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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SC 08년7월3일 '서재가 당신을 말한다'

때때로 2008. 7. 3.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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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이현의 서재. 사진=한겨레

어릴 때부터 서재를 갖는 게 꿈이었죠. 책이 많은 집에 가면 무척 부러웠어요. 금성사에서 나왔던 세계 위인전이라 던가 세계문학전집이라던가 심지어 만화책 보물섬까지 제 부모님은 어려웠던 가계 사정에도 책에 대한 투자만은 아끼지 않으셨죠. 그 영향 때문인지 '책 읽기'보다는 '책 모으기'에 흠뻑 빠졌었죠.

읽지 않지만 왠지 있어 보이는 책으로 지적 허영심을 때우는 건전한 습관은 이때부터 길들기 시작해 도무지 서문 끝까지도 독파가 요원한 푸코와 알튀세르와 <이론>지 따위로 책장을 채우던 대학시절 정점에 이르렀다. 저서 한 줄 안 읽었어도 들뢰즈를 만나면 선뜻 악수라도 요청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친근감을 불러 넣어준 <키노>를 책장에 차곡차곡 채워 넣는 것도 큰 재미였다.

하지만 가난한 학생의 주머니  사정에 만족할 만큼 책을 사진 못했죠. 학생 때는 본의 아니게 도서관에 많이 있었죠. 그리고 지금에 와서 고백하자면 서점에서 몰래 들고 나온 책들도 꽤나 됐었어요. 뭐 정당하지 못한 행위로 얻은 책이라서 그런지 그 책들은 지금은 모두 어딘가로 사라졌더군요. 그때에 대한 반성 때문인지 제가 취업을 하고 경제적으로 자립이 가능해지면서는 단 한 줄을 읽기 위해서라도 책을 사게 됐죠.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기억 때문일까요. 몇 번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사기도 했지만 전 여전히 오프라인 서점을 애용해요.

[소설가 정이현씨는] 배송을 기다리는 게 싫어 꼭 오프라인 서점에 가서 책 구경을 하고 표지를 열어 보고 대여섯 권씩 무겁게 들고 오는 과정과 읽기까지를 다 좋아하지만 책을 소유하고 싶은 욕구는 별로 없다.

물론 전 '소유' 자체를 굉장히 소중히 여기는 편이라 읽지 않는 책도 한무더기씩 쌓아놓곤 해요. 그나마 전 제가 책을 많이 읽고 많이 산다고 생각했어요. 출판사에 다니는 제 친구들과 선배들한테 제 덕에 먹고 산다고 큰소리도 치곤 했죠.

[영화평론가 이동진씨는] 특히나 책 수집에 대한 애정은 별나서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며 한 달에 100만원 가까운 돈을 책 사는 데 바쳐왔다. 30평 아파트는 모든 방과 거실, 베란다, 현관과 화장실 귀퉁이까지 살뜰하게 책장으로 꼭꼭 채웠다. 장식장과 책장 기능을 겸하는 보통 책장은 책과 칸막이 사이의 공간이 아까워 직접 사이즈를 맞춰 무려 8단짜리 책장을 짰다.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물론 연봉이 많은 직장에 다니신 분이긴 했지만 제가 같은 연봉을 받았어도 한 달에 100만원어치 책을 샀을까를 되물어보면 그렇다고 자신있게 말하진 못할 것 같네요.

책은 사는 것보다 읽는 게 중요하죠. 하지만 역시 실천에 옮기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부족한 '읽기'를 '수집'으로 대체하는 지금의 생활을 언제나 중단할 수 있을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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