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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경제 : 시대의 지성 13인이 탐욕의 시대를 고발한다


경제위기가 시작된지 2년이 넘었지만 그 여파는 아직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경제위기 관련 책도 꾸준히 나오는 편이죠. 오늘 소개하는 '눈먼 자들의 경제'는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면에서 월가의 인간 군상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재미가 있습니다. 부제목으로 '시대의 지성 13인이 탐욕의 시대를 고발한다'고 되어 있고,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두 편의 글을 실었지만 이 책은 2008년 경제위기에 대한 경제'학'적인 분석을 담고 있진 않습니다. 그보다는 월가 사람들의 탐욕스러운 행동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죠.

2008년 금융위기의 절정을 장식했던 버나드 메이도프의 사기 행각에 관한 글이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는 점은 이 책이 '시스템'보다는 '사람'에 관심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스티글리츠를 제외한) 이 책의 저자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위기의 주역이었던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가라는 대중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버나드 메이도프에 관한 4부는 그의 사기행각이 어떻게 이뤄졌는지에 대한 설명보다는 메이도프 자신, 그의 두 아들, 그리고 그의 아내는 어떤 사람인가를 추적하는데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메이도프 뿐 아니라 너무나 어이없는 사기 행각들 때문에, "이것이 금융의 최첨단을 달리는 월가에서 정말 일어난 일인가?"라는 의문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3부 '혼란에 빠진 세상'에서 추적하는 앨런 스탠포드와 마크 드레이어의 행각은 싸구려 사기꾼과 다를바 없어 보입니다. 그러한 사기꾼들이 활개칠 수 있었던 월가라는 곳은 어떤 곳일까요. 기업의 부패가 꼭 이번 금융위기에서만 문제된 것은 아닙니다. 가까운 사례로 엔론의 분식회계가 있었죠. 물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과거에도 기업과 시장의 부패는 여럿 있었고 최근에는 저축은행 사태가 이러한 부정부패의 대표 사례죠.

※은행이 아닌 곳을 정부가 나서서 '저축은행'이라는 이름, 즉 대중이 '은행'으로 착각할 수 있는 이름을 붙여줬다는 점에서 결국 이러한 부패는 시스템의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700여 쪽의 두꺼운 이 책을 '심심할 때 읽으면 좋을 책'이라고 추천하는 것은 이 책이 골치 아픈 '시스템'보다는 흥미로운 '사람'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입니다. 이 것은 이 책의 대표적인 단점이자 장점입니다. 굳이 각 잡고 앉아서 밑줄 쳐가면서 읽을 필요는 없는 책이죠. 그렇지만 간혹 보여지는 저널리즘 특유의 날카로운 통찰이 담긴 구절은 인용해 써먹기 좋은 자료일 것 같습니다.

Posted by 때때로

최근의 저축은행 문제는 여러모로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를 닮았습니다. 그것이 부동산 경기 위축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는 점, 정부ㆍ정치권의 부동산 부양책의 후유증이라는 점, 관련 저축은행과 기업ㆍ대주주의 '모럴 해저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점, '첨단' 금융기법의 발달로 부실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조선일보 송희영 논설주간은 최근 두 칼럼에서 연이어 이 점을 지적합니다.

[4월 21일] 열린 국회 청문회에서도 역대 금융감독원장들 중 누구도 책임지는 발언을 하지 않았다. 모두가 혀를 교묘하게 굴리며 빠져나갔다. 신용금고에 '은행'이라는 고상한 간판을 달아주었던 사람들이나 저축은행도 은행이니 부동산에 펑펑 대출해주라고 물길을 터줬던 사람들이나 그때는 "저축은행은 믿을 만한 곳"이라는 메시지를 전했었다. 이제 와서는 입을 맞춘 듯 "부동산이 이렇게 될 줄 몰랐다"며 '예상 밖의 사태'란 방패 뒤에 몸을 숨긴다.
- 금융감독원장들의 '미끈한 혀', 송희영, 조선일보 2011년 4월 23일 26면(링크)

저축은행이 무더기 도산한 출발점은 부동산 경기 침체다. 부동산 불황(不況)이 길어져 거대 개발 사업에 대출해준 저축은행들이 큰돈을 물리고 말았다. … (중략) … 저축은행 대주주와 경영진이 죄인이라고 해서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권력자와 정치인을 믿고 따라갔다고 말한다. 노무현 정권은 기업도시·혁신도시로 바람을 잡았고, 이명박 정권 들어서는 뉴타운·보금자리 주택·4대강 개발로 부동산을 띄웠다. 시장·군수들은 너도나도 재개발 공약을 내놨다. … (중략) … 저축은행 사태가 찜찜한 이유는 더 있다. 그 안에 숨겨진 '폭발물'을 다 잡아낼 수 없다. 이번에 여러 군데서 이중장부가 나왔다. 특수목적회사(SPC)를 120개나 몰래 경영하면서 예금자 돈을 빼돌린 사례도 적발됐다. … (중략) … 감독 당국의 감시카메라를 피해 음지(陰地)에서 큰돈을 굴리는 경쟁이 국내 금융권에서 성행하고 있다. 서울 증권시장은 파생금융상품 거래에서 2년 연속 세계 최고 기록을 세웠다. 파생상품의 본가(本家)라는 시카고·뉴욕 시장까지 누르고 작년에 37억여건 거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한국 금융이 부쩍 성장했다고 뿌듯해 할 만한 징표는 결코 되지 못한다.
- 저축은행에서 나온 폭발물, 송희영, 조선일보 2011년 5월 7일 30면(링크)

저축은행 부실 문제는 부산저축은행의 부당 인출 사건으로 커다란 분노를 사고 있습니다. 이는 당장 금융감독 기능의 개혁 문제를 제기하는 듯 합니다. 금융감독 기구 쇄신을 위한 '금융감독 혁신 태스크포스(TF)'가 9일 출범했습니다. 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은 신경전을 벌이고 있죠. 하지만 금융감독 기구를 개혁(그것이 규제의 '강화'든, '효율'화이든)하면 이 모든 사태가 깔끔히 정리될까요?

조선일보의 송희영은 그렇게 보이지 않나봅니다. 그는 "말끔히 청소가 끝날 쯤이면 또 다른 탐욕과 무능, 천재성이 선량한 국민을 속이기 시작할 것이다. 어느 나라나 속이는 쪽과 속는 쪽은 정해져 있다"고 말합니다. 금융 시스템에 종사하는 '천재'들의 혁신은 그야말로 눈이 휘둥그레 돌아갈 정도의 속도로 각종 '첨단' 금융기법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사실 그들 스스로 자신이 하는 일 전체를 '이해하고' 하는지 의심갈 정도입니다. 이러한 금융의 '혁신'을 사건의 발생 후 추적해가야 하는 '금융감독 기구'가 따라갈 수 있을까요?

스티글리츠는 2008년 위기 이후 금융감독의 강화를 핵심적 과제로 지적하면서 경제 전체에서 금융 부문의 비대한 성장을 함께 제한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현재의 금융 시스템을 그대로 둔체 감독기능만 강화한다고 2008년 위기를 불러온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지 않는 것이죠. 송희영과 스티글리츠가 달라지는 건 이 부분일 것입니다. 송희영은 두 칼럼에서 저축은행으로 대표되는 한국 금융시장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그것을 경제 전체에서 금융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문제제기로 잇지는 않고 있습니다.

금융 시스템 내에서의 부정ㆍ부패, 도덕적 해이 만이 현재 저축은행 사태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축은행 부실이 부동산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 때문에 다른 경제 부문으로 부실이 확산될 우려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번 저축은행 사태에서 부분적으로 드러난 '지뢰'들은 그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한국의 파생금융상품 거래가 세계 최고 기록을 세웠다는 송희영의 지적이 서늘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는 "경제 흐름에 나쁜 신호등 여러개가 동시에 깜박거린다""저축은행 사태가 저축은행 울타리 안에서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다"라고 글을 마무리합니다. 그 바람에는 저도 기꺼이 함께합니다. 언제나 위기는 노동자와 하층민들에게 더 큰 어려움과 고통을 부과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현재의 정부가, 현재 한국사회의 지배적 분파가 이 위기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아마도 더 어려운 시기가 올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일까요. 송희영은 그의 두 칼럼에서 연이어 정치권ㆍ금융권ㆍ정부관료 모두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모두에게 죄가 있기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그러한 결말이 저들이 원하는 최선이겠죠. 하지만 지금의 비판이 그 자신과 현 정부ㆍ정치권의 면죄부가 돼서는 안될 것입니다.

Posted by 때때로

1.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와 스티글리츠의 '스티글리츠 보고서'는 이미 소개해드렸죠(링크). 오늘 얘기할 책은 스티글리츠의 다른 책 '끝나지 않은 추락입니다.



끝나지 않은 추락 조지프 E. 스티글리츠 지음|장경덕 옮김|21세기북스


'끝나지 않은 추락'은 2008년의 금융위기 전후를 추적한 책입니다. 월스트리트가 어떻게 거품을 일으키고 그것을 이용해 자신의 탐욕을 채웠는지, 그러한 탐욕에 무방비하게 동승한 연방준비이사회와 미국 정부의 무책임한 정책들에 대한 폭로로 가득한 책입니다. 그는 금융의 과도한 성장을 문제의 핵심으로 짚고 있습니다. 자본의 효율적인 배분을 목적으로 하는 금융이 그 자체로 이윤의 원천으로 부각되면서 오히려 사회적으로 유해한 효과를 끼쳤다는 것이죠.

많은 곳에서 언급됐 듯이 주택 거품과 카드를 기반으로 한 약탈적 대출, 창조적 회계라 불리는 사기성 짙은 회계조작 등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이 됩니다. 장하준의 책과 마찬가지로 그는 금융에 대한 규제완화를 그 원인으로 지목하죠. 이와 함께 지난 30여 년 우리의 경제활동을 규정지어온 지배적인 경제학 사상에 대한 반격을 시도합니다. 금융에 고삐를 풀어준 지난 30여년은 더 많은 불안(여러 금융위기들)을 가져왔고 우리의 삶을 더 불안정하게 했으며(가계부채의 급증), 유용한 기술의 혁신을 방해했다는 거죠. 더 커진 불평등, 특히 이익은 사유화 하되 손해는 사회화 하는 현재의 경제체제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합니다. 그 핵심 키워드는 '대마불사'죠. 거대한 금융기업들은 무너지기에도, 구조조정하기에도 지나치게 커서 '손해'로 위기에 처하더라도 정부가 도와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거대 기업들이 더 큰 '위험'을 불사하게 만들고 때론 '사기'와 '도박'에 자신의 판돈을 걸게 만든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그는 올바른 '유인'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이 유인은 '규제'로서 가능하다는 거죠.

이러한 문제의식은 장하준의 책과 이어집니다. 금융규제와 제조업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대마불사 기업들의 무책임(손해의 사회화)에 손을 들어주는 정부 정책에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죠. 스티글리츠가 강조하는 '정보의 비대칭성'은 장하준의 23가지 주제 중 '합리적인 경제적 인간'에 대한 비판과 이어집니다. 스티글리츠도 한 절을 할애해 '호모 이코노미쿠스'에 대한 주류(시장 근본주의적) 경제학자의 주장에 대해 비판합니다.

현재 위기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통렬하게 고발하는 스티글리츠와 장하준의 책은 통쾌하면서도 뭔가 미진한 찝찝함을 남깁니다. 금융의 과도한 성장이 문제라고 했을 때 우리 사회는 왜 금융에 쏠리게 되었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월스트리트로 상징되는 금융기업들만의 문제가 아니죠. 장하준과 스티글리츠도 지적하고 있듯이 자동차 기업 GM은 금융부문에서 더 큰 이윤을 얻었습니다. 그들이 고발하는 시장 근본주의적 경제학이 지난 70년대 케인즈주의 경제학의 실패를 기반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상기할 때 케인즈로 돌아가자는(물론 똑같이 돌아가자는 말은 아닙니다) 말은 공허하게까지 느껴집니다.



대금융위기 존 벨라미 포스터, 프레드 맥도프 지음|박종일 옮김|인간사랑


여기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은 마르크스주의 학자인 존 벨라미 포스터와 프레드 맥도프가 쓴 '대금융위기'입니다. 거품에 기반한 금융의 과도한 성장을 현재 위기의 원인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장하준, 스티글리츠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이 책 저자들의 분석 또한 케인즈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그들은 한발짝 더 나갑니다.

금융부문은 '왜' 그토록 거대하게 성장했는가?

장하준은 제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적지만 그 중요성은 여전히 크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의미 없는 삽질, 빈 땅을 삽으로 팠다가 다시 되묻는 것도 GDP의 성장엔 도움이 됩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제조업인가, 혹은 금융부문인가는 애초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장하준의 주장대로 케인즈로 돌아갔을 때 제조업이 예전만큼의 성장을 보여줄 수 있는가는 믿기 어려운 주장입니다. 스티글리츠도 이 문제를 느끼는 듯 합니다. 그는 부탄의 행복지수를 예로 들며 인류의 행복은 GDP로 측정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경제의 (인류에게 이익이 되는) 올바른 유인을 위해서 새로운 지수의 개발, 그리고 그를 이용한 유인의 창출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가 '더 나은 자본주의'를 만들자고 하지만 여전히 '이윤'이 주요 동기로 작용할 사회에서 그것이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존 벨라미 포스터와 프레드 맥도프는 문제는 여전히 (식상하게 들리겠지만) 자본주의 그 자체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선진화된 자본주의는 굴뚝으로 상징되는 제조업 실물 부문의 성장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로 인해 만성적으로 정체하게 됩니다. 이 정체를 타개하기 위한 것이 금융으로의 진출이죠.  즉, '정체'와 '금융화'는 뗄래야 뗄 수 없는 현대 자본주의의 두 가지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러한 논거를 자신의 (먼슬리리뷰의) 선배인 폴 바란, 폴 스위지, 해리 맥도프의 '독점자본'론으로부터 빌려옵니다. 여기에는 노동 계급에 대한 약탈적 대출, 실질임금의 정체가 결합된 위로부터의 계급투쟁이 포함됩니다. 그들이 추적한 지난 30년의 역사는 GDP 대비 과도한 부채의 증가, 특히 실질임금 인상 없이 늘어나는 소비를 감당하기 위한 가계부채의 증가의 역사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될 수 있을까요? 실질임금 증가 없는 가계소비의 증가는 이미 과도하게 큰 가계부채를 만들어냈습니다. 거품에 기댄 금융부문의 과도한 성장은 실질부문의 성장 없이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에 대한 대답도 2008년 금융위기로 이미 현실에 드러나고 있죠. 물론 또다른 거품에 기대 생명을 이어가는 것은 가능합니다. 지난 2000년 IT거품 붕괴를 주택거품으로 대체한 게 한 예죠. 하지만 이것은 문제를 미래로 미뤄두는 것 뿐이라는게 이들의 주장입니다. 다음 붕괴는 더 크고 더 깊게 더 오래 지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와중에 정부의 기업 복지(이것은 스티글리츠의 책에 나오는 얘기입니다)는 강화되고 노동자 계급에 대한 복지는 더 축소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진정 다른 유인과 동력에 기반한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들은 이러한 새로운 체제를 '사회주의'라고 부릅니다.


2. 하지만 이 체제의 변화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대중의 참여는 더욱 그렇죠. 오바마 행정부의 기업복지(금융기업에 대한 아무런 조건도 없는 무제한적 지원)에 대한 대중의 반감 덕을 본건 오히려 '공화당'입니다. 경제 위기와 지배자(월스트리트)들의 부도덕성에 대한 잇따른 폭로에도 불구하고 좌파의 성장은 (특히 미국에서) 더딥니다. 월스트리트의 친구인 공화당이 월스트리트에 대한 메인스트리트의 반감 덕을 본건 정말 아이러니한 거죠.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앨버트 O. 허시먼 지음|이근영 옮김|웅진지식하우스


보수파(혹은 우파)의 '수사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죠. 이미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라는 베스트셀러도 있지만 최근 나온 앨버트 O. 허시먼의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는 이 수사학에 좀더 촛점을 맞춥니다. 원제는 '반동의 수사학(The Rhetoric of Reaction)'입니다.

레이건 행정부 시절 쓰여진 이 책은 보수의 핵심적 수사학을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것이다(역효과 명제)' '그래 봐야 기존의 체제가 바뀌지 않을 것이다(무용 명제)' '그렇게 하면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질 것이다(위험 명제)' 세가 지로 정리합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들 아닙니까? 레이건과 비슷한 시기 영국 총리를 지낸 대처는 이 모두를 합쳐 TINA(대안은 없다 : There is No Alternative) 한마디로 정리하죠. 사실 오랜 뿌리를 지니고 있죠. 허시먼은 그 뿌리를 프랑스 혁명에 대한 에드먼드 버크로부터 찾습니다. (더 올라가자면 '신의 섭리'를 대체한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까지 가죠.)

이 책은 아직 읽는 중입니다. 200쪽을 조금 넘는 분량이니 곧 읽겠죠. 문득 최근 광고들이 'do' 'why not?'을 외치며 도전을 외치는 것은 어떻게 연결될지 의문이 드네요. 꽤 오래전부터 사용된 나이키의 'Just Do It'도 있고요. 미국 보수주의 이념을 체화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중 가장 좋아하는게 밤비입니다. 여기서 밤비가 태어나 첫 걸음을 걸을 때 숲속의 다른 동물들이 응원을 하며 이렇게 말하죠. "넌 할 수 있어!(You can do it!)" 어쨌든 흥미진진한 주제의 책입니다.

Posted by 때때로




스티글리츠와 유엔총회 전문가위원회가 쓴 '스티글리츠 보고서'와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 가지'를 연이어 읽었습니다.

(장 하준의 표현에 의하면) 이 시대의 건강한 경제 시민이 꼭 읽어야 할 두 권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두 책의 목적은 약간 다릅니다. 앞의 책은 세계 경제위기를 맞아 유엔이 국제적 공조를 위한 처방전을 만든 것입니다. 얼핏 보면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비슷한 얘기를 반복하는 듯 싶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해서 보면 이 책이 매우 신중하게 현재의 경제위기를 진단하고 필요한 최소한의 정책적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금융에 대한 규제, 국제적 기구(IMF 세계은행 등)의 개혁 방향 내지 새로운 국제기구의 제안, 달러 중심 통화 체제의 개혁(지역 기축 통화 및 새로운 세계 통화 체제 건설) 등 어느 하나 가볍게 다룰만한 주제가 없습니다. 특히 이 책이 강조하는 건 지난 30여년간 우리의 경제 생활을 지배해왔던 기존의 통념, 신념체계에 대한 비판적 고찰입니다. 과연 시장에게만 맞겨두면 모든게 잘 이뤄질 것인가. 규제는 적을 수록 좋은 것인가. 금융의 '혁신'이 우리의 경제생활을 풍족하게 했는가. 국가의 개입은 적을 수록 좋은가. 이러한 근본적 성찰이 없이는 이번 위기를 넘긴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또다른 불안과 위기를 되풀이해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게 이 책의 주장입니다. 특히 눈에 띄는건 기존의 경제학에서 다뤄지던 수치적 지표 뿐 아니라 '기후변화' '빈곤' 등의 문제도 인류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경제의 개혁에 꼭 고려해야 할 사항이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마침 이 책을 읽는 기간이 G20을 둘러싸고 시끄럽던 기간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정부의 과도한 통제와 홍보에 짜증내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압도적이었죠. 저도 짜증나는 일이었지만 한편 아쉬웠던 것은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칠 G20 의제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가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스티글리츠 보고서에서도 짧게 지나치며 언급하지만 현재의 G20이 지금의 경제위기를 다루는 방식은 우려를 자아낼 만 합니다. IMF 개혁, 금융 부문에 대한 새로운 규제 등 얼핏 비슷한 얘기를 하는 듯 보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봐도 그 내용이 스티글리츠의 주장과 정 반대에 가깝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미국과 중국의 갈등 등 주요 강대국 들의 갈등으로 소리만 요란한 깡통이 되고 있는게 현실이긴 합니다. 이러한 갈등을 극복하고 어떠한 합의를 이끌어낸다고 할 지라도 그 방향이 과연 우리에게 장기적으로 유익한 합의일지는 의심스러운 사항이죠. 더구나 전세계 60억 인구와 190여 국가의 경제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결정들을 겨우 20개 국가들이 모여서 의논하고 있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에 반하는 일이죠. 그렇기에 스티글리츠 보고서는 유엔 차원에서의 세계 경제체제의 개혁을 촉구하기도 합니다.

스티글리츠 보고서와 함께 장하준의 책을 연이어 읽은 건 애초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잘한 것으로 보입니다. 스티글리츠가 강조한 기존의 자유 시장 경제학의 통념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장하준의 책에서 이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하준의 책은 보다 기본적인 쟁점, 하지만 치열한 논쟁의 대상인 쟁점에 대해서 다룹니다. 국가, 규제, 복지, 평등 등. 금융에 대한 규제완화와 국가 부문의 축소가 지난 30년간 경제를 새로운 발전 단계로 진입시켰다는 기존 자유 시장 경제학의 통념에 대해 구체적인 통계, 기초적인 논리를 동원해 통렬하게 비판하죠. 이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자유 시장주의에 근거한 고삐 풀린 자본주의를 폐기하고 더 나은 자본주의를 모색해야 한다. 2. 인간의 합리성은 일반적 믿음과 달리 불완전하다. 이에 걸맞은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 3. 이기심은 인간의 여러 본성 중 하나일 뿐이다. 인간의 보다 긍정적인 부분을 고무하고 발휘할 수 있는 경제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4. 부자는 너무 많은 돈을 벌고 가난한 사랆은 너무 적은 돈을 번다. 기회의 평등을 위해서라도 어느정도 결과의 평등이 필요하다. 5. 탈산업사회, 지식경제라는 새로운 현상은 그리 새로운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대개는 착시현상에 의해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다. 제조업은 여전히 중요한 경제적 기반이다. 6. 금융과 실물 부문의 적절한 조화를 위한 금융규제가 필요하다. 7. 더 크고 적극적인 정부는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의 주장과 달리 경제의 성장과 인간사회의 발전을 위해 유용할 수 있다. 8. 기계적 균형이 아닌 개발도상국에 대한 '불공평한' 우대가 필요하다.

장하준은 위의 8가지를 새로운 세계 경제를 설계하기 위해 우리가 꼭 고려해야 할 것으로 꼽습니다. 위의 두 책은 함께 읽어도 좋고 따로 읽어도 좋을 듯 싶습니다. 아쉬운 것은 앞의 책 '스티글리츠 보고서'가 너무 많은 오타(아무래도 디자이너의 ctrl+F 실수가 있었던 듯)와 종종 눈에 띄는 비문과 오역(정태인씨는 심지어 '반역'도 있다고 지적합니다) 때문에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것이죠. 그리고 내용 자체도 장하준의 책보다는 조금더 기초지식이 필요한 듯 싶습니다. 장하준씨 책의 마지막 문장을 인용하며 마칩니다.

"지금까지 언급한 여덟 가지 원칙은 모두 지난 30년 동안의 경제적 통념들과 직접적으로 배치되는 것들이다. 따라서 독자 여러분 중에는 불편함을 느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세계를 퇴보시키고 재앙의 구렁텅이로 내몰았던 원칙들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 예전과 비슷한 대참상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또 빈곤과 불안으로 고통받는 수십억 인구(개발도상국만 이런 상황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니다)의 처지를 개선할 수 있는 어떤 일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제 불편해질 때가 왔다."

Posted by 때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