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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벨라미 포스터'에 해당되는 글 2

  1. 2010.12.06 끝나지 않은 추락, 대금융위기,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2. 2008.10.27 '사사방'의 귀환

1.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와 스티글리츠의 '스티글리츠 보고서'는 이미 소개해드렸죠(링크). 오늘 얘기할 책은 스티글리츠의 다른 책 '끝나지 않은 추락입니다.



끝나지 않은 추락 조지프 E. 스티글리츠 지음|장경덕 옮김|21세기북스


'끝나지 않은 추락'은 2008년의 금융위기 전후를 추적한 책입니다. 월스트리트가 어떻게 거품을 일으키고 그것을 이용해 자신의 탐욕을 채웠는지, 그러한 탐욕에 무방비하게 동승한 연방준비이사회와 미국 정부의 무책임한 정책들에 대한 폭로로 가득한 책입니다. 그는 금융의 과도한 성장을 문제의 핵심으로 짚고 있습니다. 자본의 효율적인 배분을 목적으로 하는 금융이 그 자체로 이윤의 원천으로 부각되면서 오히려 사회적으로 유해한 효과를 끼쳤다는 것이죠.

많은 곳에서 언급됐 듯이 주택 거품과 카드를 기반으로 한 약탈적 대출, 창조적 회계라 불리는 사기성 짙은 회계조작 등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이 됩니다. 장하준의 책과 마찬가지로 그는 금융에 대한 규제완화를 그 원인으로 지목하죠. 이와 함께 지난 30여 년 우리의 경제활동을 규정지어온 지배적인 경제학 사상에 대한 반격을 시도합니다. 금융에 고삐를 풀어준 지난 30여년은 더 많은 불안(여러 금융위기들)을 가져왔고 우리의 삶을 더 불안정하게 했으며(가계부채의 급증), 유용한 기술의 혁신을 방해했다는 거죠. 더 커진 불평등, 특히 이익은 사유화 하되 손해는 사회화 하는 현재의 경제체제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합니다. 그 핵심 키워드는 '대마불사'죠. 거대한 금융기업들은 무너지기에도, 구조조정하기에도 지나치게 커서 '손해'로 위기에 처하더라도 정부가 도와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거대 기업들이 더 큰 '위험'을 불사하게 만들고 때론 '사기'와 '도박'에 자신의 판돈을 걸게 만든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그는 올바른 '유인'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이 유인은 '규제'로서 가능하다는 거죠.

이러한 문제의식은 장하준의 책과 이어집니다. 금융규제와 제조업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대마불사 기업들의 무책임(손해의 사회화)에 손을 들어주는 정부 정책에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죠. 스티글리츠가 강조하는 '정보의 비대칭성'은 장하준의 23가지 주제 중 '합리적인 경제적 인간'에 대한 비판과 이어집니다. 스티글리츠도 한 절을 할애해 '호모 이코노미쿠스'에 대한 주류(시장 근본주의적) 경제학자의 주장에 대해 비판합니다.

현재 위기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통렬하게 고발하는 스티글리츠와 장하준의 책은 통쾌하면서도 뭔가 미진한 찝찝함을 남깁니다. 금융의 과도한 성장이 문제라고 했을 때 우리 사회는 왜 금융에 쏠리게 되었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월스트리트로 상징되는 금융기업들만의 문제가 아니죠. 장하준과 스티글리츠도 지적하고 있듯이 자동차 기업 GM은 금융부문에서 더 큰 이윤을 얻었습니다. 그들이 고발하는 시장 근본주의적 경제학이 지난 70년대 케인즈주의 경제학의 실패를 기반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상기할 때 케인즈로 돌아가자는(물론 똑같이 돌아가자는 말은 아닙니다) 말은 공허하게까지 느껴집니다.



대금융위기 존 벨라미 포스터, 프레드 맥도프 지음|박종일 옮김|인간사랑


여기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은 마르크스주의 학자인 존 벨라미 포스터와 프레드 맥도프가 쓴 '대금융위기'입니다. 거품에 기반한 금융의 과도한 성장을 현재 위기의 원인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장하준, 스티글리츠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이 책 저자들의 분석 또한 케인즈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그들은 한발짝 더 나갑니다.

금융부문은 '왜' 그토록 거대하게 성장했는가?

장하준은 제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적지만 그 중요성은 여전히 크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의미 없는 삽질, 빈 땅을 삽으로 팠다가 다시 되묻는 것도 GDP의 성장엔 도움이 됩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제조업인가, 혹은 금융부문인가는 애초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장하준의 주장대로 케인즈로 돌아갔을 때 제조업이 예전만큼의 성장을 보여줄 수 있는가는 믿기 어려운 주장입니다. 스티글리츠도 이 문제를 느끼는 듯 합니다. 그는 부탄의 행복지수를 예로 들며 인류의 행복은 GDP로 측정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경제의 (인류에게 이익이 되는) 올바른 유인을 위해서 새로운 지수의 개발, 그리고 그를 이용한 유인의 창출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가 '더 나은 자본주의'를 만들자고 하지만 여전히 '이윤'이 주요 동기로 작용할 사회에서 그것이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존 벨라미 포스터와 프레드 맥도프는 문제는 여전히 (식상하게 들리겠지만) 자본주의 그 자체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선진화된 자본주의는 굴뚝으로 상징되는 제조업 실물 부문의 성장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로 인해 만성적으로 정체하게 됩니다. 이 정체를 타개하기 위한 것이 금융으로의 진출이죠.  즉, '정체'와 '금융화'는 뗄래야 뗄 수 없는 현대 자본주의의 두 가지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러한 논거를 자신의 (먼슬리리뷰의) 선배인 폴 바란, 폴 스위지, 해리 맥도프의 '독점자본'론으로부터 빌려옵니다. 여기에는 노동 계급에 대한 약탈적 대출, 실질임금의 정체가 결합된 위로부터의 계급투쟁이 포함됩니다. 그들이 추적한 지난 30년의 역사는 GDP 대비 과도한 부채의 증가, 특히 실질임금 인상 없이 늘어나는 소비를 감당하기 위한 가계부채의 증가의 역사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될 수 있을까요? 실질임금 증가 없는 가계소비의 증가는 이미 과도하게 큰 가계부채를 만들어냈습니다. 거품에 기댄 금융부문의 과도한 성장은 실질부문의 성장 없이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에 대한 대답도 2008년 금융위기로 이미 현실에 드러나고 있죠. 물론 또다른 거품에 기대 생명을 이어가는 것은 가능합니다. 지난 2000년 IT거품 붕괴를 주택거품으로 대체한 게 한 예죠. 하지만 이것은 문제를 미래로 미뤄두는 것 뿐이라는게 이들의 주장입니다. 다음 붕괴는 더 크고 더 깊게 더 오래 지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와중에 정부의 기업 복지(이것은 스티글리츠의 책에 나오는 얘기입니다)는 강화되고 노동자 계급에 대한 복지는 더 축소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진정 다른 유인과 동력에 기반한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들은 이러한 새로운 체제를 '사회주의'라고 부릅니다.


2. 하지만 이 체제의 변화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대중의 참여는 더욱 그렇죠. 오바마 행정부의 기업복지(금융기업에 대한 아무런 조건도 없는 무제한적 지원)에 대한 대중의 반감 덕을 본건 오히려 '공화당'입니다. 경제 위기와 지배자(월스트리트)들의 부도덕성에 대한 잇따른 폭로에도 불구하고 좌파의 성장은 (특히 미국에서) 더딥니다. 월스트리트의 친구인 공화당이 월스트리트에 대한 메인스트리트의 반감 덕을 본건 정말 아이러니한 거죠.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앨버트 O. 허시먼 지음|이근영 옮김|웅진지식하우스


보수파(혹은 우파)의 '수사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죠. 이미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라는 베스트셀러도 있지만 최근 나온 앨버트 O. 허시먼의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는 이 수사학에 좀더 촛점을 맞춥니다. 원제는 '반동의 수사학(The Rhetoric of Reaction)'입니다.

레이건 행정부 시절 쓰여진 이 책은 보수의 핵심적 수사학을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것이다(역효과 명제)' '그래 봐야 기존의 체제가 바뀌지 않을 것이다(무용 명제)' '그렇게 하면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질 것이다(위험 명제)' 세가 지로 정리합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들 아닙니까? 레이건과 비슷한 시기 영국 총리를 지낸 대처는 이 모두를 합쳐 TINA(대안은 없다 : There is No Alternative) 한마디로 정리하죠. 사실 오랜 뿌리를 지니고 있죠. 허시먼은 그 뿌리를 프랑스 혁명에 대한 에드먼드 버크로부터 찾습니다. (더 올라가자면 '신의 섭리'를 대체한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까지 가죠.)

이 책은 아직 읽는 중입니다. 200쪽을 조금 넘는 분량이니 곧 읽겠죠. 문득 최근 광고들이 'do' 'why not?'을 외치며 도전을 외치는 것은 어떻게 연결될지 의문이 드네요. 꽤 오래전부터 사용된 나이키의 'Just Do It'도 있고요. 미국 보수주의 이념을 체화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중 가장 좋아하는게 밤비입니다. 여기서 밤비가 태어나 첫 걸음을 걸을 때 숲속의 다른 동물들이 응원을 하며 이렇게 말하죠. "넌 할 수 있어!(You can do it!)" 어쨌든 흥미진진한 주제의 책입니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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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7 12:03

'사사방'의 귀환 2008.10.27 12:03

오늘(26일) 비정규직노동자대회에 갔다가 시내 나간김에 서점에 들렀습니다. 어제 신문 책 소개란에 실렸던 마이크 데이비스의 '제국에 반대하고 야만인을 예찬하다'와 존 벨라미 포스터의 '벌거벗은 제국주의'를 구입하기 위해서였죠.



눈에 띄는 책이 한 권 더 있더군요.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 방법론'입니다. 아마 '사사방'이란 이름으로 더 유명한 책이죠. 지금의 이진경을 가능케 한 책이고요. '증보판'이란 딱지를 달고 멋드러진 표지에 하드커버의 이 책이 매대의 한 구석을 딱 차지하고 있더군요. 그에 맞춰 나온 부커진 'R' 2호의 표제는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한국사회: 다시 사회구성체론으로?'더군요.

김규항은 며칠 전 프레시안에 실린 칼럼에서 촛불 사이에서 실종된 '지성'에 대해 비판했었습니다. 모든 것을 이명박 탓으로만 돌려지는 지금의 상황이 촛불을 패배하게(혹은 승리하지 못하게) 만든 조건이었고 '이명박 탓'을 넘어 사회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방향을 제시해야만 했지만 못했던 좌파 지식인들이 지금의 무기력감 혹은 패배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었죠.

분명 촛불이 최절정기에 쓰여지고 편집돼야만 했던 계간지 가을호들(창작과 비평, 문화과학, 진보평론, 황해문화, 당대비평 등)의 촛불에 대한 글들은 촛불에 대한 찬양 일색이었습니다. 문제의 근본에 파고든 글들은 많지 않았고 그조차도 피상적이기 일수였죠.

물론 그렇다고 촛불이 제기한 사회적 문제에 대한 고민이 꼭 '사회구성체론'으로 연결되어야 할 필요는 없겠죠. 특히 '사회구성체론'을 80년대 후반의 그 옛 '유령'들로만 생각지 않는다면요. 그것이 꼭 과거의 식민지반봉건사회론, 주변부반자본주의사회론일 필요는 없겠죠. 지구적 차원에서의 자본주의적 현실과 현재의 한국 사회에 대한 통합적이고 역사적인 시각을 가질 필요를 제기하는 것이죠.

지금 막 사 온 책이기 때문에 아직 내용이 어떤지는 알지 못합니다. 이진경을 별로 좋아하진 않습니다. 그를 유명케 한 '사사방'도 그리 좋게 보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여전히 20여년 전의 문제의식을 잡고 늘어지고 있다는 증거인 듯 해 기분이 좋습니다. 책은 20년 전의 '사사방'에다가 보론을 덧붙인 형식입니다. 푸코, 데리다, 들뢰즈, 가타리 등 그동안 다양한 서구의 이론들을 넘나들던 이진경이 이제 본격적으로 지난 20여년의 작업을 종합하려고 하는 듯 합니다. 그가 직접 쓴 것으로 보이는 저자 소개에서도 앞으로의 작업 방향에 대한 간단한 코멘트가 들어있고요. 대안에 대한 근본적 사유와 행동을 놓치지 않으려 하는 그의 노력은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노력에 대한 보답으로 오랜만에 '사회구성체론'에 빠져보려 합니다.

이진경의 책과 함께 들고온 책은 존벨라미 포스터의 '벌거벗은 제국주의'와 마이크 데이비스의 '제국에 반대하고 야만인을 예찬하다'입니다. 최근 한국에 꾸준히 소개되고 있는 미국의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지식인의 책입니다. '벌거벗은 제국주의'는 번역되기 전부터 관심이 있었는데 막상 번역돼 나오니 걱정입니다. 자크 랑시에르의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 번역 논란으로 시끄러웠던 '인간사랑'에서 번역됐기 때문입니다. 번역가도 처음 들어보는 데다가 약력을 살펴봐도 모두 출간 예정인 책들만 있을 뿐이라서 믿음이 잘 안가네요.

코스피 지수 1000포인트가 무너진 주말이지만 여전히 풍만한 지름으로 가득찬 주말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또 지를 수 있을 지 기약하지 못한다는게 너무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지금의 지름에 감사하며 책 속에 빠져봐야겠네요.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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