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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프라이데이 세일이 한창이다. 한국에서도 이 기간에 미국으로부터 직접 구매를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딱히 벌이가 많지도 않은 동생도 미국 GAP에서 후드티를 구입했다고 한다. 이 GAP은 한국인 구입자들이 많자 한국에서의 접속을 차단하기까지 했다고 한다(내 동생은 그 직전에 구입했다).

이 블랙프라이데이 세일을 우리가 마냥 즐길 수 있을까.

우선 이 세일은 '추수감사절'을 즈음한 행사다. 영국 청교도가 '신대륙'에서의 첫 수확을 감사드린 날에서 비롯한 날.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낯선 대륙에서의 경작법을 알려준 인디언들을 초청해 칠면조 고기를 대접했다고도 한다. 이 추수감사절을 즈음한 세일이 '블랙프라이데이'란 이름을 얻은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이 세일 기간에 판매가 많이 이루어져 그 전까지 적자를 면치 못하던 곳도 흑자로 돌아선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이 그 후 인디언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학살을 당한다. 바로 그들이 경작법을 알려준 유럽 대륙의 백인들에 의해서 말이다. 그곳은 '신대륙'이었는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기 오래전부터 그곳에 많은 사람이 살았 듯이 '신대륙'에도 많은 사람들이 살았다. 그들은 지금 어떻게 됐는가?

자본가들에 의해 고혈을 빨리고 있는 노동자들, 특히 악명 높은 노동착취 사업장인 월마트 노동자들이 블랙프라이데이에 맞춰 사보타쥬를 벌인 것은 그들이 의도했든 안했든 과거의 비극적 학살의 역사를 돌이켜보게 한다. 상품을 만드는 공장에서의 저임금 노동과 유통하는 시장에서의 가혹한 서비스 노동이 블랙프라이데이 세일의 저렴한 상품을 가능케 한다. 게다가 '신대륙'에서 발견한 금과 은은 유럽 대륙의 자본주의적 교역을 확대시켰고, '신대륙'에서 확산된 가혹한 노예노동은 유럽의 '기계제 공장제도'에 유용한 경험을 전해줬다.

'블랙프라이데이 세일'은 이미 한국의 많은 사람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좌파라면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며 우리의 현재를 반성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블랙프라이데이'는 "지나간 시대의 어둠"(뮤지컬 '레 미제라블' 중 'Red and Black'에서)으로 묻어야 할 현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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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_ 열한 살의 한잘라: 팔레스타인의 양심 나지 알 알리 카툰집
나지 알 알리 그림|조 사코 서문|강주헌 옮김|시대의창

'열한 살의 한잘라'라는 팔레스타인 만화가의 카툰집이 나왔습니다. 1936년 태어나 1948년 나크바 때 고향인 팔레스타인을 떠난 나지 알 알리는 레바논, 쿠웨이트, 영국을 오가며 팔레스타인에 관련된 카툰을 그려왔습니다.

주인공(?) '한잘라'는 그의 모든 카툰에 등장하는 뒤돌아서있는 허름한 차림의 소년의 이름입니다. 한잘라는 아마도 알리의 분신이겠죠. 비슷한 나이에 고향을 떠나야 했던 그의 마음은 성장을 멈춘채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이스라엘의 잔혹한 학살, 미국의 사기와 협잡, 중동 지배자들의 위선을 놓치지 않고 직시합니다. 그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무슬림의 편협한 시각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중동의 지배자들처럼 위선적인 타협을 선호하지도 않습니다. 열한 살 한잘라의 눈에는 레바논 기독교인의 아픔도 함께 담기곤 합니다. 그와 민족의 고통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고통에 비견되기도 합니다. 그는 미국과 팔레스타인의 잔인함과 욕심을 비난하는 데 촛점을 맞추면서도 중동 지배자들의 비열한 태도에 대한 비판을 놓치 않습니다. 1987년 그를 암살한 범인의 배후로 이스라엘과 함께 중동의 여러 나라들도 꼽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만화 '팔레스타인'으로 잘 알려진 조 사코가 서문을 썼습니다. 각 장과 카툰마다 간략한 해설이 있어 그리 어렵지 않게 카툰이 그리고 있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마이뉴스에 원혜진이 연재하고 있는 만화 '아! 팔레스타인'(링크)도 팔레스타인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2_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최장집 글|폴리테이아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은 최장집 교수가 경향신문에 연재했던 칼럼을 모으고 보충해 낸 책입니다. 잘 안알려져 있지만 최장집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은 '노동'문제였습니다. 민주주의에 관한 그의 학문적 여정의 출발점으로 돌아온 셈이죠.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을 방문했을 때 그는 30년 전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 위해 방문했던 영등포 공단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현대차 노조 사무실 앞에는 회사 관계자인지, 경찰인지 모를 인물들이 진을 치고 노조 사무실 방문자들을 상시 감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30년 전 '빨갱이' 색출을 위해 공단 입구에서 감시의 눈길을 돌리지 않던 군사독재 정권의 모습과 겹칩니다. 지난 30여년간의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노동'에게 민주주의는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일 뿐입니다. 이 에피소드는 최장집 교수의 관심과 주장의 핵심을 짚어줍니다. 책 제목에서 직설적으로 말하 듯 노동이 배제된 민주주의는 더 많은 상처를 안겨줄 뿐이라는 겁니다. 그 자체는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경제민주화, 보편적 복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에도 고언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는 복지를 시혜가 아닌 사회적 권리로서 바라볼 것을 주장합니다. 즉 혜택을 받는 이들을 무기력한 상태로 놓아둘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직접 그 권리를 요구하고 설계하고 시행할 민주적 권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주장입니다.

새로운 이론에만 눈을 희번덕 거리며 몰려다니는 요즘 세태와 달리 하나의 주제를 뚝심있게 탐구하는 노학자의 자세가 무척 존경스럽습니다. 출판사에서 있었던 저자와의 대화에 나온 최장집 교수는 칠순이라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생동감 넘치는 눈빛과 지치지 않는 목소리로 자신이 '배우고' 있는 것에 대해 3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이 책은 본격적인 이론을 펼치진 않습니다. 현대차 노동자, 건설노동자, 이주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소규모 봉제공장 노동자 등을 만나며 떠오른 화두를 제시한 책일 뿐이죠. 따라서 그가 말하는 '노동'은 아직 이론적으로 엄밀하게 정의된 것은 아닙니다. 그가 만난 사람들에서도 드러나듯 영세 자영업 '사장님'도, 농민도 '노동'이라는 범주로 얘기됩니다. 하지만 이는 영세 자영업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의 가장 강력한 반대자들이라는 점에서 정치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많은 모순을 내포할 수밖에 없습니다.

176쪽이지만 판형이 작고 글자가 커 쉬엄쉬엄 읽어도 두 시간이면 다 읽을 책입니다. 하지만 이 책이 던진 화두를 고민하기에 두 시간은 너무 짧은 시간입니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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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osaja 2013.01.17 0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올해의(이제서야!!) 첫책은 이것으로 해야겠네요.

가치변화는 어디에서 일어나는 것일까? 우선 화폐 그 자체로는 가치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 구매수단과 지불수단으로서 화폐는 상품의 가격을 실현할 뿐이다. 화폐를 유통에서 빼내어 쌓아놓는 것(퇴장)이 가치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도 자명하다.

자본으로서 화폐의 유통을 다시 살펴보자. 구매한 상품을 다시 판매하는 과정(C-M)에서도 가치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는 상품을 현물형태로부터 화폐형태로 재전환시키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치변화는 구매(M-C)한 상품에 의해서만 일어날 수 있다. 이 상품의 가치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구매 또한 오직 그 가치대로 지불되는 등가물끼리의 교한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가치변화는 오직 그 상품의 현실적인 사용가치(使用價値)로부터, 다시 말해 그 상품의 소비(消費)로부터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한 상품의 소비로부터 그 가치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우리의 화폐소유자는 유통분야의 내부, 즉 시장에서 그것의 사용가치가 가치의 원천으로 되는 독특한 속성을 가진 상품[즉, 그것의 현실적 소비 그 자체가 노동의 대상화, 따라서 가치의 창조로 되는 그러한 상품]을 발견해야만 한다. 사실상 화폐소유자는 시장에서 이와 같은 특수한 상품을 발견하는데, 그것은 노동능력, 즉 노동력(勞動力: labour-power)이다."(218~219쪽)

화폐소유자가 노동력을 시장에서 상품으로 구매할 수 있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노동력의 소유자는 그것을 시장에 내놓기 위해서 자신의 노동력을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어야 한다. 노예와 농노는 노예주와 봉건영주의 의지로부터 자유롭게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에 내놓을 수 없다. 또한 노동력 소유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오직 한정된 시간 동안만 판매해야 한다. 자신의 전 생애를 모두 판매하게 된다면 그는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한 노예 혹은 농노와 같은 상태에 처하게 될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노예적 강제 노동을 오직 일탈로서만 받아들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개별 자본가의 이해와 달리 보통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의 정부는 노예적 강제 노동을 강력히 단속하려 한다).

노동력이 상품이 되기 위해서 필수적인 두 번째 조건은 노동력의 소유자가 그 자신을 시장에 상품으로 내놓는 방법 이외에 자신의 생활수단과 상품을 생산할 수단(생산수단)을 지니고 있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생활 유지 혹은 시장에 내놓을 상품의 생산을 위한 수단을 지닌 노동자는 그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에 내놓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화폐가 자본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화폐소유자는 상품시장에서 자유로운(free) 노동자를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이중의 의미를 가진다. 즉, 노동자는 자유인(自由人: free individual)으로서 자기의 노동력을 자신의 상품으로 처분할 수 있다는 의미와, 다른 한편으로는 그는 노동력 이외에는 상품으로 판매할 다른 어떤 것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으며, 자기의 노동력의 실현에 필요한 일체의 물건(物件)을 가지고 있지 않다(free of)는 의미다."(221쪽)

자유로운 노동자가 시장에서 화폐소유자를 만나게 되는 사연은 뒤의 제8편 '이른바 시초축적'에서 다룰 것이다. 다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러한 관계는 자연사적 관계도 아니며 또한 역사상의 모든 시대에 공통된 사회적 관계도 아니다"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과거의 역사적 발전의 결과이며, 수많은 경제적 변혁의 산물이며, 과거의 수많은 사회적 생산구성체의 몰락의 산물이다"(221쪽).

분명히 어느 정도 발전한 사회적 분업을 기초로 한 상품의 생산과 유통은 다양한 경제적 사회구성체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은 오직 생산수단과 생활수단의 소유자가 시장에서 [자기 노동력의 판매자로서의] 자유로운 노동자(勞動者)를 발견하는 경우에만 발생한다"(222쪽). 따라서 이 조건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지배적인 새로운 세계사를 형성한다.

우리의 관심을 다시 노동력이라는 상품에 돌려보자. 이 상품도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가치를 지니고 그 가치는 "[다른 모든 상품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이 특수한 상품의 생산과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규정된다"(223쪽). 노동력은 노동자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므로 이 상품의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이라는 것은 결국 노동자가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생활수단의 가치로 계산된다.

노동자가 정상적인 건강상태를 유지해 다음날 다시 노동과정에 투입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생활수단의 총량은 육체의 물리적인 한계에 의해서만 규정되진 않는다.

"그의 자연적 욕구는 한 나라의 기후나 기타 자연적 특성에 따라 다르다. 다른 한편, 이른바 필수적인 욕구의 범위나 그 충족 방식은 그 자체가 하나의 역사적 산물이며, 따라서 대체로 한 나라의 문화수준에 따라 결정되는데, 특히 자유로운 노동자 계급이 어떤 조건 하에서 또 어떤 관습과 기대를 가지고 형성되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므로 다른 상품들의 경우와는 달리 노동력의 가치규정에는 역사적 및 도덕적 【정신적】 요소(historical and moral element)가 포함된다. 그러나 일정한 시대의 일정한 나라에는 노동자들의 필요생활수단의 평균적 범위는 주어져 있다."(224쪽)

필요한 생활수단의 총량에는 또한 다음 세대의 노동자를 재생산하기 위한 생활수단들도 포함된다. 즉 출산과 육아를 위한 생활수단이 포함됨으로써 화폐소유자는 시장에서 노동력 판매자를 세대를 넘어 영원히 만날 수 있게 된다. 한편 작업의 숙련을 위한 교육 비용도 노동력 생산을 위해 지출되는 가치에 포함된다.

실제로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최저생계비(빈곤선)를 결정하는 데는 육체적 지속을 위한 상품들의 가격과 함께 출산과 육아ㆍ교육, 문명의 발전 정도가 반영된다. 한국의 경우 과거에 포함돼 있지 않던 통신비가 최근에는 필수적 항목으로 포함된다. 나라에 따라서는 적당한 문화생활(영화, 공연, 스포츠)을 위한 비용을 포함하기도 한다.

역사적 도덕적 조건과 함께 상품가치 변동은 노동력의 가치를 변화시킨다. 임금수준을 결정하기 위한 갈등에서 물가가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편 미국 노동자의 임금 1970년대 중반 이후 오르지 않았음에도 더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중국산의 싸구려 상품 덕이다. 대형 마트의 저가 상품은 저임금을 유지하기 위해 핵심적 역할을 한다.

노동력 상품은 구매와 동시에 사용가치가 실현되지 않는다. 노동력의 사용가치, 즉 노동은 일정한 시간에 걸쳐서 실현된다. 보통은 노동계약 후 일정한 기간 노동력을 발휘한 다음에 후불로 임금을 지불받는다.

우리는 지금까지 노동력이라는 독특한 상품의 구매와 판매에 대해 살펴봤다. 노동력 사용가치의 실현은 상품의 생산과정이며 잉여가치의 생산과정이다. 노동력의 소비는 다른 모든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유통의 밖에서 이뤄진다. 이제 우리는 마르크스를 따라 바로 그 현장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화폐소유자 및 노동력소유자와 함께 [모든 것이 표면에서 일어나고 또 누구의 눈에나 쉽게 띄는] 이 소란스러운 유통분야를 벗어나 이 두 사람을 따라 '관계자외 출입금지'라고 입구에 쓰인 은밀한 생산의 장소로 들어가 보도록 하자. 이곳에서 우리는 자본이 어떻게 생산하고 있는가 뿐 아니라 어떻게 자본 그 자체가 생산되고 있는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윤창조의 비밀도 드디어 폭로되고 말 것이다."(230쪽)

우리가 이 비밀을 파헤치기 전, 있는 그대로 보이는 상품교환과 유통분야의 모습은 천부인권이 지켜지는 참다운 낙원처럼 비춰진다. 노동력의 구매자도 판매자도 자신의 의지에 의해 자유롭게 행동한다. 그들은 동등한 상품소유자로서 평등하게 등가물끼리 교환한다. 이 상품소유자들은 자신이 소유한 것에 대해서만 처분권을 지닌다. 따라서 각자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을 지닌 이 모든 행동은 벤담의 공리주의가 설파하듯이 신의 섭리처럼 서로간의 이익, 사회 전체의 이익이 되는 일이 된다. 오직 상품의 유통과 교환의 영역에만 관심을 지닌 주류 경제학이 세상의 모든 것이 예정된 조화를 이뤄낼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으로 가득한 (따라서 위기와 파괴에 관심이 없거나 그것을 정상에서의 일탈로만 치부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다음 장부터 우리는 마르크스를 따라 생산영역에 따라 들어감으로써 가치와 잉여가치 생산의 비밀을 살펴볼 것이다. 우리가 가는 길에는 화폐소유자와 노동자가 앞서 가고 있다.

"이전의 화폐소유자는 자본가로서 앞장서 걸어가고, 노동력의 소유자는 그의 노동자로서 그 뒤를 따라간다. 전자는 거만하게 미소를 띠고 사업에 착수할 열의에 차 바삐 걸어가고, 후자는 자기 자신의 가죽을 시장에서 팔아버렸으므로 이제는 무두질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겁에 질려 주춤주춤 걸어가고 있다."(2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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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 WORK: 열심히 일하면 어디까지 올라갈까
CrimethInc. 지음|박준호 옮김|마티

자본주의적 혁신은 어제까지 최신이었던 기술을 오늘 낡은 과거의 기술로 만들어버립니다.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격찬했던 부르주아지의 혁명적 역할은 오늘날까지도 그 기세가 약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더 빨라졌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생산과 생활에 필요한 각종 기술의 개발과 보급은 우리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여겨지곤 합니다. 그러나 실제 우리의 삶은 어떨까요. 예를 들어 세탁기ㆍ청소기ㆍ전자레인지ㆍ식기세척기 등 주방의 혁명적 변화를 이끈 전자제품들은 여성을 가사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라고 기대됐습니다. 현실은 그 기대와 다릅니다. 새롭게 쏟아지는 주방기기를 작동시켜야 하고, 사용법을 익혀야 합니다. 과거의 주방에서 필요치 않았던 활동이 최신식 가전기기로 무장한 주방에서 요구됩니다.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100년 전과 비교했을 때 큰 차이 없다고 합니다. 게다가 현대 여성은 매일 쏟아져나오는 신제품 주방기기를 구입하기 위해 직장에 나가 돈을 벌 것을 요구받기까지 합니다.

물론 붉은 마르크스 박사는 이러한 경향을 자본주의적 경제법칙 자체로부터 추측했습니다. 노동생산성의 향상은 자본주의적 생산이 지배적인 사회에서 노동시간의 단축이 아닌 노동강도의 강화, 노동시간의 연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죠. 그리고 그 주장은 현실에서 사실로 입증되고 있습니다.

'워크 WORK(CrimethInc. 지음|박준호 옮김|마티)'는 마르크스 박사의 주장을 따르진 않지만 바로 위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책입니다. 우리는 더 많이 일하고, 더 열심히 일하고, 심지어 집에서조차 내일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자기계발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미래를 더 풍족하게 해줄 것으로 기대되는 땀방울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흘릴 것이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요? 최근 한 베스트셀러의 제목처럼 '긍정의 배신'만을 되풀이해 맛볼 뿐입니다.

끊임없는 배신을 맛보면서도 우리가 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다며 하는 노동이 바로 자본주의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지적합니다. 우리가 노동을 중단하면 자본주의는 더이상 지탱될 수 없다는 것이죠. 물론 그것이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닙니다. 우선 우리는 우리의 노동이 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밝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 사회를 바꾸는 방법에 관한 힌트를 제공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워크 WORK'는 우리에게 노동을 통해 계급을 환기시켜줍니다. 세계의 수평적 분할(너희 나라와 우리나라, 여성과 남성, 흑인과 백인 …)이 아닌 수직적 분할, 즉 계급적 갈등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옳게 강조합니다. 따라서 좌파들을 오랫동안 무기력증에 빠지게 했던 '정체성 정치'와 같은 것들에 비판적이죠.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치인, 예를 들면 오바마와 같은 이들을 지지하는 것과 같은 활동도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워크 WORK'는 더 나아가 권력은 결코 자본주의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정치와 조직에 대한 근본적인 부정에서 이 책이 아나키즘의 전통을 따름이 드러납니다.

분명히 개인적 일탈에 불과한 개별행동보다는 집단적 저항을 강조하고 있는 이 책이 여전히 개인적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어쩔 수 없이' 일터에 나가는 이들, 못미덥지만 '현실적'으로 보이는 개혁 정치인을 지지하는 이들, 자기 집단의 이익에만 철저해보이는 노동조합에 자신의 월급줄을 거는 이들을 이해하지 않고 집단적 저항이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이 책이 잘 지적하고 있듯이 혼자서 일을 중단한다고 해서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단 하루를 하더라도 함께 해야지 잠시라도 자본주의를 중단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편견과 합리화의 숲을 헤치고 사람들을 모아내야 합니다. 단순히 "네 대안은 근본적이지 않고 적절하지도 않아"라고 부정한다고 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죠. 그러한 내용을 담은 책은 피라미드를 쌓고도 남을 것입니다.

물론 '워크 WORK'는 우리가 무시해버리기 쉬운 저항을 재발견해 그것을 집단적 행동의 기초로 삼고자 합니다. 도덕적으로 비난받기 일쑤인 절도에 저항적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 시도는 대표적입니다. 그렇다고 절도를 우리의 대안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 이러한 사려깊음이 노동조합과 정당, 집단적 저항의 오래된 전통에 대해서는 발휘되지 않는 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이 책은 CrimethInc.(링크)라는 아나키스트 노동자 공동체의 공동 활동 산물입니다. 이 책을 쓴 이들은 카페의 비정규직 바리스타이기도 하고 피자 배달부이기도 합니다. 또는 회사에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업무를 담당하던 화이트칼라 노동자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삶과 활동을 고백한 저항의 연애편지가 바로 '워크 WORK'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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