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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프랑스ㆍ영국ㆍ미국이 결국 리비아에 대한 폭격을 시작했습니다.

튀니지에서 시작돼 이집트를 뒤흔들고 다시 동서 양 방향으로 전진하던 중동 인민의 항쟁이 리비아와 바레인에서 강력한 저항에 부딛쳤죠. 바레인 지배자들은 유화책을 펴는 듯 싶었지만 사우디 아라비아 정부의 강력한 지원과 서방 세계의 묵인 하에 인민들에 대한 폭력적 진압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카다피 또한 마지막 남은 자신의 지지세력과 외국 용병들을 이용해 저항하는 인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있습니다. 혁명의 규모에 비해 적은 희생으로 전진하는 듯 싶었던 이번 항쟁도 결국 리비아와 바레인 두 곳에서 피의 강을 만나고 말았습니다.

이에 유엔은 비행금지구역 설정 등의 내용을 포함한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프랑스와 영국ㆍ미국은 번개 같은 기습작전을 펼쳤죠.

카 다피는 분명히 매우 악독한 독재자이고, 반드시 권좌에서 끌어내려야 할 악한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리비아 인민의 힘은 그에 미치지 못한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리비아 인민의 희생을 안타까워 한 많은 사람들은 유엔의 개입에 찬성의 의사를 표하고 있습니다.

하 지만 우리는 여기서 질문을 던져봐야 합니다. 프랑스를 위시한 서방 세계의 군사적 개입이 리비아 인민에게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불평등의 개선을 가져다줄 것인가? 안타깝게도 전망은 그리 밝지 않습니다. 1990년대 초 냉전 해체 이후 지속돼 온 '인도주의적 개입'의 역사가 이를 보여줍니다.

서방세계 언론의 카다피에 대한 '악마화'를 보면서 또 떠올릴 수 있는 것은 1990년대 세르비아 밀로셰비치에 대한 '악마화'입니다. 그는 마치 히틀러의 화신인 것처럼 그려졌습니다. 코소보 난민에 대한 그의 학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문명세계의 인도주의적 의무에 대한 말들이 우리의 공론장에 떠다녔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간단치 않았습니다. 학살이 있었지만 이는 세르비아에 의한 것만은 아닙니다. 코소보 반군에 의한 학살도 마찬가지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서방세계는 자신의 정치적 편익에 따라 밀로셰비치를 악마화해 군사적 개입을 정당화 했습니다. 하지만 이 개입은 결코 코소보 지역에 평화를 가져다주지 못했습니다. 유럽국가들의 잘못된 개입은 지역 내 갈등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고 유엔 개입이 실패한 이후에도 민족간 학살극은 더 심하게 계속됐죠.

꼭 과거를 돌아볼 것도 없습니다. 서방 세계는 자신들에게 눈엣 가시였던 카다피에 대해선 즉각적인 군사적 개입을 실천하고 있지만, 바레인 인민 항쟁을 진압하기 위해 사우디 아라비아가 군사적 개입을 시작한 것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는 데서도 이를 알 수 있습니다. 한가지 아주 오래됐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사례도 있죠. 바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인민 학살에 대한 서방 세계의 태도가 또한 이들 3국의 모순된 태도를 입증해 줍니다. 프랑스ㆍ영국ㆍ미국의 군사적 개입은 그들이 겉으로 어떠한 명분을 내세운다고 할지라도 결코 리비아 인민이 바랐던 혁명을 가져다줄 수 없을 것입니다.

주말의 폭격 소식을 들으면서 급하게 떠올린 책이 있습니다. 앰네스티와 유엔난민기구 등에서 활동했던 카너 폴리가 지은 '왜 인도주의는 전쟁으로 치닫는가?'가 바로 그 책입니다.


왜 인도주의는 전쟁으로 치닫는가? 그들이 세계를 돕는 이유 카너 폴리 지음|노시내 옮김|마티(링크)


카다피의 학살은 저지되어야 합니다. 40년 간 독재를 펼쳐온 이 악한은 반드시 제거되어야 합니다. 단, 그것은 리비아 인민의 힘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70여년 전 스페인 내전에 동참했던 국제여단의 역사가 서방세계의 지배자들에 의해 희화화 되는 오늘날, 우리는 국제적 연대에 대해 더 진지하고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듯 합니다.

당장 이 책이 읽기 부담스럽다면 김민웅 교수의 프레시안 칼럼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 김민웅 칼럼 "민주주의는 외국군의 공격으로 결코 오지 않는다" 프레시안(링크)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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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카이로의 한 시민이 아랍세계 독재자들의 사진을 들어보이며 퇴진 촉구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미 축출된 자인 엘아비딘 벤알리 전 튀니지 대통령(맨 왼쪽)과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의 사진에는 ‘제거’를 뜻하는 표시가,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지도자(가운데)와 하마드 빈 이사 알칼리파 바레인 국왕(오른쪽 두번째),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의 사진에는 물음표가 붙어있다. [한겨레, 카이로=AP 뉴시스]


아랍혁명은 지난 2009년의 이란 시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트위터 혁명' '페이스북 혁명' 등이라 불립니다. 이는 좌파와 우파 모두에게서 공통된 것이죠. 모바일을 기반으로 한 SNS는 민주주의의 열망에 새로운 도화선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 이에 부정적인 편입니다. 새로운 기술과 도구가 혁명을 위한 새로운 방법들을 창출할 수 있겠지만 결국 결정적인 전투는 오프라인의 거리에서, 공장에서, 사무실에서 벌어지기 마련입니다. 이에 관련해 읽어볼 글은 조동원의 '아랍 혁명과 페이스북 '반'혁명'입니다.

아랍 혁명과 페이스북 '반'혁명, 조동원, 주간인권신문 인권오름(링크)
북아프리카와 서아시아 전역으로 번진 아랍의 사회 변혁운동이 처음에 튀니지에서 퍼져나오고 이집트로 확산되는 것처럼 보일 때, 지배 언론은 이를 '재스민 혁명' 말고도 '페이스북 혁명' '트위터 혁명' '위키리크스 혁명'으로 불렀다. 물론 사회운동 조직과 활동가들이 독재체제 하의 억압적인 미디어 환경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해외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을 효과적으로 이용해 시위 조직화와 대중동원을 이뤄낸 것이 사실이다(jadaliyya). 하지만 '페이스북 혁명'의 이면에는 페이스북 '반'혁명이 있다. 페이스북을 비롯한 이른바 '소셜 미디어(social media)'는 사회운동에 도움이 된 것 이상으로 지배 권력이 봉기와 혁명이 일어나지 않도록 인민을 감시하는데 써먹고 있는 도구다. (… 생략)

위 글에선 지적하고 있지 않지만 실제 SNS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도 문제가 됩니다. 우리나라의 인터넷(모바일을 포함한) 보급률이 지나치게 높다보니 세계인의 대다수가 우리와 다를바 없는 모바일 생활을 누리는 것인냥 착각하기 쉽죠. 하지만 여전히 가난한 대다수의 아랍 인민들은 새로운 기술의 혜택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이집트의 사례를 보면 SNS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중산층 이상이 아닌 하층 노동계급의 참여에 의해 무바라크를 쫓아낼 수 있었습니다.

또 한가지 생각해볼 점은 리비아 카다피의 반격과 학살에 맞선 국제적 연대의 가능성에 대한 것입니다. 보통은 유엔 혹은 미국과 서방 세계에 의한 군사적 개입, 비행금지구역의 설정 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리비아 국민위원회조차도 카다피의 폭격을 막기 위한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카다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지금 당장이라도 군사적 개입을 할 것 처럼 나섰던 미국이 오히려 카다피가 힘을 되찾는 듯 보이는 어제와 오늘 군사적 개입에서 한 발 빼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죠. 어쨌든 이와 관련해 진정한 국제연대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집트 혁명 이후 레디앙에 뛰어난 분석을 연이어 기고한 문이얼(아이비스 에너지 전략 연구소)은 리바아 인민의 승패는 알제리 인민의 저항에 달려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우선 카다피가 어떻게 힘을 되찾았는 가를 묻습니다. 그는 카다피의 배후로 알제리 정부를 지목하죠. 그렇기에 카다피의 목숨줄을 죄기 위한 결정적 힘은 바로 알제리 인민이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튀니지 혁명 이전부터 알제리에서도 반란과 시위가 계속됐다는 점에서 이는 매우 현실적인 대안이기도 합니다. 자세한 것은 그의 글을 읽어보세요.

리비아 해결 열쇠는 알제리 민중?, 문이얼, 레디앙(링크)
이와 관련해서 서방 언론을 비롯한 주류언론들이 애써 주목하지 않는 점 한가지를 다뤄보자. 최근의 외부의 군사적 개입 문제를 논외로 한다면, 카다피가 도대체 어떤 근거에서 그토록 완강하게 버틸 수 있는가에 대해서다. (… 생략 …) 알제리 통치자들은 리비아의 카다피가 몰락하면 다음 차례는 바로 자기 자신이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미 인근의 튀니지가 혁명으로 무너졌을 때도 그랬지만, 다시금 더 거대할 뿐 아니라, 정치 경제적으로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리비아마저 무장항쟁으로 카다피가 몰락 위기에 놓이자 알제리 정부는 다급해진 것이다. 결국 알제리 통치자들은 바로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카다피를 지원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 생략 …) 이 점에서 현재 리비아 내전을 해결하기 위한 열쇠 가운데 하나는-서방의 공습이 아니라-중동 혁명에 영향 받아 알제리 군부에 저항하고 있는 알제리 민중들이 쥐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들이 알제리 정부를 붕괴시킨다면, 그 자체로 카다피에 대한 중요한 정치적, 군사적 타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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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분노의 날' 예멘의 수도 사나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에 참가한 한 남성이 1일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경향신문, 사나=AP연합뉴스]


2006년 여름 쌍용자동차 파업 이후 자살한 이가 14명이 됐습니다. 신차를 발표하며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는 쌍용자동차. 하지만 해고자와 무급휴직자에겐 고통만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쌍용자동차만의 문제는 아니죠. 지난해 한겨레 보도에 의하면 인구 10만명 당 자살로 사망한 사람은 2001년 14.4명에서 2009년 31명으로 급격히 상승하고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현실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전셋값과 식료품 가격이 급등하면서 평범한 노동자의 삶을 무섭게 위협하고 있습니다. 구제역 사태는 가뜩이나 위기에 몰려있던 (축산)농민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죠. 우리는 이 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벼랑 끝 삶' 쌍용차 해고자 또…, 경향신문(링크)
쌍용차 또 자살… "생활고 우울증 심해", 경향신문(링크)
자살률 '무서운 상승곡선', 한겨레(링크)
"5000원짜리 한 장으로 점심도 못 먹는 세상", 프레시안(링크)


세계화된 경제와 2008년의  금융위기로 고통받던 또다른 인민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야만적 왕정과 군부독재라는 이중의 고통을 겪어야만 했죠. 이들 중동 인민이 저항에 나선지 두 달. 리비아에서는 결정적인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하지 않습니다. 카다피는 자신의 통제 하에 있는 공군을 이용해 저항세력이 차지한 도시에 대한 반격을 시도했습니다. 물론 다행이 카다피의 시도는 격퇴되었다고 합니다. 카다피와 저항세력은 불안정한 균형 상태에 놓여있는 듯 합니다.

과거의 모든 정치적 격변에서 관찰할 수 있듯 이러한 균형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누가 먼저 이러한 상황을 탈피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느냐가 문제겠죠. 제가 보기에 관건은 저항세력에게 있습니다. 우선 저항세력은 내부적으로 매우 불균등한 요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카다피 정권 하에서 리비아의 구체제를 옹호하는 역할을 했던, 저항의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카다피 편에 섰던 자들이 저항세력의 대표자들 중 하나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압델 자릴 전 법무부 장관이 그 대표일 것입니다. 이미 여러 곳에서 자릴 전 장관과 현 저항세력과의 불협화음이 들려옵니다. 자릴은 해방된 뱅가지시에서 자신이 과도정부를 구성했다고 발표했었지만 국민위원회의 대변인은 이를 부정했죠. 구체제의 일부를 청산하지 않은 해방이라는게 얼마나 불안정한지는 우리나라의 역사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역사와 또 하나의 측면에서 연결되는 것이 있습니다. 외세의 군사적 개입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학살'에 대한 소식에 분노하며 카다피에 대한 군사적 징치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군사적 개입이 리비아 혁명의 올바른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혁명의 초창기, 저항세력이 아직 승기를 잡지 못해 곳곳에서 카다피의 잔혹한 공격위협에 처했을 때는 왜 군사적 개입에 대한 얘기가 없었을까를 우린 물어야 합니다. 오히려 리비아의 대다수 지역이 저항세력의 손에 넘어가고, 이를 위해 인민 스스로 무장한 시점에서 미국과 유럽은 리비아에 대한 개입을 천명하고 실제적인 행동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미군은 28일 공식적으로 해군 함정과 공군기를 리비아 인근으로 배치했다고 밝혔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소식에 의하면 미군 특수부대원들이 벵가지시 등의 지역에 이미 투입(US Special Forces Arrive In Libya, 링크)됐다고 합니다.

미, 해·공군 전력 리비아 근접 배치, 경향신문(링크)
서방, 리비아 군사 개입 목적은 구질서 회복, 문이얼, 레디앙(링크)


문이얼은 리비아가 중요한 석유 생산국이라는 점, 특히 지난 몇년 간 다국적 석유회사들의 리비아 진출이 확대됐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여기에 카다피의 강경 대응으로 인해 저항세력 스스로 무장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중요한 변수입니다.

카다피가 서방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중요한 석유시설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가고, 무장한 리비아 민중들이 이러한 시설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은 서방에겐 엄청난 압박일 수 밖에 없다. 카다피가 무너진 이후가 더 걱정이라는 서방의 우려는 사실 이런 시설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순순히 따르지 않는 세력에게 돌아갈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 생략 …) '인디펜던트'지 2월 27일자에 따르면, 영국 [석유] 업계는 겉으로는 독재정권을 용인하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카다피의 몰락으로 2000년대 들어 지속되는 양국간 교역 확대기조의 역행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서방, 리비아 군사 개입 목적은 구질서 회복', 문이얼, 레디앙

미국을 위시한 유럽의 개입 움직임을 보며 에르도안 터키 총리는 "국제사회는 리비아 국민들의 안녕보다 현지 석유 가치에 대해 더 우려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죠. 독재와 학살의 소식에 가만히 손놓고 있기는 어렵습니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은 제국주의 국가의 전쟁에 반대했던 수 많은 사회주의자들까지도 자진해서 군대에 가게끔 만들었었죠(하워드 진이 바로 그랬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국가', 그것이 현 세계체제의 유지에 핵심적 이해관계를 지닌 미국의 '군사적' 개입이 '인도주의적' 목적으로만 제한될 수 있다거나, 최소한의 '인도주의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환상일 뿐입니다. 발칸반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수단 등에 대한 미국(과 유엔)의 군사적 개입은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만 만들었습니다. 더 많은 희생을 가져왔을 뿐이죠. 더 안좋은 것은 해당 지역 내의 자발적인 민주화 의지, 능력, 평화를 향한 노력을 파괴해 왔다는 것이죠.

리비아는 이슬람 정체성이 강한 북아프리카 국가라는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식민주의의 경험이 아직도 생생한 나라죠. 카다피가 여러 정치위기에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반제국주의적 수사 때문이었습니다. 미군의 개입은 반제국주의적 수사를 사용하는 구체제의 생존을 더욱 용이하게 할 것입니다(아프가니스탄에서 탈리반 세력이 다시 회복되고 있듯이).

아직 특정한 인물ㆍ세력을 지칭하진 않지만 미국 언론이 리비아에서 신뢰할 만한 인물로 꼽는 압델 자릴 전 법무부 장관은 구체제의 일부입니다. 미국의 개입은 잘해봤자 자릴 같은 자로 얼굴만 바꾼채 구체제를 유지하는 결과로 그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안타깝고, 조바심이 나더라도 우린 리비아 인민의, 무장한 저항세력의 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아랍혁명은 북아프리카 지역에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막의 모래바람에 가려 잘 보이진 않지만 아라비아 반도에서도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분출하고 있습니다. 3월 1일 예멘에서는 32년간 장기 집권해온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열렸습니다. 이 시위에는 전국적으로 수십만명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리비아와 비슷한 시기에 저항이 시작됐지만 이후 지배자들의 유화책으로 다른 길을 걷는 듯 보였던 바레인에서도 저항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도 오는 11일 대규모 시위를 호소하는 외침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홍해 건넌 민주화 불씨, 아라비아 반도서 '활활', 경향신문(링크)


주류 언론에서는 아랍혁명이 중국과 북한으로 확산될 것인가에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저도 당연히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중국과 북한에게만 해당되는 일일까 싶습니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소리 없이 죽어가는 우리의 동료ㆍ이웃을 돌아보게 됩니다. 날로 개방적으로 변해가는 경제환경에서 '경쟁력'을 못갖춘 이들은 패배자로 조용히 생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사람 뿐입니까. 구제역으로 이미 300만 마리가 넘는 돼지와 소가 생매장됐습니다. 당장 어떠한 행동이 아니더라도 대안에 대한 고민이 더욱 절실해지는 시점입니다.

p.s 읽어볼 만한 글 : 중동 봉기에 관한 다섯 가지 미신 Juan Cole|연구공간L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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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동북부 토브룩시의 한 광장에서 22일(현지시간) 시위대와 군인들이 함께 무아마르 카다피를 비난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현재 토브룩을 비롯한 리비아 동부 지역은 반정부 시위대와 카다피에게 등을 돌린 군인들에 의해 대부분 장악됐다. [중앙일보, 토브룩 로이터=뉴시스]


카다피는 유엔에서 제일 길게 연설한 기록(4시간29분)을 갖고 있죠. 이 기록은 기네스북에도 올라있습니다. 그런 그가 어제(22일) 리비아 인민들에게 독기와 분노로 가득찬 협박을 75분간 TV를 통해 쏟아냈습니다. "마지막 피 한 방울이 스러질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전의를 다지는 그는 연설 내내 저항하는 인민을 "환각 유발 약물을 복용한 자들" "더러운 쥐들" "수염난 남자들(이슬람 근본주의자를 뜻하는 말)" "바퀴벌레"라고 비난했습니다. 말뿐인 욕설은 아닌 듯 합니다. 연설에서 그는 얼마나 남았는지 모를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행동할 것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군에는 석유 관련 시설을 파괴하라는 명령도 내렸다고 합니다. 한겨레는 카다피의 이러한 모습이 "로마를 불태운 네로 황제"를 떠올리게 한다고 꼬집었죠.

"과대망상 독재자" 겉모습 … "치밀한 카리스마" 분석도, 한겨레(링크)
75분간의 원맨쇼 - 카다피, 국영TV 나와 격한 몸짓으로 연설, 조선일보(링크)

시위 열흘이 가까워지면서 리비아의 상황은 더욱 예측불허가 되고 있습니다. 해외 언론의 취재가 봉쇄된 탓에 '혼란'과 '학살'에 대한 두려움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얼마나 가능한지 불투명하지만 PKO 파병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던 군사적 개입이 리비아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습니다.

1990년대 발칸반도와 아프리카 분쟁에 대한 군사적 개입은 더 큰 혼란과 참극만 빚었죠. 게다가 미국의 개입으로 정치적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던 카다피의 과거를 돌이켜볼 때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개입은 카다피에게 구명줄로 작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1980년대 경제정책의 실패로 카다피는 정치적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이때 마침 미국은 다른 이유로 트리폴리와 벵가지를 폭격했습니다. 미국의 공격은 '반제투사'로서 카다피의 정치적 정당성을 강화해 정치적 위기를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줬죠. 1990년대에도 비슷한 일이 하나 더 있었죠. 카다피는 1987년부터 국제통화기금(IMF)와의 협력으로 개방적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러한 정책으로 큰 손해를 본 농민과 노동자의 카다피에 대한 분노는 나날이 커져갔습니다. (이는 현재 저항의 깊은 뿌리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1992년 유엔은 리비아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를 취했습니다. 앞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외부적 제재는 다시 한 번 카다피의 정치적 목숨을 연장시켜 줬습니다. 이번에도 국제사회의 개입-군사적 개입 혹은 경제제재-는 '반제투사'라는 실제와 다른 카다피의 이미지를 더욱 강화해 그의 정치적 권위를 높여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동안 유엔의 개입 방식을 봤을 때 카다피를 실각시키더라도 기존의 권력, 즉 부족에게 힘을 몰아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거리의 저항에서 성장하고 있는 새로운 권력을 고사시키는 일이 될 것입니다.

리비아는 왜 격렬한가?, 문이얼, 레디앙(링크)

물론 매일 같이 신문 국제면을 가득 채운 학살과 참극의 소식은 우리에게 무언가 행동을 요구합니다. 아마도 가능한, 그리고 가장 효율적인 국제사회의 개입 수단은 '비행금지 구역 설정'과 이집트ㆍ튀니지ㆍ알제리 등 주변 국가의 국경 개방 및 난민 수용일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카다피의 공군을 이용한 학살을 당장 저지할 유효한 수단임과 동시에 탄압을 피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기 위해 시급히 시행되어야 할 수단으로 보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이집트 군대는 리비아-이집트 국경을 24시간 개방하고 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거리에서 저항을 지속하고 있는 리비아 인민에 대한 신뢰가 필요한 듯 합니다. 로이터의 보도에 따르면 전직 육군 소장인 하니 사드 마르자는 "동부의 모든 지역이 카다피의 통제에서 벗어났으며 시민과 군인이 손을 맞잡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CNN은 "봉기를 지휘하는 단일하고 통일된 지도부는 없는 것 같다"고 합니다. 하지만 동부 지역 일부에선 시위 지도부가 질서 회복을 위해 자체적으로 '인민위원회'들을 꾸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80년 5월 광주. 한국에서 광주는 폭도들이 점령한 무정부 구역으로 보도됐습니다. 해외에서는 전두환의 무자비한 학살 희생자로서만 보도됐습니다. 하지만 1980년 5월 광주는 또한 새로운 인민의 권력이 싹트고 있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지금 리비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위 둘 중 하나는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42년간의 독재 체제를 깨뜨리고 분출하기 시작한 리비아 인민의 저력을 믿어볼 때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튀니지에서 시작한 아랍혁명은 단 몇 주만에 혁명의 다양한 단계를 급속도로 뛰어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튀니지에선 거리에서의 시위, 이집트와 바레인에선 노동자의 총파업, 그리고 리비아에선 전면적인 무장항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위대 서부 일부 도시도 장악, 한겨레(링크)

저항의 물결은 아랍 세계뿐 아닙니다. 그리스에서 다시 노동자들이 긴축재정에 반발해 총파업을 벌였습니다. 미국 위스콘신에서도 주지사의 완강함에도 불구하고 공공 노동자의 노동권 보호를 위한 저항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1848년 유럽의 혁명은 실패로 끝났음에도 혁명 이후의 유럽은 이전의 유럽과 같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목격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리비아 인민의 승리를 응원합니다.

그리스 노동계 긴축재정 반발 총파업, 조선일보(링크)
미 위스콘신 '반 공무원 노조법' 전선 확대, 한겨레(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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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풍청년 2013.02.20 17: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혹시나 했는데.. 때때로님도 외세를 끌어들인 리비아 반란군을 인민으로 보시는군요. 그러면 지금 리비아 인민들을 수탈하는 외세 자본주의는 리비아 인민들의 해방을 도왔으니 당연히 보상을 얻어 가는건가요?

    '리비아 인민'들은 헌법을 부정하고 반란을 통해 정권을 찬탈 하였습니다. 게다가 외세를 끌여들여 석유자원은 물론이고 재건사업(NATO만 아니었으면 재건 따위는 필요도 없었음) 한답시고 엄청난 기업이 들어갔고 가고 있습니다. 리비아 반란 덕분에 유럽 제국주의 경제위기는 많이 극복되고 있지요.

    우리나라도 전개과정 등 다른 부분이 있지만, 헌법을 부정하고 반란을 통해 정권을 잡은 집단이 있었지요. 육군소장 전두환 등이 세계 최장기간 쿠데타를 통해, 광주에서 양민을 학살하고 정권을 찬탈 했습니다. '리비아 인민'이라면 5공정권에게는 한국 인민이라... 표현이 어색하네요.

    • 때때로 2013.02.22 10: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모든 국가와 체제의 시작은 '헌법을 부정'하는 '반란'이었지요. 전두환과 박정희의 쿠데타는 노동자와 인민을 억압하는 '소수'에 의한 반란이라고 한다면 현재 아랍을 휩쓸고 있는 반란은 착취받고 억압받는 노동자 인민 '다수'에 의한 반란이지요. 모든 '반란'을 합법성의 견지에서만 바라보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리비아 반란의 시작은 분명 다수 노동자 인민의 행동이었습니다(이 글은 리비아 반란의 초기에 쓴 것이고요).

      물론 현재 리비아 상황은 안타깝게 됐습니다. 이렇게 된 데는 리비아반란의 주도권을 카다피 치하에서 그에게 복종하던 이들에게 빼앗겨서지요. 프랑스로 망명신청한 법무부 장관서부터 무수히 많은 카다피 협력자들이 반란이 '대세'가 되는 듯 하자 배를 갈아타고 마치 해방과 자유의 투사인냥 자처했죠. 지금 자료를 찾지 못했는 데, 그래서 당시 폭격 전에 리비아 아나키스트들이 외세의 개입과 당시 반란의 주도권을 잡아가던 지배계급 내 일분파들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었죠.

  2. 연풍청년 2013.02.20 17: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력 반란을 보는 관점은 경향신문의 논조와 같으신데.. 비판도 하시면.. 관계가 껄끄러우시겠네요.

    • 때때로 2013.02.22 10: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개 독자인데 관계가 껄끄러울 게 뭐 있겠습니까.

      딱히 어떤 신문을 지지하거나 그러진 않아요. 그때그때 쓸만한 주장과 자료가 있으면 챙겨놓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