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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ㆍ영ㆍ미, 리비아 공습 … 인도주의의 탈을 쓴 침략

때때로 2011. 3. 21. 13:19

지난 주말 프랑스ㆍ영국ㆍ미국이 결국 리비아에 대한 폭격을 시작했습니다.

튀니지에서 시작돼 이집트를 뒤흔들고 다시 동서 양 방향으로 전진하던 중동 인민의 항쟁이 리비아와 바레인에서 강력한 저항에 부딛쳤죠. 바레인 지배자들은 유화책을 펴는 듯 싶었지만 사우디 아라비아 정부의 강력한 지원과 서방 세계의 묵인 하에 인민들에 대한 폭력적 진압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카다피 또한 마지막 남은 자신의 지지세력과 외국 용병들을 이용해 저항하는 인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있습니다. 혁명의 규모에 비해 적은 희생으로 전진하는 듯 싶었던 이번 항쟁도 결국 리비아와 바레인 두 곳에서 피의 강을 만나고 말았습니다.

이에 유엔은 비행금지구역 설정 등의 내용을 포함한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프랑스와 영국ㆍ미국은 번개 같은 기습작전을 펼쳤죠.

카 다피는 분명히 매우 악독한 독재자이고, 반드시 권좌에서 끌어내려야 할 악한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리비아 인민의 힘은 그에 미치지 못한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리비아 인민의 희생을 안타까워 한 많은 사람들은 유엔의 개입에 찬성의 의사를 표하고 있습니다.

하 지만 우리는 여기서 질문을 던져봐야 합니다. 프랑스를 위시한 서방 세계의 군사적 개입이 리비아 인민에게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불평등의 개선을 가져다줄 것인가? 안타깝게도 전망은 그리 밝지 않습니다. 1990년대 초 냉전 해체 이후 지속돼 온 '인도주의적 개입'의 역사가 이를 보여줍니다.

서방세계 언론의 카다피에 대한 '악마화'를 보면서 또 떠올릴 수 있는 것은 1990년대 세르비아 밀로셰비치에 대한 '악마화'입니다. 그는 마치 히틀러의 화신인 것처럼 그려졌습니다. 코소보 난민에 대한 그의 학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문명세계의 인도주의적 의무에 대한 말들이 우리의 공론장에 떠다녔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간단치 않았습니다. 학살이 있었지만 이는 세르비아에 의한 것만은 아닙니다. 코소보 반군에 의한 학살도 마찬가지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서방세계는 자신의 정치적 편익에 따라 밀로셰비치를 악마화해 군사적 개입을 정당화 했습니다. 하지만 이 개입은 결코 코소보 지역에 평화를 가져다주지 못했습니다. 유럽국가들의 잘못된 개입은 지역 내 갈등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고 유엔 개입이 실패한 이후에도 민족간 학살극은 더 심하게 계속됐죠.

꼭 과거를 돌아볼 것도 없습니다. 서방 세계는 자신들에게 눈엣 가시였던 카다피에 대해선 즉각적인 군사적 개입을 실천하고 있지만, 바레인 인민 항쟁을 진압하기 위해 사우디 아라비아가 군사적 개입을 시작한 것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는 데서도 이를 알 수 있습니다. 한가지 아주 오래됐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사례도 있죠. 바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인민 학살에 대한 서방 세계의 태도가 또한 이들 3국의 모순된 태도를 입증해 줍니다. 프랑스ㆍ영국ㆍ미국의 군사적 개입은 그들이 겉으로 어떠한 명분을 내세운다고 할지라도 결코 리비아 인민이 바랐던 혁명을 가져다줄 수 없을 것입니다.

주말의 폭격 소식을 들으면서 급하게 떠올린 책이 있습니다. 앰네스티와 유엔난민기구 등에서 활동했던 카너 폴리가 지은 '왜 인도주의는 전쟁으로 치닫는가?'가 바로 그 책입니다.


왜 인도주의는 전쟁으로 치닫는가? 그들이 세계를 돕는 이유 카너 폴리 지음|노시내 옮김|마티(링크)


카다피의 학살은 저지되어야 합니다. 40년 간 독재를 펼쳐온 이 악한은 반드시 제거되어야 합니다. 단, 그것은 리비아 인민의 힘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70여년 전 스페인 내전에 동참했던 국제여단의 역사가 서방세계의 지배자들에 의해 희화화 되는 오늘날, 우리는 국제적 연대에 대해 더 진지하고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듯 합니다.

당장 이 책이 읽기 부담스럽다면 김민웅 교수의 프레시안 칼럼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 김민웅 칼럼 "민주주의는 외국군의 공격으로 결코 오지 않는다" 프레시안(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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