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10

« 2019/10 »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혁명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보스니아 반란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권력이 필요하다. 성공했거나 성공에 가까웠던 모든 반란이 그랬듯이 말이다. 플리넘(Plenum)은 인민권력의 씨앗이 될 수 있을까.

보스니아 반란 ① 끝나지 않은 내전, 민영화
보스니아 반란 ② 플리넘, 인민권력이 싹트다
보스니아 반란 부록 - 인민의 목소리, 당신은 얼마나 배고픈가?


민영화 정책 재검토 등 일곱 개의 요구안을 들고 있는 시위대.

투즐라와 제니차 주지사는 7일 시위가 격화된 후 사임했다. 몇몇 자치주들로 이 사임의 물결이 확산됐다. 정부가 조기총선 카드를 빼들었지만 노동자와 반란에 나선 인민은 멈추지 않았다. 이들은 '플리넘(Plenum)'이라고 부르는 인민 의회를 건설했다. 시작은 역시 투즐라였다. 9일 투즐라에서 첫 플리넘이 열린 후 전국의 모든 반란 도시에서 플리넘이 개최되기 시작했다. 다미르 아르세니이에비치는 플리넘을 이렇게 설명한다.

"투즐라주 시민 플리넘은 우리 모두의 이익을 위해 우리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플리넘은 토론을 위한 공개적인 공간입니다. 플리넘은 어떤 지도자와 금기도 갖지 않습니다. 결정은 대중의 투표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플리넘은 정당이나 NGO, 독단적인 협회가 아닙니다. 플리넘은 현실적이고 유일한 민주주의입니다. 플리넘은 국가의 모든 권력기구에 제출할 요구안을 자신의 선언으로 만들고 채택합니다. 선언은 우리 모두의 말이고 우리 모두의 요구이기에 모두가 선언에 함께합니다. 국가의 권력기구를 향한 모든 다른 행동들은 부패, 정당의 도둑질, 개인적 이익의 추구와 인민을 약탈해 부유하게 되는 것들을 향해 계속될 것입니다."

이는 2011년 미국 뉴욕 오큐파이 운동의 '제너럴 어셈블리'보다 한결 발전한 모습이다. 오큐파이 운동의 제너럴 어셈블리는 저항운동 내의 이러저러한 문제를 처리하는 기관ㆍ과정ㆍ절차에 불과했지 권력에 도전하는 기관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플리넘은 혁명의 실제적 요구들, 즉 권력에 대한 것을 다루기 시작했다. 12일 사라예보 첫 플리넘에서 결정된 플리넘의 기본원칙을 살펴보면 더 확실해진다.

플리넘이란 무엇인가: 플리넘은 참석한 이들 모두의 의회입니다. 이는 토론을 위한 공간입니다. 결정은 공개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왜 플리넘인가: 그것은 모두에게 공개돼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투표할 권리를 가지고 있고 모두가 참여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각 개인은 한 표를 행사할 수 있고 이 공간은 비폭력적인 모두에게 열린 곳입니다.

플리넘의 원칙, 모두는 평등하고 동등한 권리를 갖습니다: 각 개인은 하나의 투표권을 갖습니다. 발언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 혹은 그녀의 이름 또는 성(family name)을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결정은 다수결의 원칙을 따라 과반수 이상의 찬성으로 이루어집니다.
존중하는 마음으로 당신 동료 시민의 발언을 들으며 당신의 발언 기회를 기다립니다.
플리넘은 규칙과 의제를 낭독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런 다음 제안과 추가발의가 진행됩니다.
이는 투표 없이 발언된 순서에 의해 의제에 덧붙여집니다.

플리넘의 진행: 플리넘은 지도자 없이 단지 토론을 용이하게 하거나 발언자들에게 주어진 시간을 관리하는 사회자만 둡니다. 사회자는 발언자가 주제에서 벗어날 때 원래 의제로 되돌아오도록 지적할 권리를 갖습니다. 한 명 또는 그 이상의 사람이 발언을 위해 손을 든 참가자를 확인하고 기록합니다.
한 사람은 플리넘 후 공개적으로 발표될 회의록을 기록합니다.

토론: 의제의 각 항목은 의제에 제기된 순서에 따라 토론합니다. 모든 논평은 그 항목에 연관된 것이어야 하며 질의는 바로 토론합니다.

투표: 논의되는 의제의 항목과 질의에 대한 토론을 시작한 후 최대 30분 내 투표를 시작합니다.

기본원칙이 플리넘을 다른 무엇보다 앞서 '토론을 위한 공간'으로 정의하고 있지만 운영 규칙을 담은 아래의 항목은 무엇보다 '결정'을 위한 과정을 정하고 있다. 만장일치의 합의제로 토론을 위한 토론으로 그 역량을 소모시켜온 오큐파이 운동의 제너럴 어셈블리와 가장 대비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여기서 채택된 첫 선언은 ①헌법에 기반한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에 대한 안전보장 ②새로 선임될 지방정부 책임자에 대한 헌법적 권리 인정 ③3월 1일까지 새로운 전문가 정부의 선임을 요구하고 있다. 이 요구들은 아직 혼란스럽고 모순적이기까지 하지만 분명히 권력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총선을 운운하며 시간 끌기에 나서려 했던 정부의 계획을 일축하고 인민의 힘에 의해 새로운 국가를 만들려 하고 있다.

이뿐 아니다. 노동조합ㆍ방송 등 사회의 모든 것을 다시 만들려고 하고 있다. 에미나 바보비치는 기업과 정부에 협조해왔던 '황색 노동조합'을 대체할 새로운 노동조합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어째서 노동조합의 역할에 관해선 말하지 않는가'라고 제게 묻습니다. 많은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부끄러워하고 있고 저는 개인적으로 디타(Dita)에서 소위 '황색' 노동조합이라고 불리는 조합이 정부를 위해서 일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는 대신 기업의 이익을 지켜 왔습니다. 노동조합 지도자는 사람들을 '매수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시위가 시작됐을 때 스스로를 대중과 격리시켰습니다. 지금 그들은 의회와 협상하는 단체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스메트 바히라모비치[노동조합 지도자 중 한 명인 듯싶다. 정확히 찾아보진 못했다.-옮긴이]가 저를 대표할 수 없기에 몇 가지 제안을 하려고 합니다. 저를 팔아버린 카타 이베리히치가 저를 대표하도록 놓아둘 수는 없죠. 저는, 그리고 많은 수의 노동자들은 투즐라에서 독립적인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황색' 노동조합은 [플리넘에-옮긴이] 참여할 권리가 없습니다. 또한 저는 침묵할 수 없는 노동자들이 용기를 가지고 목소리를 높여 저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투지와 용기를 가졌고, 우리가 단결했음을 저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아미라 시지크는 기업이 자행하는 온갖 비리와 부패를 밝히기 위해 인민의 방송국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저는 우리가 TV 방송을, 최소한 공공 라디오 방송국이라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이 방송을 위해 기부금을 모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방송에서는 정치인들이 메인 뉴스로 나오지 않겠죠. 그 방송은 인민이 말할 수 있는 장소가 될 것입니다. 불평등을 직접 경험한 목소리, 이를테면 어떤 교수가 자신의 의견 때문에 상관으로부터 공격받거나 직장을 잃을 걱정 없이 우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방송이 될 것입니다. 밝혀져야만 하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직원들에게 식대로 50달러를 주면서 250달러를 받았다고 서명하라는 회사도 있어요. 우리는 이러한 모든 회사들을 공개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언론을 가져야만 합니다."

발전 도상에 있는 플리넘, 약점은 극복될까

'헌법'을 여전히 자신들이 행동하는 근거로 삼으며 기존 의회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협력하려 하는 것, '전문가 정부'를 대안으로 요구하는 것은 분명 모순적으로 보인다. 이미 투즐라와 제니차 등 몇몇 주에서는 주지사 등 정부의 책임자들이 사임했고 주의회는 플리넘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발표했다. 즉 최소한 몇몇 지역에서는 실질적 권력이 거의 플리넘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기존의 허울뿐인 헌법과 의회를 존중한다는 것은 의외의 모습이다. '전문가 정부'를 요구하는 것도 그렇다.

"금융 특혜와 사라예보 주 모든 기업의 민영화에 대한 개정 사항, 2월 7일 시위에서 정부청사에 불이 났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에 대한 독립적인 보고서를 몇 주마다 보고하는 전문가들의 정부를 시민들은 원합니다."

사라예보 플리넘에서 아심 무이키치의 발언이다. 시민들에게 보고함으로써, 시민들의 통제를 받는 정부는 분명 발전된 전망이다. 그러나 이 전망이 노동계급 스스로의 정부와 같은 것은 아니다. 소위 전문가들이 겨우 '몇 주마다의 보고'만으로 시민의 통제에 온전히 순종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운동이 이제막 시작된, 7일의 불꽃으로부터 겨우 열흘 지난 상황에서 제기된 것들이란 걸 고려하면 '아직은' 결정적 약점이라고 보긴 어렵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통신원을 파견해 반란의 소식을 전하고 있는 레볼루션 뉴스는 "그리스와 이탈리아에서 선출되지 않은 신자유주의적 '기술관료'의 정부를 경험해 본 이들에겐 순진한 소리로 들릴 것"이라고 이를 지적한다. 그러나 플리넘이 요구한 '전문가 정부'는 "선거를 치를 때까지의 임시정부"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인민은] 수십 년 간 대중과 먼 세 '민족' 정파의 오만한 과두지배를 경험해 왔기에 '인민권력'의 형태로 제안한 공적 감독 요구가 분명 소위 '기술적' 정부 요구에 앞서 제기된 것입니다."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 1968년의 세계적 반란 등 역사적 경험은 이것 말고도 다른 플리넘의 약점들을 눈에 띄게 한다. 그들 스스로 인지하고 있듯이 너무나 분명한 투쟁의 계급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플리넘이 '시민'의 의회로 '모두'에게 열린 공간으로 간주되는 것이 첫째 약점이다. 지금까지는 오직 '개인'으로서만 플리넘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 약점을 극복하고 있지만 민족주의적 우파와 지배자들이 조직적으로 대응할 때 플리넘의 이 약점은 치명적이 될 수 있다. 둘째 약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직까지 이 플리넘은 '무장'의 문제를 제가히자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란이 확산되면서 베니치의 경찰이 시위대와 참여했지만 무장한 정부의 힘은 만만한 게 아니다. 게다가 유럽연합과 국제사회는 이 반란이 '악화'되면 군사적으로 개입하겠다고 천명한 상태다. '보스니아 평화협정 이행 국제사회고위대표부(OHR)'의 발렌틴 인즈코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오스트리아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주둔군 병력을 늘릴 것입니다. 만약 상황이 확대되면 아마 나는 유럽연합 군대를 파병하는 것을 고려하겠죠. 그렇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이는 과거 1차 세계대전이 바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니 사라예보의 사건에서 촉발됐듯이 이번 반란이 주변국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옛 유고 연방이 영향을 받고 있다. 내전의 한 축이었던 이웃 나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연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베오그라드 경찰 노동조합은 반란이 국경을 넘어 확산돼도 진압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조란 밀라노비치 크로아티아 총리가 반란 직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로 날아와 크로아티아계 주민들에게 시위에 참여하지 말 것을 호소한 것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반란의 영향력을 반증하는 것이다. 내전을 치뤘던 옛 유고 연방의 독립국들은 혁명의 확산을 막기 위해 [내전을 재개하는 방식으로] 손을 잡거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아직 완전한 주권을 갖지 못한 상황을 이용해 NATO의 개입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2011년 이후 PIGs라고 불리는 포르투갈ㆍ이탈리아ㆍ그리스 등 남부 유럽에서 반란의 불길이 터져나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3년 이 불길은 터키ㆍ우크라이나로 이어졌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격변은 바로 아래 그리스 또는 옛 사회주의권 국가의 동료인 우크라이나의 반란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세계를 흔들 격변의 시작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중해-흑해를 잇는 반란 벨트가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보스니아에서의 저항은 2011년 이래 세계에서 일어난 반란 중 가장 발전된 형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대안적 형태의 권력을 '형성'한 단계에까지 이르진 않았지만 여러모로 그 가능성을 매우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세계는 정말 다른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끝)

보스니아 반란, 더 볼 만한 글들

●[Revolution News] Bosnia and Herzegovina: "Against the Economic Model"
●[Revolution News] Bosnia on the 8th Day of Anti-Government_Protests
●[Revolution News] Amplifying the People's Voice of Bosnia
●[Revolution News] Bosnia and Herzegovina Teach EU a Lesson in Democracy
●[ROAR mag] Sow hunger, reap anger: why Bosnia is burning
●[ROAR mag] Bosnia on fire
●[AP] Bosnia's failed privatizations key cause of unrest
Bosnia Protest Files

Posted by 때때로

댓글을 달아 주세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북동부 도시 투즐라는 유럽에서 유일한 염호로 유명하다. 터키어로 소금을 뜻하는 '투즈(Tuz)'에서 이름이 유래하기도 했다. 이곳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대부터 유고슬라비아 시절까지 대표적인 산업지역이었다. 지금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세 번째로 큰 산업도시다. 1992~1995년 내전은 10만여 명이 목숨을 잃은 참혹한 재앙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투즐라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역의 노동자들에게 재앙은 끝나지 않았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재구축 과정에서의 민영화는 전쟁으로 많은 것을 잃은 노동자들에게 남겨진 얼마 안되는 것들까지 약탈해 갔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다시 시작된 내전, 이번엔 계급전쟁인 내전에 대해 살펴보겠다.

보스니아 반란 ① 끝나지 않은 내전, 민영화
보스니아 반란 ② 플리넘, 인민권력이 싹트다
보스니아 반란 부록 - 인민의 목소리, 당신은 얼마나 배고픈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세르비아계의 스르프스카 공화국, 무슬림과 크로아티아계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 두 개의 체제로 이뤄져 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은 10개의 주로 나뉘어 있다. 민족과 종교에 근거행 지역과 인민을 분할한 지금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정치체계는 1995년 내전을 종식시킨 데이턴 협정에서 비롯했다. [그래픽 自由魂]

"[내전이 진행되던] 그 때 저는 전쟁 때문에 전기를 사용할 수 없었고 난방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는 임금을 받지 못해 전기와 난방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19개월 째 임금을 받지 못한 무네베라 드루고바치가 AP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녀는 옛 유고시절 국영기업이었던 페로엘레크트로(Feroelektro)에서 1984년부터 일해왔다. 10년 전 재계의 거물 고란 스타니치가 이 회사의 지분 60%를 100만 유로에 사들이면서 그녀의 삶은 악화되기 시작했다. 회사는 민영화되자 마자 임금을 삭감했다. 스타니치는 회사의 가장 값어치 있는 건물을 담보로 은행에서 240만 유로를 빌려 자신의 개인적인 석회 공장을 건설했다. 회사가 은행 빚을 갚느라 허덕이면서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중단됐다. 그녀는 19개월 째 일을 하고 있지만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제 남편은 전쟁 때 목숨을 잃었죠. 저는 평화로운 이 시기 고란 스타니치에 의해 목숨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드루고바치에게 닥친 참사는 투즐라의 디타(DITA) 노동자들에게도 비슷하게 다가왔다. 세제공장인 디타의 소유주는 2007년 회사를 사들인 후 막대한 은행 빚을 갚기 위해 노동자를 위한 연금과 건강보험료 지급을 중단했다. 노동자들은 1년 넘게 임금을 받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임금이 50개월이나 체불됐다고 말한다. 같은 지역의 Konjuh, Resod-Gumig, Polihem, Poliolchem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새 기업주들은 스타니치처럼 노동자들의 임금 떼먹고 기업의 자산을 팔아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기 바빴다. 민영화 과정을 관리감독하는 정부 기구도 무능하기 짝이 없었다. 법적 절차가 진행되는 기간은 기업주들이 자산을 팔고 회산의 파산을 신청하기 충분한 시간을 마련해줬다. 민영화는 노동자들과 인민의 공공자산 약탈을 부르는 다른 이름에 불과했다.

파업을 하던 노동자들은 2012년 12월부터 거리 시위를 시작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휩싼 반란의 불길이 투즐라에서 시작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옛 유고 연방 시절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사회주의 공화국은 공장 굴뚝을 국장으로 사용할 만큼 산업화된 지역이었다. 민영화와 그에 뒤이은 기업주들의 공공자산의 약탈은 불이 붙기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실업률 28%, 20년간 쌓여온 분노의 폭발

"이 봉기는 10년, 아니 20년 전, 공장과 설비가 없어지기 시작했을 때, 노동자들이 살아갈 기회를 잃게 됐을 때 일어났어야 합니다. 시위대에게는 정부를 불태우는 것 말고 어떤 길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사라예보의 한 은퇴 노동자의 말이다. 그렇지만 시위가 처음부터 격렬했던 것은 아니다. 2월 5일 평화롭게 시작된 노동자들의 시위에 학생들이 합류했다. 정부의 무능 때문에 유럽연합의 학생교환 프로그램인 에라스무스플러스(the European Erasmus+ program)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 학생들은 분노했다. 이미 압도적으로 높은 청년실업률 때문에 화가 쌓일 만큼 쌓인 상태였다. 세계은행이 발표한 공식 실업률은 28.1%다 이는 그리스 23.2%, 스페인 25%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장기실업률은 더 심하다. 2012년 그리스와 스페인의 장기실업률이 각각 14.4%, 11.1%일 때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장기실업률은 25.4%에 달했다. 청년실업률은 언론에 따라 57.5%에서 60%까지 추정한다. 투즐라 학생 하멜 세이라노비치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분노를 20년 간 쌓아왔습니다. 우리는 평화적으로 시위를 해왔지만 누구도 우리에게 귀기울이지 않았죠. 이 모든 일이 일어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전 단지 학생입니다. 하지만 부모와 친구들이 형편 없는 임금을 받는 동안 정치인들이 우리를 약탈하며 돈과 더운밥을 누리고 있는 상황은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시위대가 (정부청사에 불을 질러) 악화시켰다고 말하지만 전 아닙니다. 정치인들이 이해하게끔 하려면 이 방법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5일 시위는 노동조합과 실업자 연맹이 조직했다. 노동자와 실업자ㆍ학생 들은 주지사와의 면담을 요구했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았고 대신해 나온 경찰은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진압하기 시작했다. 굴복하지 않은 시위대는 거리에서 항의를 계속했다. 사흘 째인 7일 시위대는 주청사로 진입해 집기를 들어내고 건물에 불을 붙였다. 건물 밖의 시위대는 경찰의 진입을 가로막았다. 1년 넘게 항의를 지속해왔지만 그 누구도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았었다. 이 순간 전 세계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게 됐다.

반란은 곧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국으로 확산됐다. 1995년 내전을 종식시킨 데이턴 협정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국을 민족에 따른 두 개의 공화국으로 분할하고 다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을 10개의 주(Canton)로 나누었지만 이 강제된 경계는 노동자 투쟁의 확산을 막지 못했다. 사라예보는 물론 크로아티아계가 다수인 모스타르, 세르비아계가 다수인 스르프스카 공화국의 수도인 바냐루카에서도 노동자들의 연대와 항의시위가 벌어졌다. 시위 초기 '보스니아인들의 반란'이라며 민족적 분열을 부추기는 지배계급의 꼼수는 아직까지 큰 효력을 내지 못하고 있다. 반란의 불꽃이 민족의 경계를 넘어 순식간에 전국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데는 투즐라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국에서 가장 다민족적인 곳이라는 것도 한몫 했을 것이다.

게다가 정치인들은 무능하기 짝이 없다. 지난해 무슬림계 가족에게서 태어난 베리나 하미도비크의 죽음은 이를 극적으로 보여줬다. 병든 하미도비크는 치료를 위해 세르비아로 가야했다. 하지만 의회에서 정치인들의 민족적 갈등으로 통과되지 못한 시민권법 때문에 아이는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결국 목숨을 잃었다. 민족으로 갈라진 의회가 새로운 시민권에 '종교족ㆍ민족적 정체성'을 포함하는 것을 두고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치인들은 무능할 뿐만 아니라 탐욕스럽기도 하다. 한달 평균 임금이 350유로를 넘지 않음에도 의원들은 한달에 3500유로를 받고 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인민이 자신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선 기존 정치인들을 뛰어넘을 필요가 있다. 이들의 반란은 혁명으로 나아가야만 했다.(계속)

Posted by 때때로

댓글을 달아 주세요


프랑스의 자유ㆍ평등ㆍ박애 폭격

프랑스는 1월 11일 말리 내전에 전격적으로 개입했다. 공중 폭격을 실시했고 현재 군인 2150명이 배치돼 있다.

올랑드 대통령은 "프랑스는 아프리카 동맹국들과 함께 말리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내전 개입이 프랑스의 독단이 아니라 말리 정부의 요청에 대한 선의의 답변이란 것이다. 그는 "우리가 철군했을 때 말리가 안전할 것과 합법적인 정부와 선거과정 그리고 그 영토 안에 더 이상 테러리스트의 위협이 없도록 보장하는 것"이 군사개입의 목표라고 밝혔다.

그러나 상황은 여의치 않아 보인다. 미국의 지원도 항공기를 이용한 프랑스군 부대와 장비의 수송에 그치고 있다. 독일은 입발린 말과 달리 프랑스군의 수송 지원 요청도 거부했다. '국제사회, 말리 내전 개입 속도낸다'는 기사가 잇따르지만 대개는 말리 주변국들이 파병하면 그에 대한 재정을 지원한다는 것에 불과하다.

프랑스가 개입한 지 열흘이 지나면서 전세가 역전되는 듯도 싶지만 아직은 백중세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이슬람 반군이 프랑스ㆍ말리 군에 밀려 주요 거점도시에서 퇴각해 키달 인근 산악지역에 집결해 게릴라전에 대비하는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리비아와 북아프리카 지역의 혼란이 계속되면서 말리 북부도 이 분쟁에 편입되는 분위기다.


프랑스는 왜 개입했을까 1 근본주의의 확산? 말리 정부의 요청?

프랑스 군사 개입의 첫 이유는 그들 스스로 밝혔듯이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확산일 것이다. 말리 국민의 90%는 무슬림이다. 하지만 딱히 근본주의적이진 않았다. 2012년까지 세 번의 쿠데타가 있었지만 모두 세속주의적 세력이었다.

북부 투아레그족의 분리독립 요구라는 불씨에 근본주의 이슬람이라는 기름을 부은 것은 서방세계다. 서구의 경제ㆍ군사적 지원은 주로 소수민족 탄압에 활용됐다. "특히 2001년 9ㆍ11 테러 이후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명목으로 말리 정부에 대한 군사 지원을 확대하면서 투아레그족은 더욱 어려운 처지에 몰리게 됐다."
[중앙일보] 궁지에 몰린 투아레그족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과 손을 잡았다. 투아레그족 출신이 주도하는 '안사르 에디네', 비 말리 출신의 '마그레브 알카에다(AQIM)', 마그레브 알카에도 분리된 '서아프리카 지하드 통일운동(MUJAO)'이 그것이다. 이들과 세속주의적 투아레그족은 2012년 1월 '아자와드민족해방운동(MNLA)'를 조직했다. 운동은 곧 근본주의 이슬람 세력에게 주도권을 뺐겼다. 여기에 리비아 등 북부아프리카가 혼란한 틈을 타 무장한 채 되돌아온 망명 투아레그족이 결합했다.

주요 언론은 근본주의 이슬람의 확산으로 말리 북부의 인권침해가 심각한 상황에 처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인권을 지키기 위한 개입'이라는 오래된 수사가 다시 반복되고 있다. 근본주의 이슬람의 샤리아 율법을 따르는 가혹한 처벌 사례가 이어진다. 분명 인권침해가 상당수 발생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권침해는 근본주의 이슬람 세력만 자행하는 것은 아니다. 국제앰네스티는 지난해 7월 31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2012년] 3월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에 충성하는 군인들이 반대자를 대상으로 즉결 처형, 고문, 성적 학대를 자행하고 있는 사례들을 공개하며 말리 정부에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경향신문]

북부 근본주의 이슬람의 인권침해가 문제라면 남부의 쿠데타 정부에 대한 개입도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프랑스는 말리 정부의 요청이라며 북부 반군만 공격하고 있다. 여기서 말리 정부의 합법적 정통성 또한 의문이다.

2012년 3월 사노고 대위의 쿠데타는 말리 군부의 부패와 가혹행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우연하게 일어났다. 신발과 무기도 지원받지 못한 채 북부에서 반군세력과 싸우던 수십 명의 부대가 전멸당한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말리 정부는 지난 10년간 미국으로부터 10억 달러 이상을 지원받았음에도 반군과의 싸움에서 군인들은 제대로된 지원을 받지 못했다. 이 쿠데타 세력은 지금도 말리 정부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12월에는 쿠데타군에 체포된 지 하루 만에 풀려난 총리가 곧바로 사임하는 일도 있었다. 북부 반군세력에게 합법적 정통성이 없다면 군사개입을 요청한 말리 임시정부 또한 합법적 정통성은 없다.


프랑스는 왜 개입했을까 2 차이나프리카의 견제

프랑스 정부가 인권과 질서의 양날개를 단 천사가 아니라면 군사개입 이유는 다른 데 있을 것이다. 군사개입은 무엇보다 '프랑사프리크(프랑스+아프리카)'라고 불릴정도로 오랜 관계를 맺어온 프랑스와 아프리카의 사이가 나빠진 상황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알제리ㆍ세네갈ㆍ말리 모두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나라다. 말리는 1958년 세네갈과 함께 연방으로 독립한다. 1960년 세네갈이 연방에서 탈퇴하면서 지금의 말리공화국을 세웠다. 독립한 후에도 프랑스의 영향력은 상당했다. 2006년까지 프랑스는 말리의 주요 수입국이었다. 프랑스 아프리카투자자협의회는 49개 나라 1000여 곳에 지사를 두고 있다. 아프리카 8개 나라와 방위협정을 체결하고 있고 특수부대를 세네갈 가봉,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에 주둔시키고 있기도 하다.

"아프리카 일대를 식민지배한 과거 프랑스 정권들은 '프랑사프리크'라 부르는 각국 정권과의 은밀한 후원 또는 결탁 관계를 바탕으로 아프리카에서 패권을 유지해왔다. 유럽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아프리카에 군사기지를 보유하며 지역 '경찰' 국가 역할을 자임한 나라는 프랑스뿐이다."[경향신문]

말리 등 아프리카 국가들과 프랑스의 사이가 멀어진 것은 2000년대부터다. 특히 사르코지의 반이민 정책이 결정적이었다. 사르코지는 2007년 세네갈 다카르에서 "아프리카인들은 역사에 제대로 들어선 적이 없다"는 발언을 해 아프리카인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이 틈을 중국이 비집고 들어왔다. 지난해 중국과 아프리카 간 무역규모는 2000억 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리카 수입의 18%가 중국이다. 말리의 경우 무역의 25%가 중국과 이뤄지고 있다. '프랑사프리크'라는 말보다 '차이나프리카(차이나+아프리카)'라는 말이 더 익숙하게 됐을 정도다.

프랑스가 아프리카에서 약화된 영향력을 말리 내전을 계기로 다시 확대하고자 한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는 최근 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잇따라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리비아 내전에 가장 적극적으로 개입을 주장했던 나라가 프랑스다. 이어 코트디부아르의 대통령 축출에도 큰 역할을 했다. 국민일보는 이를 들어 프랑스는 "말리 군사개입이 잘못된 선택으로 끝날 경우 신(新) 식민주의를 시도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까지 보도했다.
[국민일보]


프랑스는 왜 개입했을까 3 방대한 천연자원에 대한 탐욕

프랑스가 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이 지역에 방대한 천연자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식민지와 같은 형태는 아닐지라도 프랑스에 우호적인 정부를 확보하는 것이 이 지역의 천연자원 수급에 유리하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말리는 세네갈-기니-가나-부르키나파소-니제르-카메룬을 잇는 '금광벨트'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우라늄도 큰 이유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말리의 우라늄은 모두 일본과 독점 계약돼 있다. 하지만 바로 옆 나라인 니제르는 프랑스의 주요 우라늄 수입국이다. 국영 원자력기업 아레바(Areva)는 니제르에서 우라늄을 조달해 왔다. 아프리카 지역에 강하게 남아있는 식민주의의 영향 때문에 말리의 혼란은 니제르의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아프리카의 국경은 민족적ㆍ문화적 경계와 상관 없이 식민지 모국 사이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어졌다. 말리 북부 반란의 주역인 투아레그족의 경우 말리는 물론 알제리ㆍ니제르 영토 내에까지 분포한다.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투아레그족의 반란이 주변국들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프랑스의 원자력 의존률이 75%에 달하는 상황에서 말리 내전은 심각한 위기를 촉발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지난해 말리 정부는 쿠데타 직전까지도 자국 영토에 매장된 천연자원을 밝히며 서방 국가의 주요 기업들에게 개발권을 분배하고 있었다. 세계사회주의웹사이트(WSWS)가 프랑스의 군사 개입을 '2013년과 아프리카에 대한 새로운 쟁탈전'이란 제목으로 비판한 것은 바로 이러한 상황 때문이다.

"프랑스군의 말리 귀환은 알카에다와 이슬람 근본주의에 맞선 전투가 아니라 우라늄, 금광 그리고 아직 개발되지 않은 유정과 이웃나라를 손아귀에 넣고자 하는 조치며 올랑드 대통령이 얼마전 '미래의 대륙'이라고 불렀던 이 대륙에 대한 프랑스의 권한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 르완다ㆍ리비아에서 최근 프랑스의 잔인성이 드러난 것처럼 파리는 아프리카에 대한 식민정책을 결코 완전히 단념하지 않았다."[참세상]


프랑스 좌파의 오래된 한계

식민주의는 오랫동안 프랑스의 좌파에게 리트머스와 같은 것이었다. 알제리가 그랬던 것처럼 이제 말리가 다시 한 번 그 역할을 맡게 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프랑스 좌파의 식민주의에 대한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2012년 프랑스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켰었던 장 뤽 멜랑숑이 속한 좌파전선(Left Front)은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민주공화좌파당(GDR)의 프랑수와 어센시는 16일 "좌파전선, 공산주의자와 공화주의자 대표자의 입장은 분명하다"며 "광신자의 야만 행위로 말리 민중을 포기하는 것은 도덕적인 실수일 것이다. 국제적 군사조치는 테러리스트 국가 설치를 막기 위해 필요하다"고 밝혔다. 좌파전선에 참여하고 있는 공산당(PCF)은 올랑드의 군사 개입을 더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그들은 12일 성명에서 "PCF는 그들 국가 남부를 향하는 지하드 그룹의 무장 공격에 대한 말리의 우려를 공감한다. 여기서 말리 대통령이 요청한 도움에 대한 대답은 유엔 깃발 아래, 미국과 아프리카연합 후원의 뼈대 하에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참세상]

다행스럽게도 반자본주의신당(NPA)과 좌파당(Gauche)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13일에는 반대 시위를 열었고 16일에는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내전ㆍ전쟁이라는 상황, 근본주의의 성장이라는 위협에서 우리는 흔히 군사적 개입이라는 '쉬워 보이는 방법'에 못마땅하지만 지지를 보내곤 한다. 만약 군사적 개입이 말리와 북서부 아프리카 인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혼란을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부득이하지만 지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과 리비아에서 그랬듯이 서방의 군사적 개입은 혼란만 부추길 뿐이다. 이들의 개입은 근본주의 이슬람의 성장을 더욱 부채질 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는 이들 지역의 오래된 식민주의 기억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과거 식민지 모국의 군사적 귀환은 오래전 식민지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위에서 살폈듯이 프랑스의 이번 군사 개입을 '인도주의'적이라고 볼 근거도 희박하다. 정치ㆍ경제적 욕심이 군사 개입이라는 불장난으로 이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방 국가의 아프리카와 아랍 지역에서의 군사적 모험을 중단시키는 게 이뤄지지 않는다면 다른 평화적 대안을 모색하는 것은 요원할 것이다.

● 주요 참고 기사
[중앙일보] 모범 민주국가였던 말리, 전쟁 수렁 왜
[경향신문] '말리 군사개입' 올랑드의 리더십 시험대에
[경향신문] 암울한 말리… 쿠데타군ㆍ반군 모두 인권유린 심각
[뉴시스] 20년 민주국가 망친 말리 쿠데타 주역 사노고
[참세상] 말리 반군 공습, "프랑스의 아프가니스탄 되나"
[국민일보] 中ㆍ美에 밀린 佛, 말리 개입으로 '阿영향력' 되찾기
[참세상] 말리 사상자 증가… 전쟁 반대 목소리 확대
[프레시안-월러스틴 논평] 아프리카 말리, 제2의 아프간 되나

Posted by 때때로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펭귄 2013.01.26 13: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잘 읽었습니다. 유익한 내용 감사합니다.

  2. 민죠이 2013.02.08 18: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갑니다. 머릿속에 정리가 싹 되네요 :-)

  3. 연풍청년 2013.02.20 17: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때때로님은 자본의 관점으로 보실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지난번에는 음악만 듣다가 나갔는데 오늘은 글 몇개를 보았습니다. 저도 말글장을 쓰고 있지만.. 때때로님 정말 대단하시네요.. 티스토리라서 그런가? 훨씬 정리가 잘 된거 같고 저는 그냥 Daum 블로그라서 딱히 별로..

    • 때때로 2013.02.22 10: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본의 관점'이 무엇을 말씀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네요.

      파워유저가 아닌 상황에서는 블로그 서비스 중 티스토리가 가장 깔끔한 것 같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