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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에 해당되는 글 2

  1. 2013.11.22 응답하라 1994에 답함
  2. 2012.08.21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힘으로부터 벗어나기 (2)
2013.11.22 13:30

응답하라 1994에 답함 언론스크랩2013.11.22 13:30



'응답하라 1994'가 시작할 때만 해도 전작인 '1997'을 넘어설까 싶었다. 그런데 어느새 전작보다 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그 만큼 더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그 중 눈에 띄는 것들은 '운동권'의 시각에서 아쉬움을 토로하는 글이다. 황진미와 김낙호의 글이 그렇다.

사실 이 드라마는 과거를 배경으로 한 '연애' 드라마다. 둘은 당대의 시대상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드러낸다. 김낙호는 "소품으로 향수를 자아내는 것을 넘어, 특정한 시대상을 꿰뚫어 나를 감동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한다
(응답하라 1994는 퓨전사극이다… 훌륭한 소품 너머 부족한 2%ㆍㅍㅍㅅㅅㆍ링크). 황진미는 이 드라마에서 "주목할 것은 상실"이라며 "그때는 아직 명문대에 지방 학생들이 많이 진학했고, 대학에 공동체문화와 연대감이 있었으며, 계급 격차보다 문화 격차가 더 큰 화두였고, 취업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였음을 동경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94학번들이 졸업 직전에 외환위기를 맞아 청년실업에 내몰리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응사'가 기억하지 않으려는 것ㆍ한겨레ㆍ링크).

다른 드라마들에선 문제시되지 않았을 것들이 이 드라마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 드라마가 제목에서부터 한 시절을 호출하기 때문일 것이다. 타리크 알리가 쓴 '1968: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은 1968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진보를 향한 투쟁의 풍경을 꼼꼼히 담고 있고 플로리안 일리스의 '1913년 세기의 여름'은 1차 세계대전 직전 유럽의 주요 장면들을 그려낸다. 우리는 '응답하라 1994'에서 이러한 것들을 바라는 것일까?

김낙호와 황진미가 놓치지 않고 지적했던 1990년대 중반의 복잡한 상황이 우리를 더 그러한 회고로 이끄는 듯 싶다. 강남 압구정동과 홍익대학교 앞 거리에 오렌지족이 출몰하고 과 종강파티를 '락카페'에서 열기도 하던 시절. 한편 GATT가 WTO로 전환하면서 쌀 개방에 반대하는 투쟁이 서울까지 이어졌었던 때. 전라도 지역의 학생들은 열차를 멈춰 세워 타고 서울로 올라와 최루탄 속에서 파이프를 휘둘렀었고 서울에선 전지협 노동자들이 경희대 뒷산을 넘어 경찰에 쫓겼다.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하던 89~90학번은 '운동의 시대'는 갔다며 동아리방과 과방에서 바둑과 음주에 빠져있었다. 한총련이 1993년 출범했지만 아직은 전대협 진군가가 더 익숙했었고 운동권 대자보의 화려함은 그 이전과 이후를 통털어 절정을 이뤘던 때였다.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을 주인공으로 한다면 더 그렇다. 황진미의 지적과 달리 '문화 격차'는 '계급 격차'를 상기시키며 대학 '공동체'는 분열되기 시작한 때다. 이미 당시에도 명문대 진학생의 절대 다수는 서울 강남 출신이었다. 지방 출신 학생은 강남 출신 학생들과 격차를 느끼며 분열됐다. 지금도 여전한 지역차별 때문인지 경상도 출신 학생들의 사투리는 과방과 동아리방을 가득 채웠지만 전라도 출신 학생들의 사투리는 듣기 어려웠다. 여학생의 사투리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것은 1994년을 '호출'하려고 할 때 당시 고등학교 졸업생의 절반 이상은 여전히 대학을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문대와 산업대 방송대를 포함한 대학 진학률이 기껏 45%였던 시대다. 연세대와 같은 명문대를 가는 학생은 더 극소수일 수밖에 없다. '응답하라 1994'든 이 드라마의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들이든 놓치고 있는 것은 1994년을 호출할 때 '대학'은 당시 젊은 층이 살던 세계의 '절반'도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절반 안에서도 이미 낭만적 공동체는 해체되고 있었고 계급 격차가 대학 내 문화를 지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좌파는 '대학생'을 단일한 집단으로 고려하는 경향이 있는 데 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실이 아니었다).

1980년대가 1990년대부터 작가들에 의해 회고되기 시작했던걸 고려하면 1990년대에 대한 회고는 많이 늦었다. 아니 앞으로도 1980년대 만큼의 회고가 나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잊혀질 수 없는 이 시절을 언젠가 누군가는 기록해주길 바란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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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
전성원 지음|인물과사상사

악당의 음모가 세계를 위협합니다. 의연히 일어선 영웅은 정의의 이름으로 악을 징치하죠. 세상이 이렇게만 돌아가면 얼마나 편하겠습니까. 영웅 이야기로 먹고 살아가는 DC와 마블의 만화조차도 이러한 단순한 구도의 이야기는 버린지 오래죠.

그럼에도 여전히 선/악의 이분법적 세계관은 매우 유혹적입니다. 좌파, 혹은 진보진영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잘못된 것은 권력자들과 자본가들의 폭력ㆍ착취ㆍ억압의 탓으로 돌려집니다. 하지만 마르크스부터 시작해 여러 혁명가들이 지적해왔 듯이 지배자들이 단지 강압을 통해서만 지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의 의식ㆍ일상을 지배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의도적으로, 또는 우연하게 만들어냅니다. 지배계급의 힘은 눈에 보이는 폭력 만이 아닙니다. 피지배계급 스스로 지배계급의 보이지 않는 사슬에 얽매이게 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힘입니다.

눈에 보이는 폭력ㆍ착취ㆍ억압의 사슬을 끊는 것과 함께 보이지 않는 사슬로부터 스스로를 풀어내지 않으면 어느새 우린 또다른 지배계급의 사슬에 제발로 묶이게 될 것입니다. 지배받는 계급의 사람들이 체제에 맞서 자기계몽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자기계몽은 무엇보다 우리 자신의 행동과 의식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반성적으로 살피는 데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의 저자 전성원은 서문에서 바로 이 자기계몽, 즉 우리의 일상과 의식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밝히는 것을 책의 가장 중요한 의도라고 밝힙니다.

이 책이 다루는 16명, 책의 부제에 따르면 '헨리 포드부터 마사 스튜어까지' 16명은 우리의 일상 생활과 의식은 물론 현대 세계질서의 가장 중요한 것들을 만들어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흔히 '자기계발'을 위한 책들에서 우리가 본받고 따라야할 인물들로 인용되곤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성취엔 그 만한 그늘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단순히 기계적 균형감에 의거해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만들어놓은 (하지만 숨겨져 있기 일쑤인) 규칙이 당대에 어떤 진보를 낳았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지금껏 우리가 따라야 할 것들인지에 의문이 이어집니다.

현대 자본주의를 만든 '영웅'의 이면을 드러내보이며 우리가 넘어서야 할 과제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 책을 '반영웅전'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자 전성원은 '황해문화'라는 계간지의 편집장입니다. 2000년대 초반 개인 홈페이지 제작에 관심이 많았던 분들에겐 '바람구두'라는 닉네임으로 더 유명하죠. 그의 홈페이지(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ㆍ링크: 지금은 닫아놓은 상태입니다)에 담긴 문학ㆍ역사ㆍ인물ㆍ문화 정보는 아직 인터넷 '백과사전'이 충분하지 않던 시절에 정말 요긴하게 쓰였습니다. 홈페이지의 편집(서체와 크기, 행간의 조절)ㆍ디자인도 매력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그의 홈페이지는 웹의 '하이퍼링크'를 가장 유용하게 사용한 사이트였습니다.

홈페이지에서 드러났던 그의 박학다식은 이 책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납니다. 인물과 그 주변, 당대의 역사ㆍ문화를 아우르는 이야기가 매력적인 책이죠. 순서에 관계없이 관심있는 인물 이야기 먼저 읽을 수 있으니 500쪽이 약간 넘는 이 책의 분량이 독서에 걸림돌이 되진 않을 것입니다.


2. 굶주리는 세계, 어떻게 구할 것인가?
장 지글러 지음|양영란 옮김|갈라파고스

우리에게 다시 세계적 '빈곤'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 장 지글러. 그는 이번 책에서 바이오 연료와 곡물기업들의 투기 문제를 다룹니다.

그는 세계식량농업기구와 세계식량계획이 유엔 기구로 만들어진 역사를 2차 세계대전의 기아 전략으로부터 찾습니다. '기아'가 제3세계 만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절 유럽도 기아 문제로 고통받았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그로부터 배운 교훈을 통해 세계식량농업기구와 세계식량계획과 같은 기아 근절을 위한 국제적인 합의와 실천이 시작됐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러한 합의는 위협받고 있습니다. IMF, 세계은행, WTO와 같은 경제기구들은 기아 근절을 위한 국제적 노력을 노골적으로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 배후에는 세계적 곡물기업들과 바이오연료 전략이 있습니다.

장 지글러의 글은 언제나 쉽게 읽힙니다. 고통에 대한 연민과 세계시민적 책임감은 우리에게 '정의'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킵니다.


3. 좌파 아빠가 들려주는 좌파 이야기
앙리 베베르 지음|임명주 옮김|에코리브르

저자인 앙리 베베르는 흔히 말하는 '68세대'입니다. 그는 68혁명 당시 혁명적공산주의청년회(JCR) 활동을, 이후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 JCR의 후신) 회원으로 좌파 정치인의 길을 걸은 사람입니다. 지금은 사회당 당원으로 있지만 그가 '좌파' 정치인인 것은 분명합니다. 유럽의회 의원까지 했으니 좌파 정치인 중에서도 꽤나 성공적인 길을 걸었다고 봐야겠죠.

그가 자신의 딸과 나눈 대화 형식으로 좌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2000년 즈음 쓰여진 책이라 지금과 약간은 다른 정치 상황을 배경으로 합니다. 하지만 그정도 차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지역적 차이를 뛰어넘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감안할 수 있는 정도죠.

아무래도 초등학생 정도의 어린 딸에게 들려주는 형식이라 기본이 되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좌파/우파의 이념이 여전히 중요함을 강조하는 이 책은 우리나라의 성인들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해줄 것 같습니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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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etas 2012.08.28 17: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책을 많이 읽으시네요! 저도 제가 책을 많이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물론, 거의 '자뻑' 수준입니다), 이건 도저히 넘볼 수가 없는 ... ㅠㅠ 언급하신 책 가운데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는 꼭 한 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강조하신 "<b>반영웅전</b>"이라는 측면에서 이 책은 정말 저의 구미를 아주 강하게(!) 끌어 당깁니다.

    • 때때로 2012.08.28 19: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읽는 책들은 얇고 흥미 위주의 책들이라 술술 넘어가기도 하고, 제가 책을 좀 대충 읽는 편이라 그래요. 좀 제대로 공부해야하는 데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는 앞으로 추천할 때 빠지지 않을 책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 다룬 인물들에 관한 책과 글이 많기는 하지만 보통은 '위인'에 대한 칭찬만 가득하죠. 전성원씨의 책은 역사적 배경과 함께 그 이면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