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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 살에 해고된 뒤 동료 곁에 돌아오겠다는 꿈 하나를 붙잡고 27년을 견뎌온 여성 노동자가 그 동료를 지키겠다며 다시 이 크레인에 매달려 세상을 향해 간절히 흔드는손을 저들 중 몇 명이나 보고 있을까요."
- '사람을 보라'

2010년 12월 17일. 튀니지 중부의 소도시 시디 부지드의 한 청년은 스스로의 몸에 불을 붙였습니다. 26살의 대학 졸업자인 모하메드 부아지지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과일 노점으로 생계를 이어갔었죠. 그러던 중 경찰의 단속으로 팔던 과일을 모두 빼앗기자 그는 절망과 분노의 불길에 몸을 던진 것입니다. 새해의 네번째 날, 모하메드 부아지지는 결국 세상을 떠납니다. 하지만 그의 분신은 전 세계적 저항의 봉화로, 세계를 흔드는 2011년 투쟁의 도화선이 됩니다.('한 '청년 백수'의 분신, 23년 독재를 무너뜨리다' 프레시안ㆍ링크)

부아지지가 세상을 떠난 이틀 후, 부산 영도에서는 한 여성 노동자가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 조용히 오릅니다. "스물한살에 입사"해 "스물여섯에 해고되고 대공분실 세 번 끌려갔다 오고, 징역 두 번 갔다오고, 수배생활 5년 하고, 부산시내 경찰서 다 다녀보고, 청춘이 그렇게 흘러가고 쉰두살"이 된 이 여성 노동자는 김진숙이었습니다. 그의 동료 김주익이 외롭게 죽어갔던 바로 그 자리에 오른 것입니다.
('크레인에 오르며' 김진숙ㆍ링크)

"여기가 85호 크레인입니다. 10년 전 그때도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의 대량학살이 있었고 2년을 싸워 노사가 합의를 했건만 그 합의를 사측이 번복하던 날. 키 큰 사내 하나가 숨죽이며 올랐던, 여기가 85호 크레인입니다. 갇힌 짐승처럼 이 크레인 위를 서성이며 오늘은 동지들이 얼마나 모일까 노심초사 내려다보던, 여기가 85호 크레인입니다. 동지들이 많이 모인 날은 삶 쪽으로, 동지들이 안 모이는 날은 죽음 쪽으로 위태롭게 기우뚱거리며 숱한 날들을 매달려 있던, 여기가 85호 크레인입니다. 도크에 배가 빠지던 날, 육중한 배보다 무거운 걸음으로 뒤돌아서던 조합원들을 보며 끝내 유서를 썼던, 여기가 85호 크레인입니다."
- '사람을 보라'

누가 부르지 않아도 오는 사람들, 불꽃같은 사람들
- '사람을 보라'

부아지지의 죽음이 아랍에 봄을 불러왔듯, 김진숙과 김주익의 크레인 85호가 등대가 되어 사람을 불러모았습니다. "누가 부르지 않아도 오는 사람들, 불꽅같은 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영도로 향했습니다. 6월 11일에는 500명, 7월 9일에는 1만명, 7월 30일에는 1만5000명이 김진숙을 만나기 위해 버스를 탔습니다. 100일 가까이 외롭게, 김주익처럼 죽음의 목마 위에 탄듯 했던 김진숙은 친구를 만났고 삶을 만났습니다. 사람을 만났습니다.

김진숙의 투쟁의 기록, 한진중공업 노동자의 희망을 향한 애탄 몸짓의 기록, 희망을 배달한 사람들의 기록이 '아카이브'에서 나온 '사람을 보라'입니다. 우리가 잊었던 단어 '단결'과 '연대'는 삶의 동아줄이었습니다. 150여년 전 알렉시스 토크빌은 '앙시앵 레짐과 프랑스혁명'의 서문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신분질서, 계급, 직종조합, 가족 따위의 낡은 유대가 더 이상 개인들 사이의 결합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면, 사람들은 자신의 특수 이익에만 전적으로 몰두하는 경향을 보이거나 응당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은 모든 공적 미덕이 질식당한 협소한 개인주의 속으로 칩거해버리는 것이다. 전제주의는 이러한 경향을 거부하기는커녕, 모든 공통된 열정과 욕구 및 모든 상호이해의 필요와 공동행동의 기회를 시민들에게서 앗아감으로써 오히려 그것에 저항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만든다. 달리 말하자면 전제주의는 공적 미덕들을 사생활 속에 가두어버린다. 전제주의는 이미 산산이 흩어지고 차가와진 공적 미덕들을 완전히 고립시키고 냉각시켜 버리는 것이다."
- 알렉시스 토크빌 '앙시앵 레짐과 프랑스혁명' 서론 7쪽

2011년은 토크빌이 두려워했던 전제주의의 위협을 우리가 극복할 수 있음이 증명된 한해였습니다. 김진숙과 한진중공업 노동자를 살리기 위해 부산으로 달려갔던 희망버스 탑승자들이 바로 그 산 증거였죠. 새해 벽두 정리해고의 차디찬 통보에 맞서 50여 일을 싸운 홍익대 청소ㆍ경비노동자의 옆에도 바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랍에서 그랬듯이, 한국에서 그랬듯이 미국에서도 유럽에서도 남미에서도 단결과 연대의 발길은 이어졌습니다. 아랍에서 부아지지가 목숨을 잃고 한국에서 김진숙이 외로이 크레인이 올랐던 1월 미국 위스콘신의 주지사는 교사와 공무원노조 단체교섭권 박탈과 사회보장 혜택 축소를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1월 15일 시작된 반대 시위는 위스콘신 시민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노동자ㆍ시민의 연대가 미국에서도 가능함을 입증했습니다. 2월 19일 위스콘신주 주도 매디슨시에는 7만여 명의 노동자ㆍ시민이 주 정부의 노동법 개악에 항의하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나왔습니다.
('위스콘신 주지사는 미국의 무바라크?' 프레시안ㆍ링크) 사람들의 투쟁은 9월 17일 뉴욕의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로 이어졌습니다.

타임지는 올해의 인물로 '시위대(The Protester)'를 꼽았습니다. 시위대는 기업의 이윤, 독재자의 폭정에 맞서 사람들의 참 삶을 위해 거리로 나섰습니다. 시위대의 목소리는 바로 사람의 목소리입니다. '사람을 보라'를 올해의 책으로 추천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올 한해 세계에 울려퍼진 사람들의 목소리 중 가장 중요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공적 미덕을 우리는 다시 찾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연대의 기억은 끊임없이 회고되며 삶의 원칙으로 자리잡아야 합니다. '사람을 보라'는 309일 간 이어진 김진숙의 외침과 연대의 행동 모두를 담지는 못했습니다. 김진숙은 다시 땅을 밟았지만 사람의 외침은 쌍용자동차에서, 유성기업에서 계속 이어지기 때문일 겁니다.
('여러분이 나를 살렸습니다. 다음엔 쌍용차로 갑시다' 프레시안ㆍ링크) 이 책은 결코 끝을 볼 수 있는 종류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 길목에 이 책이 하나의 든든한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병원에서 연극치료를 했습니다. 올해 가장 많이 한 동작을 해보라 해서 팔을 활짝 벌려 흔들었습니다. 올해 가장 많이 한 말을 해보라는데 '고맙습니다' 하며 목이 메였습니다. 가장 고마운 사람이 누구냐 묻는데 '감옥에 있습니다' 그 말을 미처 못 끝내고 울었습니다."
- 김진숙 트위터 12월 29일

사람을 보라|한금선ㆍ노순택ㆍ김홍지ㆍ오은진ㆍ이미지ㆍ이정선ㆍ임태훈 기획 및 편집|아카이브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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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gypt supports Wisconsin workers"

2월 11일, 무바라크의 항복 선언 이후 이집트의 저항은 아랍  세계 전체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리비아와 바레인에서는 경찰과 군대를 동원한 공격이 있었다고 합니다. 바레인의 왕세자는 강경한 시위대의 모습에 한 발 물러서 대화를 하자고 나섰지만 가다피는 더욱 강경하게 군대를 동원해 시위대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현대적 통신망을 마비시킨 리비아 정부 때문에 정확한 소식은 들어오지 않지만 무바라크가 이집트에서 시도했던, 깡패와 흉악범을 동원한 유혈사태 기도가 있었다고도 합니다.

이집트의 저항은 아랍 세계 전체로 확산되는 것과 동시에 국내적으로는 그 깊이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한국 언론에선 침묵하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파업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 노동자들은 또한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노동조합의 건설에 나서고 있습니다. 주류 언론에서는 언제나 혁명의 예측할 수 없는 급작스러움과 신기술의 영향력을 떠들기에 급급합니다. 우리나라의 1987년 6월 항쟁을 돌이켜봐도 그렇습니다. 그 전해의 건대항쟁과 5ㆍ3 인천 항쟁, 다시 그보다 앞선 85년의 구로동맹파업과 일일이 거론하기 힘든 여러 싸움들이 1987년 6월 항쟁을 준비해왔음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이집트도 마찬가지죠. 이번 시위의 중심적 역할을 한 청년 운동인 4월 6일 운동은 2008년 4월 6일의 노동자 파업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레디앙에 실린 문이얼의 '이집트 제2혁명 더 큰놈이 오고 있다'에서 이집트 노동자 투쟁의 역할을 온당하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번 이집트 혁명은 지난 몇 년 전부터 이집트 내에서 가열되기 사작한 좀 더 긴 과정의 클라이맥스였다고 할 수 있는데, 그 분기점은 2000년대 후반에 등장했던 이집트 노동자들의 파업이라고 할 수 있다.

2008년 4월 6일에도 또다시 파업이 발생하였다. 파업이 발생하고나서 수시간만에 파업 규모가 엄청나게 늘어나자 파업 참여자들은 무바라크의 포스터를 끌어내리고 이를 짓밟았는데, 급기야 파업 노동자들은 경찰과 충돌하는 과감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장면은 무바라크가 통치한 지난 30여년 동안 한번도 볼 수 없었던 장면으로 이집트 정부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들 파업으로 파업 참여 노동자들은 또다시 보너스와 임금 인상 등의 양보를 획득했고, 이 파업을 지지하면서 활동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청년운동인 '4월 6일 운동'이 탄생했다.
'이집트 제2혁명 더 큰놈이 오고 있다', 문이얼, 레디앙(링크)

노동자 투쟁이 중요한 것은 2008년의 경제위기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유럽은 2008년 경제위기의 영향으로 발생한 노동자 투쟁으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지금은 가라앉은 듯 하지만 그 투쟁이 언제 다시 터져나올 지 모르는 상태라는 것은 이집트 투쟁과 지난 며칠간의 위스콘신 노동자 투쟁이 보여줍니다.

이런 추세는 지난 2004년 이후 기업가들로 구성된 소위 '개혁 내각'이 국제통화기금이 제시한 개혁 노선을 밀어붙이면서 더욱 더 악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공직자들 사이에 부패가 만연했고, 인플레이션과 식료품 가격 상승으로 인해 이집트 서민들의 생활은 날이 가면 갈수록 곤궁해졌다.
'이집트 제2혁명 더 큰놈이 오고 있다', 문이얼, 레디앙(링크)

위스콘신주는 1959년 주 공무원의 단체교섭권을 인정하는 법률을 최초로 제정한 주이지만 지난달 취임한 공화당 스캇 워커 주지사와 주의회가 재정적자를 이유로 공무원의 단체교섭권을 사실상 박탈하고 연금 및 건강보험 혜택을 축소하는 내용의 공직사회 구조조정 입법을 추진했다.
'"공무원 단체교섭권 박탈" 법안에 위스콘신주 7만여명 찬반 시위', 한국일보(링크)

위 한국일보 기사의 제목은 참 재밌습니다. 저 제목만 보면 7만여명이 반으로 나뉘어 찬반  시위를 벌인 듯 하지만 사실 대다수는 반대 시위대입니다. 김낙호(트위터 아이디 capcold)씨가 트위터를 통해 전해오는 소식에 의하면 날로 연대가 확산되어 간다고 합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의하면 위스콘신주 주도인 매디슨의 인구는 2006년 현재 22만7642명입니다. 인구 20만명의 도시에서 7만여명이 시위에 참여했다는 거죠. 서울로 치면 350만 명이 시위에 참여한 것과 마찬가지죠.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주지사는 '침묵하는 다수' 드립을 하고 있답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저항에 나선 이유가 하나의 사건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죠. 스티글리츠가 통렬하게 지적하고 있듯이 2008년 경제위기를 맞은 미국 정부가 기업 살리기(기업복지)에 나서는 가운데 더 가난한 다수의 삶은 내팽겨쳐지고 있습니다(물론 의료보험 등에서 부분적인 개선이 있었죠).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유럽 각국의 대응도 이와 별로 다를 바 없죠. 재정적자의 위험성을 강조하면서 다양한 복지혜택 등을 축소하는데 골몰하고 있는게 지난해 노동자 투쟁의 원인이었습니다. 이집트와 아랍 세계 인민은 경제위기로부터 더욱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유럽 정도의 복지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러한 타격은 생존을 위협하는 더욱 직접적인 것입니다. 여기에 지난 몇 십년간 지배해온 독재자에 대한 분노가 결합된 것이죠. 사실 이 둘은 분리하기 어렵습니다. 어느 하나를 강제로 분리하려 했을 때 나머지 절반(정치적 민주화)도 기형적 변화의 길로 접어들 수 밖에 없죠.

아랍의 투쟁은 우리의 과거를 돌이켜보게 합니다. 1960년 4ㆍ19, 1979년 박정희 암살부터 12ㆍ12 쿠데타, 1980년의 5ㆍ17 쿠데타, 5ㆍ18 광주항쟁, 1987년의 6ㆍ10 항쟁과 이어진 7ㆍ8ㆍ9월 노동자 대투쟁 …. 아랍의 투쟁은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비록 그 투쟁이 독재자의 총탄 앞에 스러진다고 할지라도 그 영향력은 아랍의 정치에 만만치 않은 영향을 미칠 게 틀림 없습니다.

가볼 만한 사이트
2011년 아랍 혁명 : 연구공간 L의 블로그, 아랍혁명에 관한 다양한 해외 소식을 번역해서 올리는 곳, 지젝ㆍ바디우ㆍ네그리의 글도 볼수 있다.
아이비스 에너지 전략 연구소 : 중동ㆍ이스라엘을 둘러싼 국제관계 분석 블로그. 아랍혁명에 관한 깊이 있는 분석을 제공하고 있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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