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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울자, 소리도 질러보고

때때로 2010. 8. 30. 12:31

최규석의 새 만화가 최근 나왔습니다. '울기엔 좀 애매한'



울기엔 좀 애매한 최규석|사계절


그의 작품이 모두 그렇듯, 이번 만화에서도 가난하고 천대받는 이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울림이 유독 크더군요. 결코 울지 않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벌써 30여년 쯤 흘렀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고 외치던 아이들은 이제 어른이 됐고, 그 아이의 자식들은 '돈도 재능이야'라고 말합니다. '예쁜 것도 재능'이고. 자신이 꿈이 없음을 다행으로 여기죠. 우리는 아이들의 스펙 경쟁에 대해 혀를 차곤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우리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틀 아닌가요. 최규석이 그린 아이들은 여전히 꿈을 향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정신으로 달려갑니다. 자신이 노력한 결과가 어른에 의해 강탈 당하는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자신의 처참한 상황도 '울기엔 좀 애매'하다며 울지 않습니다.

120여 쪽의 짧은 이 만화엔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부당한 처우를 당해도 호소할 곳 없는 청소년 알바, 술집에 나가 학원비며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학생, 가난한 어머니, 마찬가지로 가난한 아버지. 이주 노동자... 청소년들이 처한 참담한 상황은 결국 어른들의 상황이기도 합니다. 작가인 최규석은 '어른'의 책임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 어른들이라고 무슨 큰 책임이 있겠습니까. 그는 어른들도 기껏 '삽 한자루' 밖에 가지지 못했느냐며 얘기합니다. 이 갑갑한 굴레. 어찌할 수 없는 것일까요.

우리는 흔히 세상을 사는 지혜에 대해 말합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때론 이렇게도 말합니다. "그래, 가진 거 없으면 승질이라도 없어야지. 웃어라." 얼마전 한 노동자가 자신을 자른 호텔에서 난동을 부린 사건이 보도됐습니다. 우린 이렇게 비명이라도 한 번 질러보지 못하는 걸까요. 조금 길지만 '작가의 말'을 아래에 옮겨봅니다.


내가 어른이 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세상을 만들고 그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는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의 내가 겨우 삽 한자루  가진 사람들을 향해 왜 저깟 산 하나도 옮기지 못하느냐는 터무니없는 책망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어른이 된 후에 깨달았다. 아이가 세월만 흐르면 되는 게 어른이란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사실 어른은, 아니 어른도 별 힘이 없다.

그럼에도 학생들을 볼 때면 당당할 수 없었다. 그들의 삶은 내가 그들의 자리에 있을 때보다 더욱 냉혹해졌고 누군가는 그것에 대해 죄책감이든 책임감이든 느껴야 했다. 숨만 쉬며 세월을 보냈건 어쨌건 어른이 된 이상 그런 감정들을 피해갈 수 없었다.

20대부터 30대 초반의 몇몇 시기에 미술학원에서 대학 입시를 위한 만화를 가르치는 일을 했다. 보지 않으면 나았을 테지만 매일같이 학생들과 얼굴을 맞대는 상황을 겪고 나니 그들을 위해, 아니 적어도 어린 시절의 내가 퍼부었던 비난을 조금이라도 피하기 위해 무언갈를 해야만 했다. 내가 가진 삽 한자루로 할 수 있는 만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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