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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7 14:42

진보정당은 복지정당이 아니다 쟁점2011.09.07 14:42

1. 네이버 사전에 의하면 진보란 "정도나 수준이 나아지거나 높아짐"이나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함"을 뜻합니다. 진보정치를 말할 때 '무엇'의 정도나 수준이 나아지는 것을 뜻하는지,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이란 무엇인지를 뜻하는지 직관적으로 알아채긴 어렵습니다.

결국 '진보정치'는 단어 자체의 의미에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정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진보정치란 대개 더 '평등'하고 더 '민주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향은 몇몇 정책에 의해 명확하게 표현됩니다. 무상급식으로 대표되는 '복지정책'들이 그 대표입니다.

2. 그렇다면 '복지정책'을 앞세운 정당들은 진보정당일까요? 그게 또 간단치 않습니다. 전 국민 의료보험ㆍ국민보험ㆍ고용보험 등의 기초적 복지정책의 많은 것은 보수 정당과 정치인들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박근혜도 '아버지의 뜻'을 잇는다며 복지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나요? 세계사를 살펴봐도 이러한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현대사회 복지정책의 기초를 놓은 것은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죠. 그는 사회주의자들을 강력하게 탄압하는 반대편에서 복지정책의 확대를 통해 노동자 계급의 불만을 완화시키고자 애썼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두환이 복지국가ㆍ정의사회를 앞세웠던 것은 자신에게 부족한 정치적 정당성을 대신하고자 한 것이죠.

3. 2008년 시작돼 지금까지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경제위기로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진보정당이 주장했던 무상급식 정책이 자유주의 우파 정치인에게까지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바로 몇년 전까지만 해도 '몽상적'이라며 비판했던 바로 그들이 무상급식을 자신의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해외에선 버핏과 같은 이들이 자신과 같은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으라며 나서고 있습니다.

여전히 바뀐 세상을 깨닫지 못하는 소수 보수 정치인들만 외롭게 고립된 듯 싶습니다. 승자독식의 경쟁 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이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대처(새처) 전 영국 총리의 "대안은 없다"는 말은 이미 잊혀진지 오래입니다.

4. 이러다보니 난감해진 것은 진보정당입니다. 모두가 복지를 외치고 있습니다. 홀로 복지를 주장하던 시절은 지나가고 모두가 복지주의자로 나선 지금, 그들은 누구보다 기뻐해야 할 듯 싶지만 그렇진 않습니다. 똑같은 주장을 한다면 차라리 힘있는 정당에게 표를 주는게 정책의 현실성을 높이는 길입니다. 진보정당의 지지율은 답보합니다.

그래서 나오는 얘기가 정책이 비슷한 정당들끼리 힘을 합치자는 겁니다. 진보 정치인은 어차피 복지 정책을 얘기할 것이라면 자신들이 훨씬 경쟁력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힘 있는 정당이라는 든든한 배경만 주어지면 자신의 이상을 맘껏 펼칠 수 있을 듯 보입니다.

5. 신자유주의적으로 조직된 경제의 세계적 실패 영향으로 케인즈주의 복지 국가가 재조명을 받고 있지만 막상 우리에게 필요한 곳에는 관심이 부족합니다. 다른 무엇보다 현재 실패한 것으로 드러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케인즈주의적 자본주의의 실패로부터 비롯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1960년대의 자본주의가 현재의 자본주의보다 다 낫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것이 실패했다는 것, 그리고 그 실패의 원인은 여전히 주목받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 문제가 있습니다.

노동자 계급의 조직된 힘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것은 소수에 의해 운영되는 자본주의가 이러저러한 모습으로 변형될지언정 근본적으로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복지정책은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변화에서 노동자 계급의 집단적 이익을 지켜내거나 게임의 규칙 자체를 바꾸는 것을 위해 노동자 계급은 정치적으로 스스로를 조직해야만 합니다. 민주노총이 건설되면서 '노동자 계급의 정치 세력화'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던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6. 정당은 공동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조직된 단체입니다. 정당의 정강ㆍ정책과 함께 물질적 기반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현재 민주당이 복지정책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고개를 저었던 게 그들입니다. 권력을 잡기 위해 광범위한 대중의 지지를 받아야 하고, 그 대중의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 계급의 표를 얻기 위해 일시적으로 진보적인 복지정책을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보여줬던 것은 그들이 무엇보다 자본가들 일 분파의 정당이라는 겁니다. 당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의 '출신', 정치자금의 '원천' 등 모든 곳에서 그들은 자본가의 영향을 받습니다.

정동영은 민주당 정치인 중 가장 적극적으로 지난 노무현 정부의 실패에서 교훈을 배워나가는 듯 합니다. 민주당 정치인으로서 낯선, 그리고 때론 적대적인 분위기로 가득한 노동자 집회에 꾸준히 참여하며 연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한계는 자신의 지역구인 전주에서 버스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정동영의 '한계'는 그 '개인'의 한계가 아닙니다. 그는 그 누구보다 진심으로 노동자 투쟁에 연대하고 있죠. 꽤나 유력한 정치인(대통령 후보까지 지냈던)인 그조차도 자신의 지역구에서 같은 당 지역 정치인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가 속한 당의 지역 정치인(지자체장 등)은 정동영보다는 지역 자본가들의 편을 듭니다.

7. 진보정당의 통합이 길을 잃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들 '진보정당'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돌이켜볼 시기입니다. 엇그제 이소선 여사가 돌아가셨습니다. 한 시대가 저문다는 느낌입니다. 전태일 열사는 '대학생 친구'를 원했습니다. 어려운 법률 용어를 이해하기 위해 그는 무엇보다 배움을 원했습니다. 자신의 모자름을 알기에 자신과 같은 이들을 모아 '바보회'라는 모임을 만들었죠. 지난 40년간 노동자 운동의 성장은 노동자들 스스로 '대학생 친구'가 되는 길이었습니다. '친구'가 아니라 동지를 만들어간 길이었죠. 그런데 우리는 진보정당 활동을 하면서 다시 '대학생 친구'의 역할로 돌아가는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역사를 거꾸로 걷는 길이죠. 노동자를 위해, 노동자에 의한, 노동자의 정당이 진보정당의 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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