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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당선에 좌절한 것은 한국의 자유주의 세력, 페미니스트들 만은 아니다. 사실 우파들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얌체공 같은 인물을 두려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한국 자유주의자들의 절망과 공포는 이해할 만한 여지가 있긴 하다. 샌더스가 미국 민주당 경선에서 패배한 후 한국 언론은 트럼프가 얼마나 혐오스러운 인물인지 전하는 데만 힘을 써왔다. 뉴욕타임즈와 CNN의 받아쓰기가 한국 언론 외신보도의 전부임을 고려하면 이는 미국 언론의 대선 보도와 일맥상통할 것이다. 클린턴의 이메일 스캔들에 대해 전하긴 하지만 시종일관 그는 우아하고 품위 있는, 책임 있는 대통령에 어울리는 사람으로만 그려졌지 그와 그의 민주당이 해온 일에 대해선 시종 침묵했다. 샌더스가 물러난 뒤로는 계속해서 말이다.

그런데 한국 교육부 고위 관료가 생각하듯 인민은 개ㆍ돼지가 아니다. 한국의 자유주의자들이 생각하듯 미국의 인민 다수가 팝콘을 씹으며 수퍼보울에만 열광하는 얼간이들도 아니다.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후 그들은 자신의 일자리가 사라져가는 걸 눈앞에서 지켜봐야만 했고, 자신의 자식들이 맥도날드와 월마트에서 저임금 노동에 종사해야만 한다는 걸 발견하게 됐다.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 만든 첨단 무기들이 동유럽과 중동의 인민을 학살하는 동안 그들은 자신의 가난한 동네의 공립학교가 축소되는 것을 무기력하게 바라만 봐야 했다.

남편 클린턴의 민주당 정부에서, 아들 부시의 공화당 정부에서도, 다시 오바마 정부에서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2011년 미국의 청년과 노동자들이 월스트리트 권력에 맞서 오큐파이 운동을 벌였을 때 클린턴은 월스트리트의 권력자들과 손을 잡고 있었다. 그해 말과 다음해 초, 오바마 정부는 연방정부 차원에서 직접 지휘해 전국적인 오큐파이 운동을 진압해 말살했다. 2012년 시카고 교사 노동자들의 파업은, '오바마의 남자'라고 불리던 람 이매뉴얼 시장의 시장주의 '교육개혁'에 맞서 일어난 것이다. 흑인 오바마 정부 하에서도 경찰의 흑인 살해는 끝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는 감동적으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함께 부르긴 했지만 연방정부의 권력을 이용해 주 경찰들의 전횡을 막진 않았다. 오큐파이 운동 진압 때와는 달리 말이다.

클린턴은 여성이기 이전에 무엇보다도 바로 이러한 정치 시스템의 정통 후계자로 여겨진 것이다. 실제 투표 결과를 봐도 올해 트럼프가 받은 표는 2012년 공화당 후보 롬니가 받은 표보다 적다. 문제는 클린턴이 받은 표가 2012년의 오바마가 받은 표보다 크게 준 것이다
(그래프 ①). 출구조사를 보면 특히 연 소득 5만 달러 이하에서 지지가 급격히 줄었다. 그럼에도 이 연 소득 5만 달러 이하의 가난한 사람들의 절반 이상은 여전히 민주당 후보에 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난다(그래프 ②). 결국 트럼프 승리의 의미는 더 많은 수의 가난한 백인 노동계급이 백인 남성에게 표를 던진 게 아니라, 지난 8년간 클린턴도 중요한 일원으로 참여해온 오바마 정부에 실망한 가난한 인민이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거뒀다는 것이다.

그래프 ① 미국 대통령 선거 득표수 변화


그래프 ② 소득별 지지율 변화(출구조사)


그러니까 우리는 여기서 한국 우파들의 미 대선 결과에 대한 우려를 살펴봐야 한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트럼프가 한ㆍ미FTA를 무효화 시킬까 두려워한다. 그들은 미국 정부가 남한을 군사적 보호에서 제외할 것을 염려한다. 그들은 미국 정부의 대북 정책이 전환할 것에 골치아파 하고 있다. 왜냐면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지지하며 중동과 동아시아에서 군사적 대결정책을 강경하게 밀고나가는 매파인, 미국 정치 시스템의 적자로서 클린턴이 대통령이 됐다면, 아무런 걱정 없이 '이대로' 상황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트럼프라고 해서 지금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그는 무엇보다도 미국 기업 시스템의 적자이다. 그의 기회주의적 과거를 되돌아보면 레토릭과 달리 신자유주의적 경제는 그대로 유지될 것이며, 미국의 군사주의적 도전은 변치 않을 것이다. 부시도 해외 개입의 축소, 고립주의를 외치며 당선됐지만 미국이라는 나라가 해온 일의 부메랑에 맞은 뒤 군사주의적 개입을 더 적극 펼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한편 자신의 가족과 국내외 친구들의 기업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

문제는 클린턴이냐 트럼프냐가 아니다. 트럼프 같은 쓰레기가 미국 대통령이 됐다고 해서 크게 실망할 일도 아니다. 무릇 정치는 두 개의 머리를 지니고 성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로 얼마 전까지 샌더스 열풍을 목도했다. 올해 시카고 교사 노동자들은 다시 파업에 나섰으며 버라이존과 월마트 같은 새로운 부문의 노동자운동 성장도 계속되고 있다. 희망은 워싱톤이 아니라 도시의 거리에서, 사무실ㆍ학교, 공장에서 자라나고 있다.

한국에서도 다르지 않다. 모든 악의 근원이 최순실로, 그리고 박근혜로 모아지고 있다. 대기업들도 공범이라는 목소리가 크지만 민주당이나 야당도 공범이라는 목소리는 찾기 힘들다. 그렇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김대중 정권에서, 노무현 정권에서 계속해서 시장의 권력은 커져갔으며 노동자의 삶의 조건은 악화돼 갔음을. 이명박과 박근혜는 그것을 가속화시켰을 따름이다. 우리는 눈 앞의 적에 집중해야 하지만 12일 거리로 나오겠다는 민주당과 국민의당도 결코 우리 편이 아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지 않았을 때 우리는 다시 박근혜와 같은, 미국의 트럼프보다 더 한 인물이 한국의 권력을 잡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Posted by 때때로


'파라오법'이라고 비판받고 있는 무르시 대통령의 새 헌법에 반대해 다시 타흐리르 광장으로 모여든 이집트 인민. [사진=RoarMag.org]

무르시와 무슬림형제단은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 후 휴전을 성공적으로 중재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미국으로부터 자신들의 쓸모를 인정받은 무르시는 국내 정책에도 과감한 전환을 시작했다.

'파라오법'이라고 비판받고 있는 새 헌법은 무슬림형제단이 장악하고 있는 제헌의회와 상원(슈라위원회), 무르시 대통령에게 견제받지 않는 절대적 권력을 부여하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2011년의 혁명적 열정이 충분히 식었다고 판단한 데서 비롯한 반혁명 시도일 것이다. 1979년 이란에서 호메이니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지난 몇 주간 타흐리르 광장에서 보여준 이집트 인민의 용기는 혁명이 무르시와 무슬림형제단의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임을 보여줬다. 물론 아직 어느 한쪽도 승리하진 못했다. 오랫동안 이집트의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뿌리내려온 무슬림형제단은 설탕과 빵, 고기를 미끼로 빈민을 반혁명의 도구로 동원하고 있다. 군대의 움직임도 여전히 큰 변수다.

하지만 뉴욕타임스가 '끝나지 않는 혁명'이라고 표현한 이집트 혁명이 언제까지나 계속되진 않을 것이다. 나딤 페타이가 RoarMag.org에 기고한 아래 글은 이집트 혁명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과제를 설명하고 있다.

※ 아래 글은 제가 읽기 위해 한글로 옮긴 것으로, 상당히 많은 의역과 오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링크한 원문을 참조하세요.


[RoarMag.org] 타흐리르, 파라오의 시작과 끝
2012년 12월 3일 나딤 페타이링크

이집트의 혁명가들이 타흐리르로 돌아왔다. 그들은 이번에야 말로 그들이 시작한 것, 파라오를 무릎 꿇리고 진짜 민주주의를 도입하는 것을 끝내려 한다.

1970년 사다트가 권력을 잡았을 때 정치적 자유의 성장 속에서 불법 단체였던 무슬림형제단은 정치 조직으로 성장했다. 그들은 그들의 관점을 공개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고, 결과에 상관없이 그들의 이슬람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킬 수 있었고, 정부의 간섭 없이 아이들에게 [그들의 사상을] 주입할 수 있었고, 이집트의 가장 가난한 지역의 풀뿌리 조직에 퍼져나갈 수 있었다.

이로부터 40년이 지났다. 따라서 한 세대 이상 폭력적인 체제에서 유일한 야당이었다는 것, 무바라크 타도를 계기로 대의민주주의를 시행하게 됐을 때 의회와 대통령직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 유일한 진짜 정당이었음은 분명하다.

2011년 1월 25일 혁명이 시작된 초기에 무슬림형제단은 저항에 동참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이라며 혁명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운동이 승리 없이는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들은 인민의 편에 섰다. 모스크의 이맘(이슬람 성직자)들은 거리에서 충돌하고 있는 남자와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각각의 기도를 중단하기 시작했다. 어떤 흠결도 없는 아름다운 얘기로 들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도덕적인 어떤 것이 아닌 정치적 결정이었다. 2011년 2월 11일 무바라크의 퇴진은 이집트 사람들이 본적 없는 빈 공간을 열어젖혔다. 무슬림형제단이 사태를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왔다.

2012년 여름 이집트에서 첫 민주적 선거가 치러졌을 때 선택지는 서구의 우리 중 많은 이들에게 오랫동안 익숙했던 것이었다: 바로 차악을 선택하는 것. 그렇다. 구체제의 대리인인 아메드 샤피크와 무슬림형제단의 회원인 모하메드 무르시가 선택지였던 것이다. 구체제를 충분히 경험한 사람들은 무르시에게 투표했다. 그리고 그가 60년 만에 권력에 선출된 첫 대통령이 됐다.

이것이 이집트에서 일어났다고 여겨지는 믿음, 서구의 모든 이들이 듣고있는 이야기다. "혁명은 끝났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것이 민주주의고 이것이 이집트 인민들이 싸워서 얻어내려고 했던 것이다고 말이다. 그러나 혁명의 무대 뒷편에서 진정한 선택권의 부족함에 불만을 표현하기 위해 선거를 거부한 많은 인민들은 계속되는 국가 탄압과 이슬람 정당이 요구하는 행정부로의 권력 집중에 맞선 투쟁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

또한 이집트 혁명은 국제적 압력으로부터 동떨어져 있지 않다. 예를들어 국제통화기금(IMF)은 누가 권력을 잡든지 상관 없이 이집트의 경제 재건을 돕기 위한 수십억 달러의 원조를 약속하고, 긴급한 자금 지원에 대한 댓가로 극적인 신자유주의적 자유 시장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해마다 12억 달러 규모의 군사지원을 계속하겠다는 오바마의 약속과 짝을 이룬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을 보여준다: 무슬림형제단은 무바라크 체제와 그의 전임자들이 해왔던 것과 같은 세계적 군사력을 위한 또다른 애완견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집트의 지정학, 크기, 아랍 세계의 다른 부분에 대한 문화적 중요성은 서구ㆍ이스라엘과의 동맹을 중요하게 한다. 그렇기에 언론은 무르시를 그들의 동맹을 위한 이집트의 영웅으로 추켜세운다. 그들은 무르시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휴전협상을 이끌어낸 사람이라고 찬양한다. 바로 그들이 사다트에게 대했던 것 처럼 국제사회는 무르시가 독재자가 아닌 책임감 있는 실용주의자이자 믿을만한 대화 상대라고 믿는다.

그런데 하마스와 이스라엘이 휴전을 발표한 며칠 후 바로 무르시는 이집트 인민뿐 아니라 국제 사회에 충격을 준 법령을 공표한다.


새 법령의 진실
자료:알자지라
-대통령은 국가기관의 정화를 목표로 한 법령을 말한다.
-새 법에 의하면 4년 간 대통령이 검사를 임명할 수 있다.
-무르시는 자신이 원하는 어떤 법도 제정할 수 있는 권력을 그 자신에게 부여했다.
-무르시의 법령은 사실상 현직 검찰청장을 파면할 수 있게 한다. 이는 어떤 권한으로도 대통령의 결정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무르시는 시위대 살해와 관련한 재판의 재심을 명령했다.
-무르시의 법령은 새로운 의회 선거 때까지 그의 권력을 유지한다.
-의회는 새로운 헌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선출될 수 없다.
-무르시는 또한 새로운 헌법의 제안을 위한 기간을 늘렸다.
-무르시는 그 자신이 혁명을 수호하는 절대 권력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법령은 무르시의 절대 권력만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또한 상원[슈라위원회]이 (새 헌법 제정을 담당한) 제헌의회와 마찬가지로 [사법부에 의해] 해산되지 않을 것임을 보장한다. [상원과 제헌의회] 둘 모두 동시에 무슬림형제단 대표자 다수에 의해 조정된다. 두 집단에서 몇몇은 저항에 참여하긴 하지만 그 과정을 중단시키진 못할 것이다.

지난 몇달 동안 새로운 법과 헌법의 일부에 의해 여성 권리가 억압받았을 뿐 아니라 끊임없이 이집트가 이슬람 국가로 변화하면서 두려움은 현실이 되고 있다. 많은 혁명가들이 인민의 혁명을 도둑맞았다는 의식이 확산되길 기대하며 몇 달동안 거리를 점거한 덕에 무르시는 점차 정당성을 잃어갔다.

몇몇 자경단은 여성에게 (언어와 육체적인) 공격을 가하는 폭력배를 찾기 위해 카이로 도심을 수색하고 있다. 여성이 안전해질 때까지 스스로를 폭력배와 여성 사이에 서있겠다는 그들의 태도는 평화적인 데서부터 더 폭력적으로 반응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거리에서 여성을 학대한 남성의 눈에 페인트를 뿌리는 한 자경단을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무르시가 새 법률을 밝히자 마자 많고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충돌하기 시작했고 다시 한 번 분노한 사람들이 모여 악명 높은 타흐리르 광장에 횃불이 밝혔다. 상황은 무르시 얼굴의 절반은 무바라크의 얼굴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함마드 무르시 무바라크". 그리고 그 안에 무슬림형제단의 실수가 있다: 그들은 대중의 혁명적 정신이 차갑게 가라앉을 만큼 충분히 기다렸다고 믿었다. 그들은 확실히 틀렸다.

지난 1년 반동안 이집트 사회는 전례 없는 정치적 자각 수준을 성취했다. 특히 무바라크 퇴진투쟁의 맨 선두에서 싸웠고 봉기에서 친구와 가족을 잃은 많은 사람들, 혁명가들 자신의 혁명적 정서는 특별히 강했다. 그래서 더욱 평범한 이집트 사람들이 무르시의 법률을 알게 됐을 때 그들은 자신의 투쟁이 소용 없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기보다 타흐리르로 돌아갔다. 그리고 또다른 점거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집트의 인민은 분열돼 있다. 무르시 지지자들과 비판자들 사이에 거대한 규모의 - 지금에서야 나타나기 시작한 - 종파간 분열이 성장했다. 한쪽에는 자유주의자, 좌파, 판사, 청년, 지식인, 혁명가들이 있다. 다른쪽에는 무슬림형제단 회원ㆍ동조자들과 설탕ㆍ빵 또는 (드물게) 고기에 매수당한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 - 18일간의 타흐리르 광장 점거 기간에 낙타를 타고 공격한 그 날 동원됐던 같은 사람들 - 이 있다.

거리는 다시 한 번 작은 전쟁터가 됐다. 경찰은 최루탄을 뿌리고, 무슬림형제단 민병대는 평화적인 반정부 인사들을 공격하고, 혁명가들은 돌멩이와 화염병을 던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안절부절 하면서 기다리던 군대가 제자리를 지키는 동안에 일어났다. 바로 혁명의 시작인 이러한 일들은 어느 방향으로든 저울의 균형추를 움직일 것이다. 만약 군대가 반정부 인사들의 편에 선다면 무르시가 오랫동안 인민의 반대편에 서는 것을 불가능하게 할 것이다. 그의 파라오법은 그것이 제기됐던 만큼 빠르게 종말을 고할 것이다. 그러나 이집트 군대가 무슬림형제단의 편에 서기로 결정한다면 내전이 벌어질 것이다.

2011년 11월 뉴욕타임스는 이집트 혁명은 끝나지 않는 혁명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 시간, 그것은 진실이 됐다: 군사 최고위원회(SCAF)는 "과도정부" 형태로 권력을 잡았다. 이 기간 내내 시민에 대한 군사재판이 실시됐고 이집트 인민들은 단지 다른 사람들을 만나 하나의 억압적이고 전제적인 체제에 맞서기 위해 단순히 투쟁한 것 같았다. 체제 스스로 무너지진 않았다. 단지 얼굴이 바뀌었을 뿐이다. 무바라크로부터 SCAF로, 다시 무함마드 무르시로.

현재 우리는 느리고 고통스럽게 태어나고 있는 끝나지 않는 혁명의 마지막 무대를 목격하고 있다. 현실에서 대의민주주의적 과정에 포함된 내재적 오류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고, 이집트 인민이 더 많은 무언가를 요구하며 봉기하는 게 가능할까? 세계 모든 곳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한 봉기를 고무한 후 거의 2년이 된 이집트 사람들이 바리케이트로 되돌아와 그들 스스로 그와 같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요구할 수 있을까?

이집트 군대의 [앞으로의] 결정을 포함한 이러한 질문들에는 단지 시간 만이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답변이 무엇이든 이 혁명이 시작된 후 거의 2년 지난 지금 그 끝이 가까워졌다. 끝나지 않는 혁명은 더이상 계속되지 않을 것이다. 이 혁명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말이다. 따라서 지금의 사태들은 2011년처럼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Posted by 때때로


12월 1일 제도혁명당(PRI) 엔리케 페나 니에토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린 멕시코 의회 밖에서는 부정선거와 세제 개혁에 항의하는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이날 시위로 70여 명이 다치고 1명이 목숨을 잃었다.

12월 1일 엔리케 페나 니에토가 멕시코의 새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제도혁명당(PRI)이 12년 만에 다시 정권을 잡은 것이다. 니에토 대통령의 임기는 유혈사태로 시작됐다. 페이스북 'World Riots' 계정에 의하면 페나 대통령의 취임에 반대하는 의회 밖 시위대는 철제 바리케이트와 최루가스, 고무총탄으로 무장한 경찰의 공격을 받았다. 보도에 의하면 70여 명이 다치고 1명이 목숨을 잃었다. 거리의 시위대는 "멕시코에 대통령은 없다(Mexico Has NO President"는 구호를 앞세워 격렬히 항의했다.

이날의 참사는 6~7월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이미 예고됐다. 선거 과정에서 PRI와 니에토 후보는 불법 선거자금을 이용해 매표 행위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선불카드를 발급해 수백만 표를 돈으로 사들였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돈세탁을 했다는 의혹도 강하게 제기됐다. 하지만 법원은 8월 말 니에토의 당선을 인정하는 결론을 발표했다.

니에토와 PRI에 대한 멕시코 인민의 불만은 두 가지다. 우선 PRI는 2000년 선거에서 패배하기 전까지 71년 간 멕시코를 권위주의적으로 지배했던 정당이다. 또한 그들은 1990년대 초반 신자유주의적 개혁으로 농업에 종사하는 원주민과 도시 노동자들의 삶을 파탄으로 몰아넣었다.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당시부터 격렬한 항의를 받았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발효된 1994년 1월 1일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은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주의 밀림에서 세계화에 반대하며 봉기했다.

1990년대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이번 항의 시위를 촉발한 두 번째 이유와 연결된다. PRI는 이번 선거에서 노동시장 개방, 세금 인상, 국영 석유기업(모노폴리 페멕스)에 대한 외국인 투자 허용을 앞세웠다. 이와 함께 이들은 '범죄와의 전쟁'을 강조해 지지를 얻었다. 멕시코에서의 조직적 범죄 다수가 경찰ㆍ공무원과 관련돼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 자체로 부패의 뿌리고 범죄와 연관된 이들 PRI가 멕시코의 평범한 인민들의 삶을 위협하는 범죄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 없다.

부정선거와 함께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강화하겠다는 엔리케 페나 니에토 PRI 정권의 앞날이 그리 밝지 만은 않다. 7월 1일 함께 치러진 하원선거에서 PRI는 연정을 구성한 녹색당과 합쳐 의회 전체 500석의 과반에 못미치는 241석을 얻었을 뿐이다. 니에토는 취임 첫날부터 거대한 항의에 부딛쳐야만 했다. 남유럽과 북아프리카, 남아메리카를 뒤흔든 거대한 불만은 멕시코에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OccupyWallst.org] Mexico: Marches Against Political Corruption Met with Violence(링크)
●[#14N European Strike facebook] A big serious thing happened in Mexico hours ago(링크)
●[참세상] "멕시코엔 대통령이 없다" … 수천 명 취임반대 시위(링크)

Posted by 때때로


새 정부가 들어선지 3개월. 실망하기에 이른 시간일 수도 있지만 프랑스 인민도 긴축정책에 대한 저항에 나서고 있다. 9월 30일 프랑스 좌파전선의 긴축정책 항의 시위. [페이스북]

9월 25일 스페인 시민 6000명이 의회봉쇄를 시도했을 때 사태가 이토록 커지리라고는 예상 못했었습니다. 긴축에 반대하는 시위대에 맞서 경찰은 상상 이상의 폭력을 휘둘렀고 많은 이들이 다쳤습니다. 반응은 즉각적이었습니다. 평온하던 스페인에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하나의 시위가 아니었기 때문이죠. 이미 지난해부터 분노한 사람들(인디그나도스 los indignados)의 항의가 나라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여름에는 광부들이 영웅적인 투쟁으로 시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마드리드에 입성했었죠.


벼랑 끝에 선 마드리드: S25→S29
9월 25일부터 29일까지 스페인에서의 저항과 경찰 폭력을 담은 다큐멘터리. [globaluprising.org]

29일까지 이어진 항의 시위는 스페인을 넘어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의 나라에까지 확산됐습니다. 이토록 손쉽게 저항이 유럽 전역을 흔들며 세계화 할 수 있었던 것은 유럽의 인민이 겪고 있는 문제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긴축'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각 나라의 정부들은 자국의 은행을 구제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죠. 이는 결국 정부재정의 부실로 이어졌습니다. '복지' 때문에 정부재정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죠. 정부부채 규모가 2007년을 전후해서 급등했다는 게 이를 간접적으로 증명합니다.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는 heesang님은 지난해 블로그에 적은 짧은 글에서 이를 지적했었죠.

"지금 (내 생각에는) 극복되고 있는 이 위기는 채권자들의 위기이다. 이 위기를 넘어서면 시민들의 위기가 시작된다. 미국 정치인들은 재정지출은 줄이되 세금은 늘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탈리아는 연대세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부유세를 신설했는데, 그런 점에서 유럽의 사정은 더 나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감세와 민영화와 정부지출 축소는 여전히 신자유주의의 전위이고, 긴축의 부담은 고스란히 노동자 계급의 몫일 것이다. 자본이 낳은 위기를 국가가 떠안았으며, 다시 이제 자본은 이를 본격적으로 일반 시민들에게 떠넘기려한다. 그런 점에서 긴축 정책에 반대하는 그리스 시민의 투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긴축의 시대와 채권자의 승리ㆍ링크)

민간 부문의 부실을 떠안은 정부는 대규모 긴축으로 손실을 만회하려 하고 있죠. 유럽에서 EU와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는 구제금융 무기로 각 나라에 긴축정책을 강요하고 있죠. 그리스에서 저 세 개의 기구가 트로이카로 불리며 분노의 촛점이 되는 이유입니다. 불안하게도 이러한 구도는 외국에 대한 증오를 불러일으키며 민족주의와 인종주의를 부추기고 있기도 합니다. 아직은 다행스럽게도 좌파 운동의 강력한 성장이 이를 저지하고 있습니다.

선거에서의 노골적인 개입도 주저하지 않았던 트로이카의 협박에도 그리스 인민은 투쟁을 이어나갔습니다. 정부를 구성하지 못해 몇 차례 반복된 총선에서도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의 지지는 꾸준히 성장했습니다. 지난달 말 스페인에서 긴축에 맞선 투쟁이 분출했을 때 그리스에서도 어김없이 저항이 폭발했습니다.

그리스 인민은 9월 26일 다시 총파업 공세에 나섰습니다. 전력 노동자들은 투쟁을 더 강력하게 확대할 것을 요구하며 48시간 파업 반복을 선언했습니다. 재무부 노동자는 이틀 더 파업을 벌였죠
(다시 총파업 공세에 나선 노동자들ㆍ레프트21). 10월 4일 조선소 노동자는 국방부로 쳐들어갔고 농부 수백 명은 트렉터로 공항 봉쇄를 시도했습니다. 이들 모두의 요구는 긴축정책의 중단이었습니다(스페인 수십만 긴축 반대ㆍ참세상).

지난달 말 투쟁을 앞장섰던 스페인의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6일에도 시위를 벌였습니다. 분노한 인민의 항의에도 스페인 정부는 9월 27일 390억 유로 규모의 긴축을 결정하는 등 노동자 계급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정책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스페인 노동조합 연맹들은 11월 14일 파업을 준비하고 있죠
(스페인 수십만 긴축 반대ㆍ참세상).

유럽 뿐 아니라 남미와 북미에서 저항은 확산되고 있습니다. 캐나다 퀘벡 학생들은 등록금 인상에 맞선 투쟁에서 승리를 거뒀습니다. 승리 이후에도 무상교육을 위한 투쟁을 계속해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칠레에서도 무상교육을 위한 학생들의 투쟁이 1년 넘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시 점화된 칠레 학생시위 "교육은 권리다"ㆍ참세상). 올 초 경찰의 폭력적 진압에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던 미국의 오큐파이 운동도 다시 기지개를 펴고 있습니다. InterOccpy.net을 만들어 세계적 운동을 연결하고 협력하며 조직하는 것(Connect, Collaborate, Organize)을 모토로 다양한 연대를 펼치고 있습니다. 이들 뿐 아니라 다양한 활동가들이 10월 13일 전 세계 공동 냄비시위, 매월 22일 공동행동 등을 제안하고 준비하고 있죠(OccupyWallst.org, interoccupy.net).

더해가는 경제 위기, 정확히는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지배자들의 태도가 더 노골적으로 되면서 이에 맞선 저항도 더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한국은 경제와 정치적 상황 모두에서 다른 나라들과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현실 때문에 우리도 결국 저들과 다르지 않은 문제를 겪으리라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한겨레에 따르면 내년 정부 예산안에서 복지 지출 비중이 2005년 이후 처음으로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복지시대 역주행ㆍ한겨레). 워낙에 부족한 복지이기에 실상 그리 큰 영향이 없어 보이죠.

기업들도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란게 문제입니다. 아직은 불분명하지만 부문별로 희망퇴직과 정리해고의 칼바람 조짐도 있습니다. 가장 불안한 곳은 건설업계죠. 정말 거의 마지막 한올까지 끊어버린 듯한 부동산 규제에도 주택시장은 요지부동입니다. 문제는 상업시설과 사무실입니다. 과잉공급으로 서울시내 중심가의 최신 건물에도 빈 사무실을 곧잘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용산 재개발은 난항을 겪고 있으니 예외로 치더라도 상암디지털미디어시티와 종로1가 등 대규모 개발지들이 기대 만큼의 수익을 만들어낼 지는 의문입니다.

위기가 어떻게 진행될 지 예측하는 것은 부질없을 겁니다. 2008년 촛불시위와 같은 갑작스러운 저항이 터져나올 수도 있죠. 지난해 희망버스의 놀라운 성공처럼 말입니다. 이에 대비할 때 만이 좌파는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시대를 열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참고한 기사와 글
[참세상] 스페인 56개 도시 수십만 긴축 반대
[참세상] 다시 점화된 칠레 학생시위 "교육은 권리다"
[레프트21] 다시 총파업 공세에 나선 그리스 노동자들
[한겨레] 복지시대 역주행 … 내년 예산안 복지비중 첫 감소
[SocialandMaterial.net] 긴축의 시대와 채권자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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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이 함께하는 피켓팅, 과거와 현재 [CTU 페이스북]

9월 10일 시카고 시내에는 붉은 티셔츠를 입은 교사들의 물결로 가득 찼습니다. 학생 성적과 연동한 교원평가제 도입, 고용안정 후퇴, 수업일수 연장 등 교육에 기업원리를 도입하려는 개혁에 반대해 2만5000명의 교사들이 파업에 들어간 것입니다. 25년 만의 일이죠. 시카고교원노조 CTU(the Chicago Teachers Union)의 이번 파업은 현지시간으로 12일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교원평가제를 둘러싼 협상에 진척이 없어 파업이 계속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합니다.

이번 파업은 미국의 대선에 미묘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교원노조는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해 왔기 때문이죠. 하지만 현재 CTU가 반대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바로 미국 민주당입니다. 교원평가제 도입과 교육의 기업화 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람 이매뉴얼 시카고 시장은 '오바마의 남자'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초대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냈죠. 바로 그가 민주당의 전통적인 지지세력의 이해에 반하는 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 민주당의 이런 교육정책을 공화당이 굳이 반대할리 없을 것입니다. 노무현 정권 시절 한나라당이 한미FTA 추진을 칭찬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실제로 밋 롬니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교원노조가 학생들을 볼모로 자신의 이익을 주장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ABC뉴스는 롬니의 런닝메이트인 폴 라이언이 "이매뉴얼 … 시장의 오늘 입장은 옳았다"며 "교육개혁은 초당파적 이슈"라고 이매뉴얼 시장을 지지하는 뜻을 밝혔다고 10일 보도했습니다.

단지 시카고 만의 문제가 아닌 것은 같은 교육정책이 전국적으로 추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 시카고 교육감인 아른 던컨은 오바마 정권의 교육부 장관으로 현재 시카고에서 추진되고 있는 것과 같은 정책을 미국 전역에서 실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워싱톤포스트'는 "교원평가제는 2009년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해온 일련의 교육개혁 프로그램 중 하나로 보스톤ㆍ클리블랜드ㆍ로스앤젤레스 등 다른 대도시 지역에서도 교사들의 반발이 크다"고 지적했죠.

민주당과 공화당, 주요 언론들이 교사들의 파업을 비난하고 나설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는 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네요. 같은 미국 언론을 받아써서일까요 중앙일보는 물론이고 한겨레에서도 "이날 파업으로 거의 40만 명에 이르는 초ㆍ중ㆍ고 학생들이 학교를 갈 수 없게 되자 맞벌이 부부들은 곤욕을 치렀다"고 보도했습니다.

물론 파업이 시작되면 누군가 불편을 겪겠죠.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단지 교사들 '만'의 파업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좋은 교육은 아이들을 시험하고, 교사를 모욕하고, 학교를 닫는 전략으로 만들지 못한다" CTU를 지지하는 부모들 [OWS 홈페이지]

'오큐파이 시카고 트리뷴'에 의하면 이번 파업은 교육 민영화에 반대해온 지난 몇 년간의 지역 공동체 활동의 일부입니다. 공식적인 노조지도부로부터 독립적인 평교사 모임 CORE(Cacus of Rank-and File Educators)가 2010년 노조 내 선거에서 CTU의 지도적 위치를 차지하는 데는 지역 학부모와 학생들의 지지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디에트 고등학교 학생들은 다른 16개 주 학생들을 따라 학교 내 인종차별적 대우에 대해 조사해달라는 청원을 교육부에 제출했고, 오는 20일에는 워싱톤을 향해 '프리돔 라이더(1960년대 미국 남부의 인종차별적 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진행된 운동.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위대는 버스를 타고 남부로 모여들었고 이들을 '프리돔 라이더'라고 불렀습니다.)' 운동을 시작할 것이라고 합니다. '사회정의 고등학교(2001년 지역 빈민공동체의 파업과 투쟁으로 2005년 론데일의 리틀 빌리지에 개교한 학교)' 학생들은 학교의 해체(아마 '폐교'를 뜻하는 듯)를 막기 위한 연좌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즉 CORE와 CTU는 "더 나은 공교육을 위해 투쟁하는 지역 공동체 그룹의 일원"일 뿐입니다.

쟁점이 되는 교원평가제를 시카고의 사회적 상황에 놓고 보면 이러한 정책이 의미하는 바가 뚜렷해집니다. 시카고 학생 40만 명 중 80%가 빈곤층입니다. 가난 때문에 시카고 고등학생 중 60% 만이 학업을 마칠 수 있습니다. 미국 평균 졸업률은 75%이죠. 부모의 실업과 가난, 공교육에 대한 지원의 축소와 같은 것은 개선할 생각 없이 학생의 성적에 연동해 교사를 평가하겠다는 것은 공교육을 더욱 축소시키고 교사의 수를 줄이겠다는 의도로 보입니다. 앞에서 얘기한 사회정의 고등학교 해체와 같은 공공교육의 축소와 이어지는 일이죠.

가디언은 보수 양당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는 교원노조의 위태로운 모습을 "알카에다와 바이러스 사이 중간에 위치한 혐오스러운 대상"이라고 묘사했죠. 그는 이렇게 묻습니다.

"공립학교가 형편없어진 원인이 불공평한 재산세제나 무책임한 학교 이사진, 빈곤과 실업, 마약경제, 가정 불안 등이 될 수 없는 것인가?"

다른 모든 원인을 제쳐두고 교사들 만 탓하는 게 한국과 그리 다르지 않은 미국의 현실입니다. 결국 가디언의 칼럼은 이런 상황을 변화시킬 것은 오바마나 민주당이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10일 시작한 파업이 12일까지 사흘 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꽤 긴 기간 미국 민주당에 정치적으로 메여 있던 노동조합이 행동에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보입니다. 물론 지난해 위스콘신에서의 투쟁이 있었지만 위스콘신 주정부는 공화당이 차지하고 있었죠. 달라진 상황이 노동조합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게다가 '오큐파이 시카고 트리뷴'이 말하 듯 이번 투쟁은 이미 꽤 오래전부터 사실상 예고된 것으로 봐야 합니다. 지역 공동체와의 연대, 공동활동이 파업에 나설 용기를 줬다고 할 수 있겠죠.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종종 한국 교육을 칭찬해 왔습니다. 보통은 한국의 '교육열'을 칭찬했던 것으로 이해됐죠. 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놓고 보면 그가 부러웠던 것은 기업원리 도입에 적극적인 한국의 교육정책이었던가 봅니다. 교원평가제는 한국이 앞서 도입한 정책이죠. 한국의 자립형학교 정책은 미국의 차터스쿨로부터 배워온 것이죠. 교육에 기업원리의 도입하는 정책을 서로 배우며 고무하는 한국과 미국이기에 시카고 교사 노동자들의 파업이 남의 일로만 느껴지진 않습니다.

곧 있으면 '오큐파이 월스트리트' 운동이 시작된지 1년이 됩니다. 시카고 교사 노동자들의 파업은 오큐파이 운동의 가장 성대한 기념식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참고한 기사
[참세상] 미국 교사 3만 명 파업 … 보수 양당 체제에 물음표
[프레시안] 시카고 교사 25년만의 총파업, 그 '불편한 진실'
[한겨레] 시카고 교사 25년만에 파업 … 오바마 재선 발목 잡나
[Occupied Chicago Tribune] Seeing Red: Chicago Teachers Elevate Anti-Privatization Fight to National Level
[WBEZ91.5] Veteran teachers out at Social Justice High School

Posted by 때때로

3월 30일, 36살의 쌍용차 해고자 한명이 자신이 살던 임대아파트 에서 몸을 던졌습니다. 스물두 번째.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이후 목숨을 잃은 사람의 수가 22로 또 하나 늘어났습니다.

● [프레시안] 쌍용차 해고자 또 투신자살 … 정리해고 후 22번째(링크)

부모가 없고 혼자 살았던 고인의 사정 때문에 그는 몸을 던진 후 하루가 지나서야 발견됐습니다. 그렇게 잊혀져가던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서야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렸습니다. 그리고 또 잊혀지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죽음이 그리스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은퇴한 후 연금을 받아 생활을 이어가던 77세의 노인 드미트리 크리스토울라스는 4월 4일 아테네 국회의사당 인근의 신타그마 광장에서 지니고 있던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그리스 국민이 칼라시니코프를 잡는다면 그와 나란히 설 것"이라는 그는 자신의 나이가 너무 많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만이 "존엄한 삶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처럼 보인다"고 마지막 남긴 메모에 적고 있습니다.

"The Tsolakoglou government has annihilated all traces for my survival, which was based on a very dignified pension that I alone paid for 35 years with no help from the state. And since my advanced age does not allow me a way of dynamically reacting (although if a fellow Greek were to grab a Kalashnikov, I would be right behind him), I see no other solution than this dignified end to my life, so I don’t find myself fishing through garbage cans for my sustenance. I believe that young people with no future, will one day take up arms and hang the traitors of this country at Syntagma square, just like the Italians did to Mussolini in 1945."
"'트라코글로우' 정부는 내 생존을 위한 모든 연줄을 끊었다. 국가로부터 그 어떤 도움도 없이 내 스스로 35년간 지불하며 만들어온 나의 존엄한 자리를 말이다. 나는 이제 강력하게 항의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다(물론 비슷한 처지의 그리스 국민이 칼라시니코프를 잡는다면 나는 그와 나란히 설 것이다). 생존을 위해 쓰레기 더미를 뒤져야 하는 내 자신의 모습을 볼 수는 없기에, 내 생명을 스스로 끊는 것만이 존엄한 삶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처럼 보인다. 1945년 무솔리니에 반대해 이탈리아인들이 일어난 것처럼, 어느날 무장을 하고 일어나 이 나라의 배신자들을 교수대로 보내는 것 외에 젊은이들에게 어떠한 미래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 4월 4일 그리스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에서 자살한 77세 노인의 유서 일부
※ 원문은 페이스북에서 구했습니다. 실력이 부족해 의역을 했으니,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트라코글로우'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그리스를 점령했을 때 괴뢰정부의 수상이었던 사람입니다. 아마도 이 노인은 구제금융을 이유로 강력한 긴축정책을 요구한 트로이카(유럽연합ㆍ유럽중앙은행ㆍIMF)에 굴복한 루카스 파파데모스 총리를 트라코글로우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 [프레시안] 그리스 77세 약사의 공개 자살 '충격'(링크)

2008년만해도 그리스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2.5명으로 유럽에서 가장 낮았습니다. 하지만 경제위기는 그리스 국민을 죽음의 길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2011년 1~5월 사이 자살률은 2010년 같은 기간보다 40% 증가했습니다(서울신문ㆍ링크).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이탈리아에서도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습니다. 3월 29일에는 4개월간 월급을 못 받은 28세의 건설노동자가 이탈리아 베로나의 시청사 앞에서 분신자살을 시도했습니다. BBC는 "이탈리아 언론에 경제난으로 인한 자살 기사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문화일보ㆍ링크). 숫자로 표현되는 경제위기의 지표들은 살아있는 인간의 존엄한 삶을 지워가고 있는 것입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의 스물두 번째 죽음 소식을 들은 홍세화 선생은 "먹먹했다, 아니 막막했다"고 말합니다.

침묵을 강요함으로써 죄를 은폐하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 스캔들은 그 시대의 악몽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들이 그러한 의지를 지니고 있다고 해서 시대를 거슬러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통로들을 통해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으니까요.

홍세화 선생이 스물두 번째 고인의 소식을 듣고 파울 첼란의 시를 떠올린 것은 그 때문일 것입니다.

어떤 이야기가,
그것이
너무 많이 이야기된 것이므로,
거의 일종의 죄악이라면,
그것은 어떤 시대인가?

파울 첼란의 시는 브레히트의 시를 인용 변형한 것입니다. 브레히트는 이렇게 말했었죠.

나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세상에 널려 있는 참혹함에 대한 침묵이므로
거의 일종의 죄악이라면
그것은 어떤 시대인가?

브레히트가 아니라 파울 첼란의 시를 인용한 것은 우리가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너무 쉽게 흘려보내는 것과 같은 죄악을 떠올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홍세화 선생은 이렇게 글을 이어갑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죽음이 정권과 자본권력에 의한 살인이라는 주장은 결코 틀리지 않다. 그러나 우리들 자신이 여기에 어떻게 연루되어 있는지를 말하지 않는 한, 다시 말해 '별일 없이' 살아가는 우리 자신에게 유죄선고를 내리지 않는 한 우리는 언제나 주장에서 멈출 뿐, 분노에서 멈출 뿐, 배제된 이들의 죽음을 멈추게 하지 못할 것이다."
● [사랑과 혁명의 정치신문 R] 홍세화 "어떤 희망이 이 절망을 위로하랴"(링크)

스스로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용기는 범상한 우리들이 쉽게 갖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유죄를 선고하기보다 용서받기를 먼저 청하곤 합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의 신화에 그토록 많은 사람이 쉽게 감화되는 이유일 것입니다.

저는 이 신화(십자가의 대속)에서 죄의 용서보다, 사람의 아들로서 예수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형식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테리 이글턴은 "문자 그대로의 죽음이든 상징적 죽음이든 간에 철저한 자기포기 만이 변화된 삶의 출현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조건"임을 보여준 게 이 신화의 교훈이라고 주장합니다(2010년 9월 6일 고려대 강연ㆍ링크). 십자가의 신화가 봉기(부활)의 신화로 이어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살아남은 자의 임무는 복잡하고 모순적이기까지 합니다. 성경의 경우와 같이 우리의 너무 많은 이야기가 오히려 그 의미를 바래게 하는 것은 아닌지 되물어야 합니다. 기억하고, 상기하고, 전파하는 것이 자신을 그 죄로부터 떼어놓으려는 시도는 아닌지 반성해야 합니다.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EZLN)의 마르코스 부사령관은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라고 말했죠. 그러나 이는 행동하는 사람 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반성은 사고의 형식이 아닙니다. 반성의 말은 무엇보다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5월 1일은 전 세계 노동자들의 날입니다. 8시간 노동제를 위한 투쟁으로 시작된 이날, 오큐파이 운동은 전 세계 노동자ㆍ청년ㆍ여성ㆍ이주민ㆍ소수민족ㆍLGBTㆍ예술가들의 총파업을 제안했습니다(6 Ways to Get Ready for the May 1st GENERAL STRIKEㆍ링크). 권총으로 자살한 77세의 그리스 노인도 다른 이들이 칼라시니코프를 든다면 그에 따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젊은이들에게는 봉기하는 것 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미래라고 전하고 있죠.

민주노총을 비판하는 '말'로만은 부족합니다. 우리 스스로 만들지 않으면서 타인을 탓하는 말은 자신을 반성의 대상으로부터 제외하는 일입니다. 노동조합에 속하지 않은 개인이 파업에 참여한다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이날 하루 만은 휴가를 내든, 결근을 하든 모두가 거리로 나와 희망을 말했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때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