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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타흐리르 광장부터 뉴욕까지, 그리고 다시 서울

때때로 2011. 10. 17. 15:40

10월 15일 월스트리트로 상징되는 금융기업의 탐욕과 부패에 맞서 세계 1500여개 도시에서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함께 점령(Occupy Together)"했다. 한국에서도 서울 여의도ㆍ서울역ㆍ덕수궁 앞에서 행동이 이어졌다. 이날 Occupy Seoul에는 외국인들의 참여도 눈에 띄었다. [사진=自由魂]


토요일(15일)은 타흐리르 광장에서부터 미국 뉴욕의 타임스퀘어까지 1%에 맞선 99%의 행동이 세계를 흔든 하루였습니다. 1500개 이상의 도시에서 노동자ㆍ학생ㆍ농민이 거리로 쏟아져나왔습니다. 대체적으로 평화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는 격렬한 시위가 일어났죠.

서울에서도 Occupy Seoul 시위가 열렸습니다. 낮부터 거센 비가 이어져 걱정했지만 집회를 시작한 6시 이후는 대체로 비가 안와 큰 무리 없이 국제 행동의 날 행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의 행동은 서울 대한문 앞에서 진행됐습니다. 300여 명의 사람들이 참여한 가운데 여느 집회와 다르지 않게 열렸죠. 세계적인 저항이라 그런지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참여도 눈에 띄었습니다.

토요일의 시위는 한국에서도 동참했다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미국ㆍ유럽의 운동과 한국은 역시 다르더군요. 조선일보가 이미 그 약점을 눈치 채고 '시위꾼들 만의 집회'로 조롱하듯이 한국에서의 활동가들은 이 시위를 계기로 대중적인 활동을 만들려는 의지도 고민도 부족해보였습니다. 참가자의 숫자가 운동의 성패를 결정한다고 보진 않습니다.소수일지라도 집회의 참가자들을 이후 더 큰 운동을 이끌어낼 적극적인 소수로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사불란한 피켓라인, 방송차량과 연단, 거기에 미리 준비된 공연 등 토요일 서울의 시위는 참가자를 수동적인 소수로 만드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한 모습이었습니다. 세계적 운동이 계속되고 있기에 한국에서의 운동도 성장할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좌파들이 이런식으로 준비해서는 한국에서 유의미한 운동으로 성장하기는 어렵다고 보입니다.


10월 15일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를 가득 메운 시위대. [사진=OccupyWallst.org]


런던의 시위대. [사진=OccupyWallst.org]


이탈리아 로마. [영상=OccupyWallst.org]


스페인 마드리드. [영상=OccupyWallst.org]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이 하나의 전환점을 돈 지금, 그 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몇 가지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1.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은 단순히 경제위기 때문에 시작된 운동이 아닙니다. 지금의 위기는 2008년 위기와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3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 월스트리트로 상징되는 금융자본과 대기업에 맞선 행동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2008년 위기의 즉각적인 대응은 '티파티'라는 우익 운동이었습니다. 위기에 직면하자 정부가 나서서 기업 살리기에 나섰습니다. 메인스트리트로 불리는 노동자, 중산층이 자신의 모기지와 의료보험을 잃고 거리로 내쫓길 때 정부는 기업들 살리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구제금융을 받은 금융기업은 성과급 잔치를 벌였고요. 스티글리츠가 '기업복지'라고 부르고 지젝이 '기업 사회주의'라고 부른 것에 대한 반발이 극우파의 성장으로 나타난 것이죠.

그렇게 3년이 지났지만 나아진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잠시 위기를 극복한 듯 싶었지만 국가로 전이된 기업의 부실은 재정적자 위기로 다시 등장했습니다. (특히 남유럽과 남미에서) 정부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감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감축은 일자리의 축소, 임금ㆍ연금 삭감, 교육의 부실화, 의료보험 등 일반적 복지의 축소를 통해 이뤄집니다. 이러한 정책은 빈민층보다 중산층에게 더 큰 타격을 입힙니다(일반적으로 복지제도의 최대 수혜층은 빈민층보다 그 위의 중산층입니다). 그리스에서는 이에 대한 저항이 거의 모든 계층에서 동시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칠레에서는 교육, 스페인에서는 청년실업이 최대 이슈가 되고 있죠. 미국에서는 이 모든 위기에도 불구하고 자신들만의 성과급 파티를 이어가고 있는 월스트리트에 대한 반감으로 나타났습니다.

결국 경제위기 자체보다는 경제위기를 이 체제의 엘리트들이 처리하는 방식, 즉 1%의 부자들과 금융기업들에 대한 혜택을 더욱 강화하는 방식에 대한 반감이 99%의 사람들의 생활수준 위축과 결합되면서 분노가 터진 것으로 보입니다.

2. 경제위기와 정치위기라는 외부적 위기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었던 소수의 행동이 15일의 거대한 행동을 이끌어냈습니다. 일반적인 언론에서의 보도와 달리 미국의 시위도 (그들 표현대로 하자면) '전문 시위꾼'들이 조직하고 만들어낸 시위입니다. 그들은 스페인의 광장 점거 시위와 이집트 혁명을 경험한 소수입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 체제에 의문을 던지며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해왔던 이들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 시위를 준비하면서 일반적인, 시위와 집회 등 운동 경험이 없는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원칙을 세우고 했습니다.

먼저 살펴볼 것은 'General Assembly'입니다. 물론 커다란 규모의 저항에는 항상 이와 같은 것들이 만들어집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죠. 문제는 이 총회를 통해 참가자들의 '적극성'을 어떻게 끌어내느냐입니다. 첫째로 그들은 연단을 없앴습니다. 높은 연단은 운동에 처음 참가한 이들이 발언 신청하는 것을 어렵게 합니다. 연단을 없애 누구라도 쉽게 발언할 수 있게 했습니다(물론 그럼에도 보다 적극적인 소수가 발언을 하겠지만). 둘째로 마이크와 앰프를 없앴습니다. 그들은 'Mic Check(소리통)'라는 방법으로 참여자들의 육성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게끔 했습니다. 이는 발언을 듣는 청중도 발언을 전달하는데 참가시킴으로써 수동성을 최소화시키는 효과를 냅니다. 일체감을 더욱 높이는 것이죠. 이러한 방법은 또한 참여 단위를 보다 적은 수로 쪼개 개인적으로 참여한 사람들끼리도 둘러서서 서로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현지에서의 집시법 때문에 그렇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후 이어진 경찰과의 충돌을 두려워하지 않는 행동에서 보이 듯 그것은 '합법'이라는 틀을 유지하기보다는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시위전술의 일종으로 해석하는게 맞는 듯 싶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2008년에 한국의 촛불시위 초기에 보인 모습과 거의 비슷합니다. 이를 통해 운동은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죠. 물론 이러한 것들을 한다고 해서 꼭 이 운동이 성공할 것이라는 건 아닙니다. 정형화 되고 일상화 된 노동조합 행사와 같은 집회는 개인의 적극성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기존 좌파 조직의 개입과 준비가 불필요하다는 건 아닙니다. 운동에 처음 참여하는 개인들을 보다 적극적인 집단의 중추로 만들기 위한, 그래서 운동을 더욱 확산시키는 불꽃의 하나로 만들기 위한 사려깊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General Assembly와 함께 눈에 띄는 것은 (거의 언제나 외국의 시위에서 볼 수 있지만) 개인이 만들어온 팻말입니다. 미리 준비해오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폐박스와 매직 등 팻말을 만들 재료를 준비해뒀죠. 이 역시 2008년 촛불시위 초창기에 한국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있었죠. 듀게에서도 7번국도님이 말을 쓸 부분을 비워놓은 팻말을 준비해와 듀게 참가자들이 직접 자신들만의 구호를 적을 수 있게끔 하기도 했었습니다. 기존 좌파조직의 일사불란한 피켓라인은 사진발이 잘 받긴 해도 개인적인 참가자들이 운동의 대열에 함께하는 것을 어렵게 합니다. 이와 함께 자신이 왜 99%인지를 직접 적어 인증샷을 올리는 페이지를 운영한 것도 유용한, 우리가 배울 만한 방법입니다.


15일의 한국 시위가 실망스럽긴 하지만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1500개 도시에서 함께 일어났던 이들의 경험을 올바르게 배울 수 있다면 한국에서는 보다 거대한 운동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한미FTA라는 시급한 쟁점, 비정규직ㆍ청년실업의 문제, 과중한 등록금 등 교육문제 등 일반적으로 제기도는 쟁점과 함께 저축은행 사태와 중소 음식업자들의 카드 가맹점 수수료를 둘러싼 저항을 주목해야 합니다.

저축은행은 부자들이 세금을 피하고 쉽게 이자소득을 얻기 위한 통로로 이용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난한 많은 이들이 지나치게 낮은 은행 저축이자 때문에 위험을 무릎쓰고(사실 대부분의 가난한 이들은 이 '위험'을 알지 못하죠. '은행'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실상은 은행이 아니죠) 고이율의 저축은행에 자신의 재산을 맡겼죠. 금융규제 완화로 등장한 유사 은행의 사기에 가까운 영업 문제입니다. 이를 통해서 부자들은 이익을 보고 가난한 이들은 생활수단을 잃고 있습니다.

음식업자들의 항의는 더욱 주목할 문제입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썩고 있던 중소자영업자의 위기가 이를 기폭제로 폭발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죠.
중소 자영업자들의 불만은 은행ㆍ카드 등 금융기업의 탐욕(높은 예ㆍ대금리 차와 수수료가 대표적이죠)에 직접 연결된 문제입니다. 게다가 이들 중소 음식업자들은 대부분 안정된 일자리에서 배제된, 언제 하층민으로 전락할지 모르는 (이미 전락해있는 상황일 수도 있는) 하층민을 대표합니다. 한국에서 '하층민'인 중소자영업자는 정규직 노동자의 '안전판' 역할을 합니다. 나이에 따라서 재취업의 기회가 제한돼 있고 퇴직 후 실업수당 등의 복지제도가 미비한 한국에서 중소 자영업은 일자리를 갖고 있는 노동자에게 '안전판' 역할을 하는 것이죠. 이들 중소 자영업자들이 몰락은 노동자 계급의 몰락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불만, 그에 반해 지배 엘리트들이 통치능력의 한계를 드러내는 상황에서 좌파들은 그들의 역량 이상의 역할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좌파들은 기존의 노동조합 사업과 같은 방식의 일상적 행동에서 벗어나 보다 급진적인 방식을 시도할 때입니다.


"사람들 이익보다 더중요해요"라는 한글 문구가 인상적이다. 아마도 구글 번역기를 사용한 듯하다. [포스터=Alexa Lindh]


General Strike 홈페이지에는 세계 여러 나라 말로 만들어진 'General Strike(총 파업)' 포스터가 올려져 있다. 한국어로 '총 파업'이라고 적힌 포스터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의 대통령이 '쥐'로 비유되고 있는 상황에서 총파업 포스터의 주인공이 고양이인 것이 인상적이다.


Occupy Together의 포스터 모음 페이지
Adbusters의 포스터 모음 페이지
General Strike 홈페이지의 포스터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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