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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에 해당되는 글 2

  1. 2013.11.07 잉여와 20대
  2. 2012.01.25 비정규직 정규직화 vs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확대
2013. 11. 7. 02:28

잉여와 20대 쟁점2013. 11. 7. 02:28

잉여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특히 20를 언급하면서 그렇다. 최태섭이 '잉여사회'라는 책을 내놓기도 했지만 실상 '잉여'라고 스스로 부르고 '잉여짓'을 놀이로 하거나, '잉여짓' 한다고 비난받는 이들이 누구인지 명확히 설명하진 못한다. 최태섭의 책 1부는 잉여와 관련있는 듯 보이는 몇몇 담론들을 다룰 뿐이며 2부에서도 인터넷 문화의 일부분만을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 세대론이 덧붙여진다. 조한혜정은 '평생 자녀를 데리고 살 것인가?'(한겨레 10월 30일ㆍ링크)에서 '속물과 잉여'라는 책을 인용하며 직접적으로 20대와 10대를 겨냥한다. 같은 날 정희진도 경향신문 칼럼(잉여, 경향신문 10월 30일ㆍ링크)에서 잉여를 논한다. 그는 자본주의의 노동절약형 기술발전이 더 많은 사람들을 '없어도 되는 사람'으로 만든다고 말한다. 조한혜정보다는 잉여를 논하는 폭이 넓기는 하지만 그도 주로 20대의 현실을 강조한다. 청년 실업과 취업난, 9만 명이 응시한 모 대기업 입사시험, 늘어나는 캥거루족 등이 그 현실이다.

한겨레21은 '희생양도 개새끼도 아니다'
(2013년 11월 984호ㆍ링크)에서 "취업도 구직도 하지 않는 20대가 증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희진이 말한 "중산층 부모를 둔 잉여"인 캥거루족, 조한혜정이 사례로 든 "부모의 연금에 빌붙어 사는" 은둔형 외톨이가 이러한 20대의 대표적인 이미지일 것이다. 한겨레21은 이들 20대를 우치다 타츠루가 '하류지향'에서 제시한 '성장 거부 세대'로 부른다. 20대에 동정적이든 비판적이든 모든 결론은 결국 자본주의 사회의 거센 경쟁 압력에 직면한 20대가 아예 경제활동을 포기하는 걸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문득 청년 실업과 취업난이 그토록 많이 언급되지만 구체적으로 다뤄지는 것은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업과 고용에 대해 전반적으로 조사하고 싶었지만 우선은 20대를 중심으로 몇 가지 자료를 찾아 봤다. 트위터에서 읽은 "정희진의 칼럼은 요즘 떠오르는 '잉여' 의식에 거리를 두지 못해서 결국 '잉여'도 못되는 이들을 보지 못한다. 현 자본주의가 무슨 잉여인력을 양산하나?"라는 지적도 오늘 올릴 그래프를 만들도록 재촉했다. 아직 어떤 분석을 내놓을 수준은 안 되고 현실이 이렇다를 정리하는 정도다.



먼저 볼 것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의 진로다. 많이들 알려졌지만 고등학교에서 대학교 진학률은 90년대에 급격히 증가해 2008년에는 83.8%로 정점을 찍었다. 그 반대로 취업률은 낮아졌다. 2008년 이후에는 분위기가 약간 바뀌어 진학률은 71.3%로 떨어졌고 취업률은 8.3%로 올랐다. 진학률이 줄어든 만큼 취업률이 늘지 않은 것은 그래프에는 없지만 무직자가 늘었기 때문이다. 2008년 9.3%였던 고졸 후 무직자 비율은 2012년 15.7%까지 늘었다.

대학 졸업자의 진학률은 큰 변함 없이 10% 이하에 머물고 있다. 취업은 2009년까지 꾸준히 늘었지만 2010년에 큰 폭으로 떨어져 1998년 경제위기 직후 취업률 수준에 이르렀다. 그래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2011년 51.4%까지 늘었던 취업률은 2013년 다시 50.6%로 떨어졌다. 1997년 말 경제위기 직후의 상황보다 낙폭도 크고 회복도 더디다.



고등학교 졸업생의 진로에서 예상되듯 20대 초반(20~24세)의 경제활동참가율은 크게 떨어졌다. 반면 대학을 졸업하는 20대 후반(25~29세)의 경제활동참가율은 꾸준히 늘었다. 경제활동에 참가하는 나이는 늦춰졌지만 그 만큼 20대 후반에게 경제활동 참가 압력이 커진 게 아닌가 싶다. 나이에 따른 경제활동 참가율 변화를 보면 미세하지만 이를 확인할 수 있다. 1994년에 비해 2012년에 경제활동참가율 곡선이 더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경제활동참가율이 가장 높은 나이도 40대 초반(40~44세)에서 40대 후반(45~49세)로 늦춰졌다.

여기서 20대의 경제활동참가를 15세 이상 전체 인구와 조금 더 자세히 따져보자. 20대 초반과 후반으로 나누어 전체 인구 중 차지하는 비율과 전체 경제활동인구 중 차지하는 비율을 살펴보자. 이는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않고 있으면서, 참여할 의사도 없는 20대가 늘고 있다"는 한겨레21의 주장이 맞는지 확인해보기 위해서다. 한겨레21은 20대 비경제활동인구 비중이 2005년 이후 늘어나 올해 9월 37.9%(629만9000명)에 이른 것을 근거로 제시한다. 이와 함께 57.3%까지 낮아진 고용률, 전체 연령 중 가장 높은 실업률을 예로 들고 있다.



20대를 초반과 후반으로 나눠 살펴보면 한겨레21과 조금 다른 그림이 드러난다. 20대 초반(20~24세) 경제활동인구는 1994년 229만9000명에서 2012년 135만7700명으로 꾸준히 줄어든다. 전체 경제활동인구 중 20대 초반이 차지하는 비율도 11.3%에서 5.3%로 감소해 같은 기간 15세 이상 전체 인구 중 20대 초반이 차지하는 비율이 1994년 11.2%에서 6.8%로 감소한 것보다 더 급격히 줄었다.1997년까지는 경제활동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더 높았지만 1998년 역전돼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과의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20대 후반(25~29세)은 다르다. 초반과 마찬가지로 경제활동인구는 줄어들었다. 1994년 287만 명에서 2012년 251만2400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인구가 줄어든 것에 비해서 크게 줄어든 것은 아니다. 전체 경제활동인구 중 20대 후반이 차지하는 비율은 1994년 14.1%에서 2012년 9.9%로 줄었고 전체 인구 중 20대 후반의 비율은 12.7%에서 8.2%로 줄어 거의 비슷한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경제활동인구 중 20대 후반이 차지하는 비율은 인구에서의 비율보다 높으며 증가와 감소 경향은 큰 격차 없이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다. 앞의 그래프에서 드러났듯 같은 기간 20대 후반의 경제활동참가율은 68.3%에서 73.6%로 오히려 늘어났다.

결국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않거나 참여할 의사도 없는 20대라는 한겨레21의 주장은 20대 후반에게는 적용할 수 없다. 20대 초반도 대학진학률과 인구 감소를 따져보면 부분적으로만 진실이다. 노동시장 진입 연령이 대학을 졸업하는 20대 후반으로 늦춰졌다는 게 보다 정확한 설명일 것이다. 노동시장 진입을 위한 기본적인 교육비용이 증가하고 부모가 자식을 책임지는 기간이 더 길어졌음을 이 자료로 추측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현재 20대가 취업에서 겪는 어려움과 함께 다른 자료를 통해 살펴봐야 할 것이다.



20대 초반이 경제활동 참가율은 낮지만 실업률은 20대 후반보다 높다. 경제위기 영향도 더 강하다. 1998년 때도 그랬지만 세계경제위기가 시작되던 무렵인 2007년에도 전체 실업률보다 더 큰 폭으로 떨어졌다. 20대 후반과 비교해도 그렇다. 그러나 경제활동인구와 실업자에서 2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들고 있다. 우선 경제활동인구에서 20대가 차지하는 비중의 경우 큰 변화없이 꾸준히 줄어드는 데 이는 20대 인구가 감소한 영향으로 보인다. 실업자 중 20대가 차지하는 비중도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1998~1999년 전체 실업자 중 20대 실업자 수가 크게 준 것은 1998년 경제위기 직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먼저 일자리에서 밀려났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20대에게 가장 큰 문제는 불안정한 일자리 비율이 높아진 것 아닌가 싶다. 2003년 이후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율의 변화를 보면 40대에선 크게 줄고, 전체 비율도 조금씩 줄어드는 데도 불구하고 20대는 거의 제자리 걸음이다. 2009년까지는 40~49세의 비정규직 비율이 20~29세의 비정규직 비율보다 높았지만 2010년에는 역전 돼 2013년에는 격차가 더 커졌다.

박근혜가 요새 관심을 갖고 있는 시간제 일자리도 마찬가지다. 15세 이상 임금근로자 전체에서 시간제 비율이 2009년부터 급격히 높아지고 있지만 특히 20대에서 그 정도가 심하다. 결국 올해에는 전체에서 10.3%인 비율도 추월해 11.1%를 기록했다. 반면 40대는 2009년 이후 시간제 일자리 비중이 조금씩이지만 줄고 있다.



비정규직 비율이 높아지는 것도 문제지만 임금 격차가 더 커지는 것도 심각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월평균임금 차이는 2004년 61만9000원에서 올해는 111만8000원까지 늘어났다. 시간제 일자리는 말할 것도 없다. 올해 시간제 일자리 월평균임금은 정규직보다 189만2000원 적다. 이는 정규직의 임금 인상률이 비정규직보다도 높다는 데서 기인한다. 비정규직의 경우 임금이 떨어진 해도 있었다. 정규직의 임금은 올해 8월의 경우 전년도 8월보다 3.5% 올랐다. 비정규직은 2.5%로 정규직보다 1.0%포인트 낮다. 세계경제위기가 확산되던 2009년에도 정규직은 3.5% 올랐으나 비정규직은 7.3% 줄었다.

20대 청년들에게 취업의 문은 좁게만 열려있다. 그 열려있는 문조차도 아주 험난한 길로 연결됐을 가능성이 더 커져가고 있다.

※자료는 국가통계포털 KOSIS.kr의 고용ㆍ노동ㆍ임금 통계와 교육통계서비스 cesi.kedi.re.kr의 교육통계연보에서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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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을 구해낼 때 오로지 용단만 필요한 건 아니다. 누군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임금을 올려줘야 하고, 4대 보험도 들어줘야 한다. 유급휴가, 휴양 시설 사용 같은 복지 혜택도 똑같이 제공해야 한다. (중략)
이제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생존 경쟁에 뛰어들면서 '회사의 이익이 바로 사원의 이익'으로 통하던 시대와는 결별했다. 어느 회사나 수시로 인건비 총액을 삭감한다. 회사와 종업원이 힘을 모아 회사를 키우고 사원 스스로도 커가면서 열매를 나눠 먹던 밀월 관계는 끝나가고, 회사와 사원이 한 지붕 아래 다른 방을 쓰는 사이가 됐다."
- 회사의 이익, 社員의 이익, '조선일보' 송희영 칼럼(링크)

조선일보 송희영은 정규직 전환, 확대는 비용이 든다고 말합니다. 그는 변화한 세계경제에서 더이상 회사의 이익과 사원의 이익은 일치하지 않는다고 옳게 지적합니다. 따라서 송희영은 정규직 전환 정책보다 비정규직에게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기업에게는 비정규직 채용의 권한을 늘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그에게 방점은 후자, 기업의 비정규직 채용 권한 확대에게 있을 것입니다.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보장은 그에 뒤따르는 명분용일 뿐이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일방적으로 자신의 계급에게만 유리한 정책을 밀어부치지 못하는 상황을 반영한 주장이긴 합니다.

송희영이 미쳐 고려하지 못하는 것은 비정규직 노동기본권의 보장이 비정규직 부문에서 갈등 분출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죠. 전태일이 사문화됐었던 근로기준법 이정표로 삼았던 것처럼, 2010년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25일간 파업
(2010년 11월 15일~12월 9일)이 대법원의 판결에 기초했던 것처럼, 법적 제도적 권리의 확대는 노동자 투쟁에 큰 자심감을 부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가 원하는 변화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에 대한 강력한 탄압이 기본 전제로 필요합니다. 대처 시절 영국과 레이건 시절 미국에서처럼 말이죠.

송희영과 한국의 지배계급에게는 안타깝게도 그러한 강력한 국가 탄압을 실행하기 위한 조건은 부족하기 그지 없습니다. 특히 여권이 분열해 있고, 대중적 지지를 잃고 있는 상황에서 강력한 국가 탄압은 정권 자체를 날려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대처와 레이건 만큼 사랑받지 못하고 있는게 문제인 것이죠.

다음 정권을 잡을 것이 확실해 보이는 민주통합당의 경우, 한국노총이 한 축을 이루는데서 보이 듯, 노동계급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위치를 지니고 있지 못합니다. 한국노총이 우파 노조이긴 해도 이들 노동조합 세력의 (부분적인) 지지 없이는 완전한 정권 탈환을 기대할 수 없는게 민주통합당의 현실이죠.

결국 송희영(한국 지배계급)의 바람이 이루어지기 위해선, 즉 개선된 착취 체제를 만들어내기 위해선 어느 정당이 집권을 하든 '정규직 중심'의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길들이기가 필수적일 겁니다. 이러한 길들이기가 (한국노총은 가능하다 할지라도) 가능할지는 의심스럽습니다. 설사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이는 공식 노동조합이 노동운동에서 지도적 역할을 잃게 할 가능성이 크죠. 사태가 이렇게 발전한다면 1930년대 미국에서 노동기본권이 확대되는 와중에 CIO(산업별노동조합회의)가 AFL(미국노동자협회)로부터 분리해 만들어졌던 것과 같이 제3노총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1935년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와그너법은 단결권ㆍ단체교섭권을 인정하고 최저임금제를 도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전국적 노동조합의 건설 없이 기업별 노동조합의 각개약진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고요.

너무 먼 미래까지 나간 듯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한나라당이든 민주통합당이든 한국 자본주의의 '개선'을 과제로 삼는 한, 공식 노동조합에 대한 유화책과 함께 급진적 노동운동에 대한 강력한 탄압을 유지ㆍ강화하려는 시도를 할 것이라는 거죠. 이 와중에 정규직/비정규직에 대한 분리지배 전략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겁니다.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보장과 함께 정규직에 대한 도덕적 공격을 기초로 일반적인 노동기본권 축소가 시도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조선일보의 지배계급 내 위상이 예전만 못한 상황에서 송희영과 조선일보의 구상이 얼마나 현실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파 언론인 중 가장 명민한 송희영의 주장은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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