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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루에서의 점심
|찰스 에버트가 1932년 촬영한 사진. 당시 건축 중인 뉴욕 록펠러 센터 69층(지상 260m)에서 철골 구조에 앉아 위태롭게 점심시간을 보내는 노동자들.

아래는 조슈아 B. 프리먼의 '뉴욕, 노동계급의 도시' 서문이다. 뉴욕주립대학교 퀸스 칼리지 역사학 교수로 '수송 중: 뉴욕 운송 노동조합 1933-1966'을 썼고 '미국을 만든 건 누구인가? 노동 인민과 국민경제, 정치, 문화 그리고 사회' '파렴치한 민주주의: 노동, 지식, 그리고 미국 사회의 재구성'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 의역이 많고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자의 주석은 후주로, 옮긴이가 이해를 위해 덧붙인 것은 본문 대괄호 안에 담았습니다. 저자가 이탤릭으로 표기한 것은 굵은 글씨로 강조했습니다.


뉴욕, 노동계급의 도시: 2차 세계대전 후 뉴욕의 삶과 노동
조슈아 B. 프리먼

서문: 무엇이 뉴욕을 위대하게 만들었나

20세기 중반 뉴욕의 거리를 거니는 방문자는 노동계급이 그곳의 사회적 중추임을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부산한 항구와 도시 심장부의 공업지대, 브루클린ㆍ브롱크스ㆍ맨하탄의 무질서하게 뻗어나간 주거지역, 주기적으로 지역을 마비시키던 파업들, 많은 지지자를 거느린 미국 노동당과 진보당, 국제적 명성을 얻은 뮤지컬과 코메디 스타일, 지역사회 주민들 내에서 통용되는 은어 등에서 생생하게 느껴졌다. 뉴욕 노동계급은 정치 집단, 지역 주민들의 조합, 친목 또는 민족 공동체, 그리고 무엇보다도 노동조합을 통해 도시의 사회ㆍ경제ㆍ정치적 구조를 만들어내는 데 곳곳에서 기여했다. 지식인ㆍ예술가ㆍ엔터테이너ㆍ상인들이 전유하고 전파한 그들의 문화ㆍ스타일ㆍ세계관 등의 요소는 도시와 국가의 도덕적이고 미적인 조직 양식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줬다.

뉴욕 노동 대중의 세계시민주의ㆍ열정ㆍ교양은 2차 세계대전 후 권력ㆍ혁신ㆍ현대성의 세계적 중심이 되고자 한 뉴욕의 계획이 성공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노동자와 그들의 단체들은 자신을 소외시킨 일련의 사건 전개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됐다. 스스로 힘들게 일해온 다수가 뒷전으로 물러나는 사이 1990년대 뉴욕의 행로와 궤적은 시장과 유행의 선구자라는 세계적 도시로서의 위치에 점점 더 이끌렸다.

'뉴욕, 노동계급의 도시'는 승리와 고립에 관한 이야기다. 자신의 주민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했었지만 미래에는 더 이상 중심적 열할을 하지 못할 단체들이 권력을 얻고 영향력을 잃는 대하소설이기도 하다. 또 이것은 대중과 산업, 권리와 평등을 위한 끈질긴 투쟁, 계속되는 차별과 불평등의 거대한 변동에 관한 이야기다.

게다가 2차 세계대전 후 뉴욕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주목할 만한 역사가 그곳에 살았던 이들 계급 외에는 거의 모두 알려지지 않은 채 남아있다는 것이다. 전후 뉴욕을 기념하는 방대한 문학작품들-E. B. 화이트, V. S. 프리쳇, 쟌 모리스, 트루먼 카포티, 윌리 모리스 등등-은 전성기에 인구ㆍ경제ㆍ정치ㆍ사회 모든 면에서 뉴욕이 노동계급 도시로 보통 묘사되던 동안 놀라울 정도의 맹목적인 태도로 바로 그 노동자의 존재를 대개 무시한다. 노동자가 이야기에 등장할 때면 이 작가들은 대개 범죄의 온상, 주인공을 더 돋보이게 만들기 위한 다채로운 배경으로서만 그려진다.
[1] 뉴욕의 기록가들은 너무 자주 그곳에 살고 있는 수백 만명의 노동자, 그 남편과 아내, 아이들, 즉 뉴욕을 경제ㆍ정치ㆍ문화적으로 중요하게 만들고 그곳의 경제를 움직이고 있는 이들을 무시한 채 자신과 같은 작가ㆍ예술가ㆍ기업가ㆍ정치인들을 도시와 그 정신의 창조주(the creator)로 간주한다. 그들은 지난 반세기 동안 뉴욕의 노동계급 역사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적게 써왔다.[2]

노동의 중요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뉴욕의 과거에 대한 그 어떤 묘사도 도시의 정치ㆍ사회ㆍ경제, 심지어 물질적 발전에서조차 전국적 표준에서 그토록 벗어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뉴욕을 살펴보는 것은 미국 노동의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뉴욕 노동계급과 단체는 보통 대량생산 산업과 산업별노동조합회의(Congress of Industrial OrganizationㆍCIO)와 연결돼 있던 남성 중심적 산업노조를 강조한 2차 세계대전 후 노동의 역사에 기초한 묘사에 들어맞지 않는다.
[3] 뉴욕에선 작은 회사와 공방 또는 복합기업[다각기업ㆍ하나의 기업이 여러 종류의 기업을 소유하고 있는 한국의 재벌과 비슷한 형태]에 많은 수의 여성 조합원을 거느린 노조들-흔히 미국노동총동맹(American Federation of LaborㆍAFL)과 연결된-이 지배적이었다. 거기에 또 뉴욕에서 노동조합주의는 다른 지역에서보다 더 회복력이 있음이 입증됐다. 2차 세계대전부터 1980년대 사이 나라 전체에서 노동조합 가입률이 급격히 떨어졌지만 뉴욕에선 안정적으로 유지됐다(그래서 1990대 뉴욕의 노동조합가입률은 전국의 두 배 이상이었다).[4] 그뿐 아니라 보통 조직된 노동자가 1930년대에서 1940년대 사이 최고의 정치적 영향력을 지녔던 것으로 묘사되는 데 반해 뉴욕 노동운동의 힘은 1950년대 초와 1970년대 중반 사이 최고조에 달했다. 전국적으로 노동이 약해지는 동안 뉴욕이 노동조합 중심지로 남은 이유를 이해하는 것은 현대 노동운동의 특징과 그것의 정치경제적 지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은 의도적으로 학술적ㆍ정치적 유행을 거스른 것이다. 현대적 담론에서 바로 그 '노동계급'이란 단어는 불쾌한 느낌을 준다. 한 세기 동안 이 단어는 흔히 공업에 관한 어휘에 속했다. 보통 단순하게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임금을 받고 일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을 총괄해 가리켰다. 나는 이 책에서 그 용어를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 노동자, 그들의 직계가족을 포함해 그와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계급에 대해 전혀 말하지 않는 요즘 미국인들은 보통 그것을 사람들이 일하는 형태가 아닌 사람들의 소득이나 재산 수준에 따라 정의한다. 때때로 나 역시 중산층 또는 빈곤층이라는 단어와 같은 그러한 범주를 사용한다. 그러나 이 책의 중심 논지는 뉴욕의 노동자들이 많은 경우와 상황에서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경제에서 그들의 구조적 위치로부터 제약받는 방식으로 그들 자신과 도시에 중요한 결과를 초래하는 생각과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5]

다른 언급이 없다면 나는 뉴욕을
[펜실베니아주 북부와 온타리오호 사이에 있는 주가 아닌] 엄밀한 의미로 뉴욕시를 나타내는 단어로 사용한다. 전후 뉴욕에 관한 많은 연구는 도시의 어느 부위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전체로서 대도시권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해 왔다.[6] 이 연구는 도시 주민들 매일의 일상을 빚어내는 도시의 단체들과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나는 어린 시절 대부분과 거의 모든 내 성년의 삶을 이 책에서 다루는 시기 동안 뉴욕에서 보냈다.
[이 책이] 어떤 식으로든 회고록인 건 아니지만 나는 종종 나와 내 가족의 삶을 삽화처럼 끌어내곤 했다. 대부분의 뉴요커처럼 나는 도시에 대해 큰 긴장감을 느껴 왔다. 그러한 어려움과 무자비함에 끝없이 좌절하면서도 다른 곳에서의 삶은 아무리 상상해보려 해도 어렵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내가 뉴욕을 지키는 것은 박물관이나 콘서트홀의 고급 문화 때문도, 비할 데 없는 일자리ㆍ식사 기회 또는 뉴요커들이 흥청대며 보내곤 하는 곳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명백하게 너그럽고, 개방적이지만 회의적이고, 이상적이지만 가식 따윈 없는, 폭발적인 열정과 활동에서의 헌신과 같은 노동계급 감수성 때문이다. 이것은 힘든 하루일을 마친 후 저녁 시간과 주말을 노동조합 모임, 친구들 사이의 일, 강연 또는 놀이공원에서 보내온 내 조부모들의 감수성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평생을 아이를 키우고, 부모를 봉양하고, 지방을 전전하며, 그리고 대단친 않지만 자부심을 갖고 정의와 평등의 이름으로 사회 변혁을 모색했다. 지하철과 거리, 공립학교에서 나는 이러한 감수성을 여전히 느끼곤 한다.

노동계급이 영향력을 잃으면서 뉴욕에서 문화는 후퇴했고 공동체는 소원해졌다. 나 또한 황금시대라고 불리는 때로 돌아갈 가능성을 원하지도 믿지도 않는다. 50년 전 다저스
[미국 프로야구 LA 다저스의 원래 연고지는 브루클린이었다. 1958년 현재의 LA로 옮긴다]는 브루클린에서 경기를 치를 수 있겠지만, 뉴요커 대부분에게 50년 전의 삶은 힘든 노동, 불안한 치안, 더 큰 적대감을 의미한다. 그러나 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들의 도시와 나라를 만드는 데 오늘날보다 더 위대한 역할을 맡을 가능성에 이 책이 빛을 비추길 바란다. 그들의 노동, 투쟁, 농담, 노래가 뉴욕을 그토록 위대하게 만들었다. 이를 잊는 것은 우리 모두를 약하게 만들 것이다.


[1] E. B. 화이트 『Here Is New York』(뉴욕, 1949, 국역 『여기 뉴욕』), V. S. 프리쳇 『New York Proclaimed』(뉴욕, 1965), 쟌 모리스 『Manhattan'45』(뉴욕, 1987), 안드레아 와이어트 섹스톤과 앨리스 레세스 파워스가 편집한 『The Brooklyn Reader: Thirty Writers Celebrate America's Favorite Borough』(뉴욕, 1994)에 실린 트루먼 카포티의 「A House on the heights」, 윌리 모리스 『New York Days』(보스톤, 1993).

[2] 최근 나온 데브라 베르나르와 레이첼 번스타인의 『Ordinary People, Extraordinary Lives』(뉴욕, 2000)은 예외다.

[3] 예를 들면 데이비드 브로디의 『Workers in Industrial America: Essays on the 20th Century Struggle』(뉴욕, 1980) 5장과 6장, 스티브 프레이저와 게리 게슬이 편집한 『The Rise and Fall of the New Deal Order, 1930-1980』(프린스턴, 1989)에 실린 넬슨 리히텐시타인의 「From Corporatism to Collective Bargaining: Organized Labor and the Eclipse of Social Democracy in the Postwar Era」, 킴 무디의 『An Inujury to All: The Decline of American Unionism』(런던, 1988)을 보라.

[4] 뉴욕과 전국의 노동조합 조합원 수에 관해선 3장과 17장에서 다룬다.

[5] R. 에메트 머레이 『The Lexicon of Labors』(뉴욕 1998) 187쪽. 계급에 관한 문학은 막대하다. 이라 카츠넬슨과 아리스티드 R. 졸버그가 편집한 『Working-Class Formation: Nineteenth-Century Patterns in Western Europe and the United States』(프린스턴, 1986)에 실린 이라 카츠넬슨의 「Working-Class Formation: Constructing Cases and Comparisons」는 이에 관한 유용한 안내를 제공한다.

[6] 특히 이러한 관심은 1950년대 동안 지역개발연합[the Regional Plan AssociationㆍRPAㆍ1922년 설립된 비영리 기구로 뉴욕ㆍ뉴저지ㆍ코네티컷 3개 주 31개 카운티의 경제적 경쟁력과 삶의 질 개선을 목표로 했다]의 후원을 받은 일련의 연구에서 강하게 나타났다. 요약된 것은 에드가 M. 후버와 레이몬드 버논이 쓴 『Anatomy of a Metropolis』(케임브리지, 1959)에서 볼 수 있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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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간략한 역사> - 데이비드 하비 / 최병두

뉴욕에서의 일상생활은 "녹초가 되었고, 도시의 분위기는 비참해졌다.". 도시 정부, 지역 노동운동, 그리고 뉴욕의 노동계급은 "지난 30년 동안 쌓아올렸던 권력의 많은 부분"을 결국 박탈당했다. 탈도덕화된 뉴욕의 노동계급은 마지못해 새로운 현실을 인정했다. ……

기업복지가 사람 복지를 대체했다. 도시의 엘리트 기관들은 ('I♡NY'라는 유명한 로고를 고안하면서) 문화센터이며 관광지로서 뉴욕의 이미지를 팔기 위해 동원되었다. 지배 엘리트는 종종 까다롭게 다양한 범세계적 경향들의 모든 방식들이 도입될 수 있도록 문화적 장의 개방을 지원했다. 자아, 성, 정체성으로의 자기중심적 천착이 부르주아적 도시문화의 주요 동기가 되었다. 도시의 강력한 문화기관들에 의해 촉진된 예술적 자유와 방종은 결과적으로 문화의 신자유주의화를 유도했다. 쿨하스의 기억할 만한 문구인 '광란의 뉴욕(Delirious New York)'은 민주적 뉴욕에 관한 집단 기억을 지워버렸다.

- 2장/ 68쪽

하비에 의하면 우리가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TV와 인쇄물의 수많은 여행 기사를 통해 받아들인 뉴욕의 이미지는 '계급 전쟁'의 결과물인 것입니다.

 

<점령하라> - 슬라보예 지젝 / 유영훈
D는 내가 그의 큰할아버지와 연락하여 '과격파 어르신'들이 뉴욕에서 '현장 실습'을 할 수 있게끔 좀 도와달라고 했다. …… D의 큰할아버지가 계신 양로원의 많은 노인분들이 열정적으로 점령 시위 참여를 원한다고 했다. 공원까지 올 밴과 운전사도 이미 구해놨단다. 이곳은 좌파의 고향 뉴욕이다. '과격파 어르신 시위'에 동참을 원하는 연로한 좌파들이 무수히 많을 것이 분명하다. 나이든 분들도 점령을 원한다. 돕는 게 도리다. - 31 소문들, '애스트라 테일러/ 276쪽

최근 '점령하라'의 이 부분을 읽으며 하비가 70년대 뉴욕시의 재정 위기를 설명한 부분이 떠오른 것은 필연적일 것입니다. "마지못해 인정"인정했던 현실이 30여년 만에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으니 어찌 흥분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한편 같은 책 16장 '뉴욕 경찰과 월가 점령, 스타일의 충돌'이라는 장에서 브루클린대 사회학과 부교수인 앨릭스 비텔리는 70년대 뉴욕시의 재정 위기 이후 뉴욕 경찰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살핍니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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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뉴욕 경찰의 주코티 공원 해산은 끓는 물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습니다. 10월 말 오클랜드에서 경찰의 폭력적 진압이 11월 2일 도시 총파업을 불러일이켰 듯, 뉴욕 경찰의 점거운동 해산은 17일 거대한 항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 3만명 이상의 사람이(뉴욕경찰에 의하면 3만2500명) 행진했습니다. 이들은 노동자, 학생 등 다양한 99%의 사람들입니다.
- 미국과 전 세계의 30 곳 이상의 도시에서 이날 저항 행동에 동참했습니다.
- 99% 운동 탄생 두 달을 기념해(11월 17일은 9월 17일 첫 점령이 있은 지 두달이 되는 날입니다) 브루클린 다리에서 축제를 열었습니다.
- 비폭력 시민 불복종 운동에 참여한 수백명의 사람들이 뉴욕 증권 거래소의 모든 출입구를 봉쇄했습니다.
- 사회적 정의를 위한 강력하고 다양한 운동이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자세한 소식은 아래 OccupyWallst.org의 링크에서 확인하세요.
November 17: Historic Day of Action for the 99%(링크)

●미국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17일의 저항 행동 사진을 보시려면 아래 링크를 참조하세요.
플리커 'occupy'로 검색한 사진(링크)

19일 일어난 UC 데이비스에서의 경찰 강제진압은 또다른 초점이 되고 있습니다. OccupyWallst.org는 이러한 폭력적인 사건이 유색인종, 성소수자, 성노동자 등 소외받는 사람들에게는 오래전부터 일상의 현실이었다고 올바르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OccupyWallst.org는 이들의 폭력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물으며, 경찰들에게 1%의 부자들을 위한 행동을 중단하라고 호소합니다.

"우리는 경찰이 가난한 이들과 노동자 계급, 동성애자, 유색인종, 그밖에 소외받는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강금하고 인간성을 말살하는 것으로부터 이익을 얻는 사악하고 부정의한 체제를 위해 일하는 것을 그만두라고 요청합니다. 자랑스럽게도 99%와 연대한 경찰 지구대장 레이몬드 루이스와 다른 이들처럼 경찰관들이 부당한 명령에 따르지 말기를 호소합니다."
당신은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링크)

점령하라 운동은 현재 미국 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경찰의 점령하라 운동에 대한 공격은 경찰 개개인의 자의적인 행동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이는 전국적으로 계획되고 준비된 정부와 1%의 반격이라는 것이죠. 이에 대항하기 위한 또 하나의 행동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그 주인공은 바로 오클랜드입니다. 오클랜드의 점령하라 운동은 미국 서해안 전역의 항구를 폐쇄하는 행동을 12월 12일 함께하자는 호소를 발표했습니다. 이 호소는 오클랜드 점령하라 운동의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것입니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이미 항구와 (골드만삭스가 소유한) SSA 터미널을 봉쇄하기 위한 행동 결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또한 이날 (12월 12일) 행동은 EGT의 공격에 맞서 투쟁중인 워싱턴주 롱뷰 부두노동자에게 연대를 하긱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EGT는 Bunge사가 이끄는 국제적인 곡물 수출기업이라고 합니다. 오클랜드 점령하라 운동은 EGT가 롱뷰의 부두노동자 노동조합을 파괴하기 위한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Occupy Oakland Calls for TOTAL WEST COAST PORT SHUTDOWN ON 12/12(링크)

이들 점령하라 운동에게 자신감과 영감을 불어넣어준 아랍 또한 여전히 그 불만들이 가라안지 않고 있습니다. 이집트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는 군부의 지배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격렬한 시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군대의 공격으로 최소 10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OccupyWallst.org에서도 이 알자이지라 홈페이지를 링크해 이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집트軍-시위대 충돌 '사상자 속출'(링크)

어쩌면 우리는 지금 1968년 이후 새로운 세계적 운동의 서막을 목격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한국의 좌파 활동가들이 '목격자'로만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보다 분발해야 할 겁니다. 언론에서는 '유시민의 딸'이 서울대 사회대 학생회장이 된 것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녀가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 공동실천위원회(사노위)' 대학생 지지모임 회원인 것에는 관심이 없죠. 언론 인터뷰에 의하면 그녀는 지난해 서울대 법인화 반대 점거투쟁(Occupy!)의 과정을 거치며 정치적으로 급진화됐다고 합니다. 이는 매우 의미있는 소식입니다. 비록 '보이스카웃' 같아 보이고 유아적인 '동호회 활동'으로 보인다고 할지라도 학생운동에서 '사회주의'를 명시적으로 언급하는 단체의 학생회원이 단과대 학생회장을 맡은 것은 무척 오랜만인 반가운 일입니다. 그녀 개인이 이후 어떤 길을 가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보다 많은 학생이, 청년들이 그녀와 같은 길을 모색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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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7 10:53

OWS, 노동자들과 조우 쟁점/11 OccupyWS2011.10.07 10:53

10월 5일 미국 뉴욕의 폴리 광장을 가득 메운 시위대. 이날 시위에는 산업노동조합총연맹 등 노동자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사진=Occupy Wall Street]

9월 17일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가 시작된 후 가장 큰 규모의 시위와 행진이 어제(미국 시간 10월 5일) 있었습니다. 노동조합이 참여한 시위는 폴리 광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참여한 이날 행진은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 참여자들에게 큰 자신감을 줬습니다. 그들은 "노동자들은 의료보험과 안락한 주거, 충분한 음식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말로 이 운동이 단지 직업을 얻지 못한 학생들 만의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이 운동이 1%의 부자들이 파괴한 세계를 우리 99%를 위한 세계로 되돌려 놓기 위한 것임을 강조합니다. 그렇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특히 불안정한 일자리와 낮은 임금, 악화되는 노동ㆍ생활 조건으로부터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대거 시위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전미교사노조의 1839 지부의 이반 S. 스타인버그 지부장과 윌리엄 칼라테스 부지부장은 공개적으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에 대한 지지를 표했습니다. "우리 99%는 매일매일 더 크고 더 넓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아메리칸 드림'은 사라졌습니다. 노동자들은 의료보험과 안락한 주거, 충분한 음식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학생들은 직업을 얻지 못해 하루하루 빚에 의지해 연명해야 한다고, 그래서 파산을 피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1%의 부자들은 그들의 탐욕으로 이 나라와 그 가치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1%의 부자들은 이 세계를 훔쳤습니다. 우리는 더이상 이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폴리 광장은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을 훨씬 넘는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지지자들로 가득 찾습니다. 그들은 세계에 만연한 경제ㆍ사회적 부정의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습니다. 우리 99%는 매일매일 더 크고 더 넓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이 노동조합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폴리 광장을 접수하다
(Occupy Wall Street 홈페이지 링크)


이날 뉴욕의 시위에는 직장을 구하지 못한 젊은이들 뿐 아니라 노동자, 노인, 젊은 부부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이 더 많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고 있다. [사진=Occupy Wall Str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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