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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가장자리'의 격월간지 '말과활'이 창간됐다. 가장 눈에 띈 것 중 하나는 홍세화 선생이 머리말에서 '민중'이란 말 대신 '인민'을 사용한 것이다. 이는 의도된 것으로 보인다. 인민이란 말이 우리 언어 생활에 그리 익숙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홍세화 선생은 왜 인민이란 말을 썼을까?

인민은 "국가를 구성하고 사회를 조직하고 있는 사람"을 뜻한다. 보통은 이와 함께 지배자에 대한 피지배자를 말할 때 사용된다. 비슷한 단어로 '민중'이 있다. 둘 다 특정한 정치적 함의를 지니지만 원래 그랬던 것은 아니다.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 세력은 민중에 보다 적극적인 정치적ㆍ사회적 집단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한다. 이는 인민이란 단어가 남북 분단 상황에서 금기시 된 때문이다. "늘 친하게 어울리거나 함께 노는 사람"을 뜻하는 '동무'란 단어가 분단 이후 잘 쓰이지 않게 된 것과 마찬가지다. 즉 분단 상황에서 내면화한 반공주의의 영향으로 인민 대신 민중이 쓰이게 된 것이다. 내가 보통 민중 대신 인민을 사용하는 첫 번째 이유는 특정한 정세가 내 언어생활을 제한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어서다
(북한 정권에 동의하지 않고 북한 인민이 스스로 나서 지배자들을 타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홍세화 선생도 아마 그래서가 아니었을까? 홍 선생의 인민이란 단어의 사용이 반가운 것은 우선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민중 대신 인민을 사용하는 바로 그 이유와 연관된 다른 문제 때문에 홍 선생이 인민을 사용한 데 마냥 반가워할 수만은 없다. 인민은 피지배 계급 일반을 의미한다. 마르크스주의자는 노동자 계급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그들이 오직 노동계급의 조건 개선 만을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계급을 강조하는 것은 피지배 계급 일반의 조건,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지배와 피지배의 조건을 결정짓는 핵심 고리에 노동계급이 위치해서다. 따라서 마르크스를 따르는 사회주의자는 인민 일반의 해방을 목표로 하지만 그 해방에서 노동계급이 핵심적 역할임을 결코 잊지 않는다.

민중 담론은 그렇지 않다. 이는 한편 위에서 지적한 내면화한 반공주의의 연장선에서 비롯한 것이기는 하다. '노동자'라는 말을 '근로자'가 대체한 사정과 같다. 그렇지만 더 중요하게는 민중 담론이 노동계급의 핵심적 역할을 부정하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노동자ㆍ농민ㆍ학생의 연대를 강조하는 민중 담론은 이들 세 사회적 집단을 수평적으로만 파악한다. 핵심은 노동계급으로부터의 후퇴다. 홍세화 선생이 사용한 인민이란 단어가 불길한 것은 그것이 노동계급으로부터의 후퇴를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머리말에서 안개에 싸여있던 인민의 의미는 뒤이은 지젝과 이진경의 글을 통해 보다 분명해진다. 지젝은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의 역사적 상황은 프롤레타리아나 프롤레타리아적 입장이란 개념을 포기할 수 없게끔 할 뿐만 아니라, 그와는 정반대로 마르크스가 상상했던 것을 훌쩍 뛰어넘어서 그 개념을 실존적 차원으로까지 급진화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적 주체에 대한 더 급진적인 개념을 필요로 한다. 이 주체는 모든 실체적 내용을 제거한 데카르트의 코기토처럼 무상의 지점으로까지 환원되는 주체다. 이런 이유에서 새로운 해방의 정치는 더이상 특수한 사회적 행위자의 행위가 아니라 각기 다양한 행위자들의 폭발적인 결합이 될 것이다."

마르크스와 같은 단어를 쓰고 있으나 그 뜻이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지젝은 그것을 "마르크스가 상상했던 것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그가 데카르트의 코기토를 비유로 들은 데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주장은 마르크스 이전으로 후퇴하는 주장일 뿐이다. 무정형의, 단지 지배받는 집단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로 말이다. 마르크스가 한 작업은 이 프롤레타리아라는 로마 시절로부터 비롯한 개념을 자본주의 사회의 운동 원리에 입각한 개념으로 바꿔놓는 것이었다. 그것이 현대 사회의 노동자인 것이다. 노동계급은 여러 사회적 집단 중 억압받고 착취받는, 지배받는 유일한 사회적 집단이 아니다. 자본주의적 지배 사슬의 핵심적 고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주목한 것이다. 결국 지젝의 주장은 계급으로부터의 후퇴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이진경에 의해 다시 반복된다. 이진경은 지젝보다는 덜 철학적인 언어로 노동계급으로부터의 후퇴를 분명히 한다. 마르크스를 떠올리게 하는 'M'이란 이름으로 말이다.

"제가 혁명성을 말했던 것은 노동자계급이라기보다는 프롤레타리아트였다는 것을 일단 상기해주길 바랍니다. …… 역사적 조건에 따라 누가 무산자인가가 달라지는 거지요. 16세기에는 토지 잃고 부랑하던 농민들이 무산의 프롤레타리아트였다면, 19세기에는 끔찍한 조건에서 노동해야 했던 산업노동자들이 프롤레타리아트였던 것이고, 당신(이진경)이 생각하듯이 안정적으로 노동하는 것조차 힘들게 되어버린 지금은 비정규직이나 실업자들이 새로이 무산의 프롤레타리아트가 되는 거지요."

마르크스가 현대의 프롤레타리아트로 노동계급을 바라봤다는 것은 아마 틀림 없을 것이다. 그는 '공산당선언'에서 여러 번 "프롤레타리아트, 즉 현대의 노동계급(the proletariat, the modern working class)"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마르크스는 당대 자본주의의 발전, 아직은 세계의 극히 일부분에서 일어나던 변화를 추적해 노동계급이 현대의 프롤레타리아트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진경의 주장 대로 노동계급이 현재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게 만드는 역사적 조건의 변화가 있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진경은 마르크스를 사칭할 능력은 있을지 몰라도 그러한 역사적 조건의 변화를 추적할 능력은 없는 듯하다. 그가 기껏 내세우는 것은 인상주의적 비평에 불과하다.


"지금은 정규직이란 단어와 함께 유사하게 사용되는 '노동자계급'……은 바로 옆에서 똑같은 노동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자신을 분리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속한 정규직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없게 차단하고, 그들이 옆에서 투쟁할 때 연대는커녕 방해하지 않으면 다행인 경우가 통상적인 게 되었죠."

정규직 노동조합 이기주의에 관한 비난에 불과한 것으로 마르크스의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을 대체할 수는 없다. 설사 그것이 대중의 상식에 부합하는 듯 보여도 말이다. 불길하게도 홍세화 선생은 이진경에게 동의하는 것 같다. 다시 들춰본 머리말에서 홍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인민도 이제 하나의 인민이 아니고, 노동자도 이미 하나의 노동자가 아니다."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과의 대화에서는 이렇게까지 말한다.

"주식투자를 하고, 부동산가치가 상승하기를 바라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조 가입조차 안 되는 현실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지 않은 노동자가 마르크스가 말한 의미에서 프롤레타리아인가, 더구나 이들이 자본주의와 다른 사회를 실현할 수 있는 주체인가에 대해선 지극히 회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홍세화 선생은 이진경과 공명한다. 물론 우리는 홍 선생 외에도 여러 사람들로부터 이런 주장을 들어왔다. 그런데 이게 새로운 것인가? 현대 자본주의의 새로운 경향인가? 우리는 마르크스 시절부터 이미 인민이 하나의 인민이 아니었음을, 노동자가 하나의 노동자는 아니었음을 떠올려야 한다. 프롤레타리아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다. 영국의 노동자와 그 식민지 아일랜드의 노동자는 달랐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노동계급 남성이 어떻게 자신의 아내와 자식들을 자신의 노예로 삼으려 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동계급 내 분열에 대한 인상주의적 비평이 아니다. 그 분열의 물질적 조건을 살피고 단결의 단초를 창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을 '안전판'으로 고려하게 된 조건, 그리고 그것을 벗어날 계기에 대한 탐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홍세화 선생과 이진경은 분열만 얘기할 뿐 그 역사적 조건에 대한 탐구는 인상주의적 비평으로 어물쩍 넘어간다.

현대 자본주의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모든 곳에서 노동계급을 대규모로 만들고 재생산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가족과 여성, 지역 공동체가 담당하던 많은 역할이 점점 더 자본주의적 경제의 영역으로 편입되고 있다
(과거가 좋았다는 뜻은 아니다). 자본주의적 위계제는 마르크스가 설명한 방식 그대로 사회에 더 많은 위계와 복잡한 지배관계를 재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파악을 도외시한 채 현실을 지양하는 새로운 공산주의 운동이 가능할까. 최근 잇따라 창간된 여러 진보 잡지들(월간 좌파, 진보신당-노동당 기관지 '미래에서 온 편지', 말과활)이 현재 세계를 휩쓰는 반란의 물결에 침묵하는 것과 함께 2008년 이래 6년째 계속되고 있는 경제위기에 대한 분석을 피하는 것은 불길한 조짐이다.

p.s.'말과활' 창간호에 실린 이진경의 글쓰기 방식에 대해 한마디 해야겠다. 마르크스는 신성한 이름이 아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역사적 한계를 강조했던 사람이다. 즉 역사적 조건이 달라지면 그의 주장은 틀린 게 될 수 있다. 마르크스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그를 반복하는 게 아니라 그의 주장에서 변형되어야 할 부분과 이어받아야 할 부분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런점에서 이진경이 마르크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 자체를 뭐라 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후예를 자처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마르크스의 이름이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마르크스를 수정해야 할 것이다. 마르크스의 이름 뒤에 숨는 것은 비겁한 짓이다.

Posted by 때때로

3월 30일, 36살의 쌍용차 해고자 한명이 자신이 살던 임대아파트 에서 몸을 던졌습니다. 스물두 번째.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이후 목숨을 잃은 사람의 수가 22로 또 하나 늘어났습니다.

● [프레시안] 쌍용차 해고자 또 투신자살 … 정리해고 후 22번째(링크)

부모가 없고 혼자 살았던 고인의 사정 때문에 그는 몸을 던진 후 하루가 지나서야 발견됐습니다. 그렇게 잊혀져가던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서야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렸습니다. 그리고 또 잊혀지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죽음이 그리스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은퇴한 후 연금을 받아 생활을 이어가던 77세의 노인 드미트리 크리스토울라스는 4월 4일 아테네 국회의사당 인근의 신타그마 광장에서 지니고 있던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그리스 국민이 칼라시니코프를 잡는다면 그와 나란히 설 것"이라는 그는 자신의 나이가 너무 많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만이 "존엄한 삶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처럼 보인다"고 마지막 남긴 메모에 적고 있습니다.

"The Tsolakoglou government has annihilated all traces for my survival, which was based on a very dignified pension that I alone paid for 35 years with no help from the state. And since my advanced age does not allow me a way of dynamically reacting (although if a fellow Greek were to grab a Kalashnikov, I would be right behind him), I see no other solution than this dignified end to my life, so I don’t find myself fishing through garbage cans for my sustenance. I believe that young people with no future, will one day take up arms and hang the traitors of this country at Syntagma square, just like the Italians did to Mussolini in 1945."
"'트라코글로우' 정부는 내 생존을 위한 모든 연줄을 끊었다. 국가로부터 그 어떤 도움도 없이 내 스스로 35년간 지불하며 만들어온 나의 존엄한 자리를 말이다. 나는 이제 강력하게 항의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다(물론 비슷한 처지의 그리스 국민이 칼라시니코프를 잡는다면 나는 그와 나란히 설 것이다). 생존을 위해 쓰레기 더미를 뒤져야 하는 내 자신의 모습을 볼 수는 없기에, 내 생명을 스스로 끊는 것만이 존엄한 삶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처럼 보인다. 1945년 무솔리니에 반대해 이탈리아인들이 일어난 것처럼, 어느날 무장을 하고 일어나 이 나라의 배신자들을 교수대로 보내는 것 외에 젊은이들에게 어떠한 미래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 4월 4일 그리스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에서 자살한 77세 노인의 유서 일부
※ 원문은 페이스북에서 구했습니다. 실력이 부족해 의역을 했으니,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트라코글로우'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그리스를 점령했을 때 괴뢰정부의 수상이었던 사람입니다. 아마도 이 노인은 구제금융을 이유로 강력한 긴축정책을 요구한 트로이카(유럽연합ㆍ유럽중앙은행ㆍIMF)에 굴복한 루카스 파파데모스 총리를 트라코글로우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 [프레시안] 그리스 77세 약사의 공개 자살 '충격'(링크)

2008년만해도 그리스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2.5명으로 유럽에서 가장 낮았습니다. 하지만 경제위기는 그리스 국민을 죽음의 길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2011년 1~5월 사이 자살률은 2010년 같은 기간보다 40% 증가했습니다(서울신문ㆍ링크).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이탈리아에서도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습니다. 3월 29일에는 4개월간 월급을 못 받은 28세의 건설노동자가 이탈리아 베로나의 시청사 앞에서 분신자살을 시도했습니다. BBC는 "이탈리아 언론에 경제난으로 인한 자살 기사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문화일보ㆍ링크). 숫자로 표현되는 경제위기의 지표들은 살아있는 인간의 존엄한 삶을 지워가고 있는 것입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의 스물두 번째 죽음 소식을 들은 홍세화 선생은 "먹먹했다, 아니 막막했다"고 말합니다.

침묵을 강요함으로써 죄를 은폐하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 스캔들은 그 시대의 악몽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들이 그러한 의지를 지니고 있다고 해서 시대를 거슬러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통로들을 통해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으니까요.

홍세화 선생이 스물두 번째 고인의 소식을 듣고 파울 첼란의 시를 떠올린 것은 그 때문일 것입니다.

어떤 이야기가,
그것이
너무 많이 이야기된 것이므로,
거의 일종의 죄악이라면,
그것은 어떤 시대인가?

파울 첼란의 시는 브레히트의 시를 인용 변형한 것입니다. 브레히트는 이렇게 말했었죠.

나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세상에 널려 있는 참혹함에 대한 침묵이므로
거의 일종의 죄악이라면
그것은 어떤 시대인가?

브레히트가 아니라 파울 첼란의 시를 인용한 것은 우리가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너무 쉽게 흘려보내는 것과 같은 죄악을 떠올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홍세화 선생은 이렇게 글을 이어갑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죽음이 정권과 자본권력에 의한 살인이라는 주장은 결코 틀리지 않다. 그러나 우리들 자신이 여기에 어떻게 연루되어 있는지를 말하지 않는 한, 다시 말해 '별일 없이' 살아가는 우리 자신에게 유죄선고를 내리지 않는 한 우리는 언제나 주장에서 멈출 뿐, 분노에서 멈출 뿐, 배제된 이들의 죽음을 멈추게 하지 못할 것이다."
● [사랑과 혁명의 정치신문 R] 홍세화 "어떤 희망이 이 절망을 위로하랴"(링크)

스스로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용기는 범상한 우리들이 쉽게 갖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유죄를 선고하기보다 용서받기를 먼저 청하곤 합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의 신화에 그토록 많은 사람이 쉽게 감화되는 이유일 것입니다.

저는 이 신화(십자가의 대속)에서 죄의 용서보다, 사람의 아들로서 예수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형식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테리 이글턴은 "문자 그대로의 죽음이든 상징적 죽음이든 간에 철저한 자기포기 만이 변화된 삶의 출현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조건"임을 보여준 게 이 신화의 교훈이라고 주장합니다(2010년 9월 6일 고려대 강연ㆍ링크). 십자가의 신화가 봉기(부활)의 신화로 이어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살아남은 자의 임무는 복잡하고 모순적이기까지 합니다. 성경의 경우와 같이 우리의 너무 많은 이야기가 오히려 그 의미를 바래게 하는 것은 아닌지 되물어야 합니다. 기억하고, 상기하고, 전파하는 것이 자신을 그 죄로부터 떼어놓으려는 시도는 아닌지 반성해야 합니다.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EZLN)의 마르코스 부사령관은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라고 말했죠. 그러나 이는 행동하는 사람 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반성은 사고의 형식이 아닙니다. 반성의 말은 무엇보다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5월 1일은 전 세계 노동자들의 날입니다. 8시간 노동제를 위한 투쟁으로 시작된 이날, 오큐파이 운동은 전 세계 노동자ㆍ청년ㆍ여성ㆍ이주민ㆍ소수민족ㆍLGBTㆍ예술가들의 총파업을 제안했습니다(6 Ways to Get Ready for the May 1st GENERAL STRIKEㆍ링크). 권총으로 자살한 77세의 그리스 노인도 다른 이들이 칼라시니코프를 든다면 그에 따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젊은이들에게는 봉기하는 것 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미래라고 전하고 있죠.

민주노총을 비판하는 '말'로만은 부족합니다. 우리 스스로 만들지 않으면서 타인을 탓하는 말은 자신을 반성의 대상으로부터 제외하는 일입니다. 노동조합에 속하지 않은 개인이 파업에 참여한다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이날 하루 만은 휴가를 내든, 결근을 하든 모두가 거리로 나와 희망을 말했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때때로

22일 한미FTA 비준안의 국회 통과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습니다. 당일 5000여 명의 시민들이 여의도 국회 앞과 명동 곳곳에서 경찰과 충돌하며 시위를 벌인데 이어 23일에는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1만5000여 명의 시민이 모여 "비준 무효" "이명박 퇴진"을 외치며 분노를 표현했습니다. 한 시민은 여의도 국회는 1%만을 위한 곳이라며 "여기가 99%의 국회다. 총사퇴! 조기총선!"이라는 팻말을 만들어 오기도 했습니다.

민주노동당의 정당연설회로 열린 서울광장의 시위에는 이정희 의원, 김선동 의원, 정봉주 전 의원 등이 연사로 나서 큰 호응을 얻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정희 의원의 인기는 상상 이상이더군요. 참가자들이 "이정희"를 연호해서 진행이 늦어지기까지 했으니까요. 연사들 중 가장 재밌는 발언은 역시 '나꼼수'의 정봉주 의원이었습니다. 그는 "뒤에서 아군에게 총을 쏳아댄 이들"을 반드시 찾아내겠다고 말해 열띤 반응을 얻었습니다.

9시경 민주노동당의 정당연설회가 끝나자 시민들은 거리로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집으로 돌아가긴 했지만 1000여 명의 시민은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에 맞서 단호한 거리시위를 전개했습니다. 경찰은 가두행진이 시작되자 마자 을지로입구, 청계천 방향 두 곳을 봉쇄하고 물대포 차량 3대를 동원해 진압작전을 펼쳤습니다. 경찰의 체포조는 대열 앞에서 적극적으로 구호를 외치는 시민들을 '찍어'서 연행을 시도하는 등 어제보다 더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몇몇 시민은 동료 시민들의 도움으로 연행되지 않았지만 얼마나 경찰에 끌려갔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서울광장 앞에서의 가두행진이 경찰의 저지로 막히자 시민들은 지하도를 이용해 명동으로 이동했습니다. 롯데백화점 건너편 명동 입구에 모인 500여 명의 시민은 구호를 외치며 명동 안쪽 길을 이용해 밀리오레로 이동해 정리집회를 하고 흩어졌습니다. 집회 주최측은 24일, 25일에도 계속 모여 비준을 무효화 시키자고 호소했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한미FTA 날치기 비준에 분노해 거리로 나오고 있습니다. 쉽지 않은 싸움이지만 이러한 분노는 다음을 위한 든든한 밑받침이 될 듯 합니다. 지치지 않고 끈질기게.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아래 사진 중 경찰의 수사 자료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는 것들은 부득이하게 모자이크 처리를 했습니다. [사진=自由魂]이라고만 표시하면 영리나 수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이상 얼마든지 퍼가실 수 있습니다.



"야당은 1%를 위한 여의도를 탈출하라! 여기가 99%의 국회다"는 너무나 적절한 말입니다.




어두운 밤에도 밝게 빛나는 진보신당의 LED 깃발입니다. 실제로 보면 더 예뻐요.








서울광장은 스케이트장 공사 준비로 비좁았습니다. 1만5000여 명의 시민은 발디딜 틈 없이 가득 광장을 메웠고 일부는 어쩔수 없이 거리로 밀려나기도 했습니다. 집회 중간 경찰은 거리로 밀려난 시민들을 위협해 긴장감을 조성하기도 했습니다.


















9시경 집회를 마치고 가두행진을 시작하자 경찰은 물대포 차량 세대를 동원해 강제진압에 나섰습니다. 영하의 날씨에 더욱 치명적인 물대포에도 굴하지 않고 한미FTA 국회 비준에 대한 분노를 단호하게 표현했습니다. 경찰은 여라 차례 특정 시민을 '찍어' 연행을 시도했습니다.




시민들이 지하도를 이용해 롯데백화점 건너편 명동 입구에 다시 모이자 경찰은 시민의 통행은 아랑곳하지 않고 봉쇄했습니다. 앞의 시위대와 뒤의 경찰에도 불구하고 떡볶이와 순대를 파는 포장마차의 주인 아저씨는 밝은 웃음을 잃지 않으시더군요.




물에 좀 젖었더니 배가 고파지더군요. 명동 거리에서 소시지 꼬치 하나 사먹었더니 지금도 든든합니다.












500여 명의 시민은 명동 밀리오레 앞에서 11시까지 항의 시위를 계속했습니다. 이들은 24일, 25일, 26일 계속 더 많은 사람과 함께 모이자며 이날 집회를 마무리 했습니다.

Posted by 때때로

투표권에 대한 작은 논란을 목격했습니다. 이건 약간의 오해에서 비롯한 것이긴 합니다. 진보신당 지지자들에게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참 고역스러운 일입니다. 차라리 '사표' 논란이 나았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후보도 내지 못하고 아무 것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진보신당 지지자가 이번 선거에서 '선택'은 그 자체가 고통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작은 논란에서 우려가 되는 것은 투표를 독려하는 이들이 진보신당 지지자들의 '고통'을 몰라줘서가 아닙니다. '투표'를 '권리'로서가 아니라 '의무'로서 도덕률로 제시하려 하기 때문이니다. 이와 관련해 제가 자주 가는 게시판에 틈틈이 쓴 글을 여기에 옮깁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투표율의 저하는 민주적 정치체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투표로 상징되는 정치적 참여가 위축될 수록 사회의 공적 문제에 대한 개인들의 영향력은 감소할 수밖에 없죠.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미국 흑인사회입니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흑인들은 투표를 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만 했습니다. 안철수의 편지가 화제죠. 하지만 그는 사례를 잘못 들었습니다. 흑인 투표권 확보를 위한 60년대 프리 라이더(한국의 희망버스) 운동이 더욱 적절한 사례입니다.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 민주주의 정치에서 투표율 저하의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고민하며 대안을 제시해온 이는 최장집 교수일 겁니다. 그러나 그는 단 한번도 이 투표율의 문제를 개인의 윤리적 문제로 제기한적 없습니다. 오히려 그는 사회적 균열을 충분히 대변하지 못하는 협애한 선거 대안의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고 강조합니다. 즉, 이념적ㆍ실천적 차이가 미미한 보수 중심의 정당 체제가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이죠. 이러한 정당 체제는 기본적으로 노동에 대한 배제를 그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투표권의 문제를 윤리적으로 접근하는 게 늘기 시작했습니다. 투표는 자신의 정치적 존엄을 지키고 사회의 공적 사안에서 개인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권리지 의무가 아닙니다. 게다가 투표권은 정치적 참여의 일종입니다. 참여는 개인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을 뜻합니다. 능동적 활동이 아닌 의무로서, 수동화된 활동의 투표권은 그 본래의 의미가 많이 퇴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투표권 자체는 '민주주의'를 지켜주지 않습니다. 독재를 노골적으로 옹호하는 이들이 여전히 25.7%의 지지를 받고 있는게 우리 사회의 현실입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것, 김규항으로부터 비롯하고 진보신당의 지지자 다수가 투표를 포기하는 상황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봅니다. 더구나 자신들이 원하는 진정한 선거 대안을 만들기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을 벌이다 실패를 한 진보신당 지지자들에게 현재의 투표는 그 자체가 고통일 수밖에 없습니다. 즉, 자신의 한 표를 사소히 여기기 때문이 아니라 가장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그들은 박원순에게 흔쾌히 한 표를 던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전 박원순에게 표를 던지고 왔습니다. 위에서 잠깐 적었 듯이 투표는 정치 참여의 여러 방편 중 하나일 뿐 그것이 모든 것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동의하진 않겠지만 곽노현 사건이 보여주는 것은 선거와 투표가 우리의 궁극적 대안일 수 없다는 겁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오늘 프레시안에 좋은 글이 있더군요.

이 운동[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은 태동하기까지 3년이 지연됐습니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2001년 정부가 은행 계좌를 동결시키기 전부터 있었던 경제적 불만과 디폴트 위기에 즉각적으로 반응했습니다. 반면 미국 경제는 3년 전에 붕괴됐고, 당시에도 몇몇 분노한 이들이 있었지만 실제 반응은 미뤄졌거나 다른 방식으로 유인되었습니다. 당시 분노는 사실 우리를 위해 상황을 시정할 수 있는 대선 후보에 집중하는 강력한 풀뿌리 운동으로 나타났습니다. 아름다운 운동이었고, 희망에 가득 찬 운동이었습니다. 그 운동은 자신들의 후보를 백악관으로 보냈습니다. 그러고 나서 대통령은 자신이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떠나버렸습니다. 운동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그 운동은 기업과 싸워 기후변화 정책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운동은 한 명의 선출 공직자가 1000만 명의 시민, 또는 시민 사회 자체와 동등하다는 듯이 스스로 해체되어 버렸습니다. 그 운동은 나이와 인종을 초월했었습니다. 저는 이 운동이 정치가와 선거에 대한 환멸을 느낀 다음 망가져 버린 제도의 힘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기 위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희망을 점령하는 것에 대한 편지', 레베카 솔니트, 프레시안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을 방문한 지젝은 지금껏 기다려오던 이들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오노 요코는 존 레논의 노래를 빌어 운동에 참여한 우리 모두가 영웅이라고 주장했죠. 소수의 공직자ㆍ정치인을 우리의 대표자로 뽑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언제나 더 큰 변화는 거리에서, 공장에서, 집에서 시작되고 끝났습니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이 시작되기 전, 부자들을 위한 공화당의 패악질과 그에 무능력한 민주당에 대한 분노가 확산되기 전 오바마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선거와 투표라는 민주주의의 '정상적' 절차는 오직 그 체계가 만들어진 이후 위기에 처하기 직전까지만 기능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정상적 상황에서조차 99% 인민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한 명의 뛰어난 정치인이 아니라 99%의 행동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전, 이 한표의 권한을 너무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적당히, 그때 그때마다 가장 덜 나쁘거나, 그나마 가장 괜찮은 후보에게 던지면 된다고 봅니다.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의 후보가 있었다면 당연히 그에게 표를 던지겠죠. 그런데 지금 상황이 그건 또 아니지 않습니까? 3년 전 오바마의 선거 열풍을 바라본 미국 좌파의 심정이 얼추 이럴 듯 싶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다시 기회를 맞고 있습니다.

지금 '투표 안할 자유'를 비웃는 이들은 자신의 비웃음이 민주주의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고민해봐야 할 겁니다. 많은 이들이 흔히 놓치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가 무엇보다 개인의 자발성에 기초해야 한다는 겁니다. 자발성을 유도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옹호했던 이들은 시민 개개인이 공적 정책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게끔 교육을 강조했습니다. 민주주의의 옹호자는 계몽주의자일 수밖에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도덕률로서 투표를 강조하는 것, 특히 '닥치고' 투표하라는 것은 이에 전적으로 반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은 이를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이는 개인의 수동성을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민주주의를 좀먹는 짓꺼리입니다.

생각난김에... '닥치고 정치'라니. 말이 됩니까?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는 무엇보다 말과 글의, 설득의 힘에 대한 믿음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말들이, 더 많은 글들이 우리의 공적 생활에 대해 다뤄야 합니다. 그럼에도 '닥치고 정치'라니? 애시당초 김어준을 싫어하기에 이 책을 읽을 생각은 없습니다. 게다가 저런 제목 센스를 용인하는 김어준에게서 민주주의에 대해 배울 것은 없다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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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은 9월 25일 오후 2시 성북구민회관에서 임시 대의원대회를 열어 국민참여당을 진보대통합의 대상으로 승인하고자 했다. 그러나 권영길ㆍ천영세ㆍ강기갑 전 대표 3인과 민주노총, 당 내 좌파 조직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쳐 안건은 부결됐다. 참여당과의 선통합을 의미하는 안건에 마지막 반대 토론자로 나선 권영길 전 대표. [사진=自由魂]


어제(25일) 오후2시 민주노동당은 성북구민회관에서 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참여당과의 선통합을 의미하는 안건에 대한 처리를 시도했습니다. '향후 진보대통합 추진방안'으로 제시된 다수파 안건의 핵심은 아래와 같습니다.

"5ㆍ31 최종합의문에 동의한 국민참여당이 통합 대상임을 확인하고 … 11월 노동자대회 이전에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을 건설한다."

이정희 대표를 비롯한 민주노동당 다수파의 참여당과의 통합 시도는 올 초부터 끊임없이 제기됐습니다. 지난 9월 4일 진보신당 대의원대회 직전까지 꾸준히 참여당과의 염문을 뿌리며 진보신당 내 '독자파'를 자극해왔었죠. 그 결과 진보신당 대의원대회에서 진보대통합은 부결되기에 이릅니다. 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이정희 대표와 그 일파는 바로 참여당과의 통합을 가시화하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지금 와 생각해보니 핵심이 참여당과의 통합은 아닌 듯 싶습니다. 이정희 대표야 조금 늦게 입당했지만 그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민주노동당에 입당해 처음 시도한 작업은 당 이름에서 '노동'을 제거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민주노동당'이라는 이름을 쓰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이 시도는 좌절됐죠. 하지만 그들의 그러한 시도는 결국 올해 상반기 정책당대회에서 당 강령을 수정하면서 성공합니다. 당의 '사회주의'적 지향을 삭제하고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코에 붙이면 코걸이, 귀에 붙이면 귀걸이가 될 듯한 문구를 당의 지향으로 삼습니다.

물론 이를 단순히 그들 일파의 의도로만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민주노동당이 걸어온 길은 사실상 사회주의적인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안건에 대한 마지막 반대 토론자로 나선 권영길 대표가 자신의 세 번의 대권 도전을 반추하며 부결을 호소한 것은 그 때문이었던 거겠죠. 그는 1997년 '일어나라 코리아'라는 대선 구호, 2007년 '코리아 연방공화국'과 같은 현 다수파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간 구호들이 당의 정체성을 약화시키고 실제 선거 결과에서도, 당의 이후 진로에서도 악영향을 끼쳤음을 지적했습니다. 그와 같은 반성 때문일까요. 얼마전까지 당내 '큰 어른'으로 갈등의 전면에 나서지 않고 체면치레만 하던 권영길 전 대표는 올해 들어 재출마 포기 등을 내세우며 진보대통합, 특히 진보신당과 당 외 좌파들에 대한 구애에 적극 나서고 있죠.



25일 임시 당대회에서 이정희 대표를 비롯한 참여당 통합파의 시도는 1차로 저지됐다. 그러나 '노동자 계급 중심'의 진보정당이 아닌 미국식 민주당을 향한 당 내 우파의 시도는 계속될 듯하다. 비록 3분의 2라는 의결정족수를 채우진 못했지만 510명의 대의원은 참여당과의 선통합을 뜻하는 안건에 찬성표를 던졌다. [사진=自由魂]


이정희 대표의 패착은 민주노총과 전농과 같은 대중조직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했다는 것이겠죠. 민주노총 조합원, 전농 회원의 다수는 참여당과의 통합을, 더 나아가 민주당과의 통합을 바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 대중조직을 만들고 현재 이끌고 있는 이들이 (NL을 포함한) '좌파'라는 것은 잊은 것이죠. 이들에게 참여당이라는 세력은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안겨준 이들의 후신입니다. 당장에 민주노동당 당원 허세욱씨가 한미FTA에 반대해 분신해 돌아가신 일이 있습니다. 참여당에는 여전히 한미FTA는 옳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다수죠.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정희 대표가 속해 있는 세력의 후원으로 위원장이 될 수 있었지만, 이들 좌파의 반발로 민주노총의 조직분열이 가시적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의 '참여당 선통합안'에 동의하긴 힘들었을 겁니다. 그렇기에, 일체의 연대사와 축사를 배제한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대의원 자격으로 '신상발언'을 신청해 '참여당 선통합안'이 통과될 시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는 철회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하게 됩니다. 이게 결정적이었습니다. 이후 이정희 대표쪽 대의원들은 자제력을 잃고 고함과 욕설로 장내를 어수선하게 만들기도 했죠. 당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권영길 전 대표에 대한 쌍소리에 이정희 대표가 나서서 권 전 대표, 천영세 전 대표에게 사과를 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어제 대의원대회의 재석 대의원은 787명이었습니다. 안건이 통과되기 위해선 재적 3분의 2인 525명의 찬성표가 필요했습니다. 어제 대의원대회 전까지만 해도 안건의 통과는 순조로울 것으로 보였죠. 이번 안건은 전체 대의원 886명의 55.6%인 493명의 참여로 발의된 만큼 통과는 예정된 것으로 생각됐습니다. 하지만 막상 대의원대회에서 이정희 대표 일파가 얻은 표는 애초 안건 발의 대의원보다 17명 많은 510명이었습니다.

이로써 진보양당의 대의원대회 모두에서 당 지도부의 안이 부결되었습니다. 9월 4일 진보신당 대의원대회에선 노동자ㆍ민중을 중심을 강조하는 진보대통합 찬성파가 패배했지만 9월 25일 민주노동당 대의원대회에선 승리했습니다. 하지만 진보진영 내의 혼란은 가라앉지 않을 것입니다. 어제 민주노동당 대의원대회에서 표결이 끝난 후 반대 측에 섰던 천영세 전 대표가 이정희 대표에게 "이제 승복하세요. 더이상 이러지 마세요"라고 했지만 그말을 들을 것 같진 않습니다. 그들에겐 510명이라는 흔들리지 않는 대의원들이 있으니까요. 진보신당은 상황이 더욱 복잡합니다. 조직 노동자에 대한 반감이 두 방향에서 표출되고 있으니까요. 하나는 '비정규직'을 강조하며 정규직을 비정규직의 적으로 규정하는 자칭 '독자파'고 다른 하나는 민주당으로 통합하자는 '빅텐트'론자들입니다. 앞의 '독자파'는 권영길ㆍ노회찬ㆍ강기갑ㆍ천영세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끌어안아야 할 세력입니다. 그렇기에 '좌파'에게 상황이 더 어렵습니다. 단순히 소수라서가 아니러 더 다양한 입장이 첨예하게 갈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어제 민주노동당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참여당과의 선통합안이 통과되어 상황이 빨리 정리되는게 더 좋은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좌파'라는 것을 개인적 정체성으로 삼은 이후 이토록 어려운 시절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결국은 1991년 이후 종결되었어야 할 운동이 목숨을 부여잡고 명맥을 이어왔던 것이 지금 독이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권영길과 같은, 이미 늙어 힘 빠진 사자 아닌가 싶었던 이들이 다시 사자후를 토해내는 것을 보며 다시 용기를 내곤 합니다.


당대회 안건 찬반 토론 직전 안건의 반려를 요청하는 대의원 발의에 대해 긴급 발언을 하는 권영길 전 대표. [사진=自由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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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7 14:42

진보정당은 복지정당이 아니다 쟁점2011.09.07 14:42

1. 네이버 사전에 의하면 진보란 "정도나 수준이 나아지거나 높아짐"이나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함"을 뜻합니다. 진보정치를 말할 때 '무엇'의 정도나 수준이 나아지는 것을 뜻하는지,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이란 무엇인지를 뜻하는지 직관적으로 알아채긴 어렵습니다.

결국 '진보정치'는 단어 자체의 의미에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정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진보정치란 대개 더 '평등'하고 더 '민주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향은 몇몇 정책에 의해 명확하게 표현됩니다. 무상급식으로 대표되는 '복지정책'들이 그 대표입니다.

2. 그렇다면 '복지정책'을 앞세운 정당들은 진보정당일까요? 그게 또 간단치 않습니다. 전 국민 의료보험ㆍ국민보험ㆍ고용보험 등의 기초적 복지정책의 많은 것은 보수 정당과 정치인들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박근혜도 '아버지의 뜻'을 잇는다며 복지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나요? 세계사를 살펴봐도 이러한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현대사회 복지정책의 기초를 놓은 것은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죠. 그는 사회주의자들을 강력하게 탄압하는 반대편에서 복지정책의 확대를 통해 노동자 계급의 불만을 완화시키고자 애썼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두환이 복지국가ㆍ정의사회를 앞세웠던 것은 자신에게 부족한 정치적 정당성을 대신하고자 한 것이죠.

3. 2008년 시작돼 지금까지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경제위기로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진보정당이 주장했던 무상급식 정책이 자유주의 우파 정치인에게까지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바로 몇년 전까지만 해도 '몽상적'이라며 비판했던 바로 그들이 무상급식을 자신의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해외에선 버핏과 같은 이들이 자신과 같은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으라며 나서고 있습니다.

여전히 바뀐 세상을 깨닫지 못하는 소수 보수 정치인들만 외롭게 고립된 듯 싶습니다. 승자독식의 경쟁 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이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대처(새처) 전 영국 총리의 "대안은 없다"는 말은 이미 잊혀진지 오래입니다.

4. 이러다보니 난감해진 것은 진보정당입니다. 모두가 복지를 외치고 있습니다. 홀로 복지를 주장하던 시절은 지나가고 모두가 복지주의자로 나선 지금, 그들은 누구보다 기뻐해야 할 듯 싶지만 그렇진 않습니다. 똑같은 주장을 한다면 차라리 힘있는 정당에게 표를 주는게 정책의 현실성을 높이는 길입니다. 진보정당의 지지율은 답보합니다.

그래서 나오는 얘기가 정책이 비슷한 정당들끼리 힘을 합치자는 겁니다. 진보 정치인은 어차피 복지 정책을 얘기할 것이라면 자신들이 훨씬 경쟁력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힘 있는 정당이라는 든든한 배경만 주어지면 자신의 이상을 맘껏 펼칠 수 있을 듯 보입니다.

5. 신자유주의적으로 조직된 경제의 세계적 실패 영향으로 케인즈주의 복지 국가가 재조명을 받고 있지만 막상 우리에게 필요한 곳에는 관심이 부족합니다. 다른 무엇보다 현재 실패한 것으로 드러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케인즈주의적 자본주의의 실패로부터 비롯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1960년대의 자본주의가 현재의 자본주의보다 다 낫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것이 실패했다는 것, 그리고 그 실패의 원인은 여전히 주목받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 문제가 있습니다.

노동자 계급의 조직된 힘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것은 소수에 의해 운영되는 자본주의가 이러저러한 모습으로 변형될지언정 근본적으로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복지정책은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변화에서 노동자 계급의 집단적 이익을 지켜내거나 게임의 규칙 자체를 바꾸는 것을 위해 노동자 계급은 정치적으로 스스로를 조직해야만 합니다. 민주노총이 건설되면서 '노동자 계급의 정치 세력화'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던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6. 정당은 공동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조직된 단체입니다. 정당의 정강ㆍ정책과 함께 물질적 기반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현재 민주당이 복지정책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고개를 저었던 게 그들입니다. 권력을 잡기 위해 광범위한 대중의 지지를 받아야 하고, 그 대중의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 계급의 표를 얻기 위해 일시적으로 진보적인 복지정책을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보여줬던 것은 그들이 무엇보다 자본가들 일 분파의 정당이라는 겁니다. 당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의 '출신', 정치자금의 '원천' 등 모든 곳에서 그들은 자본가의 영향을 받습니다.

정동영은 민주당 정치인 중 가장 적극적으로 지난 노무현 정부의 실패에서 교훈을 배워나가는 듯 합니다. 민주당 정치인으로서 낯선, 그리고 때론 적대적인 분위기로 가득한 노동자 집회에 꾸준히 참여하며 연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한계는 자신의 지역구인 전주에서 버스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정동영의 '한계'는 그 '개인'의 한계가 아닙니다. 그는 그 누구보다 진심으로 노동자 투쟁에 연대하고 있죠. 꽤나 유력한 정치인(대통령 후보까지 지냈던)인 그조차도 자신의 지역구에서 같은 당 지역 정치인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가 속한 당의 지역 정치인(지자체장 등)은 정동영보다는 지역 자본가들의 편을 듭니다.

7. 진보정당의 통합이 길을 잃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들 '진보정당'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돌이켜볼 시기입니다. 엇그제 이소선 여사가 돌아가셨습니다. 한 시대가 저문다는 느낌입니다. 전태일 열사는 '대학생 친구'를 원했습니다. 어려운 법률 용어를 이해하기 위해 그는 무엇보다 배움을 원했습니다. 자신의 모자름을 알기에 자신과 같은 이들을 모아 '바보회'라는 모임을 만들었죠. 지난 40년간 노동자 운동의 성장은 노동자들 스스로 '대학생 친구'가 되는 길이었습니다. '친구'가 아니라 동지를 만들어간 길이었죠. 그런데 우리는 진보정당 활동을 하면서 다시 '대학생 친구'의 역할로 돌아가는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역사를 거꾸로 걷는 길이죠. 노동자를 위해, 노동자에 의한, 노동자의 정당이 진보정당의 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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