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11

« 2019/11 »

  •  
  •  
  •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한겨레21'에 해당되는 글 2

  1. 2013.11.07 잉여와 20대
  2. 2010.05.11 민주주의와 밥벌이, 책 몇 권 이야기
2013.11.07 02:28

잉여와 20대 쟁점2013.11.07 02:28

잉여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특히 20를 언급하면서 그렇다. 최태섭이 '잉여사회'라는 책을 내놓기도 했지만 실상 '잉여'라고 스스로 부르고 '잉여짓'을 놀이로 하거나, '잉여짓' 한다고 비난받는 이들이 누구인지 명확히 설명하진 못한다. 최태섭의 책 1부는 잉여와 관련있는 듯 보이는 몇몇 담론들을 다룰 뿐이며 2부에서도 인터넷 문화의 일부분만을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 세대론이 덧붙여진다. 조한혜정은 '평생 자녀를 데리고 살 것인가?'(한겨레 10월 30일ㆍ링크)에서 '속물과 잉여'라는 책을 인용하며 직접적으로 20대와 10대를 겨냥한다. 같은 날 정희진도 경향신문 칼럼(잉여, 경향신문 10월 30일ㆍ링크)에서 잉여를 논한다. 그는 자본주의의 노동절약형 기술발전이 더 많은 사람들을 '없어도 되는 사람'으로 만든다고 말한다. 조한혜정보다는 잉여를 논하는 폭이 넓기는 하지만 그도 주로 20대의 현실을 강조한다. 청년 실업과 취업난, 9만 명이 응시한 모 대기업 입사시험, 늘어나는 캥거루족 등이 그 현실이다.

한겨레21은 '희생양도 개새끼도 아니다'
(2013년 11월 984호ㆍ링크)에서 "취업도 구직도 하지 않는 20대가 증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희진이 말한 "중산층 부모를 둔 잉여"인 캥거루족, 조한혜정이 사례로 든 "부모의 연금에 빌붙어 사는" 은둔형 외톨이가 이러한 20대의 대표적인 이미지일 것이다. 한겨레21은 이들 20대를 우치다 타츠루가 '하류지향'에서 제시한 '성장 거부 세대'로 부른다. 20대에 동정적이든 비판적이든 모든 결론은 결국 자본주의 사회의 거센 경쟁 압력에 직면한 20대가 아예 경제활동을 포기하는 걸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문득 청년 실업과 취업난이 그토록 많이 언급되지만 구체적으로 다뤄지는 것은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업과 고용에 대해 전반적으로 조사하고 싶었지만 우선은 20대를 중심으로 몇 가지 자료를 찾아 봤다. 트위터에서 읽은 "정희진의 칼럼은 요즘 떠오르는 '잉여' 의식에 거리를 두지 못해서 결국 '잉여'도 못되는 이들을 보지 못한다. 현 자본주의가 무슨 잉여인력을 양산하나?"라는 지적도 오늘 올릴 그래프를 만들도록 재촉했다. 아직 어떤 분석을 내놓을 수준은 안 되고 현실이 이렇다를 정리하는 정도다.



먼저 볼 것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의 진로다. 많이들 알려졌지만 고등학교에서 대학교 진학률은 90년대에 급격히 증가해 2008년에는 83.8%로 정점을 찍었다. 그 반대로 취업률은 낮아졌다. 2008년 이후에는 분위기가 약간 바뀌어 진학률은 71.3%로 떨어졌고 취업률은 8.3%로 올랐다. 진학률이 줄어든 만큼 취업률이 늘지 않은 것은 그래프에는 없지만 무직자가 늘었기 때문이다. 2008년 9.3%였던 고졸 후 무직자 비율은 2012년 15.7%까지 늘었다.

대학 졸업자의 진학률은 큰 변함 없이 10% 이하에 머물고 있다. 취업은 2009년까지 꾸준히 늘었지만 2010년에 큰 폭으로 떨어져 1998년 경제위기 직후 취업률 수준에 이르렀다. 그래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2011년 51.4%까지 늘었던 취업률은 2013년 다시 50.6%로 떨어졌다. 1997년 말 경제위기 직후의 상황보다 낙폭도 크고 회복도 더디다.



고등학교 졸업생의 진로에서 예상되듯 20대 초반(20~24세)의 경제활동참가율은 크게 떨어졌다. 반면 대학을 졸업하는 20대 후반(25~29세)의 경제활동참가율은 꾸준히 늘었다. 경제활동에 참가하는 나이는 늦춰졌지만 그 만큼 20대 후반에게 경제활동 참가 압력이 커진 게 아닌가 싶다. 나이에 따른 경제활동 참가율 변화를 보면 미세하지만 이를 확인할 수 있다. 1994년에 비해 2012년에 경제활동참가율 곡선이 더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경제활동참가율이 가장 높은 나이도 40대 초반(40~44세)에서 40대 후반(45~49세)로 늦춰졌다.

여기서 20대의 경제활동참가를 15세 이상 전체 인구와 조금 더 자세히 따져보자. 20대 초반과 후반으로 나누어 전체 인구 중 차지하는 비율과 전체 경제활동인구 중 차지하는 비율을 살펴보자. 이는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않고 있으면서, 참여할 의사도 없는 20대가 늘고 있다"는 한겨레21의 주장이 맞는지 확인해보기 위해서다. 한겨레21은 20대 비경제활동인구 비중이 2005년 이후 늘어나 올해 9월 37.9%(629만9000명)에 이른 것을 근거로 제시한다. 이와 함께 57.3%까지 낮아진 고용률, 전체 연령 중 가장 높은 실업률을 예로 들고 있다.



20대를 초반과 후반으로 나눠 살펴보면 한겨레21과 조금 다른 그림이 드러난다. 20대 초반(20~24세) 경제활동인구는 1994년 229만9000명에서 2012년 135만7700명으로 꾸준히 줄어든다. 전체 경제활동인구 중 20대 초반이 차지하는 비율도 11.3%에서 5.3%로 감소해 같은 기간 15세 이상 전체 인구 중 20대 초반이 차지하는 비율이 1994년 11.2%에서 6.8%로 감소한 것보다 더 급격히 줄었다.1997년까지는 경제활동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더 높았지만 1998년 역전돼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과의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20대 후반(25~29세)은 다르다. 초반과 마찬가지로 경제활동인구는 줄어들었다. 1994년 287만 명에서 2012년 251만2400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인구가 줄어든 것에 비해서 크게 줄어든 것은 아니다. 전체 경제활동인구 중 20대 후반이 차지하는 비율은 1994년 14.1%에서 2012년 9.9%로 줄었고 전체 인구 중 20대 후반의 비율은 12.7%에서 8.2%로 줄어 거의 비슷한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경제활동인구 중 20대 후반이 차지하는 비율은 인구에서의 비율보다 높으며 증가와 감소 경향은 큰 격차 없이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다. 앞의 그래프에서 드러났듯 같은 기간 20대 후반의 경제활동참가율은 68.3%에서 73.6%로 오히려 늘어났다.

결국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않거나 참여할 의사도 없는 20대라는 한겨레21의 주장은 20대 후반에게는 적용할 수 없다. 20대 초반도 대학진학률과 인구 감소를 따져보면 부분적으로만 진실이다. 노동시장 진입 연령이 대학을 졸업하는 20대 후반으로 늦춰졌다는 게 보다 정확한 설명일 것이다. 노동시장 진입을 위한 기본적인 교육비용이 증가하고 부모가 자식을 책임지는 기간이 더 길어졌음을 이 자료로 추측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현재 20대가 취업에서 겪는 어려움과 함께 다른 자료를 통해 살펴봐야 할 것이다.



20대 초반이 경제활동 참가율은 낮지만 실업률은 20대 후반보다 높다. 경제위기 영향도 더 강하다. 1998년 때도 그랬지만 세계경제위기가 시작되던 무렵인 2007년에도 전체 실업률보다 더 큰 폭으로 떨어졌다. 20대 후반과 비교해도 그렇다. 그러나 경제활동인구와 실업자에서 2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들고 있다. 우선 경제활동인구에서 20대가 차지하는 비중의 경우 큰 변화없이 꾸준히 줄어드는 데 이는 20대 인구가 감소한 영향으로 보인다. 실업자 중 20대가 차지하는 비중도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1998~1999년 전체 실업자 중 20대 실업자 수가 크게 준 것은 1998년 경제위기 직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먼저 일자리에서 밀려났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20대에게 가장 큰 문제는 불안정한 일자리 비율이 높아진 것 아닌가 싶다. 2003년 이후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율의 변화를 보면 40대에선 크게 줄고, 전체 비율도 조금씩 줄어드는 데도 불구하고 20대는 거의 제자리 걸음이다. 2009년까지는 40~49세의 비정규직 비율이 20~29세의 비정규직 비율보다 높았지만 2010년에는 역전 돼 2013년에는 격차가 더 커졌다.

박근혜가 요새 관심을 갖고 있는 시간제 일자리도 마찬가지다. 15세 이상 임금근로자 전체에서 시간제 비율이 2009년부터 급격히 높아지고 있지만 특히 20대에서 그 정도가 심하다. 결국 올해에는 전체에서 10.3%인 비율도 추월해 11.1%를 기록했다. 반면 40대는 2009년 이후 시간제 일자리 비중이 조금씩이지만 줄고 있다.



비정규직 비율이 높아지는 것도 문제지만 임금 격차가 더 커지는 것도 심각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월평균임금 차이는 2004년 61만9000원에서 올해는 111만8000원까지 늘어났다. 시간제 일자리는 말할 것도 없다. 올해 시간제 일자리 월평균임금은 정규직보다 189만2000원 적다. 이는 정규직의 임금 인상률이 비정규직보다도 높다는 데서 기인한다. 비정규직의 경우 임금이 떨어진 해도 있었다. 정규직의 임금은 올해 8월의 경우 전년도 8월보다 3.5% 올랐다. 비정규직은 2.5%로 정규직보다 1.0%포인트 낮다. 세계경제위기가 확산되던 2009년에도 정규직은 3.5% 올랐으나 비정규직은 7.3% 줄었다.

20대 청년들에게 취업의 문은 좁게만 열려있다. 그 열려있는 문조차도 아주 험난한 길로 연결됐을 가능성이 더 커져가고 있다.

※자료는 국가통계포털 KOSIS.kr의 고용ㆍ노동ㆍ임금 통계와 교육통계서비스 cesi.kedi.re.kr의 교육통계연보에서 이용.

Posted by 때때로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0.05.11 15:48

민주주의와 밥벌이, 책 몇 권 이야기 2010.05.11 15:48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나?

많이들 묻는 질문이죠. 근데 생각할 수록 '민주주의'가 뭔지 모르게 되더란 말입니다.

단지 투표만 잘 하면 되는 것인가? 근데 그건 결국 4년 혹은 5년간의 '독재자'를 뽑는 것 아닌가? 우리 역사상 가장 '민주적'이었다고 불리는 지난 10여년 간의 정권에서도 경찰의 폭력과 검찰의 전횡은 여전했죠. 삼성을 앞세운 재벌의 통제받지 않는 권력의 힘은 더욱 커져만 갔죠.

결국 사람들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에만 매달리고 있습니다. 부동산만 문제인가요. 펀드는 문제가 안될까요.

하지만 각자도생의 길에서조차 목숨 부치기에만 힘겨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간당 4천원의 최저임금에 자신의 삶을 거는 사람들이죠. 한겨레21에서 '노동OTL' 시리즈로 기자들이 직접 식당 종업원, 마찌꼬빠 직원 생활을 경험하고 쓴 기사가 화제를 모았었습니다. 상도 받았죠. 이 기사가 책으로 묶여 나왔습니다.



4천원인생 :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 시대의 노동일기
한겨레21 취재팀|한겨레출판사


'코끼리를 쏘다'에서 조지 오웰이 부랑자의 삶을 경험하기 위해 일부로 경찰에게 체포되는 것을 보며 우리 언론에선 언제쯤이야 이만한 보도를 볼 수 있을까 생각했었죠. 한겨레21이 바로 그 시도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첫번째 결과물이 4천원인생이죠. 최근에도 영구임대아파트의 주민을 취재한 '영구빈곤보고서(링크)'로 관심을 모았었습니다. 이 시리즈도 책으로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빈곤은 '부자나라' 일본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몇년 전에 '부자 나라 가난한 국민'이란 책도 나왔었죠. NHK에서도 '워킹푸어'에 대해 본격적으로 보도를 했더군요. 그 결과물이 책으로 나왔습니다.



워킹푸어 : 왜 일할수록 가난해지는가?
NHK스페셜 취재팀|열음사


분명 빈곤은 가난한 몇몇 나라들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되레 다 같이 가난한 시절이 더 그리울 정도죠. 지금과 같은 격차는 없었으니까요.

문제는 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점점 낮아진다는 것이죠. 이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개입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국가의 공적부조만이 이러한 악순환을 끊어낼 현재의 유일한 가능성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 손낙구씨가 펴낸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에 의하면 가난한 자들은 그들의 처지 때문에 정치에 관심을 갖지 못하죠.

그뿐 아닙니다. 국가의 운영과 관련된 많은 것들은 점점 전문화된 관료의 책임으로 떠맡겨지면서 국가는 하나의 회사처럼 변질되어 갑니다. 이명박이 'CEO 대통령'을 자임하는 것, 점점 많은 나라에서 기업인 출신 정치인이 늘어가는 것, 아니 그것을 떠나 국가의 운영 원리 자체가 기업의 원리인 경쟁과 효율에 포박되어가는 것 자체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누구나가 '민주주주의자'임을 자처하고, '민주주의'를 찬양합니다. 하지만 우린 되물어야 합니다. '민주주의 너는 누구냐?'라고.



민주주의는 죽었는가? : 새로운 논쟁을 위하여
조르조 아감벤, 알랭 바디우, 다니엘 벤사이드, 웬디 브라운, 장-뤽 낭시, 자크 랑시에르, 크리스틴 로스, 슬라보예 지젝|난장


8명이 이 질문을 다시 정식화 하거나 나름의 대답, 혹은 화두를 던집니다. 한국의 2008년 촛불을 언급한 자크 랑시에르의 인터뷰는 흥미롭지만 짧은 지문 속에서 단번에 어떤 '정답'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옮긴이가 서두에서 말하 듯 이 책은 정답을 던져주는 글이 아닙니다. 부제 그대로 새로운 논쟁을 시작하기 위한 화두를 던진 것이죠.

그래서일까요. 책은 짧지만 술술 읽히진 않습니다. 중간중간 멈추고 생각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87년 6월 항쟁 이후 20여 년.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할 때입니다.



p.s. 요새 마르크스가 좀 팔리나봐요. 특히 자본론. 여기저기서 책이 많이 나오네요. 국내외의 저자들이 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입문서를 비롯해 자본론 해설서가 그야말로 쏟아져나오는 듯 합니다. 거기에 자본론의 번역자인 김수행 교수도 한 손 보탰네요.


청소년을 위한 자본론
김수행|두리미디어


잠깐 넘겨봤는데(읽진 않았습니다 ㄱ-) '청소년을 위한'이란 표현 그대로 '참고서' 느낌입니다. 판형도 크고 곳곳에 다양한 그림ㆍ사진과 해설이 놓여있습니다.

Posted by 때때로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