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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우선한다 : 사회민주주의와 20세기 유럽의 형성
셰리 버먼 지음|김유진 옮김|후마니타스

이 책의 저자는 사회민주주의를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양자의 극복이라고 주장합니다. 마르크스주의의 '유물론'과 '계급투쟁'을 반대하고, 자유주의가 조성한 사회 구성원의 원자화ㆍ파편화를 극복한 이데올로기라는 것이죠. 경제를 우선시하는 유물론과 달리 정치적 우선성을, 계급투쟁과 같은 갈등의 전략 대신 계급교차(계급간 연대) 전략을, 개인들의 파편화를 극복하기 위해 공동체주의를 앞세운 것이 사회민주주의의 주요 특징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사회민주주의의 특징은 가장 안정되고 성공한 체제인 스웨덴을 만들어냈고, 비록 '사회민주주의'를 내세운 정당들은 실패의 길을 걸었음에도 유럽 전역에서 사회민주주의적 의제가 받아들여져 전후 유럽의 빛나는 시절을 이끌었다고 말합니다.

속류 마르크스주의의 경제결정론에 대한 비판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저자인 셰리 버먼은 정치/경제의 이분법적 태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정치는 오직 각 정당의 행위로만 축소돼 이해됩니다. 경제 또한 시장의 행위로만 이해되죠. 그 스스로는 구조와 행위에 대한 종합적 이해를 목적으로 한다고 하지만 경제와 정치에 대한 편협한 이해 때문에 20세기 유럽을 형성한 주요 사건, 1ㆍ2차 세계대전과 68년의 세계적 반란은 오직 정치 행위자들이 직면하는 외부적 사건으로만 그려집니다. 마치 인간이 개입할 수 없는 날씨의 변화와 같이 말입니다.

셰리 버먼의 이해에 기반해서는 스웨덴의 성공조차 온전히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그저 스웨덴의 사민당이 잘 준비돼 있었고 훈련돼 있었기 때문이죠. 결국 그들이 잘해서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왜냐면 그의 정치에 대한 편협한 이해에 기반해서는 1920~30년대 스웨덴의 격렬한 노동계급 투쟁이 사민당의 성공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자에게 정치란 오직 정치인들의 행위이며 노동계급을 비롯한 대중은 그들에게 표를 던지는 수동적 입장에 머물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사회민주주의를 여전히 중요한 정치적 대안으로 강조하기 위해 파시즘과 사민주의의 경제정책에 있어서 공통점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그 스스로의 서술에서 드러나듯 파시즘의 경제정책이라고 할 만한 것들은 온갓 것들의 잡탕입니다. 결코 하나의 일관된 이념으로 서명하기 어렵죠. 저자 자신이 설명하는 바지만 자본주의와 사적소유에 대한 급진적 반대를 수사로 해서 성장한 파시즘은 성공을 위해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을 공유하는 대자본가들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고 그들의 사유재산 몰수 조항들은 오직 유대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으로 변형됩니다.

하지만 1929년 경제위기 이후 2차세계대전까지 경제에 대한 국가의 강력한 통제는 결코 사회민주주의 정당과 파시즘만의 공통점은 아닙니다. 그것은 당시 전쟁에 참여했던 거의 모든 국가가 공통적으로 실천했던 바죠. 전간기 사회민주주의적 주장이 주요 정치세력에서 의미있는 행동을 하지 못했음에도 사회민주주의적 정책이 실현됐다? 이데올로기의 중요성과 그 매개체로서의 정당을 강조하고자 하는 저자 입장에서 이러한 사실은 그 자신의 주장과 모순될 뿐입니다.

저자는 사회민주주의를 현재의 위기에 여전히 유효한 이데올로기라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행동으로서 사회민주주의를 받아들였던 유럽이 68년 거대한 사회적 반란에 직면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자본주의 길들이기'에 성공한 사회민주주의적 유럽이 70년대 다시 자본주의의 고질병인 세계적 경제위기에 직면한 이유와 함께 이후 자유주의의 거대한 부활, 즉 신자유주의의 등장 또한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더 생각해볼 것 1 스웨덴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1930년대 활발한 노동자 투쟁을 빼놓아선 안 됩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동쪽에 거대한 '사회주의 제국'이 존재하는 상황, 국내에서의 격렬한 노동자 투쟁은 당시 스웨덴 자본가들이 한 발 양보할 수밖에 없는 조건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또한 스웨덴에서 노동조합은 사민당의 주도로 만들어져 당에 대한 높은 충성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조직률 또한 높아, 노동조합과 당의 지도자들이 대중을 '통제'하기 유리한 조건이었죠(확인이 필요하지만 당시 30~40%, 이는 현재 80% 전후에 이르는 조직률에 비하면 낮은 수치이긴 합니다. 하지만 한국과 프랑스는 현재에도 10% 내외의 조직률을 가지고 있다는 걸 고려하면 높은 수준이죠). 스웨덴 사민당의 계급교차 전략에 대해서도 더 고려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껏 그 어떤 사민주의, 공산주의 정당도 '계급연합', 특히 노동자와 농민의 연대ㆍ연합을 명시적으로 부정해오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건 노동계급의 주도성이 얼마나 관철되느냐죠. 이 점에 있어 저자 셰리 버먼의 주장은 불충분합니다. 다른 연구에서는 스웨덴 사민당이 계급교차적 전략(1930년대 자유당과의 연합, 농민에게의 양보)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급 중심성을 놓친 적 없음을 강조하기도 하니까요.

더 생각해볼 것 2 위의 '더 생각해볼 것 1'에서도 언급했지만 공산주의를 앞세운 '사회주의 제국' 소련의 존재는 사민주의 정치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현대 사민주의 정당은 '반공주의'를 주된 특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죠. 저자가 강조하는 '마르크스주의와의 단절' 또한 이 연장선상에서 파악되어야 합니다.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유물론과 계급투쟁의 강조가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는 기계적 경제결정론 또한 (저자도 잠시 언급하고 넘어갑니다만) 레닌에 의해 발전된 형태의 마르크스주의의 특징으로 볼 수 없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책과 말에 그러한 의심의 여지(기계적 결정론)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전적으로 마르크스의 탓으로 돌려야 하는지는 의문입니다. 저자는 카우츠키와 베른슈타인의 대립을 강조하지만,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와 카우츠키의 사민주의는 모두 역사적 진보는 예정되어 있다는 식의 속류화된 유물론(원시공산주의-노예제-봉건제-자본주의-공산주의의 역사발전 5단계론)에 기초해 사민당의 혁명적 역할을 부정했다는 공통점이 있죠. 마르크스의 핵심적 주장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에 대해선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여러 글을 종합해볼 때 그와 반대되는 면모 또한 무수히 많은 글에서 확인할 수 있죠. 당장에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만 봐도 그렇습니다. 이 테제의 마지막 문장은 역사에서 인간의 혁명적 역할의 중요함, 셰리 버먼에 따르면 정치의 우선성을 선언함과 다를 바 없으니까요. 마르크스를 기계적 유물론자로 모는 것은 저자인 셰리 버먼이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천박한 이해만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뿐입니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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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1 13:35

두 남자의 고백과 한 남자의 고발 2011.06.21 13:35

먼저 소개할 책은 '나는 가끔 속물일 때가 있다 : 두 남자의 고백'입니다.

독일의 저널리스트 두 명의 대담을 엮은 책입니다. 50년대 중반 태생인 이들은 전쟁과 대규모 이민을 겪은 세대의 자녀로 어린시절을 보냈죠. 한 명은 독일군으로 전쟁에 참여해 한쪽 눈을 잃은 무뚝뚝한 아버지 아래 자라면서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의 꿈을 꾸며 성장했습니다. 다른 한 명은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후 부모의 이혼으로 어머니와 함께 낯선 독일 땅에서 이방인으로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이 둘의 이야기는 정치, 시위, 어린시절, 가족, 가치, 영웅 등 다양하게 펼쳐집니다. 주제별로 장이 나뉘어 있긴 하지만 특별히 주제에 집착해 이야기를 진행하진 않습니다. 가볍고 쉽게 읽을 수 있죠.

이 책을 읽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옮긴이가 지적했 듯이 전혀 다른 역사와 전통을 지닌 나라의 이야기라는 겁니다. 더구나 꽤나 '유명'한 저자고, 한국에도 몇몇 책이 번역돼 나왔지만 이 둘에 대한 사전지식을 가진 분은 거의 없을 겁니다. 이들이 저널리스트로서 평소에 써왔던 글을 익히 알고 있고, 이들과 어린시절을 비슷한 환경에서 보낸 분들이라면 아마 더 재밌게 책을 읽을 수 있을 듯 합니다.



나는 가끔 속물일 때가 있다 : 두 남자의 고백
악셀 하케, 조반니 디 로렌초 지음|배명자 옮김|푸른지식



두 번째로 소개할 책은 '자본주의 역사 바로알기'로 많이 알려진 리오 휴버먼의 새 책 '휴버먼의 자본론'입니다. 나이가 더 많은 분에게 리오 휴버먼은 '사회주의란 무엇인가'의 저자로 더 익숙할 겁니다. 이번에 나온 책 '휴버먼의 자본론'은 바로 그 책, 동녘에서 나왔었던 '사회주의란 무엇인가'를 다시 번역한 책입니다. 편집자는 아마도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 책을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비유하고 싶었던 듯 합니다.

리오 휴버먼은 이 책에서 지극히 평이한 문체로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나갑니다. 특히 휴버먼이 후기에서 직접 밝히 듯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해 현대사회(이 책은 1951년에 처음 발간됐습니다)를 분석하면서 '마르크스의 저서'가 아닌 자본주의 미국사회를 만들어온 사람들의 입을 빌어 설명합니다. 프랭클린, 메디슨과 같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불려나오고 링컨의 주장 또한 중요하게 인용됩니다. 미국 의회에 출석한 기업체 사장들의 솔직한 발언도 주요 근거로 사용됩니다.

'자본주의 역사 바로알기'에서도 소련에 관한 장이 삭제돼 출간됐 듯, 이번 '휴버먼의 자본론'에서도 소련에 관련된 부분은 삭제됐습니다. 소련에 대한 그의 오판(충분히 이해할 만한)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작은 우리이게 여전히 많은 것을 알려줍니다. 그렇기에 그 부분의 삭제가 오히려 저서를 더 값어치 있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휴버먼의 자본론 : 과연, 자본주의의 종말은 오는가
리오 휴버먼 지음|김영배 옮김|어바웃어북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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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osaja 2011.06.23 12: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어쩌다 검색해서 흘러들어 왔습니다.
    덕분에 휴버먼의 자본론 구매버튼 눌러버렸다능;;
    좋은글 감사해요~

최근 정치학 분야 출판에서 눈에 띄는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후마니타스 출판사의 박상훈 대표가 새 책을 내놨습니다. '정치의 발견 :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가 그 책입니다.


정치의 발견 :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
박상훈 지음|폴리테이아



이 책은 박상훈 대표가 지난해 진행한 한 강의를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심상정씨가 원장으로 있는 '정치바로 아카데미'에서 마련한 강의입니다. 강의의 대상이 됐던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주로 '진보'라고 불리는 진영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도 일차적인 대상이 '진보파'임을 밝히고 서술을 시작합니다. 그렇기에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에게 더 뼈아픈 비판이 곳곳에 자리합니다.

저자는 작정하고 진보파에 대한 고언을 준비한 듯 싶습니다. 이를 위해 그가 첫 교재로 택한 책은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입니다. 80년대 막스 베버 책을 들고 다니다가 '막스'와 '맑스'를 구분 못한 경찰 때문에 연행됐다는 선배의 우스갯 소리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긴 합니다. 그렇다고 가벼운 농담거리로 채워진 책은 아닙니다. 저자가 '맑스(마르크스)'가 아닌 '막스'를 택한 것은 진보의 이상주의적 정치관을 깨뜨리기 위한 것이죠. 현실에서 정치는 권력을 다뤄야만 합니다. 진보가 채질적으로 두려움 혹은 거리감을 가진 경찰, 군대, 관료ㆍ공무원 등의 조직을 움직여 목표로 한 무언가를 강제해야 만 하는 것이 정치입니다. 이런 것들이 더럽다고 해서 외면하면 현대 국가의 강권력은 보수파와 기득권 세력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따라서 정치인은 다뤄야만 하는 폭력, 권력, 권위 등을 외면할 것이 아니라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겸허히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정치에 관련된 모든 윤리적 문제의 특수성은, 인간이 만든 조직에 내재해 있는 정당한 폭력이라는 수단 그 자체에 의해 규정된다. … 정치가란 모든 폭력성에 잠재되어 있는 악마적 힘들과 기꺼이 관계를 맺기로 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정치가는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외면할 수 없습니다. 아니 외면하면 안된다는 것이겠죠. 수단과 과정에서의 절대적 윤리가 결과의 실패를 옹호해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윤리는 '악에 대해 폭력으로 대항하지 말라'고 말하지만 정치가에게는 거꾸로 '너는 악에 대한 폭력으로 저항해야 한다. 안 그러면 너는 악의 만연에 책임이 있다'라는 계율이 더 타당하다."

한마디로 정치가는 진흙탕에서 뒹굴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이렇듯 이 책은 진보에서 가지고 있는 민주주의와 정치에 대한 순수한 이념에 일침을 가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을 비판하고, 리더십ㆍ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에 대한 터부의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거리에서의 시위에 대한 순수한 신념이 그 목적과 달리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의 정치적 참여를 저해한다는 주장도 머뭇거리지 않습니다.

저자는 공산주의, 혁명의 신봉자들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웁니다. 하지만 묘하게도 저는 이 책을 읽으며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를 떠올리게 되더군요. 아마도 그에 대한 얘기는 다음에 할 기회가 있을 듯 싶습니다.

베버의 이야기로 시작한 이 책은 차례대로 사울 D. 알린스키의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버락 오바마의 '담대한 희망'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E. E. 샤츠슈나이더의 '절반의 인민주권', 셰리 버만의 '정치가 우선한다'를 교재로 정치가의 윤리, 정치의 실천,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 진보파의 실패한 과거를 짚어나갑니다. 저자는 '정치학 교과서'의 불가능함에 대해 여러번 언급하지만 이 책은 지금 시기에 진보진영에게 훌륭한 '정치학 교과서'가 될 수 있을 듯 합니다. 특히 2008년 촛불이 꺼진 후 무언가 답답함을 느끼며 어떠한 돌파구를 모색하고자 하는 분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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