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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의 전 정책위 의장이었던 주대환씨가 뉴라이트 재단이 발행하는 계간지 '시대정신'에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와 좌파의 진로'라는 글을 실었다. 발빠른 조선일보는 류근일 칼럼 '어느 좌파 지식인의 '커밍아웃''(조선일보 9월 2일, A34면)에서 주대환씨의 글을 칭찬하고 나섰다.

한국의 좌파가 진정으로 유의미(有意味)한 진보로서 동시대인들의 행복추구에 기여하려면 그들은 그런 이중성에서 벗어나 주대환씨 등이 던진 안팎의 비판을 진지하게 경청해야 한다.

그러나 사실 주대환씨가 남한 좌파 내에서 노골적인 우파 사민주의 정책을 주장해 온 것은 꽤나 오래된 일이다. 그는 남한의 보수 우파에 대한 비판보다 NL의 민족주의ㆍ친북경향에 대한 비판에 더 큰 힘을 쏟아왔다. NL에 대한 공격만큼 급진적 좌파에 대한 공격도 빼놓지 않고 계속해왔다. 류근일 칼럼에 인용된 구절들로 봤을 때 새로운 얘기랄 것 없는 내용들이라 딱히 뉴라이트 재단의 '시대정신'을 구입해 주대환의 글을 읽을 생각은 없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이제 좌파는 뉴레프트 운동으로 업그레이드되고 거듭나야 한다"는 주장을 '시대정신'이라는 우파 잡지에서 한 것이다.

그가 그간 겪은 자신의 고뇌의 결과를 좌파 매체 아닌 우파 매체를 통해 커밍아웃시켰다. 이것만으로도 "그가 무슨 말을 했느냐"는 내용 이전에 잔잔한 충격을 던지기에 충분하다.

주장이 어떤 매체를 통해 실리느냐는 호소하고자 하는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좌파 매체에서 실렸던 주대환의 주장은 좌파에게 호소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우파의 기관지에 실린 주대환의 이번 글은 우파, 뉴라이트를 향한 것일게다. 그렇다면 주대환의 주장은 다시 읽어야 한다.

이제 좌파는 대한민국을 긍정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독립운동 시절부터의 광범한 합의를 할 수 있는 토지개혁을 실시하여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평등한 사회경제적 토대 위에 건국된 위대한 나라다. 결코 세계에서 뒤떨어졌다고 볼 수 없는 보통선거권을 실시한 현대 민주주의 국가였다.
-주대환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와 좌파의 진로'
(류근일 칼럼 '어느 좌파 지식인의 '커밍아웃''에서 재인용)

'대한민국을 긍정해야 한다'는 이 주장 뜬금없지 않은가? 뜬금없지 않다. 최근 뉴라이트로 대표되는 우파들은 이명박 정권의 출범과 함께 지난 '좌파'들의 '자학주의 사관'을 고쳐 '승리주의 사관'에 입각한 현대사를 새로 써야 한다며 대한민국의 지난 역사를 '긍정'적으로 볼것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물론 지난 60년간 전쟁의 폐허 속에서 이만큼의 경제적 발전과 민주화를 이뤄낸 민중들의 힘엔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만큼, 아니 더 크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반공주의와, 군사주의, 독재와 반인권적 노동 탄압에 대한 역사를 우린 또한 잊을 수 없다. 더구나 지난 100여일의 촛불시위로 많은 사람들이 소수만을 위했던 대한민국의 '역사'와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대환은 '대한민국을 긍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주대환이 모를리 없겠지만 뉴라이트가 '대한민국의 긍정'을 얘기하는 것은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을 잇는 독재 세력들의 민주주의 파괴행위와 인권 탄압, 노동자들에 대한 가혹한 착취의 역사를 지워버리기 위함이다. 노동자의 절대 다수가 비정규직의 불안정한 일자리와 낮은 임금에 고통받고 있고 미래를 만들어갈 청소년들이 오직 '경쟁'과 '승리'만이 진리인 '미친 교육'을 받고 있다. 친일파와 그 협조자들에 의한 독재와 착취, 억압의 과거는 우리에게 아직 현실이다. 우리의 과거를 잊는 것은 주대환이 제아무리 '사회민주주의'적 미래의 청사진을 그린다 할지라도 삶의 더 큰 고통만을 현실에서 안겨줄 것이다.

지난 10 몇 년간 경계에서 위태위태한 모습을 보여줬던 주대환은 결국 균형을 잃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레디앙 이광호 기자의 글귀를 인용하면서 마친다.

사실 주 전 의장의 말은 그가 평소에 해오던 주장들이다. 진보정당 내부에서도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그가 주장해온 내용이다. 그 얘기를 다른 곳, 소위 '뉴라이트'의 기관지에 게재한 것은 같은 내용이라도 전혀 다른 맥락에서 읽힐 수 있다.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곳은 이제 과거의 동지들이 아니라, 새로 사귀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이며,  그곳은 유럽식 사민주의를 고민하는 곳이 아니라, 친북 빨갱이 독재 등의 표현을 동원해서 좌파에 대한 '역사적 구타'를 해오던 곳이다.
주 전 의장은 자신이 사회주의와 이별하고, 진보정당과 결별했다는 ‘전향 소식’을 공개적으로 확실하게 하기 위해 지난 총선 당시 ‘무소속’ 출마를 선택한 것은 아닐까. 주 전 의장의 글 제목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와 좌파의 진로’가 '시대정신'에 게재되고 '조선일보'에 인용된 것을 보면서, 그 제목이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 주대환의 진로’와 겹쳐 보이는 이유는 왜일까?
- 레디앙 '조선일보 류근일, 주대환 칭찬한 까닭은?'

Posted by 때때로

8월 15일은 일본이 미국에 항복함으로써 한반도가 일제의 식민 통치로부터 해방된 날이죠. 네 '광복절'입니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바로 이 36년간의 식민지로부터의 해방일을 기리기 위해서 48년 8월 15일을 정부 수립일로 정합니다. 8월  15일은 '광복절'이기도 하지만 정부가 수립된 '건국일'이기도 한거죠.

문제는 역시 2MB와 뉴라이트 집단의 '건국절' 생쑈. 어찌 생각하면 한국의 우파로서 지난 60여년간 지닐 수 밖에 없었던 딜레마를 일거에 해결한 거일 수도 있습니다.

한국의 지배 세력에게 가장 큰 약점은 아마도 역사적 정통성이 없다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조선 혹은 대한제국을 잇지 않은 대한민국에게 있어서 역사적 전통성의 가장 중요한 근거는 '항일 독립운동'이죠. 이승만이 독립운동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임시정부 초기에 '탄핵'을 당했고 이후로는 운동으로부터 멀어져 있었죠. 해방 이후 미국의 지원으로 중요한 세력으로 부각되긴 하지만 '대통령'의 자리에 오를만큼 민중으로부터의 지지를 받는 위치에 있진 못했습니다. 또한 미국으로서도 2차대전 종전 후 급격히 냉전으로 돌입하던 시기에 한반도 이남지역에서 좌파의 정치적 위상은 부담스러웠겠죠. 심지어 우파였던 김구조차도요.

이승만으로선 자신의 부족한 정치적 자원을 미국의 지원, 일제 식민지 통치에 협조했던 집단에 대한 사면을 통해 보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서 이승만 정권 지배 이데올로기의 두 축 '반공'과 '반일'이 나옵니다. 이 두 카드는 서로 결합된 상태로 이용됩니다. 식민지 시기 항일운동의 중요한 세력이었던 '좌파'를 제거하기 위해 '반공'이란 카드를 듭니다. 하지만 독립운동 역사에서 '좌파'를 제거하면 20년대 중반 이후로는 남는게 별로 없죠. 아직 진실은 묘연한 상태지만 한 육군 장교의 김구 암살은 그에게 '임시정부'라는 정통성을 그나마 남겨줍니다. '반공'이라는 패에도 불구하고 당시 민중에게 독립운동 세력으로서 좌파의 위상은 여전히 만만찮은 것이었죠. 그래서 그는 역대 그 어떤 정권보다도 국민의 '반일감정'을 자극하는 정책에 힘을 쏟습니다. 여기엔 당시 이승만 정권 하에서 다수의 세력을 점하고 있던 옛 친일파의 존재도 중요한 이유로 작용합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두환은 말할 것도 없죠.

바로 여기에 한국 우파의 피할 수 없는 딜레마가 존재합니다.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항일 독립운동으로부터 이끌어 올 때 약점이 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과거, 그에 반해 부각될 수 밖에 없는 좌파의 존재는 참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죠. 더군다나 '반공'이라는 카드가 더이상 유효한 패가 아니게 된 상황에서 그들에게 이 딜레마는 더 끔찍해질 수 밖에 없었겠죠. 또한 한국의 경제 성장이 (단지 외교적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한미일 삼각동맹에 기초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지나친 국민의 '반일감정'과 '반일' 정책도 점차 어려워만 갔습니다.

뉴라이트 집단은 몇 년 전부터 꾸준히 '민족주의 사관'에 문제제기를 해왔습니다. 한편 이것은 최근 좌파의 '탈민족주의'의 성장으로 어느정도 자신들의 친일적 본질을 감추는데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웃긴 건 그들이 '탈민족주의'를 외치면서 '국가주의'를 강화한다는 것이죠. 사실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는 그리 다른 것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즉 그들이 '민족주의 사관'을 벗고 '국가주의 사관'을 강화한다는 것은 항일 독립운동의 정통성을 이어받으려 하는 '민족주의 사관'을 버리고 '새로운 우파적 민족주의'를 만들겠다는 의지인 것입니다. 과거 우파와 비슷한 행태를 보임에도 그들을 '뉴라이트'라고 부르는게 옳다면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일 겁니다.

핵심은 간단한 거죠. 어차피 한국의 지배세력은 명시적 지배자들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언제나 친일파였습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넘어가자는 겁니다. 애초에 20년대 중반 이후 끝까지 항일 독립운동을 고집했던 우파세력은 김구의 죽음 이후에 맥이 끊겼다고 봐야 하는 상황에서 지금의 우파는 그저 친일파 자신 혹은 그 후예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그동안의 답답했던 가면을 벗고 자신들의 정체를 '커밍아웃'한 것이죠.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의 대답은 '민족주의 사관'의 복원일까요?

Posted by 때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