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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9 14:19

책으로 세상 읽기 … 복지국가와 해적 2012.03.09 14:19

1 정치가 우선한다; 지금 복지국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또 다른 사회는 가능하다; 마우스랜드; 비그포르스, 복지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국 부동산시장이 맥을 못추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정책적으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시도했지만 부동산시장은 요지부동입니다.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 한국 사회는 높은 성장률을 기반으로 한 임금 상승 덕에 '복지'에 대한 대중적 요구가 미미했죠. 1997년 위기 이후에는 자산가격 상승을 기반으로 한 개인 재산의 상승이 복지 요구를 대체했습니다. 대출 받아 산 아파트, 주식의 가격 크게 오르니 이자 부담도 없고, 개인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재산을 모아 자신과 가족의 단란한 삶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됐죠. 이명박 시대는 이 모든 것이 이제는 불가능한 꿈임을 입증한 시기였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는 결정적이었죠. 증세가 있을지라도 복지가 필요하다는 대중적 요구가 확산된 건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지에 대한 관심이 미미한 상황에서 이 요구를 주도해온 중도좌파 진영에게 '복지'는 거의 언제나 실현된 '정책'과 그 '효과'의 문제였습니다. "복지정책을 하면 이렇게 좋습니다"라며 복지 정책이 '좋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게 우선이었죠. '북유럽 모델'이라는 명칭에서 단적으로 드러나죠. 하지만 복지가 현실적 요구로 등장한 상황에서 깔끔히 정리된 정책 패키지는 더이상 문제가 아니게 됐습니다. 이제는 복지 정책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지가 문제가 되는 것이죠. 아마 그래서겠죠. '복지'에 관한 책이 '정책'에 대한 관심에서 '정치인'과 '정당',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가는 것은요.

최근 나와 가장 큰 관심을 끈 것은 셰리 버먼의 '정치가 우선한다'입니다. 이 책은 스웨덴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긴 하지만 부제목에서처럼 복지국가 체제로서 '유럽 전체'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은 '정치인'과 '정당'의 주체적 노력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 책과 함께 읽음으로서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것은 아스비에른 발의 '지금 복지국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입니다. 노르웨이의 노동운동가인 저자는 복지국가를 가능하게 했던 전제, 즉 노동운동의 대중적 힘을 적절하게 강조합니다.

사회민주주의 정치인에 관한 책도 몇 권 나왔습니다. 캐나다의 정치인 토미 더글러스와 스웨덴의 정치인 에른스트 비그포르스가 그 주인공입니다. 우선 토키 더글러스는 캐나다에 전국민 의료보험 체계를 도입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정치인입니다. '또 다른 사회는 가능하다'는 토미 더글러스의 삶과 무상의료 도입 과정을 다룬 책입니다. 쥐와 고양이 우화를 통해 노동계급이 노동자 정당에게 투표해야 함을 강조했던 토미 더글러스의 유명한 연설은 한주리가 각색하고 그림을 그려 '마우스랜드'라는 그림 책으로 나왔습니다.

칼 폴라니의 사상을 전하는 데 앞장서온 홍기빈은 스웨덴 정치인 비그포르스 사상의 핵심을 '잠정적 유토피아'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책인 '비그포르스,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를 내놨습니다. 프레시안에 함께 읽으면 좋은 리뷰(링크)대담(링크)이 실리기도 했죠.


2 노암 촘스키의 해적과 제왕

통합진보당 김지윤의 '해적' 발언이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현직 대통령을 '쥐새끼'라고 부르고 경찰을 '짭새'라고 부른다는 차원에서 '해적'이라는 발언이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차이는 있습니다. 군대는 대한민국 남성들에게 피할 수 없는 의무라는 것이죠. '해적'이라는 발언은 원치 않게 군대에 가야만 했던 이들의 자존감을 해치는 발언이죠. 비슷한 사례로 베트남 참전 한국군을 '용병'이라고 부른 것이 있습니다. 한국군이 실제로 '용병'과 비슷한 역할을 했음에도, 그 전쟁에 어쩔수 없이 참여해야만 했던 사병들도 '희생자'였음을 잊히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사려 깊은 단어 선택은 아니죠(물론 참전 군인이 정부와 군대를 비판하기 위해 자신의 과거를 스스로 그와 같은 단어로 규정하는 경우는 마땅히 지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 이 '해적' 발언이 이해할 수 있는 발언이긴 하나 한국적 상황에서 좀더 주의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 단어를 꼭 사용해야 겠다고 생각했다면, 계획적으로 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즉 한국과 미국, 미군의 세계전략에서의 한국군의 역할이라는 차원까지 논쟁을 확대시키기 위해 계획되고 준비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가 봐야 할 책이 있습니다. 제목부터 '해적'이 들어간 노암 촘스키의 '해적과 제왕'입니다. 이 책은 1980년대 중반 쓴 다섯 편의 글과, 2001년 9ㆍ11 테러 이후 쓴 두 편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출판사 서평에 의하면 촘스키는 이 책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부터 9ㆍ11 테러 이후까지 유럽ㆍ동남아시아ㆍ중동ㆍ남미ㆍ북미ㆍ아프리카 등 세계 전역에서 저질러진 '제왕'과 '해적'의 만행들을 자세히 분석"합니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 2004년 번역 출간됐습니다. 당시는 우파의 엄살이 심하긴 했지만 한국 정부가 기존의 군사전략에서 핵심인 한미일 삼각동맹에서 벗어나 보다 독립적인 군사세력으로 한국군의 위상 변화를 추진하던 시기입니다. '대양해군'과 '전략공군'이 그러한 차원에서 제기된 전략이죠. 아무래도 이는 미국과의 갈등을 동반할 가능성이 높았죠. 한국의 우파가 강조했던 점이 이것이고요. 물론 사태가 간단치는 않습니다. 한국정부는 이후 군사적 독립과 달리 경제 분야에서는 협력을 더욱 강화하려고 노력하니까요. 한미FTA가 바로 그러한 사례입니다. 어쨌든 '대양해군' 전략 하에서 추진된 것이 이지스함의 도입 확대와 제주 해군기지 건설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이명박 정부 들어 바뀝니다. 한국 우파에게 미국과 일본은 멀리할 수 없는 군사적 동맹입니다. 애시당초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북한과의 대결 뿐입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연근해 해군으로 방향을 튼 것은 그 결과죠. 그들에게 일본은 적대시할 수 없는 존재이고, 중국과 러시아는 군사적으로 한국이 대응할 수준의 나라가 아닌 겁니다. 오직 한미일 삼각동맹 체제의 유지 만이 동북아에서 한국의 생존을 보증할 수 있다는 게 우파의 생각이죠. 제주 해군기지에 대한 좌파의 비판에서 미군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촘스키의 '제왕과 해적'은 좌파의 이러한 비판을 살펴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촘스키는 주로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에서 1980년대 중반 대두하던 테러리즘의 원인과 현상을 분석합니다. 현재 한국의 좌파들은 동북아에서 이스라엘 역할이 바로 한국이 아닌가 의심하는 것이죠. 실제로 이 책의 출판사 서평에서는 "최근 미 공화당 정권의 요구로 볼 때, 그들은 한반도를 중국을 직접 겨냥한 전초기지로 삼고, 이스라엘처럼 세계 전역에서 용병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국가로 한국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는 점을 간파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중국을 둘러싼 동북아 상황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모순적 태도는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합니다. 중국은 미국의 최대 채권국입니다. 미국은 중국의 최대 수출국이죠. 이러한 상황에서 군사적 대결은 미국 경제에도 치명타를 가하게 됩니다. 그러함에도 미국은 때로 세계적 군사전략 하에서 중국을 견제합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은 한국의 가장 큰 교역 대상이기도 합니다. 분명히 중국을 둘러싼 동북아 정세가 매끄럽게 풀리진 않겠지만 전면적 군사 대결로 이어질 가능성도 현재로서는 그리 크진 않습니다. 이 책을 '반미'를 위한 증언집으로서가 아니라 냉정한 국제정세 분석을 위한 여러 자료 중 하나로 사용할 수 있다면, 미국의 세계전략에 대한 보다 차분하고 효과적인 대응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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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4 14:54

박원순이 갔으면 하는 두 가지 길 쟁점2011.10.04 14:54

1. 10월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위한 야권 후보 경선에서 박원순 후보가 승리했습니다. 민주노동당의 최규엽 후보도 있었지만 거의 존재감이 없었고 사실상 민주당 박영선 후보와의 1대 1 대결에서 박원순 후보가 완승을 거뒀습니다. TV토론 배심원 조사, 여론조사 모두에서 앞섰고 시민참여경선에서도 민주당 조직력을 활용한 박영선 후보에 5%밖에 뒤지지 않아 52.2%로 여유있게 승리했습니다.

2. 경향신문은 4일자 1면에서 '시민정치가 정당정치 이겼다'라는 제목으로 박원순의 승리 소식을 전했습니다. 박원순 후보가 여전히 민주당으로의 입당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고, 당선 이후에도 민주당 등 야권과의 협력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이 제목은 섣부른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경선 결과는 이전 선거에서의 '바람'들과 달리 꽤 큰 변화의 시작점이 될 듯 합니다.

3. 1987년 민주화 이후 우리는 거듭된 '바람'을 보아왔습니다. 하지만 대개 이 '바람'이 기존 정당체계를 벗어났을 때 언론의 호들갑과 달리 찻잔 속 태풍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바람'조차도 민주당 내에서 일어났기에 성공했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대체적으로 민주당 내 친노세력이 성공했던 것과 달리 당 외의 친노세력이 실패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사실이죠.

4. 그렇기에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 정치세력에 대한 조선일보류의 '포퓰리즘' 비판은 올바른 지적이 아닙니다. 그들은 포퓰리즘을 단순하게 '대중영합주의'정도로 이해하는데, 이렇게 포퓰리즘을 정의하면 포퓰리즘이 아닌 민주주의 정치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민주주의 정치체제 하에서 포퓰리즘이란 정치가(혹은 정치집단)가 정당체계를 벗어나 대중의 지지를 직접적인 권력기반으로 삼는 것을 말합니다.

5. 대중의 광범위한 직접적인 지지와 참여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거대한 규모더라도 대중운동은 필연적으로 소강기를 맞게 됩니다. 이것은 정치인 혹은 운동가들이 어쩔 수 있는게 아닙니다. 따라서 대규모 대중 동원이 불가능하게 됐을 때 포퓰리즘 정치는 자신 스스로 대중을 대신하게 되거나(독재), 기득권 세력의 숨어있는 힘에 의해 물리적으로 전복(쿠데타)되곤 합니다.

6. 정당정치는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발전해왔습니다. 민주화 과정의 대규모 동원이 가라앉은 후 민주주의를 진척시키기 위한 발판이 정당인 것이죠. 볼셰비키적으로 표현하자면 정당은 '계급의 기억'인 것입니다. '뛰어난' 정치 지도자가 어느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길 바라는 건 민주주의적 태도가 아니죠. 정치 지도자는 정당 내에서 갈등과 분쟁의 조정, 해결과정을 통해 훈련받고 키워지죠. 그 과정에서 대중에게 '검증'받습니다.

7. 정당정치는 끊임없이 위협받아왔죠. 특히 한국에서는 우파들에 의해 체계적으로 정당과 기존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조장되어 왔기에 그 기반은 매우 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박정희와 전두환이 쿠데타 후 제일 먼저 했던 것 중 하나가 기존 정당 정치인들을 대중적 비난을 이용해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된 '새로운 피'의 수혈은 한편에선 이런 대중의 편견을 강화시켜왔습니다.

8. 그럼에도 우리나라 정치는 대체적으로 '정당정치'의 틀 내에서 움직여 왔습니다. 수혈은 기존 정당에게 이루어졌죠. 3김 정치라고 비난받았지만 DJ와 YS는 탄탄하게 정당을 꾸려왔습니다. 제왕적인 총재라는 비판이 있었을지언정 말입니다. 정당정치를 파괴했던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한나라당이라는 정당을 정당답게 만든 주역이었다는 것 또한 아이러니한 일이기도 합니다.

9. 앞에서 말했듯이 이번 박원순의 승리를 일각에서는 정당정치에 대비되는 시민정치의 승리라고 지칭합니다. 한나라당은 국민 절반 이상의 불신에도 불구하고 탄탄하다는 점에서 정확히 말하자면 '정당정치'가 아니라 민주당이라는 정통 야당의 위기일 겁니다. 본선을 치뤄봐야 알겠지만 기존 정당 밖에서 이정도 성과를 이뤄내고 있다는 게 박원순 '바람'이 기존의 바람들과 다르게 보이는 지점입니다.

10. 제가 포퓰리즘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 때문입니다. 박원순이 정당 밖에서 서울시장 선거를 승리하고, 이후 서울시장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기존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은 강화될 것입니다. 이러한 포퓰리즘적 정치 시도들이 강화될 때 대중적 물결과 합류할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러한 행운을 언제나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그랬을 때 우파의 반격이 두렵기도 하고요.

11. 몇해 전부터 희망제작소에 후원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정치적 지향이 저와는 다르지만 꽤나 훌륭한 분이라는 데 절절히 공감하고 있고요. 야권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박원순의 승리에 대한 네티즌의 환호에 일정 공감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기존 정당, 특히 민주당에 대한 맹목적인 비난과 비토로 이어지는 것이 그리 반갑지는 않습니다.

12. 저는 두 가지 정도의 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정치적으로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정당에 입당하는 것(꼭 선거 전이 아니더라도 괜찮습니다. 선거 후에라도)이나 그 스스로 정치적 지향을 선언하고 그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정당을 조직하거나. 경선 승리 직후 경향신문 인터뷰를 보자면 그가 정당과 지나치게 벽을 세우고 있거나 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길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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