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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 1권 3장 화폐 또는 상품유통 발췌ㆍ요약 본문

마르크스/엥겔스/자본론 요약

자본론 1권 3장 화폐 또는 상품유통 발췌ㆍ요약

때때로 2012. 4. 21. 14:21

제1절 가치의 척도

가치로서 모든 상품은 추상적 인간노동의 응고물이다. 따라서 상품들의 가치 크기는 같은 단위로 측정될 수 있다. 하나의 특수한 상품이 측정을 위한 기준으로 등장한다. 이 특수한 상품 금은 상품세계 공통의 가치척도, 화폐가 된다. 화폐상품 금은 가치의 일반적 척도로 기능한다. 상품의 가격은 그 상품의 가치를 화폐상품으로 표현한 것이다.

상품 X량=화폐상품 Y량
스마트폰 1개=금 3돈(70만원)


가치등식은 이제 처음의 간단한 모양으로 돌아갔다. 이 등식을 거꾸로 읽으면, 즉 가격표를 거꾸로 읽으면(금 3돈은 스마트폰 1개다) 온갖 상품으로 표현된 화폐의 가치량(구매력)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화폐는 가격을 갖지 않는다. 화폐상품을 일반적 등가물로 유지하기 위해선 그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는 등가물로 자기 자신을 두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는 동어반복일 뿐이다(금 3돈은 금 3돈이다).

“상품의 가격 또는 화폐형태는 …… 순전히 관념적인 또는 개념적인 형태이다”(122쪽). 무게나 부피와 같이 물리적으로 측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닌, 화폐상품과의 관계(동등성)에 의해 표현되기 때문이다. 가격표에 얼마를 써넣을 지는 상품 판매자 마음이다. “그러므로 화폐는 가치척도의 기능에서는 다만 상상적인 또는 관념적인 화폐로서만 역할한다”(123쪽). 그러나 가격은 실제의 화폐재료에 달려있다. 즉 화폐로 사용되는 재료의 생산에 얼마만큼의 추상적 인간노동이 응고되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스마트폰 1개의 가격은 금 3돈으로 표시될 수도 있고, 은 50g으로 표시될 수도 있다. 두 개의 상품(금과 은)이 화폐상품으로 사용될 때 두 상품의 가치 비율이 동일할 때는 아무런 문제없이 두 상품 모두 가치척도로 기능할 수 있다. 그러나 두 상품의 생산조건의 변화로 가치 비율이 변할 때 가격의 서로 다른 표현 사이에 교란이 발생한다.

상품의 가격은 금의 양으로 표시된다. 일정한 금의 양이 가치의 도량단위가 된다. 이제 금의 중량을 표시할 때 사용되던 도량표준이 가격의 도량표준에도 적용된다(서구의 화폐 명칭에는 아직도 이러한 금 중량의 도량표준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영국의 ‘파운드’화가 대표적이다).

“가치의 척도 및 가격의 도량표준은 화폐의 전혀 다른 두 가지 기능이다. 화폐가 가치의 척도인 것은 인간노동의 사회적 화신(化身)이기 때문이고, 가격의 도량표준인 것은 고정된 금속무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치척도로서 화폐는 다종다양한 상품의 가치를 가격[즉, 상상적인 금량]으로 전환시키는 데 봉사하며, 가격의 도량표준으로서 화폐는 이러한 금량을 측정한다.”(125쪽)

화폐의 가치척도로서의 기능과 도량표준으로서의 기능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금이 가치척도로서 봉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금 자체가 노동생산물”(125쪽)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의 가치는 가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가치의 가변성은 도량표준으로서 화폐상품의 기능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금의 가치 변화는 모든 상품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금의 가치가 절반으로 떨어질 때 노트북컴퓨터의 가격 금 6돈, 스마트폰의 가격 금 3돈은 동시에 노트북컴퓨터 금 12돈, 스마트폰 6돈으로 변화한다. 하지만 노트북컴퓨터와 스마트폰 가치의 상호관계는 여전히 2대 1로 동일하다. 화폐가치의 변화가 언제나 상품 가격의 비례적 변화를 불러오는 것도 아니다. 화폐가치와 상품가치가 동일한 비율로 오르면 상품 가격은 그대로일 수 있다.

이제 가격형태를 살펴보자. 금속의 무게로부터 유래한 화폐 명칭은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원래의 무게 명칭으로부터 분리된다.

“역사적 과정으로 말미암아 화폐 명칭이 그 무게 명칭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은 국민적 관습에 속하는 것으로 되었다. 화폐의 도량표준은 한편으로는 순수히 관습적인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일반적인 효력을 가져야 하는 것이므로, 결국은 법률에 의해 규제된다.”(127~128쪽)

따라서 다양한 “화폐 명칭에는 가치관계의 흔적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129쪽)게 됐다. 그러나 가치가 “물적일 뿐 아니라 순수히 사회적인” 화폐형태로 발전하게 된 것은 필연적이다. 이로써 가치량의 지표로서의 가격과 상품과 화폐의 교환비율로서의 가격에 모순에 처하게 된다.

“상품가치량의 지표로서의 가격은 그 상품과 화폐의 교환비율의 지표이기는 하지만, 그 상품과 화폐의 교환비율의 지표[즉, 가격]는 반드시 그 상품의 가치량의 지표로 되지는 않는다.”(130쪽)

우선 상품에 대한 수요와 공급의 변동은 상품의 가격(화폐와의 교환비율)과 가치량의 양적 불일치를 불러올 수 있다. 또 하나의 모순은 질적인 것이다. “그 자체로서는 상품이 아닌 것[예컨대 양심이나 명예 등]이 그 소유자에 의해 판매용으로 제공”돼 가격을 가질 수 있다.

지금까지 가치의 척도로서의 화폐를 살펴봤다. 그러나 가격표만 붙인다고 상품 판매자가 실제 화폐를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상품은 무엇보다 화폐와 실제로 교환되어야만 한다.

“상품이 실제로 교환가치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그 현물형태를 벗어버리고 단순한 상상적인 금으로부터 현실적인 금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안 된다. …… 상품에 가격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상상적인 금을 상품에 등치하면 되지만, 상품이 그 소유자에게 일반적 등가(물)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금으로 대체되어야만 한다.”(131쪽)

따라서 우리는 2절 ‘유통수단’에서 상품이 어떻게 화폐로 변신하는 지 살펴보게 될 것이다.


제2절 유통수단

(a) 상품의 변태(變態: metamorphosis)
상품 판매가 성공해 그것을 필요로 한 사람(구매자)의 품에 들어가면 그것은 교환의 영역에서 떠나 소비의 영역으로 옮겨간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바로 교환의 영역에서 이뤄지는 상품의 형태변환(변태)다. 금이라는 상품의 소재에서 비롯한 신비적 기능이 상품과 교환(혹은 상품의 변태)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금은 화폐형태로서 가격을 통해 상품과 관계를 맺는다.

상품이 교환과정에 들어가면 그 내적 대립(사용가치와 가치의 대립)은 외적 대립, 즉 사용가치로서의 상품과 교환가치로서의 화폐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등식의 한 편에는 보통의 상품이 있는데, 그것은 현실적으로는 사용가치(使用價値)이다. 그것의 가치로서의 존재는 가격에서 다만 관념적으로 나타날 뿐이며, 이 가격을 통해 상품은 [상품가치의 진정한 화신인] 금과 관련을 맺고 있다. 그와는 반대로, 〔등식의 다른 한편에 있는〕 금이라는 물건은 오직 가치의 화신, 화폐로서만 나타난다. 따라서 금은 현실적으로 교환가치(交換價値)이다.”(134쪽)

이 등식을 도표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다.



다시 관심을 상품 판매자자에게 돌려보자. (아직 이 상품 판매자 A는 화폐 자체를 모으기 위한 욕망-화폐 퇴장의 욕망은 없다.) 상품 판매자 A가 자신의 상품 스마트폰 1개를 무사히 금 3돈과 교환에 성공한다. 그 후 그 상품 판매자 A는 이제 구매자가 되어 자신의 수중에 있는 금 3돈을 지불하고 다른 상품 판매자 B의 태블릿PC를 구입한다. 즉 상품교환은 판매와 구매 두 과정으로 나뉘어진다. 첫 단계에서 상품은 화폐로 전환되며, 두 번째 단계에서 화폐는 다시 상품으로 전환한다.

상품(C) - 화폐(M) - 상품(C)

상품의 화폐로의 성공적인 변신(판매)이 언제나 쉬운 것은 아니다. 판매되기 위해 상품은 “우선 화폐소유자에게 사용가치로 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그 상품에 지출된 노동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형태여야 한다. 다시 말해, 그 노동은 사회적 분업(分業)의 일환이어야 한다”(136쪽). 그러나 이 분업은 상품 생산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조직된 것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어제까지 상품 생산의 조직 작업 중 하나였던 것이 오늘은 독립된 상품으로 등장할 수도 있다(각종 부품산업의 발전, 아웃소싱과 같은 것들). 게다가 사회의 평균적인 생산조건은 생산자 개인의 사정과 무관하게 변할 수 있다. 즉 그의 노동지출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보다 더 많거나 더 적을 수도 있다.

“분업은 노동생산물을 상품으로 전환시키며, 또 그렇게 함으로써 노동생산물의 화폐로의 전환을 불가피하게 한다. 동시에, 분업은 이 전환의 성공 여부를 우연적인 것으로 만든다.”(138쪽)

즉 판매는 “상품의 결사적인 도약”(136쪽)이고 그 과정은 진정한 사랑의 길처럼 결코 평탄하지 않다(138쪽). 그러나 우리는 이 상품의 결사적인 도약이 성공한 상황을 전제로 교환과정을 마저 살펴볼 것이다.

상품의 화폐로의 변화는 상품 소유자의 입장에서는 판매이다. 이 과정은 화폐 소유자 입장에서는 구매의 과정이기도 한다. 금의 생산지에서는 생산물이 처음부터 화폐형태로 이 과정에 들어선다. 다른 곳에서 화폐는 다른 생산물의 성공적인 판매의 결과물로서 소유자에게 주어지면서 이 과정에 들어선다. 앞의 스마트폰 생산자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금 3돈으로 교환한 후, 다시 그 금 3돈으로 태블릿PC를 구입한다. 여기서 금 3돈의 소유자, 즉 스마트폰 구매자를 돌아보자. 그가 금 생산자가 아니라면 그는 다른 무엇인가를 판매해 화폐를 미리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가 바람막이 재킷을 판매해 금을 얻었다고 하자. 그럼 우리는, 애초의 스마트폰의 판매는 다른 운동, 즉 바람막이 재킷운동의 마지막 운동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생산자 A(철수)에게 그의 상품 스마트폰 1개의 생애는 그 자신이 태블릿PC를 구입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태블릿PC 생산자 B(정민)는 이 과정에서 얻은 금 3돈으로 또 다른 상품(디지털카메라)을 구매하게 될 것이다. 상품생산자의 생산 품목은 제한돼 있지만 그의 욕망은 보통 그보다 더 많은 분야에 걸쳐있다. “따라서 하나의 판매는 여러 가지 상품의 수많은 구매로 나누어진다. 그리하여 한 상품의 최종변태는 다른 상품들의 제1변태의 합계로 이루어지고 있다”(142쪽). “이와 같이 각 상품의 변태계열이 그리는 순환은 다른 상품들의 여러 순환과 뗄 수 없을 정도로 뒤엉켜 있다. 이러한 과정 전체가 상품유통(circulation of commodities)을 구성한다”(143~144쪽). 위의 교환과정을 역주(김수행)에 따라 표현하면 아래와 같다.



상품유통은 직접적인 물물교환과 형태 뿐 아니라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스마트폰 판매자 A(철수)에게 구매자 C(영희)가 어디서 어떻게 화폐를 얻게 됐는지는 중요치 않다. 마찬가지로 태블릿PC 판매자 B(정민)는 A(철수)가 지불한 화폐가 어떤 상품이 변태한 것인지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다.

“상품유통에서 우리들은, 한편으로는 상품교환이 어떻게 직접적인 생산물교환의 개인적 및 지방적 한계를 타파하고 인간노동의 물질대사를 발전시키는가를 보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상품교환이 어떻게 당사자들의 통제 밖에 있는 자연발생적인 사회적 연결망을 발전시키는가를 보게 된다.”(144쪽)

따라서 유통과정은 멈추지 않는다. 상품이 판매에 성공해 유통에서 탈락하면 화폐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한 상품이 다른 상품을 대체하면 화폐상품은 제3자의 손에 붙게 된다. 유통은 끊임없이 화폐라는 땀을 쏟아낸다”(144~145쪽).

판매가 곧 구매라는 사실 때문에 이 둘이 언제나 균형을 이룰 것이라는 주장을 마르크스 시대는 물론 지금도 흔히 들을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상품의 화폐로의 결사적 도약의 어려움을 다시 한 번 상기하는 게 필요하다. 또한 상품 판매자가 판매를 성공했다고 할지라도, 그가 곧바로 다른 구매를 할 것이라는 것은 오직 가정일 뿐이다. 화폐를 갖게 된 판매자가 다시 구매에 나서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은 판매에 성공할 수 없다.

“유통은 물물교환에 존재하는 [자기 생산물의 양도와 타인 생산물의 취득 사이의] 직접적 동일성을 판매와 구매라는 대립적 행위로 분열시킴으로써 물물교환의 시간적·장소적·개인적 한계를 타파한다. 서로 독립적이고 대립적인 과정들[판매와 구매]이 하나의 내적 통일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또한 바로 그 과정들의 내적 통일이 외적 대립을 통해 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 두 과정은 서로 보완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적으로 독립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이 두 과정의 외적 독립화가 일정한 점에 도달하면 그 내적 통일은 공황(crisis)이라는 형태를 통해 폭력적으로 관철된다.”(145~146쪽)

우리는 공황의 시기 한쪽의 넘칠 만큼 가득한 화폐와 다른 한쪽의 팔리지 않는 상품 더미를 동시에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유통에서의 모순은 아직 공황의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을 뿐이다.

(b) 화폐의 유통
상품유통의 결과 화폐는 그 출발점으로부터 끊임없이 멀어진다. 화폐는 상품 소유자의 품에서 다른 상품 소유자의 품으로 옮겨간다. 상품은 유통의 첫 단계에서 화폐와 그 위치를 바꾼다. 이제 상품유통의 후반은 화폐의 모습으로 통과한다. 상품 입장에서는 판매(상품의 화폐로의 전환)와 구매(화폐의 상품으로의 전환)의 반대 과정을 포함하지만 화폐 입장에서는 언제나 같은 과정(화폐와 상품의 자리바꿈)이다.

“상품유통의 결과[즉, 다른 상품에 의한 한 상품의 교체]는 마치 그 상품 자신의 형태변환에 의해 매개된 것이 아니라 유통수단으로서의 화폐의 기능에 의해 매개된 듯이 보이며, 마치 화폐가 [그 자체로서는 운동하지 않는] 상품을 유통시켜, 상품을 [그것이 비사용가치인] 사람의 손으로부터 [그것이 사용가치인] 사람의 손으로, 언제나 화폐 자신의 진행과는 반대의 방향으로 이전시키는 듯이 보인다. …… 그러므로 화폐유통은 사실상 상품유통의 표현에 지나지 않지만, 외관상으로는 반대로 상품유통이 화폐운동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 듯이 보인다.”(148쪽)

어떠한 상품이라도 유통에 들어와 제1의 형태변환을 겪은 후 유통으로부터 떨어져나간다. 그러나 화폐는 여전히 유통에 남아있다. 그렇다면 유통영역은 얼마만큼의 화폐를 흡수하는가?

유통과정에 들어온 각 상품은 가격에 의해 그 상상적인 화폐량을 등치하고 있다. 따라서 유통에 필요한 화폐량은 상품들의 가격총액이다. 상품가치가 변하지 않더라도 금의 가치 변화에 따라 가격이 그 반대방향으로 변한다는 것을 이미 앞에서 살펴봤다. 따라서 금의 가치가 변하면 그에 따라 유통에 필요한 화폐량도 증가하거나 감소한다. “이 경우 유통수단의 양의 변동은 분명히 화폐 그 자체에 의해 야기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유통수단으로서의 화폐의 기능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척도로서의 화폐의 기능에 기인하는 것이다”(150쪽).

화폐상품은 최초의 생산지에서 지속적으로 유통에 유입된다. 덜 발전된 상품교환에서 관습적으로 이뤄졌던 상품의 상대적 가치가 금의 가치에 의해 따라 평가되기 시작한다.

“이와 같은 조정과정은, [귀금속과 직접 교환되는] 상품의 대금으로 귀금속이 유입되기 때문에, 귀금속량의 계속적인 증대를 수반한다. 그러므로 상품들의 가격이 조정되어 가는 데 비례하여, 다시 말해 상품들의 가치가 귀금속의 새로운 가치(이미 떨어졌거나 어느 수준까지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에 따라 평가되는 데 비례하여, 그것과 같은 속도로 이 새로운 가격의 실현에 필요한 귀금속의 추가량도 이미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151쪽)

즉 유통수단으로서 금의 양이 늘어나서 상품 가격이 오르는 것이 아니다.

다시 유통수단의 양 문제로 돌아가자. 각 2원인 네 개의 상품이 동시에 다른 곳에서 판매된다고 보자. 가격총액은 8원이고 유통에 필요한 화폐량도 8원이다. 그런데 이 네 개의 상품이 순차적으로 판매된다고 보자.

밀 1쿼터 – 2원 – 아마포 20m – 2원 – 성경책 1권 – 2원 – 위스키 2갤론 – 2원

2원의 돈이 여러 상품의 가격을 순차적으로 실현시키고 마지막에 위스키 생산자의 손에 들어갔다. 이 때 유통에 필요한 화폐량은 2원이다. 즉 화폐의 회전회수에 따라 주어진 기간동안 유통에 필요한 화폐량은 달라진다.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즉 일정 기간에 유통수단으로 기능하는 화폐의 총량은 가격, 유통상품의 양, 화폐의 유통속도 이 세 가지 요소에 의존한다.

“화폐유통은 일반적으로 상품들의 유통과정[즉, 대립적인 변태들을 통한 상품들의 순환]을 반영하는 것”이다. 따라서 화폐의 유통속도는 상품의 유통속도-형태변환 속도, 각 변태계열들의 연속, 사회의 물질대사의 속도, 상품의 소멸과 유입 속도 등-를 반영한다. 상품유통의 정체 원인을 화폐량의 부족으로부터 찾는 것은 본말을 전도한 진단이다. 물론 “정부의 졸렬한 ‘통화조절(通貨調節)’로 말미암은 유통수단의 현실적 부족이 정체를 야기할 수 없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155쪽).

(c) 주화(coin). 가치의 상징
“화폐는 유통수단으로서의 기능에 의해 주화의 형태를 취한다”(159쪽). 가격의 도량표준을 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화를 제조하는 것 또한 국가의 일이다. 조폐소로부터 나오자마자 금화의 명칭(법정 무게)과 실체(실질적 무게)가 분리되기 시작한다.

“유통수단으로서의 금의 무게는 가격의 도량표준으로서의 금의 무게로부터 이탈하고, 그리하여 가격을 실현할 상품들의 진정한 등가물로 될 수 없게 된다.”(160쪽)

몇 가지 사정이 화폐유통에서 금속화폐를 다른 재료로 만든 토큰(token: 주화의 기능을 수행하는 상징)으로 대체하게 만든다. 우선 기술적으로 금을 아주 작은 단위의 주화로까지 만들기 어렵다. 또한 유통속도가 빠른 소규모 상품유통 영역(시장과 동네 구멍가게에서는 동전이 많이 사용되지만 백화점에서 동전을 보긴 어렵다. 회사 간 거래, 국가 간 거래와 같은 큰 규모의 거래에서도 마찬가지다.)에서는 금의 마모가 더 빨리 일어나므로 상징적 주화 혹은 저급 금속이 금화를 대체한다. 이는 애초에 저급 금속이 가치척도로 기능하다가 고급 금속이 대체한 역사적 사정도 이러한 가능성을 설명해준다. “금은 끊임없이 소액유통에 들어오지만, 은·동제의 토큰과 교체되어 끊임없이 거기에서 쫓겨난다”(161쪽). 토큰의 금속 무게는 법률로 정한다. 이들 소액유통에서 금속의 마멸이 더 빨리 일어남으로 주화기능은 사실상 그것들의 중량(가치)과는 관계없다. “금의 주화로서의 기능은 금의 금속적 가치로부터 완전히 분리된다”(162쪽). 주화의 상징적인 성격은 지폐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지폐는 화폐의 유통수단으로서의 기능으로부터 발생한다.

국가에 의해 유통에 투입된 지폐가 동일한 양의 금을 대신하는 한 그것의 운동은 화폐유통의 법칙을 반영한다. 그러나 지폐가 모든 유통수단으로서 모든 금을 대체할 때 가격의 도량표준에 문제가 발생한다. 지폐가 법률에 의해 규정된 금량보다 더 많이 유통된다면 “지폐는 상품유통의 내재적 법칙에 의해 규정되는 금량만을 대표하게 될 것이다”(163쪽).

아무런 가치도 지니지 않은(혹은 그 표기량보다 더 적은 가치만 지닌) 주화와 지폐는 유통의 영역에서 금을 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화폐상품 자체를 이러한 상징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 유통수단으로서 화폐를 볼 때 가능해 보인다. “화폐를 끊임없이 한 사람의 손에서 다른 사람의 손으로 이전시키는 과정에서는 화폐의 단순한 상징적인 존재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를테면, 화폐의 기능적 존재가 화폐의 물질적 존재를 흡수하는 것이다”(164~165쪽). 그러나 화폐의 상징(주화나 지폐)이 사회적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강제적인 통용력이 필요하다. 이는 국가의 강제 아래서 국내 유통 분야 안에서만 유효한 것이다.

“이 유통분야 안에서만 화폐는 오로지 유통수단의 기능에 전념하며, 따라서 지폐의 형태로 순수히 기능적인 존재양식[이 경우 화폐는 금속실체와 외부적으로 분리된다]을 얻을 수 있다.”(165쪽)


제3절 화폐

마르크스는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해 다시 한 번 화폐를 정의한다.

“가치척도로 기능하고, 따라서 또한 자신이 직접 또는 대리물을 통해 유통수단으로 기능하는 상품이 화폐(貨幣)이다.”(165쪽)

가치척도 기능에서 화폐는 관념적이고, 유통수단 기능에서는 다른 것(주화와 지폐)이 대리 가능하다. 그러나 금이 화폐로 기능하기 위해 그 몸체 그대로 나타나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a) 퇴장화폐
상품유통의 발전과 함께 상품의 제1변태의 산물, 즉 화폐를 확보하려는 필요성과 열망이 발생한다. 자신에게 비사용가치인 상품을 사용가치인 다른 상품으로 교환(즉 구매를 위한 판매)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화폐의 취득 자체가 목적인 판매가 나타난다.

“이제 상품이 변화한 형태〔화폐〕는 상품의 절대적으로 양도가능한 모습[또는 오직 순간적인 화폐형태]으로 기능하지 못하게 되고, 이리하여 화폐는 퇴장화폐(退藏貨幣: hoard)로 화석화되며, 상품판매자는 화폐퇴장자로 된다.”(166쪽)

상품유통의 첫 단계에서는 사용가치의 잉여분이 상품으로 판매된다. 따라서 판매에 따른 대금, 금과 은 자체가 여유분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소박한 형태의 화폐퇴장은 금과 은에 대한 전통적인 열망을 설명한다. 상품생산의 발전은 다른 이유에서 화폐퇴장의 열망을 발전시킨다. 상품의 생산과 판매에서 걸리는 시간 때문에 구매를 위한 여유분의 화폐가 먼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상품유통의 확대에 따라 언제라도 이용할 수 있는, 절대적으로 사회적인 형태의 부(absolutely social form of wealth)인 화폐의 권력이 증대한다.”(168쪽)

화폐는 무엇이 변화한 것인지 드러내지 않는다. 화폐에서는 상품의 모든 질적 차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화폐는 “누구의 사유물(私有物)도 될 수 있는 외적인 물건이다. 그리하여 사회적 힘이 개인의 사적인 힘으로 된다”(169쪽). 화폐의 가치가 변동될 수 있다는 사실이 퇴장의 욕구를 방해하진 않는다. 100돈의 금이 50돈의 금보다 더 큰 가치를 갖는 것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한 사정이 금을 모든 상품의 일반적 등가물이 되는 것을 방해하지도 않는다.

“화폐는 어떤 상품으로도 직접 전환될 수 있기 때문에 물질적 부(富)의 일반적 대표라는 점에서 질적으로나 형태상으로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현실의 화폐액은 모두 양적으로 제한되어 있고, 따라서 구매수단으로서 한정된 효력만을 가진다. 화폐의 이러한 양적 제한성과 질적 무제한성 사이의 모순은 화폐퇴장자를 축적의 시지프스적 노동으로 끊임없이 몰아넣는다.”(170쪽)

화폐를 보유하기 위해선 화폐의 유통을 막아야 한다. 즉 상품의 변태는 판매에서 멈춰야 한다. 따라서 화폐퇴장자는 금욕을 중요한 덕목으로 삼는다.

화폐퇴장이 금에 대한 오도된 욕망으로부터 비롯한 것만은 아니다. “퇴장화폐는 금속유통의 경제에서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한다”(171쪽). 상품의 유통속도와 가격의 변동으로부터 화폐유통량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데서 퇴장화폐가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퇴장화폐의 저수지는 화폐가 유통으로 흘러 들어가고 유통으로부터 흘러 나오는 수로로 되며, 이리하여 유통하고 있는 화폐는 결코 그 유통수로에서 범람하지 않는다.”(171쪽)

(b) 지불수단
상품유통의 발전과 함께 상품의 양도와 가격의 실현이 시간적으로 분리된다. 이 경우 화폐는 지불수단이 된다.

“유통수단이 퇴장화폐로 전환된 것은 유통과정이 제1단계 이후에 곧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 그런데 지불수단이 유통에 들어가는 것은 상품이 이미 유통에서 빠져나온 이후의 일이다. 화폐는 이제 과정을 매개하는 것이 아니라, 교환가치의 절대적 존재형태[즉, 일반적 상품]로서 독립적으로 개입해 유통과정을 종결짓는다.”(174쪽)

즉 판매(상품-화폐)의 과정에 앞서 구매(화폐-상품)가 수행된다. 가격은 화폐청구권(채권)으로 실현된다. 그 상품은 화폐로 실현되기에 앞서 사용가치로 전환된다. 제1변태(판매)는 나중에 완성된다.

수많은 판매가 동시에 일어난다. 따라서 유통화폐량이 유통속도를 못 따라갈 수 있다. 따라서 지불수단의 절약을 위한 방법들이 만들어진다. 일정한 장소에 일정한 날짜로 지불의 결제를 정하게 되는 것이다. 채무의 연쇄에 따라 지불해야 할 실제 화폐는 상소되며 유통되는 지불수단의 양은 더 절약된다. 이렇게 지불이 상쇄되는 한 “지불수단으로서의 화폐는 계산화폐(計算貨幣) 또는 가치척도로서 오직 관념적으로 기능할 뿐이다”(175쪽). 그러나 현실적으로 지불이 이뤄져야 하는 한 화폐는 유통수단이 아닌 “사회적 노동의 개별적 화신, 교환가치의 독립적 존재형태, 일반적 상품으로 등장”(176쪽)한다.

“이 모순은 산업·상업의 공황 중 화폐공황(貨幣恐慌: monetary crisis)으로 알려진 국면에서 폭발한다. 이 화폐공황은, 지불들의 연쇄와 지불결제의 인위적 조직이 충분히 발전한 경우에만 일어난다.”(176쪽)

원인이 무엇이든 교란이 전면적으로 나타났을 때 화폐는 계산화폐라는 관념적인 모습을 벗고 실제로 지불해야 할 ‘경화’로 변한다. 얼마든지 화폐로 변환 가능해보였던 자산들은 더이상 화폐를 대신할 수 없게 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부르주아는 호경기에 도취되어 자신만만하게 ‘상품이야말로 화폐’라고 하면서, 화폐를 순전히 관념적 산물이라고 선언했다. 그런데 이제는 모든 시장에서 화폐만이 상품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176쪽).

우리는 이러한 화폐공황의 고전적인 예를 2008년 미국에서 발견할 수 있다. 부동산 가격이 계속 상승하고, 언제든 현금으로 전환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이 광범위한 부동산 대출(서브프라임모기지)의 증가로 이어졌다. 원인이 어찌됐든 채무자들이 더이상 채무를 지불하지 못하게 됐을 때 월스트리트의 금융가는 화폐의 부족에 시달렸다. 미국 연방준비은행은 조폐공장에서 돈을 찍어내 헬리콥터로 뿌리듯 금융가에 살포해야 했다.

“공황에서는 상품과 그 가치형태인 화폐 사이의 대립은 절대적 모순으로까지 격화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화폐의 현상형태가 어떠하든 상관이 없는데, 지불을 금으로 하든 은행권과 같은 신용화폐로 하든 화폐기근(貨幣饑饉: monetary famine)은 여전히 완화되지 않는다.”(176~177쪽)

신용화폐는 지불수단으로서의 화폐의 기능으로부터 발생한다. 이때는 채무증서 자체가 화폐를 대리해 유통된다. 월스트리트에서 최신의 금융공학을 이용해 자산을 유동화시킨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한편 지불수단으로서 화폐를 확보하기 위해서도 준비금이라는 형태로 퇴장화폐가 필요하게 된다.

(c) 세계화폐
국경을 넘어선 화폐는 그 국내적 기능-가격의 도량표준, 주화·지폐 등의 국지적 기능-을 벗어버린다. 세계무역에서 상품은 가치형태를 세계적 차원으로 전개한다. 따라서 “상품의 독립적인 가치형태도 세계화폐로서 상품에 대립한다”(181쪽). 추상적 인간노동이 현물형태로 실현된 상품으로서 화폐는 그 자신을 완전하게 드러낸다. 즉 국내에서는 오직 국경 내의 인간노동에 의해 계산된 가치가, 이제 인류 전체의 노동에 의해 완전히 추상적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시장에서 상품의 가치척도로서 금(혹은 은)만이 화폐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세계화폐는 보통 국제수지의 결제를 위한 지불수단으로 기능한다. 국내 유통을 위해 준비금이 필요하듯 세계시장에서의 유통을 위해서도 준비금이 필요하다. 국내에서 지불수단으로서의 화폐의 기능으로부터 퇴장화폐가 발생했듯이 세계화폐의 기능으로부터 다시 퇴장화폐의 기능이 발생한다.

“이 후자의 역할을 위해서는 언제나 현실적인 화폐상품, 즉 금과 은의 실물이 요구된다.”(183~184쪽)

1997년 경제위기에서 국제적인 준비금(달러화)의 부족을 심하게 겪은 한국 정부는 이후 외환 보유를 무척 중시하게 된다. 한국뿐 아니라 1980년대 이후 ‘현실적인 화폐상품’, 즉 달러화의 부족을 겪은 여러 나라들은 달러화 확보에 나선다.

“부르주아적 생산이 어느 정도 발전한 나라에서는 [은행의 금고에 집적되는] 퇴장화폐는 자기의 독특한 기능에 필요한 최소한도로 제한된다. 약간의 예외는 있지만, 이 퇴장화폐가 그 평균 수준을 크게 능가하는 것은 상품유통의 정체[즉, 상품변태의 진행의 중단]를 가리킨다.”(184~185쪽)

한국·일본·대만·중국 등의 높은 달러화 보유고가 문제시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특히 중국의 높은 달러화 보유고는 ‘글로벌 불균형’의 한 축으로 세계경제에서 해소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로 꼽힌다. 한편 2008년 세계경제위기 이후 한국에서 대기업들이 기업 내부에 준비금(유보금)을 쌓아놓는 것에 대한 경제 전문가의 불만 섞인 논평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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