 참고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미래가 도달할 수 없는 유토피아 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점, 우리가 딛고 있는 현실에 그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에 이 책의 장점이 있습니다. 왜냐면 인간의 행동은 비참한 현실로부터 비롯하기보다 미래의 희망으로부터 더 큰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국제적 금융자본은 자기의 위험한 투기로 입게 될 손실을 국제적 국가기구를 통해 세계의 서민들에게 전가시키는 방식으로 자본을 축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미국의 금융공황에서 금융자본이 2007~2011년에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으로부터 약 20조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아 자기의 손실을 납세자의 혈세로 메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그리스 이외에도 포르투갈ㆍ스페인ㆍ아일랜드ㆍ이탈리아ㆍ프랑스ㆍ영국ㆍ미국 등 거의 모든 나라가 국가채무 문제로 허덕이고 있는데, 그리스 형식의 금융자본 독재가 지속할 수 있겠습니까? 금융자본을 세계적 차원에서 인류의 소유로 전환하는 정치혁명이 필요할 것이고, 자본이 자본가계급의 이윤 욕심에 봉사하기보다는 인류의 필요와 욕구의 충족에 기여하도록, 개인들이 연합하고 단결하여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사회인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자개연)'을 건설해야 할 것입니다." (203쪽)

Posted by 때때로

제1절 상품의 두 요소: 사용가치와 가치(가치의 실체, 가치의 크기)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간단히 자본주의 사회)의 부(富)는 “상품의 방대한 집적(集積)”(43쪽)으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개개의 상품은 이러한 자본주의 사회 부의 기본형태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상품의 분석으로부터 연구를 시작한다.

상품은 우선 사용가치다. 상품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유용한 성질을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유용성은 상품의 물리적 속성에 의해 주어지고 상품 자체와 떨어질 수 없다. 상품의 자연적 속성은 유용성에 영향을 미치기에 상품을 사용가치로 만드는 한에서만 관심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교환관계에서 상품은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사용가치이기만 하다면 교환될 수 있다. 그것이 지닌 유용한 속성이 어떠한 종류의 것인지는 중요치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은 그 유용한 속성을 욕망하는 이에게 교환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상품은 다양한 다른 상품들과 다양한 교환비율로 교환된다. 여기서 상품이 교환되는 양적 관계 또는 비율이 교환가치다. 상품이 다양한 상품들과 다양한 비율들로 교환될 수 있다는 것은 “첫째 특정한 상품의 서로 다른 교환가치들은 동일한 그 무엇을 표현하고 있으며, 둘째 교환가치는 교환가치와는 구별되는 그 어떤 내용의 표현양식 또는 ‘현상형태(現像形態: form of appearan ce)’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45쪽).

상품은 사용가치라는 측면에서 그것의 소재, 물리적 특성, 유용성 등 질적으로 구별된다. 하지만 교환가치는 양적 차이만 지닐 뿐이다. 그렇기에 사용가치는 교환가치가 표현하는 상품들의 동일한 그 무엇(속성)일 수 없다. 이 사용가치를 제외할 때 상품에 남는 유일한 속성은 노동생산물이라는 것이다.

“ 사용가치로서의 상품은 무엇보다도 질적으로 구별되지만, 교환가치로서의 상품은 오직 양적 차이를 가질 뿐이고, 따라서 거기에는 사용가치가 조금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만약 상품의 사용가치를 무시한다면, 거기에는 오직 하나의 속성, 즉 그것이 노동생산물(勞動生産物)이라는 속성만 남는다.”(47쪽)

이제 상품의 노동생산물이라는 속성을 살펴보자. 우리가 상품의 사용가치를 무시한다면 그것은 특별한 목적과 방법에 따른 특정한 노동의 생산물이 아니게 된다. 스마트폰과 연필을 만드는 노동은 상이한 노동이지만 노동생산물이라는 공통의 속성에서 더 이상 그 특정한 노동의 종류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즉 그 둘은 오직 인간노동의 산물이라는 점 때문에 교환될 수 있는 것이다.

“이들 노동은 더 이상 서로 구별되지 않고 모두 동일한 종류의 노동, 즉 추상적 인간노동(abs tract human labour)으로 환원된다. 이제 노동생산물들은 유령 같은 형상[즉, 동질적인 인간노동이 응고되어 있는 형상]을 띠게 된다. 다시 말해, 노동생산물들은 인간노동력이 그 지출형태와는 관계없이 지출되어 응고된 것에 불과하다.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그들의 생산에 인간의 노동력이 지출되었다는 것, 인간노동이 그들 속에 체현되어 있다는 것이다. 모든 노동생산물은 그들에게 공통적인 이러한 사회적 실체의 결정체(結晶體: crystal)로서 가치(價値), 상품가치이다.”(47쪽)

우리는 짧지만 복잡한 마르크스의 길을 따라 상품의 가치를 만나게 됐다. (상품)가치는 ‘추상적 인간노동’이 “그 지출형태와는 관계없이 지출되어 응고된 것”이다.

“가치의 실체를 이루는 노동은 동등한 인간노동이며, 동일한 인간노동력의 지출이다. 상품세계의 가치로 자기를 표현하는 사회의 총노동력(總勞動力)은 …… 거대한 하나의 동질의 인간노동력으로 간주된다. 각 단위의 노동력은 …… 한 상품의 생산에 평균적으로 필요한 (즉,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만 걸리는 한 서로 다름이 없는 동일한 인간노동력이다.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socially necessary labour-time)이란 주어진 사회의 정상적인 생산조건과 그 사회에서 지배적인 평균적 노동숙련도와 노동강도 하에서 어떤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데 걸리는 노동시간이다.”(48쪽)

가치의 크기는 노동의 계속시간으로 측정된다. 동일한 노동량이 들어 있는 상품들, 즉 같은 시간에 생산할 수 있는 상품들은 같은 가치량을 가진다. “가치로서는 모든 상품은 일정한 크기의 응고된 노동시간(勞動時間)에 불과하다”(49쪽). 따라서 노동생산성의 변화는 상품의 가치 크기를 변화시킨다.

다음 절로 넘어가기 전 상품이 사용가치이자 가치임을 정리해보자. 어떤 물건이 사용가치라는 것이 곧 상품임을 뜻하진 않는다. 공기와 물·자연의 많은 것들은 사용가치이지만, 즉 인간에게 유용한 속성을 지닌 물건이지만 상품은 아니다. 사용가치로서 상품은 생산자 자신의 소비를 위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부족하다. 왕을 위한 진상품은 타인을 위한 사용가치이지만 상품은 아니다. 상품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환되어야 한다.


제2절 상품에 투하되어 있는 노동의 이중성

상품의 이중성(사용가치와 가치)에 따라 노동의 이중성이 나타난다. 하나의 상품은 특정한 욕망을 충족시키는 사용가치다. 상품을 사용가치로 만드는 노동은 질적으로 구분되는 노동으로서 유용노동이라 부른다. 아마포를 만드는 노동(직포)과 저고리를 만드는 노동(재봉)은 다른 것이다. 상품이 교환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즉 서로 다른 생산활동에 의해 만들어져야 한다. 서로 구분 되는 사용가치들의 총체는 사회적 분업을 반영한다.

“다양한 사용가치들[또는 상품체들]의 총체는 다양한 유용노동들[유(類)·속(屬)·종(種)·변종(變種)으로 분류된다]의 총체, 즉 사회적 분업을 반영한다. 이 사회적 분업은 상품생산의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반대로 상품생산이 사회적 분업의 필요조건은 아니다.“(52~53쪽)

요약하면 이렇다.

“각 상품의 사용가치에는 유용노동[즉, 일정한 종류의 합목적적인 생산활동]이 들어 있다. 여러 가지 사용가치는, 만약 거기에 질적으로 다른 유용노동이 들어 있지 않다면, 상품으로 서로 대면할 수 없다. 생산물이 일반적으로 상품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사회[즉, 상품생산자 사회]에서는, [개별 생산자들이 상호 독립적으로 사적으로 수행하는] 여러 가지 형태의 유용노동 사이의 질적 차이는 하나의 복잡한 체계[즉, 사회적 분업(Social division of labour)]로 발전한다.”(53쪽)

이러한 유용노동으로서의 노동은 인간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자연에서 그대로 주어지지 않는 것들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특수한 목적을 지닌 생산활동에 의해 만들어져야 한다. 이는 인간사회의 역사적 변화와 무관한 인간의 생존 조건이다. 또한 사용가치는 유용노동과 자연소재의 결합이다. 사용가치의 원천이 노동만은 아닌 것이다.

상품의 가치에서는 사태가 달라진다. 아마포와 저고리는 모두 교환될 수 있는 동질한 가치일 뿐이다. 가치로서 두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은 동일한 인간노동력의 지출일 뿐이다. 물론 ‘단순한 평균 노동’은 나라와 문화의 발전에 따라 달라진다. 한 사회에서도 더 복잡한 노동과 더 간단한 노동이 있다. 그러나 “더 복잡한 노동은 강화된 또는 몇 배로 된 단순노동(intensified or rather multiplied simple labour)으로 간주될 뿐이며, 따라서 적은 양의 복잡노동(複雜勞動)은 더 많은 양의 단순노동(單純勞動)과 동등하게 간주된다”(56쪽).

아마포와 저고리는 서로 다른 크기의 가치를 지닌다. 이는 각각의 상품을 만드는 데 서로 다른 크기의 추상적 인간노동이 지출됐기 때문이다. 저고리가 아마포의 두 배의 가치를 지니는 것은 저고리 생산을 위해 아마포 생산의 두 배의 노동력 지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품에 투하되어 있는 노동은 사용가치와의 관련에서는 질적으로만 고려되고, 가치와의 관련에서는 [노동이 벌써 순전한 인간 노동으로 환원되어 있으므로] 양적으로만 고려된다. 전자의 경우에는 노동이 ‘어떻게’ 수행되며, 또 ‘무엇을’ 생산하는가가 문제로 되며, 후자의 경우에는 노동력이 ‘얼마나’ 지출되는가, 즉 노동의 계속시간이 문제로 된다. 상품 가치의 크기는 그 상품에 들어 있는 노동량만을 표시하기 때문에, 상품들은 어떤 일정한 비율을 취하면 그 가치가 동일하게 된다.”(57쪽)

2절의 마지막에서 마르크스는 상품의 생산성과 관련해 중요한 고찰을 한다. 생산성이란 “특수한 생산활동이 주어진 시간에 주어진 목표를 얼마나 잘 달성하는가를 가리키는 것이다”(58쪽). 그러므로 생산성은 언제나 ‘유용노동’의 생산성을 뜻한다. 생산성이 향상될 때 우리는 주어진 시간에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할 수 있다. 이는 더 많은 물적 부(사용가치)를 이룬다. 그러나 가치량 자체는 줄어들 수 있다. 왜냐면 상품의 가치량은 추상적 인간노동 지출의 계속시간에 의해 정해지기 때문이다. 자세히 설명하면 이렇다. 생산성 향상은 더 많은 상품의 생산으로 이어진다. 즉 주어진 시간에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할 수 있다. 반면에 기존에 필요한 양 만큼 상품을 생산하는 데 더 적은 노동만 필요하게 된다.

“ 노동의 성과[따라서 노동에 의해 생산되는 상품량]를 증대시키는 생산성의 상승이, 이 증대된 상품 총량의 생산이 필요한 노동시간 총계를 단축시킨다면, 상품 총량의 가치량을 감소시키게 된다. 반대의 경우에는 반대로 된다.”(58쪽)

마지막으로 이번 절을 한 번 더 정리하고 넘어가자.

“ 모든 노동은 생리학적 의미에서 인간노동력의 지출이며, 이 동등한 또는 추상적 인간노동이라는 속성에서 상품의 가치(價値)를 형성한다. 다른 한편으로, 모든 노동은 특수한 합목적적 형태로 인간노동력을 지출하는 것이며, 이러한 구체적 유용노동이라는 속성에서 사용가치(使用價値)를 생산한다.”(58쪽)


제3절 가치형태 또는 교환가치

“ 상품은 철·아마포·밀 등과 같은 사용가치 또는 상품체의 형태로 세상에 나타난다. 이것이 상품의 평범한 현물형태(現物形態)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상품인 것은 그것들의 이중적인 성격, 즉 사용의 대상임과 동시에 가치의 담지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오직 이중적 형태[현물형태와 가치형태]를 가지는 경우에만 상품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 상품이라는 형태를 가지게 된다.”(59쪽)

그러나 상품의 현물형태와 달리 가치로서의 객관적 실재는 눈으로, 혹은 촉감으로, 또는 맛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상품은 인간노동이라는 동일한 사회적 실체의 표현일 경우에만 가치로서의 객관적 성격을 가지게 된다는 것, 따라서 가치로서의 상품의 객관적 성격은 순수히 사회적인 것”이다. 따라서 “가치는 오직 상품과 상품 사이의 사회적 관계에서만 나타날 수 있다”(60쪽). 우리는 이번 절에서 마르크스가 가치형태, 즉 화폐형태의 기원을 밝히는 과정을 따라갈 것이다.

A. 단순한, 개별적인 또는 우연적인 가치형태

아마포 20m=저고리 1개

우리는 마르크스와 함께 화폐형태의 기원을 위 등식으로부터 추적할 것이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위 등식을 사려 깊게 다뤄야 한다. 수학적 훈련을 받은 사람이라면 등호(=)가 등식의 양변이 ‘같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정의’이기도 하다. 양변의 위치가 바뀜으로서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1. 가치표현의 두 극: 상대적 가치형태와 등가형태
아마포 20m는 저고리 1개와 같다. 아마포 20m의 가치는 저고리 1개로 표현된다. 아마포 20m는 자신의 가치를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상품에 의한 상대적 가치로 표현한다. 즉 아마포 20m는 상대적 가치형태다. 반대편의 저고리 1개는 아마포 20m의 등가물이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아마포 20m의 가치를 아마포 20m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이것은 동어반복일 뿐이다).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이폰을 다른 사람의 (앱이라든지 각종 부가 장착물의 차이, 사용기간 등을 무시했을 때) 동일한 아이폰과 교환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왼쪽 변의 아마포 20m가 상대적 가치형태라고 함은, 그 자신의 가치를 다른 상품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오른쪽 변의 저고리 1개는 아마포 20m의 가치를 표현하는 재료로서 왼쪽 변 아마포의 등가물(등가형태)이다.

물론 우리는 위 등식의 좌우를 바꿀 수 있다. 그럴 때 아마포와 저고리의 역할은 서로 바뀐다. 하지만 등식의 좌우를 바꾸기 전, 상품은 동시에 상대적 가치형태와 등가물일 수 없다. 두 사람이 대화를 할 때 두 사람이 모두 말할 수 있지만, 말하는 사람은 ‘화자’ 듣는 사람은 ‘청자’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이 대화의 규칙은 둘이 동시에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2. 상대적 가치형태
(a) 상대적 가치형태의 내용
우선 양적 측면으로부터 떠나 가치관계를 살펴보자. 아마포 20m가 얼마만한 양의 저고리로 표현되든 이러한 비율의 존재 자체는 가치량으로서 아마포와 저고리가 동일한 성질이라는 것을 전제한다. “아마포=저고리라는 것이 이 등식의 기초”(63쪽)다. 앞에서 살폈듯이 양변은 서로 다른 역할을 한다. 저고리는 가치의 존재형태로 간주된다. 아마포는 저고리라는 자신으로부터 독립적인 가치 표현을 얻게 된다.

상대적 가치형태(아마포)가 등가형태(등가물: 저고리)로 자신의 가치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상품의 가치를 형성한 노동(직포)이 등가형태에 놓여있는 상품을 만든 노동(재봉)으로 환원됨을 알려준다. 즉 추상적 인간노동이 실재함을 보여준다.

“ 상이한 상품들 사이의 등가의 표현이 상이한 상품들에 들어 있는 각종 노동을 그것들에 공통된 것[즉, 인간노동 일반]으로 실제로 환원하고 있기 때문에 가치형성 노동의 독자적인 성격이 드러나게 된다.”(64쪽)

그러나 노동 그 자체가 가치는 아니다. 아마포의 가치를 표현하는 저고리 그 자체는 순수히 사용가치다. 이 사용가치가 아마포의 가치를 표현할 수 있기 위해서는 가치관계에 들어가야만 한다.

“이와 같이 가치관계를 매개로 상품 B의 현물형태는 상품 A의 가치형태로 된다. 다시 말해, 상품 B의 물체는 상품 A의 가치의 거울로 된다. 상품 A는 [가치체이자 인간노동의 체현물인] 상품 B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사용가치 B를 자기 자신의 가치의 표현재료로 삼는다. 상품 A의 가치는 이와 같이 상품 B의 사용가치로 표현되어 상대적 가치형태를 얻게 된다.”(67쪽)

(b)상대적 가치형태의 양적 규정성
가치형태는 또한 인간노동의 응고물로서 상품의 동일한 성격뿐 아니라 양적 관계도 표현한다. 우리는 ‘아마포=저고리’라는 등식에서 다시 ‘아마포 20m=저고리 1개’라는 등식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 등식은 아마포 20m 생산에는 저고리 1개 생산에 걸리는 것과 같은 노동시간이 필요함을 뜻한다. 여기서 양변에 위치한 상품의 생산성 변동이 가치량의 상대적 표현에 미치는 영향을 살핀다.

아마포의 가치가 변하면서 저고리 가치는 불변일 때=이러저러한 원인으로 아마포 생산에 두 배의 시간이 걸리게 되면 아마포의 가치는 두 배가 된다. 즉 ‘아마포 20m=저고리 2개’개 된다. 아마포의 생산성이 절반으로 되면 반대로 ‘아마포 20m=저고리 1/2개’가 된다.

아마포의 가치가 불변이면서 저고리 가치가 변할 때=저고리의 생산성이 증가하면, 즉 저고리 1개를 만드는 시간이 이전보다 줄 때, 저고리 1개에 체화되는 노동시간도 줄어든다. 따라서 저고리의 가치가 줄어들 때 아마포 20m를 저고리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저고리가 필요하게 된다.

우리는 마찬가지 방법으로 양변의 상품 생산성 변동에 따라 가치량의 상대적 표현 변화를 추적할 수 있다. 이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가치량의 현실적 변동은 가치량의 상대적 표현[즉, 상대적 가치의 크기]에 명확하고 완전하게 반영되지는 않는다. 한 상품의 상대적 가치는 자기의 가치가 불변이라도 변동할 수 있으며, 또한 자기의 가치가 변동하더라도 여전히 불변일 수도 있다. 끝으로, 그 상품의 가치량과 이 가치량의 상대적 표현이 동시에 변동하더라도 그 변동이 반드시 일치하지도 않는다.”(70쪽)

3. 등가형태
상품 B(저고리)가 상품 A(아마포)의 등가물로 있을 때 등가형태의 상품 B는 다른 상품과 직접 교환될 수 있다. 상품 A의 가치량이 정해져 있을 때 상품 B의 가치량에 따라 상품 A와 교환될 수 있는 상품 B의 양이 결정된다. 즉 다시 ‘아마포 20m=저고리 1개’의 관계를 확인한다. 여기서 우리는 상품 B(저고리)의 사용가치가 상품 A(아마포) 가치의 현상형태로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상품 B의 현물형태가 (상품 A의) 가치형태가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상품 A와 가치관계를 맺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떤 상품도 자기 자신에 대해 등가(물)로 관계를 맺을 수 없으며, 따라서 자기 자신의 현물형태를 자기 자신의 가치의 표현으로 삼을 수는 없기 때문에, 상품은 반드시 다른 상품을 등가(물)로 삼아 그것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즉, 다른 상품의 현물형태를 자기 자신의 가치형태로 삼아야 한다.”(72쪽)

어떤 상품이 다른 상품의 현물형태를 자신의 상대적 가치로 표현한다는 것은 그것의 배후에 사회적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등가형태는 그 자체로 가치형태이기에 사회적 관계는 숨겨진다.

또한 등가형태는 구체적 유용노동이 어떻게 추상적 인간노동으로 전화하는지 보여준다. 상품 B(저고리)를 만드는 노동은 언제나 구체적인 유용노동이다. 그러나 등가물로서 상품 B는 상품 A(아마포)의 상대적 가치를 표현한다. 상품 A에게 중요한 것은 상품 B가 가치를 표현하는 (추상적 일반)노동의 응고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상품 A에게 상품 B의 구체적 유용노동은 추상적 인간노동의 실현형태다.

“등가형태의 제2의 특징은 이와 같이 구체적 노동이 그 대립물인 추상적 인간노동의 현상형태로 된다는 것이다. 이 구체적 노동[즉, 재봉]이 무차별적인 인간노동의 표현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이 노동은 다른 노동[즉, 아마포에 들어 있는 노동]과 동일하다는 성질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이 노동은 다른 모든 상품생산 노동처럼 사적 노동이지만 또한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형태의 노동인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노동은 [다른 상품들과 직접 교환될 수 있는] 생산물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적 노동이 그 대립물의 형태[즉,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형태의 노동]로 된다는 것이 등가형태의 제3의 특징이다.”(75쪽)

마지막으로 마르크스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등가형태의 중요한 마지막 두 특징을 말한다. 우선 등가형태, 즉 상품이 교환될 수 있음은 그것이 동일한 무엇인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로부터 자신의 시대적 한계로 인해 그 동등성이 무엇인지 밝히지 못했지만 이제 우리는 말할 수 있다. 그 동등성은 바로 인간노동이다. “인간의 동등성(同等性)이라는 개념이 대중의 선입관으로 확립되었을 때”(77쪽) 우리는 비로소 무차별적 인간노동이 가치관계의 배후에 있음을 밝힐 수 있다.

4. 단순한 가치형태의 총체
마르크스는 이제까지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정리한다.

“상품은 사용가치[즉, 유용한 물체]임과 동시에 가치(價値)인 것이다. 상품은, 자기의 가치가 자기의 현물형태와는 구별되는 하나의 독특한 표현형태[즉, 교환가치]를 가지게 될 때, 그 이중성을 드러낸다. 상품은 고립적으로 고찰할 때에는 교환가치라는 형태를 취하는 일이 없고, 그와 종류가 다른 한 상품에 대한 가치관계 또는 교환관계에서만 이 형태를 취한다.”(77쪽)

가치관계의 등식을 상세히 고찰하면 상품의 내적 모순(이중성)이 외적으로 표현됨을 발견할 수 있다. 상대적 가치형태인 왼쪽 변의 상품 A(아마포)의 현물형태는 오직 사용가치로만, 오른 쪽 변의 등가물 상품 B(저고리)는 가치형태로만 나타난다. 즉 하나의 상품은 사용가치로, 다른 하나의 상품은 교환가치로 대립하게 된다.

단순한 가치형태가 화폐형태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몇 단계를 더 거쳐야 한다. 우리는 이제 마르크스와 함께 이제까지의 단순한 가치형태가 전개되는 모습을 살필 것이다.

B. 전체적 또는 전개된 가치형태



1. 전개된 상대적 가치형태
하나의 상품 가치는 무수히 많은 다른 상품으로 표현된다. 이제야 말로 우리는 무차별적인 인간노동에 대해 말할 수 있다. 그것이 어떤 노동이 되었든 인간노동의 응고물로서 상품은 다른 상품의 가치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개된 가치형태에서 두 상품의 우연적 관계는 소멸한다. 이로써 교환에서 가치가 만들어지는 않는다는 것도 분명해진다.

“상품의 교환이 상품의 가치량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상품의 가치량이 상품의 교환비율(交換比率)을 규제한다는 것이 명백해진다.”(81쪽)

2. 특수한 등가형태
저고리·차·밀·금·철은 원단의 상대적 가치를 표현하는 각각의 특수한 등가형태다. 이것이 특수한 이유는 각각 개별적으로만 왼쪽 변의 상품 A(아마포)의 가치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들 각각의 특수한 등가형태들은 아직까지 서로의 가치를 표현하지 못한다.

3. 전체적 또는 전개된 가치형태의 결합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는 등가물의 목록이 무한히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오른쪽 변의 등가형태들은 오직 왼쪽 변의 상품과만 관계를 맺는다. 특수한 등가형태에 들어 있는 구체적 유용노동 또한 특수한 종류의 인간노동일 뿐이다. “인간노동은 통일적인 현상형태를 가지지 못한다”(82쪽).

이제 전개된 가치형태의 좌우를 바꿔보자. 이제 아마포 20m가 각각의 다른 상품들의 관계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게 됨을 알 수 있다. 저고리 1개를 가진 사람은 우선 아마포 20m와 바꾼 후, 이 아마포를 다시 차 10g을 가진 사람과 교환할 수 있게 됐다.

C. 일반적 가치형태



1. 가치형태의 변화된 성격
우리는 일반적 가치형태에서 여러 상품들이 단 하나의 상품으로 단순하게 가치를 표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여러 상품은 동일한 상품으로 가치를 통일적으로 표현한다. 즉 우리는 일반적 가치형태를 갖게 됐다. 상품세계의 시민들은 이제 자신을 표현해줄 대표자를 찾게 된 것이다.

“일반적 가치형태는 오로지 상품세계 전체의 공동사업으로 생길 수 있을 뿐이다. 하나의 상품이 자기의 가치를 일반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다른 모든 상품이 자기들의 가치를 동일한 등가(물)로 표현하기 때문이며, 그리고 새로 등장하는 상품종류도 반드시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가치로서의 상품들의 객관적 실재는 순전히 이 물건들의 ‘사회적 존재’에 의거하는 것이므로, 이 객관적 실재는 상품들의 전면적인 사회적 관계에 의해서만 표현될 수 있으며, 따라서 상품들의 가치형태는 반드시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형태이어야 한다는 것이 명백해진다.”(85쪽)

이제 이 세 번째 가치형태에서 모든 상품들은 질적으로 동등한 것으로 나타나고, 양적으로는 비교할 수 있는 가치량으로 나타난다. 이제 아마포는 상품세계에서 ‘일반적 등가물’이 된다. 아마포의 현물형태는 모든 상품들의 가치를 표현하고, 따라서 모든 상품과 직접 교환될 수 있다.

“아마포의 현물형태는 온갖 인간노동의 눈에 보이는 화신(visible incarnation), 즉 온갖 인간노동의 사회적 번데기 상태로 간주된다. 직포[아마포를 생산하는 사적 노동]는 이리하여 일반적인 사회적 형태[즉, 다른 모든 종류의 노동과 동등하다는 형태]를 획득한다. …… 직포를 무차별적인 인간노동의 일반적 현상형태로 만든다.”(86쪽)

2. 상대적 가치형태의 발전과 등가형태의 발전 사이의 관계
우리는 지금까지 단순한 상대적 가치형태의 발전이 일반적 등가물의 형태를 취하는 과정을 추적했다. 이 발전에 따라 처음의 단순한 가치형태는 등가형태와 대립 또한 발전한다. 제1형태에서 상대적 가치형태와 등가형태는 대립하지만 서로 위치를 바꿀 수 있다. 제2형태에서는 양변을 바꿀 수 없다. 양변을 바꾼 형태가 제3형태이다. 이 때 단 하나의 상품(아마포)이 일반적 등가물이 될 수 있는 것은 “다른 모든 상품들이 이러한 형태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며, 그리고 그때에만 그렇다”(88쪽). 한편 이 상품은 상품세계로부터, 상대적 가치형태로부터 제외된다. 이 상품(아마포)이 상대적 가치형태에 참여할 때 그것의 가치형태를 표현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대립시켜야 하거나, 제2형태(전개된 상대적 가치형태)를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3. 일반적 가치형태로부터 화폐형태로의 이행

“어떤 한 상품이 (제3형태에서) 일반적 등가형태로 되는 것은, 그 상품이 다른 모든 상품에 의해 그들의 등가(물)로 선출되어 배제되기 때문이며, 또 그렇게 될 때에 한해서다. 이러한 배제가 최종적으로 하나의 특수한 상품 종류에 한정되는 그 순간부터, 비로소 상품세계의 통일적인 상대적 가치형태는 객관적인 고정성과 일반적인 사회적 타당성을 획득한다.”(89쪽)

이 특수한 상품 종류가 화폐상품이 된다. 금이 이러한 특권적 지위를 역사적으로 획득했다.

D. 화폐형태



이 제4형태는 제3형태에서 아마포의 위치를 금이 차지했을 뿐이다.

“진보한 것은, 직접적인 일반적 교환가능성의 형태[즉, 일반적 등가형태]가 이제는 사회적 관습에 의해 최종적으로 상품 금이라는 특수한 현물형태와 일체화되었다는 점뿐이다.”(90쪽)


제4절 상품의 물신적 성격과 그 비밀

상품이 사용가치이기만 할 때는 모든 것이 명백하다. 그러나 그것이 상품으로 나타날 때 신비로운 장막이 우리의 눈앞에 나타난다. 상품의 신비한 성격은 상품형태 자체로부터 비롯한다.

“왜냐하면, 각종 인간노동이 동등하다는 것은 노동생산물이 가치로서 동등한 객관성을 가진다는 구체적 형태를 취하며, 인간노동력의 지출을 그 계속시간에 의해 측정하는 것은 노동생산물의 가치량(價値量)이라는 형태를 취하며, 끝으로 생산자들 사이의 관계[그 속에서 그들의 노동의 사회적 성격이 증명된다]는 노동생산물 사이의 사회적 관계라는 형태를 취하기 때문이다.”(91쪽)

즉 상품형태에서 모든 인간의 노동이 동등하다는 것은 상품이 서로 교환될 수 있다는 것으로부터 설명된다. 우리가 얼마나 일을 했고, 앞으로 얼마나 더 일을 해야 할지도 마찬가지로 상품의 가치로서만 측정되고 계획된다. 끝으로 생산자들 사이의 직접적 관계는 사라지고 상품들 사이의 관계만 남는다. 내가 오늘 먹은 이 쌀을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비슷한 예를 찾아보기 위해 우리는 몽롱한 종교세계로 들어가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거기에서는 인간 두뇌의 산물들이 스스로의 생명을 가진 자립적인 인물로 등장해 그들 자신의 사이 그리고 인간과의 사이에서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다. 마찬가지로 상품세계에서는 인간 손의 산물들이 그와 같이 등장한다. 이것을 나는 물신숭배(物神崇拜: fetishism)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노동생산물이 상품으로 생산되자마자 거기에 부착되며, 따라서 상품생산과 분리될 수 없다.”(94쪽)

개인적인 유용노동이 사회적 성격을 획득하는 것은 오직 상품의 교환을 통해서 만이다. 노동의 동등성은 상이한 생산물이 서로 가치로서 교환될 수 있다는 것에 의해 비롯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제 노동생산물의 교환 비율은 그 자체에 고유한 어떠한 성질(예를 들면 무게와 같은 것)에서 비롯한 것처럼 느껴진다. 노동생산물의 가치로서의 성격은 그것의 끊임없는 변동에서 분명해진다. “노동시간에 의한 가치량(價値量)의 결정은 상품의 상대적 가치의 현상적인 배후에 숨어 있는 하나의 비밀이다”(96~97쪽).

이러한 상품세계의 물신적 성격으로 인해 상품의 역사적 성격은 사상되고 일부 경제학자는 상품의 교환가치를 그 자연적 소재로부터 이끌어내는 혼동에 빠지곤 한다.

Posted by 때때로

마르크스 '자본론 : 정치경제학 비판' 1권 발췌ㆍ요약을 진행합니다. 전공 선생님의 지도 없이 제 자신이 명료하게 이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자본론 1권의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따라서 잘못 이해한 부분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섣부른 현실과의 유비를 피하고 가능하면 마르크스 자신의 언어로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책을 읽어가면서 떠오르는 영감에 흥이 겨워 무모한 시도를 한 부분이 있습니다. 언제나 배우는 자세로 제가 잘못 이해한 것에 대한 지적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습니다. 책은 김수행 교수가 번역한 비봉판을 이용했습니다.

………

제1판 서문 발췌

“첫부분이 항상 어렵다는 것은 어느 과학에서나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도 제1장, 특히 상품분석이 들어 있는 절을 이해하기가 가장 힘들 것이다. 나는 가치의 실체와 가치량의 분석을 될 수 있는 한 쉽게 했다. 화폐형태로 완성되는 가치형태는 매우 초보적이고 단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지혜는 2000년 이상이나 이 화폐형태를 해명하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한 반면에, 훨씬 더 내용이 풍부하고 복잡한 형태들의 분석에는 적어도 거의 성공했다. 무슨 까닭인가? 발달한 신체는 신체의 세포보다 연구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경제적 형태의 분석에서는 현미경도 시약도 소용이 없고 추상력이 이것들을 대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노동생산물의 상품형태 또는 상품의 가치형태가 경제적 세포형태이다. 겉만 관찰하는 사람에게는 이 형태의 분석은 아주 사소한 것을 늘어놓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사실 그것은 아주 작은 것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 작은 것들은 미생물 해부학이 다루고 있는 그러한 종류의 작은 것이다.”
- 제1판 서문, 3~4쪽

“이 책에서 나의 연구대상은 자본주의적 생산방식 및 그것에 대응하는 생산관계와 교환관계이다. 이 생산양식이 전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나라는 지금까지는 영국이다. 영국이 나의 이론전개에서 주요한 예증으로 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 제1판 서문, 4쪽

“만약 독일의 독자가 누구든지 영국의 공업·농업 노동자들의 형편에 대해 위선적으로 눈살을 찌푸리든가, 독일에서는 사태가 결코 그렇게는 나쁘지 않다고 낙관적으로 자기를 위안하려 한다면, 나는 그에게 “이것은 너를 두고 하는 말이다!”라고 외칠 것이다.”
- 제1판 서문, 4~5쪽

“자본주의적 생산의 자연법칙들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적대관계의 발전정도가 높은가 낮은가는 여기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 법칙들 자체에 있으며, 움직일 수 없는 필연성을 가지고 작용해 관철되는 이 경향들 자체에 있다. 공업이 더 발달한 나라는 덜 발달한 나라에게 후자의 미래상을 보여주고 있을 따름이다.”
- 제1판 서문, 5쪽

“우리나라[독일]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이 완전히 확립되어 있는 곳[예컨대 진정한 공장]에서는, 공장법이라는 규제가 없기 때문에 사태는 영국보다 훨씬 더 나쁘다. ……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에 의해서 뿐 아니라 그 발전의 불완전성에 의해서도 고통을 받고 있다.”
- 제1판 서문, 5쪽

“독일과 서유럽 대륙의 기타 나라들이 사회통계는 영국의 통계에 비하면 형편이 없다. 그렇지만 그 통계는 메두사(Medusa)의 대가리가 보일 만큼은 면사포를 걷어 올려주고 있다.”
- 제1판 서문, 6쪽

“자본가와 지주를 나는 결코 장밋빛으로 아름답게 그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개인들이 문제로 되는 것은 오직 그들이 경제적 범주의 인격화, 일정한 계급관계와 이익의 담지자인 한에서다. 경제적 사회구성의 발전을 자연사적 과정으로 보는 나의 입장에서는, 다른 입장과는 달리, 개인이 이러한 관계들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개인은 주관적으로는 아무리 이러한 관계들을 초월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그것들의 산물이다.”
- 제1판 서문, 6~7쪽

“경제학이 취급하는 문제의 독특한 성격 때문에, 사람의 감정 중에서 가장 맹렬하고 가장 저열하며 가장 추악한 감정-즉 사리사욕(私利私慾)이라는 복수의 여신-이 자유로운 과학적 연구를 저지하는 투쟁 마당에 들어오게 된다.”
- 제1판 서문, 7쪽

“나는 과학적 비판에 근거한 의견이라면 무엇이든 환영한다. 그러나 내가 한 번도 양보한 일이 없는 이른바 여론이라는 편겨에 대해서는 저 위대한 플로렌스사람[단테]의 다음과 같은 말이 항상 변함없이 나의 좌우명이다. “제 갈 길을 가라, 남이야 뭐라든!””
- 제1판 서문, 8쪽


제1판 서문 요약

마르크스는 ‘자본론’이 상품의 분석에서부터 시작하는 이유를 제1판 서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는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노동생산물의 상품형태 또는 상품의 가치형태가 경제적 세포형태”(4쪽)라면서 자신의 연구를 생물학에서의 ‘미생물 해부학’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이 책을 독일의 독자를 위해 독일어로 썼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이론 전개에 필요한 중요한 예증으로 영국의 사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리학자가 “자연과정이 가장 명확한 형태로 나타나며 교란적인 영향을 가장 적게 받는 곳에서 …… 관찰하든가, …… 순수하게 진행될 수 있는 조건 밑에서 실험”을 하듯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전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나라는 …… 영국”(5쪽)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적 발전의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 “움직일 수 없는 필연성을 가지고 작용해 관철되는 이 경향들 자체”(5쪽)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영국에 비해 형편없이 부정확하고 부족한 당시 다른 나라들의 통계를 살피더라도 자본주의 발전 경향의 필연성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본주의의 자연법칙을 발견했다고 해서 현실에 순응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1775년의 미국혁명이 18세기 말 대륙의 부르주아지들에게 영감을 주었듯이, 1861~1865년의 미국 남북전쟁은 대륙의 노동자계급에게도 영감을 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영국에서는 자본주의 발전에 따르는 변혁과정이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죠(마르크스가 말하는 ‘변혁과정’은 아마도 1830대 시작된 차티스트운동과 그 결과인 선거법 개혁을 말하는 듯합니다). 마찬가지로 “대륙에서의 변혁과정은 노동자계급 그 자체의 발전 정도에 따라 더 가혹한 형태를 취하든가 더 인도적인 형태를 취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는 “어떤 국민이든 다른 국민으로부터 배워야 하며, 또 배울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한 사회가 비록 자기 발전의 자연법칙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자연적인 발전단계들을 뛰어넘을 수도 없으며 법령으로 폐지할 수도 없”지만 “그 사회는 그러한 발전의 진통을 단축시키고 경감시킬 수는 있다”(6쪽)고 강조합니다.

마르크스는 자본가와 지주 개인을 “경제적 범주의 인격화, 일정한 계급관계와 이익의 담지자”(6쪽)로서만 다룬다는 것을 지적해둡니다.

마지막으로 경제학이 취급하는 독특한 성격 때문에 “자유로운 과학적 연구”는 투쟁의 장에 들어서게 됐다고 강조합니다. 영국과 미국에서의 지배계급은 “오늘날의 사회가 딱딱한 고체가 아니라 변화할 수 있으며 또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유기체(有機體)”(7쪽)라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그는 여론의 편견에 흔들림 없이 과학적 연구에 기반해 “제 갈 길”을 갈 것이라며 서문을 마무리 합니다.


제2판 후기 발췌

“1848년 이래 자본주의적 생산은 독일에서 급속히 발전했고 현재는 벌써 투기와 협잡이 성행하는 시기에 들어섰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아직도 독일의 경제학 교수들에게 미소를 짓지 않고 있다. 그들이 편견없이 경제학을 연구할 수 있었을 때에는 독일의 현실에 근대적 경제관계가 존재하지 않았고, 이러한 관계가 나타났을 때에는 [부르주아적 시야를 가지면서도 그것을 편견없이 연구하는 것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 환경이 조성되어 버렸던 것이다. 경제학이 부르주아적인 한, 즉 그것이 자본주의제도를 사회적 생산의 하나의 과도적인 역사적 발전단계로 보지 않고 사회적 생산의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형태로 보는 한, 부르주아 경제학은 계급투쟁이 아직 잠재적 상태에 있거나 오직 고립적이고 불규칙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는 동안만 과학으로 존속할 수 있다.”
- 제2판 후기, 11쪽

“1830년에는 최종적인 결정적 위기가 닥쳐왔다.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부르주아지가 정권을 쟁취했다. 이 순간부터 계급투쟁은 실천과 이론 모두에서 더욱더 공개적이고 위협적인 형태를 취했다. 그와 더불어 과학적인 부르주아 경제학은 조종을 울렸다. 그 뒤부터는 벌써 어떤 이론이 옳은가 옳지 않은가가 문제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자본에 유리한가 불리한가, 편리한가 불편한가, 정치적으로 위험한가 아닌가가 문제로 되었다.”
- 제2판 후기, 12쪽

“마르크스에게 중요한 것은 …… 현상들을 지배하는 법칙만이 아니다. 그에게 더 중요한 것은 현상들의 변화의 법칙, 현상들의 발전의 법칙, 즉 한 형태로부터 다른 형태로의 이행의 법칙, 상호관계의 한 질서로부터 다른 질서로의 이행의 법칙이다. …… 사람들이 이 필연성을 믿든 안 믿든,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전혀 상관이 없다. …… 조사의 출발점으로 될 수 있는 것은 관념이 아니고 오직 외부현상이다. …… 조사에서 중요한 것은 …… 사실을 가능한 한 정확하게 탐구하고 실제로 그것들이 발전의 상이한 계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는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상이한 발전단계를 표현하는 일련의 순서·순차성·관련성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것이다. …… 현재에 적용되든 과거에 적용되든 동일[한] …… 추상적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반대로 각각의 역사적 시기는 자기 자신의 법칙을 가지고 있다…경제생활이 일정한 발전시기를 경과해 일정한 단계로부터 다른 단계로 이행하자마자, 경제생활은 다른 법칙에 의해 지배받기 시작한다. …… 마르크스는 예컨대 인구법칙이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동일하다는 것을 부인한다. 그는 반대로 각각의 발전단계는 자기 자신의 인구법칙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 이와 같은 연구의 과학적 가치는 일정한 사회유기체의 발생·생존·발전·사멸과 더 높은 다른 사회유기체에 의한 교체를 규제하는 특수법칙들을 해명하는 데 있다.”
- 제2판 후기, 16~18쪽

“물론 발표 방법은 형식의 면에서 조사 방법과 다르지 않을 수 없다. 조사는 마땅히 세밀하게 소재(素材: material)를 파악하고, 소재의 상이한 발전형태들을 분석하고, 이 형태들의 내적 관련을 구명해야 한다. 이 조사가 끝난 뒤에라야 비로소 현실의 운동을 적절하게 발표할 수 있다. 조사가 잘 되어 소재의 일생이 관념에 반영된다면, 우리가 마치 선험적인 논리구성을 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 제2판 후기, 18쪽

“변증법은 그 합리적인 형태에서는 부르주아지와 그 이론적 대변자들에게 분노와 공포를 줄 뿐이다. 왜냐하면, 변증법은 현존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의 부정[즉, 그것의 불가피한 파멸]을 인정하기 때문이며, 또 변증법은 역사적으로 전개되는 모든 형태들을 유동상태·운동상태에 있다고 가주함으로써 그것들의 일시적 측면을 동시에 파악하기 때문이며, 또한 변증법은 본질상 비판적·혁명적이어서 어떤 것에 의해서도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 제2판 후기, 19쪽


제2판 후기 요약

마르크스는 제1판에서 무엇을 변경했는지 후기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이어 독일 노동자계급 사이에서 자신의 이론이 급속히 흡수되는 데 반해 독일의 부르주아 경제학이 독창적인 발전이 불가능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들이 편견없이 경제학을 연구할 수 있었을 때에는 독일의 현실에 근대적 경제관계가 존재하지 않았고, 이러한 관계가 나타났을 때에는 [부르주아적 시야를 가지면서도 그것을 편견없이 연구하는 것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 환경이 조성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11쪽). 이는 제1판 서문에서 경제에 대한 “자유로운 과학적 연구” 자체가 투쟁의 마당에 들어왔다는 설명과 이어지는 분석입니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부르주아적 시야의 한계를 영국에서의 경제학 발전 과정을 예로 들며 설명합니다. 1830년대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자본주의 발전이 본격화되었고(1925년 산업공황의 첫 발발) “부르주아지는 정권을 쟁취”했습니다. 따라서 그 때부터 경제학의 핵심 문제는 “자본에 유리한가 불리한가, 편리한가 불편한가, 정치적으로 위험한가 아닌가”(12쪽)가 되었다는 것이죠. 결국 부르주아 경제학은 이후 “총명한 실무가”의 길을 걷거나 존 스튜어트 밀의 뒤를 따라 “천박한 절충주의”의 길을 따르게 됩니다.

이어 그는 독일 부르주아의 묵살과 무시에도 불구하고 ‘자본론’과 그 이론이 성공하고 있음을 주장합니다. 한편 파리에서는 그의 이론이 ‘형이상학적’이며 ‘사실의 비판적 분석’에만 머물고 있다는 모순적인 비난을 받고 있다고 지적하며, 그에 대한 대답으로 러시아의 지베르 교수의 답변을 제시합니다. 또한 마르크스는 ‘헤겔식 궤변’이라고 비난한 카우프만의 논문을 발췌해 “나 자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아주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그것이 바로 “변증법적 방법”이라고 되받아치기도 합니다(16~18쪽).

덧붙여 그는 자신의 변증법적 방법이 헤겔과 다를 뿐 아니라 정반대임을 설명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변증법의 핵심을 설명한 것은 헤겔임을 강조하며 자신을 “이 위대한 사상가의 제자라고 공언하고 가치론에 관한 장에서 군데군데 헤겔의 특유한 표현방식을 흉내내기까지 했다”며 1장에 표현방식에 대해 설명합니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에서 “신비로운 껍질 속에 들어 있는 합리적인 알맹이를 찾아”내 바로 세우는 것의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왜냐면 “변증법은 현존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의 부정[즉, 그것의 불가피한 파멸]을 인정하기 때문이며, 또 변증법은 역사적으로 전개되는 모든 형태들을 유동상태·운동상태에 있다고 가주함으로써 그것들의 일시적 측면을 동시에 파악하기 때문이며, 또한 변증법은 본질상 비판적·혁명적이어서 어떤 것에 의해서도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이죠(19쪽).

한편 “산업활동의 주기적 순환”이 본격화되면서 “신성 프러시아-독일제국의 졸부들의 머리 속까지 변증법을 새겨넣을 것”이라고 말합니다(20쪽).


프랑스어판 서문·후기 발췌

“학문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오직 피로를 두려워하지 않고 학문의 가파른 오솔길을 기어 올라가는 사람만이 학문의 빛나는 정상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 프랑스어판 서문, 21쪽

“이 프랑스어판에 어떤 문장상의 결함이 있다 하더라도, 프랑스어판은 원본과는 독립적인 과학적 가치를 가지므로 독일어판을 읽은 독자들도 이 프랑스어판을 참조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 프랑스어판 후기, 22쪽

제3판 서문 요약

제3판은 엥겔스의 책임 하에 출간됐습니다. 1883년 3월 14일 마르크스가 세상을 떴기 때문입니다. 엥겔스는 제3판 서문에서 편집 원칙을 밝힙니다. 이와 함께 마르크스의 인용 방식에 대한 비난에 답합니다.


영어판 서문 요약

제3판 서문에서와 마찬가지로 엥겔스는 영어판의 번역작업, 편집 원칙을 설명합니다. 또한 엥겔스는 마르크스가 사용한 용어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덧붙입니다. “경제학은 일반적으로 상공업계의 용어들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 사용하는 것에 만족해 왔는데 경제학은 그렇게 함으로써 그 용어들이 표현하는 관념들의 좁은 범위 안에 자신을 국한시키고 있다”(29쪽)며 마르크스의 용어가 일상생활과는 물론 경제학에서의 용어와도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이어 그는 제3판에서와 마찬가지로 마르크스 인용의 두 가지 방식(예증, 혹은 이론의 발전 관계를 표현)을 다시 언급하며, 마르크스가 인용의 주장을 마르크스가 인정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음을 강조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본론’이 유럽에서 ‘노동자계급의 성경’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다가올 변혁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마르크스는] 전 생애에 걸쳐 영국의 경제사와 경제사정을 연구한 뒤 자기의 전체 이론을 수립했고, 이 연구에 의거해 적어도 유럽에서는 영국만이 전적으로 평화적·합법적 수단에 의해 필연적인 사회혁명을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영국의 지배계급들이 ‘노예제도를 옹호하는 반란’ 없이 이 평화적·합법적 혁명에 굴복하리라고는 거의 기대할 수 없다고 첨언하는 것을 결코 잊지 않았다.”(31~32쪽)


제4판 서문 요약

엥겔스는 제4판의 편집원칙을 설명합니다. 이와 함께 마르크스의 인용의 정확성에 대한 그의 생존 당시로부터의 비난과 논쟁(?)에 대해 설명을 합니다.

Posted by 때때로
2010.05.11 15:48

민주주의와 밥벌이, 책 몇 권 이야기 2010.05.11 15:48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나?

많이들 묻는 질문이죠. 근데 생각할 수록 '민주주의'가 뭔지 모르게 되더란 말입니다.

단지 투표만 잘 하면 되는 것인가? 근데 그건 결국 4년 혹은 5년간의 '독재자'를 뽑는 것 아닌가? 우리 역사상 가장 '민주적'이었다고 불리는 지난 10여년 간의 정권에서도 경찰의 폭력과 검찰의 전횡은 여전했죠. 삼성을 앞세운 재벌의 통제받지 않는 권력의 힘은 더욱 커져만 갔죠.

결국 사람들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에만 매달리고 있습니다. 부동산만 문제인가요. 펀드는 문제가 안될까요.

하지만 각자도생의 길에서조차 목숨 부치기에만 힘겨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간당 4천원의 최저임금에 자신의 삶을 거는 사람들이죠. 한겨레21에서 '노동OTL' 시리즈로 기자들이 직접 식당 종업원, 마찌꼬빠 직원 생활을 경험하고 쓴 기사가 화제를 모았었습니다. 상도 받았죠. 이 기사가 책으로 묶여 나왔습니다.



4천원인생 :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 시대의 노동일기
한겨레21 취재팀|한겨레출판사


'코끼리를 쏘다'에서 조지 오웰이 부랑자의 삶을 경험하기 위해 일부로 경찰에게 체포되는 것을 보며 우리 언론에선 언제쯤이야 이만한 보도를 볼 수 있을까 생각했었죠. 한겨레21이 바로 그 시도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첫번째 결과물이 4천원인생이죠. 최근에도 영구임대아파트의 주민을 취재한 '영구빈곤보고서(링크)'로 관심을 모았었습니다. 이 시리즈도 책으로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빈곤은 '부자나라' 일본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몇년 전에 '부자 나라 가난한 국민'이란 책도 나왔었죠. NHK에서도 '워킹푸어'에 대해 본격적으로 보도를 했더군요. 그 결과물이 책으로 나왔습니다.



워킹푸어 : 왜 일할수록 가난해지는가?
NHK스페셜 취재팀|열음사


분명 빈곤은 가난한 몇몇 나라들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되레 다 같이 가난한 시절이 더 그리울 정도죠. 지금과 같은 격차는 없었으니까요.

문제는 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점점 낮아진다는 것이죠. 이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개입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국가의 공적부조만이 이러한 악순환을 끊어낼 현재의 유일한 가능성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 손낙구씨가 펴낸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에 의하면 가난한 자들은 그들의 처지 때문에 정치에 관심을 갖지 못하죠.

그뿐 아닙니다. 국가의 운영과 관련된 많은 것들은 점점 전문화된 관료의 책임으로 떠맡겨지면서 국가는 하나의 회사처럼 변질되어 갑니다. 이명박이 'CEO 대통령'을 자임하는 것, 점점 많은 나라에서 기업인 출신 정치인이 늘어가는 것, 아니 그것을 떠나 국가의 운영 원리 자체가 기업의 원리인 경쟁과 효율에 포박되어가는 것 자체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누구나가 '민주주주의자'임을 자처하고, '민주주의'를 찬양합니다. 하지만 우린 되물어야 합니다. '민주주의 너는 누구냐?'라고.



민주주의는 죽었는가? : 새로운 논쟁을 위하여
조르조 아감벤, 알랭 바디우, 다니엘 벤사이드, 웬디 브라운, 장-뤽 낭시, 자크 랑시에르, 크리스틴 로스, 슬라보예 지젝|난장


8명이 이 질문을 다시 정식화 하거나 나름의 대답, 혹은 화두를 던집니다. 한국의 2008년 촛불을 언급한 자크 랑시에르의 인터뷰는 흥미롭지만 짧은 지문 속에서 단번에 어떤 '정답'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옮긴이가 서두에서 말하 듯 이 책은 정답을 던져주는 글이 아닙니다. 부제 그대로 새로운 논쟁을 시작하기 위한 화두를 던진 것이죠.

그래서일까요. 책은 짧지만 술술 읽히진 않습니다. 중간중간 멈추고 생각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87년 6월 항쟁 이후 20여 년.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할 때입니다.



p.s. 요새 마르크스가 좀 팔리나봐요. 특히 자본론. 여기저기서 책이 많이 나오네요. 국내외의 저자들이 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입문서를 비롯해 자본론 해설서가 그야말로 쏟아져나오는 듯 합니다. 거기에 자본론의 번역자인 김수행 교수도 한 손 보탰네요.


청소년을 위한 자본론
김수행|두리미디어


잠깐 넘겨봤는데(읽진 않았습니다 ㄱ-) '청소년을 위한'이란 표현 그대로 '참고서' 느낌입니다. 판형도 크고 곳곳에 다양한 그림ㆍ사진과 해설이 놓여있습니다.

Posted by 때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