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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투표에서 '오히(ΟΧΙㆍ반대)'가 승리한 7월 6일 새벽 의회 앞 신타그마 광장에서 쳥년들이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 [Christopher Furlong/Getty Images]

시리자 내 레프트 플랫폼에 참여하고 있는 혁명적 사회주의자들(the Red Network)은 그리스 국민투표 전 발표한 성명에서 치프라스의 국민투표 제안이 "시리자는 긴축을 옹호하는 정당으로 쉽사리 바뀔 수 없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 투표를 통해 "두 개의 다른 세계가 충돌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쪽 편은 각서의 잔혹함으로부터 이득을 얻는 이들, 국내의 지배자들과 그들의 국제적 수호자와 협력자들의 세계"이고 다른 한 쪽은 "사회에서 거대한 다수를 이루고 있는 이들에게 기대지 않고선 어떤 이득도 얻을 수 없는 이들의 세계"가 충돌한다는 것이다
[레드 네트워크 '협박에 반대표로 맞서자'ㆍ링크].

이들의 주장대로 전 세계의 노동계급과 좌파가 이번 투표를 지켜봤다. 그리스 노동인민은 유럽과 세계 자본주의 지배자들의 협박에 맞서 용기있게 반대표를 던져 위대한 승리를 거뒀다.

시리자 소속의 좌파 의원인 코스타스 라파비차스는 국민투표 후 은행과 자본가들의 우익 언론의 국유화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그의 바람은 시리자에 의해 이뤄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시리자 내 좌파의 예견은 부분적으로만 맞았다. 7월 5일 국민투표에서 두 세계가 충돌한 것은 사실이지만 7월 5일 이후 시리자 정부는 '거대한 다수'의 편에 서지 않으려 한다.

이는 마이클 로버츠의 표현에 따르면 '불가능한 삼각형'을 유지하려는 시리자의 모순 때문이다. 이들은 ①긴축정책을 중단시키고 ②유로존에 남아 ③권력을 유지하고자 했다
[마이클 로버츠 '시리자, 트로이카, 역설들'ㆍ링크]. 그러나 앙겔라 메르켈과 트로이카는 ①과 ②가 양립 불가능하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시리자는 ①과 ②를 내걸고 정부를 차지했다. 치프라스는 국민투표를 통해 ③을 재확인하고 이를 근거로 유럽의 지배자들에게 ①과 ②를 포괄하는 새로운 구제금융 협상을 제안하고자 했던 것이다.

실제로 치프라스는 국민투표 전과 이후 계속해서 유로존 잔류를 강조해 왔다. 그는 5일 투표를 마친 후 "우리는 단지 유럽연합에 속하는 것 만을 원하는 게 아니라 평등하게 존재하기를 원한다는 점을 널리 알리게 될 것"이라고 이를 다시 강조했다
[경향신문 7월 6일자 3면]. 경향신문 기자가 만난 시리자 소속 의원도 다르지 않았다. 카바디아 아테나 의원은 "우리 목표는 유럽에서 떠나는 것이 아니다. 유럽에 계속 남아 있는 채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긴축을 완화해 보려는 것일 뿐"이라고 자신들의 목표를 설명했다[경향신문 7월 6일자 8면]. 심지어 시리자 정부에서 강경파로 알려졌고, 투표 후 사임함으로서 다시 관심을 받았던 바루파키스 또한 사임을 밝히는 글에서 그 자신도 "총리가 [국제 채권단과]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 그 목표임을 분명히 했다[한겨레신문 7월 7일자 7면]. 새 재무장관 유클리드 차칼로토스도 영국 '텔레그래프'의 평가에 의하면 그 전임자 바루파키스와 다르지 않다. "바루파키스의 거침없는 스타일 때문에 그리스 시리자 정부와 유로존 국가들 간 간극이 부각된 측면이 있지만 본질적으로 내용에서는 차칼로토스도 바루파키스와 차이가 없다."

그러나 그리스 인민의 압도적인 견해도, 시리자 정부의 우호적인 제안도 트로이카를 움직이는 채찍과 당근이 되진 못했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6일 엘리제궁에서 정상회담을 연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유럽재정안정화기구(ESM)의 프로그램을 논의하기 위한 요건이 현재 충족돼지 않았다"며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이번주 안으로 그리스를 번영과 성장으로 이끌 엄밀한 중장기 계획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겨레신문 7월 8일자 6면]. 7일 유로존 정상회의와 유로그룹에서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장 클로드 융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그렉시트를 포함한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날드 투스크 유럽연합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오늘까지 데드라인이란 말을 피해 왔다. 그러나 오늘 크고 분명하게 말하는 데 이번 주에 끝난다"며 "그때까지 해법을 찾지 못하면 그리스는 국가 부도 상태가 되고 은행들은 지급불능에 빠질 것"이라고 협박했다[중앙일보 7월 9일자 8면]. 발디스 돔브로스키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7일 "[그리스 정부와의] 신뢰가 구축되지 않고 믿을 만한 개혁안이 없다면 그렉시트를 배제할 수 없다"고 이전과 다르지 않게 주장했다[중앙일보 7월 8일자 8면].

결국 시리자는 그리려 했던 삼각형의 세 변 중 첫째인 긴축정책 중단을 포기했다. 시리자 정부가 9일 밤 10시께 제출한 13쪽가량의 협상안은 그야말로 항복 문서였다. 은퇴연령을 67세로 올리고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추가 연금은 당장 삭감하기로 했다. 부가가치세율도 현행 13%에서 23%로 올리기로 했다. 이와 달리 기업들에게 걷는 법인세 인상폭은 IMF가 요구한 대로 낮췄다. 이 협상안은 향후 2년간 정부의 재정지출을 130억 유로(약 15조1000억원) 줄일 계획을 담았다. 이는 애초 트로이카가 요구한 것(79억 유로)보다 더 큰 재정지출 축소 계획이다. 중앙일보는 이를 '채권단보다 센 개혁안'이라고 요약했다
[중앙일보 7월 11일자 6면]. 사실 이 협상안은 지난달 말 3차 구제금융을 요청하며 내놓았던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리스 정부는 이미 GDP 대비 정부 재정적자 규모를 2011년 -10.2%에서 2014년 -3.5%로 급격히 줄였다. 지난해 GDP 대비 정부 재정적자는 스페인 -5.8%, 프랑스 -4.0%로 그리스보다 더 크다. 정부 지출 규모는 2011년 212억2100만 유로에서 2014년 63억5600만 유로로 줄었다[유럽연합 통계청]. 공공부문 전체 고용은 2009년 90만7351명에서 2014년 65만1717명으로 25% 넘게 감축했다. 시리자 정부는 이런 양보를 통해 채무에 대한 일부 탕감을 얻으려고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럴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이 항복문서에도 불구하고 메르켈은 "'고전적(classic)' 의미의 채무 탕감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고 답했다. 즉 트로이카는 만기를 연장해줄 지라도 원금을 한 푼도 빼지 않고 돌려받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IMF가 3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인정했 듯이 채무 탕감 없이 그리스가 부채를 모두 갚을 가능성은 전무하다. 이는 "그리스 자본주의 경제가 충분한 속도로 성장하기엔 너무 약하고 너무 비효율적이며 너무 비생산적이기 때문이다"
[마이클 로버츠 '반대! 다음은 무엇인가'ㆍ링크]. 특히 신자유주의적 방식의 긴축정책은 그리스 경제의 회복은 물론이고 부채를 완전히 다 갚는 것도 더 어렵게 할 것이라는 게 지난 5년간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났다. 따라서 그리스로부터 한 푼도 손해보려하지 않으려 하는 트로이카의 유로존 안에서는 긴축을 중단시킬 수 없다. 그리고 그리스 인민은 자본가들의 언론과 국제 지배자들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오히(ΟΧΙㆍ반대)'에 표를 던져 이를 지지했다. 경향신문 기자가 3일 아테네에서 만난 29세 청년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몇 년째 취직을 할 수가 없다"며 "그리스는 이미 다른 나라들에 팔렸고, 젊은이들한테 앞날에 대한 보장은 없다.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더라도 상관없다. 왜냐면 지금보다 더 나쁠 수는 없기 때문"에 '오히'에 표를 던질 것이라고 말했다. 시리자 안과 밖의 좌파는 이 청년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그렉시트를 두려워하지 말고 긴축정책을 거부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의 새로운 가능성은 유로존 지배자들과의 협상이 아니라 ERT에서처럼 작업장을 점령한 노동자들, 거리로 나선 청년들 사이에서 건설될 수 있다.

Posted by 때때로




트로이카의 구제금융 조건에 반대하는 그리스 국민투표가 반대 진영의 승리로 끝났다. 박빙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반대표는 61%로 찬성표를 크게 앞질렀다. 국민투표에서 반대표가 다수로 나오게 되면 유로존을 나가게 되고 이로 인해 더 큰 경제적 파국을 맞을 것이라는 그리스 우파 언론들과 유럽 지배자들의 협박을 감안하면 이는 매우 큰 승리다.

국민투표는 그리스 노동계급 운동의 압력보다는 유럽 지배계급의 강경한 태도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메르켈과 유럽은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며 1월 시리자의 집권 후 이 정당과 그 지도자 알렉시스 치프라스의 실각을 위해 움직여 왔다. 유럽 지배자들의 압력 하에서 치프라스와 시리자는 양보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연금 수당 삭감을 약속하고 생필품에 대한 부가가치세 인상을 제안했다. 이런 와중에도 부유한 선주들을 위해 섬에서의 부가가치세 면제는 지속됐다. 그러나 메르켈이 더 강경했다. 치프라스에게도 끝없는 양보는 전임자인 파판드레우와 사회민주당(PASOK)와 다르지 않은 운명을 그들 앞에 열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즉 국민투표 외에는 유럽 지배계급의 압력에서 벗어날 길은 없었다. 게다가 그리스에는 여전히 강력한 노동계급 운동이 버티고 있었다. 치프라스는 국민투표에 판돈을 걸었고 그는 승리했다.

승리가 치프라스와 시리자의 것 만은 아니다. 2005년 프랑스에서 유럽연합 헌법이 부결된 후 일부 자신감을 잃었던 자본주의적 유럽에 반대하는 운동이 다시 한 번 기회를 잡았다. 국민투표가 발표된 후 유럽의 좌파와 노동계급은 그리스 인민을 지지하는 대중행동을 이어갔다. 메르켈의 독일에서도, 융커(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의 브뤼셀에서도 말이다. 그리스 좌파들 다수(공산당을 제외한)는 반대표를 던질 것을 호소하며 노동계급 인민을 조직해냈다. 진짜 민주주의는 브뤼셀의 유럽연합 사무실에 있지 않았다. 그리스와 유럽의 거리와 작업장에 진짜 민주주의가 있었고 그리스 인민은 훌륭하게 자신들의 뜻을 지배자들에게 보였다.

기껏해야 자유주의 좌파인 조셉 스티글리츠도 유로존의 반민주주의적 성격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 것은 이런 배경에서 이해 가능하다. 가디언지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미셸 뢰비는 이를 프랑스 대혁명 당시 전제정과의 투쟁에 비유했다.

그렇다면 다음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건 다음으로 미루고자 한다. 그렇지만 이번 국민투표가 보여줬 듯이 진정한 대안, 유럽 좌파가 원하는 '다른 유럽'은 브뤼셀의 협상장이 아니라 그리스와 유럽의 거리와 작업장에 있다는 것을 우선 강조하고자 한다. 전 세계 노동자들은 그리스 인민의 선택으로부터 다시 한 번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나가는 것은 노동계급 자신이다.

아래 그리스 국민투표 전 발표된 여러 글들을 모았다. 때를 놓친 글이지만 국민투표 이전을 되돌아볼 때 다시 찾아볼 만한 글일 것이다. 국민투표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이후 다른 글에서 더 소개하겠다.

시리자, 트로이카, 역설들ㆍ마이클 로버츠ㆍ링크
그리스 국민투표에서 어디에 표를 던질 것인가ㆍ조셉 스티글리츠ㆍ링크
국민투표에 대한 그리스 좌파의 입장ㆍ인터내셔널 뷰포인트ㆍ링크
국민투표, 그리스 국민과 무자비한 유럽 자본주의의 투쟁ㆍ가디언ㆍ링크

※ 잘못 옮긴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제게 있습니다. 대괄호 [ ]로 표시한 부분은 이해를 위해 덧붙인 것입니다.

Posted by 때때로


일요일의 중대한 국민투표에 대한 그리스 좌파의 두 입장을 아래 소개한다. 이 둘 모두 반대에 표를 던질 것을 호소하고 있지만 시리자의 지도자들에 대한 방침에 있어서 다른 의견을 보여준다. 앞의 것은 제4인터내셔널의 그리스 지부인 OKDE-Spartakos의 것이고 뒤는 시리자 내의 좌익 분파인 the Red Network의 것이다.

International Viewpointㆍ2015년 7월 3일링크


협정에 반대하자, 협상을 끝내자

그리스 정부는 끈질긴 노력에도 불구하고 EU, IMF와 같은 기구들 혹은 유럽을 지배하는 부르주아 계급으로부터 신뢰와 호의를 얻어내는 데 실패했다. 부채를 '완전하고 늦지 않게' 갚고 자본주의적 정상상태에 반하는 그 어떤 수단도 단독 행동과 함께 포기하겠다는 충성 서약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시리자는 (사유화, 퇴직 연령의 상향, 임금과 연금의 실질적인 삭감, 대중적 소비 제품에 대한 부가세 인상 등을 담은) 각서에 완전히 일치하는 정책과 개혁을 도입하기조차 했다. 그럼에도 유럽연합과 IMF는 그들의 그리스 국내 협력자들과 함께 그 가혹한 정책들뿐 아니라 선거에서 각서의 폐기를 내세워 선출된 정부에 비춰진 모든 희망(환상)의 파괴를 원했다. 물론 그 구호는 당선된 다음 날 바로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이렇게 해서 시리자는 막다른 길에 이르게 됐다. 그들은 스스로 정치적 죽음을 선언하는 서약에 서명할 수 없었다. 이 협정에 동의하는 것은 그들을 게오르그 파판드레우가 이끌던 사회민주주의 정당 PASOK와 같은 운명에 처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노동자운동이 요구하는 압력 하에 국민투표를 선언했다. 우리는 자본의 이해와 자본주의적 기관에 맞서는 시리자의 능력 혹은 이러한
[국민투표의] 의도에 대해 그 어떤 환상도 갖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트로이카의 제안에 반대표를 던지는 것은 적절한 상황에서는 우리를 착취하고 억압하는 체제의 새로운 정치적 위기의 장을 열 것이다.

그 후 수도의 전통적인 자본주의 정당들인 ND
[신민당:1970년대 군부독재의 붕괴 후 사회당ㆍPASOK와 함께 그리스 정치를 독점해온 정당. 중도 우파 정당이다]와 PASOK는 극단적 신자유주의 정당인 POTAMI와 함께 가능한 모든 수단을 이용해 자본주의적 기구들의 제안을 거절했을 때 일어날 참사들을 제기하며 열광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들 모두는 기업의 이윤은 물론 큰 소득, 심지어 낮은 임금에 대한 세금조차 맹렬하게 반발했었다. 그들은 유로존에서의 탈퇴가 가져올 참사를 마구 제기하며 직설적으로 협박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계급은 이미 진정한 참사를 겪고 있는 중이다. 긴축과 자본주의적 공격으로부터 말이다. 노동계급은 공포에 떨 수도, 그렇게 할 이유도 없다. 이들은 자본의 통제 혹은 유로존에 일반화된 위기에 의해 잃을 실질적인 어떤 것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를 착취하는 체제인 자본주의가 동요하면서 우리는 전투를 준비하고 있다. 유럽연합ㆍIMF와의 파국은 절망과 두려움이 아니라 투쟁을 위한 자신감을 줄 것이다.

단지 투표를 통해 이 파국이 올 수는 없다. 선거도 국민투표도 긴축을 끝장내는 마법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이어지는 며칠간 "우리는 유럽에 남을 것이다"와 같은 구호 하에 모인 친 자본주의적 반동에 맞서 거리로 나설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해 국민투표가 시리자의 지도자들과 치프라스의 협상을 위한 술책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다. 또한 어떤 환상도 갖지 않을 것이다. 최근, 그리고 주로 이전의 몇 년간 나섰던 대중이 그렇게 나서지 않는다면 그 기구들과 각서는 방해받지 않고 정상적으로 작동할 것이다.

트로이카의 제안에 대한 우리의 반대가 시리자와 그리스 독립당 연립정부를 신뢰함을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들 자신의 47쪽에 이른 제안과 이후 만들어질 수정안 또한 어떻게든 받아들일 수 없는, 새로운 긴축과 사유화를 담은 아주 약간 완화된 새 각서일 뿐이다. 정부의 제안은 어떤 면에서 저 기구들의 것보다 더 반동적이기조차 하다. 국방비 프로그램, 배 소유주들에 대한 세금 면제의 유지처럼 말이다. 우리는 투쟁으로 이 제안들 또한 반대할 것이다.

7월 5일 일요일, 우리는 반대표를 던질 것이다.

반대한다:
[트로이카와의] 균열을 강화해 새로운 협상의 시작을 막기 위해
반대한다: 투표뿐 아니라 거리에서도
반대한다: 이번 협정 뿐 아니라 모든 타협을
반대한다: 유로존과 유럽연합, IMF와 그들의 제안에 대해
반대한다: 트로이카와 이들 뿐 아니라 동일한 체제의 다른 관리자들에 대해

OKDE-Spartakos 중앙위원회
2015년 6월 28일
OKDE



협박에 반대표로 맞서자

7월 5일 국민투표가 극단적 긴축정책 혹은 유럽 지배자들의 협박을 받아들일 것인지 많은 눈들이 그리스를 지켜보고 있다.

은행을 폐쇄하며 그리스 정부는 투표까지 최소한 한 주 동안 자본에 대한 부분적 통제를 도입했다. 이는 유럽의 대출자들과 그들의 정치적 대변자들에 의해 국가의 금융이 교살당할 것에 대한 대응의 필요성 때문이었다. 이는 그리스 국민들에게 식료품과 그 밖에 필요한 것들을 사기 위해 줄을 서고 그들이 그것들을 살 현금을 긁어모아야 한다는 긴장감을 자아냈다. 이는 또한 대출자들의 강탈 전략에 맞서 저항하는, 분노에 보낸 신호이기도 하다. 6월 29일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에 모여든 거대한 '반대 투표' 시위대처럼 말이다.

유럽의 정치적 지도자들과 '기구들'-유럽연합ㆍ유럽중앙은행ㆍIMF-의 대변자들이 그리스 금융 시스템에 대한 구제금융 연장을 대가로 더 가혹한 긴축과 사유화의 더 빠른 이행, 노동인민에 대한 더 높은 세금을 포함한 최후 통첩을 전해온 후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긴급 국민투표를 발표했다. 시리자가 1월 25일 전국 투표에서 승리해 새로운 정부를 형성한 이후 치프라스는 긴축을 역전시키겠다는 급진 좌파정당의 약속이 아니라 채권자들이 원한 조건부 항복으로서 통 큰 양보안을 제안했다.

치프라스와 정부에 대한 다른 압력은 시라자 내 영향력 있는 좌익으로부터 비롯했다. 이들은 더 이상의 후퇴를 중단하고
[당의] 방침을 바꿔 노동자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자원을 사용해 공약의 실현을 시작하길 요구했다. 아래는 시리자 내부의 레프트 플랫폼(the Party’s Left Platform)에 참여하고 있는 혁명적 조직들의 연합인 the Red Network가 발표한 성명이다.

정부는 채권자들의 최후통첩을 거부하고 극단적인 긴축정책을 담은 새로운 각서에 서명하길 거절한 후 7월 5일 국민투표를 통해 그리스 정부가 나가야할 바에 대해 인민의 의지를 표현해주길 호소했다.

이러한 결정은 사회적 투쟁으로 비롯해 1월 25일 이후 지속된 도전이 국내와 국외의 신자유주의 지자자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깊어지고 강화됐음을 입증한다. 이는 또한 2월 20일 채권자들과의 협상 결과로 교착상태에 놓인 그 동안 계속돼 온 협상의 막다른 길로부터 시리자와 인민의 변화에 대한 희망을 자유롭게 했다.

이는 또한 시리자 내 가장 비판적인 분파인 우리가 선거 이후 몇 달간 강력히 주장해온 것이 옳음을 입증한다. 시리자는 긴축을 옹호하는 정당으로 쉽사리 바뀔 수 없다는 주장 말이다.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국민투표를 선언한 순간 이후 가장 중요한 전투가 진행 중이다.

그 '기구들'과 유럽 정부들의 지도자들은 좌파 정부에게뿐 아니라 노동자와 그리스 인민 대중에 대해 직설적으로 경제적 교살을 위협하고 있다.

NDㆍPASOKㆍPOTAMI의 '국내 트로이카'를 포함한 저들의 국내 협력자들은 - 요 몇 년간 은행과 산업, 선주들을 지지하며 도입된 극단적 긴축 체제인 - 각서의 국제적 수호자들이 그들의 영향력을 잃을까봐 두려움 속에서 지켜보고 있다.

모든 신호들은 다가올 날에 양 측 사이에 전면적인 맹렬한 전투를 보게 될 것임 보여준다. 노동계급과 인민 대중은 명확한 승리를 위해 이 전투에 온 힘을 기울여야만 한다. 반대를 위해서. 각서와 긴축, 부채 채권자들의 협박에 대한 반대 말이다.

이 전투에서의 승리는 1월 선거에서 시리자에 대한 노동계급과 인민의 투표에서 역동적으로 표현됐던 것처럼 좌파 부활시킬 것이다. 이는 그리스에서 정치ㆍ사회적 세력균형의 변화를 다시 한 번 보여줄 것이다.

7월 5일 승리가 상황을 채권자들이 야비한 최후통첩을 통해 협상을 붕괴시킨 때로 되돌리진 않을 것이다. 승리는 시리자가 선거 전 테살로니키 프로그램에서 약속했던 긴급하고 일방적인 최소한의 반 긴축 정책들에 뒤따르는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입증할 것이다. 이는 부채의 상당 부분 삭감을 목표로 한 부채 상환의 중단을 포함한다. 노동자와 가난한 이들의 삶의 개선을 위한 정책, 그리고 기업과 부자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는 재정 정책과 공기업의 광범위한 재국유화, 은행의 사회적 통제를 위한 정책 말이다.

정치ㆍ외교ㆍ금융에 필요한 모든 정책들은 반드시 실현돼야만 한다. 채권자들의 협박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긴축에 맞선 투쟁은 유로 체제의 영향 혹은 유럽 지배자들의 동의에 의해 통제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앞으로 두 개의 다른 세계가 충돌할 것이다. 한 쪽 편은 각서의 잔혹함으로부터 이득을 얻는 이들-국내 지배자들, 그리고 그들의 국제적 수호자와 협력자들-의 세계다. 그들은 은행을 포함해 자본의 해외로의 유출, 혼란스러운 위기에 대한 협박에 기대고 있다.

다른 한 쪽은 노동자와 가난한 이들의 세계다. 실제로 사회에서 거대한 다수를 이루고 있는 이들에게 기대지 않고선 어떤 이득도 얻을 수 없는 이들의 세계다.

이 두 세계 중 어느 하나의 승리는 다른 하나의 패배를 뜻할 것이다. 따라서 좌파의 어떤 개인과 조직도 순간 망설여서는 안된다. 지금 즉시 반대표를 조직할, 그렇게 해 노동계급과 인민 대중의 승리를 얻어낼 동맹을 건설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1월 이후의 실수와 상관 없이, 그리고 이 순간 우리가 직면한 전례 없는 난관에 대해 과소평가하지 않는다면 현재는 학술적 토론을 위한 시간이 아니다. 지금은 투쟁할 때다. 지금은 기존 국가의 문제를 결정적으로 변화시킬 그리스 노동 인민의 위대한 승리를 얻어야 할 때다.

Red Network(시리자)

Posted by 때때로


국민투표, 그리스 국민과 무자비한 유럽 자본주의의 투쟁
아디티야 차크라보티ㆍ가디언ㆍ2015년 6월 29일링크

유럽의 고위 정치가들은 그리스 국민이 이번 일요일 할 투표가 어떤 나라에서든 가장 중요한 문제에 답하는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물론 그들은 그 문제를 실제로 해결할 수는 없다. 그리스 총리 알렉시스 치프라스에게 이는 그의 인민이 '가혹하고 굴욕적인 긴축정책'을 앞으로도 더 받아들일 것이냐는 것이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녀는 그리스 국민들의 선택은 유로존에 남을 것인지 드라크마화로 돌아갈 것인지에 관한 것이라고 여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장인 장 클로드 융커에 의해 판돈은 더 커져만 가고 있다. 그는 다가올 주말 '전 세계'는 그리스가 유럽에 남으려 할지 않을지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모든 게 틀린 주장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이 주장들은 지금 이 순간 핵심을 비켜가고 있을 뿐이다. 이번 주말 그리스를 주목해야 하는 것은 1100만 명의 사람들이 나머지 우리들 또한 어느날 밟아야 할 단계를 시험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민주주의와 실패한 정치ㆍ경제 체제와의 싸움 말이다.

인민이 원하는 것과 지배자들이 아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들의 턱밑에 대고 강요하는 것 사이의 전투는 그리스의 최근 역사에서 극적인 모든 순간마다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게오르그 파판드레우 전 총리가 그의 나라가 긴축으로 붕괴하지 않도록 해줄 것을 메르켈에게 간청했던, 그리고 그녀가 냉정하게 "우리 누구도 이를 바라지 않을 것이라는 걸 확실하게 할 것"이라고 답했던 2010년 봄 이 전투는 이미 벌어졌다. 이는 2011년 여름 그리스의 북적이는 보통 도시들에서 연줄로 묶인 부패한 정치 엘리트들과 유로관리들, 금융가들에 대한 대안을 요구했을 때 더 명확히 드러났다.

국가를 경제의 구렁텅이에 빠뜨린, 스스로 문제를 키워온 잔혹한 긴축정책을 시리자가 거꾸러뜨리고 명백히 국민이 뽑은 정부로 선출된 올해 1월 이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끔 됐다.

지난 주 치프라스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유럽중앙은행, IMF의 트로이카 채권단들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는 구석에까지 몰렸다. 그에겐 그의 유권자들의 민주적 선택에 호소하는 것 외에 어떤 선택지도 남지 않았다.

실제론 잔혹하고 실행 불가능한 형태의 자본주의와 인민 사이의 전투를 의미하는 이 문제에서 경제와 금융은 사소한 것에 불과하다. 투표의 진정한 쟁점은 브뤼셀에서 전해진 소식과 아테네에서 가장 최근 전개된 것들 사이의 문제다. 은행의 폐쇄는 분명 충격적이다. 그렇지만 자본주적 통제의 황금률은 그것이 어떤 자본주의든 인민에게 심각한 고통을 주는 것이 보통이다.

당신이 TV에서 보는, 텅빈 현금지급기 사이를 서성이는 그리스 국민들은 연금수급자, 제조업 노동자, 성난 교사들이다. 그리스 은행들에선 몇 년 전부터 대부분 현금으로 큰 돈이 빠져나갔다. 2011년 여름으로 시간을 되돌려보면 경제학자들은 이미 '조용한 뱅크런'에 대한 염려를 늘어놓았었다. 한 고위 투자은행가는 당시 내게 3만 유로를 가방에 싸 창고에 숨겨둔 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 그가 말하길 "그 가방은 이전에 음식을 보관하던 것이어서 쥐들이 끓더니 지폐를 갉아 먹었다".

이 이야기가 말해주는 바는 그리스가 최근 붕괴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록적인 불황 중에 경비 삭감과 '구조조정'이 - 또는 노동자 권리의 분쇄, 공적 자산의 헐값 매각과 복지국가에 대한 계속된 공격 등이 - 어떻게든 그리스를 제자리 찾게 할 것이라는 환상을 트로이카는 2010년부터 퍼뜨려 왔다. 5년이 지난 지금 항상 의심스럽던 그 전망은 거짓말로 드러났다. 나라는 더 최악으로 빠져들었다. 그런데도 기술관료들은 비참한 현실에 처한 그 주제들에 대한 선전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

그리스 인민이 한 편에 있고 고장난 경제가 다른 한 편에 있다. 이는 당신 생각 이상으로 양립이 불가능한 것이다. 역설적인 것은 이 양립 불가능한 둘을 화해시키려 한 이가 치프라스라는 것이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위기 이전 유로존 회원국 중 가장 열광적인 유로 지지자로 꼽히던 나라에서 시리자는 단일 통화에 꼼짝 못하는 처지로 남아있다.

국가가 가난했던 기억을 노인들만 갖고 있는 다른 유럽의 나라들에서처럼 그리스 지배자들은 단일 통화 사용을 제1세계에 속해 있음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취급한다. 재무 장관 야니스 바루파키스는 아직 학교에 남아있을 때 유럽 통화 연합을 가능케 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데 몇 년간을 쏟아부었다.

북유럽 언론이 마구잡이로 모욕하긴 하지만 시리자의 주요 정책 입안자들은 유로화 신자였다. 끝내 환멸하게 됐지만 말이다. 지난 주 정부는 그리스 채권자들에게 타협안을 제출했다. 타협안을 제출한 바루파키스가 이전에 썼던 말로 표현하자면 이 안은 '긴축적'이며 '불황을 불러올 것'이다. 물론 보도에 따르자면 시리자의 부유세에 관한 계획에 대해 트집을 잡고 있는 채권자들은 이 제안이 긴축 정책을 충분히 담아내고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협상은 이걸로 마침내 결렬됐다.

치프라스나 바루파키스보다 덜 이상적인 사람들은 이 결과로부터 짐작할 것이다. 2010년 유로 위기가 분출한 후 대륙의 넓은 지역이, 민주주의와의 타협점을 찾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파악한 기구의 지배 하에 들어갔다. 이중 가장 중요한 기구는 - 선출되지도 않고 거의 전적으로 책임지지도 않는 - 유럽중앙은행과 융커의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다. 이들은 그리스ㆍ포르투갈
아일랜드스페인에서 일자리를 잃고, 임금과 수당이 깎인 사람들을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유로존 재무 장관들의 비공식적 유로그룹 회의 또한 민주주의와의 친밀성에 있어서 이 체제가 도달한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쾰른의 막스플랑크 사회과학 연구소 전 소장인 프리츠 샤프는 이렇게 말한다. "지나치게 비대해져 부적합하게 설계된 통화 동맹을 구제하기 위해 설립된 이 체제가 유럽의 민주적 자치정부들을 실제로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

이 정치구조는 대륙 전체에서 노동자들의 익금을 이들의 생활수준에 이르지 못하게 만드는 수단이다. 하지만 이는 합법적이지 않다. 또 룩셈부르크 총리였던 융커는 나라가 세금 회피에 전념할 수 있게 하고선 그리스의 세금 체계에 대해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장 클로드 융커가 룩셈부르크 총리 재임 당시 다국적 기업들의 집중적인 세금 탈루가 있었음이 2014년 하반기 폭로됐다. 정부가 세금 탈루를 도왔고 융커 총리도 이를 눈감았다는 것이다. 융커는 "내가 총리로 재임하던 시절에 이런 일들이 집중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에 대해 정치적으로 책임을 느낀다"면서도 "나는 룩셈부르크의 조세제도를 설계하지 않았다"고 책임을 부정했다]. 그런 후 선거에서 시리자가 당선되자 마자 ECB는 그리스 정부의 채권은 더 이상 받을 수 없다고 발표한다. - 이는 미국 중앙은행이 워싱턴의 재무부가 발행한 채권을 더 이상 받을 수 없다고 말한 것과 비슷하다.

그리스 국민이 해야만 하는 선택은 이 체제에 의해 정치적이고 경제적으로 조용이 목졸려 살해당하는 존재로 남을 것인지 여기서 벗어날 것인지에 관한 것이다. 어떤 선택지도 그리스와 유럽에 편안한 것 만은 아니다. 2년 전, 현재 시리자에 참여하고 있는 한 경제학자는, 유로화를 벗어던지는 것은 현금지급기에 군인을 배치하고 산업을 강제로 국유화해야 함을 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상황이 매우 위험하고 빠르게 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용한 죽음과 혼돈으로의 발걸음 사이에 주어진 어려운 선택에서 내가 끌리는 것은 두 번째 것이다. 만약 그리스 국민이 이를 선택하면 나머지 우리는 이를 응원할 것이다. 그들의 - 인민과 이 고약한 자본주의 사이의 - 전투는 우리의 전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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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에 지원된 구제금융은 어디에 쓰였는가?
필립 인먼ㆍ가디언ㆍ2015년 6월 29일링크
※이 주제에 관해서는 한겨레의 기사 '지원금 313조의 92%, 채권자 주머니로 갔다'(7월 2일자 3면ㆍ링크)가 더 자세하게 쓰였다. 구체적 액수는 약간 차이가 난다.

그리스가 2010년과 2012년 지원받은 총 2400억 유로의 긴급 구제금융 중 아주 작은 일부 만이 2008년 금융 붕괴에 강타당해 허약해진 정부 금고와 개혁 프로그램 자금으로 갈 길을 찾았다.

대부분의 돈은 붕괴 전 그리스에 돈을 빌려준 은행들에게 갔다.

연금과 복지 수급자를 위해 거대한 적자 예산을 쌓아두고 있는 대부분의 유럽과 달리 아테네는 연금을 축소하고 최저임금을 낮추는 식으로 자신의 적자를 극단적으로 축소하게끔 강제됐다.

아테네가 다양한 유럽의 주요 은행들로부터 빌린 3100억 유로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된 후인 2010년 봄에 대출자들의 트로이카는 첫 발을 내디뎠다.

2년이 지나 IMF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유럽중앙은행(ECB)은 민간 부문 대출자들이 빌려준 1000억 유로의 부채 탕감을 핵심으로 한 두 번째 긴급 구제안을 내놨다.

자신이 가진 채권의 가치가 53% 하락하는 것을 지켜본 민간 채권자들은 빌려준 돈을 낮은 금리의 유가증권으로 교환함으로써 더 큰 손해를 봤다.

약 1000억 유로의 부채를 없앴지만 340억 유로는 협상을 체결하기 위한 다양한 '우대 조건'에 사용됐다. 주요 민간 대출자인 그리스 연금 기금 또한 끔찍한 손해를 봤다.

그리고 482억 유로는 자신과 예금주들을 보호할 능력이 약해져 손해를 볼 위기에 처해있던 그리스 은행들을 구제하는 데 사용됐다.

마지막으로 1400억 유로는 대출 원금과 이자를 갚는 데 사용됐다.

남아있는 10% 이하의 긴급 구제 자금은 정부가 경제를 개혁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데 사용됐다.

그리스 정부의 부채는 여전히 약 3200억 유로에 달한다. 이 중 78%는 트로이카에 빚진 것이다. 쥬빌리뎁트운동(the Jubilee Debt Campaignㆍ부채 탕감 운동 단체)은 "긴급 구제는 민간 부문으로부터 진 부채를 공적 부문으로 이전하는, 유럽의 금융 부문을 위한 것이었습니다"고 말했다.

Posted by 때때로


그리스 국민투표에서 어디에 표를 던질 것인가
조셉 스티글리츠ㆍ2015년 6월 29일링크

외부자에게 유럽 내에서 논쟁과 독설의 고조는 그리스와 채권자들 사이의 격렬한 대립이 종반에 이르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유럽 지도자들은 계속돼 온 부채 논쟁의 진정한 본질을 마침내 폭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대응이 그리 유쾌한 것은 아니다. 이 대립은 돈과 경제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권력과 민주주의에 관한 것이다.

물론 '트로이카'(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유럽중앙은행ㆍECB, IMF)가 지난 5년간 그리스에 강요해온 정책들 배후의 경제학은 GDP를 25% 감소시킨 최악의 것이었다. 신중하게 살펴봐도 그와 같은 비극적 결과를 가져온 불황을 그 어디서도 떠올리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그리스 청년 실업률은 현재 60%를 넘어섰다.

트로이카가 이에 대해 그 어떤 책임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그들이 내세웠던 전망과 모델이 얼마나 나쁜 것이었는지 인정하지 않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렇지만 더 놀라운 것은 유럽의 지도자들이 그 어떤 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점이다. 트로이카는 여전히 그리스가 (이자 지급을 제외한) 기초수지
 흑자를 2018년까지 GDP의 3.5% 수준으로 달성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전 세계 경제학자들은 필연적으로 더 깊은 침체를 불러올 그 목표를 강하게 비판해 왔다. 정말로 어떤 상상도 뛰어넘을 만큼 그리스 부채가 재조정 됐음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이 이번 주말 이 갑작스러운 국민투표에서 트로이카의 목표에 동의하게 된다면 나라는 여전히 침체에서 못 빠져나올 것이다.

거대한 기초수지
 적자의 흑자 전환을 살펴보면 소수의 나라들에서만 지난 5년간 그리스가 이루어낸 수준을 완수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겪는 고통의 대가가 극단적으로 커져 왔음에도 그리스 정부의 최근 제안들은 '채권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지속돼 왔다.

우리는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스에 이루어진 거대한 규모의 대출 대부분은 실제로 그리스에 지원되지 못했다. 그 대출은 독일ㆍ프랑스 은행을 포함한 민간 채권자들에게 지불되는 데 쓰였다. 그리스는 아주 약간을 가질 수 있었을 뿐이고 그조차도 이 나라의 은행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큰 비용을 치르는 데 쓰였다. IMF와 다른 '공식' 채권단이
[그렇게] 요구한 돈이 따로 쓸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일반적으로 [그들이] 받아낸 돈은 바로 다시 그리스에 대출될 뿐이다.

그렇지만 다시 말하자면 이는 돈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
[구제금융]기한'이 그리스를 굴복시키고 - 긴축 정책뿐 아니라 다른 퇴행적이고 징벌적인 정책들 같은 -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게 만들려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에 관한 것이다.

그렇다면 유럽은 왜 이렇게 할까? 유럽연합 지도자들은 왜 국민투표에 반대하고, 그리스가 IMF에 빚을 갚아야 하는 기한인 6월 30일이 며칠 안 남았는 데도 이를 연장시키는 것조차 거부하는 것일까? 유럽은 모두 민주주의
[국가] 아닌가?

1월 그리스 시민들은 긴축 중단을 약속한 정부에 표를 던졌다. 정부가 자신의 선거공약을 바로 실현하고자 했다면
[트로이카의] 그 제안은 벌써 거부했을 것이다. 정부는 그리스 국민들이 자신들 나라의 미래 행복에 결정적인 이 쟁점에 대해 따져볼 기회를 제공하길 원했다.

인민으로부터 합법성을 획득하는 것은 가장 반민주주의적인 프로젝트인 유로존 정책과 양립할 수 없다. 이 회원국들의 정부 대다수는 통화주권을 ECB에 넘기는 데 있어 그들의 인민으로부터 동의를 얻지 않았다. 스웨덴이 그렇게 했을 때 국민들은 반대했다. 그들은 그들 나라의 통화정책이 인플레이션 하나에 초점을 맞춘 (또한 금융 안정에 관해서는 불충분하게만 주의를 기울이는) 중앙은행에 의해 결정되면 실업률이 상승할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다. 유로존에 기초를 둔 경제모델은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권력관계에 입각해 있기 때문에 경제는 악화될 것이다.

유로존이 이러한 관계들을 제도화한 지 16년이 지난 현재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민주주의와 정반대의 것이다. 유럽 지도자들 다수는 좌파 정부의 총리인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물러나길 바라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많은 선진국들에서 불평등을 증가시키며 제한되지도 억제되지도 않는 부의 권력에 헌신해온 이 같은 유형의 정책들에 그리스 정부가 반대하는 것에 극도로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협상을 받아들이라고 그리스 정부를 협박해 끝끝내 굴복시킬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스 국민들에게 7월 5일 어디에 투표할지 조언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트로이카의 정책을 받아들이든 거부하든 어떤 대안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 둘 모두 큰 위험을 수반하기도 한다. 투표가 찬성으로 결정된다면 이는 아마 끝없는 침체를 뜻할 것이다. - 자신의 모든 자산을 매각하고 떠나는 사람들과 이민을 떠나는 젊은이들로 - 고갈된 나라는 마침내 채무포기를 선언하게 될 것이다. 중위소득 경제로 쪼그라든 그리스는 결국 아마도 세계은행의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모든 일은 다가올 10년간 일어날 수도, 혹은 그 후 10년간 일어날 수도 있다.

이와 달리 투표 결과가 반대라면 강력한 민주주의 전통을 지닌 그리스에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할 최소한의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다. 그리스 국민들은 과거와 같은 번영에까지 이르진 못할지라도 현재의 과한 고통보다는 희망에 찬 미래를 만들어갈 기회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표를 던질 곳은 뻔하다.

Posted by 때때로


시리자, 트로이카, 역설들
Michael Roberts Blogㆍ2015년 6월 28일링크

시리자 정부가 ①긴축정책을 역전시키며 ②유로존에 남아 ③권력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삼각형'이다(로버츠 '시리자, 경제학자들, 불가능한 삼각형'ㆍ링크). 트로이카는 이 삼각형을 깨뜨릴 작정이다. 그리스 정부가 (불황 중에 정부 예산을 흑자로 운영하며) 모든 긴축 프로그램과 (노동권을 끝장내고 서비스와 금융 분야 규제를 완화하며 국가 자산을 사유화 하는) '구조조정'을 수행하는 것이 트로이카가 원하는 바다. 이전 사마라 정부는 이 같은 '조건들'을 대가로 긴급 구제금융을 받았다. 시리자가 이 조건들을 바꾸길 원하자, 트로이카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실제로 더 가혹한 정책들을 시리자 정부에 내걸었다.

이는 긴급구제가 연장된 다섯 달 동안 그리스 경제와 정부 수입이 더 악화돼 왔다는 데 어느 정도 원인이 있다. 여기에 또 국가재정의 긴축과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반대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시리자 정부의 실각을 트로이카가 원해서이기도 하다.
[시리자의] 이러한 태도가 다른 국가들을 '고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혹독한 이 조치들의 적용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했던 것은 (자신의 돈을 되돌려 받길 원하는) IMF를 포함해 독일 재무 장관인 쇼블레, 그리스보다 더 가난한 유로존의 작은 국가들, 그리고 자신의 유권자들에게 혹독한 긴축을 강요해 현재 자신의 국가 에서 반-긴축 운동에 직면한 포르투갈ㆍ아일랜드ㆍ스페인의 보수당 정권이다
[포르투갈 사회민주당 정부는 지난해 5월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종료한 후에도 긴축 정책을 고집하고 있어 대중적 저항에 직면했다. 사회민주당은 이름과 달리 우파 정당이다. 위키피디아에는 중도우파로 분류돼 있다. 아일랜드의 민족당ㆍFine Gael 정부는 2011년 집권한 이래 긴축정책을 펼치고 있다. 최저임금과 실업기금 등이 삭감됐고 부가세는 올랐다. 해고는 더 자유로워졌고 임금은 하락했다. 아일랜드 인민은 2014년부터 다시 정부의 긴축에 항의하는 투쟁에 나서고 있다. 포르투갈ㆍ이탈리아ㆍ그리스와 함께 유럽의 문제아로 치부되는 스페인에서도 2011년 이후 인민의 저항이 분출하고 있다. 스페인의 분노한 사람들ㆍIndignados 운동은 미국의 점령하라 운동, 아랍의 봄과 함께 2011년을 뜨겁게 달궜다. 최근 선거에서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는 포데모스는 시리자에 비견된다]. 이 모든 세력들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유럽 의회의 어떤 타협적 세력보다 더 크다.

이 고통스러운 협상과정은 그리스 인민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어떤 채무불이행도 없이 IMF와 ECB가 빌려준 돈을 돌려받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는 잔혹한 역설을 기억해야 한다. 지난 5년간 트로이카가 빌려준 돈의 90% 이상은 그리스 경제를 스쳐 지나가지도 않은 채 그리스 정부의 채권자들에게 다시 빨려 들어갔다
(로버츠 '그리스:제3세계 원조와 부채'ㆍ링크). 그리스 정부 채권을 예측 매수했다가 2012년 아주 약간을 '탕감'해준 후 상환받았던 이 채권자들은 주로 프랑스ㆍ독일의 은행과 헤지펀드들이다. 그 후 유로존과 IMF는 그리스 연금 기금에 부채를 책임지워 그 적립금을 빼앗아갔다.

시리자 정부는 그 자신이 원래 약속했던 모든 것들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왔다. 부채 탕감, 그리고 채무 절반의 삭감, 긴축 정책의 역전, 사유화 반대 등으로부터 말이다. 결국 시리자 정부는 협상을 위해 연간 3만3000달러 이상의 소득에 (즉 소득계층 순위에서 부자로 여겨지는 개인들에게-3만3000달러라는 기준선을 '부자'로 여기기엔 너무 낮다고 비꼬는 듯하다ㆍ옮긴이) 대한 세금 인상을 제안했다. 기본적인 음식과 서비스들의 부가가치세는 23%로 올렸다.
[그러나] 그리스의 관광산업에서 매우 중요한 섬들에 대한 특별 부가가치세율은 없앴다. 2016년을 시작으로 조기 퇴직 연령은 올리기로 했고 2018년부터는 저소득 연금 수당도 서서히 줄여나가기로 했다.

그러나 (IMF 수장과 독일 재무장관인) 크리스틴 라가르드와 볼프강 쇼블레의 2인조는 6월 25일 저소득 연금 수당을 2017년 완전히 끝내라고 요구했다. 국가 연금 체계를 전면적으로 뜯어고치게 될 이 제안을 그리스 정부가 받아들이게 되면 오늘날 한 달에 500유로(560달러)의 연금을 받는 - 그리스 연금 수급자의 절반 가까이가 공식 빈곤선 이하의 연금을 받는다 - 사람은 거의 200유로(223달러)를 덜 받게 될 것이다. 이는 치프라스와 시리자 지도자들에겐 너무한 것이다.

왜 그런지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언론 보도에서 그리스인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리스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테살로니키의 언론들로부터 모은 반응들을 살펴보겠다.

좌판에서 10유로짜리 청바지와 6유로짜리 셔츠, 저렴한 여름 드레스들을 늘어놓고 판매하는 54세의 미하일리스 나스토스는 실업률과 세금이 크게 오른 위기의 몇 년간 수입이 50% 이상 줄어드는 것을 지켜봐 왔다. 나스토스는 부가세 인상 제안이 가장 두렵다고 말한다. 간접세인 매출세는 가격 상승을 압박하고 모든 구매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들 대다수는 이미 이전의 세금 인상 효과에 힘겨워 하고 있다. "당연히 이미 꽤 높은 이 부가가치세는 연쇄적인 반응을 일으킬 것입니다. 작은 변화조차 사람들에게 확실히 영향을 미칩니다. 빵값이 오를 것입니다. 이건 매우 중요해요. 왜냐면 그리스 사람들은 여전히 많은 빵을 먹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깨빵 가격이 50센트에서 70센트로 올랐죠. 이건 정말 충격적인 일이에요. 포장비도 오를 거예요. 에너지, 파스타와 같은 기초재료 등도요. 소득이 적은 사람들은 감당할 수 없을 거예요.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되겠죠."

50세 때 퇴직한 84세의 전직 경찰관 미할리스 하지-아타나시아디스는 그의 연금이 한 달 1600유로에서 1000유로로 쪼그라들었고 가외 수입도 끊겼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사인 52세의 딸의 월급에 비하면 그의 연금은 여전히 높다. 그녀는 자신의 형제 부부처럼 부모 집에 함께 기거하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다. 하지-아타나시아디스는 "사람들은 굶주리고 있어요. 다섯 달 동안 나아진 건 하나도 없어요. 모든 곳에서 경기는 가라앉아 있어요.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았죠. 소득은 줄어는 데 구입 해야할 모든 것들의 세금은 더 높아졌죠"라고 말했다.

시장 근처에서 만난 50세 즈음의 한 여인은 자신의 주 수입을 암시장에서 발칸 담배를 파는 데서 얻는다고 말한다. 그녀는 전에 보통 5~6갑씩 사던 고객들이 어떻게 해서 현재는 한 갑 혹은 두 갑 밖에 구입하게 됐는지 설명해줬다. 그녀는 "삶이 끝장난 것 같아요"라며 "우리는 간신히 목숨줄을 이어나갈 뿐이에요"라고 토로했다. 점원으로 일하다 불황으로 직업을 잃은 그녀의 다 큰 자식 또한 그녀와 함께 살고 있다. 그녀는 "그들, 부자들 모두는 자신의 돈을 나라 밖으로 빼돌린 후 약자들만 남겨둔 채 도망쳐버린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GDP의 180%에 달하며 계속 늘고 있는 3000억 유로의 빚을 그리스 정부가 절대 되갚을 수 없다는 것을 IMF가 알고 있다는 게 그 다음 역설이다. 그리스는 더 많은 긴축에 동의하는 대가로 '부채 탕감'을 요구했다. 그리고 장기적인 계획을 요청했다. 트로이카는 이를 거절했다. 그들은 부채 탕감에 대한 고려를 거부하고 단지 다섯 달 동안 찔끔찔끔 제공되는, 따라서 그리스가 계속 침체와 빈곤에 시달리게 할 '긴급 구제' 자금만 제안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국민투표 제안에 이르렀다. 그리스 국민들은 트로이카가 내세운 복잡한 제안들에 대한 투표를 앞뒀다. 주어진 질문은 그들이 트로이카의 정책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닌가이다. 만약 받아들이겠다는 결과가 나온다면 아마도 시리자 정부는 브뤼셀로 되돌아가 어떤 제안이라도 그들은 수락하겠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스 국민들이 못 받아들이겠다고 답한다면, 정부 부채를 갚기 위한 더 이상의 지원이 멈추고, 수십 억
[유로]에 달하는 예금자들의 현금 인출 수요 증가에 직면한 그리스 은행들에 현재 자금을 대고 있는 유럽중앙은행과의 신용거래가 중단될 것이라는 전망을 그리스 국민들은 현실로 대할 것이다.



정부는 자금 이탈을 막기 위해 자본 통제를 도입해야만 할 것이다. 또 아마도 정부 공무원들과 연금 수급자들에게 지급하기 위한 차용증을 발행해야만 할 것이다. '실제' 유로화가 부족해지면서 이 '유로 차용증'들은 빠르게 가치를 잃어갈 것이다.

여기에 또 두 가지 역설이 있다. 우선 그리스 국민들이 트로이카의 정책들을 받아들이겠다고 투표한다고 해도 더 이상 동의할 그 어떤 정책들도 없다. 현재 긴급 구제 프로그램은 6월 30일 종료된다. 그 후 완전히 새로운 정책들을 두고 협상을 해야만 하고 트로이카는 시리자와 협상은 못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시리자가 권력을 잃어 말 잘 듣는 정부와 협상할 수 있길 바라고 있다.

둘째 그리스 국민들이 못 받아들이겠다고 투표하고 ECB에 의해 유로 신용거래가 중단됐을 때, 그리고 그리스가 자신의 모든 부채에 대해 채무 불이행을 선언했을 때에도 그들로부터 유로존 회원국 자격을 박탈할 실질적인 절차가 없다는 것이다. 규칙에 따르면 회원국이 탈퇴를 요청해야만 한다. 내쫓는 것은 불가능하다. 메르켈, 올랑드, 유로존 지도자들에게 이는 분명코 유례 없는 혼란이다.

그리스의 친트로이카 정당들은 치프라스가 국민투표를 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데 이용한다고 비판한다. 그가 유권자들 뒤에 숨으려 한다는 것이다. 여기엔 일말의 진실이 있다. 그렇지만 이는 완전한 진실은 아니다. 왜냐면 시리자는 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지라고 호소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해서 얻는 것은 무엇일까? 분명 정부는 이 고통스럽고 엉망진창인 상태를 중단시켜야만 한다. 그 '끔찍한' 트로이카의 빚을 승인하길 거부해야만 한다. 자본 통제를 도입해야만 한다. 따라서 그리스 은행들을 국유화해야만 한다. 경제 수장들이 지닌 지휘권 또한 노동자 통제 아래로 가져와야 한다. 그리스 국민들은 이 경제 위기의 반환점을 돌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 국민들이 이를 홀로 수행할 수는 없다. 경제 정책과 투자에서 자본가들이 향유하는 권력을 깨뜨리기 위한 유럽 노동자들의 연대가 필요하다.

나는 다른 글에서 그리스 경제상황을 분석할 것이다. 이와 함께 유럽을 위한 계획 내에서 이 경제상황의 개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다룰 것이다.

Posted by 때때로

하비는 올해 출간될 '2008년의 대붕괴'의 초안으로 2014년 발표한 글[링크]에서 마르크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을 비판적으로 논했다. 이에 대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앤드루 클라이먼이 반박에 나서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아래는 앤드루 클라이먼의 첫 번째 하비 비판이다.

※ 'crisis'는 '위기'로 통일했습니다. 1847년과 1858년 공황과 관련해 마르크스의 용어를 검토하는 부분에서만 '공황'이라고 썼습니다. 인용 중 국역본이 있는 것은 이를 활용했습니다. 대괄호[ ]는 이해의 편의를 위해 추가한 것입니다. 잘못 옮긴 부분에 대한 지적을 기다립니다. 댓글로 달거나 메일(go24601@gmail.com)로 보내주십시오.

※ 6월 14일 수정. 김공회 선생의 꼼꼼한 충고를 반영해 수정했습니다. 단, 잘못 옮긴 것의 책임은 전적으로 제게 있습니다.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하비와 마르크스의 대결
1편: 마르크스를 오해하기

앤드루 클라이먼ㆍ2015년 3월 10일ㆍ링크
칼 마르크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은 대침체(the Great Recession)를 설명하고 미래의 중대한 경제위기들에 어떻게 대비할지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로 잘 알려진 데이비드 하비는 최근 발표한 논문(하비 2014ㆍ링크)에서 칼 마르크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LTFRP)의 ▲마르크스 자본주의 경제위기 이론 내 지위와 ▲대침체 그리고 지속되는 침체 여파와의 관련성을 격렬히 비판했다. 법칙은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 절약형 기술 진보로 인해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기술 혁신은 생산비용을 떨어뜨리면서 생산물 가격 상승을 저지하는 경향을 띠며, 이는 기업이 자신의 생산물 생산에 투자한 자본의 크기 만큼 이윤을 빠르게 증가시키는 걸 어렵게 한다.

이 과정이 대침체의 근본원인 중 하나인지 아닌지는 매우 큰 정치적 중요성을 지닌 문제다. 쟁점은 자본주의 작동방식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한 정책들-국가가 통제하는 자본주의로 신자유주의를 대체하고, 금융을 규제하고, 불평등을 줄이고 금융보다 생산에 더 친화적인 정책들 등-이 미래의 중대한 경제위기들을 막는 데 성공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LTFRP에 뿌리를 둔 위기 이론은 그와 같은 정책들이 궁극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고 암시한다. 왜냐면 그 정책들은 이윤 극대화를 위한 충동, 기술 진보와 수익성 하락 사이의 관계와 같은 자본주의의 모든 형태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거의 그대로 남겨두기 때문이다.

하비의 주된 불만은 LTFRP와 위기 이론이 일원인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상쇄 요인들에 더해 위기의 다른 원인들을 무시하고, 이 이론의 현 지지자들에 의해 '다른 가능성에 대한 의견을 배제'하는 전형적인 방식으로 제시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주장은 단지 허수아비 때리기일 뿐이라고 논할 것이다.

진정한 쟁점은 누군가가 일원인론을 옹호해왔다는 게 아니라 우리가 부재원인론
[앤드루 클라이먼은 'apousa-casual theory'라고 적고 있다. 'apousa'는 그리스어 'απουσα'의 알파벳 표기로 'absent'를 뜻한다. 하비가 이 단어를 사용했는지는 확인 못했다]이라고 불러야 할, LTFRP가 그 어떤 역할도 하지 않는 이론을 하비가 적극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도 어떤 의견을 배제하려 하는 사람 중 하나인 것이다. 자본주의의 '모순된 힘들의 소용돌이'와 '복합적인 모순과 위기 경향'에 대한 그의 강조에 비추어 보면 그가 그 어떤 것도 배제하지 않은 위기의 모든 잠재적 원인을 우리가 고려해야 한다고 충고하려는 것이라고 예상될 것이다. 그러나 하비는 위기의 다른 잠재적 원인을 LTFRP와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게 아니다. 그는 그 이론과 이에 기반한 위기 이론을 역사의 쓰레기통에 처박으려 단단히 결심한 것 같다. 그는 LTFRP가 진정한 법칙인지, 마르크스가 마침내 그 이론에 정말로 동의했는지, 이윤율이 하락한다는 타당한 증거가 있는지, 하락하는 경향을 언급하는 이 법칙 때문에 이윤율이 하락하는 것인지 의문을 던지는 데 논문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나는 이 모든 것에도 대답할 것이다.

하비 논문의 두 가지 다른 측면 또한 논할 것이다.

1. 하비는 1980년대 시작된 노동인구의 세계적 성장은 LTFRP가 작동되지 않음을 시사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 주장이 법칙에 대한 초보적인 오해에 기반해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2. 마르크스가 "만약 임금이 너무 낮으면 유효수요의 부족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 논했다고 하비는 주장한다. 나는 이것이 마르크스의 글에 대한 그의 최근 해석(하비 2012)과 모순됨을 보여주고 그의 앞선 입장이 옳음을 논할 것이다.

LTFRP에 대한 그의 태도는 나를 놀라게 하지도 않았고 특별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마르크스의 법칙에 기반한 위기 이론이 "마르크스주의자들 내에서 헛된 우상의 지위를 점하고 있다"고 썼고 사실 이보다 더한 모욕은 없다. 정치 영역에서 만큼 학계에서도 다른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좌파들은 소위 이론에서의 교조조의와 그 지지자들을 자주 격렬히 비난해 왔다. 그들은 또한 연구에서 그 이론을 배제하려 해왔다. 예를 들면 M. C. 하워드와 J. E. 킹 교수는 자신들의 책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역사(A History of Marxian Economics, 1992, ⅹⅲ)'에 LTFRP는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의 학문적 신뢰도에 큰 상처를 줘 왔다"고 적고 있고 크샤마 사완트의 조직 '노동자 인터내셔널을 위한 위원회[Committee for a Workers' InternationalㆍCWIㆍ영국에 시작된 트로츠키주의 조직. 영국 노동당 내 밀리턴트 경향에서 발원했으며 현재 세계 45개 나라에 조직을 두고 있다]'는 최근 '교조주의자' 두 명의 회원 자격을 정지시켰다. 연구에서 가능한 설명을 배제하려는 노력이 교조주의에 대한 반대로 표현되고 이런 편견이 그토록 자주 받아들여지는 게 특히 불쾌하다.

노동인구에 관한 데이터

하비는 고용이 현저히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세계 노동인구는 1980년에서 2005년 사이 11억 명이 증가했다-를 끌어들여 이를 세계적으로 이윤율이 하락하고 있다는 생각을 부정하는 증거로 사용하려 한다. 그는 이 주제에 천 단어 이상을 사용한 끝에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현 자본주의가 겪는 곤경들을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의 결과로 보는 사람들은 이러한 노동 참여의 증거로 인해 심각한 오류에 빠졌다는 판정받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잉여가치 생산과 추출이 압박받는 것이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증가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데이터는 확실히 잉여가치 또는 이윤이 - 절대적으로 - 크게 증가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여기서 쟁점은 이윤, 투자된 자본량에 대한 잉여가치 또는 이윤의 비율에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이다. 비율[분수]에서 분자의 증가는 비율 전체가 증가한다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이윤율에서 분모, 투자된 자본의 비율 증가가 분자의 비율 증가보다 훨씬 크다면 이윤율은 떨어진다. 분모가 더 큰 비율로 증가하지 않았음을 하비가 보여주지도 암시하지도 못한, 그가 끌어모은 통계는 이윤율이 증가했다는 증거가 아니다.

그럼에도 하비는 - 투자된 자본의 그 어떤 증가도 무시한 채 - 고용의 증가는 그 자체로 마르크스의 LTFRP가 1980년대 초부터는 작동하지 않아 왔다는 강력한 증거라고 주장한다. "만약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는 일반 이론이 옳다면 노동 절약형 기술 변화의 확산은 … 자본에 고용된 임금노동자 수가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는 뜻이 될 것이다. 이는 마르크스가 기꺼이 인정했던 바이기도 하다."

이게 바로 틀렸다. LTFRP가 고용 감소를 의미한다고 마르크스가 "기꺼이 인정했다"는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하비가 끌어온 구절은 실제로는 노동절약형 기술 변화('생산성 향상')가 "주어진 자본에 의해 고용되는 노동력의 양을 감소시키는 경향을 가진다"고 말한다(자본론 3권, 280쪽, 강조는 글쓴이). 예를 들어 만약 투자된 자본이 원래 100만 달러이고 노동자 10명을 고용했고 이후엔 400만 달러를 투자해 노동자 20명을 고용했다면 '주어진 자본에' 고용된 노동자 수는, 이를테면 100만 달러 당 10명에서 5명으로 감소했다. 즉 이는 하비가 설명하듯 고용 규모의 절대적 감소를 뜻하는 게 아니다. 절대적인 고용 규모는 10명에서 20명으로 두 배가 됐다.

게다가 마르크스가 LTFRP를 제시하는 앞 부분의 확장된 논의에서 그는 하비가 말한 "기꺼이 인정했다"는 것을 명백하게 거부하고 있다.

이윤율의 점진적 저하의 법칙은 … 사회적 자본에 의해 운동되고 착취되는 노동의 절대량, 그리고 또 사회적 자본에 의해 취득되는 잉여노동의 절대량이 증가하는 것을 결코 배제하지 않으며 …

이윤율의 저하는 총자본 중 가변적 구성분의 절대적 감소로부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 감소, 즉 불변적 구성부분에 대한 가변적 구성부분의 상대적 감소로부터 발생한다.

이윤의 절대량(그것의 총량)은, 이것과 총투하자본 사이의 비율의 비상한 감소에도 불구하고 50%나 증가한 것이다. 자본이 고용하는 노동자의 수, 즉 자본이 운동시키는 노동의 절대량, 그리고 또 자본이 흡수하는 잉여노동의 절대량, 즉 자본이 생산하는 잉여가치의 양, 이리하여 자본이 생산하는 이윤의 절대량은, 이윤율의 점진적인 저하에도 불구하고 증가할 수 있으며 그리고 점진적으로 증가한다. 이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바탕 위에서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일시적인 변동을 제외한다면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다.
-자본론 3권, 259~261쪽, 강조는 원문

요점을 좀 더 강조해 명확히 다시 말하자면 고용의 증가는 LTFRP에 반대되는 증거가 결코 아니다.

마르크스의 '분명한 동요와 양면성'

하비는 "그 법칙의 보편적 타당성에 관한" 자신의 "오랜 회의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마르크스가 자신의 발견을 법칙, 경향의 법칙 혹은 가끔 단지 경향이라고까지 부른다는 데서 그의 언어가 갈수록 동요하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고 썼다. 하비가 '경향'과 '법칙' 사이의 동요로 이해한 것은 사실 현실에서 일어난 일과 그것을 설명하는 것 사이의 불가피한 차이에서 비롯한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며 이 하락 경향을 설명하기 위해 법칙을 제안한다. [여기에] 동요는 어디에 있는가?[1]

마르크스는 LTFRP를 '법칙'으로 부르거나 '경향 법칙'이라고 부르는 것 사이에서 동요한 것도 아니다. 그는 모든 경제적 법칙을 경향의 법칙으로 여겼다. 예를 들면 그는 '자본론' 3권 10장에서 "우리는 이러한 일반적 잉여가치율을 모든 경제법칙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경향으로서 … 가정하고 있다."(자본론 3권, 207쪽)고 적었다. 핵심은 충분히 간단하다. 이윤율 같은 경제적 변수에서 모든 변동을 담아낼 법칙은 발견할 순 없다. 이러한 변동들이 순수하게 법칙을 따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모든 종류의 우연적 사건과 방해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우연적 사건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드러나는 변수들의 경향 법칙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여기에 하비는 마르크스가 LTFRP에 대해 양면적이었다는 자신의 믿음을 뒷받침하기 위해 추가적인 근거를 제시한다.
[그가 제시하는] 첫째는 "마르크스가 '프랑스 내전' 같은 그의 정치적 저작에서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에 대해 그 어떤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프랑스 내전'에서는 잉여노동이나 잉여가치와 같은 현상들도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하비는 이러한 부재를 잉여노동 또는 잉여가치의 존재에 대해 마르크스가 의심해왔다는 타당한 증거로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들의 일반적인 타당성에 대한 오래된 회의론"의 근거로 간주해야하는 것 아닐까?

더 나가 마르크스가 LTFRP에 대해 의구심을 표했다는 증거로 하비는 1848년과 1857년 공황들을 '상업과 금융 공황들(commercial and financial crises)'로 묘사하며 이윤율 하락에 관해서는 단지 지나가는 말로만 언급하는 마르크스의 분석을 지적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학자인 미하엘 크래티케는 비슷한 주장을 해왔다. 이는 경기후퇴와 불황을 위기(crises)라고 부르는 현재 통용되는 마르크스주의 학술용어에 익숙해진 이들에게 중요한 증거처럼 보일 수 있지만 용어의 사용법은 마르크스 시대 이후 크게 변해왔다. 그가 말한 경제위기들(economic crises)은 상업과 금융공황을 의미했다. 그는 경기변동의 연이은 국면들을 "중간 정도의 활황, 번영, 과잉생산, 공황, 불황" 또는 "평균수준의 호황ㆍ활황ㆍ공황ㆍ침체"(자본론 1권, 607쪽, 863쪽)로 묘사하며 이러한 위기들을 그것들이 초래한 경기하강과 구분한다.

게다가 마르크스는 이윤율 하락 경향을 상업 또는 금융위기들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간주하지도 않았다. 그는 이윤율의 감소는 간접적으로, 그리고 약간의 지체를 겪은 후 위기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이 경향은 과잉생산을 촉진한다(이를테면 생산적 투자수요의 침체를 통해). 또한 금융 투기와 사기도 조장한다. "이윤율이 저하하면 … 어떤 종류의 특별이윤이라도 얻기 위하여 새로운 생산방법, 새로운 투자 및 새로운 모험 등을 앞뒤 가리지 않고 시도하기 때문에 투기와 투기의 일반적 촉진이 나타난다." 오직 부채를 최종적으로 갚지 못할 때 위기-이 경우 금융위기-가 폭발하고 이 위기는 침체로 이어진다. "특정한 지불일이 붙어있는 지불의무의 연쇄는 여러 곳에서 끊어지는데, 이것은 자본과 함께 발전하여 온 신용제도의 동시적 붕괴에 의해 더욱 격화된다. 이 모든 것들이 격렬하고 첨예한 공황, 갑작스럽고 강력한 가치감소, 재생산과정의 현실적 정체와 교란, 따라서 또 재생산의 현실적 축소를 일으킨다."(자본론 3권, 289~291쪽, 310~311쪽, 305쪽)

마르크스가 상업과 금융 관계의 파국을 '위기'라는 단어를 사용해 표현하고, 그가 이윤율의 하락과 위기의 폭발 사이에 많은 중간매개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을 우리가 이해하면 그가 때론 이윤율의 하락 경향을 추상적으로만 다루며 위기들을 논한다는 게 놀랍거나 특별히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는 한 번에 모든 것을 다루려 하다가 혼란스러운 잡동사니를 만들어내기보다 한 번에 하나의 것을 다루기를 선호하는 오직 엄격하고 변증법적인 인물이었을 뿐이다.

또한 하비는 1868년 이후 "마르크스는 이윤율 하락 이론으로 결코 돌아가지 않았다"며 "마르크스가 일찌기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the Grundrises)'에서 '정치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법칙'이라고 강조했던 것을 그의 마지막 10여 년 간 연구에서 무시하는 선택을 내려야만 했던 것은 이상야릇하게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LTFRP를 '무시'했다는 추정에는 근거가 뒤따르지 않는다. 나는 이론적이거나 실증적인 문제를 만족스럽게 해결했을 때 더 이상 집요하게 그 문제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문제로] 관심을 옮긴다. 이는 내가 도달한 결론을 무시한다는 게 아니다. 주어진 대답을 받아들인 것이다. 마르크스도 비슷한 방식으로 작업했다는 증거가 내겐 있다. 하비는 어떤 식으로 작업하는가?

따라서 진정한 질문은 다른 문제로 나가기 전 마르크스가 이윤율이 하락하는 원인에 대한 자신의 해명에 만족했느냐는 것이다. 증거들엔 의심할 여지가 남아있지 않다. 미하엘 하인리히(그는 최근 하비와 비슷한 주장을 했다)에 대한 대답에서 나와 공저자는 "1865년부터 1877년 사이 마르크스의 편지들에서 그가 자신의 이론적 결론에 만족했으며 그가 출간한 첫째 권 뿐 아니라 출간하지 못한 채 남겨뒀던 다른 권들을 포함한 자본론을 이론적인 면에서 최종적인 결과물로 간주했다는 많은 증거"(클라이먼ㆍ프리먼ㆍ포츠ㆍ구세프ㆍ코니 2013)를 보여줬다. 하인리히는 이 증거에 답하지 않았고 하비는 이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피했다.

LTFRP가 정치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법칙이라는 마르크스의 관점은 초기에만 한 번 언급된 것도 아니고 이후 '무시'되지도 않았다. 그는 이를 1857~58년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뿐 아니라 1861~63년 원고에서도 단언했다. "정치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법칙인 이 법칙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에 따라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을 띤다는 것이다."(MECW Vol.33, 104쪽. 강조는 원문) 후에 마르크스는 3권을 쓸 때 LTFRP가 가장 중요한 법칙이라는 주장을 넘어선다. 그는 애덤 스미스 이후 모든 정치경제학은 이 법칙을 찾기 위해 움직여 왔을 만큼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법칙은 자본주의적 생산에 대하여 큰 중요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애덤 스미스 이래의 정치경제학 전체는 이 수수께끼의 해결을 둘러싸고 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자본론 3권, 255~256쪽)

신화적인 일원인론

또한 LTFRP 및 그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 위기이론은 일원인론이라는 그의 비난은 마르크스의 글에 대한 그의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한다. 마르크스의 법칙은 약간은 '엄격한' 가정에 기초한 '고도로 단순화된 모델'에서 유래했다고 하비는 주장한다. 그렇기에 현실에서 모든 가정이 꼭 들어맞을 때만 법칙은 유효하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들 때문에 법칙은 노동절약형 기술 변화 외에 수익성 하락의 모든 잠재적 원인들과 기술변화의 상쇄 효과로 인해 이윤율 하락을 저지할 수 있는 모든 요인들을 배제한다. 따라서 법칙은, 그리고 외부적 요인을 취사선택해 결합시키는 것 없이 그것을 채용한 어떤 위기 이론도 일원인론인 것이다.

물론 하비는 그 엄격한 가정을 마르크스의 글에서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1권에서 그의 가정을 꼼꼼하게 펼쳐내면서도 (3권의) 이윤율 하락 이론에 대해서는 그러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는 마르크스가 펼친 그 엄격한 가정을 어떻게 아는가?

그는 최소한 한 번은 명백히 틀렸다. 하비에 따르면 마르크스의 법칙은 모든 상품("노동력은 제외하고")이 구매되고 그 실제 가치, 이 가치와는 다른 가격이 아닌 가치 그대로 판매된다고 가정한다.
[2] 바로 이 경우가 틀렸다. 3권 3편의 주제가 그 법칙이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2편에서 이미 상품의 가치와 그것이 실제로 팔릴 때의 가격 사이에 큰 차이가 있겠지만 경제에서 산출물의 총 가격은 전체적으로 이 산출물의 총 가치와 같다(그리고 그에 따라 그 한계가 된다)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따라서 하나의 기업 또는 산업이 생산물의 가치를 넘어선 가격을 받을 때 이 이득은 순전히 다른 자본가들의 손실을 상쇄하는 대가가 된다. [손실을 입은] 이들의 생산물 가격은 그 가치보다 적다. 그리고 이로부터 첫째 총 이윤은 만들어진 총 잉여가치와 같다(그리고 그 한계가 된다)는 것, 둘째 가격과 가치 사이의 차이는 LTFRP와 관련해 경제 전반의 이윤율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결론이 이어진다.[3]

모든 상품이 그 가치대로 팔린다는 가정이 아니라 앞선 것과 같은 결론이 마르크스가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을 이끌어낸 기초적 조건이다(MECW Vol.33, 104쪽. 강조는 원문).

우리는 개별 자본의 이윤율이 투하자본 총량 대비 잉여가치의 비율과 다름을 살펴봤다. 그러나 자본가계급의 총 자본을 고려하면 평균적 이윤율은 이 총 자본에 계산되고 관련된 총 잉여가치 외에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도 … 보여줬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로부터 다시 한 번 다수 자본의 경쟁을 고려하지 않고도 자본이 [충분히] 발달된 것인 한 그 일반적 특성에서 직접적으로 일반적 법칙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견고한 기초를 갖게 된다. 정치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법칙인 이 법칙은 자본주의적 생산이 전개되면서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을 띤다는 것이다.

대개 하비는 마르크스의 법칙을 가능한 제한적인 해석에 따른 여러 한정적 추정들에 기댄 모델로 치부한다. 그는 3권 3편 전체가 아니라 마르크스가 법칙의 현상으로서 소위 "법칙 그 자체(das Gesetz als solches)"라고 부른 것을 다룬 부분들만 고려한다. 이는 그 법칙을 일원인론적이고 마르크스가 3편 뒷부분에서 논한 다른 현상ㆍ제도들과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게 한다. 법칙은 (내가 앞에서 논했 듯) 여러 상쇄 요인들 사이에서, 그리고 금융제도의 매개를 통해 작동하는 게 아니라 실제 세상의 그처럼 많은 요인들을 배제하고 무시한 상상속 조건에서만 오직 소환될 수 있는 딴 세상의 관념처럼 보인다.

하비는 마르크스가 그처럼 많은 "여러 제한적 (법칙의) 적용 가능성"을 "배제"했다고 말한다. 하비는 마르크스가 다른 현상과 제도들을 잇따라 분석에 도입했음을 알고 있지만, "법칙 그 자체"를 저지선 바깥으로 쳐냄으로써 그는 이런 사실을 LTFRP의 다원론적 성격의 증거로 인식하는 데 실패했다.
[그에겐] 추가적인 현상과 제도들의 도입은, 법칙이 자신을 드러내는 구체적 형태들 속에서 그 법칙을 묘사하는, 법칙의 변증법적 풍부화로 나타나기보다는, 법칙이 작동할 수 있기 위해 요구되는 조건들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암묵적인 시인으로 나타난다. 법칙은 온전히 남지 못한 것으로 비친다. [이제] 마르크스는 전과는 별개의 논의에, 즉 “법칙을 도출해낸 가정들이 제거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와 관련된 논의에 천착하고 있는 것처럼 나타난다. 그는 법칙의 지위에 의문을 나타내며 그의 "동요와 양면성"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우리에겐 전혀 다른 틀을 갖는 위기 이론이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그 어떤 내적 연관도 갖지 않는, 서로 너무 달라서 "어떤 일원인론으로 쑤셔넣는 것"이 불가능한 다수의 잠재적 설명 요인과 현상으로 가득찬 체계화되지 않은 하나의 공간이다.

그 글을 이런식으로 읽어선 안된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이런 부당한 독서는 적절한 해석 방법이 아니다.

일원인론이라는 딱지붙이기가 왜 잘못됐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정교한 방법론적 논의를 펼칠 필요는 없다.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보편적 중력법칙을, 바람과 같이 사과를 떨어뜨릴 수 있는 다른 요인 또는 공기 저항 같은 상쇄 요인을 언급하지 않은 채 내가 제안한다고 해서 이 다른 요인들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가정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내가 그것들을을 배제한, 그 대신 적용 가능성의 측면에서 엄격하게 제한적인 일원인론을 구성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중력법칙으로부터 뉴튼의 운동에 관한 제2법칙을 이끌어내 설명하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방정식에서 다른 요인들의 삽입을 삼간다고 해도 그런
[일원인론적인] 것은 아니다. 그런 다음 내가 공기 저항과 바람[에 대한 설명으로] 넘어간다고 해서 내가 내 양면성과 동요를 드러낸 것도 또는 보편적인 중력법칙이 오직 진공에서만 작용하고 실제 현실에선 작용하지 않는다고 시인한것도 아니다.[4]

마르크스의 법칙이 자본주의 동학의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고 지적한 점에서 하비는 옳다. 다시 말해 그것은 유일한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이윤율 궤적의 모든 일시적 변화를 해명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이는 그 법칙의 목적이 아니다. 그것의 목적은 '단지' 마르크스의 가치이론이, 그의 자본축적 이론과 결합하면,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는
[당시 경제학자들을 괴롭히던] 사실을 설명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비는 글의 대부분에서 오늘날 그가 비판하는 대상이 정확히 누구인지 매우 모호하다. 예를 들어 그는 LTFRP에 뿌리를 둔 위기 이론은 그 현대적인 지지자들 사이에서 "다른 가능성의 고려를 배제하는 식으로" "전형적으로 제시되"며, "많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은 "원인이 하나인 위기 이론"이 있다고 "주장하기를 좋아한다"고 단언한다. 이름을 언급하는 걸 삼갔다는 것 때문에 그의 비난에 답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 부분에서 그는 법칙의 "어떤 지지자들"이 "금융화는 2007~8년의 붕괴와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고 했을 뿐 아니라 "앤드루 클라이먼이 가장 단호하게 위기와 금융화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이를 단호하게 주장하지 않았다. 심지어 나는 내 선배들에 대해 존중을 표하기는 했어도 스스로 그것을 주장하지는 않았다.
[아니] 나는 정반대로 주장했다. "물론 금융위기가 불황을 촉발했고, 금융 부문의 특유한 현상들(과도한 레버리지, 위험한 모기지 대출 등)이 중요한 원인이었다."(클라이먼 2012, 24~25쪽)

내가 인용한 이 문장은 대침체의 근본적 원인으로 내 책의 첫 장에 나오는 것이다.
[5] 그 다음 장에선 "이윤율 저하를 최근의 경제위기와 침체에 연결하는 두 가지 중간매개 고리-낮은 수익성과 신용제도-에 집중한다".(클라이먼 2012, 40~41쪽) 그리고 3장은 2007~8년의 금융위기에 대한 다음과 같은 논의에 할애했다. ▲1990년대 닷컴 버블이 터진 이후 연방준비제도의 지나친 금융완화 정책 ▲모기지 대출의 자산 유동화 ▲서브프라임 대출 ▲주택 순자산 신용한도 대출 ▲증가하는 모기지론 주택담보대출비율 ▲대출자 레버리지 비율의 상승과 자금 수요의 감소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증가하는 가계대출 ▲닷컴과 주택가격 거품 부상의 심리학 ▲신용평가기관들의 비참할정도로 부정확한 전망 모델 ▲의회의 [금융위기] 초기 TARP(Troubled Assets Relief Programㆍ부실 자산 구제 프로그램) 거부 ▲미국으로 향한 해외로부터의 저축 유입. 이것이 금융화가 2007~8년 금융위기의 원인임을 부정[6]하는 혹은 일원인론적으로 접근하는 최선의 사례라면 나는 그의 다른 사례들을 [굳이]] 더 살펴보진 않을 것이다.

앤드루 클라이먼은 '자본주의 생산의 실패: 세계대침체의 원인'(정성진ㆍ하태규 옮김, 한울 2012), '마르크스 '자본론'의 복권: 모순이라는 신화에 대한 반박 Reclaiming Marx's 'Capital': A Refutation of the Myth of Inconsistency'(Lexington Books 2007)의 저자다. 페이스 대학(뉴욕)의 경제학 명예교수이며 '마르크스주의 휴머니스트 이니셔티브(the Marxist-Humanist Initiative)' 함께 정치적 활동을 하고 있다.


참고문헌
Harvey, David. 2012. History versus Theory: A Commentary on Marx's Method in Capital, Historical Materialism 20:2, 3-38.
_______. 2014. 'Crisis Theory and the Falling Rate of Profit'.
Howard, M. C. and J. E. King. 1992. A History of Marxian Economics: Volume II, 1929-1990. Princeton, NJ: Princeton Univ. Press.
Kliman, Andrew. 2007. Reclaiming Marx's 'Capital': A Refutation of the Myth of Inconsistency. Lanham, MD: Lexington Books.
_______. 2012. The Failure of Capitalist Production: Underlying Causes of the Great Recession. London: Pluto Books.('자본주의 생산의 실패: 세계대침체의 원인', 정성진ㆍ하태규 옮김, 한울 2012)
Kliman, Andrew, Alan Freeman, Nick Potts, Alexey Gusev, and Brendan Cooney. 2013. The Unmaking of Marx's Capital: Heinrichs Attempt to Eliminate Marxs Crisis Theory’.
Kliman, Andrew and Shannon D. Williams. 2014. Why 'Financialisation' Hasn't Depressed US Productive Investment, Cambridge Journal of Economics. Print version forthcoming.
Marx, Karl. 1990. Capital: A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Vol.Ⅰ. London: Penguin.('자본론: 정치경제학 비판 제1권 자본의 생산과정',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2004)
_______. 1991a. Capital: A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Vol.Ⅲ. London: Penguin.('자본론: 정치경제학 비판 제3권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 과정',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2008)
_______. 1991b. Karl Marx, Frederick Engels: Collected Works, Vol.33. New York: International Publishers.

주석
[1] 법칙의 함수에 대한 논의와, 이와 관련한 '법칙'의 의미에 대해서는 클라이먼ㆍ프리먼ㆍ포츠ㆍ구세프ㆍ코니(2013)을 보라.
[2] 그는 "(노동력을 제외한) 모든 상품은 그 가치대로 교환된다"는 자본론 1권과 2권 곳곳에서 중시한 가정이 3권에서도 유지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제의 그 가정은 노동력을 배제하지 않는다. 노동력 역시 그것의 모든 가치대로 구매된다는 가정에 따라 마르크스는 시장이 아니라 생산에서 이윤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상품교환이야 말로 "자유ㆍ평등ㆍ소유ㆍ벤담이 지배하는 … 천부인권의 참다운 낙원"(자본론 1권, 230쪽)이라는 생각을 포기하지 않은 채 설명할 수 있었다.
[3] 마르크스가 이런 결과를 이끌어낸 과정의 내적 모순이 입증됐다는 주장을 들은 바 있는 데 이는 단지 악의에 찬 신화일 뿐이다. 클라이먼(2007) 8장을 보라
[4] 이는 마르크스가 하나하나 엄격하게 절차를 밟아나가는 것과 비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력 법칙은 LTFRP와 비슷하다. 운동 제2법칙은 노동시간에 따른 가치 결정 법칙(가치법칙)과 유사하다.
[5] 하비는 그의 논문 어떤 곳에서 내 책을 끌어들이지만 내가 주장했다고 그가 말하는 어떤 증거 또는 인용도 제시하지 않는다.
[6] 샤넌 윌리엄스와 나는 금융화가 대침체가 진행된 10년간 미국에서 기업의 자본축적률 하락의 원인이 아님을 보여줬다.(클라이먼ㆍ윌리엄스 2014) 당연히 그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Posted by 때때로

미국 중앙은행은 12월 18일 양적완화 축소를 발표했다. "현재 월 850억 달러인 자산매입 규모를 내년 1월부터 750억 달러로 100억 달러 축소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2008년 경제위기 이후 5년 동안 3조 달러 이상의 돈을 시장에 풀었다. 중앙일보는 "세계경제, 링거는 뽑았다"며 경기 회복의 신호탄으로 풀이했지만 상황이 간단치는 않다. 사실상 제로인 금리는 2015년이냐 돼야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점쳐졌다. 실업률은 여전히 7%대다(중앙일보 12월 20일 6면).

이 양적완화 축소를 두고 11월 한 차례 논쟁이 있었다. 11월 8일 워싱턴에서 열린 IMF 위기 대응 포럼에서 래리 서머스와 버냉키가 맞붙었다. 서머스는 미 중앙은행의 제로금리ㆍ양적완화 정책에도 "2009년 이후 4년 동안 미국인의 삶이 개선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한국경제 11월 11일 15면). 그는 양적완화와 제로금리 정책이 "어떤 효과도 없었다"며 "이후로 우리는 명목 이자율이 0인 상황이 경제활동을 만성적이고 체계적으로 억제하는, 우리 경제가 잠재성장률 아래에 머무는 상황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즉 우리가 상황을 감당해내기 위해 인플레이션에 겁먹지 말고 양적완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양적완화 축소를 앞장서 주장해왔던 이였기에 충격은 컸다. 정태인은 이를 두고 '개과천선'이라고까지 주장했다(프레시안). 정태인의 소개에 의하면 폴 크루그먼도 서머스의 '개과천선'을 반기며 격찬하는 글을 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의 위기에 대한 진단은 여전히 피상적이거나 외생적이다. 마이클 로버츠는 이 논쟁에 마르크스주의적으로 개입하며 크루그먼이 '인구 성장률' 저하라는 경제 외적 자연법칙에서 위기의 뿌리를 찾는 것을 비판한다. 사실 이는 혜성의 주기에서 경제법칙을 추정했던 신비주의적 경제학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파이낸셜타임즈의 '명 칼럼니스트'인 마틴 울프도 비판한다. 울프에게 "위기는 '과잉 소비'에서 비롯했고 현재 불황은 '과잉 저축' 때문에 생겨났"기 때문에 결국 "자본주의는 단지 하나의 상황
[과잉 소비]에서 다른 하나[과잉 저축]로 반복"하는 진자운동으로만 파악한다고 비판한다. 정부의 어떤 역할을 기대하는 이러한 케인즈적 전통은 자본의 이윤율에 생긴 문제를 도외시한다는 것이 그의 비판의 핵심이기도 하다. 1930년대 대공황, 그리고 그 이전의 공황들 모두는 자본의 대규모 파괴를 통해서만 이윤율을 회복하고 경제성장의 정상적 궤도로 돌아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단지 민간 부문을 '자극'하거나 (일시적으로) 대체하기 위해 계획된 더 많은 정부지출은 묘책이 되지 못한다"며 이러한 방책으로는 현재의 '장기 침체가 끝나기 전에 "또 다른 침체를 예상"해야만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마이클 로버츠는 이윤율을 강조하지만 그것이 자본주의 축적 법칙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이 글에서 자세히 설명하진 않는다. 하지만 최근의 양적완화와 위기를 둘러싼 논쟁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어떤 입장에 서있는지를 개괄적으로 파악할 수는 있을 것이다. 아래 그의 글을 옮겨놓는다.


케인즈적 불황인가 마르크스적 불황인가?
2013년 11월 20일 마이클 로버츠 블로그

이 블로그를 읽어왔던 독자라면 세계경제가 현재 자본주의 선진국가들이 이끄는 장기간의 불황 상태에 있다는 것이 내가 주로 이야기해온 것 중 하나라는 걸 알 것이다.

경제성장이 이전 성장률 수준보다 지속적으로 낮아지며 실업률은 대공황 이전 수준 이상이 되고 디스인플레이션(속도가 느려진 인플레이션)이 디플레이션으로 전환되는 것(물가 하락)이 내가 말하는 '장기 불황'이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생산 자본에 대한 투자가 회복의 기미 없이 이전의 평균적 수준보다 낮은 경제적 환경을 말한다. 게다가 이 불황은 현재 소위 '신흥
[시장] 경제'라고 불리는, 막대한 규모의 값싼 노동력과 신기술을 갖춘 나라에까지 도달하면서 [이들 나라에서] 실질GDP의 성장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


세계경제 성장률

['장기 불황'이라는] 이러한 호칭은 지금까지는 어떤 이론적 경향의 경제학자들에게도 많은 지지를 얻지 못해 왔다. 그런데 갑자기 '영구 불황'이라는 이야기가 '위대하고 훌륭한' 주류 경제학에서 부상하기 시작했다. 골드만삭스의 전 경영진이자 미국 재무부 장관, 하바드 대학 총장이었고 [최근]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 후보를 사임한 래리 서머스는 최근 위기의 원인에 대한 IMF 콘퍼런스에서 아주 낮거나 제로인 금리를 통해, 또는 정부에서 '돈을 찍어내' 정부와 사적 부문의 채권을 사들이는 양적완화의 방식으로 경제를 회생시키려는 중앙은행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제는 '정상적 성장'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거대한 거품조차도 총수요를 진작시키는 데에는 충분치 못했다…… 수요를 자극하기 위한 인공적인 조치, 이 모든 재정상의 경솔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어떤 효과도 볼 수 없었다." 따라서 "이후로 우리는 명목 이자율이 0인 상황이 경제활동을 만성적이고 체계적으로 억제하는, 우리 경제가 잠재성장률 아래에 머무는 상황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명백히도 '전통적이지 않은' 통화 정책들은 새로운 거품(통화 팽창을 일으키지 않는)인 주가 상승을 제외하고는 경제를 위한 묘책이 되지 못한다. 폴 크루그먼, 전 골드만삭스 수석 이코노미스트이자 파이낸셜타임즈 블로거인 가빈 데이비스, 파이낸셜타임즈 칼럼니스트이자 그들 모두의 친구인 마틴 울프와 같은 케인즈 후예들의 장황한 설명이
[지난] 여름 내내 울려퍼졌다. 그들은 자본주의가 '균형 성장'으로 복귀하는 방향으로 '자동적'으로 작동할 수 없으며 디플레이션 압력은 새로운 지배적 힘이 된 것으로 파악한다.

크루그먼은 블로그에서 '영구 침체'라고 표현했다. "우리가 지난 5년 동안 겪어온 삶이 새로운 정상이라면 어떻게 될까? 불경기 비슷한 상황이 또다른 한 해 또는 두 해 만이 아니라 10년 간 계속 제 궤도를 유지할 것이라면? 그렇다면 '그 경우'는 '장기정체
[미국의 케인스주의 경제학자 알빈 한센이 주장한 것.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하면 경제성장률이 점차 감소되며 파국에 이르게 될 위험이 있다는 이론]' 아닐까? 완전 고용이라는 것을 극히 드문 오래전의 일회적 사건으로 만드는, 불경기가 계속되는 이 상황이 정상이 아닐까?" 크루그먼은 계속해서 "[지난] 여름 우리는 단지 완전 고용에 가까운 어떤 것을 성취하기 위해 아마도 거품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라고 답했다. 거품의 부재로 경제는 마이너스 금리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갖게 됐다. 그리고 이것은 2008년 금융 위기 때부터만 진실이었던 것은 아니다. 1980년대부터 심각함이 증대돼 왔지만 그것은 틀림없이 사실이었다"고 말한다. 이런, 그래서 결국 주요 자본주의 경제는 더 이상 마이너스 실질 금리에서도 완전 고용에 도달할 수 있는 성장은 불가능한 것이 분명해졌다.

이것은 이제 위대한 경제 스승이 세계 자본주의 경제의 상태에 대해 내게 동의한다는 것을 뜻할까? 글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여름께부터의 불황에 관한 이러한 새로운 '러브인
[히피들이 갖던 사랑의 집회]'의 크루그먼과 울프가 나와 (그리고 내가 마르크스의 설명이라고 고려하는 것들과) 왜 다른지 설명해보겠다. 우선 케인즈주의자에게 불황은 '유효수요' 부족으로 이어지는 자본가에 의한 화폐 퇴장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크루그먼류의 주장은 이러한 퇴장이 왜 갑작스럽게 일어나는지, 그리고 마이너스 실질 금리에도 불구하고 왜 끝나지 않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그들의 설명을 따르면] 우리는 실물경제에서 지속되는 상황들에 대처하는 금융 부문과 중앙은행의 조치들 외에 다른 것들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본주의 하에서 자본의 이윤율에 무언가 일이 벌어졌음을 뜻한다.

크루그먼은 이제 전쟁 직후에 완만한 성장 둔화를 의도해 케인즈의 이론에 외삽된 신 케인즈 학파 경제학자인 알빈 한센의 주장 또는 보다 최근의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서 혁신성과 생산성의 붕괴에 관한 로버트 고든의 사상이에 대해서는 을 되풀이하며 1980년대 이후 자본주의의 '장기 침체'에 관해 말한다.

현재 크루그먼은 점진적으로
[경제]성장이 둔화된다는 것을 케인즈 이론에 외삽한 신케인즈 학파 경제학자인 알빈 한센의 주장, 또는 보다 최근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서 혁신성과 생산성의 붕괴에 관한 로버트 고든의 사상을 되풀이하며 1980년대 이후 자본주의의 '장기 침체'에 관해 말한다.

크루그먼은 이러한 장기 침체는 아마 유효수요를 낮게 만드는 '인구 성장률 저하' 또는 '오르내리긴 했지만 결코 사라지진 않은' 1980년대부터 부각된 '만성적 무역 적자'로부터 비롯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의 설명은 어떤
[경제]외적 자연 법칙으로 자본 축적 운동의 외부를 살피며, 두 번째는 세계 경제로써 자본주의보다는 자본주의 경제들 사이의 불균형에서 원인을 찾는다. 두 설명 모두 현대 자본주의 작동의 기초에 존재하는 어떤 결함을 부정한다. 그리고 둘 모두 설득력이 떨어진다.

마틴 울프 또한 '스태그네이션'이라는 주제를 파이낸셜타임즈에 있는 그의 블로그 최근 글에서 계속 이어가며 왜 미래는 불안하게 보이는가라고 묻는다. 울프에게 이 새로운 불황의 원인은 '세계적 저축 과잉' 또는 투자를 꺼리는 자본가들의 저축에 따른 '과도한 퇴장'에서 비롯한 '투자 결핍'이다. "세계 경제는 매우 낮은 금리에서조차 사업에 사용될 것보다 더 많은 저축을 만들어내 왔다. 이것은 미국에서뿐 아니라 대부분의 중요한 고소득 경제에서 사실이다." 그렇기에 장기 불황의 문제는 낮은 이윤율이 아니라 이윤의 과잉에 있다.

이것은 현 연방준비제도 의장인 벤 버냉키가 2000년대 초반 미국과 영국의 '만성적 무역 적자'의 원인이 아시아와 OPEC 국가들의 '흑자'로 인한 '너무 많은 저축'에 있다고 주장한 것에 뿌리를 둔 진부하고 오래된 생각이다. 그렇기에 과도한 신용 확장과 뒤이은 신용 붕괴는 진실로 일본이나 중국과 같은 나라들이 미국의 상품을 충분히 구입하지 않은 잘못이었다! 지금 그것은 충분히 소비하지 않은 모두의 잘못이 됐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의문은 왜 모두는 충분히 소비하지 않는가이다. 보통의 가구들이 소득과 고용의 감소로 심각하게 훼손됐을 때 이러한 질문에 답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왜 미국과 영국, 유럽의 자본주의적 기업들은 더 투자하지 않는가? 울프는 거대한 경기후퇴 전 신용 확장 기간에 구축된 '과도한 빚'에 그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위기는 '과잉 소비'에서 비롯했고 현재 불황은 '과잉 저축' 때문에 생겨났다. 자본주의는 단지 하나의 상황
[과잉 소비]에서 다른 하나[과잉 저축]로 반복해서 움직일 뿐이다!

또 울프는 투자 부족은 더 이상 생산 자본에의 투자를 원하지 않고 대신 주식시장에서의 활동과 금융자산의 구입을 더 선호하는 자본주의적 기업 문화의 변화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위대한 자본주의 체제는 '금리생활자' 경제가 된 것이다. 나는 전에 이 블로그에서 이러한 주장들과 상대해 왔고 이후 이 주제로 되돌아올 생각이었다. 일단 다시 말하자면 크루그먼과 울프의 설명에는 결국 이윤 생산을 위한 투자로 정의되는 영리경제에서 자본의 이윤율이라는 생각이 전적으로 결여돼 있다.

케인즈주의 불로거인 노아 스미스는 최근 어떻게 불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를 검토했다. "저성장과 (비자발적) 실업 증가의 해법은 비교적 단순하다. 결국 누군가는 유휴 자산을 다 써버리기 시작할 것이다. 이것은 민간 부문이 독립적으로 야생적 충동에 의해 침체를 벗어나거나 정부에 의해서 일어날 것이다." 오, 그렇지 '야생적 충동'이 되돌아올 것이다. 아니면 그들이? 스미스는 "경제가 그래왔던 것처럼 부채 상환 압력에서 기인한 매우 낮은 금리, 저조한 기대감과 자신감 등을 지닌 채 불황으로 남아있을 수 있다는 것이 전적으로 타당해 보이기" 때문에 그들이 바로 그러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불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많은 부채가 여전히 상환되고 있고 (이윤에 대한?) '기대는 낮고' (무엇에 대한?) '자신감은 저조하다'. 여기에서도 이윤율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스미스는 "비이성적으로 꼬인 불황 상태에 있는 시장이 유휴 자원을 바로 써버리기에 적절치 않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대리인은 정부다. 정부는 (유휴 노동을 사용할)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유휴 자본을 이용한) 돈을 빌릴 수 있고 금리를 올리고 실업률을 낮출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은 누구에게도 미래에 대한 정확한 예측을 요구하지 않는다. 단순히 시장경제와 정부가 유휴 자원이 사용되지 않고 있을 때 이것을 이용할 것만 요구한다. … 그리고
[이러한 방법은] 내가 대개 시장 경제를 선호하며 주목하는 것들이다. 정부의 개입은 최소한의 필요를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정부 투자는 민간 투자가 충분치 못할 때 최소한을 유지시킴으로써 곤경을 면하게 할 수 있다.

"실업률 저하와 유휴 자본의 사용으로 (가급적이면 공공 사회기반시설과 과학기술 프로젝트, 신 사업에 대한 대출을 섞어) 더 많은 사업이 만들어질 수 있다." 정부가 구제자 역할을 하면 우리는 정상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물론 곧 아니면 조금 후에 민간 부문은 되살아나 자원을 사용하기 시작할 것이다." 문제는 정상 상태가 "매우 매우 매우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다. 우리가 새로운 세계를 위해 조절된, 변화가 계속됨으로써 조절이 계속되는 생산 체계를 원한다면 막대한 양의 자원을 유휴 상태로 놓아두는 것은 그것을 위해 나쁜 행동이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잘 설정된 재정정책"이 필요하다. 구제를 위한 정부
[말이다].

다시 말하자면 왜 자본이 사용되지 않은 채 놓여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수익성이 충분히 없어서일까? 이윤율을 회복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축적된 비생산적 자본의 가치를 파괴함으로써 (남아있는 가치의) 이윤율을 상승시키고 축적 과정의 재개를 가능케 하는 침체를 관통하는 것이다. 지난 20년간 실물자본과 가공자본 모두가 엄청나게 축적된 후 자본주의는 대공황의 시기에 들어섰다. 1930년대 대공황은 죽은 자본의 대량 파괴 없이 이 침체를 벗어날 수 없었다. 2차 세계대전이 그것을 해냈다. 1880년대와 1890년대에도 계속된 성장을 재개하기 전에 중요한 침체를 겪었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단지 민간 부문을 '자극'하거나 (일시적으로) 대체하기 위해 계획된 더 많은 정부지출은 묘책이 되지 못한다. 자본 축적을 대체한 정부가 계획한 투자는 단지 생산을 이끄는 하나의 방편일 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장기' 침체가 끝나기 전 겪어야 할 또 다른 침체를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때때로

경제위기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위기가 대서양 건너 유럽에서 폭발하고 있죠. 이탈리아는 4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이탈리아 통계청이 7일 발표한 2012년 2분기 경제 성장률은 -0.7%입니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의 구제금융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유로존 내 세 번째 크기의 경제규모를 가진 이탈리아의 위기는 그리스와는 비교할 수 없을정도의 파국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스페인은 10년짜리 국채 금리가 7.6%까지 치솟았습니다. 미국의 2분기 성장률도 1.5%로 내려앉았습니다. 중국도 위기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경제성장률이 6분기 연속 떨어졌습니다. 2분기에는 3년 만에 8% 아래로 내려갔죠.

● [연합뉴스] 기준금리 동결 배경은 '7월 인하 효과 지켜본다'(링크)
● [한겨레] "중국에 국가위기 없는 건 민중에 부채를 떠넘기기 때문"(링크)

2008년 금융위기로부터 비롯한 이번 위기의 여파가 참으로 깊고도 끈질깁니다. 금융권에 대한 막대한 구제금융은 정부의 재정위기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돈을 찍어낼 수 있는 미국 정부야 버티지만 그러한 힘이 없을 뿐 아니라 통화정책도 펼칠 수 없는 유로존 국가들은 그야말로 함정에 빠진 격입니다. 금융권으로 유입된 돈은 곡물에 대한 투기로 이어져 세계 곡물가의 급격한 상승을 불러왔고 이는 2011년 '아랍의 봄'의 배경이 되기도 했습니다.

2008년 위기가 발생하자 월스트리트로 상징되는 금융산업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졌죠. 폰지사기와 같은 관행이 만연하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버나드 메이도프가 대표적이죠. 지나친 규제 완화와 금융화로 금융상품을 만들어 팔고 사는 이들조차 그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도 폭로됐습니다.

1997년 위기 때 부정ㆍ부패가 만연한 '정실 자본주의'가 위기의 근원으로 지목됐던 것처럼, 이번에는 혼란을 키운 활극의 주인공으로 금융산업에 비판의 촛점이 맞춰졌습니다. 당연히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금융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국가간 금융거래의 장벽도 높여야 하고 말입니다.


마르크스주의적 분석: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는 다른 분석과 대안을 내놓고 있습니다(물론 마르크스주의 내에도 다양한 경향이 경합하고 있죠). 오늘 살펴볼 책 '21세기 대공황과 마르크스주의'(책갈피, 이하 '21세기 대공황')는 마르크스주의 내에서도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Tendency of the Rate of Profit to Fall: 이하 TRPF)을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입장을 담고 있습니다(저자 중 짐 킨케이드는 비판적 입장에서 저자 중 한 명인 크리스 하먼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합니다. 이하에서 그의 주장은 제외합니다).

TRPF는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원재료ㆍ원료ㆍ생산시설 등에 대한 투자가 노동력에 대한 투자보다 더 빠르게 증가한다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전자를 불변자본이라 부르고 후자를 가변자본이라고 부르죠. 마르크스에 의하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은 인간의 노동입니다. 따라서 자본가에게 중요한 이윤이 되는 잉여가치도 인간의 노동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이죠. 결국 완성된 상품에 기존의 가치를 이전만 시키는 불변자본이 급격히 증가하면 이윤율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마르크스는 다양한 상쇄경향이 있어서 항상 저하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21세기 대공황'의 저자들은 마르크스의 바로 이 TRPF가 현재 경제위기의 가장 큰 배경이라고 주장합니다. 1960년대 최고 수준에 다다렀던 이윤율은 1970년대 위기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있다고 합니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잠시 성장하지만 결코 1960년대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죠.

"최근의 금융위기는 1970년대부터 세계 자본주의를 괴롭혀 왔던 바로 그 질병, 즉 이윤율 하락에 뿌리를 두고 있다. 착취율 증가 덕분에 이윤율 하락세가 잠시 멈췄고 심지어 약간 회복되기도 했지만, 거듭되는 침체를 막기에 충분할 정도의 기업 투자를 독려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 '신용경색부터 세계 경제위기의 공포까지', 크리스 하먼, '21세기 대공황' 139쪽(이하 모두 같은 책).

"이번 위기는 직접적으로 1990년대 이후 미국 경제와 세계 경제가 양산한 호황에서 비롯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장기적 측면에서 이번 위기는 1970년대 이후 이윤율의 장기적 하락을 반영한 자본주의의 장기 불황 국면에서 발생했다."
-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세계 경제의 위기', 장시복 250쪽.

"이번 위기의 배경은 1970년대 이후 자본주의 세계 체제 전반에 걸쳐 시작된 이윤율의 장기 저하와 그 결과인 장기 불황이다."
- '21세기 세계 대공황', 정성진 257쪽.

이러한 이윤율의 장기적 저하는 여러 연구자들의 연구가 근거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구체적 수치는 조금씩 다르지만 1970년대 급락한 이윤율은 1980년대 이후 조금씩 회복되지만 결코 과거의 수준에 이르지 못합니다. 거의 정체하고 있다는 것이죠. 신경제라 불리며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경제위기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찬양받던 1990년대 중반부터 2001년까지의 미국 경제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2001년 위기에서 회복된 후 2007년 다시 붕괴하기까지의 성장도 그렇습니다.

"모슬리의 수치들은 장기 호황기(1947~1968년)에 이윤율이 18~22퍼센트를 맴돌았음을 보여준다. 그 후 이윤율은 1970년대 내내 11~22퍼센트까지 떨어졌다. 그리고 1980년대 말에는 약 14~15퍼센트까지 올라갔고, 1990년대 중반에는 16~18퍼센트를 기록했다. 다시 2000년대 초에 14~15퍼센트까지 떨어졌다가, 2004년에 19퍼센트까지 올라갔다. 다시 말해, 지난 25년 동안 단지 한 해(2004년)에만 장기 호황기 당시의 최저 수치에 근접했던 것이다. 미국 주요 기업들이 발표한 대차대조표도 2005~2006년에 이윤율이 하락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 '이윤율은 장기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크리스 하먼 168~169쪽.

이렇게 장기적으로 저하한 이윤율이 경제위기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을까요? 이것을 살피기 위해 저자들은 우선 1970년대의 추락으로부터 나온 지배계급의 대응, 신자유주의를 언급합니다.


신자유주의의 부흥: 착취율의 증가와 금융화

실질임금의 하락, 노동시간의 증가로 나타나는 착취율의 상승이 1980년대 이윤율 회복을 위한 주요 신자유주의적 전략으로 등장합니다. 미국의 실질임금은 "1970년보다 1995년에 더 낮았"고 연간 노동시간은 "1980년 1883시간에서 1997년 1966시간으로 늘었"습니다(크리스 하먼 40쪽, 73쪽). 장시복은 1990년대 중반 이후의 이윤율 상승에서도 착취율 증가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그 시기 "상층 노동계급의 실질임금도 정체하고 하층 노동계급의 실질임금은 가장 낮은 수준에 다다랐"습니다. "노동생산성은 증가했지만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정체됨으로써 이윤율이 상승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장시복 219~220쪽).

신자유주의 전략의 다른 한 축, 금융화는 1970년대의 위기를 지연시키고 연이은 두 거품(1990년대 IT 거품, 2000년대 부동산시장 거품과 소비 붐)으로 일시적 호황이 가능케 한 힘입니다.

자본이득에서 소득 최상위 20% 계층이 차지하는 비율은 1989년 75.2%에서 2000년에는 82.9%로 증가했습니다. 자산을 기초로 한 부의 증가(그것이 실현됐든 미래에 실현될 것이든)는 상층 계급의 소비증가로 이어졌죠. 마찬가지로 최상위 20% 계층의 가처분소득 대비 소비는 1992년 95.1%에서 2000년 104.4%로 증가합니다
(장시복 223쪽).

비금융 기업의 이윤율 하락은 이러한 금융화를 재촉하기도 합니다. 크리스 하먼은 미국의 회계법인 PwC 최고경영자 새뮤얼 디피아자를 인용합니다. 2000년대 많은 기업들이 자산담보증권(ABS)과 주택저당증권(MBS)에 투자하는 등의 방법으로 하락한 이윤을 금융에 의존해 보충하려 했다는 겁니다. 결국 "미국 기업들의 수익성이 외견상 높아 보였던 것은 그들의 금융자산과 부동산 자산 가치가 금융 거품으로 실제 가치보다 부풀려졌기 때문"인 것이죠
(크리스 하먼138쪽).

또한 이러한 금융화는 정부가 주도해 이뤄집니다. 로버트 브레너는 정성진과의 대담에서 "미국을 비롯한 몇몇 정부들이 실물경제에서 이윤율이 떨어지는 데 대처하기 위해, 금융 부문의 규제를 완화해서 금융으로 전환하는 것을 부추"겼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실물경제가 계속 나빠졌기 때문에, 규제 완화로 금융 부문의 경쟁은 더 심해졌고 이윤 창출은 더 어렵게 됐으며 더 큰 투기와 위험 감수가 조장"됐습니다
(로버트 브레너-정성진 대담 286쪽).

2000년대 초중반 노무현 정부가 '동북아 금융허브'를 추진한 것도 이런 와중이었습니다. 당시 '야인'으로 있던 이명박은 직접 금융시장에 뛰어들기도 했죠. 경쟁의 격화로 이윤 창출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지금 봐서는 매우 바보스럽지만) 김경준이라는 사기꾼과 손을 잡는 것도 거리끼지 않았죠. 2008년의 금융 위기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의 파생금융상품 거래량은 3년째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38억1900만건이 거래됐고 이는 전 세계 거래량의 27%에 이르는 물량입니다
(조선일보ㆍ링크). 파생금융상품에 거래세를 부과하겠다는 세재개편안에 경제지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기도 합니다.

결국 2008년의 붕괴는 2000년대의 매우 특이한 경제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자산 가격 케인스주의(asset price Keynesianism)'가 전통적 케인스주의를 대신했습니다. 지난 10여 년 이상 세계 경제는 매우 특이하게도 자본축적이 그야말로 사상 유례없는 투기 파동에 의존해서 지속되는 체제였습니다. 1990년대 후반의 주식시장 거품과 2000년대 초 주택과 신용 시장 거품이 바로 그것입니다."
- '세계 대공황의 전망과 대안', 로버트 브레너와 정성진의 대담 중 브레너 답변, 283쪽.


신자유주의의 몰락: 자본주의의 한계

하지만 신자유주의적 전략은 무한정 계속될 수 없습니다. 미국과 한국 등의 나라에서 이미 엄청난 수준으로 증가한 착취율은 더 이상 높아질 수 없습니다. 노동시간의 증가와 저임금을 견뎌내기 위해선 그야말로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수준입니다.

상대적으로 착취율이 낮은 유럽에서도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프랑스에서는 정년을 연장하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독일에서는 직접적으로 노동시간을 연장하려 하고 있고, 직접적 임금과 함께 사회적 임금으로서 각종 복지와 연금을 축소하려 시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협약은 바로 유럽 노동자계급의 강력한 힘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즉 유럽 지배계급이 기존의 사회협약을 파기하고 착취율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의 콧대를 먼저 눌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유럽 자본가들은 과거에 '사회 평화'를 위해 노동자들에게 양보했던 것들을 되찾기 위해 끊임없는 공세를 펼칠 것이다. 이런 시도는 유럽에서 수십 년 동안 보지 못한 거대한 규모의 계급투쟁을 촉발할 수 있다."
- '스냅사진으로 보는 자본주의의 오늘과 내일', 크리스 하먼 79쪽.

2010년 프랑스, 2011년부터 지금까지 그리스와 스페인 등지에서 우리는 그러한 투쟁을 이미 목격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미국에서조차 지배계급의 공격에 맞선 투쟁이 성장하고 있죠. 2011년 위스콘신에서는 공무원 노동권에 대한 공격에 맞선 장기간의 노동자ㆍ시민의 점거투쟁이 진행됐습니다. 2008년 위기로 드러난 금융기업들의 부패에 분노한 청년들은 뉴욕 주코티 공원에 모여 "월스트리트를 점령하자"고 선동하고 있죠.

착취율 증대에 의한 이윤율 회복이 불충분하기도 했지만 더이상의 착취율 증가를 노동계급이 받아들일 가능성조차 적어지고 있는 것입니다(물론 이후 노동계급이 1980년대 초 영국 광산노동자와 미국 항공관제사 노동자와 같은 결정적 패배를 당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입니다).

2000년대 성장한 금융 부문도 2008년 위기로 드러난 사기와 협잡에 대한 대중적 혐오가 너무 커서 더 이상 성장이 지속되긴 어려워 보입니다. 결정적으로 실물부분에서의 이윤율 하락을 금융에서의 거품으로 유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장벽 없는 세계시장에서의 금융화는 위기의 여파를 더 빠른 속도로 세계 전역으로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외환 거래를 포함한 금융 거래세의 도입이 힘을 얻는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금융 규제의 강화, 복지의 확대, 정부의 적자재정 정책과 같은 것들은 이번 위기의 대안으로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위기가 무엇보다 이윤율 하락에서 비롯한 1970년대부터의 장기적인 하강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의 위기 때 케인스주의가 실패한 이후 신자유주의적 대응이 등장합니다. 이는 약간의 성공을 보여주는 듯 했지만 결국 자본주의 자체의 한계 때문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케인스주의가 다시 각광받고 있지만 이는 이미 실패한 대안일 뿐이라는 겁니다. 2008년 위기를 막을 수 없었던 신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크리스 하먼은 1990년대 일본의 장기 불황 또한 이 케인즈주의적 대안이 불가능함을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루스벨트 정부의 뉴딜 정책과 마찬가지로, 사적 자본을 대대적으로 침탈하지 않는 국가 개입은 기껏해야 완전한 붕괴만 막을 수 있을 뿐이지, 그 자체로 이윤율 저하에서 비롯한 근본적 불균형을 치유하고 경제의 활력을 소생시킬 수는 없다는 것을 일본의 경험은 시사하는 듯하다."
- '1930년대 대공황과 오늘날의 위기', 크리스 하먼 209쪽.

1930년대 대공황 때와 달리 정부 지출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몫이 이미 매우 큽니다. 미국의 경우 국내총생산에서 정부 지출이 차지하는 몫이 1929년 2.5%에서 2007년 약 20%로 커졌죠. 경제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정부가 지출해야 할 규모가 비약적으로 커졌습니다(크리스 하먼 199~200쪽).

게다가 개별 기업의 크기도 매우 커졌습니다. 따라서 위기에 빠진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정부가 치뤄야 할 대가도 함께 늘었습니다. 결국 정부가 경제에 개입해 위기를 해결하는 데는 매우 큰 제한이 있습니다
(크리스 하먼 201~202쪽).


자본주의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대안

현재 진행 중인 위기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폭발하면서 나타난 총체적 위기"라는 게 저자들의 공통된 진단입니다. 따라서 "현재의 위기는 일시적인 금융 위기나 실물 위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계 경제에 큰 충격을 주며 세계 자본주의 시스템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계기를 형성할 것"입니다(장시복 251쪽).

정성진은 진보 진영에게 이렇게 요청합니다.

"진보 진영은 이제 공황을 막기 위한 이런저런 정책 대안들을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공황이라는 파괴와 낭비를 필연적으로 수반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적ㆍ적대적 성격을 고발하고, 공황기에 노골화되는 자본주의 국가의 계급적 성격을 비판해야 한다. 동시에, 반자본주의ㆍ탈자본주의 대안을 구체화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대중운동을 건설하는 데 주력해야한다."
- '21세기 세계 대공황', 정성진 277~278쪽.

크리스 하먼이 지적했고 현실에서 드러났듯이 대중운동은 좌파의 개입과 독립적으로, 자본주의적 압력 그 자체에 의해 발생하고 성장합니다. 각 나라의 정치적 전통과 지형에 따라 좌파가 큰 역할을 하는 곳(스페인ㆍ그리스)도 있고 좌파의 존재가 미미한 곳(미국)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이 호소하는 좌파의 과제는 나라별로 매우 상이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랍의 봄'에서 위스콘신의 공공부문 노동자들과 뉴욕의 청년들이 영감을 얻었듯이 세계화된 경제 만큼 저항 또한 세계화되고 있습니다. 결코 단시간에 끝나지 않을 경제 위기를 맞이한 좌파는 그 만큼 장기간의 안목으로 현재의 행동을 계획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언제나 지배자들의 양보는 노동계급의 강력한 투쟁에 의해서만 이뤄졌습니다. 브레너는 "루스벨트 정부는 거대한 대중 파업 물결이 일자 압력을 받아 그제서야 와그너법[노동조합의 권리를 정한 법]과 사회보장을 비롯한 주요 진보적 뉴딜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지적하며 "오바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로버트 브레너 290쪽). 우리에게도 그렇습니다. 안철수건, 문재인이건, 심상정이건 실재 세계를 쟁취할 힘은 노동계급 자신에게만 있습니다. 대중 스스로의 행동을 고무하고, 그 안에서 대안을 건설하는 것이 좌파의 행동지침이 돼야 할 것입니다.

Posted by 때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