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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동자 투쟁에서 용기를 얻은 청년들이 교학사 역사왜곡 교과서 채택에 반대해 행동에 나서고 있다. 박근혜정부와 단호하게 싸우는 법을 철도노동자로부터 배운 학생들은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에 이어 자신이 있는 곳에서 부당함에 맞서 투쟁을 조직하고 작은 승리를 쟁취하고 있다. 2013년 12월 19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철도파업 지지 촛불시위에 참여한 젊은 여성. [사진 自由魂]

지난해 12월 9일 시작한 철도노동조합의 파업이 30일 막을 내렸다. 22일 간의 대담하고 단호한 투쟁은 박근혜정부에 실망해온 대중에게 큰 자신감을 전해줬다. 꺼져가던 부정선거 규탄 촛불시위가 다시 불타올랐다. '안녕들하십니까'라고 묻는 대학생들의 자보는 안녕한 삶을 위한 연대를 건설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물음은 중ㆍ고등학생들에게까지 확산됐다. 특히 교학사의 역사왜곡 교과서 채택을 둘러싼 투쟁을 다시 불붙였다. 동우여고와 청문여고 학생들에서 시작된 저항은 하루만에 학교 측의 후퇴로 끝났다. 노동자 투쟁이 일으킨 파문이 일반 민주주의적 쟁점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철도노동자들이 박근혜정부에 맞서 싸우는 법을 대중에게 보여줬고, 대중은 자신의 위치에서 수 많은 작은 박근혜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미국에선 우리와 정반대로 사회운동이 노동운동을 자극해 성장시키고 있다. 2011년 9월 뉴욕에서 '점령하라' 운동은 학생, 예술가, 전문직 종사자, 실업자들이 중심이 돼 시작됐다. 참여한 인원이 절대적으로 다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는 곧 노동자 투쟁에 대한 연대로 발전했고, 노동자들이 스스로 투쟁에 나서는 것으로까지 이어졌다. 2011년 11월 2일 오클랜드 시민들은 총파업을 벌여 항구를 봉쇄했다. 그 다음달 12일에는 롱뷰 부두노동자들에 연대한 항만 봉쇄가 시도되기도 했다. 2012년 9월 10일 시카고에서는 교사들이 25년 만에 파업에 들어갔다. 교육 민영화에 반대하는 파업이었다(이 파업은 결국 패배했다). 2012년부터는 월마트와 맥도날드 등에서 일하는 저임금 노동자 투쟁도 확산되고 있다. 2012년 10월 미국 전체 12개 주 28개 월마트 매장에서 파업이 벌어졌다. 이는 월마트 50년 역사상 첫 파업이다. 맥도날드 등 패스트푸드점에서 저임금으로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들도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2012년 11월, 2013년 8월, 12월…. 패스트푸드노동자의 파업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100개 도시에서 동시에 파업이 벌어졌다.

한국에서는 노동운동이 사회운동에, 미국에서는 사회운동이 노동운동에 힘을 불어넣어주며 함께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전통적인 조직 노동자 운동은 민주주의의 위축에도 사회의 다른 부문보다 단호하게 투쟁을 조직하며 자신감을 전해준다. 이들의 투쟁은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이와 함께 청년들이 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특히 정규직 일자리가 줄어들고 취업연령이 높아지면서 편의점, 카페, 패스트푸드점, 프랜차이즈 레스토랑 등에서 일하는 저임금 '아르바이트'가 청년의 '노동'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저임금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연령이 높아지면서 이는 더 이상 청년 문제 만은 아니게 됐다. 지난해 마지막 날 박근혜 퇴진과 특검 실시를 요구하며 분신한 이남종(40)씨도 저임금 노동에 종사했었다고 한다(이를 두고 '생계 비관' 운운하며 고인의 뜻을 모욕한 보수 언론의 기사들은 역겹기 그지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저임금 노동 분야에서 투쟁을 조직하기는 쉽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소수의 사람들로 여러 곳에 흩어져 근무하고 있고, 저임금이라는 조건 자체가 단호하고 단결된 투쟁을 어렵게 만든다. 월마트 노동자들의 50년 만의 파업과 지난해 10월 한국에서 최초로 알바노조가 단체협약을 체결했던 것이 관심을 받은 이유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에 있는 노동자 투쟁이 역사상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37년 대공황의 한가운데서 벌어진 디트로이트 울워스 노동자 투쟁이 대표적이다. 모두가 여성인 이 소매점 노동자들은 법원의 해산 명령에도 불구하고 일주일 동안 매장에서 강력한 점거파업을 이어갔다. 연대와 점거파업의 확산으로 당대의 월마트라 할 울워스는 결국 항복해야만 했다.

한국에선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점거파업이 파업의 일반적 형태였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 정부의 강력한 탄압에 대한 우려로 철도노조는 지난해 12월 파업에서 점거를 시도하지 않았다. 철도뿐 아니라 다른 사업장에서도 정부의 탄압 때문에 점거파업은 쉽지 않다. 1930년대 이전까지 파업은 보통 작업장에서 물러나 공장과 사무실 앞에서 파업 파괴자(대체인력) 투입을 막기 위한 피케팅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1936년 12월에서 1937년 2월까지 진행된 GM 노동자들의 플린트 공장점거파업의 승리가 점거파업을 노동자 투쟁의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로 부각시켰다. 모든 조건에서 점거파업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파업전술은 유연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80여년 전 젊은 여성 노동자들의 단호한 투쟁은 우리에게 어떤 가능성과 영감을 전해줄 것이다. 마크 노튼이 2012년 나온 '파업 여성들, 매장을 점거하고 결국 승리하다(Women Strikers Occupy Chain Stores, Win Big: The 1937 Woolworth's Sit-Down)'를 소개한 글을 아래 옮긴다. 이 소책자는 역사학자 다나 프랭크가 썼다. 마크 노튼은 '유나이트히어!'와 '세계산업노동자연맹'의 조합원이다.

※ 의역이 많습니다.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글 아래의 각주는 이해를 위해 옮긴이가 단 것입니다.


1937년 디트로이트 슈퍼마켓 연좌농성:
오늘날 저임금 파업 노동자를 위한 교훈, 마크 노튼*, 2013년 12월 11일

1937년 울워스는 오늘날의 월마트와 같은 것이었다._1 이회사는 주로 젊은 여성인 저임금 노동자에 의해 운영되는 전국적 점포망을 만들어 소매 시장을 변화시켰다. 값싼 음식을 판매하던 이 매장의 간이조리매장은 어떤 면에서 오늘날 거대 패스트푸드 기업의 선구자였다.

그렇기에 우리는 디트로이트 울워스 점거파업의 성공으로부터 오늘날 비슷한 상황의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될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블랙프라이데이와 12월 5일의 월마트와 패스트푸드 노동자 파업 여파로 이 운동이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물어야할 때가 됐다. 목표는 무엇인가? 장기간의 투쟁에 노동자들이 계속 조직될 수 있을까? 우리는 승리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디트로이트 연좌농성은 당시 전국적인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역사학 교수 다나 프랭크는 최근 발행한 소책자에서 이 역사와 그것의 교훈을 부활시키고자 한다.

범상찮은 토요일

"1937년 2월 27일 언뜻 보기에 가장 평범했던 토요일, 미국에서 가장 평범해 보이는 디트로이트 시내에 있는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4층 건물에 있는 울워스의 5~10센트 상점
_2에서…"라는 말로 프랭크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다른 울워스 매장이 그렇듯 이 매장도 붉은색과 초록색의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고 굵고 큰 글씨의 체인점
[울워스] 간판이 앞에 걸려 있었다." 기업의 브랜드를 그와 같은 방식으로 표시하는 것은 당시에는 새로운 일이었다. 오늘날은 매우 흔한 일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가장 평범한 토요일'은 아니었다. 바로 며칠 전 디트로이트 북부 플린트에서 GM 자동차 노동자들이 법원의
[공장을] 떠나라는 명령을 무시한 채 경찰의 공격에 맞서 싸우며 몇 주간 공장을 점거한 후 역사적 승리를 쟁취했다.

실제로 정부가 파업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주방위군을 보낼 정도로 노동자들은 많은 공감과 지지를 얻었다. 결국 GM은 굴복하고 이제 막 태어난 전미자동차노동조합(UAW)을 인정해야만 했다. 자동차 노동자들은 UAW로 몰려들어 그들
[아마 UAW]과 새로운 산업별노동조합회의(CIO)가 더 큰 승리로 나가는 데 도움을 줬다._3

울워스에는 "저가의 작은 상품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이를테면 머리빗, 뜨개질 바늘, 전등갓, 옷핀, 파이 접시, 얼굴 크림, 빳빳한 새 신발끈 같은 것들 말이다. … 가게 이름처럼 단지 5센트 혹은 10센트일 뿐이라고 … 단정하게
[가격이] 인쇄된 표시가 고객을 안심시키기 위해 가게 전체의 모든 상품에 달려 있었다. … 백인 고객들은 간이조리매장에서 얼마든지 바나나 스플릿을 즐길 수 있었다."

매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당연히 그들이 근무하는 곳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를 잘 알았다. 회사 설립자인 프랭크 울워스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우리에게 저렴한 종사자가 없었다면 값싸게 상품을 팔 수 없었을 것이다." 빙 크로스비의 히트곡 중 하나는 이에 대한 멋진 반박이 될 것이다. "나는 5~10센트 상점에서 100만달러짜리 물건을 발견했지~"

파업, 소녀, 파업!

토요일 아침 빈약한 급료를 받던 디트로이트 울워스의 젊은 여성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마음속에 플린트의 승리
[GM 노동자의 공장 점거파업 승리]를 떠올렸다. 그 때 "디트로이트 식당 종업원ㆍ여급 노동조합 조직자인 플로이드 뢰브는 매장 1층의 한가운데로 성큼성큼 걸어가 … 호루라기를 가능한 크게 빽하고 불었다. 그리고 외쳤다. '파업! 파업!'(또 다른 보도에 따르면 '파업, 소녀, 파업!')"

"매장의 여러 곳에서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함성이 터져나왔다. 간이조리매장의 하얀 유니폼을 입은 여성들이 처음으로 작업을 멈췄다. 그들은 매장의 통로를 통해 빠르게 이동했다. 곧 매장 3개 층의 모든 여성노동자들이 각자의 계산대에서 물러나거나 부엌에서 뛰쳐 나왔다. 그들은
[계산대와 조리대에서] 손을 떼고 작업을 멈췄다."

디트로이트뉴스에 따르면 "금전등록기의 쨍그렁거리는 소리가 그쳤다. 손님들은 5센트 또는 10센트 동전을 손에 쥐고 있어봤자 소용 없음을 깨닫고 당황했다. … (그러나) 어떤 소녀도 손님을 기다리려주지 않았다."

몇 분이 지나자 매장 관리자가 나타났다. 창고관리 소년까지 포함해 모든 여성들은 회의실로 안내받았다.

파업 참가가자들은 관리자에게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노동조합 인정, 현 25센트인 시급을 10센트 더 올려줄 것, 일일 8시간 노동, 일주일 48시간 근무 외에는 1.5배 지급, 간이조리매장 노동자에게 점심식사 식대 50센트, 자유로운 유니폼과 세탁, 선임권
_4, 노동조합을 통한 신규 고용, [파업에 대한] 보복의 금지.

관리자는
[노동자들에] 에워싸여 우물댔다. 하지만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았다. 그래서 파업 참가자들은 그들의 요구가 들어질 때까지 매장 점거를 계속하기로 했다.

프랭크는 "108명의 평범한 젊은 여성이 위대하고 놀라운 일을 해냈다. 그들은 정확히 대공황의 한가운데서 파업을 한 것 뿐 아니라 미국에서 가장 큰 초국적 기업 중 하나의 사유재산을 점거했고 떠나라는
[법원의] 명령을 승리할 때까지 거부했다"고 쓰고 있다.

"이것은 고전적인 점거파업이다. 그러나 파업 참가자 모두가 공장의 남성이 아니라 다양한 매장에서 일하는 여성이었던 것은 처음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여성들과 파업에 전국적 관심이 집중됐다. 그들은 세기적인 소비의 상징이고, 다섯 개 나라에 2000개의 매장을 지닌 가장 큰 기업 중 하나와 대결한 것이다. 이는 월마트, GAP, 맥도날드 모두에서 동시에 파업에 들어간 것과 같다."

계속된 조직

프랭크는 당시 여성들이 매장의 주방을 이용해 음식을 준비하고, 매트리스를 가져오고, 청소용품을 이용해 매장을 깔끔하게 유지하고, 가끔은 그들 스스로를 위해 사탕과 진통제를 사용하는 등 꽤 열심히 모두가 참여해 그들 스스로를 조직한 방법에 대해 말해준다. 매장의 전화 세 대는 친구와 지지자, 언론과 통화를 위해 사용됐다. 그들은 심지어 '응원위원회'를 만들기도 했다.
[이 위원회는] '처음엔 [점거파업에 대한] 비난을 감시하기 위한 것이었고, 곧 모든 비난이 사라졌다'.

파업이 시작되고 이틀이 지난 월요일, 호텔ㆍ식당 노동조합 705 지역 조직자인 미라 코마로프는 몇몇 노동자들과 함께 두 번째로 디트로이트 시내에서 위축된 울워스
[사측]를 만났다.

오래지 않아 두 번째 매장 점거됐다.

그날 밤, 705 지역의 사무국장이자 회계 담당자인 루이스 쾨니그는 울워스를 위협했다. 그는 만약 파업이 다음 토요일까지 해결되지 않는다면 전국의 모든 울워스 매장에서 진행될 "연좌농성 선언을 우리 조합 집행위원회에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쾨니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꽤나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시내의 약간 큰 호텔과 상류층 클럽에서 일하는 600명의 노동자가 가입한 노동조합을 이끄는 '전형적인 보수적 비즈니스 노동조합주의자'
_58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시대는 과격한 연설을 끌어냈고 그는 기꺼이 그렇게 했다.

곳곳에서 답지한 연대

파업이 확산되면서 연대 활동도 맹렬히 속도를 올렸다. 아주 많은 수의 지역 호텔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정기적인 피케팅이 매장
[앞]에서 조직됐다. 전국의 노동자 지도자들 사이에 지지의 표현이 확산됐다.

파업 여성 노동자들에 환호하는 전보가 전국에서 쇄도했다. 음식과 물품, 여성용품을 마련하는 데 쓸 모금도 이어졌다. 신문은 이 소식을 주요 뉴스로 전했고 극장에서는 뉴스영화가 상영됐다. 사람들은 파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화요일 뉴욕의 국제소매점원보호조합
_6은 기금 지원을 약속하며 노동조합은 "파업이 끝날 때까지 뉴욕의 울워스 매장에 대한 불매운동"을 쾨니그가 [협상의 마지노선으로] 선언했던 토요일 시위에서 시작할 것이라는 전보를 보내왔다.

디트로이트에서 다른 서비스 노동자들도 행동에 들어갔다. 스토우퍼스
_7의 여성종업원과 주방 노동자 60명은 화요일 점심식사가 한창인 때 그들이 일하던 식당을 점거했다. 하일러_8 식당 노동자들은 피셔 빌딩에서 연좌농성에 들어갔고 출입구에는 바리케이트를 설치했다. 아쉽게도 프랭크는 이 행동들의 결과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 지역 상점주들은 더 많은 연좌농성을 막기 위해 스스로 임금을 올려주던 것을 중단했다.

수요일 울워스는 마침내 협상에 동의했다.
[파업] 노동자들은 쾨니그와 요리사노조의 루이스 월터, 소매점원조합의 루이스 솔터를 대표로 내세웠다. 이들은 모두 남성이었다. 파업 노동자 중 누구도 뽑히지 않았다. 울워스는 뉴욕의 어떤 거물을 보내왔다.

금요일 오후 5시30분, 파업을 확대하고 뉴욕에서 불매운동을 벌이겠다고 경고한 시한인 토요일을 간신히 넘기지 않은 파업 6일째 울워스와 노동조합은 합의를 발표했다.

승리

"파업은 의심할 여지없이 완전하고 명백하게 승리했다"고 프랭크는 쓰고 있다. "그들은
[유니폼의] 세탁을 포함한 요구사항의 긴 목록 전체를 쟁취했다. 우선 회사는 모든 여성 노동자의 시간당 급료를 5센트 인상하는 것에 동의했다. … 모두는 주당 48시간 외 근무에 대한 1.5배 지급을 얻어냈다. 신규고용은 앞으로 노동조합을 통해서만 하기로 했다. 유니폼은 회사가 공짜로 제공하고 세탁까지 해주기로 했다. …"

"그 중 가장 놀라운 것은 그들이 매장을 점거한 동안 평상시 시급의 50%를 지급받기로 한 것이다(아마 하루 24시간에 대한 지급은 아니겠지만). … 게다가 합의안은 단지 점거파업이 이뤄진 두 개 점포만이 아니라 도시의 40개 매장 모두에 적용됐다."

울워스는 조합원이 비조합원을 괴롭히지 않겠다는 약속만 얻어냈을 뿐이다.

합의안에 대한 뉴스가 전해지면서 두 매장의 파업 노동자들이 주요 매장 안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기뻐하고 환호했다. 그들이 밖으로 나왔을 때 1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인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들은 쾨니그가 합의안을 낭독하는 지역 호텔로 행진했다. 그는
[합의안에 대한] 투표 요청에 개의치 않았다. 다른 누구도 [투표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프랭크는 이어서 "울워스는 토요일에 특별 세일을 발표했다"고 적고 있다.

울워스의 파업은 이를 따라한 행동들로 이어졌다. 디트로이트, 세인트루이스, 뉴욕, 샌프란시스코, 오하이오주 애크론, 위스콘신주 슈피리어, 미네소타주 세인트폴과 덜루스, 워싱턴주 터코마와 센트레일리아의 소매점에서 점거파업이 일어났다. 프랭크는 "오늘날 전국에 있는 모든 노동조합의 존재는 부분적으로 울워스의 파업 덕"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이렇게 요약한다. "어느날 디트로이트에서 점거파업에 들어가기로 결정한 이 108명의 매우 젊은 여성들은 모두 평범한 젊은 여성이었다. 그 투쟁이 빛났던 것은 신화적 영웅이 아니라 주요 프랜차이즈 매장을 7일 간 하루 24시간 점거해보기는 커녕 파업의 경험도 없는 젊은 여성들이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당대 가장 큰 기업 권력 중 하나와 맞서 이겼고, 다른 수십 만 명의 점원들-과 이 파업을 알게 된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권리를 지키고 최저임금을 요구하기 위해 일어서는 데 (또는 연좌농성에 들어가는 데) 영감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그들은 오만한 울워스 사측에 큰 교훈을 줬다.

교훈?

프랭크는 다른 무엇보다도 "그들이 대담해졌고 스스로를 신뢰"했기 때문에 울워스 노동자들이 승리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기에 대담함과 밀접하게 관계있는 용기를 추가할 것이다.

그녀는 또 "그들은 거대한 집합적 힘을 배후로 뒀기 때문에 승리했다"며 "예를 들면 (플린트의) GM 노동자들, 여론의 힘, 시장과 정부로부터의 중립, 지지자 수천 명의 극적인 연대"를 꼽았다.

몇몇은 이와 같은 조건이 오늘날 노동운동에도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많은 이들은 저임금에 시달리는 월마트와 패스트푸드점 노동자들이 플린트
[의 GM] 노동자들과 같은 사례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아직은 아니다.

그들에게 유리했던 조건에서조차 울워스의 승리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프랭크는 에필로그에서 디트로이트 울워스 노동자들은 1937년 10월 재계약을 하면서 노조협약을 잃었다고 적고 있다. 그들이 승리한 지 불과 몇 개월 안됐을 때였다.

프랭크는 "매장에 남은 몇몇 여성에 따르면 경영진은 계획적으로 그들을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해 싸우지 않을 반노조적 노동자와 교체했다." 여기에는 노동조합을 통한 채용 요구가 포함된 합의안을 강제하는 데 노동조합이 왜 실패했는지를 포함해 명백한 이유가 있다. 노동조합이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몰두해야만 했던 울워스 사장의 반노조 활동, 일시적 성격의 저임금 노동이 그들에게 어떻게 타격을 입혔는지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후로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는 식의 동화와 같은 이야기는 잠시 뿐이었다. 오늘날 디트로이트에서 승리가 결코 끝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노동계급 사람들에게 악몽으로 보일 뿐이다. 적어도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동안은 말이다.

얄궂게도 울워스 간이조리매장은 1960년대 흑인 주민과 그들의 동조자들이 그곳에서
[흑인이 백인과의 차별 없이] 식사할 권리를 위해 벌인 연좌농성 등 또다른 성공한 투쟁 현장이 됐다. 투쟁은 승리했고 이렇게 [1937년 연좌농성에서] 전달받은 지혜는 이어졌다. 그러나 오늘날 디트로이트를 다시 살펴보면 흑인의 80%는 민권운동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흑인이 대통령으로 백악관에 입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평가보다 많이 모자란 [처지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

노동자와 착취받는 인민이 곳곳에서 저항하고 있다. 노동조합ㆍ활동가ㆍ정치조직이 있든 없든 저항은 일어난다. 반란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반란을 승리로 만들고, 승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망과 용기를 지닌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페이스북에 글쓰는 것, 트위터에서
[소식을] 전하는 것, 언론 보도와 여러 매체에서의 선전 이상의 것을 뜻한다.

울워스 파업 참가자들은 어렵지만 잘 싸웠다. 그들은 승리했었다. 그들의 대담함과 용기는 우리 모두에게, 특히 저임금 노동자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승리를 지키기는 데 실패한 교훈으로부터 배울 필요도 있다.

* 마크 노튼은 유나이트히어!_9 2 지역, 1972년 출범한 샌프란시스코 호텔ㆍ식당 노동조합의 평조합원이다. 그는 세계산업노동자연맹(IWW)에 가입해있기도 하다. 그의 홈페이지는 www.MarcNorton.us다.

1_ 1879년 뉴욕주 유티카와 펜실베니아주 랭커스터에 세워진 염가 판매점. 1911년 경쟁업체 네 곳과 통합해 전국적인 점포망을 갖췄다. 1912년에 미국 전역에 596개의 매장이 울워스 이름으로 영업했다. 1998년 베나토르그룹으로 이름을 바꿨다.

2_ 한국의 1000원숍과 비슷한 저가 매장.

3_ 미국노동자협회(AFL)는 백인 숙련노동자 중심의 노동조합이었다. 1929년 대공황과 35년 만들어진 와그너법(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인정하고 최저임금제를 도입한)으로 AFL 내 일부에서 미숙련ㆍ반숙련 노동자까지 포함한 산업별 노조가 건설되기 시작한다. AFL이 이들 혁신파를 모두 제명하면서 1938년 탄광ㆍ의류ㆍ섬유ㆍ금속가공 등 8개 산업별 조직을 기반으로 산업별노동조합회의(CIO)가 결성된다. CIO는 한동안 진보적 노동운동을 대표했으나 메카시즘 열풍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1950년대 사회주의 계열 조직과 좌파 지도부가 축출됐고 결국 1955년 AFL과 다시 통합해 AFL-CIO를 만들어 오늘에 이른다. UAW는 1935년 설립됐다. 1968년 AFL-CIO를 탈퇴했다. 지금은 자동차뿐 아니라 헬스케어ㆍ카지노ㆍ항공우주산업 등에 종사하는 노동자들까지 포함하고 있다. 정식 명칭은 미국자동차항공우주농업기계노동조합(United Automobile, Aerospace and Agricultural Workers of America).

4_ 고용주가 해고할 때 근속년수가 오래된 사람의 권리를 존중해주는 고용관행. 해고는 근속년수가 짧은 노동자부터 순서대로 이뤄지고 복직할 때도 근속년수가 많은 사람부터 고용하는 것. 1930년대 발전했다.

5_ 비즈니스 노동조합주의는 노사협조와 특정 정치에 경도되지 않는 초당파주의, 사실은 사회주의 정치와의 거리를 핵심으로 한 미국의 보수적 노동조합 운동을 말한다.

6_ 1890년 AFL에 노동조합으로 인정받았다. 처음에는 전국소매점원보호조합(The Retail clerks' National Protective AssociationㆍRCNPA)으로 출발, 1899년 영국ㆍ콜럼비아ㆍ캐나다 지부가 승인되면서 국제소매점원보호조합(The Retail Clerks' International Protective AssociationㆍRCIPA)로 발전했다. 보통 국제소매점원노동조합(The Retail Clerks' International UnionㆍRCIU)으로 불린다. 1974년 의료 서비스 부문의 발달로 전문직종 본부가 생겼으며 1977년에는 부츠ㆍ신발노동조합이 병합돼 신발제조본부(The Footwear Division)가 설립됐다.

7_ 1914년 창립한 미국의 냉동식품 회사. 1973년 네슬레에 합병됐다.

8_ 미국의 사탕ㆍ식당 프랜차이즈 기업. 1883년 뉴욕 맨하탄의 사탕 공장으로 출발했다.

9_ UNITE HERE!. 미국과 캐나다에 26만5000명의 조합원을 둔 노동조합. 호텔ㆍ음식점ㆍ창고ㆍ카지노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다. 2004년 유나이트(formerly the Union of Needletrades, Industrial, and Textile EmployeesㆍUNITEㆍ섬유ㆍ의류산업노동조합)와 히어(Hotel Employees and Restaurant Employees International UnionㆍHEREㆍ호텔ㆍ식당국제노동조합)가 합쳐 만들어졌다. 2005년 AFL-CIO를 탈퇴하고 승리를위한변화동맹(The Change to Win FederationㆍCtWㆍ2005년 AFL-CIO의 대안으로 건설됐다)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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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8일 10만 명의 조직ㆍ미조직 노동자, 시민, 학생이 서울광장에 모였다. "박근혜 정권 퇴진" 구호는 매우 자연스러웠다. 거친 겨울바람에 휘날리던 노동조합 깃발들은 미조직 노동자, 시민,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시위를 마친 대열은 삼성본관 앞과 동화면세점 앞 두 곳에서 거리 시위를 이어갔다. [사진 自由魂]

파업 복귀 절차, 경찰 수사와 징계 등이 남아있지만 철도파업이 오늘, 30일 사실상 끝났다.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과 민주당 박기춘 의원,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은 국토위 내 '철도산업발전소위원회' 설치와 철도파업 철회를 합의했다. 합의사항 전문은 아래와 같다(연합뉴스).

여야는 철도 산업발전 등 현안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한다.

1. 여야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산하에 철도산업발전 등 현안을 다룰 철도산업발전소위원회를 설치한다. 소위원회 구성은 여야 동수로 하며 소위원장은 새누리당이 맡는다.
2. 동 소위원회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여·야 국토교통부, 철도공사, 철도노조, 민간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정책자문협의체를 구성한다.
3. 철도노조는 국회에서 철도발전소위원회를 구성하는 즉시 파업을 철회하고 현업에 복귀한다.

2013년 12월 30일
새누리당 국토위원 김무성 민주당 국토위원 박기춘
전국철도노동조합 위원장 김명환

이 합의사항은 애초 요구안에 비할 것도 없고 26일 실무교섭 요구안보다도 후퇴한 것이다. ▲수서발KTX 운영법인 설립 결정 철회 ▲수서발KTX 면허 발급 중단 ▲국회 국토위 산하 철도발전 소위 구성 중 첫 번째 요구안은 26일 실무교섭에서 이미 철회됐고 이번 합의에서는 두 번째 요구안도 철회돼 결국 세 번째 요구안만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런데 이는 수서발KTX의 분할이 결국 민영화 수순이라며 반대하던 철도노조 입장과 비교하면 완전한 후퇴에 가깝다.

게다가 박근혜정부는 대놓고 국회를 무시해 왔다. WTO 정부조달협정은 국회에 보고조차 않고 개정했다. 27일 국회 중재도 무시했었다. 이번 국회 내 여야와 철도노조의 합의가 지켜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 더구나 노무현 정권 시절에도 2003년 4ㆍ20 노정합의는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무시됐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권 시절을 잇는 투쟁 동안 이러한 후퇴가 조금씩 쌓여 지금에 이르렀다는 걸 고려하면 민영화 반대 투쟁을 다시 시작할 때 우리가 출발할 곳은 지금보다 더 불리한 장소가 될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조합원들이 파업에 단호하게 참여했던 것과 달리 강경한 정부 앞에 끊임없이 머뭇거리고 주저했던 민주노총 지도부가 결국 여기까지 후퇴한 것이다. 특히 28일 총파업 집회로 절정에 다다랐던 투쟁과 연대의 열기를 고려하면 아쉬울 수밖에 없다. 조합원들의 단호한 투쟁, 학생과 시민, 미조직 노동자의 확산되는 연대가 박근혜정부와 새누리당 지배집단 내 균열을 일으키고 있었기에 아쉬움은 더한다.

균열의 조짐을 보인 박근혜정부ㆍ새누리당

27일 금요일 밤, 국토부의 수서발KTX 운송 면허 발급을 즈음한 한 풍경을 살펴보자. 이날 JTBC 뉴스9은 마침 환노위 새누리당 간사 김성태 의원과 전화 인터뷰 중이었다. 전날 밤부터 새벽까지의 노사간 실무협상은 결렬로 끝났다(노조는 한사코 '결렬'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날 낮 국회 환노위의 중재도 실패로 돌아간 상황에 정부는 수서발KTX 운송 면허 발급을 예고해놓은 상황이었다. 바로 그 인터뷰가 진행되던 상황에서 수서발KTX 면허 발급 속보가 떴다. 당황한 새누리당 의원은 망연자실 했다. 이 장면은 박근혜정부가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있는지, 즉 청와대가 지배집단 내에서도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강권력 만으로 통치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조금 길지만 이 장면의 대화를 자세히 살펴보자
(JTBC 홈페이지에 있는 기사는 그 기묘한 대화의 순간을 적절히 담아내지 못해 직접 옮겼다).

손석희: 저희가 아직 확인은 못했는 데요. 아까 말씀하실 때 11시에 수서발KTX 자회사 설립을 위한 면허가 발급될 것이다 하는 것은 다른 언론에서 확인하신 겁니까? 아니면 다른 경로를 통해 들으셨습니까?
김성태: 새누리당 환노위 책임자로서 앞으로도 오늘 비록 환노위에서 철도 노사 중재가 불발에 끝났지만은 노사간의 중재의 노력은 계속돼야 된다고 봅니다. 그런 측면에서 국토교통부의 면허 발급, 야밤에 한다는 것은 중단되어졌으면 하는 그런 바람입니다.
손석희: 지금 저희가 뉴스속보 자막을 내고 있는데요. 수서발KTX 운송 면허 발급. 발급이 된겁니까 지금?
김성태: 아 …, 이건 정말 저희도 지금 확인이 안되는 건데.
손석희: 잠깐만요, 제가 저희 뉴스부조정실에 확인해보겠습니다. 발급이 돼서 이 속보를 넣은 겁니까? 네 발급이 됐다고 하네요.
김성태: 아 ….
손석희: 애초에 아까 말씀하신 대로 저는 오늘 밤 중이라고 말씀드렸고, 김성태 의원께서는 11시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지금 시간은 9시14분 지나고 있고요. 이 시간에 이미 수서발KTX 운송 면허는 발급이 된 것으로 확인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뭐 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국회로서는 그런 상황인 것 같고, 이건 뭐 노정간에 강하게 부딛칠 것 같은 그런 상황입니다. 또 12시까지 업무 복귀라고 했기 때문에 그 이후에 벌어지는 상황도 노조로서는 우려스러운 상황이 될 수도 있겠고 ….
김성태: 정말 극단적인 파국만은 좀 막아보자는 그런 일념으로 민주당이든 새누리당이든 이제 정치적 입장을 완전 배제하고 국회가 중재하자는 입장인데 이제 여지가 없어지는 거죠.
- JTBC 뉴스9 12월 27일

새누리당 국회의원 김성태의 당혹스러움이 느껴지는가? 오늘은 또 '원조 친박'이라고 불리우는 유승민이 "수서발 자회사 설립은 정책부터 잘못됐다"고 밝혔다는 뉴스가 나왔다. 철도노조의 단호한 투쟁, 국민적 지지의 확산이 지배집단 내에서 균열을 일으키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유승민은 "타이밍이 지났다고 본다. 이미 (정부와 노조가) 서로 각을 세우고 있는 마당에 지금 이야기를 하면 총부리를 거꾸로 겨누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고 덧붙여 지금의 상황에서 지배집단 내 분열이 가진 위험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을, 즉 현재의 위기가 분열을 강제하는 상황까지는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경향신문). 그러나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우리가 후퇴하거나 분열하지 않았다면.

의미심장한 조짐은 또 있었다. 오늘 한겨레는 1면에 '박근혜 정부 10개월, 중도층 이탈 두드러져'라는 기사를 실었다.

"12월 셋째 주 마지막 조사에서는 '잘못한다' 49%, '잘한다' 33%로 격차가 더 벌어졌다. 철도노조 파업에 대한 강경 대응이 이뤄진 때다."
- 한겨레 12월 30일 1면

박근혜정부의 강경 대응은 지배집단이 강하다는 증거도 아니었다. 강경책은 오히려 중도층까지 정부로부터 이반시키고 있었다. 이 경향이 계속되면 지배집단 내 균열이 가시화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이런 기회를 스스로 버렸다. 민주노총 지도자들은 우리 운동이 "박근혜 정권 퇴진"을 가장 자연스럽게 표현하게 됐을 때, "대선 불복이냐?"는 새누리당과 정부의 되치기에 물러나기 여념 없었던 민주당에 우리 운명을 맡겨버린 것이다. 그 결과가 오늘의 합의다.

박근혜정부보다 우리의 약점이 더 컸다

끝끝내 정부가 "민영화는 아니다"고 내심과 다른 말을 해야 했던 것, 정부조달협정 개정에서 보이듯 대놓고 정부에게 무시당하던 국회가 나서야만 했던 것에서 우리는 그나마 위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안녕들하십니까'라고 서로의 안위를 물었던 대학생들이 손쉽게 도서관 의자로 돌아가진 않을 것이다. 오프라인에서의 활동을 계획하고 스스로 조직하기 시작한 네티즌들이 다시 온라인 잉여질에만 몰두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투쟁은 여러모로 우리 운동의 약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합의사항에서 알 수 있듯이 민주당은 민영화에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 저들은 지금의 '파국'을 중단시키는 데만 관심있을 뿐, 민영화가 가져올 파국에 진지하게 관심을 쏟지 않는다. 민영화를 시작한 김대중-노무현 정부라는 원죄가 있기 때문 만은 아니다. 상층 부르주아지 일부와 중간계급을 기반으로 한 민주당은 새누리당과 마찬가지로 공공부문의 '비효율성'을 문제라고 생각한다. 노무현 정권에서의 공사화와 상ㆍ하 분리, 이후 KTX 여승무원 외주화 등 철도산업 전반을 지배하게 된 사기업의 이윤원리에 민주당은 반대하지 않는다.

노동계급 내 최상의 투사들이 민주노총을 건설했고, 그들 중 다수가 정치적 좌파였음에도 국가에 대한 정면 도전은 이들의 투쟁 수첩에 적혀있지 않았다
(특정 정파 출신임을 문제삼는 게 아니다). 파업 초기부터 정부는 타협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체포영장만으로 민주노총을 침탈했고 새누리당까지 포함된 국회의 중재안도 무시했다. 그럼에도 민주노총은 연대투쟁을 건설하지 않았다. 지지와 연대는 오직 우연에만 맡겨졌다.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자 그 대자보에 묻어가려고만 했다. 22일 경찰의 민주노총 침탈 후 "저들의 합법은 우리의 불법"이라며 '불법투쟁'도 감수하겠다던 강경한 연설과 달리 28일 총파업 집회에서 민주노총은 공개적인 거리 투쟁을 조직하지 않았다. 아마 사전에 조율된 것이겠지만 산하 조직들의 개별 행동이 거리 투쟁을 이끌었다. 공식 무대에서 "거리로 나가자, 청와대로 가자"는 호소는 없었다.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우왕좌왕 했다. 특히 다수의 미조직 노동자, 시민들은 어떤 공개적 지침도 없이 개별적 판단으로 움직여야만 했다. 단 한 번의 거리 시위가 우리에게 승리를 가져다주진 않지만 위력적인 거리 시위는 이후의 투쟁을 위한 훌륭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 경찰이 관광버스까지 동원해 전국의 경찰을 서울광장에 집중시켜 거리 시위를 막으려고 한 이유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이 기회를 사실상 대중의 자발성에만 맡겨뒀다.

지난 몇 년 간의 흐름과 다르지 않게 투쟁의 결정적 국면은 법적 공방으로, 사법부에 맡겨졌다. 수서발KTX 설립을 결정한 이사회의 적법성, 민주노총 침탈에 대한 민형사상 소송, 국토부 면허 발급 무효 소송 …. 법률과 사법부가 우리 편이 아님은 업무방해와 손배가압류와 같은 것들에서 이미 지겹도록 봐온 것이다. 최근 통상임금 소송에서도 사법부는 자신들의 계급적 성격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럼에도 노동조합 지도부는 법적 공방에만 매달리고 있다. 사법부의 판단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나온다면 다행이겠지만 그 반대인 경우 투쟁대열의 자신감은 급속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의 이러한 우유부단함이 노동조합 탓만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정치적 대안을 건설할 세력의 부재가 컸다. 통합진보당ㆍ진보정의당ㆍ노동당은 이번 국회 합의에서 완전히 무시됐다. 통진당과 정의당은 국회의원이 있는 원내 정당임에도 말이다. 노동당은 박근혜정권 퇴진 투쟁을 공언했지만 현실적 힘은 지니지 못했다. 최소한 민주노총 내 의미있는 움직임을 이끌어낼 능력도 없었다. 소규모 좌파 그룹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국회에서 무언가를 할 협소한 의미의 정치세력이 아니다. 거리와 의회의 정치를 잇고, 사무실과 공장의 연대를 만들어낼 정치세력이 필요하다.

이미 이번 기차는 떠나버렸다. 많은 것을 남겨두고 말이다. 다음 기차가 연착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 모두의 예상보다는 빨리 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 거리 시위에 관해
민주노총 지도부가 공개적으로 거리 시위를 호소하지 않은 것은 아마 법률적 책임 문제 때문일 것이다. 불법으로 규정돼 이후 이어질 법정공방은 노동조합 지도부로서 매우 불편하고 귀찮은 것일 수 있다. 그래서 꽤 오래전부터 실상 민주노총이 주도할 때조차 공식적으로 지도부는 법을 넘어선 거리 시위를 호소하지 않었다. 이러한 편의주의적 태도는 지도부가 받게될 법적 제재 이상으로 우리 대열을 혼란에 빠뜨리기 일쑤다. 28일에도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미조직 노동자, 학생, 시민들은 이미 노동조합 대열의 상당수가 빠져나가 휑해진 광장에서 우왕좌왕 했다. 트위터에선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 앞으로 모여달라는 이야기가 퍼져 민주노총 대변인이 긴급하게 정정 소식을 알려야만 했다. 이 모든 게 조직을 지키기 위한 것이란 이유로 정당화된다. 그러나 1987년 대투쟁 이후 역사에서 노동조합ㆍ좌파 조직은 투쟁 속에서 성장했지 안정적인 일상 사업 속에서 성장한 게 아니다. 조직을 지키고 성장시키기 위해서라도 지도부는 가장 앞장서 투쟁을 지휘해야 한다.


※ 아래는 이번 합의에 관한 한 철도노조 조합원의 글. 페이스북 권영숙 선생 페이지에서 퍼왔다.
"이대로 접을 수는 없다, 과연 투쟁의 전망은 없는가? 더 싸우면서 전면파업을 결정하자!"

합의안 얘기는 길게 하지 않겠습니다. 수서발 KTX 주식회사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 말도 없는 합의안입니다. 합의안의 수준이 높고 낮음을 떠나 실체가 없는 뜬구름입니다. 새누리당이 위원장을 맡을 철도발전소위원회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예전에는 탄압의 주역들이었고 지금은 투쟁에 들러리 서다가 떡고물이라도 챙겨볼까 하는 민주당에게 무엇을 바랄 수 있습니까? 징계 문제는 합의소식이 발표되자 정부와 공사는 파업이 끝나도 법과 원칙대로 징계하겠다고 했습니다.

지도부는 투쟁의 전망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복귀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추가 복귀자가 계속 생겨날 것 같다는 보고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중추 대오가 살아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운전분야 복귀율은 5%가 넘지 않습니다. 지금 지도부는 밀리는 흐름을 최대한 저지하고 다시 힘을 모을 생각은 전혀 안하고 아주 조급하게 아무런 알맹이 없는 합의(?)를 하고 복귀 결정을 내리고 있습니다.

과연 투쟁의 전망이 없습니까? 정부와 공사의 총공격 앞에 일부 대오가 복귀하고 대열이 흐트러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복귀율이 40%가 넘었습니까? 과반이 넘었습니까? 아닙니다. 지금 이대로 밀리면 상상할 수 없는 징계와 보복이 뒤따를 것입니다. 정부의 공격을 맞받아치면서 강력한 퇴각의 저지선을 치지 못하고 여야 정당들에 의해 이끌려 합의를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힘이 부족해 밀릴 수도 있고 부족한 합의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철도노동자 전체가 최선을 다해보고, 할 만큼을 다해보고, 검토할 것은 다 검토하고, 미래를 준비하면서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민주노총 1월 9일 총파업이 있습니다. 그 총파업에 기대자는 것이 아닙니다. 사력을 다해 총파업을 추동해내고 그것으로도 정부가 물러서지 않으면 전면파업이라는 승부수를 던지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최대한 밀어보고 전체적인 상황을 판단하면서 더 전진인지, 퇴각인지 결정하면 됩니다. 필공조합원들이 전면파업에 나섰을 때 받을 수 있는 처벌, 징계, 부담이 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필공조합원들은 나설 수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결의하는 조합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대오의 일부만이라도 결합하면 지금보다 몇십 배 더한 타격을 가할 수 있습니다. 노동자와 시민들의 연대는 줄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오전 합의 발표 이전에 전면을 결의하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동료 수백 명, 아니 수천 명이 해고를 당할 상황입니다. 필공조합원들은 분노하고 있고 안타까움에 부들부들 떨고 있습니다. 전체 철도노동자의 자존심을 짓밟고 우롱하고 철도노동자 죽이기 민영화를 밀어붙이는 정부의 막가파식 태도를 그 누가 참을 수 있겠습니까? 필공 조합원들을 다 아끼는 마음은 똑같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동료애는 당장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대의를 위해 싸우면서 함께 미래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투쟁할 수 있습니다. 조합원들이 결정합시다. 지부별 총회를 열고 판단합시다. 전면파업하면 전체가 싸울 수 있다는 결의를 하는 지부들도 있습니다. 조합원들이 지도부의 고민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지도부 결정이 항상 옳을 수는 없으며 올바르지 않은 결정은 조합원들이 바꾸어야 합니다.

지도부 마음대로 파업철회를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번 파업은 서로 대결의 수준이 가장 높습니다. 저들은 철도노동자들 앞에서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들 앞에서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기로 맘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밀어붙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수많은 노동자 민중의 연대에 힘입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런 싸움일수록 당장의 어려움만이 아니라 미래를 생각해야 하고 철도노동자만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진심과 열의를 받아안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조합원 동지들, 얘기합시다. 지금의 상황과 투쟁의 전망을. 조합원들의 판단과 결정없이 내려지는 일방적인 복귀명령을 무조건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토론과 총회, 전체 조합원들의 판단이 필요합니다. 지금 당장 힘들다고 여기서 이대로 끝낸다면, 정치인들의 말만 믿고 접는다면 민영화와 수서발 ktx설립은 굳어집니다. 지금 합의는 아예 합의를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합니다. 국회발전소위원회는 우리의 의지가 담길 수 없으며 오히려 우리의 족쇄가 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최선을 다하고 그래도 힘이 부족하다면 깨끗이 졌다 인정합시다. 그리고 미래를 기약합시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민주노총의 총파업을 조직해가고 그래도 물러서지 않는다면 전면파업이라는 승부수로 단 며칠이라도 우리의 힘을 총동원해야 합니다. 그런 기세와 결연함만이 우리의 조직력을 보존할 수 있으며, 투쟁한만큼의 성과도 쟁취해 낼 수 있습니다.

뒤로 물러서면 수십 년이 후퇴하는 절체절명의 파업. 아직 우리는 더 싸울 힘이 남아 있고 더 싸워야 합니다. 조합원 동지들의 생각과 의견을 말합시다. 흔들림없이 싸워왔던 우리 조합원들은 충분히 그럴 권리가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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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8일 서울광장에 모인 10만 명의 노동자는 단호하게 철도파업 지지를 선언했다. [사진 自由魂]

탑골공원에서 오후 2시에 열린 전교조의 사전집회부터 참여했다. 1000여 명의 조합원이 매우 좁은 장소에서 힘있게 사전집회를 진행. 참여한 전교조 조합원들의 열기는 매우 뜨거웠다. 사전집회 열기와 달리 서울광장까지 이동은 행진이 아닌 인도를 이용한 개별적 이동. 그러나 참여한 사람의 수가 있다보니 행진 아닌 행진. 산업은행 앞에서 대학생들의 '안녕들하십니까' 대열을 스쳐 지나가고 영풍문고 즈음부터는 건설노조의 연대파업 대열과 합쳐지면서 자연스럽게 거리행진으로 이어졌다.

30여분 쯤 지나 도착한 서울광장은 이미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로 꽉차있었다. 족히 10만 명은 됐을 듯. 서울광장에서 서울시내로 향하는 도로마다 경찰의 차벽이 높게 서있었다. 경찰은 경찰버스가 모잘랐던지 관광버스까지 대절해 전국에서 모여들었다. 그러나 시위대는 위축되지 않았다. 가장 인상적인 대열은 건설노조.

집회가 중반쯤 지나면서부터 여러 노조가 이동을 시도했다. 사전에 중앙에서 계획된 것인지 각자의 의지인지는 모르겠으나 여러 방향으로 서울광장을 빠져나가 광화문을 향했다. 내가 향한 삼성 본관 앞 시위대에선 건설노조가 맨 앞을 차지하고 있었다.

전날 밤 정부는 이날 시위의 김을 빼기 위해 수서발KTX 법인 설립 면허를 발급했지만 시위대는 아랑곳 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권 동안 여러번 정권 퇴진 구호가 나왔지만 이날처럼 자연스러웠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정부가 강경한 상황에서 조직을 추슬리기 위해 일단 후퇴하자는 이야기가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에서 나오고 있었지만, 그리고 전날 철도노조와 민주노총의 태도에서 그러한 머뭇거림이 보였지만 조직된 노동자들의 태도는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그래서였을까. 내가 있던 곳에서 경찰은 해산 명령을 '4차'까지 발했다. 보통은 '3차 경고' 이후 강경진압을 해왔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개인적으로 '4차 해산 명령'은 처음 들어봤다.

결국 이 투쟁의 해답은 여기 있다. 조직 노동자를 어떻게 동원할 것인가. 학생과 미조직 노동자들은 이미 충분히 그들의 의지를 보였다. 이제 민주노총으로 대변되는 조직 노동자들의 의지에 따라 이 투쟁은 더 확산될 수도, 가라앉을 수도 있다. 사실 가장 앞장서야할 것은 좌파 정치세력이지만 지금 상황에선 우선 민주노총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 내 좌파의 건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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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조계사에서 만난 박태만 철도노조 수석부위원장(왼쪽)과 최연혜 코레일 사장. [한겨레]

"기관사는 오히려 파업인원이 늘어나고 있다. 정부가 … 계속 탄압하려 하면
더 강도 높은 투쟁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으며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백성곤 철도노조 홍보팀장, 경향신문 12월 26일 6면

28일 시위에 대한 호응이 확산되면서 우파는 조금씩 분열되고 있다. 지만원이 박근혜를 버렸다는 주장이야 웃고 넘어갈 수 있지만 조선일보의 불만은 허투로 다룰 것은 아니다. 정부가 한사코 "민영화는 아니다"고 거짓부렁을 늘어놓자 조선일보는 "민영화는 안 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다 보니 정부가 뭔가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려다가 물러선 게 아닌가 하는 인상마저 주고 있다"며 정부의 태도에 불만을 드러냈다. "정부가 노조 기세에 밀려 '민영화는 아니다'고 변명하는 사이 앞으로 공기업 민영화는 입도 뻥긋 못하게 돼 버렸다"는 것이다(조선일보 12월 24일 A35).

그렇다고 박근혜 정부가 탄압의 고삐를 놓지는 않을 것 같다. 해프닝으로 끝나버렸지만 전교조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은 그 단초를 보여준다. 22일 진압작전의 무능력을 확인하고도 경찰은 당당하다. 정부와 경찰은 21일이 아닌 22일 일요일 진압작전을 실시함으로써 정부의 권위와 힘을 월요일 아침 언론을 통해서 스펙타클하게 보여주고자 했다. 이러한 시도, 즉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는 노력은 28일에도 다시 한 번 재개될 듯싶다. 왜냐면 경제의 회생이 아득한 상황에서 부르주아들이 양보할 여유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일부 정책의 후퇴 혹은 임금인상, 노동조건의 개선 그 어떤 것에도 저들의 양보는 치명적 후퇴가 될 뿐이다. 조계사를 찾아 박태만 수석부위원장을 만난 최연혜 코레일 사장의 마뜩찮은 표정에서 양보는 전혀 없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최연혜 사장이 수석부위원장과 만난 지 30여 분 만에 현오석 부총리(기획재정부 장관)는 "정부는 투쟁에 밀려서 국민 혈세를 낭비시키는 협상은 결코 하지 않겠다"며 "타협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한겨레). 강경책은 우파가 잡은 유일한, 하지만 썪었을 가능성이 높은 동아줄이다.

그럼 이런 정부와의 대치를 철도노조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대중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철도노조와 박근혜 정부의 대리전 양상은 계속되고 있다. 민주노총은 경찰의 강공에 총파업을 선언했지만 이것이 실질적인 총파업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의문이다. 철도노조의 상황도 어렵다. 조합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에도 불구하고 산개투쟁을 펼치고 있기에 노조 지도부는 조합원과 분리돼 고립돼 있다. 산개투쟁은 조합원이 투쟁의 자신감을 지도부에 전달하는 걸 쉽지 않게 만든다. 한편 이러한 거리는 조합원이 지도부를 투쟁의 대열 속에 통제하는 걸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투쟁하는 평조합원과 분리된 노조 지도부는 조합원의 단결된 힘보다는 정치권ㆍ시민단체ㆍ종교계 등의 '중재'에 더 매력을 느끼기 쉽다. 수석부위원장이 조계사에 들어가 얼굴을 드러내고 26일 전격적으로 최연혜 사장과 만나게 된 것은 정부와의 대리전에 대한 부담감의 표현일 수 있다. 22일 경찰이 민주노총을 침탈한 후 사라졌던 김명환 위원장이 26일 저녁 다시 민주노총 사무실에 있음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도 이런 불안감을 크게 한다. 한 번 침탈한 사무실을 다시 또 침탈하지 않을까. 결국 시민ㆍ사회 단체 또는 종교계가 어떤 '중재안'을 내놓았고 이 때문에 흔들리는 것은 아닐까? 물론 아직까지는 정부의 강경한 입장 때문에 중재안이 쉽게 제시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연합뉴스). 노조 지도부도 아직까지는 파업을 계속하겠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김명환 위원장은 26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파업은 멈추지 않는다. 우리 요구는 변함이 없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시도된 민영화에 반대하며 우리에겐 일종의 신념이 되어 있다. 그런데 이번엔 시민들도 지지하고, 예전처럼 돌만 던지진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한겨레). 김 위원장은 27일 오전 어떤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한겨레나 경향은 모종의 타협이 가능한 것처럼 말한다. 그런데 이 경우 타협은 패배일 뿐이다. 2004년 철도파업 당시 공사화는 정부와 노조가 한발씩 양보한 것처럼 비췄지만 결국 민영화를 위한 정부의 일보 전진이었고 우리에겐 일보 후퇴였다. 현재 철도노조가 요구하고 있는 ▲수서발 KTX운영법인 설립 결정 철회 ▲수서발 KTX 운영법인 면허 발급 중단 ▲국회 교통위 산하에 철도발전을 위한 소위 구성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 ▲고소고발과 직위해제 등 노조탄압 중단 다섯 항에서 앞의 두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뒤의 세 요구가 100% 이뤄진다고 해도 우리에겐 명백한 후퇴가 될 것이다.

결국 적당한 타협은 우파에게 진열을 재정비할 여유를 주고 우리의 기세는 꺾는 악수가 될 수 있다. 투쟁ㆍ파업이라는 것은 노조 지도부가 원할 때면 언제나 불을 지필 수 있는 라이터가 아니다. 백성곤 철도노조 홍보팀장의 말대로 "더 강도 높은 투쟁으로 전환"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박근혜에게 배워야 한다.

"적당히 타협하면 미래 없다."

※2013년 12월 27일 오전 9시30분 수정

철도 노사는 26일 오후 4시30분부터 27일 오전 8시까지 실무교섭을 진행했다. 노조는 위에 제시한 다섯 개 요구 중 첫째 요구를 철회한 것으로 보인다. 철도노조의 실무교섭 보고에 의하면 노조 측 요구안은 이렇다.

①철도노사는 국민의 철도민영화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켜야한다는 것에 인식을 같이한다.
②이를 위해 수서고속철도 면허 발급을 중단하고, 철도산업의 공공적 발전방안 마련을 위하여 노사민정이 참여하는 사회적 논의기구를 구성한다.
③철도산업의 공공적 발전방안 마련을 위하여 국회 국토교통위 산하에 소위원회 설치를 촉구한다.
④금번 파업과 관련하여 고소고발 등을 취하한다.
[12/26 보고] 노사 실무교섭 보고, 정책실

요구 ①은 의미 없는 수사에 불과하다. 핵심은 ②와 ③이다. 여기에 수서발KTX 운영법인 설립 결정 취소 요구는 빠져있다. ②의 요구는 현재의 상태, 면허 발급이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태를 유지한 채 사회적 논의기구를 통해 합의안을 도출하자는 것이다.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도 27일 오전 "정부가 수서발KTX 법인 면허 발급을 중단하고 철도 발전방안에 대해 사회적 논의에 나서겠다면 우리도 파업을 중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발표했다(연합뉴스). 이것은 현 상태의 유지를 요구하는 것 뿐이다. 파업이 19일 째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요구안은 명백한 후퇴다. 정부와 코레일이 마음먹는다면 이런 정도는 일단 받아들일 수도 있다. 눈치 보다가 잠잠해질 때 법인 설립 면허를 발급할 수 있다. 이른바 사회적 논의기구가 반발할 수 있지만 일단 설립돼 운영이 시작되면 투쟁의 동력을 현재 만큼 끌어내기는 쉽지 않다. 즉 정부가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요령이 있다면 욕 한 번 먹고 얼마든지 자신의 뜻을 강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측은 여전히 강경하다. 정확히는 정부의 뜻일 게다. 코레일 측 안은 이미 이사회에서 설립 결정돼 면허 발급을 앞두고 있는 수서발KTX 자회사를 기정 사실로 전제하고 있다. "수서고속철도주식회사의 공공성 확보방안과 철도산업발전방안은 노사민정이 참여하는 사회적 논의 기구를 구성한다"는 것은 수사에 불과하다. 경쟁 체제 도입은 불가피한 낭비와 비효율을 초래할 뿐 아니라 사적 기업의 원리를 공기업에 강제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성 확보'를 위한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꼼수일 뿐이다.

Posted by 때때로

12월 19일 서울광장에서 '민영화 저지를 위한 철도노조 파업 2차 결의대회'가 열렸다. '관건ㆍ부정선거 1년, 민주주의 회복 국민대회'가 같은 장소에서 뒤를 이어 계속됐다. 2만여 명이 참여했고 참가자의 구성도 그 어느 때보다 다양했다. 경찰의 방해와 공격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올라온 1만여 명의 철도노조 조합원이 광장의 중심에 자리했다. 소울드레서ㆍ쌍코ㆍ화장발, 소위 '삼국카페'라고 불리는 커뮤니티에서는 핫팩과 초코파이, 성금을 철도노조에 기부했다. 19일 촛불시위에 대한 간단치 않은 소회를 남긴다.


2013년 12월 19일 서울광장 [사진 自由魂]

1-1 2008년 촛불이 무엇을 했느냐고 하지만 이른바 '삼국카페'라고 불리는 것은 남겨놓았다(당연히 이들만 얘기하는 건 아니다). 물론 이 커뮤니티가 '정치' 커뮤니티는 아니다. 대표되는 어떤 정치를 정의하기 어려울 정도로 스펙트럼이 넓다. 대개는 민주당보다 약간 왼쪽의 경향이라고 해야겠다. 어찌됐든 이들 커뮤니티의 정치 '참여'는 좌파와 '상식적 시민'의 차이를 쉽게 넘나들곤 한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들이 6월부터 계속되던 부정선거 규탄 촛불시위가 아니라 철도노조 파업을 계기로 다시 광장에 나왔다는 것이다. 이들은 정확히 철도노조를 지지ㆍ지원하며 광장에 나섰다. 정봉주에 대한 젊은 여성들의 환호에도 불구하고 저들을 친노 세력으로 치부하는 것은 큰 실수가 될 것이다.

1-2 여전히 남는 아쉬움은 좌파가 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비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들이 가장 환호한 이 중 하나는 정봉주다. 이를 진중권 교수식으로 20세기 초반에 머물러 있는 좌파의 구태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너무 안이한 주장이다. 정봉주가 대표하는 정서, 촛불시위가 대표하는 정서에는 '노찾사'처럼 지극히 1980년대스러운 분위기도 있다. 이날 2부로 진행된 민주주의 회복 국민대회에는 함세웅 신부와 정봉주씨가 연사로 나섰고 노찾사가 공연을 했다.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의 스타일이 90년대 초중반의 화려한 붓글씨가 아닌 80년대에 가까운 매직글씨에 닮은 것도 그런 것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2-1 민주노총은 여전히 머뭇거린다. 자신감 없음이다. 국토부의 수서발KTX 면허발급이 20일로 다가왔고 정부는 지도부 체포를 시도하며 여전히 강경하게 나오는 데 민주노총은 이 이상의 행동을 얘기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파업할 수 있는 곳은 파업하고 그렇지 못한 곳은 교육을 하겠다"고 한다. 이게 뭔가. 결국은 개별 노동조합들이 알아서 하라고 손놓고 있는 게 아닌가. 민주노총이 중앙집중적 조직이 아니라는 점은 대안을 제시하고 행동을 계획하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이걸 인정해버리면 애초 민주노총, 즉 전국의 노동자들이 공통된 이해(지금은 민영화)를 놓고 함께 싸우자고 만든 조직으로서 자격이 없는 것 아닌가.

2-2 더 중요한 것은 민주노총이 결국 타협을 전제로 하는 노동조합이라는 데 있을 것이다. 협상의 상대인 정부가 일체의 타협을 고려하지 않을 때 그들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을 수도 있다. 이게 핑계가 될 수도 없다. 노동조합 운동의 초창기 기업주와 정부가 타협하려 했는가? 결국은 힘으로 그들을 협상장으로 끌어들이고 굴복시켜 인정받고 요구를 쟁취해왔던 게 아닌가. 결국은 자신감 없음이다. 왜? 지금 누리고 있는 '국민적 지지'를 놓치기 싫은 게 아닌가 싶다. 즉 여기서 더 나간 행동을 하면, 이를테면 철도의 전면파업이나 민주노총 전체의 연대파업을 하면 국민적 지지를 잃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말이다.

2-3 그래서 민주노총이 내놓은 게 21일의 대자보 번개다. 이게 뭔가. 애초 대자보가 철도노조 투쟁을 지지하며 시작된 건 새카맣게 잊고 바로 그 대자보에 편승해 가겠단다. 위력적인 거리행진도, 더 확대된 파업도 내놓지 않는다. 그래 오늘까진 '국민적 지지'가 확대되는 국면에서 그럴 수 있다고 본다. 21일 무엇을 내놓을지 기대해보겠다.


2013년 12월 19일 서울광장 [사진 自由魂]

3-1 사실 이런 것들을 민주노총에게만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결국은 정치적 좌파가 제안하고 조직해야 할 것이다. 지금 필요한 정치적 과제들, 즉 우리가 무엇을 요구하고 어떻게 행동해야할 지를 내놓아야 하는 것은 좌파다. 안타깝게도 통진당은 온통 이석기건에만 매몰돼 있다. 정의당은 여전히 선도하기보다 뒤따라가기 급급하다. 노동당은 당원이 시작한 '안녕들하십니까' 운동이 이토록 성장하는 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다. 소수 좌파가 전면 총파업 등 이 운동이 더 성장해 승리를 쟁취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제안하고 있지만 이들은 너무 소수라 큰 영향력이 없다.

3-2 그래서 문제는 1-2로 돌아간다. 좌파는 대중을 어떻게 매혹할 것인가. 다시 반복하자면 스타일의 문제는 사소하다. 대중 스스로 과거 운동 스타일을 따라하곤 하는 걸 우린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촛불을 되돌아보며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새롭게 급진화하며 스스로 조직해나가는 대중에 손놓고 있거나, 그들을 지도해야 할 대상으로만 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이 운동을 스스로 조직하고 지도할 수 있게끔 해야 하지 않을까. 이미 일부는 그들 스스로 쟁점을 선택하고 행동을 계획하며 실천에 옮긴다. 삼국 카페의 철도노조 지지활동에서와 같이 말이다. 쟁점이 커질 때마다 형성되곤 하는 '범국민운동본부' 같은 것들에 기존 좌파나 시민운동 단체들만 참여할 것이 아니라 이들 다양한 커뮤니티들도 참여시키자는 것이다. '안녕들하십니까'는 스스로 연락을 취하고 공동의 행동을 모색하며 모양새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들과 어떻게 함께 행동할 것인지를 모색하는 게 좌파에게 가장 시급할 것이다. 그리고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좌파가 자신의 주장을 후퇴시키거나 쓸데 없는 '당의정'으로 애매모호하게 제시해선 안되겠지만 대중과 함께하는, 무엇보다 그들과 함께 실패하는 경험 없이는 공감을 얻고 앞으로 나가는 일은 힘들 것이다. 함께 실패하고 함께 교훈을 도출해내는 경험이 승리보다 더 중요하다.


2013년 12월 19일 서울광장 [사진 自由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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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때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