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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직전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의 사회주의자들은 흔히 알려진 대로 볼셰비키와 멘셰비키로 나뉘어있던 상태였다. 1917년 당시 혁명의 과제에 대한 이들의 입장 차이는 현실에서 당시 정부와 갈등을 빚던 자유주의자들, 자본가들에 대한 입장 차이로 드러났다. 아래의 두 호소문은 이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멘셰비키가 관여하고 있던 전쟁산업위원회 산하 노동위원회는 1월 24일
[구력] 차르의 전제정과 부르주아지의 갈등이 노동계급에게도 유리한 상황을 전개할 것이라며 두마[의회]를 지지하는 행동에 나설 것을 노동자들에게 호소한다. 노동계급 대중의 지지가 없다면 아무런 힘도 없을 의회를 위해서 말이다.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페테르스부르크 위원회
[혁명 당시 러시아 수도의 지명은 '페트로그라드'였다. 원래 이에 맞춰 통일해 표기했으나, 볼셰비키가 원래의 지명을 고수한 것에 맞춰 '페테르스부르크 위원회'로 다시 수정한다. 멘셰비키의 성명서는 '페트로그라드'라는 지명을 사용하고 있다]는 이에 맞서 부르주아지와 손잡아선 안된다는 성명을 발표한다. 이들은 두마에서 쫓겨난 사회주의자 의원들을 상기시키며 일일파업을 호소한다. 물론 이들의 파업은 여러 사정으로 인해 실패한다. 가장 큰 이유는 파업을 벌이자고 한 날이 공휴일이라는 것이었다.

분명 파업과 혁명 초기 멘셰비키의 역할과 활약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가진 약점은 결국 3월 이후 부르주아지에게 혁명의 주도권을 제 손으로 넘겨주는 것으로 이어진다.

※아래 글은 존 리델이 편집해 그의 블로그(링크)와 미국 '사회주의노동자(Socialist Workerㆍ링크)에 연재하는 '거리에서 본 1917:러시아혁명의 리플릿들' 시리즈 3편과 4편을 옮긴 것이다. 본문의 대괄호 안의 내용과 글 아래 붙인 주석은 이해를 돕기 위해 옮긴이가 추가한 것이다.


+ + +

페트로그라드 노동자들에 대한 호소한다
전쟁산업위원회 노동위원회ㆍ거리에서 본 1917:러시아혁명의 리플릿들 3편ㆍ링크

전제정부가 나라를 숨막히게 만들고 있다. 제정의 정책은 이미 심각하기 그지없는 전쟁의 참화를 더 악화시켜, 가진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는 계급에 자신들의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전쟁의 희생자들이 수없이 많은 상황에 정부의 이기적 행동은 그 희생을 더 크게 만들고 있다.

몇 번이나 식량공급 위기를 불러온 정부는 이에 아랑곳 없이 줄곧 나라를 기아와 폐허로 몰아넣고 있다. 전시상황을 핑계로 노동계급을 노예로 부리고 있다. 공장에 묶인 노동자들은 공장의 노예나 마찬가지다. 이 지배 체제는 전쟁에서 제대로된 전략을 보여주지 못했음에도 이를 러시아의 여러 인민에 대한 박해와 탄압을 더 강화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

인민 스스로가 아닌 현재의 전제 권력에 의해 전쟁이 끝난다면, 전쟁이 멈춘다 하더라도 지친 나라 전체가 갈구해온 평화는 인민을 재앙의 참화에서 구해낼 수 없을 것이다.

즉, 전제정은 전쟁을 끝내도 인민을 새로운 쇠사슬로 구속하려 할 것이다. 종전은 인민에게 해방 대신 새로운, 심지어 더 공포스러운 재난을 가져올 것이다. 정치적 권리 없이 손발이 묶인 인민, 특히 프롤레타리아트는
[정부의] 독단과 실업ㆍ기아에 빠지게 될 것이다. 높은 물가와 실업은 정부의 폭정과 함께 노동계급을 빈곤과 노예상태에 빠지게 할 것이다.

노동계급과 민주 세력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하루하루가 시급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긴급히 제기되는 현재의 과제는 전제 정부를 단호히 제거하고 완전한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것이다. 이는 노동계급과 민주 세력에게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다.

앞에서 언급한 모든 것이 진행됨에 따라 부유한 부르주아 집단과 관료들 사이의 대립이 노동계급의 적극적 개입에 유리한 상태를 만든다는 게 분명해질 것이다. 인민의 운동은 전제정에 결정타를 날릴 날을 앞당기는데 두마(의회)와 정부의 대립을 이용할 수 있다.

우리 000의 노동자들은 결의한다. 지금 당장 우리의 힘을 하나의 조직으로 모아 단결해 공장위원회를 선출하자. 다른 작업장과 공장의 동지들과 뜻을 모으자. 곳곳의 집회에서 지금 이 순간이 극히 중요하다는 것을 설명하자. 그리고 우리의 결의를 다른 공장들에 알리자.

우리는 두마가 소집됐을 때 이를 조직된 대중적 힘이 전면적으로 이끌 수 있게끔 준비해야 한다.

두마 소집 전, 페트로그라드의 모든 공장과 모든 지역의 노동자들이 노동계급과 민주 세력의 주요 요구를 들고 (두마가 열리는) 타우리드궁으로 행진하자.

나라 전체와 병사들이 노동계급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투쟁을 통해 조직된 인민의 지지에 기댄 임시정부 만이 나라를 막다른 길과 치명적 붕괴로부터 구해내고, 정치적 자유를 강화하고, 러시아와 다른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

+ + +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페테르스부르크 위원회ㆍ거리에서 본 1917:러시아혁명의 리플릿들 4편ㆍ링크

동지들! 지배계급은 유럽 인민의 목에 씌운 올가미를 더욱 옥죄고 있다. 수백 만 명이 끔찍한 죽음을 맞았다. 젊은이들 중 제일 우수하고 건강한 이들이 불구가 되거나 목숨을 잃었다. 수백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포로가 돼 고통받았다. 공장이 멈춰선 자리를 빈곤이 대신 채웠다.

학살의 2년 동안 모든 교전국들에서 1500만 명이나 되는 인민이 목숨을 잃은 이 세계의 권력자들은 더 많은 이윤을 얻어왔다. 이건 정말 예전에 볼 수 없던 범죄다! 인민 중 가장 건강한 일부를 대규모의 죽음으로 몰아간 이들은 부끄러운줄 알아야 한다. 우리 스스로를 위해서가 아닌 다른 이유로 피를 흘려온, 우리 노동자 전위와 탄압받는 민주세력은 위대하고 어려운 임무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이 범죄를 중단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저들은 무슨 일을 했는가?

인민을 억압하며 그 운명을 결정해온 지배계급으로부터 지난 2년 반 동안 작게라도 변명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 있는가? 이제 곧 두마의 러시아 노동계급 대표들이 재판에 회부된지 2주년이 된다. 전쟁이 막 시작했을 때 두마는 회기 내내 러시아 경제가 번창할 것이라고 외쳐댔다. 물론 타우리데 궁의 벽 안의 두마는 늑대처럼 탐욕스러운 신사 지주양반들과 자본주의적 공장 소유자들과 은행가들의 자비에 경제를 맡겨놓음으로써 이를 파괴하고 있었다.

우리 대표들이 두마에서 쫓겨나 재판을 받고 멀고 추운 시베리아로 유배돼자 신사 지주양반들과 자본가들은 만족스럽게 악수를 나누며 두마에서 더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됐다. 그 후 2년간 두마에선 이들의 권리가 침해된 데 대해선 그 어떤 얘기도 없었다. 그들은
[우리] 대표들이 추방된지 2주년이 되는 지금도 이에 대해선 침묵만 지키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목소리를 높여 그들이 배척했던 노동계급 사이에서 그들의 목소리에 굽실대며 공감할, '동료'가 될 만한 이들을 유인해내려고 한다.

그리해 그들은 두마 자유주의자들의 탐욕스러운 욕망을 노동자들에게 전파시킬, 전쟁의 폭풍 속에서 눈이 멀어버린 국수주의적 노동자들을 찾아냈다. 2월 14일 두마 소집을 앞둔 지금 노동자들 사이에 두마의 의도에 관한 온갖 풍문이 돌고 있다. 두마가 새로운 어떤 행동도 하지 않으려 한다고 보기 쉽다. 그렇지만 들고 일어선 노동자들의 벽에 보호받는 동안 두마의 자유주의자들은
[차르 정부에] 위협적인 태도를 보이는 데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두마를 응원해달라고, 심지어 타우리데 궁 앞에서 요구안을 내놓아 단호한 행동에 나서게끔 지지해달라는 호소가 공장의 노동자들에게 들려온다. 이 호소는 불필요한 것일뿐 아니라 배신적인 것이기도 하다. 차르와 지배계급의 궁전으로 달려가 탄원하는 행동은 이 궁전의 주인들로부터 무언가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인민에게 결국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자유주의자들과 자유주의적 노동계급 정치인들은 자신이 충분한 화약을 갖고 있지 못했을 땐 기꺼이 인민의 대의명분을 위한 단호한 전사로서 이들 앞에 나선다. 그렇지만 그들의 진정한 의도는 감추게 마련이다. 동지들, 그들이 호소하는 도움은, 당신들을 결국 국가에 굴복하게, 더 나아가 군사적 약탈과 '최후까지' 끝없는 전쟁을 수행하는 데 종사하게 만드려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이를 직설적으로 말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그들의 진정한 희망이다.

우리의 호소

자유주의자들이 현 정부에 불만을 표할 때조차 그들의 옳아보이는 말들이 뜻하는 바는 비밀스럽게 미래 정부의 자리들을
[자기들끼리] 나누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들이 단결한 인민의 지지에 기대 권력 장악이나 '임시정부'에 대해 단호하게 말할 때조차, 그들은 전쟁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직 강력한 민주적 힘 만이 인민의 고통과 시련을 중단시킬 수 있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는 온 힘을 기울여 당신이 시작한 전쟁과 당신에 반대할 것이다. 군주제의 권능
[홀]은 당신의 탐욕과 뒷거래를 감춰준다. 바로 그 이유로 당신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차르의 군주제에 우리는 반대한다. 우리는 차르 정부에도 반대한다. 당신은 자신도 그에 맞서 투쟁하길 바란다고 말하지만 당신은 정부의 패배를 두려워 한다. 오직 차르 정부 만이 당신이 인민을 희롱하는 것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민이 권력을 잡는 민주공화국을 건설하고자 한다. 우리는 노동자와 빈농의 임시혁명정부를 세울 것이다. 이 임시혁명정부는 보통ㆍ평등ㆍ직접ㆍ비밀투표로 선출된 제헌의회의 소집을 통해 만들어질 것이다. 우리는 전 세계 인민을 분열시켜 깊은 상처를 입힌 탐욕에 가득찬 자본가들의 국수주의적 범죄행위에 반대한다. 우리는 인민에게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줄 전 세계 노동자들의 연대를 건설할 것이다.

2월 10일은 우리의 대표자들이 차르의 법정에서 탄핵당한 날이다. 우리의 투쟁과 구호에 강력한 힘을 심어준 그들을 우리는 경애한다. 우리의 대표자들을 즉시 되돌려줄 것을 요구하며 우리는 이 날을 일일파업으로 기념할 것이다. 이 파업은 우리의 쫓겨난 대표자들이 공개적으로 선포한 요구를 위한 투쟁에 우리의 목숨을 기꺼이 내걸 것임을 보여줄 것이다.

차르 군주제를 철폐하자! 전쟁에 맞선 전쟁을! 임시혁명정부 만세! 제헌의회 만세! 민주공화국 만세! 국제 사회주의 만세!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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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러시아혁명 100년이다. 혁명은 1차 세계대전의 전쟁과 살육 사이에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분노를 자양분 삼아 성장했다. 체제에 대한 불만과 분노 만으로 혁명이 성공할 순 없었다. 다가올 사건을 대비하고, 노동계급 대중을 단결시킬 혁명적 조직 또한 준비돼있어야 했다.

●세계대전의 발발과 인터내셔널의 붕괴

1914년 8월 1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그런점에서 혁명을 향한 결정적 사건이었다. 유럽과 세계의 인민에게 재앙이었던 이 사건은 노동계급 혁명 조직에게도 악몽과 같은 사건이었다. 유럽 최대의 사회주의 조직인 독일사회민주당은 1914년 8월 4일 제국의회에서 전시공채 발행에 ‘찬성’표를 던진다. 제2인터내셔널이 1907년 슈투트가르트대회와 1912년 바젤대회에서 연이어 전쟁 반대를 위한 전 세계 노동계급과 조직의 단결을 천명했던 사실은 무색해졌다. 1907년 2월 슈투트가르트에 모인 25개국 884명의 사회주의 조직 대표자들은 아래와 같이 결의했었다.

"전쟁이 임박하면 각국 노동계급과 그들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은 인터내셔널 사무국의 굳건한 지원을 받아 가장 효과적인 수단-물론 계급투쟁과 일반적 정치 상황에 따라 다양할 수밖에 없는-으로 전쟁을 막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한다. 그럼에도 전쟁이 일어난다면, 전쟁의 신속한 종결을 위해 개입해야 하고 전쟁으로 말미암은 경제∙정치 위기를 이용해 대중을 분기시켜서 자본가계급 지배의 철폐를 앞당기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한다."
-‘레닌 평전’, 토니 클리프, 2권, 16쪽

카우츠키는 무기력하게 ‘기권’을 주장했을 뿐이며,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립크네히트의 반발은 독일 사회주의자들의 국수주의적 배신을 멈출 수 없었다. 독일 사회주의 조직 만이 아니었다. 러시아 사회주의의 아버지 플레하노프는 청년들에게 ‘조국 러시아’를 위해 참전할 것을 권했다. 심지어 자신이 젊었다면 직접 전선에 나갈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베라 자술리치와 알렉산더 포트레소프를 비롯한 러시아 사회주의 선구자들 다수가 전쟁 찬성에 돌아섰다. ’제국주의 독일’에 맞선 ‘조국 방어’전쟁을 핑계로 둘러댔다.

●새로운 사회주의의 성장

’노동자에게 국경은 없다’던 제2인터내셔널과 유럽 각 나라의 사회민주주의 조직은 분열하게 된다. 소수의 사회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원칙’을 지키려 1915년 9월 중립국 스위스의 치머발트에 모인다. 8년 전 슈투트가르대회 참석자의 20분의 1도 안되는 38명의 대표가 11개 나라에서 와 참석했다. 회의 결과 트로츠키가 초안을 작성한 ‘치머발트 선언(Zimmerwald Manifesto∙링크)’이 채택된다. 선언 자체는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고 세계 노동계급의 단결을 촉구하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것이었다. 자국 정부의 패배를 주장하며 제국주의 전쟁을 계급 내전으로 전환할 것을 주장한 레닌의 혁명적 패배주의는 8명의 동의만 얻는다. 1916년에는 키엔탈에서 다시 회의가 열려 두 번째 선언(Kienthal Manifest∙링크)이 채택된다. 이 두 번째 선언도 더 급진적으로 나가진 못했다. 그럼에도 이 두 번째 회의에서 레닌의 주장은 더 많은 공감을 얻는다. 두 선언은 변절한 제2인터내셔널의 노회한 사회주의자들과의 단절, 자국 정부와의 대결을 명확히 선언하지 않지만 이 회의는 이후 제3인터내셔널 건설의 초석이 된다. 아래의 글 ‘러시아의 혁명적 학생들에게’가 강조해 인용하고 있는 치머발트 선언이 이 두 선언이다.

그렇지만 이 볼셰비키 학생위원회의 호소가 근거하고 있는 정치적 주장은 레닌의 것에 더 가까워 보인다. 치머발트 선언이 제2인터내셔널과의 관계 단절을 명확히 선언하지 못한데 반해 이 학생들은 제2인터내셔널의 파산과 새로운 인터내셔널 건설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변절한 ‘사회주의의 옛 교사들’과 분명히 선을 그으며 차르에 맞선 노동계급과 농민의 대열에 학생이 함께할 것을 호소한다. 이들은 이를 위해 불법적인 조직활동에 동참할 것을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들은 1914년 9월 오스트리아에서 탈출해 스위스에 도착한 레닌이 발표한 전쟁에 관한 몇 가지 테제와 정확히 일치한다.

"현재 사회민주당의 슬로건은 다음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 아래와 같은 완전한 선전책(宣傳策)이 군대와 군대의 행동 영역에 전파돼야 한다. 곧, 사회주의 혁명과 노동자 동지들 및 다른 나라의 고용된 노예들을 위해서는 모든 나라의 부르주아 정부와 당에 투쟁의 총구를 돌려야 하는데, 이 목표를 위해서는 선전 방침이 각국의 국어로 번역돼야 하며 각국의 군대와 각 집단에 불법적인 세포책을 조직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또 노동 대중의 혁명적 의식에 호소하는 것이 긴요하며 사회주의를 배신한 현 인터내셔널 지도자들과 투쟁하는 것도 중요하다. 또 독일∙폴란∙러시아, 그리고 기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여론을 조성해 유럽의 각 개체 국가들을 연방 공화국으로 변형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러시아 혁명사’, 김학준, 751쪽.

아래의 글은 볼셰비키 학생위원회가 1916년 12월 발표한 지하 성명서다. 알렉산더 실랴프니코프가 1923년 처음 출간한 것을 바탕으로 바바라 알렌이 영어로 옮겼다. 이 글은 존 리델이 편집해 그의 블로그(링크)와 미국 ‘사회주의노동자(Socialist Worker∙링크)’에 연재하는 ‘거리에서 본 1917:러시아혁명의 리플릿들’ 시리즈 1편이다.


1915년 스위스 치머발트에 모인 11개 나라 사회주의자 대표들.

혁명적 학생들에게 호소한다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1916년 12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러시아의 혁명적 학생들에게.

오직 용감한 자에게만 영광의 승리는 주어진다,
투쟁에서의 패배는 부끄러운 게 아니다…
젊은이여, 우리의 노래를 당신에게 들려주마 -
영원한 영광을 당신에게…

동지여! 반동의 기간 활동은 더 어려워지고 지루해졌다. 그들의 대응에 따라 정확한 행동이 요구됐지만 어떤 의문도 제기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 학생들 사이에 드러난 차이가 충분히 명확하게 밝혀질 수는 없었다. 조악한 헌법이 지배한 고약했던 10여년간 천박한 부르주아적 분위기가 학생들 사이에서 성장했고 더 강해졌다. 그들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던 이 분위기가 이제 바로 폭로됐다. 이러한 분위기는 일반적인 학생 단체들의 완전한 이데올로기적 파산과 무모한 기회주의를 입증한다.

한때 그들은 자신들만의 혁명적 민주주주의 깃발 아래 단결하는 듯했다. 최근 사회의 계급갈등이 격화하자 학생들은 두개의 대립하는 집단으로 갈라졌다. 먼저 이데올로기적으로 러시아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와 연관된 부르주아적 기회주의 집단은 최근 더 강해졌다. 다른 집단은 만국의 프롤레타리아트 계급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혁명적 사회주의자와 국제주의자들이다.

우리는 전자의 집단에 호소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와 신념을 공유하면서도 몇몇 이유로 여전히 사회주의적 노동자의 프롤레타리아 조직에 거리를 두고 있는 동지들에게 호소하고자 한다. 과거 대부분의 학생에게 이러한 작업은 그저 공감을 표하는 것 만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이제 혁명적 세계관은 행동할 의무를 이들에게 요구한다. 학생들이 그들의 공감을 포기하고 러시아 부르주아지와 한편인 부르주아적 학생들에게 투항하느냐. 그들이 글과 고민에서 벗어나 확신을 갖고 혁명적 행동에 동참해 현대사회의 노예제를 쓸어버릴 위대한 투쟁속 프롤레타리아트와 손잡느냐. 최근의 상황은 학생들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다.

그렇다. 학생들은 무척이나 ‘동정적’이다. 그들은 ‘인민’에게 유익한 것에 대해 무척이나 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위대한 가치라는 것을 내세워 별 대수롭지 않은 것을 실행할 수 있을지 따지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최상의 학생들은 사라졌다. 그들은 의식과 의지를 저 '가난하고 노예상태인 이들'에게 일치시키며 차르의 포악한 사냥개들과 맞서 어렵고 영웅적인 투쟁의 길로 전진했다.

신성에 의해 패배한 이들을 영원히 기억하라!
썩어빠진 감옥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영원히 기억하라!
우리에게 생생한 증언을 해준 이들을 영원히 기억하라!…

그런데 학생들은?! 그들은 스스로를 이데올리적 지위로 한정시킴으로써 자신의 게으름과 나약한 의지를 정당화 한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자신이 뚜렷한 ‘지위’를 갖지 못했음을 모르고 있다. 그들은 신념의 이데올로기적-사회적 기반을 지니지 못했다. 오히려 천박한 기회주의적 더러운 늪 위에 서있을 뿐이다. 이데올로기적으로 사기를 저하시키는 유해한 분위기에 그들은 둘러싸여 있다. 그들은 자기애에 가득차 한껏 고무된 ‘지위’와 그들의 (퇴행적) 분위기의 절대적 가치에 대해 늘어놓곤 한다. 학생들은 그런 분위기에 가라앉아 몇 년을 보내버렸다.

지배계급과 정부의 약탈정책 결과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모든 이들이 시급히 답해야 할 예민한 질문이 의제로 제기됐다. 이 뜨거운 질문과 벌어진 놀라운 사건에 러시아의 여러 사회 계급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이렇게 제기된 질문들로 인해 학생들은 더 이상 동일한 태도를 지닐 수 없게 됐다. ‘민족의 단결’에 대한 부르주아 언론의 그토록 많은 거짓말에도 인민(프롤레타리아와 빈농)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 학생 중 소수는 인민과 함께해왔다. 소위 ‘사회’와 함께한 것이 아니다. 1905년 첫 혁명의 바리케이트에서 인민과 한편에 선 학생들은 반동으로 고난스러웠던 몇해 동안 인민과 함께 고통받았고, 이들 인민을 단지 목적을 위한 수단 취급하는 부르주아지의 핏빛 복수극에 이들이 동원되는 걸 막기 위해 애써왔다. 프롤레타리아트와 함께 선 학생들은 단결한 인터내셔널의 붉은 깃발을 모든 나라의 부르주아지와 [지금은 변절한] 몇몇 사회주의 옛 교사들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했다. 물론 어떤 학생들은 국수주의에 속아 적극적으로 전쟁을 받아들였고 ‘조국’-국가와 부자가 이것의 심장과 영혼이다-을 가상의 압제자로부터 구하기 위해 학살극에 기꺼이 몸을 던졌다.

세계적 학살이 시작된 이래 이들은 단지 ‘반대 만이 아닌’ 더 나은 것을 찾는 데 실패해 왔다. 이중에는, 국가는 계급지배의 첨예화된 표현이라고, 현대 정부는 부르주아지의 지배를 나타내는 것일 뿐이라고 일찌감치 얘기해왔던 이들도 있다. 그들은 정당화될 수 있는 유일한 전쟁은 부르주아지와 잔혹한 니콜라이2세의 폭정에 맞선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쟁, 압제자에 맞선 노예들의 전쟁뿐이라고 주장했다.

‘반대 만이 아닌’ 결단을 내린 이들은 자신의 동료 다수와의 관계를 끊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등을 돌린 그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거나 방탕에 빠졌다. 억압받는 인민을 방어하기 위해 양손을 치켜들었던 이들은 전쟁이 28개월 지난 지금에 와서야 차르에 매수된 공포를 기반으로 한 형제애에 자신의 두 손이 엮여있음을 알아채고 경악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속아왔다고, 군주제에 대한 친밀감이 전쟁이 끝없이 지속되는 오래된 주요 이유였다고 느끼고 있다.

제2인터내셔널은 [그 내부의] 국제주의자와 사회애국주의자들의 갈등이 그리 심하지 않던 평화적 시기에조차 혁명적 조직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적절치 못했다. 그들 다수는 제국주의 전쟁에서 혁명적 행동이 시급하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세계대전이 시작됐을 때, 혁명적 행동을 위해 프롤레타리아트를 결집시키고자 하는 의지는 부족했고 기회주의에 의해 이 행동들은 소모적으로 이뤄졌다. 실천적 자세가 불확실하다는 점 때문에 종종 급진적 지식인들에게 공감을 얻기도 했다. 평화시에도 인민에게서 군국주의의 견장을 떼놓을 수 없으면 거대한 살육이 시작했을 때 그러기는 더 힘들다. 세계의 부르주아지가 인터내셔널에 맞서 단결했을 때, 하지만 아직 단일한 대오를 이루지 못했을 때 단호한 걸음을 내디딜 필요가 있다. 제2인터내셔널이 실천적 자세에서 파산을 맞은 것은 단호한 행동이 필요할 때 그 조직과 의지가 얼마나 연약했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헛되이 흘려보내서는 안된다. [세계대전의] 피와 눈물의 바다 위로, 상이군인의 신음소리 사이에서 제3인터내셔널은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적 단결과 행동을 위한 조직으로 떠오를 것이다. 유럽의 프롤레타리아를 새로 만들어질 인터내셔널의 주력으로 모아내고자 한 첫번째 치머발트 회의의 ‘선언’을 우리는 환영한다.

전쟁이 시작되던 때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나라별 단체 사이의 조직적 연결은 끊겼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들에 반대해 단결한 부르주아지가 사회주의까지 독차지하려는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스스로를 지켜내는 것 외에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지금은 조직적 파편화의 단계를 벗어나 혁명적 행동의 기반 위에 단결하는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 동지들이여, 이제 사회주의적 조직화 과정에서 우리가 참여한 정도가 우리 각자에게 내려질 판결의 증거가 될 것이다.

동지들이여, 활동을 시작하자! 사회민주주의 노동자의 불법 조직에 뛰어들자! 전쟁과 그 주모자들에 맞선 투쟁에 학생들을 조직하자! 이 조직들을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과 연계시키자! 사회주와 혁명적 선동의 요새를 세운다는 마음으로 합법적인 민주주의적 조직에 뛰어들어 활동하는 것도 필요하다. 활동과 연설에서 주도권을 잡자! 모든 러시아 폭군의 총검으로 인민이 해방될 수 있다는 잘못된 공상을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일소하자! 활동하라! 조직하라! 동지들이여!

"노동하는 남녀, 어머니와 아버지, 과부와 고아, 상처입고 불구가된 이들, 전쟁의 모든 희생자들에게 우리는 호소한다. 모든 국경과 파괴된 도시, 시산혈해의 건너편에 있는 이들과 손을 잡자.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자!"는 호소를 들어봤을 것이다. 이는 치머발트 회의의 첫번째 선언이다. 이런 말도 들어봤는가? "세계대전 2년. 유린당한 2년. 피에 젖은 희생자와 미친 반동의 2년.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화약통에 불을 붙인 저들 뒤엔 누가 숨어 있는가? 전쟁을 원한 건 누구이고 오래전부터 이를 준비해온 건 또 누구인가? 바로 지배계급이다!"

동지여 보았는가. "전쟁의 막다른 길에서 무덤에 누운 수백 만 명을, 슬픔에 빠진 수백 만 명의 가족들을, 수백 만 명의 과부와 고아를, 폐허 위 잔해의 무더기를, 파괴된 대체할 수 없는 문화재"를. "여기엔 승자도 승리도 없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피흘려 허약해진 이들, 파괴된 이들, 피폐해진 이들 모두가 패배자다. 이것들이 이 잔혹한 전쟁의 결과물들이다. 따라서 지배계급의 제국주의적 세계 지배의 환상은 허구가 됐을 뿐이다."

시민이여 들어보았는가? "평화적 시기 자본주의 시스템은 노동자에게서 삶의 즐거움을 빼앗아갔다. 전쟁 동안 자본주의는 노동자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갔다. 삶 그 자체도 말이다. 살인은 이제 그만! 고통은 이제 그만! 약탈도 이제 그만!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가능한 빨리 이 학살을 중단시키자! 전쟁을 즉각 중단하라! 인민의 약탈과 파괴에 맞서 일어서자! 더 대담하게 행동하자! 당신들이 다수임을 기억하라. 당신들은 스스로 원한다면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다. 전쟁에 대한 증오와 사회적 구원에 대한 희망이 모든 나라에서 성장하고 있음을 정부에 보여주자. 그 후에야 인민은 평화의 시기에 도달할 것이다. 전쟁을 끝장내자!"

‘약탈당하고 파괴된 인민에게’는 치머발트 회의의 두 번째 선언이다. 이것은 사회주의로의 초대장이다! 우리는 위대한 사건의 문턱에 서있다. 이 사건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머뭇거리지 말자 동지여! 사건이 늦게 일어날 것을 걱정하지 말라! 학살을 중단시키고 가증스러운 노예제를 폐지시킬, 무엇보다 새로운 삶의 모습을 만들어나갈 전장에 인터내셔널의 전위는 이미 들어섰다. 거대하고 새로운 모든 세력이 혁명의 승리와 인민이 반란을 일으킨 축제의 장을 향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 뒤에서 따를 것이다. 그렇게 나가자 동지여! 자랑스러운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과 타협없는 투쟁의 붉은 현수막을 든 대열의 노동자들과 함께 발걸음을 함께하자!

차르주의 군주제는 답하라! 전쟁을 중단하라! 혁명이여 영원하라! 전진하자! 임시혁명정부를 위하여! 러시아민주공화국 만세! 사회주의 만세!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제3인터내셔널이여 영원하라!

자료 ‘러시아의 혁명적 학생들에게’. 1916년 12월 러시아사회민주당 고득교육기관 담당 조직위원회 발표. A.G. Shliapnikov, ‘Kanun Semnadtsatogo goda’, Moscow/Petrograd, Gosizdat, 1923, vol.2, pp.63~67.

영어 번역 바바라 C. 알렌 미국 필라델피아 라살레 대학 역사학 부교수. 저서로는 ‘알렉산더 실랴프니코프 1885~1937:고참 볼셰비키의 삶(Alexander Shlyapnikov, 1885~1937: Life of an Old Bolshevik)’가 있다.

알렉산더 실랴프니코프(1885~1937) 러시아의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숙련 금속노동자이자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로 자랐다. 1908~16년 서유럽에서 지내는 동안 그는 블라디미르 레닌과 함께 활동했다. 1차 세계대전 기간 그는 볼셰비키의 출판물을 러시아로 밀수하는 일을 조직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때 전러시아 금속노동조합 의장이 된 그는 볼셰비키가 권력을 잡은 뒤 노동인민위원에 임명됐다. 1919~21년 노동자반대파의 지도자로서 그는 노동조합이 경제를 통제하는 것을 옹호했다. 노동자반대파가 패배한 후엔 혁명에 관한 역사적 회고록을 작성했고 이 글들은 중요한 사료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스탈린 치하인 1935년 날조된 혐의로 체포돼 1937년 9월 사형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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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혁명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 레닌 지음|문성원ㆍ안규남 옮김|아고라 프락시스 총서


1917년 2월 페트로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혁명이 시작된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는 궁전에서 쫓겨났다. 황제가 물러난 겨울궁전에는 임시정부가 들어선다. 공장과 군대에는 소비에트가 세워졌다. 노동자와 병사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모으고 집행하기 위해 스스로 조직한 권력 기관이다. 이 소비에트는 1905년 혁명 때 처음 등장했었다.

세계 여성의 날인 2월 23일
(신력으로 3월 8일) 시작된 혁명은 구권력을 무너트렸지만 아직 새로운 권력을 세우는 건 쉽지 않았다. 겨울궁전의 임시정부는 노동자ㆍ병사 소비에트의 허락 없이는 그 어떤 행동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노동자ㆍ병사 소비에트도 임시정부를 넘어서진 못하고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의 교착된 전선처럼 러시아 내부에서도 지리한 고착상태가 들어서는 듯 싶었다. 노동자와 병사의 가장 급진적인 부위에서 당장의 빵과 평화를 요구하는 불만이 위험스럽게 쌓여갔다.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이 주도하는 소비에트는 머뭇거렸다.

카데츠와 멘셰비키ㆍ사회혁명당의 연립 임시정부는 반격의 기회를 잡았다. 전선에서 군사 규율을 강화하고, 페트로그라드의 혁명적 병사들을 전선에 배치할 계획을 세웠다. 6월 18일엔 독일군에 대한 공세를 취했다. 2월 혁명의 반란이 시작됐던 페트로그라드 비보르크 지구에서 설익은 반란이 계획된다. 레닌과 볼셰비키 중앙위는 이들의 행동을 만류하지만 7월 3일 시위가 시작된다. 그러나 아직 때는 아니었다. 노동자ㆍ농민ㆍ병사의 다수는 아직 볼셰비키를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소비에트가 연립정부, 즉 부르주아 국가기구를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연립정부는 즉각 반격했다. 7월 5일 정부는 볼셰비키 신문 '프라우다'의 사무실을 습격했다. 6일에는 레닌 체포령을 내렸다. 이어 트로츠키와 주요 혁명 지도자들에 대한 체포령도 이어졌다. 경찰과 우익 깡패 집단 흑백인조가 활개쳤다. 레닌은 몸을 피해야만 했다. 국경을 넘어 핀란드를 향했다.

국가, 전진하는 혁명의 피할 수 없는 벽

7월 사태 후 핀란드로 피신한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이 한 가장 중요한 작업 중 하나가 오늘 소개할 '국가와 혁명'을 쓰는 일이었다. 러시아에서 이제 막 수립된 부르주아 국가와 대결하는 일은 매우 시급한 일이었다. 봉건 권력에 맞선 혁명에서 부르주아는 노동계급 대중의 무장을 용인하곤 한다(여러 혁명을 겪은 후인 1836년 스페인 혁명 당시 부르주아는 이러한 무장조차 허락하길 꺼려했다). 그러나 권력을 잡은 부르주아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노동계급의 무장을 해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권력을 장악한 부르주아로서는 노동자의 무장을 해제하는 것이 첫 번째 계율이었다. 따라서 노동자가 쟁취한 모든 혁명 이후에는 노동자의 패배로 끝나는 새로운 투쟁이 계속되었던 것이다."(레닌 재인용ㆍ126쪽, 마르크스의 '프랑스 내전'에 대한 엥겔스의 1891년 서문)

1848년 2월 혁명은 파리 노동계급의 협력이 없었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혁명을 승리로 이끈 파리의 노동계급은 '사회공화국'의 전망에 들떠있었다. 그러나 오를레앙 왕조를 몰아낸 파리 부르주아지의 생각은 달랐다. 이들은 노동계급을 조롱하고 모독했다. 분노한 노동계급은 6월 봉기했다. 하지만 아직 충분히 무장하지 못한 노동계급은 잔혹하게 진압당한다.

레닌이 떠올린 것은 이러한 역사였을 것이다. 이미 레닌은 7월 사태를 겪으며 부르주아지의 음험한 속내를 엿볼 수 있었다. 7월의 공격으로 자신감을 얻은 부르주아지는 더 나아가려 했다. 연립정부의 수장 케렌스키는 코르닐로프 장군과 손을 잡고 볼셰비키와 노동자ㆍ병사에 대한 공격을 강화했다. 코르닐로프는 더 과감했다. 8월 25일 자신의 부대를 페트로그라드로 향해 진격시켰다. 26일에는 지금까지 협력자였던 케렌스키에게 물러나라고 협박했다. 볼셰비키가 쿠데타를 저지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면 코르닐로프의 이름은 혁명을 압살하는 데 성공한 장군으로 1936년 스페인의 프랑코, 1961년 한국의 박정희, 1973년 칠레의 피노체트 앞에 놓였을 것이다.

레닌이 '국가와 혁명'에서 '무장한 사람들의 특수한 조직체'인 상비군과 경찰ㆍ감옥과 같은 억압 기구를 국가의 핵심으로 꼽은 것은 이런 상황에서였다.

"무장한 사람들의 특수한 조직체가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부딪혔을 때, 서유럽과 러시아의 속물들은 …… 공공생활이 복잡해지고 기능이 분화된다는 등의 사실을 지적하곤 한다. 그러한 지적은 얼핏 보기에는 '과학적'인 듯하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사회가 서로 화해할 수 없는 적대적인 계급들로 분열되어 있다는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사실을 은폐하여 일반 사람들의 의식을 효과적으로 잠재우고 있다."(21쪽)

소비에트와 임시정부, 혁명적 노동자ㆍ병사와 궁전의 부르주아지는 화해가 불가능해 보였다. 엥겔스가 국가의 존재를 "사회가 해결 불가능한 자기모순에 봉착했고 도저히 떨쳐버릴 수 없는 화해 불가능한 대립물들로 분열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레닌 재인용ㆍ15쪽,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이라고 설명한 것은 레닌에게 너무나도 자명해 보였다. 겨울궁전의 부르주아지는 노동자ㆍ병사와의 대립을 견딜 수 없기에 자신의 힘을 소비에트와 혁명적 노동자ㆍ병사의 무력화에 집중해야 했다. 국가는 "계급 간의 충돌 속에서 생겨났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가장 힘이 있고 경제적으로 지배적인 계급"의 것이기 때문이다(레닌 재인용ㆍ25쪽, 앞의 책). 혁명이라는 역동적 시기 국가는 "계급지배의 기관이자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억압하기 위한 기관"이라는 자신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17쪽).

스페인ㆍ한국ㆍ칠레의 경험은 이러한 국가의 본질이 여전히 다르지 않음을 여실히 증명했다. 최근 이집트의 혁명적 노동자들이 경험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평화적인 시기에는 군대ㆍ경찰과 같은 억압 기관이 국가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게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위기의 시기면 군대는 어김 없이 자신의 존재를 만방에 과시하며 역사의 주재자로 등장한다. 최근 미국 연방정부의 폐쇄는 '평화적인 시기'임에도 이러한 국가의 본질을 얼핏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부예산을 둘러싼 갈등 때문에 미국 정부는 10월 1일 폐쇄됐다. 그러나 "국방, 경찰, 소방, 우편, 항공 등 '핵심 서비스' 업무는 정상 운영됐다". 국립위생연구소가 심각한 암 환자 200명을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고, 노동통계청은 실업률 발표를 연기했으며, 식품의약국은 수입 식품과 의약품에 대한 안전검사를 중단했다. 부당노동행위를 감시하는 전국노동관계위원회도 활동이 마비됐다. 노동계급 대중을 위한 필수적 공공서비스가 중단된 이 와중에도 미국 군대의 세계적 활동은 계속됐다. 테러리스트를 잡는다는 핑계의 10월 5일 리비아와 소말리아에서 군사 작전은 정부 폐쇄에도 아무런 차질 없이 진행됐다. 군대를 운영하는 데 종사하는 민간 군무원도 복귀했다.

국가는 화해 불가능한 계급대립의 산물이자 지배계급의 계급지배 기관이기 때문에 혁명에 성공한 프롤레타리아트가 가장 먼저 할일은 부르주아지의 국가기구를 파괴하는 것이다.

"나의 '브뤼메르 18일'의 마지막 장을 본다면, 당신은 내가 프랑스 혁명의 우선적 시도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더 이상 예전처럼 관료ㆍ군사기구를 한편의 수중에서 다른 편의 수중으로 넘겨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파괴하는 것이며, 또 이것이 대륙에서의 모든 현실적 인민혁명의 선결조건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레닌 재인용ㆍ65쪽, 마르크스가 쿠겔만에게 보낸 편지, 저작선집 4권 425쪽)

그러나 혁명의 시기 부르주아지는 내각의 일부를 노동계급 운동의 일부 지도자들에게 양보함으로써 위기를 넘기려 한다. 1848년 혁명 후 프랑스에서 그랬고 레닌이 이 책을 쓰고 있던 1917년 혁명 당시 러시아에서 그랬다. 사회혁명당의 케렌스키가 수상이 됐고 멘셰비키 7명이 내각에 들어갔다. 1936년 스페인 인민정부 내각에는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 국가에 대한 근본적 반대파인 아나키스트까지 포함돼 있었다. 1970년 칠레에선 심지어 사회주의자가 대통령이 된다.

위기가 이러한 권력의 '재분배'를 통해 해결되진 않는다. 그러나 "관료기구의 자리가 여러 부르주아와 프티부르주아 정당들에 많이 '재분배'되면 될수록, 피억압계급들과 그들의 정점에 있는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전체 부르주아 사회에 대한 그들의 화해 불가능한 적개심이 더욱 분명해진다". 따라서 "가장 민주적인 정당들조차도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억압을 강화하고 바로 그 억압장치인 국가기구를 강화할 필요가 생기는 것이다"
(53~54쪽). 자유주의 좌파 또는 사회주의자였던 이들이 권력을 잡은 후 강화되거나 여전히 유지되는 노동계급에 대한 억압은 한국과 여러 나라에서 공통되게 경험했던 바다. 브라질 정부는 올해 6월 대중교통 요금 인상으로 촉발된 반란과 10월의 교사 노동자 파업을 강력한 경찰력으로 잔인하게 공격했다. 이 정부의 수장인 브라질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는 사회주의 게릴라 출신이다. 정치권력의 일부를 분배받거나 국가기구를 장악하는 것이 혁명의 과제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혁명은 국가권력을 향해 '자신의 모든 파괴력을 집중'시키고, 국가기구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파괴하고 절멸시킬 것을 자신의 과제로 삼게 된다."(54쪽)

부르주아 독재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핀란드로 피해있던 레닌에게 과제는 부르주아 국가기구와의 대결 만은 아니었다. 아나키스트들에겐 국가기구의 파괴가 끝일테지만 말이다. 마르크스는 완전한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점차적으로 모든 자본을 부르주아지로부터 탈취하고 모든 생산도구를 국가의 수중에, 즉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의 수중에 집중시키며 생산량을 있는 대로 급속히 증대시키기 위해, 자신의 정치적 지배를 이용"하는 과제가 남아있을 것이라고 '공산당 선언'에서 지적했었다(레닌 재인용ㆍ42~43쪽, '공산당 선언' 이론과실천판 39쪽).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성공은 아직 국가 일반을 없애지 못한다. 높은 수준의 공산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사멸할 테지만 이제 막 혁명을 시작한 러시아에서는 "착취자의 저항을 억누리기 위해서도, 그리고 사회주의적 경제를 '운영하기' 위해 농민ㆍ프티부르주아ㆍ반(半)프롤레타리아 등을 지도하기 위해서도, 국가권력ㆍ집중화된 권력조직ㆍ폭력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이 레닌의 생각이었다
(46쪽). 즉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지에 대한 특수한 폭력조직으로서의 국가를 필요로 한다". 이 역할의 완성이 "프롤레타리아 독재,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지배다"(47쪽).

한국의 어떤 자칭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레닌과 볼셰비키의 발명품이라고 주장한다
(강신준 '김성구 교수의 비판에 대한 두 번째 답글'. "볼셰비키는 …… 의회를 해산시키고 독재의 길로 접어들었다. 당연히 독재를 정당화할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만들어낸 개념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개념"ㆍ링크).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른 완전한 왜곡이다. 레닌의 '국가와 혁명'은 1848년과 1871년 혁명을 경험한 마르크스와 엥겔스 저술로부터의 빼곡한 인용으로 가득하다. 레닌이 인용한 마르크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자.

"나를 두고 말하자면, 나의 공적은 근대사회에서 계급의 존재나 그들 상호간의 투쟁을 발견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부르주아 역사가들은 나보다 훨씬 전에 이러한 계급투쟁의 역사적 발전을 서술하였고,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계급을 경제적으로 해부하였습니다, 나의 새로운 점은 ①계급의 존재는 다만 생산의 특정한 역사적 발전 단계와 결부되어 있다는 것, ②계급투쟁은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나아간다는 것, ③이러한 독재 자체는 모든 계급을 지양하고 무계급 사회로 나아가는 과도기일 뿐이라는 것을 입증했다는 것입니다."(레닌 재인용ㆍ58쪽, 마르크스가 바이데마이어에게 보낸 편지, 저작선집 2권 497쪽)

파괴된 부르주아 국가를 대체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생각할 수 있는 한 가장 완전하고 철저하게 수행"되는 "민주주의"일 것이다. 1871년 파리 코뮌이 보여줬듯이 "다수의 인민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72쪽). 파리 코뮌은 이러한 완전한 민주주의,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몇 가지 조치도 보여준다. 코뮌은 보통선거를 통해 선출된 위원들로 구성된다. 이 위원들은 언제든 소환될 수 있다. 공직자에게 주어지는 보수도 노동자 임금 수준으로 조정된다. 각종 특권은 폐지된다. 법관들도 표면상의 독립성을 상실한다. 그리고 이 코뮌은 부르주아 의회와 달리 직접적인 실행기구이고 위원들은 언제든 소환될 수 있다. 이러한 조치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뛰어넘어 진정한 민주주의의 길을 여는 것이다. 혁명의 발전은 이러한 조치들에 덧붙여 구체적 상황에 맞는 다양한 방법들을 만들어낼 것이다.

혁명에 의한 부르주아 국가의 프롤레타리아 국가로의 대체는 단지 행정부에 대한 것 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입법ㆍ행정과 함께 사법도 노동계급의 직접적 통제 하에 들어갈 것이다.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는 교육과 종교 등도 예외는 아니다. 마르크스는 "코뮌은 옛 정부의 권력의 물질적 도구였던 상비군과 경찰을 일단 제거하고 나서, 곧바로 정신적 억압도구인 성직자 권력을 분쇄하기 시작했다"고 적고 있다. 1789년 혁명 이후 종교는 혁명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였다. 유럽에서 종교는 인민을 교육하는 기관을 담당하고 있었고 이들의 교육은 언제나 가장 보수적인 색채를 띄었었다. 즉 정신적으로 지배하는 핵심이었다
(71~72쪽).

민주주의의 한계 극복하기

국가의 폭력적 전복,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실행. 민주주의가 아직 확립되지 않고 국가가 여전히 폭력에 의한 지배에 머무르던 제정 러시아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닐까. 민주적 제도의 진전은 사회의 부정의를 교정하고 갈등을 완화하는 합법적인 방법을 확대할 것이라는 게 보통의 기대다. 여전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민주적 절차와 방법이 아직 덜 발전했고 대중이 민주주의에 익숙치 않아서 그렇다고 말해지기 일쑤다.

그러나 레닌에 의하면 "'부'의 전능함이 민주공화국에서 더욱 확실해"진다. 왜냐하면 부의 "전능함이 정치적 메커니즘의 개별적 결함이나 자본주의의 열악한 정치적 외피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공화국은 자본주의로서는 가능한 최선의 정치적 외피다. 따라서 자본은 이 최선의 외피를 획득한 뒤에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공화국에서 인물이나 제도나 정당이 아무리 교체되더라도 자기의 권력에는 하등의 동요도 없을 만큼 견고하고 확실하게 자신의 권력을 확립한다."(27쪽)

이는 "고대 공화정들에 있었던 자유"가 "노예 소유자들을 위한 자유"였던 것과 같은 것이다. 보통선거가 확립된 한국의 2012년 4월 총선의 투표율은 54.2%에 불과했다. 12월 18대 대선의 투표율은 17대보다 12.8%나 급증했음에도 75.8%에 불과했다. 그것은 레닌에 따르면 "현대의 임금노예들은 자본주의적 착취와 조건으로 인해 궁핍과 빈곤에 몹시 짓눌려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신경쓸 여지도 없고' '정치에 신경 쓸 여지도 없으며', 따라서 모든 일이 통상적으로 평화롭게 진행되고 있을 때는 주민의 다수가 공적 생활과 정치 생활에서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146쪽). 게다가 미국에는 아직 스스로 등록한 사람 만이 투표할 수 있고, 최근까지도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경찰이 포함된 조직적인 투표 등록 방해가 존재했다.

여기서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수호자 미국의 역할을 살펴보는 것은 나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언제나 민주주의를 위한 세계의 경찰을 자임해 왔기 때문이다. 미국의 중동지역 최대 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엔 민주주의라는 건 눈꼽만치도 없다. 1970년 칠레에서 사회주의자가 민주적인 방식으로 대통령에 뽑히자 자본가들은 온갖 사보타쥬를 자행했으며 민주 국가 미국은 이를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미국은 올해 7월 이집트 군부가 쿠데타를 자행했음에도 군사적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결국 민주주의는 자본가들의 지배가 위협받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레닌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한계를 매우 예민한 눈으로, 특히 피억압계급의 입장에서 바라본다. 다음과 같은 레닌의 지적은 우리에게 여전히 매우 소중한 지표가 될 수 있다.

"극소수를 위한 민주주의, 부자들을 위한 민주주의, 바로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민주주의이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기구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는 어디서나, 즉 선거권의 '사소한', 아니 사소하다고 이야기되는 세부 조항들에서만이 아니라 대의기관들을 구성하는 기술상의 문제에서, 단체조직권에 대한 실제적 방해에서, 일간지들의 순전히 자본주의적인 구성에서, 그 밖에 우리의 눈길이 미치는 도처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수많은 제한들을 볼 수 있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이러한 제한, 예외, 배제, 방해들은 특히 가난을 직접 체험해본적이 전혀 없고 피억압계급들의 실생활을 가까이 접해본적도 없는 자들의 눈에는 사소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제한들은 빈민을 정치로부터, 민주주의에의 적극적 참여로부터 제외하고 배제하는 것이다."(147~148쪽)

국가 없는 삶의 시작

부르주아 국가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로의 대체는 국가 일반의 사멸에 대한 전망으로 이어진다. 엥겔스는 이렇게 말한다.

"국가가 진실로 사회 전체의 대표자로 나서는 최초의 행위-사회의 이름으로 생산수단을 장악하는 것-는 동시에 국가가 국가로서 독자적으로 행하는 마지막 행위이기도 하다. 사회관계에 대한 국가권력의 개입은 한 영역 한 한 영역에서 차츰 불필요해지고, 그렇게 되면 국가는 스스로 조락한다. 인간에 대한 통치 대신에 사물에 대한 관리와 생산과정에 대한 지도가 등장한다. 국가는 '폐지'되는 것이 아니다. 국가는 사멸한다."(레닌 재인용ㆍ31~32쪽, 엥겔스 '반 듀링론')

부자가 아닌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인민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확장시킬 것이다. 그러나 억압자와 자본가들에 대한 제한은 존재할 것이다. 그렇기에 레닌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완전한 민주주의라고만 말하지는 않는다. "억압이 있고 폭력이 있는 곳에 자유가 없고 민주주의가 없으리라는 것은 분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과도적이고 하지만 필수적인 과정이다. "인민의 착취자ㆍ억압자에 대한 폭력적 억압, 즉 그들을 민주주의로부터 배제하는 것, 바로 이것이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민주주의가 겪게 되는 변화"인 것이다(149쪽).

"자본가들의 저항이 완전히 분쇄되고 자본가들이 소멸하고 더 이상 어떠한 계급도 없는(즉 사회적 생산수단에 대한 관계에서 사회성원들 사이에 전혀 차별이 없는) 공산주의 사회에 가서야 비로소, 그때에야 비로소 '국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고 자유에 관해서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참으로 완전하고 참으로 아무런 제외도 없는 민주주의가 가능해지고 실현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야 비로소 자본주의적 노예제로부터, 자본주의적 착취의 무수한 참상ㆍ야만성불합리추악으로부터 해방된 인간이 옛날부터 알려져왔고 수천 년에 걸쳐 모든 교훈서에서 반복된 사회적 공동생활의 기본 규칙들을 폭력 없이, 강제 없이, 복종 없이, 국가라고 하는 특별한 강제기관 없이 준수하는 데 점차 습관이 된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에 민주주의는 사멸하기 시작한다."(149~150쪽).


즉 사회주의가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해, 인민 다수가 "투표와 선거뿐 아니라 일상적 행정 사무에도 자주적으로 참여"하게 되고 "누구나 다 '국가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될 때 국가 일반은 사멸의 길로 접어든다(197~200쪽).

레닌은 러시아 혁명의 가장 큰 고비에 이르러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도움을 받아 혁명의 과제를 이렇게 정리한다. 혁명으로 권력을 잡은 프롤레타리트는 이전의 국가기구를 인수해 이용할 수 없다. 이전의 부르주아 국가기구는 파괴돼야 한다. 즉 혁명 러시아의 임시정부와 군대ㆍ경찰, 부르주아적 두마와 제헌의회는 제거돼야 한다. 부르주아 국가를 무너트린 자리에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들어선다. 소비에트는 이전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 볼 수 없었던 가장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로 인민의 공적 생활을 조직해 나가야 한다. 하지만 이곳의 대표자들은 언제든 소환될 수 있고 보수는 노동계급의 평균 임금으로 제한돼야 한다.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 하지만 아직 억압자에 대한 억압이 존재하기 때문에 완전할 수 없는 민주주의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다. 이 프롤레타리아 국가는 억압자를 억압함으로써 스스로의 사멸을 향한 길을 닦는다.

잊혀진 꿈의 귀환

러시아 혁명의 역사가 실제로 이렇게 흐르진 못했다. 참혹했던 내전은 혁명적 노동계급을 산산조각 내놓았다. 독일혁명의 패배로 인한 고립은 모든 과거의 오물을 부활시켰다. 옛 억압자들은 스탈린주의 관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관료의 독재로 대체됐고 국가는 사멸하지 않고 강화됐다. 소비에트 러시아의 붕괴는 부르주아 국가의 파괴와 모든 국가의 사멸이라는 희망을 백일몽으로 만드는 것 같았다.

현대 사회에서 국가는 레닌이 '국가와 혁명'을 쓰던 100여 년 전과 다른 운명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유럽에서는 자본주의 경제를 구하기 위해 각 나라의 주권, 인민의 민주적 권리가 대놓고 무시당하고 있다. 그리스 선거에서 급진좌파연합이 부상하자 독일의 메르켈 총리와 부르주아 언론은 그리스 인민들을 협박하는 짓도 개의치 않았다. 유럽연합 지도자들은 유럽연합헌법을 국민투표에서 부결시킨 아일랜드 국민들을 겁박했다. 프랑스에서도 헌법이 부결됐지만 유럽의 지배자들은 방법을 바꿔 국민투표 없이도 유럽연합의 원칙을 각 나라에 강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유럽에서 국가는 혁명가들의 행동이 아닌 지배자들에 의해 파괴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약화되고 곳곳에서 무시당하는 국가가 국민에 대해서 만은 그 강력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경찰의 잔인한 폭력은 유럽과 중동, 남미의 저항에서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세계적 차원의 지배자들은 여전히 국가적 차원의 폭력기구에 의지해 계급지배를 유지하고 있다.

고전적 국가의 귀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의 핵심 역할로써 억압기구의 활동은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미국에선 공화당의 부시가 애국자법을 만든 데 이어 민주당의 오바마가 국방수권법을 만들어 인민의 민주주의적 기본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 오큐파이 운동은 연방정부가 조직한 계획에 따라 전국의 경찰에 의해 일제히 폭력적으로 해산됐다. 현재 가장 잘나가는 경제를 지닌 중국은 민주주의하고 거리가 먼 나라다. 천안문 광장을 점령한 것은 인민 대중이 아닌 공안이다. 계급지배의 도구인 국가의 혁명적 전복을 꿈꾸었던 레닌의 '국가와 혁명'을 읽는 것이 여전히 의미가 있는 것은 바로 이처럼 우리 생활 곳곳에서 고전적 국가의 귀환을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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