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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5일 작성, 일부 수정

자크 비데와 제라르 뒤메닐이 쓴 새 책이 나왔다. 제목은 '대안마르크스주의'. 이 책의 서론에는 다음과 같은 잘 알려진 이야기가 앞 부분에 나온다.

마르크스가 '마르크스주의'의 기초를 제공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사상적 스승을 찾고 있던 러시아의 [근대] 초기 혁명가들에게 "어떤 경우라도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고 응답한 것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 17쪽.

그래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 문장을 독자들은 마치 이 이야기가 플레하노프와 자술리치 같은 러시아 초기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대해, 혹은 더 직접적으로 레닌과 그의 동료들에 대해 한 얘기인 것처럼 이해하기 쉽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이와 관련해선 우선 프랑스 노동당 건설을 위해 쥘 게드와 마르크스가 함께 작성한 강령의 해설에서 이 이야기의 배경을 발견할 수 있다.

Accusing Guesde and Lafargue of "revolutionary phrase-mongering" and of denying the value of reformist struggles, Marx made his famous remark that, if their politics represented Marxism, "ce qu'il y a de certain c'est que moi, je ne suis pas Marxiste(what is certain is that I myself am not a Marxist)".
개혁을 위한 투쟁의 가치를 폄하하며 '혁명적 미사여구'만 늘어놓는 게드(프랑스 노동계급 지도자)와 라파르그(마르크스의 사위)를 비난하며 마르크스는 그의 가장 유명한 발언을 내놓는다. 만약 저들의 정치를 마르크스주의라고 부른다면 "ce qu'il y a de certain c'est que moi, je ne suis pas Marxiste(확실한 것은 내 자신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 1880년 프랑스 노동당 강령에 대한 편집자의 해설(링크)

이는 노동당 건설을 위한 강령을 의논하기 위해 게드와 라파르그를 만난 이후를 설명한 글이다. 마르크스의 이 언급은 엥겔스가 베른슈타인에게 보낸 편지(Marx and Engels, Werke, Vol.35 p.388)에 인용돼 있다.

Nor have you any other source, i.e. other than Malon at second hand, for your reiterated assertion that in France 'Marxism' suffers from a marked lack of esteem. Now what is known as 'Marxism' in France is, indeed, an altogether peculiar product — so much so that Marx once said to Lafargue: 'Ce qu'il y a de certain c'est que moi, je ne suis pas Marxiste(If anything is certain, it is that I myself am not a Marxist)'.
프랑스에서 '마르크스주의'가 존중받지 못해 고통받고 있다는 당신의 반복된 주장은 말롱(제1 인터내셔널에서 활동한 염색 노동자)을 통하지 않고서는 어떤 근거도 제시할 수 없다. 현재 프랑스에서 '마르크스주의'라고 알려진 것은, 정말로 완전히 기이한 결과물이다. 언젠가 마르크스가 라파르그에게 이렇게 말했을 정도로 말이다. "Ce qu'il y a de certain c'est que moi, je ne suis pas Marxiste(무언가 확실한 게 있다면 그것은 내 자신이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1882년 11월 2일 엥겔스가 베른슈타인에게 보낸 편지(링크)

엥겔스는 이 말을 1890년 슈미트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반복한다.

Just as Marx used to say, commenting on the French "Marxists" of the late [18]70s: "All I know is that I am not a Marxist."
마르크스는 1870년대 후반 프랑스 '마르크스주의자'에 대해 언급할 때면 꼭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가 아는 전부는 내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 1890년 8월 5일 엥겔스가 슈미트에게 보낸 편지(링크)

이 언급들 모두 매우 구체적인 상황에서 이른바 프랑스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두고 한 말이다. 그리고 이 사정에는 그의 사위 라파르그가 끼어있다. 실제로 마르크스 사후 엥겔스는 1889년 라파르그에게 이렇게 편지를 쓴다.

We have never called you anything but 'the so-called Marxists' and I would not know how else to describe you. Should you have some other, equally succinct name, let us know and we shall duly and gladly apply it to you.
우리는 너를 '사이비 마르크스주의자' 외에 어떤 것으로도 부르지 않았었고 그것 외에 어떻게 너를 묘사할 수 있을지 나는 알지 못했다. 간결한 이름 같은 다른 어떤 것을 네가 가졌다면 우리에게 알려주렴. 우리는 당연히도 기꺼이 너를 그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
- 1889년 5월 11일 엥겔스가 라파르그에게 보낸 편지(링크)

그런데 저명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런 구체적 맥락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물론 정확한 인용 표기도 없이 마구 사용되고 있다. 그것도 매우 눈에 잘 띄는 정치적 의도를 지니고 말이다. 최근 뒤메닐 글을 읽으며 자꾸 실망하는 데, 이번 글도 '서론'에서부터 실망스러운 것 투성이다. 그 앞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마르크스로 되돌아가 다시 시작하겠다고 한 말이 무색하게도 말이다.

저 문구를 그저 '일반적 상황'에 대입해 썼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터이다. 명백히 '프랑스' 마르크스주의를 대상으로 한 말을 '러시아의 근대 초기 혁명가'들에게 했다는 건 터무니없는 왜곡일 뿐이다.

'저명한 저자'라고 해서 의심 없이 읽어선 안 된다. 마찬가지로 내 글에도 심각한 오역이나 오류가 있을 수 있다.

Posted by 때때로

정치가 우선한다 : 사회민주주의와 20세기 유럽의 형성
셰리 버먼 지음|김유진 옮김|후마니타스

이 책의 저자는 사회민주주의를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양자의 극복이라고 주장합니다. 마르크스주의의 '유물론'과 '계급투쟁'을 반대하고, 자유주의가 조성한 사회 구성원의 원자화ㆍ파편화를 극복한 이데올로기라는 것이죠. 경제를 우선시하는 유물론과 달리 정치적 우선성을, 계급투쟁과 같은 갈등의 전략 대신 계급교차(계급간 연대) 전략을, 개인들의 파편화를 극복하기 위해 공동체주의를 앞세운 것이 사회민주주의의 주요 특징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사회민주주의의 특징은 가장 안정되고 성공한 체제인 스웨덴을 만들어냈고, 비록 '사회민주주의'를 내세운 정당들은 실패의 길을 걸었음에도 유럽 전역에서 사회민주주의적 의제가 받아들여져 전후 유럽의 빛나는 시절을 이끌었다고 말합니다.

속류 마르크스주의의 경제결정론에 대한 비판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저자인 셰리 버먼은 정치/경제의 이분법적 태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정치는 오직 각 정당의 행위로만 축소돼 이해됩니다. 경제 또한 시장의 행위로만 이해되죠. 그 스스로는 구조와 행위에 대한 종합적 이해를 목적으로 한다고 하지만 경제와 정치에 대한 편협한 이해 때문에 20세기 유럽을 형성한 주요 사건, 1ㆍ2차 세계대전과 68년의 세계적 반란은 오직 정치 행위자들이 직면하는 외부적 사건으로만 그려집니다. 마치 인간이 개입할 수 없는 날씨의 변화와 같이 말입니다.

셰리 버먼의 이해에 기반해서는 스웨덴의 성공조차 온전히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그저 스웨덴의 사민당이 잘 준비돼 있었고 훈련돼 있었기 때문이죠. 결국 그들이 잘해서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왜냐면 그의 정치에 대한 편협한 이해에 기반해서는 1920~30년대 스웨덴의 격렬한 노동계급 투쟁이 사민당의 성공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자에게 정치란 오직 정치인들의 행위이며 노동계급을 비롯한 대중은 그들에게 표를 던지는 수동적 입장에 머물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사회민주주의를 여전히 중요한 정치적 대안으로 강조하기 위해 파시즘과 사민주의의 경제정책에 있어서 공통점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그 스스로의 서술에서 드러나듯 파시즘의 경제정책이라고 할 만한 것들은 온갓 것들의 잡탕입니다. 결코 하나의 일관된 이념으로 서명하기 어렵죠. 저자 자신이 설명하는 바지만 자본주의와 사적소유에 대한 급진적 반대를 수사로 해서 성장한 파시즘은 성공을 위해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을 공유하는 대자본가들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고 그들의 사유재산 몰수 조항들은 오직 유대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으로 변형됩니다.

하지만 1929년 경제위기 이후 2차세계대전까지 경제에 대한 국가의 강력한 통제는 결코 사회민주주의 정당과 파시즘만의 공통점은 아닙니다. 그것은 당시 전쟁에 참여했던 거의 모든 국가가 공통적으로 실천했던 바죠. 전간기 사회민주주의적 주장이 주요 정치세력에서 의미있는 행동을 하지 못했음에도 사회민주주의적 정책이 실현됐다? 이데올로기의 중요성과 그 매개체로서의 정당을 강조하고자 하는 저자 입장에서 이러한 사실은 그 자신의 주장과 모순될 뿐입니다.

저자는 사회민주주의를 현재의 위기에 여전히 유효한 이데올로기라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행동으로서 사회민주주의를 받아들였던 유럽이 68년 거대한 사회적 반란에 직면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자본주의 길들이기'에 성공한 사회민주주의적 유럽이 70년대 다시 자본주의의 고질병인 세계적 경제위기에 직면한 이유와 함께 이후 자유주의의 거대한 부활, 즉 신자유주의의 등장 또한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더 생각해볼 것 1 스웨덴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1930년대 활발한 노동자 투쟁을 빼놓아선 안 됩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동쪽에 거대한 '사회주의 제국'이 존재하는 상황, 국내에서의 격렬한 노동자 투쟁은 당시 스웨덴 자본가들이 한 발 양보할 수밖에 없는 조건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또한 스웨덴에서 노동조합은 사민당의 주도로 만들어져 당에 대한 높은 충성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조직률 또한 높아, 노동조합과 당의 지도자들이 대중을 '통제'하기 유리한 조건이었죠(확인이 필요하지만 당시 30~40%, 이는 현재 80% 전후에 이르는 조직률에 비하면 낮은 수치이긴 합니다. 하지만 한국과 프랑스는 현재에도 10% 내외의 조직률을 가지고 있다는 걸 고려하면 높은 수준이죠). 스웨덴 사민당의 계급교차 전략에 대해서도 더 고려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껏 그 어떤 사민주의, 공산주의 정당도 '계급연합', 특히 노동자와 농민의 연대ㆍ연합을 명시적으로 부정해오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건 노동계급의 주도성이 얼마나 관철되느냐죠. 이 점에 있어 저자 셰리 버먼의 주장은 불충분합니다. 다른 연구에서는 스웨덴 사민당이 계급교차적 전략(1930년대 자유당과의 연합, 농민에게의 양보)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급 중심성을 놓친 적 없음을 강조하기도 하니까요.

더 생각해볼 것 2 위의 '더 생각해볼 것 1'에서도 언급했지만 공산주의를 앞세운 '사회주의 제국' 소련의 존재는 사민주의 정치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현대 사민주의 정당은 '반공주의'를 주된 특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죠. 저자가 강조하는 '마르크스주의와의 단절' 또한 이 연장선상에서 파악되어야 합니다.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유물론과 계급투쟁의 강조가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는 기계적 경제결정론 또한 (저자도 잠시 언급하고 넘어갑니다만) 레닌에 의해 발전된 형태의 마르크스주의의 특징으로 볼 수 없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책과 말에 그러한 의심의 여지(기계적 결정론)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전적으로 마르크스의 탓으로 돌려야 하는지는 의문입니다. 저자는 카우츠키와 베른슈타인의 대립을 강조하지만,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와 카우츠키의 사민주의는 모두 역사적 진보는 예정되어 있다는 식의 속류화된 유물론(원시공산주의-노예제-봉건제-자본주의-공산주의의 역사발전 5단계론)에 기초해 사민당의 혁명적 역할을 부정했다는 공통점이 있죠. 마르크스의 핵심적 주장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에 대해선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여러 글을 종합해볼 때 그와 반대되는 면모 또한 무수히 많은 글에서 확인할 수 있죠. 당장에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만 봐도 그렇습니다. 이 테제의 마지막 문장은 역사에서 인간의 혁명적 역할의 중요함, 셰리 버먼에 따르면 정치의 우선성을 선언함과 다를 바 없으니까요. 마르크스를 기계적 유물론자로 모는 것은 저자인 셰리 버먼이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천박한 이해만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뿐입니다.

Posted by 때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