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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으로 말하면 런던 금융가의 자본가들은 현 체제의 수혜자들임이 분명한 반면 그 주변부의 산업자본가들은 스스로 피해자로 느끼고 있다. 이들이 현 국제체제를 타파하고자 이 국제체제에서 피해를 보고 있다고 느끼는 중·하층 노동자들을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 '브렉시트와 그 해법' 김승호ㆍ링크

영국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 탈퇴표가 다수인 것으로 드러나자 많은 지식인들이 충격을 받은 듯하다. 보통은 멍청한 인종주의자들의 불장난이라며 비난의 말을 쏟아낸다. 좀 더 점잖은 쪽도 위 글처럼 인종주의자 혹은 자본가의 한 분파에 '동원'됐다는 식이다. 전자든 후자든 교정 불가능한 엘리트주의로 느껴질 뿐이다. 그리고 이번 영국 국민투표는 바로 이 오만한 엘리트주의에 대한 반란이기도 하다.

인민이 그 스스로 정답을 알고 있다는 식의 NL과 같은 대중추수주의에 동의하진 않는다. 하지만 인민의 정서라는 현실에 기반해 행동해야 하지 않겠는가. 1920~30년대 독일에선 바로 여기서 좌파가 실패했다. 사민당도, 공산당도 말이다. 그리고 그 자리 나치가 성장했다. 그러니까 우린 지금 영국에서 파시스트의 현실화 된 힘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21세기 첫 10여 년간 반자본주의 운동이 반세계화 운동으로 시작돼 성장할 때 극우파는 운동 곳곳에서 개입할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좌파는 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운동 자체의 성패를 말하는 건 아니다) 극우파의 국수주의적 정서는 운동을 지배하지 못했다.

이것을 패배가 아니라 기회로 만들려면 현실에 대한 보다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 아쉽게도 그러한 판단은 좌파보다는 우파에게서 더 많이 보이곤 한다. 아래는 영국의 시사 주간지 스펙테이터(The Spectator)에 실린 글을 옮긴 것이다. 스펙테이터의 정치는 보수에 가까울 것이다. 필자가 브렉시트에 표를 던진 가난한 이들, 노동계급을 계속 그들(they)로 표현할 정도다. 이들의 계급의식과 계급적 본능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 상당히 많은 오역이 포함돼 있습니다.
잘못된 부분에 대해 지적해주시면 즉각 반영하겠습니다.
따라서 인용하시려면 아래 링크로 직접 찾아가 원문을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브렉시트 지지자가 멍청이거나 인종주의자인 건 아니다, 단지 가난할 뿐
그들은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함으로써 자신들을 경멸하던 엘리트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Brendan O'Neill, 스펙테이터, 2016년 7월 2일ㆍ링크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다음과 같은 말들이다: 가난하고 어리석은 이들이 일을 저질렀다. 공공주택에 살며 '선'을 읽는, GCSE[영국의 중등교육자격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한 (이 시험은 주로 계급지표를 보여줄 뿐 어리석음을 말해주진 않는다) 이들 말이다. 이들이 들고 일어나 투표소를 짓밟으며 유럽연합 반대를 외쳤다.

이번 국민투표 결과는 쇠스랑만 안들었다 뿐이지 현대에 재현된 농민반란과 같다. 투표결과는 인상적이다. 잘 사는 이들은 잔류를, 곤궁한 이들은 탈퇴를 지지했다. 브렉시트 지지자와 잔류 지지자들
[The Brexiteer/Remainer]은 거의 완벽하게, 정말 기막히게 계급 구분선을 따라 나뉘었다. 생산직이 다수인 지역에서는 86%라는 엄청난 수가 탈퇴에 표를 던졌다. 생산직이 적은 영국의 다른 소수 지역에서는 42%가 그랬을 뿐이다. 주택가격이 평균 28만2000파운드가 안 되는 지역에서는 79%가 탈퇴를 지지했다. 주택가격이 그 이상인 지역에서는 단지 28% 만 그랬다. 교육수준이 낮은 (예를 들면 GCSE에서 성인 4분의 1 만이 'five A'에서 'Cs'까지의 등급을 획득한) 240개 지역에서는 83%가 탈퇴에 투표했다. 소득수준 기초조사 순위로도 마찬가지다. 다수가 적은 임금(2만3000파운드 이하)을 받는 지역의 77%가 탈퇴에 표를 던진데 비해 급여가 괜찮은 지역에선 35%가 그랬을 따름이다.

이 얼마나 극명한 차이인가. 당신이 육체노동을 하며 보통의 집에 살고 있고, 대학문이라곤 한 번도 넘어본 적 없다면 당신은 유럽연합에 '쥐어짜내지고 있다'고 말하는 걸 이웃한 여러 도시의 부유한 삶을 누리는 사람들보다 더 선호할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스코틀랜드의 16개 지역은 생산직이 다수지만 탈퇴보다 잔류에 표를 던졌다. 그럼에도 계급은 투표에서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이는 정말 내게 놀라운 일이다. 사회등급이 D 또는 E(반숙련 또는 미숙련 노동자와 실업자)인 사람이 다수인 영국의 50개 지역 중 오직 세 지역 만이 잔류에 투표했다. 세 곳이다. 이는 기득권층이 그들에게 '예스'에 표를 던져야 한다고 고집했음에도 매우 가난한 47개 지역이 일제히 '노'를 외친 것이다.

이제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영국의 가난하고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 들고 일어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유럽연합과 영국의 그 지지자들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줬다. 또 그들은 영국이 부자와 가난한 이들 사이의 오래된 이데올리기적 분열을 떨쳐내고 우리 모두가 사회의 '주주'로 간주되는제3의 길 또는 탈계급 사회에 들어섰다는 것과 같은 블레어주의 신화를 완전히 깨버렸다. 국민투표 후 우리는 사회가 경제적으로는 물론이고 정치적으로도 여전히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이것은 소유냐 소유하지 않았냐의 문제 만은 아니다. 이는 관점의 전쟁이다. 사회의 부유한 부류는
[국내] 정치가 외부의 국제기구들과 연관되는 것을 선호하지만 가난한 이들은 그렇지 않다. 유복한 이들 중 소수 만이 사회에서 가난한 이들의 몫을 주장할 뿐 (무엇보다도 '주주 사회'라는 터무니 없는 말을 앞장서 홍보하는) 여론 주도층은 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번 농민 반란이 엘리트에게 준 충격으로 인류학자와 같은 이들이 이러한 미지의 집단을 조사하게 됐고 그들은 현재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정신 없이 연구하고 있다. 그들은 두 가지 대답을 내놓았다. 하나는 분노고 더 나쁜 다른 하나는 연민이다. 분노한 이들은 서민들이 탈퇴표를 찍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전적으로 인종주이적이진 않지만 나이젤 파라지
[영국독립당의 창립자이자 대표, 7월 4일 대표직을 사임했다]와 같은 이들의 악질적인 외국인 혐오 선동에 속아넘어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은 악질 선동가들의 먹잇감이 되기 쉽다는 이런 생각은 1840년대 차티스트 운동이 들었던 것과 같은 알맹이 없는 설명이다. 가난한 이들은 "성숙한 지혜'를 지니지 못해 다른 어떤 계급보다도 더 잔혹한 극단주의자들로 바뀌기 쉽다"는 오만한 비판을 흔히 들을 수 있다. 국제적 대도시의 시민들은 약자들을 다시 한 번 바로 그 자리에 세워 고발하는 것이다.

하지만 조사에 따르면 반유럽연합 진영의 사람들이 외국인 혐오에 휘둘리고 있다는 주장은 일축된다. 투표 후 ComRes
[영국의 여론조사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브렉시트를 지지한 이 중 단 34% 만이 그들이 표를 던진 주요 이유로 이민자를 언급(이민자 언급이 꼭 인종주의와 연관된 것은 아니기도 하다)하고 있다. 절반이 넘는 53%의 사람들은 영국이 스스로의 법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유럽연합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어리석게도 포그롬[집단 학살, 러시아에서의 유대인 학살에서 유래]의 편을 들어준 것이라며 모욕당한, 전국을 휩쓴 [반란자들의] 발자국은 실제론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다.

이제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평에 대해 말해보자. 그들의 진단은 치료법의 하나다. 유복한 사람들 중 소수 만이 분노 충동에 시달린다. 무시당한다고 느낀 사람들이 미친 듯이, 당연한 건 아니지만 채찍을 휘두르기로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겉보기에 배려 넘치는 대중에 대한 오프라
[아마도 오프라 윈프리를 말하는 듯]식의 접근법에 넘어가선 안된다. 이 또한 그들의 민주적 선택을 정치적 선언보다는 본능적 비명 취급함으로써 비하하는 것이다. 이런 입장에선 기득권층의 입장에 대한 의식적 반란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더 들어달라는 감상적 애원이 된다.

그렇지만 내 생각에, 탈퇴표를 던진 많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눠본 결과 그들은 정치계급에게 무시당한다고 느낀 것이 아니라 정치인들에 반대한 것이다. 그들은 엘리트가 자신들을 무시하는 것보다는 지나치게 많이 간섭하는 걸 더 문제 삼는다. 그들은 자신의 삶이 비난받는 데 신물 나 있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그들을 낮잡아 보는 국가기구가 자신을 지배하는 것, 혹은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들을 도덕적ㆍ사회적으로 교정될 필요가 크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내가 자랐던, 노동계급이 극소수인 런던 북서부 교외의 번트오크에서 탈퇴 투표자를 찾긴 어렵다. 바넷구 전체를 살펴도 그렇다. 이 곳에선 6만1000~10만 명의 사람들이 잔류에 표를 던졌다. 이들은 모두 비슷하게 말한다. "그들이 우리를 무릎 꿇렸다." 나와 대화했던 모두는
[탈퇴표에 투표한] 그들이 영국인임을 자랑스러워 한다고 해서 바로 인종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들 중 다수가 집시(번트오크에는 다수의 집시가 살고 있다)와 함께 일하며 어울려 산다는 것은 외국인에 대한 공격이 그들의 책임이 아님을 보여준다.

[브렉시트에 표를 던진 가난한] 그들은 아랫사람 취급 받으며 모욕당하고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무시당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노동계급 문화와 태도가 멸시받는다고 느낀다. 관료집단은 이들을 건강하지 못하며, 정치적으로 공정치 않고, 축구에 지나치게 몰입하며, 자식 낳는 데 너무 집착하고, 술독에 빠져 욕설을 입에 달고 사는, 잉글랜드라는 사고에 집착하는 사람으로 여긴다.

반란은 인종주나 유치한 분노의 발작이 원인이 아니다. 이를 숙고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자신을 경멸하던 엘리트의 콧대를 꺾을 기회를 알아채 공격에 나섰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을 발휘했고 그 과정에서, 맙소사. 세계를 변화시켰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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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4 02:41

브렉시트가 보여준 것 쟁점/세계경제위기2016.07.04 02:41

"공산주의자들은 어디서나 만국의 민주주의당들의 연결과 합의를 이루는 것에 열중한다. …… 프롤레타리아들에게는 족쇄 말고는 공산주의혁명에서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들에게는 얻어야 할 세계가 있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 '공산주의 선언', 김태호 옮김, 박종철출판사 54쪽

'공산주의 선언'의 마지막 구절이다. 자본주의 세계의 혁명적 전복을 꿈꾸며 실천하는 이에게 이 구절은 잊을 수 없는 경구다. 그러나 한동안 이 구절은 명분일 뿐 실질적 행동지침이 되지 못했다.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 때문이었다. 그러나 소련의 붕괴와 자본주의의 최근 단계로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폐해가 너무나 극명해졌을 때 이 구절은 다시 한 번 마르크스주의적 좌파의 행동 지침이 됐다.

'세계화 반대'. 이 구호는 논란의 대상이었다.

"생산물의 판로를 끈임없이 확장하려는 욕구는 부르주아지를 전 지구상으로 내몬다. 부르주아지는 도처에서 둥지를 틀어야 하며, 도처에서 정착하여야 하고, 도처에서 접속해야 한다.// 부르주아지는 세계시장을 우려먹음으로써 만국의 생산과 소비가 범세계적인 꼴을 갖추게 했다. 반동배에게는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부르주아지는 산업의 발밑에서 그 일국적 기반을 빼내가 버렸다. 태고의 일국적 산업들은 절멸되었고 또 나날이 절멸돼 가고 있다."
- 앞의 책, 12~13쪽

자본주의 세계에서 시장의 세계화는 당연한 일이다. 노동계급의 반란과 새로운 세계의 건설은 이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진영에선 당연히 '세계화 반대'는 19세기 러다이트(기계 파괴 운동)와 같이 퇴행적 운동 취급 받았다. 어떤 이들은 이들을 '대안 세계화'라는 구호로 감싸않으려 했다. 그러나 이 운동의 배경엔 자본주의적 발전이 노동계급에게 가져온 퇴행과 후퇴가 있었다. 일부 극우파의 퇴행적 반발이 이 운동의 한 축을 담당했음에도 반세계화 운동이 21세기 초 반자본주의 운동의 부활에 큰 기여를 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이 운동은 2005년 프랑스에서 유럽헌법 반대 투쟁에서 절정을 맞았다. 신자유주의적, 즉 자본주의적 유럽연합이 노동계급이 원한 '국제주의'는 아니었던 것이다.

10여 년이 흐른 후 다시 영국에선 유럽연합 잔류를 둔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Brexit, 유럽연합 탈퇴)' 진영이 승리를 했다. 10여 년 전 처럼 이 운동엔 퇴행적 민족주의 우파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얼핏 보면 이는 난민의 이주를 반대하는, 파시스트의 광신적 민족주의의 승리로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유럽연합에 잔류했다면 이들 난민들의 처지는 더 나아졌을까. 유럽 전역을 휩쓰는 인종주의는 약화됐을까. 오히려 이 인종주의, 무슬림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고무한 건 유럽연합과 이를 지지하는 각국 정부, 더 정확히는 신자유주의적 중도파 아니었던가.

그러니까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영국에서 유럽연합 잔류를 두고 한 국민투표의 결과를 극우파의 승리로 쥐어주는 건 정말 누구인가. 오히려 극우파에게 승리의 영광을 안겨주는 건 신자유주의 혹은 자본주의적 유럽연합에 대한 타협적 태도 아닌가.

아래는 'ROAR Mag'의 제롬 로스가 쓴 글이다. 그는 이번 국민투표가 실제로는 유럽연합에 관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가 '신자유주의 중도파'(블레어의 추종자들을 포함한)라고 부른 신자유주의 옹호자들이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도박이었고 그들의 도박은 신자유주의에 의해 삶을 파괴당한 '평범한 노동계급'에 의해 실패로 끝났다. '세계화'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좌파의 더 많은 토론을 바라며 아래 글을 옮긴다.

※ 상당히 많은 오역이 포함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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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의 증언: 신자유주의 중도파는 이제 끝났다
Jerome Roos, June 29, 2016ㆍ링크

영국은 광범위한 혼란에 빠져들었다. 영국은 정당성 위기의 폭풍우 가운데 서게 됐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사임했고 여야는 분노한 군중 사이에서 내부 권력투쟁에 빠져들었다.

브렉시트 캠페인 지도자들이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한 어떤 명확한 계획도 없이 머뭇거리고 있는 동안 금융분야의 후폭풍은 계속해서 시티
[금융가가 밀집한 런던의 중심부]를 뒤흔들고 있다. 오늘[6월 29일]까지 파운드화는 1985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으로 가치가 떨어졌고 정부의 신용등급은 2단계나 강등됐다. 세계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어 금요일과 월요일 주식시장에서는 각각 3조 달러가 증발했다. 더 나빠질 것이 없을 정도로 최근 영국 전역에서 증오범죄가 유행처럼 번져나간다는 보도를 보아 왔다.

[브렉시트 후 언론의] 헤드라인을 살펴보면, 포스트모던 시대를 관통하며 묵시록처럼, 하지만 은밀히 삶을 잠식해온 충격적 경험은 손쉽게 잊혀지곤 한다. 금융 언론은 세계시장이 받고 있는 충격에 대해 분 단위의 보도를 하고 있다. 지배계급의 자유주의적 칼럼니스트들은 이번 사태를 영국과 유럽이 2차 세계대전 후 겪는 '최악의 위기'라고 반복해서 선언하고 있고 뉴욕타임스는 이미 브렉시트를 세계질서가 붕괴하는 명백한 징후로 취급하고 있다.

그 중 최고는 토니 블레어가 지난 주말
[뉴욕타임스의] 같은 지면에서 예이츠의 '핏빛 어두운 조수'처럼 '말도 안되는 아나키즘'이 세계에 다시 한 번 풀려난다면 "중도파가 [상황을] 이끌어야 한다"며 세계화와 그의 실패한 제3의 길을 방어하기 위한 간절한 호소를 펼쳐놓은 것이다.

이 모든 소동들의 직접적인 원인은 분명하다. 영국의 유럽연합 회원 자격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친 캐머런의 위험한 도박이 비참한 역풍을 맞은 것이다. 브렉시트 진영의 기대치 않았던 승리는 그들 중심부의 영국해협 양편의 좌우로 나뉜, 또 그 사이의 다리를 불태워버린 양 동맹을 뒤흔들었다. 이러한 사태 전개의 역사적 성격을 더는 부정할 수 없다. 세계는 지난 목요일
[2016년 6월 23일] 이후 새로운 자리에 서게 됐고 유럽과 영국이 미지의 영역에 들어섰음은 분명해졌다.

그러니까 근본적으로 숨겨져 있는 진실은 금융에 미친 악영향과 최근의 정치적 혼란이 유럽에서 영국의 지위보다는 해협 양안의 광범위한 정치 엘리트, 보다 일반적으로는 유럽적 시민들과 더 관련이 깊다는 것이다. 물론 인종주의와 반이민자 정서는 브렉시트 캠페인이 시작될 때 중심 역할을 했지만 브렉시트에 찬성표를 던진 영국인의 52%가 파시즘에 기울어져 있다고 믿기는 어렵다. 이들 중 많은 사람은 삶의 수준이 후퇴하며 그들의 공동체가 파괴되는 와중에도 그들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을 찾을 수 없었고 책임지지 않는 기술관료들이 그들의 삶을 '통제'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브렉시트는 우선 그 무엇보다도 쫓겨나고 힘을 잃은 이들의 정치적 선언이다.

이 선언이 그토록 강렬한 이유는 많은 수의 매우 불안정한 사회적ㆍ정치적 단층선들, 브렉시트 이전부터 흔들리고 있었으며 브렉시트가 없었더라도 동요하고 있던, 브렉시트 이후에도 계속해서 오랫동안 덜컥거리고 요동할 단층선들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국민투표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유럽연합 잔류가 승리했다고 장기적으로 매우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긴 정말 어렵다. 잔류 진영의 승리가 불만들 중 그 어떤 것이라도 진정시키고 사회적 긴장을 해소하며 국민투표의 충격적 결과의 배후에 놓인 정치적 갈등의 해결책을 내놓지는 못했을 것이다.

브렉시트가 영국독립당(UKIP)과 보수당 우파의 광신도들에게 승리를 부여한 것이 명백해 보이더라도 잔류 진영의 승리는 바로, 무엇보다도
[브렉시트에 표를 던진] 사람들이 광신도들과 같은 편에 서게 만든, 피학적이며 민주주의에 반하는 신자유주의의 지속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극우의 광적인 민족주의와 친유럽연합 진영의 신자유주의적 세계시민주의[cosmopolitanism]를 대립하는 양극으로 더 이상 보아선 안 된다. 실제로 전자는 후자의 논리적 결과다. 이 둘은 살과 피를 공유한 샴 쌍둥이다. 친유럽연합 진영이 투표자들에게 제안할 수 있었던 건 이들을 브렉시트로 이끌, 그 결과 나올 것들에 대한 광신적 공포를 조성하는 것과 같은 구조적 상태를 계속한다는 것일 뿐이다.

결국 영국인들이 실제로 현실이 되건 안되건 (그렇게 될 것이라는 확증은 없었다) 유럽연합을 떠나는 데 표를 던진 건 더 깊고 심각한 위기의 징후다. 최근 몇 년간 세계금융위기로부터 정치기구의 심각한 정당성 위기로 발전해온 민주적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는 이제 사회적ㆍ정치적 질서의 통치성 위기로 전화해 폭발하고 있다. 영국과 유럽의 정치에 열려진 현재의 단층선들은 결국 이 국민투표 결과와 상관 없이 대륙의 전후 질서의 안정성을 뒤흔들고 있다. 브렉시트는 단지 정치적 해체의 과정에 속도를 더한 것 뿐이다.

보통 사람들이 유럽연합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졌는지 묻기 위해 데이비드 캐머런이 국민투표를 요청한 게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 지난해 알렉시스 치프라스와 마찬가지로 그는 당을 마음대로 휘두르기 위해 위험한 도박에 자포자기식으로 국민투표에 판돈을 건 것이다. 보수당의 유로회의론 우파를 침묵시키고 그의 지도력에 거듭해서 도전하는 의원들을 무장해제시켜 미래 UKIP로의 이탈을 예방하기 위해서 말이다. 즉 이번 투표는 정말로 유럽연합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위기에 처한 유럽의 신자유주의 중도파가 자신의 당내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내세운 명분 중 하나일 뿐이다. 이는 영국의 토지귀족과 도시 부르주아지의 기반을 다시 탄탄히 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되살아난 반동적 우파에 직면해 급격히 붕괴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제레미 코빈에 맞서 진행되는
[노동당 내] 쿠데타도 유럽과 약간의 연관을 지닐 뿐이다. 6월 13일 텔레그래프 보도에 의하면 노동당 하원의원들과 당내 블레어파는 몇 달 전은 아니겠지만 몇 주 전부터 국민투표 후 그 결과와 상관없이 '24시간 공세'를 통해 당 내 좌파 지도자인 코빈을 자리에서 끌어내리기 위한 반란을 계획해 왔다. 다시 말하자면 유럽연합과 관계 없이 말이다. 이는 흔들리는 신자유주의 중도파의 무능한 시종들, 즉 유럽에서 신자유주의와 금융화, 국제적 군사 개입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들은 당에 대한 지배력을 되찾기 위해 일을 벌렸지만 현재는 반발하는 '강경' 좌파에 직면해 급격히 붕괴, 또는 스스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따라서 블레어가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예이츠의 종말론적 표현을 차용한 것은 정말 꼴사나운 짓이다. "사물은 흩어져 나가고 중심은 흔들린다."
[원문은 인용 표시 없음. 예이츠의 '재림ㆍThe Second Coming'] 이것이 문제의 요점이며, 이로부터 중도적 정부기구의 병적인 종말론적 담론을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의 세계화 된 후기민주주의적 공상적 세계는 바로 눈 앞에서 위기에 처했다. 그들이 기대했던 수동적 투표자이자 소비자들이, 긴축과 수십 년간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으로 인해 뿌리내린, 결국 손상된 정치적 위기이자 향연으로서 선거의 결과들에 기반해 번창한 여러 '분노한 포퓰리스트'들에게 갑작스럽게 집어삼켜져 동원됐기 때문이다.

분명 지배적인 정치질서의 계속되는 붕괴에 대한 대응이 더 이상 같을 수는 없다. "중도파가
[상황을] 이끌어야 한다"는 블레어의 가망없는 외침에 맞서, 또 그의 의회 내 신자유주의적 시종들의 얄팍한 음모에 맞서, 그리고 이 모든 변절자들에 맞서 현재 제레미 코빈이 선 최후의 보루에 함께한, 영국 역사에서 중요한 이 순간에 극우파에 맞선 선거의 평형추에 자리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세력인 노동당 내부로부터의 붕괴를 막기 위해 좌파는 굳게 뭉쳐 외쳐야 한다. 중도파는 실패했다고.

무엇보다 인종주의자와 반동들이 선거결과의 공백을 차지하지 않게 하기 위해선 약해지고 분열한 좌파가 눈 앞의 역사적 전투를 목전에 두고 함께 행동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절망한 것과 달리 이는 현재 매우 간단한 선택이다. 코빈이냐 아니냐. 전투 태세를 갖춘 노동당 지도자가 독립적인 영국에 민주적 사회주의나 자동적으로 만족스러운 공산주의를 가져오든 그렇지 않든 원칙적 좌파는 이제 모든 인종의 평범한 노동계급 인민을 그들 사이에 풀려난 괴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유일한 수호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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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일 제도혁명당(PRI) 엔리케 페나 니에토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린 멕시코 의회 밖에서는 부정선거와 세제 개혁에 항의하는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이날 시위로 70여 명이 다치고 1명이 목숨을 잃었다.

12월 1일 엔리케 페나 니에토가 멕시코의 새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제도혁명당(PRI)이 12년 만에 다시 정권을 잡은 것이다. 니에토 대통령의 임기는 유혈사태로 시작됐다. 페이스북 'World Riots' 계정에 의하면 페나 대통령의 취임에 반대하는 의회 밖 시위대는 철제 바리케이트와 최루가스, 고무총탄으로 무장한 경찰의 공격을 받았다. 보도에 의하면 70여 명이 다치고 1명이 목숨을 잃었다. 거리의 시위대는 "멕시코에 대통령은 없다(Mexico Has NO President"는 구호를 앞세워 격렬히 항의했다.

이날의 참사는 6~7월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이미 예고됐다. 선거 과정에서 PRI와 니에토 후보는 불법 선거자금을 이용해 매표 행위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선불카드를 발급해 수백만 표를 돈으로 사들였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돈세탁을 했다는 의혹도 강하게 제기됐다. 하지만 법원은 8월 말 니에토의 당선을 인정하는 결론을 발표했다.

니에토와 PRI에 대한 멕시코 인민의 불만은 두 가지다. 우선 PRI는 2000년 선거에서 패배하기 전까지 71년 간 멕시코를 권위주의적으로 지배했던 정당이다. 또한 그들은 1990년대 초반 신자유주의적 개혁으로 농업에 종사하는 원주민과 도시 노동자들의 삶을 파탄으로 몰아넣었다.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당시부터 격렬한 항의를 받았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발효된 1994년 1월 1일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은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주의 밀림에서 세계화에 반대하며 봉기했다.

1990년대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이번 항의 시위를 촉발한 두 번째 이유와 연결된다. PRI는 이번 선거에서 노동시장 개방, 세금 인상, 국영 석유기업(모노폴리 페멕스)에 대한 외국인 투자 허용을 앞세웠다. 이와 함께 이들은 '범죄와의 전쟁'을 강조해 지지를 얻었다. 멕시코에서의 조직적 범죄 다수가 경찰ㆍ공무원과 관련돼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 자체로 부패의 뿌리고 범죄와 연관된 이들 PRI가 멕시코의 평범한 인민들의 삶을 위협하는 범죄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 없다.

부정선거와 함께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강화하겠다는 엔리케 페나 니에토 PRI 정권의 앞날이 그리 밝지 만은 않다. 7월 1일 함께 치러진 하원선거에서 PRI는 연정을 구성한 녹색당과 합쳐 의회 전체 500석의 과반에 못미치는 241석을 얻었을 뿐이다. 니에토는 취임 첫날부터 거대한 항의에 부딛쳐야만 했다. 남유럽과 북아프리카, 남아메리카를 뒤흔든 거대한 불만은 멕시코에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OccupyWallst.org] Mexico: Marches Against Political Corruption Met with Violence(링크)
●[#14N European Strike facebook] A big serious thing happened in Mexico hours ago(링크)
●[참세상] "멕시코엔 대통령이 없다" … 수천 명 취임반대 시위(링크)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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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풍청년 2013.02.20 17: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며 9년째 라띤 아메리까를 공부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멕시코 대선에 대해서 대자보에도 기고 한 적이 있는데.. 라띠노 라메리까 다른 나라들도 비슷하지만 멕시코에서 우리나라 기준으로 좌파 우파를 비교하는건 곤란합니다.

    뻬레이가 71년간 집권한 독재정당이라는 것은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언론이 보는것처럼 우파의 장기집권은 아닙니다. 멕시코만이 가진 특수한 정치환경으로 71년간 1당체제로 간겁니다. 예컨데 중국 공산당이 좌파정당이라고 좌파의 장기집권이라거나, 사유재산을 통제하거나 부유층이 존재하지 않거나 하는 그런게 아니듯이 말이죠.

    뻬레이 집권시절 국가 기간산업을 국유화 한 적도 있고 나프타를 추진하여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적도 있습니다. 뻬레이가 우파정당이 아니라 당시에는 멕시코의 사회체제였던 것입니다. 비쎈떼 폭스 당선으로 71년의 장기집권이 무너졌고 지금은 과도기라고 보입니다. 06년 대선과 지난 대선에서 극렬하게 대립 했는데 뻬레이냐 아니냐의 문제라기 보다는 뻬레데(PRD)가 집권하기 위한 과도기에서의 혼란이라고 생각합니다. 뻬레데가 집권하면 베네수엘라, 꾸바 등과 함께 까리베(우리나라에서는 중미라고 부름) 지역에서 사회주의 시대가 완성될거라고 봅니다.

    • 때때로 2013.02.22 10: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장기집권=독재정권'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권위주의'적 지배와 함께 90년대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결정적으로 인심을 잃었던 계기였죠.

2010.05.13 16:23

아이티와 아리스티드 대통령 이야기 2010.05.13 16:23

가난한 휴머니즘 : 존엄한 가난에 부치는 아홉 통의 편지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지음|이두부 옮김|이후


최근 몇년간 가장 인상에 남는 책이 '가난한 휴머니즘'입니다. 읽은 후 저자인 아리스티드에 대해 궁금해졌지만 '한글'로 된 정보를 찾긴 매우 어려웠습니다. 얼마전 아이티에 대지진이 온 후 언론에 잠시 아리스티드가 언급되긴 했죠.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망명 중인 그는 재앙이 덥친 조국으로 복귀할 뜻을 비쳤지만 미국은 '개인' 자격으로만 허락한다고 말했고, 프랑스는 강력하게 반대했죠. 물론 언론에선 '망명'이라고 쓰고 있지만 그는 자신이 미 해병대에게 '납치'됐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는 두 번 대통령이 됐지만 두 번 모두 미국이 후원한 것이 유력한 쿠데타를 통해 쫓겨났죠.

아이티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로 꼽히죠. 말 그대로 진흙 쿠키가 주식으로 이용될 정도입니다. 이 나라는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끌려온 노예들이 세운 유일한 나라입니다. 노예반란의 유일한 성공 사례죠('블랙 자코뱅'이라는 책이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반란의 성공은 200여년 간의 고통의 시작일 뿐이었죠.

최근 읽은 '민주주의는 죽었는가?' 8장에 이 아이티와 아리스티드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되더군요. 무척 반가왔습니다. 지젝이 쓴 '민주주의에서 신의 폭력으로'라는 장이죠. 꽤 긴 '전제'를 해 출판사에게 약간 미안하긴 하지만 아이티의 간략한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해 옮겨옵니다. 얇고 값도 싸니 부담 없이 한 권 구입해서 읽어보시길 부탁드려요.



『민주주의는 죽었는가?』 8장「민주주의에서 신의 폭력으로」
슬라보예 지젝|난장|177~180pp. 186~187pp.


[민주주의가 경제발전의 조건이자 동력이 아닌 장애물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급한 후] 그렇다면 민주주의의 이런 한계를 어디서 직접적으로 감지할 수 있을까? 이와 같은 국제적 압력을 겪어낸 정치해방운동의 이름이 라발라스(크리올어로는 '홍수')[1]라는 역설적인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라발라스는 빗장이 걸린 공동체를 흘러넘치는 징발당한 자의 범람이다. 이것이 바로 아리스티드 정권의 전복에 관한 피터 홀워드의 책 제목(『댐으로 홍수 막아내기』)이 상당히 적절한 이유이다. 이 책은 9ㆍ11 이후 곳곳에서 댐과 벽이 세워지는 전지구적 경향 속에 2004년의 아이티 사태를 새겨 넣으면서 우리로 하여금 '세계화'의 진실, 즉 세계화를 유지하는 내적 분할의 전선을 직면하도록 만든다.

아이티는 처음부터, 즉 노예제에 맞서 1804년의 독립을 이끌어낸 혁명투쟁 자체에서부터 예외였다. "오직 아이티에서만 인간의 자유에 대한 선언은 보편적인 일관성을 지녔다. 오직 아이티에서만 이 선언은 당시의 사회질서와 경제논리에 직접 맞서 모든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유지됐다." 이런 이유로 "근대사 전체를 통틀어 지배적인 전지구적 사물의 질서에 대해 이보다 더 위협적인 함의를 지닌 단일 사건은 없다."[2] 아이티혁명은 진정으로 프랑스혁명의 반복이라는 칭호를 얻을 자격이 있다. 투생 루베르튀르가 이끈 아이티혁명은 분명히 '자기 시대를 앞선' 것으로서 '성급'하고 실패할 운명을 짊어졌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혁명 자체보다 한층 더 사건Event이었을지 모른다. 식민지의 반란자들은 최초로 식민지배 이전에 자신들이 지녔던 '뿌리'로 되돌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와 평등이라는 극히 근대적인 원칙을 위해 봉기를 한 것이다. 그리고 아이티의 노예반란을 즉시 인정했다는 사실이야말로 자코뱅 당원들의 진정성을 보여줬다. 아이티의 흑인 대표는 국민의회에서 열렬히 환영받았다(그리고 예측할 수 있듯이 테르키도르의 반동 이후 상황은 변했고, 나폴레옹은 즉시 아이티를 재점령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다).

이런 이유에서 일찍이 샤를 모리스 드 탈레랑은 "아이티가 독립해 존재한다는 바로 그 사실"에 담긴 위협을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아이티의 독립은 "모든 백인 국가들에게는 무시무시한 광경"이라고.[3] 따라서 아이티는 다른 국가들이 동일한 경로를 택하지 않도록 단념시키기 위해서 경제 실패의 결정적인 사례가 되어야만 했다. '성급한' 독립의 대가(말 그대로 대가)는 참혹했다. 과거 식민지배 권력이었던 프랑스는 20년간의 봉쇄 이후인 1825년에야 무역과 외교관계를 정상화했고 아이티는 총 1억5천만 프랑을 노예 손실에 대한 '배상금'으로 지불하는 데 합의해야 했다. 이 액수는 당시 프랑스의 1년 예산에 거의 맞먹는 것으로서 얼마 뒤 9천만 프랑으로 줄어들었지만, 아이티의 경제적 성장을 끊임없이 저해하는 무거운 부담으로 작용했다. 19세기 말 아이티가 프랑스에 지불한 액수는 국가예산의 약 80%에 해당했고, 1947년에야 마지막 지불이 이뤄졌다. 2004년 독립 2백주년을 축하하면서 라발라스의 대통령 장-베르트랑 아리스티드는 이렇게 강탈한 배상금을 반환하라고 프랑스에게 요구했지만 그의 권리주장을 (레지 드브레가 그 일원이기도 한) 프랑스의 위원회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래서 미국의 자유주의자들이 미국 흑인들에게 노예제에 대해 배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숙고하는 동안, 프랑스의 자유주의자들은 노예상태에서 벗어나 자유를 인정받기 위해 지불해야만 했던 엄청난 금액을 환불해달라는 아이티의 요구를 묵살했다. 처음에는 노예로서 착취당하고, 그 다음에는 힘들게 획득한 자유를 인정받기 위해 돈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에서 이중으로 강탈당한 아이티의 요구를 말이다.

이야기는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우리 대부분에게 즐거운 어린시절의 기억(진흙 쿠키 만들기)이 시테솔레이유 같은 아이티 빈민가에서는 절망적인 현실이다. 최근의 AP보도에 따르면 식량가격이 치솟자 공복감을 달래는 아이티인들의 전통적인 처방이 새롭게 힘을 얻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노란 흙을 말려서 만든 과자이다. 진흙은 오랫동안 임산부와 아이들의 제산제制酸劑이자 칼슘 공급원으로 귀하게 여겨졌고, 진짜 식량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지금은 5달러어치의 흙이 있으면 진흙 쿠키 1백 개를 만들 수 있다. 상인들이 아이티의 중앙 고원에서 시장으로 흙을 운반해오면, 여성들은 그 흙을 사다가 진흙 쿠키를 만들어 불타는 태양 아래서 말린다. 완성된 쿠키는 들통에 담겨져 시장이나 거리에서 팔려나간다.

흥미로운 사실은 아리스티드 정권을 전복하기 위한 미국과 프랑스의 공조가 2003년의 이라크 침공을 둘러싸고 양국간에 벌어진 공공연한 의견 대립 직후 이뤄졌고, 간헐적인 갈등보다 우선하는 양국의 기본적인 동맹관계를 매우 적절하게 재확인시켜준 사건으로 칭송받았다는 점이다. 심지어 안토니오 네그리의 영웅인 브라질의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도 2004년에 벌어진 아리스티드 정권의 전복을 묵인했다. 그 와중에 신성하지 않은 동맹이 결성되어 라발라스의 정권은 인권을 무시하는 중우정치이며, 아리스티드 대통령은 권력욕에 사로잡힌 근본주의적 독재자라고 격하했다. 불법적인 용병 암살부대뿐만 아니라 미국의 지원을 받는 '민주전선', 인도주의적인 NGO, 그리고 정작 자신들은 미국의 돈을 받으면서 아리스티드가 IMF에 '항복'했다고 비난하는 '급진 좌파' 단체 등이 모두 이 동맹의 일원이다. 아리스티드는 급진 좌파와 자유주의 우파의 이런 중첩을 명쾌하게 설명한 바 있다. "어디에서든 어떻게 해서든 힘 있는 백인들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을 말하는 데서 약간의 은밀한 만족감, 아마도 무의식적인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4] 요컨대 지배이데올로기는 종종 좌파의 '자아-이상' 안에 남아 있기도 하다.

……

이제 아이티로 돌아오자. 라발라스의 투쟁은 원칙주의적인 영웅주의, 그리고 오늘날 할 수 있는 것의 한계를 보여주는 본보기이다. 이 투쟁은 국가권력의 틈새로 물러나 거기서 '저항'하지 않고 영웅적으로 국가권력을 장악했다. 자본주의적 '근대화'와 '구조조정', 그리고 탈근대적 좌파(룰라의 브라질 통치를 칭송했던 네그리의 목소리는 어디에 있었나?)의 모든 경향이 자신들에게 맞설 때, 그들은 자신들이 가장 불리한 상황에서 집권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필수적인 구조조정'을 법제화하기 위해 미국과 IMF가 부과한 조치들에 제약당하면서도 아리스티드는 몇 가지 정확하고 실용적인 조치를 취하는 정책(학교와 병원의 건설, 사회기반시설 확충, 최저임금 인상 등)을 간헐적으로 터져 나오는 대중들의 폭력과 결합시킴으로써 군부 패거리들에 맞섰다. 아리스티드는 간혹 '페르 르브뢴(대중이 행사하는 일종의 자기방어로서, 불타는 타이어를 목에 걸어둬 경찰의 암살자나 정보원을 죽이는 행위이다. 얄궂게도 이것은 포르토프랭스의 타이어 판매업자 이름이었는데 나중에는 대중의 모든 폭력행사 형태를 뜻하게 됐다)'을 묵과하기도 했다.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이 사안으로 인해 아리스티드는 센데로루미노소[5]나 폴포트와 동급 취급을 당했다. 1991년 8월 4일 연설에서 아리스티드는 열광하는 군중에게 "언제, 그리고 어디서 폭력을 사용할지"를 기억하라고 조언했다. 그 즉시 자유주의자들은 라발라스의 대중적인 자경단(키메라Chimeres)과 악명 높은 뒤발리에 독재정권의 암살조직(통통마쿠트tonton macoutes)을 비교했다. 자유주의자들은 늘 좌파와 우파를 '근본주의자'라고 동급 취급하는 전략을 선호한다. 그렇게 하면 사이먼 크리츨리처럼 알카에다가 레닌주의 정당의 새로운 화신이라도 되는 양 말할 수밖에 없다.[6] 아리스티드는 이 자경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 이름(키메라)이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자경단에 소속된 사람들은 빈곤 속에서, 심각한 위험상태에서, 그리고 만성적인 실업상태에서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구조적인 불의, 체계적인 사호폭력의 희생자들이죠. …… 그들이 언제나 동일한 이 사회의 폭력으로부터 이득을 얻은 사람들에게 맞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7]

[1] Lavalas. 1991년 당시 아이티의 대통령이었던 아리스티드(Jean-Bertrand Aristide, 1953~ )와 그의 지지자들이 사회민주주의에 근거해 "평등을 동반한 성장"을 목표로 결성한 정치운동. 이 운동의 활동가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라발라스정치단체(Organisation Politique Lavalas, OPL)는 1994년 아리스티드가 미국 주도의 군부 쿠데타로 사임한 뒤 그 성격이 친서방적으로 변질됐고, 명칭을 투쟁하는인민들의조직(Organisation du peuple en lutte)으로 바꿨다. 1994년 망명지에서 아이티로 돌아온 아리스티드는 자신의 지지자들과 OPL의 활동가 일부를 규합해 1996년 판미라발라스(Fanmi Lavalas, FL)라는 새로운 정치단체를 결성했다. FL의 활동에 근거해 2000년 아리스티드는 다시 대통령에 당선됐으나 2004년 미국이 주도한 쿠데타에 의해 다시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 FL는 일체의 선거에서 배제되는 조처를 당했다.

[2] Peter Hallward, Damming the Flood: Haiti, Aristide, and the Politics of Containment, London: Verso, 2008. p.11.

[3] 이 구절은 1805년 아이티에 대한 군사적ㆍ경제적 봉쇄를 부탁하기 위해 탈레랑(당시 프랑스 외무장관)이 제임스 메디슨(당시 미국 국무장관)에게 보낸 편지에서 봉쇄 이유로 제시된 말이다.

[4] Hallward, Damming the Flood, p.338.

[5] Sendero Luminnoso. 1969년 페루의 고원 지대인 아야쿠초에 위치한 후아망가대학교의 철학 교수 구즈만(Abimael Guzman, 1934~ )의 마오쩌둥주의에 동조한 일군의 공산당원들(붉은 깃발 Bandera Roja)이 페루 공산당을 탈당해 만든 단체. '빛나는 길'이라는 단체명은 페루 공산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마리아테기(Jose Carlos Mariategui, 1894~1930)의 격언, "맑스-레닌주의는 혁명으로 향하는 빛나는 길이다"에서 따왔다. 1980년 3월 17일 무장투쟁 노선을 선언한 뒤로 이들은 현재까지 반정부 활동을 펼치고 있다.

[6] 크리츨리는 알카에다 같은 집단이 표명한 전위주의를 '신(新)레닌주의'라고 불렀는데(Simon Critchley, Infinitely Demanding: Ethics of Commitment, Politics of Resistance, London: Verso, 2005, p.146), 지젝이 그런 표현(또한 크리츨리의 논의 전반)을 비판한 뒤 둘 사이에 논쟁이 붙었다(Simon Critchley, "Crypto-Schmittianism", State of Nature, vol.1, no.2, Winter 2006). 지젝-크리츨리의 논쟁을 정리한 글로는 다음을 참조하라. Robert Young, "The Violent State", Naked Punch, no.12, Supplement, October 16, 2009.

[7] Hallward, Damming the Flood, p.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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