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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5 00:52

의심스러운 민주주의 투사, 포포비치 2016.03.15 00:52

최근 스르야 포포비치의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이라는 책이 번역∙출간됐다. 한겨레 신문에서도 그의 책을 금요일자 북섹션의 톱으로 소개해줬다. 그러나 '민주주의 투사'로서 그의 조언을 진지하게 고려하기엔 조금 조심스럽다. 그의 경력엔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아래 글은 US Uncut
(미국의 긴축정책 반대 단체) 활동가 칼 깁슨이 위키리크스에 공개된 스트랫포의 e메일을 기초로 조사한 내용을 폭로한 것이다. 스트랫포는 미국 정부와 기업의 이익을 위해 활동해 왔다. 이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해가 되는 정권을 교체하는 데 있어 폭격과 항모전단보다 해당 국가에서 '민주주의'를 명분으로 한 사회운동을 조장하는 게 더 유용하다고 폭로된 e메일에서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이 CIA와 같은 물리적 힘(군사력 뿐 아니라 공작을 위한 조직ㆍ자금 등)을 동원할 능력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이 기업이 미국 정부와 기업들의 이익을 위한 정보 조사ㆍ분석 활동을 주 업무로 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폭로된 e메일에 따르면 스트랫포가 이러한 자신의 목적을 위해 동유럽과 중동지역에서 활용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스르야 포포비치다. 스트랫포는 포포비치의 민주주의 활동가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활용하고자 했다. 포포비치가 가진 세계적인 활동가 연락망을 이용해 주요 국가의 활동가 정보를 수집해 왔다. 그들은 미국에서 오큐파이 활동가들을 미행∙감시한 것이 폭로돼 논란을 일으켰다. 아래 글에 따르면 포포비치는 미국 활동가들을 접촉해 그 정보를 스트랫포에 전달했을 뿐 아니라 바레인에서 인권활동가들을 접촉해 그 정보를 넘겼고, 심지어 그가 명성을 얻은 세르비아의 오트포르! 운동 활동가들의 정보조차 사전 동의 없이 제공했다.

포포비치가 의식적인 프락치는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개인적 부와 명성을 위해서일지라도 미국 정부와 기업을 위해 일하는 정보업체와 어떤 관계를 맺어온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는 스트랫포의 임직원들을 위해 강연을 했고, 그의 아내는 스트랫포에서 직접 일했었다. 애초 포포비치는 자신의 결혼식에 스트랫포의 많은 임직원들을 초대하기도 했다.

더 위험한 것은 그가 말하는 '혁명'이다. 그가 주 대상으로 삼는 국가ㆍ정부가 주로 그 나라 안에서 압제와 전횡을 일삼는 독재자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 보더라도 그의 '혁명'은 미국의 외교 언어인 '정권 교체
(regime change)'이지 사회ㆍ경제 전체의 근본적 변혁으로서 '혁명'은 아니다. 더구나 그가 '정권 교체'를 노리는 정부는 거의 언제나 미국의 눈엣 가시 같은 존재인 나라들 만이다. 그러니까 '터키'에 대해선 침묵하며 '베네수엘라'에선 적극적인 그와 그의 조직 칸바스(CANVASㆍ오트포르!의 후신)의 행보가 대표적이다. 포포비치는 차베스가 죽기 전 베네수엘라에서 그를 몰아낼 청사진을 제안했다고도 한다.

따라서 그의 책을 민주주의 건설을 위한 어떤 '교범'으로 고려하고자 한다면 보다 비판적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그에 대한 의혹을 지나치게 강조해 동유럽과 아랍에서의 격변을 모두 미국 정부 혹은 세계 그림자 정부의 음모 결과로 치부할 필요는 없다. 아래 글처럼 세르비아에서의 격변을 미국 정부가 후원하고 조직한 결과로 볼 필요도 없다. 내 생각으로는 오히려 과대망상에 빠진 개인과 기업의 주장에 언론이 부화뇌동한 결과 그 지역들의 격변에서 포포비치의 역할이 지나치게 강조된 듯 싶다. 그럼에도 이러한 주장들을 살펴봐야 하는 건 베네수엘라에서 실제로 그랬듯이 미국 정부와 기업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대중운동을 동원하기도 한다. 차베스에 반대한 자본가들과 기업노조들의 파업이 실례다. 비판적으로 살펴보기를 멈춰선 안 되는 이유다. 아래 옮겨놓은 폭로 글은 포포비치의 책을 비판적으로 읽기 위한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p.s. 한겨레는 투쟁의 상징은 불끈 쥔 주먹이 포포비치의 조직 오트포르!가 만들어낸 것으로 소개하는 데, 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운동에서 쓰이던 상징이다. 오트포르!와 포포비치는 이를 약간 변형한 것일 뿐이다.

※ 의역이 많고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인용하려면 반드시 원문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대괄호[ ]는 이해를 위해 옮긴이가 추가한 것입니다.


정보기업 스트랫포와 협력해온 국제적 명성의 활동가
칼 깁슨, 스티브 호른|2013년 12월 2일ㆍ링크

세르비아의 스르야 포포비치는 1990년대 후반부터 동유럽과 그밖에 지역에서 체제 변화를 주도한 기획자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는 2000년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를 몰아내는 데 기여했으며 미국의 후원을 받은 활동가 그룹 오트포르!(Otpor!)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보다 덜 알려진 것으로, 오큐파이닷컴
(Occupy.com)의 독자적인 조사에 따르면 포포비치와 오트포르!, 그리고 그 후신인 칸바스(CANVASㆍCentre for Applied Nonviolent Action and Strategies)는 골드만삭스의 경영진, 민간 정보기구인 스트랫포(StratforㆍStrategic Forecasting, Inc.), 그리고 미국 정부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 왔다. 포포비치의 아내는 스트랫포에서 1년여 일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은 위키리크스가 '글로벌 정보 파일'의 e메일 수천 통을 새로 공개한 여파로 알려졌다. 미국석유학회
(API)ㆍ아처대니얼스미들랜드ㆍ다우케미컬ㆍ듀크에너지ㆍ노스롭그루먼ㆍ인텔ㆍ코카콜라와 같은 고객들을 위해 지정학적 사건들과 활동가들의 정보를 모아온 텍사스 오스틴에 위치한 민간 기업 스트랫포와 포포비치는 긴밀하게 협력했다.

'SR501'이란 제목의 e메일을 보면 스트랫포는 동유럽에서 발생한 사건들에 대한 회사 내부 강연을 위해 2007년 처음 포포비치에 접근했다. 스트랫포의 자료에 따르면 그는 이 이야기를 기밀로 유지하길 요청했다.

e메일 중 하나에서 포포비치는 미국이 무장시킨 바레인 정부에 의해 부상당하거나 살해당한 활동가들의 정보를 전달했다. 이 정보는 2011년 가을 바레인 정부가 민주주의 활동가들에 의해 위기에 처했을 때 바레인 인권센터로부터 얻은 것이다. 또한 포포비치는 2010년 9월 최근 사망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전 대통령을 어떻게 쫓아낼 수 있을지 그 청사진을 스트랫포에 제안하기도 했다.

●스트랫포의 글로벌 활동가 연결고리

포포비치는 자신의 활동가로서의 명성을 활용해 세계적인 활동가들과 스트랫포의 만남을 여럿 주선했다. 스트랫포가 포포비치의 인맥으로부터 얻어낸 정보는 차례로 그들의 기업 고객-스트랫포는 자신을 '그림자 CIA'로 홍보했다-에게 '유용한 정보'로 제공됐다.

포포비치는 필리핀ㆍ리비아ㆍ튀니지ㆍ베트남ㆍ이란ㆍ아제르바이잔ㆍ이집트ㆍ티벳ㆍ짐바브웨ㆍ폴란드ㆍ벨라루스ㆍ조지아ㆍ바레인ㆍ베네수엘라ㆍ말레이지아 등 세계 곳곳의 현지 운동가들의 활동에 대한 정보를 스트랫포에 제공했다. e메일을 보면 포포비치는, 자신의 e메일이 민간 보안기업에 전달되는 것을 알리 없는 활동가들의 정보를 그들의 동의 없이 스트랫포에 여러 번 제공했다.

미국에서는 이 글의 공저자인 칼 깁슨
(US Uncut의 대표)과 더 예스맨의 앤드 비클바움이 포포비치를 만났었다. 그들이 활동하는 두 단체가 GE의 세금 미납을 조롱하는 풍자를 한 직후였다.

그 둘은 자신들 단체의 다음 해 계획을 포포비치에게 얘기했고 이후 뉴스에선 스트랫포가 예스맨의 활동가들을 치밀하게 감시 중임이 보도됐다.

2011년 1월 아랍의 봄 당시 이집트에서 포포비치는 CNN에 보도될 인터뷰 진행을 제안받았다. 그가 논점을 펼치는 데 의지한 첫 사람은 스트랫포의 직원이었다. 스트랫포 직원은 그에게 다섯 가지 논점을 제시해 인터뷰를 이끌었다.

스트랫포는 포포비치가 자신들에게 유용한 이유로 세계 곳곳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그의 풀뿌리 활동가들 연락망이라고 말하고 있다.

스트랫포의 전 유라시아 분석가인 마르코 패픽이 2010년 5월 쓴 e메일을 보면 "다시 상기시키자면 이 만남에서 그의 주요한 유용성은 그가 접촉해온 세계 곳곳의 골칫거리들을 우리에게 연결시켜줄 수 있는 능력이다. 현지의 상황을 파악할 그의 능력은 아마 제한적일 것이다. 그는 주로 정보 제공자와 기초적인 연락을 유지해 정보 제공자들이 자신의 일을 할 수 있게끔 한다"고 적혀 있다.

포포비치는 그의 부인이 스트랫포에서 일할 만큼 그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포포비치의 부인은 스트랫포에서 2010년 3월부터 2011년 3월까지 1년여간 '이주의 공개자료' 업무에 종사했다. 다른 지원자였던 엘레나 탄키츠 또한 칸바스에서 활동한 이다.

"칸바스맨
[포포비치][스트랫포에게] 친구이자 자원이고 그는 그녀를 우리에게 추천했다"고 스트랫포의 분석 담당 부사장인 스콧 스튜어트는 같은 날 면접한 두 사람을 제외하며 2010년 3월 e메일에서 쓰고 있다.

포포비치와 그의 부인은 스트랫포와 무척 가까워졌고 실제로 포포비치는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연 그들의 결혼식에 스트랫포 직원 다수를 초대했다.

●스트랫포가 만들어낸 혁명을 돕기

스트랫포는 포포비치의 가치를 세계의 혁명가들과 운동가들의 활동 정보를 얻는 데 만 두지 않았다. 필요할 경우 그가 미국의 지정학적ㆍ금융적 이해관계에 적대적인 나라의 지도자들을 몰아내는 걸 도울 수 있다고도 여겼다. 따라서 스트랫포는 포포비치를 이용하기 위해 그에게 패픽이 '우리가 기업으로서 항상 이용할 수 있는 합법적인 자원'이라고 부른 자유롭게 이용할 기금을 제공했다.

패픽은 2011년 6월 e메일에서 포포비치를 '훌륭한 친구'라며 '혁명을 위해 세계를 여행하는 세르비아 활동가'로 묘사했다.

"그들은 … 기본적으로
(미국이 좋아하지 않는) 독재자와 독재정부를 쓰러뜨리기 위해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다"고 패픽은 e메일에 적고 있다. 그 e메일에 대한 답장에 대답하면서 그는 "그들은 지금 당장 그 나라들로 가서 사업을 시작해 정부를 무너뜨릴 노력을 펼쳐야 한다. 이는 적절히 사용할 때 항모 전단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스트랫포 정보 담당 부사장 프레드 버튼은 '항모 전단' e메일에 대한 답장에서 그들을 이란으로 보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포포비치는 현지 정보 제공자로 이란의 활동가를 소개했고 또한 스트랫포가 '민주주의 프로그램'을 위한 투쟁에 투자해 미국 정부가 '소프트 파워' 정책을 밀어부치도록 했음이 e메일을 통해 폭로되기도 했다.

2010년 3월 스튜어트는 버튼에게 보낸 또 다른 e메일에서 칸바스가 '차베스를 몰아내려 하고 있다'고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전 대통령에 대해 썼다. 2007년 칸바스는 차베스 전복을 위해 활동가들을 훈련시켰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우리는 베네수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 고객들을 고려해, 정보원으로서 혁명적 NGO들을 세심하게 다루기 위해 그와 연락하는 데 허시메일을 사용한다"고 패픽은 2011년 1월 e메일에서 포포비치를 언급한다.

스트랫포는 칸바스가 정부를 전복을 조장하는 데 지닌 광범위한 능력에 반해 여행 경비를 지급해 가며 2010년 포포비치를 오스틴의 본사로 초대해 그 주제로 세미나를 연다.

●칸바스의 골드만삭스 현금

골드만삭스에서 경영진으로 있다가 2012년 6월 퇴직 후 자신의 새터유환투자관리(Satter Investment Management LLC.)를 운영하고 있는 무니어 새터는 칸바스의 주요 협력자 중 하나다. 스트랫포 CEO 시아 모렌즈는 10년여간 골드만삭스에서 투자관리 담당상무이사와 남서부 개인투자관리 본부장으로 종사했다.

새터는
[골드만삭스에 있던] 그 기간에 공화당의 주요 후원자였다. 그는 2012년 대통령선거 전 칼 로브의 수퍼팩[후보 개인이 아니라 지지세력 전체에 무제한의 정치자금을 후원할 수 있는 제도] 크로스로드 GPS에서 30만 달러 이상을 기부했다. 그리고 2014년 중간선거를 앞둔 2013년 상반기에는 공화당주지사협의회(the Republican Governors Association)에 10만 달러를 후원하기도 했다.

시카고 노스쇼어의 950만 달러짜리 거대한 고급 주택에 살고 있는 무니어는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펀드에 50만 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포포비치는 세계적 정보기업 스트랫포와 무니어를 만나게 됐을 때 중개인으로서 그 기업의 대표 조지 프리드먼에게 새터를 소개했다.

스트랫포 홈페이지에 새터는 "세계적 사건 이면의 정보를 이해하고 싶어질 때면 나는 언제든 스트랫포를 찾는다"고 추천사를 적고 있다. "그들은 세계적 문제들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와 통찰력 넘치는 분석을 보여주고 있고 이는 주류 언론보다 100보 앞선 것"이라고 말한다.

●오토포르!: 거꾸로 된 역사

포포비치가 어떻게 스트랫포 정보 수집 활동의 수족이 됐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트포르!와 칸바스를 비판적으로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포포비치가 스트랫포의 정보원이자 중요한 자문역을 맡게 된 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다.

밀로셰비치를 몰아냈던 '불도저 혁명'과 이후 동유럽 정권을 쓰러뜨렸던 운동들에서 풀뿌리 활동가들과 서방 언론의 역할로 인정받는 것들은 보여진 것보다 더 크다.

2000년 워싱턴포스트는 폭로기사에서 "원론적으로
[세르비아의 사건은] 미국 의회가 1999년 정부 예산에서 1000만 달러, 2000년 3100만 달러가량을 투입한 공공연한 작전이었다. 반밀로셰비치 운동에 참여한 몇몇 미국인들은 운동 주변의 CIA 활동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이 무엇을 하는 지까지는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국무부와 국제개발처
(USAID∙the U.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가 주도적 역할을 맡았다. 이들은 정부의 해외 원조기관을 통해 민간 파트너에게, 그리고 NDI와 공화당의 협력단체인 국제공화주의연구소(IRI∙the International Republican Institute) 같은 비영리단체에 지원금을 보냈다."

패픽이 칸바스를 '항모 전단보다 강력한 힘'이라고 주장한 것이 과장 만은 아니었다. 칸바스는 1990년대 후반 세르비아에서 오트포르!의 경험에 기초해 설립됐다.

독립적인 학자 마이클 바커는 "실제로 1997년에서 2000년 사이 국가민주주의기금
(the Natioanal Endowment for Deomocracy∙이름과 달리 민간 단체다)과 미국 정부는 대략 나토가 3만7000회의 폭격을 통해서 하지 못했던 것을 해냈다. 밀로셰비치를 몰아내고 그들이 선호하는 인물인 보이슬라프 코슈투니차로 대체했으며 세르비아에 신자유주의적 전망을 확산시켰다"고 Z매거진에 썼다. "같은 방법으로 기업의 대리단체들과 가짜 시민단체들(astroturf groups)은 정말 순진한 지지자들을 모은 전략적으로 활용된 사회운동은 잠재적으로 우파의 후원(막대한 자금과 전문적인 지원)을 받은 시민사회를 주도할 수 있었다."

세르비아에서 오토포르!의 성공을 견본 삼아 미국 정부로부터 650만 달러를 후원받은 운동은 2004년 우크라이나에서 정권을 교체할 수 있었다.

오토포르! 활동가는 미국이 지원하는 방송 자유유럽라디오
(Radio Free Europe)에서 "우리는 그들을 훈련시켰다. 어떻게 조직을 건설하고 지역 지부를 만드는지를 교육했다. 로고∙상징∙핵심 메시지를 만들고 '브랜드'를 구축하는 법을 가르쳤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사회의 약한고리와 사람들이 가장 고통받는 문제를 파악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이는 사람들, 무엇보다도 청년들이 투표함으로 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게끔 동원할 수 있는 요소일 것이다."

세르비아에서 밀로셰비치를 쓰러뜨리는 데는 강력한 언론기구를 만들기 위한 미국 정부의 지원도 수반됐다. 이렇게 미국이 지원했던 라디오∙TV 중 하나인 B92에서 포포비치의 부인은 기자와 앵커로 활동하기도 했다.

미국 USAID는 2004년 정책보고서에서 "라디오 B92를 돕고 라디오방송국(ANEM)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국제적인 노력은 정부가 뉴스와 정보를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통제하는 능력을 약화시켰다"며 "세르비아에서 USAID와 국제적인 후원자들이 독립적인 언론을 도운 것이 정권 교체를 가능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핵심적인 건 동유럽에서 일어난 사건은 그 어떤 말로 해도 정권 교체이지 혁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포틀랜드주립대 도시연구∙계획과 제랄드 서스먼 교수는 그의 책 '민주주의 브랜드 만들기: 포스트소비에트 시대 동유럽에서 미국의 정권 교체'에서 "
[그것들은] 그것은 실제로 절대 혁명일 수 없다. 지배층 내부에서 권력이 이동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소비에트 붕괴 후 이 지역에서 현대적 선거운동 전술은 포퓰리스트처럼 불안정하고 취약한 상황을 정권 교체를 위해 이용하는 것이었다"고 썼다.

오트포르!가 미국 정부 내 강력한 세력과 연관을 맺고 있는 만큼 포포비치가 2010년 5월 미국 공사에서의 강의하면서, 또 2009년 12월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에 참석하면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은 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일찌감치 칸바스에 자금 지원을 위해 미국 정부에 로비활동을 펼친 권력가는 현재 주러미대사인 마이클 맥폴
[2014년 사퇴했다]이다. 그는 스탠포드 대학교 후버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서 포포비치를 도와 '밀접하게 협력'했다.

●확산되는 비판, 포포비치의 대답

바레인 인권센터의 책임자 마리암 알카와자는 포포비치를 몇 년간 활동가로 알고 있었지만 위키리크스가 스트랫포의 e메일을 폭로하기 전까진 그의 대외 관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한다.

"스르야와는 여러 번 만났었다. 그는 바레인 혁명과 바레인에서 인권투쟁에 큰 도움을 주는 사람이었다"고 알카와자는 전화통화에서 말했다. "그가 그들의 정보를 내게 전해줬을 때 나는 매우 놀랐었다."

알카와자는 당시 스트랫포가 어떤 기업인지 알지 못했지만 그들이 그녀에게 던진 질문을 읽자마자 의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녀는 스트랫포로부터 온 e메일에 의혹을 느껴 결단코 그들과 연락하지 않았다.

"그 e메일들은 정말 정보기관의 질문들 같았다. 그들은 인권센터에서 내가 한 일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야권 연합을 누가 후원하는지, 그들에겐 얼마나 많은 회원이 있는지와 같은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물어왔다"며 "그러한 질문들 때문에 내가 받은 e메일 배후의 동기에 의심을 갖게 됐다. 그것이 내가 답변하지 않은 이유"라고 말했다.

"그와 같은 e메일을 받거나 정보기관처럼 보이는 질문에 흥미를 보이는 사람이 접촉해오면 우리는 보통 그들을 차단해린다. 우리가 알기엔 그런 이들은 거의 정부를 위해 일하기 때문이다"라고 알카와자는 말을 이었다. "기자들은 우리가 하는 일을 알기 때문에 첫 만남에서 그와 같은 질문을 던지진 않는다. 나는
[스트랫포의] e메일을 받자마자 매우 이상하다고 느꼈고 내가 실제로 절대 답변을 보내지 않은 이유다."

오토포르!의 공동 설립자 중 한 사람
(그는 그 운동에 남아있기에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은 화상 인터뷰에서 위키리크스에 폭로된 e메일 중 포포비치가 활동가들의 정보를 사전 동의 없이 제3자에게 전달했다는 내용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포비치는 인터뷰에서 칸바스에 대해 사뭇 다른 어조로 말한다. 그는 "우리는 우리 활동가들을 위태롭게 하는 어떠한 일도 절대로 하지 않았다. 우리는 항상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며 사전 동의 없이는 그 누구에게도 그들을 노출시키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또한 포포비치는 칸바스가 누구나, 그리고 모두에게나 그 어떤 차별 없이 비폭력 직접행동에 대해 말하려 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어디에서든 칸바스가 대변하려 한 것은 저 헌신적인 활동가들과 비폭력 투쟁이지 여전히 냉전시대에 사로잡혀 평범한 사람들이 이끄는 대중운동이 아니라 탱크와 비행기∙핵폭탄이 세계를 움직인다고 믿는 이들이 아니다"고 말했다.

"우리가 워싱톤, 크렘린, 텔아비브, 다마스커스에 있는 세계 정세의 주재자들을 설득할 수 있다면 그것은 외국 군대의 개입이 아니라 우리가 해온 것을 존중하고 받아들인 비폭력 투쟁 덕일 것이다."

여기에 더해, 포포비치의 경력을 고려해보면, 특히 그의 활동가 경력 내내 어느 쪽에 붙을지 고민해왔던 과거를 따져보면 그는 스트랫포에 딱 맞는 사람이었다고 비판가들은 말한다.

서스먼 교수는 인터뷰에서 "세르비아의 단체는 세르비아 바깥의 어떤 곳에서도 저항운동을 이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술은 어떤 정치적 목표를 쟁취하는 데 유용했다"며 "또한 그는 그 과정에서 민간과 정부 정보기관에 유용한 정보를 취합해 제공했다. 그것이 바로 스트랫포가 그에게서 찾은 유용성"이라고 말했다.

칼 깁슨은 기업을 위한 긴축정책 중단을 위한 비폭력적이고 창조적인 직접행동 운동을 펼치는 US Uncut의 대변인이자 조직가이다.
스티브 호른은 위스콘신주 매디슨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 탐사보도 전문기자이자 이 기사가 먼저 발표된 DeSmogBlog의 연구원이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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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한 장면. 영화에서 핵무기는 '억제수단'으로서 머물지 못하고 결국 사용된다.


북한 핵무장이 기정사실화 되면서 한국의 핵무장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총대를 멘 것은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이다. 그는 조선일보 4월 15일자 31면에 실린 특별기고에서 "동서 냉전의 교훈은 핵무기는 핵무기로만 억제된다는 것"이었다며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핵무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조선일보 4월 15일 31면ㆍ링크).

정몽준은 "국민의 3분의 2가 전술 핵이나 자체 핵무장에 찬성"하고 있다는 것으로 자신의 주장이 혼자 만의 돌출발언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그의 말마따나 한국 국민들의 핵무장 열망은 꽤 오래됐고 그 깊이와 폭도 넓다. 1993년 출간된 김진명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핵무기에 대한 한국의 열망을 공개적으로 표출한 대표적 소설이다. 이 책은 1년 만에 600만 부가 넘게 팔리면서 이러한 열망이 소수의 것이 아님을 보여줬다.

2000년 초반 원자력연구소의 우라늄 농축 실험은 국제사회의 우려 속에 2004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까지 이어졌다. 한국 정부는 핵무장과의 연관성을 부정했지만 다른 나라들의 입장은 아니었다. 영국 비비시방송은 "레이저를 활용해 무기급 우라늄을 추출해내는 기술은 민간용으로 활용할 수 없는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미국 뉴욕타임스도 마찬가지 반응을 보였다. "한국이 밝힌 농축 우라늄 양은 0.2g으로 극미량이지만, 순도는 80% 가까이에 이른다"며 "이렇게 고농축된 우라늄은 핵무기 제조용을 빼고는 달리 활용할 방도를 찾기 어렵다"고 한국 정부의 해명을 비판했다
(한겨레 2004년 9월ㆍ링크).

당시 우라늄 농축 실험이 핵무장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 경험은 핵무장에 대한 자신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2011년 "한국도 마음만 먹으면 6개월 이내에 기폭장치와 투발수단을 갖춘 핵무장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2000년 우라늄 농축 실험에 사용된 레이저 기술은 "세계가 괄목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고 유사시에 단기간에 핵무장을 할 수 있는 재정적ㆍ기술적 역량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과학자가 '핵무장'을 운운하는 이유야 알 수 없지만 그의 전공과 소속을 고려할 때 완전한 허언은 아닐 것이다
(국민일보 2013년 2월 15일 3면ㆍ링크).

그렇다면 왜 정몽준이 핵무장 총대를 멘 것일까.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어서는 아닐 것이다. 그는 가만히만 있어도 언론에 보도되는 7선의 여당 중진 의원이자 세계 1위의 조선 기업인 현대중공업 최대 주주 아닌가. 김의겸 한겨레 논설위원은 그 이유를 "정몽준이 군수업자라는 사실"에서 찾는다. 현대중공업이 "우리나라 방위산업을 떠받치는 기둥"이라는 것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인수전에도 뛰어든 것을 근거로 든다. 한편 "요즘 한반도의 긴장을 격화시키면서 아파치 헬기 1조8000억원어치를 팔아먹고, 12조원 이상의 차세대전투기를 들이대는 미국 군사산업체의 판매전략이 그의 사업가적 상상력을 자극"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내놓는다. 김의겸 논설위원의 주장은 군산복합체의 수장이 기업의 이윤을 위해 '핵무장'이라는 불놀이를 벌이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한겨레 4월 26일 31면ㆍ링크).

정몽준의 제안이 '무기상'의 장삿속에 불과하다는 김의겸 논설위원의 분석은 지나치게 안이해 보인다. 그의 정치에 동의하거나 지지를 보내진 않지만 그는 대권에 도전해온 여당의 7선 의원이다. 그가 국회의원 자리를 어떻게 유지했느냐와 별개로 정치경력만 봐도 그를 단지 개별 자본의 이해에만 매여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게다가 자본가들이 모든 행동이 이윤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사회는 오직 추상 속에서만 가능하다]. 정몽준의 아버지 정주영의 소떼 방북 퍼포먼스를 오직 장삿속 만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정주영이 가장 아꼈다고 알려졌고 그래서 현대그룹을 물려받은 [사실 알짜인 현대자동차는 정몽구가, 현대중공업은 정몽준이 챙겨 속빈 강정에 불과했지만] 정몽헌과 그의 아내 현정은도 '돈 안되는' 금강산 관광사업에 '명분' 때문에 매달리고 있지 않는가.

아니나 다를까 정몽준은 바로 한겨레에 반론을 보내왔다. 민족과 국가에 대한 애국심을 늘어놓는 부분은 역겹지만 "미국 같이 전 세계를 상대로 하는 나라에서는 군수산업이 그야말로 산업으로서의 위상을 가질 수도 있다"는 그의 주장은 옳다
(한겨레 5월 7일 29면ㆍ링크). 세계 자본가 계급 내 그의 위치로 볼 때 정몽준이 AK-47소총, RPG-7과 같은 소형 무기만 팔아먹는 데 만족할 '로드 오브 워'의 유리 오로프와 같은 소매상을 꿈꾸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전 세계를 상대로 무기를 팔아먹는 미국 수준의 군산복합체는 아직 어불성설이다. 한국 기업의 기술력이 지금과 같은 수준에 이르기 전에는 정부의 지원과 협력의 일환으로 군수산업이 기업의 기술발전에 도움이 됐겠지만 현재의 한국 대기업들은 정부 지원 없이도 충분한 기술력을 갖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군산복합체'가 원인이 아니라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군산복합체가 성장한 데는 세계질서에서 제국주의 수장국이라는 배경이 중요하다. 미국에게 요구되는 군사적 역할 때문에 무기의 개발과 생산이 집중되고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자신을 낳아준 정부를 압박할 정도로 성장했다는 측면에서 '군산복합체'에 대한 비판이 유의미하긴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잠시 이야기를 돌아가자. 1980년대 이후 '핵무장'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확산되지만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이어져 오는 보수 우파들은 공개적인 핵무장 주장에 대해 조심스러웠다. 기본적으로 한국의 보수적 지배계급은 세계질서에서 한국의 지위를 소심하게만 파악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미국의 힘에 의해서 '대한민국'을 만들고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태도는 '전시작전권'에 대한 태도에서 잘 드러난다. 전작권의 환수는 미국으로부터의 군사적 홀로서기라는 보수우파에게 두려운 미래의 현실화인 것이다. 노무현 정권시절의 대양해군 전략이 이명박 정권에서 폐기됐던 것도 마찬가지다. 보수우파에겐 오직 북한 만이 상대 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와 달리 개혁적 우파들은 한국의 성장에 고무됐고 자신감도 있었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시절 군 현대화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군 전략이 바뀐 것은 이 때문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권시절인 2005년 마련된 '국방개혁2020' 계획에 따라 재래식 무기지만 첨단무기들이 도입된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 간 무기수입은 세계 3위에 달한다
(2011년 12월 8일 8면ㆍ링크). 그리고 그 무기는 북한 만을 상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향한 것으로 보였다. 물론 이 과정은 이명박 정권시절 들어 중단된다. 국방개혁2020 계획은 재검토되고 2009년과 2010년 무기수입은 그 전의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

정몽준은 7선의 중진의원이지만 한국의 전통적인 보수 지배세력에 속하진 않았다
[그는 상당 기간 무소속이었다]. 세계적 기업을 운영하는 자본가로서 언제나 미국에 주눅들어 있고 북한에만 방방 뛰던 보수우파와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지닌 한국이 군사와 외교에서도 그 만한 역할을 하기를 바랄 수 있다. 노무현 정권은 그러한 열망에 충실히 따랐었다. 이는 미국의 바람이기도 하다. 중앙선데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이번 방미 기간 오바마의 관심사는 "시리아ㆍ이란 등 중동 문제에 대한 한국의 협조"라고 보도했다(중앙선데이 5월 5일 3면ㆍ링크). 이미 한국 정부는 아프가니스탄ㆍ이라크 등지에서 미국과 협력해왔다.

재래식 무기에 이어 핵무장까지 욕심내게 된 데는 미국의 힘이 예전만 못해보인다는 것도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정몽준은 조선일보 특별기고에서 "
[재래식 무기를 사용한 미국의] 무력 시위는 북한이 핵무기를 쓰는 것을 진정시킬지는 몰라도 북한의 핵무기를 폐기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게다가 미국이라는 '우방'이 보수우파의 바람 만큼 영원히 한국의 바람막이가 돼줄지도 의심스럽다. "아무리 긴밀한 동맹이라 해도 국가 이익이 100%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과 정치적으로 가장 가깝다는 이스라엘이 핵무장을 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라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조선일보 4월 15일 31면ㆍ링크). 이는 구체적으로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에 대한 불안이기도 하다. 그는 특별기고에 이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계를 이혼할 수도 있는 결혼한 남녀에 비유했다. 그는 미국이 중국과 함께 "현 상태를 인정하고 북한이 핵무기를 더 만들지만 말라고 할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미국에게는 "현재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 숫자는 큰 위협이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조선일보 4월 22일 29면ㆍ링크).

정리해보자. 정몽준의 핵무장 발언은 일개 정치인의 돌출발언은 아니다. 단순히 '무기상'으로서의 이득을 바라는 것일 수도 없다. 이는 경제성장에서 비롯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제국주의 세계질서에서 상층으로 도약하고자 하는 새로운 지배계급의 열망이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물밑에서 흐르던 핵무장 욕심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기점으로 고개를 내민 것이다.

한국 사회 좌파가 제국주의를 다시 검토해야 하는 지점은 이 부분으로 보인다. 이미 2000년대 초반 파병반대 운동 때부터 제기되기 시작했지만 더 이상 제국주의 피해자인 약소국가로만 한국을 바라볼 수는 없다. 한국군의 해외파병도 미국의 강제에 의한 것이라고만 볼 수도 없다. 한국군 해외파병은 베트남전 이후 한동안 중단됐다가 1991년 1차 걸프전을 계기로 다시 시작돼 2000년대는 보다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펼쳐졌다. 2012년 11월 현재는 15개 나라에 1440명이 파병돼 있다
(문화일보 2012년 11월 2일 3면ㆍ링크). 핵무장을 포함해 한국 군사력이 미국으로부터 홀로서는 것은 앞으로도 부침이 많을 것이다. 주변에 강대국들이 가까이 있다는 것도 장애물 중 하나다. 그러나 정몽준과 과거 노무현 정권으로부터 확인할 수 있듯이 새로운 지배계급은 이전 지배계급보다 확연히 대외 지향적인 제국주의 노선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평화'라는 말로 포장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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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람쥐 2014.01.02 1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도 핵억제력을 확보해야 하는데 동북아시아의 평화가 영원할거라고 믿지 않습니다.

    • 때때로 2014.01.02 16: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러시아, 미국, 중국과 같은 핵강국이 충돌하는 지역이고, 바로 옆 나라인 일본의 군사력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국이 핵무장을 하는 것은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행위가 되겠죠. 무장을 통한 한반도 평화는 둥근 네모와 같은 불가능한 망상일 뿐입니다.


[사진 한겨레]


오늘자 한겨레 신문에 실린 칼럼에서 조한혜정 교수는 '동네 나눔 부엌'을 상상해보자고 한다(한겨레 4월 24일자 30면ㆍ링크). 그는 이 나눔 부엌이 "지속가능한 삶의 시대를 열" 징검다리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협동조합과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이런 주장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시사인 293호에도 성북구의 '마을 만들기 사업'에 관한 글이 실렸다.

그런데 오전 6~7시에 출근해 오후 8~9시는 돼야 집에 오는 대다수 노동자들에게 동네 나눔 부엌이 가능하기나 한 걸까. OECD에 의하면 2010년 기준 한국의 연간노동시간은 2193시간으로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길다. 부지런하다는 독일은 1408시간, 일본은 1733시간 일한다
(OECD Factbook 2012ㆍ링크). 주말이나 휴일에라도 시간이 나면 다행이다. 주말이나 휴일 특근은 제외하더라도 휴일 자체가 적다. 선진국들에 비해 5~13일 덜 쉰다. 2009년 기준으로 평균 휴일 수는 연차휴가 19일을 합해 25일이라고 한다(경향신문 4월 23일자 3면ㆍ링크).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직장에 매여 있기에 개인 또는 가족을 위한 시간은 최소화 되기 일쑤다. 마을 공동체를 위한 시간은 더 말해 뭐할까. 마을과 협동조합의 아름다운 공동체를 꿈꾸지만 현실은 발목을 잡는다.

그래서일까. 조한혜정 교수는 "여유가 생긴 주부"와 "프리랜서"를 '동네 나눔 부엌'의 제일 첫 구성원으로 꼽는다. 시사인의 기사에서도 주부들의 참여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전업주부라고 낮시간에 회사에 매여 있어야 하는 직장인보다 시간이 더 날리도 없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전업주부 연봉찾기 서비스 조사 결과에 의하면 서울 및 6대 광역시에 거주하는 30대 전업주부의 평균 가사노동 시간은 하루 9시간40분에 달한다고 한다
(링크). 취업 노동자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과 그리 다를바 없다(2009년 기준 연간노동시간 2232시간을 휴일ㆍ휴가 129일을 제외한 236일로 나누면 9시간27분정도 된다. 단 전업주부의 가사노동 시간 조사는 개인이 직접 입력한 시간을 평균한 것으로 엄밀한 조사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집안일을 도울 '아줌마'를 쓸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마을일에 신경쓸 여유가 있을리 없다. 프리랜서는 그 이름 만큼 자유로운가? 가당찮은 말이다. 직장에 다니는 노동자보다 더 가혹한 조건으로 자신 스스로를 몰아넣어야만 생존 가능한 게 대다수 프리랜서의 현실이다.

마을ㆍ공동체ㆍ협동조합 모두 좋다. 그런데 그 시작은 무엇보다 노동시간의 절대적인 단축이 되어야 한다. 정치 참여를 늘려 민주주의에 활력을 불넣기 위해서도 노동시간 단축은 필수다. 술자리 욕지거리들을 정치 참여라고 보지 않는다면 말이다. 노동조합 활동에 조합원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서도 노동시간의 단축은 전제 조건이다. 곧 있으면 노동절이다. 1886년 하루 8시간 노동 쟁취를 위해 총파업을 벌인 미국 노동자의 투쟁을 기념하는 날이다. 노동시간 단축은 자본주의 역사 내내 가장 큰 갈등의 축이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다른 말들의 잔치보다 '노동시간 단축' 이 하나에 힘을 모을 방법은 없을까. 손학규의 '저녁이 있는 삶'은 매우 훌륭한 슬로건이다.

※ 마을 공동체의 형성에 좌파나 진보 지식인만 관심을 가지는 건 아니다. 건설사들은 몇년 전부터 주민 공동 편의시설인 '커뮤니티 센터'를 아파트 홍보에 적극 사용하고 있다. 처음에는 피트니스센터와 같은 것들이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주민 회의실이나 독서실ㆍ카페 등 아파트 공동체를 위한 시설로 확대되고 있다. 홍보업체들은 "상류층, 그들 만의 커뮤니티"를 홍보 키워드로 사용하고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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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okcom 2013.04.24 16: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 건설사 이야기가 솔깃하네요! 요즘 소위 '게이티드' 아파트촌에는 인트라넷 구축도 잘 되어 있어서 한밤중에 해열제가 필요해 글 올리면 여기저기서 응답이 오고 애들 문제로 정보공유도 많이 하고.. 그렇게나 훈훈하고 좋대요. 직접 살아 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는 문화라 듣고 깜짝 놀랐어요.

    • 때때로 2013.04.24 17: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누군가 잠입취재 해봤으면 좋겠어요. 저야 홍보 관련해서 저런 키워드들을 사용하는 것만 본 것이니 제대로 알기는 어렵죠. 꼭 이상화된 공동체는 아닐지라도 아파트 부녀회의 강한 결집력은 많이들 인정하는 것이죠. 이번 시사인 기사에서도 민주당 지역 정치인들이 아파트 소유자의 이해관계에 더 밀접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로 들었더군요. 이게 입증된 사실인지는 아직 좀 의심스럽습니다. 관련한 연구가 있는지 모르겠네요.

  2. G.D. 2013.04.24 17: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 그래도 열받을까 싶어 조한의 칼럼은 안 읽었습니다만... 뭐 대충 감이 오네요.
    노동시간 최장인 건 입 싹 씻고 모른 체하고 대체휴일제 하면 32조 날아간다고 발광하는 자본가들이야 뭐 말 다 했죠. 그런데 저런 식의 칼럼 쓰는 교수들도 자본가들 못지않게 짜증 납니다. 육아와 가사 등 노동력 재생산에 꼭 필요한 일을 하지만 무급이다 보니 주부의 노동력 따위 아무 떄나 차출해 공짜로 쓸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죠. 후배들 얘기 들으면 엄마들이 아직도 초등학교에 청소니 뭐니 하며 숱하게 불려 다닌대요. 예나 지금이나 거의 변한 게 없어요.
    그런 사회 분위기도 문제지만, 저런 칼럼에서 얘기하는 '여유가 생긴 주부'라는 것도 웃기는 소리죠. 여유가 있긴 개뿔...

    • 때때로 2013.04.24 17: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직접 읽으면 더 열받죠. 글을 시작하면서부터 예로 든다는 것이 '대기업 임원'과 '고액 연봉을 받는 조카사위'니까요. 그러니까 "정말 돈이 없어 문제인가? 살펴보면 지금 우리 주변에는 돈이 너무 많아 탈이고 남아도는 집과 공간도 적지 않다"(조한혜정)고 말할 수 있는 것이겠죠. 월 200만원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절반이 넘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인지 알면서도 무시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것과 관련해 임금(소득) 문제도 얘기해볼까 하다가 그냥 노동시간에만 집중해 정리했는데 보면 볼 수록 열받는 게 자꾸 나오는 칼럼입니다.


서울 삼성동 전력거래소의 모습. [강윤중 기자/경향신문]


1994년에 비견되는 폭염이 연일 계속되고 있습니다. 냉방용 전력 사용이 크게 늘면서 대규모 정전 사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죠. 입추가 지나면서 더위도 기세가 꺾였습니다. 일단 정전사태 가능성은 낮아졌지만 전력 공급 부족 문제가 큰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전력 위기를 핑계로 8월 6일 고리원전 1호기를 재가동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고리 1호기는 수명이 다하고 고장이 잇따라 안전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었지요.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은 8월 7일자 사설에서 나란히 고리원전 1호기 재가동 결정을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 [한겨레 8월 7일자] 고리 1호기, 전력난 구실로 재가동 안 된다(링크)
● [경향 8월 7일자] 고리 1호기 재가동, 국민 신뢰 확보가 먼저다(링크)

두 신문 모두 안전성에 대한 검증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고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 고리 1호기의 재가동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전력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과도한 전력 사용량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 사설 모두 정부의 '전력난 구실'에 대한 제대로 된 반박은 없습니다.

한겨레는 우리나라의 "1인당 전력소비 증가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전력 과소비국"임을 지적하며 정부의 에너지 정책 전환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에너지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하는지는 불투명합니다. 전력 과소비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도 애매하게 처리되죠. 문구 그대로 보자면 우리 국민 모두의 책임인 것처럼 보입니다.

특히 경향의 태도는 안타깝습니다. 경향은 전력 위기가 정점이던 8월 6일자에 '전력 수요 억제 위해 요금 현실화 불가피하다'는 사설을 실었습니다.

● [경향8월 6일자] 전력 수요 억제 위해 요금 현실화 불가피하다(링크)

경향은 이 사설에서 한겨레와 마찬가지로 에너지 정책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보다 분명하게 표현된 정책 방향은 제목에서처럼 '요금 현실화'가 핵심입니다.

"일반 국민 중에서도 요금 인상을 반기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국민과 기업의 부담 증가에도 불구하고 현재 원가의 87%가량에 불과한 전기요금은 단계적으로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 … 전력 수요 증가세를 그대로 반영해 공급을 늘릴 것이 아니라 수요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전력 낭비와 과소비를 막기 위한 최우선 대책은 요금 현실화다."
- 경향신문 8월 6일자 27면

물론 이런 입장은 중앙일보의 뜬금 없는 '공동체 의식' 운운보다는 낫습니다(8월 7일자 중앙일보 사설 '전력위기 공동체의식으로 극복하자'ㆍ링크). 하지만 경향의 입장은 (한겨레도 마찬가지지만) 중앙일보와 마찬가지로 전력 낭비의 책임을 국민 모두에게 지우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요금 현실화' 요구는 대다수의 서민들에게 반발만 살 대안입니다. 월급만 빼고 다 오르는 현실에서 전기요금을 인상하겠다는 것은 끓는 물에 기름을 붓는 격이죠.

전력 과소비의 현실은 어떨까요?

수치만 보면 우리나라가 전력 과소비국인 것은 분명한 사실인 듯 보입니다. 2009년 기준 우리나라의 1인당 연간 전력소비량은 8092㎾h입니다. 이는 일본 6739㎾h, 독일 5844㎾h, 프랑스 7020㎾h 등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입니다. 그렇다면 한겨레신문ㆍ경향신문ㆍ중앙일보가 함께 입을 모으듯 국민 모두가 책임지고 전력 소비를 줄이거나, 전기요금을 올려야하는 것일까요?

그러나 현실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많이 다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 8월 8일자 사설에 의하면 1인당 가정용 연간 전력소비량은 1088㎾h로 일본 2189㎾h, 프랑스 2326㎾h의 절반에 불과합니다. 지난해 한국의 전력소비량 가운데 산업용은 55%지만 주택용은 18%밖에 안 됩니다.

조선일보는 8월 8일자 사설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의 절전 보조금은 기업들의 방만한 전기 소비 탓에 발생한 전력난을 해결하려고 국민 세금으로 기업들을 지원해주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부와 기업은 이 상황을 국민이 언제까지 납득해줄 것인가 하는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 조선일보 8월 8일자 35면

위에 제가 인용한 수치들은 모두 이 사설(8월 8일자 조선일보 사설 '기업들이 電氣 더 아끼지 않으면 '전력 위기' 계속된다'ㆍ링크)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조선의 사설은 전력 소비구조와 함께 비정상적인 전기요금 체계의 문제도 짚습니다. 현재 산업용 전기요금은 ㎾h당 97원입니다. 이는 지난해를 기준으로 했을 때 전기생산 원가의 87.5% 수준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산업용 전기요금은 누진제 적용도 받지 않습니다. 이에 반해 주택용은 ㎾h당 128원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수준이라는 가중 누진제를 적용"받고 있습니다. 이는 경향이 생산 원가의 87%라고 애매하게 지적한 낮은 전기요금의 혜택을 국민 모두가 동일하게 받지 않음을 말해줍니다.

기업이라고 다 같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3300V 이상 고압 전기를 공급받는 대기업은 ㎾h당 96.6원의 전기요금을 내지만, 저압을 사용하는 중소기업은 ㎾h당 112.9원을 부담하더군요. 즉 대기업은 가장 많은 전기를 쓰면서도 가장 적은 비용을 치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에너지 과소비의 겉으로 드러난 '현실'만 지적하며 요금 현실화를 요구하는 경향, 모두 함께 아끼며 살자는 중앙보다 조선의 분석이 훨씬 구체적입니다. 이러한 분석은 전기 부족을 이유로 고리원전 1호기를 재가동하고, 추가적인 원전 건설을 추진하는 정부에 대응할 때도 설득력 있는 반대 근거로 제시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기업들의 이익에 도전하지 못하는 중앙일보야 그렇다 칩니다. 하지만 한겨레와 경향의 사설 수준은 많이 아쉽습니다. 그들이 특히 특권과 부당한 권력 행사에 분노하는 시민들 편에 서기 위해 노력하는 신문이라는 점에서 더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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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30 15:25

제 맘대로 뽑은 올해의 책 2010.12.30 15:25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기입니다. 그래봤자 다음주 월요일도 여느 한 주의 시작과 다르지 않게 출근하고 또 일을 하겠죠. 그래도 한해를 정리하는 일은 나이 먹을 수록 약해져가는 기억력을 보충하기 위해 필요한 일입니다.

최근까지 독서모임 두곳에 참여했습니다. "책은 혼자 읽는거야"라는 선배의 말에 동감하지만, 제 개인을 강제하기 위해 독서모임을 택했죠. 두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우선은 책을 그냥 '보기만' 하지 말고 '읽고' '정리하고' '기억하자'는 게 첫 번째고 두 번째 목적은 책을 좀더 많이 읽자는 것이었죠. 하지만 이 두가지 다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따져보니 올해 읽은 책의 양도 여느해와 크게 다르지 않더군요. 읽은 책을 정리하는 것은 더더욱 진척이 없고요. 이 두 목표는 내년에도 여전히 제 독서생활의 목표가 될 듯 합니다.

올해 나온 책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은 1월에 나온 '가난한 이의 살림집'(노익상 글ㆍ사진|청어람미디어|링크)입니다. 급속한 근대화는 우리 생활을 많이 변화시켰습니다. 그 변화의 중심엔 우리의 '주거생활'이 있죠. 노익상의 글과 사진은 우리 중에서도 '가난한 이'들의 주거를 뒤쫓습니다. 그가 찾는 사람들은 전통 농경문화에도 포함되지 못했던 말그대로 배제돼고 무시당해온 사람들입니다. 이른바 '없는 사람' 취급이죠. 그들의 주거는 그들의 존재 만큼 덧 없습니다. 번듯한 콘크리트 아파트, 신식 가옥의 그늘에, 아니 마을 외곽에, 야생과 문명의 중간에 위치한 이들의 가볍고 부유하는 살림집의 처지는 사실 지금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부자의 상징으로 떠오른 도곡동 타워팰리스 뒷편에는 주소도 없고, 전기와 상수도도 없는 마을이 아직도 있으니까요(주소는 얼마전 부여된 걸로 압니다. 이 마을 이야기는 노익상의 책에 나오지 않습니다). 지난 10년 간의 아파트 열풍은 우리의 시야에서 가난한 이들을 몰아내는 역할을 했죠. 21세기 새마을 운동, 뉴타운 개발열풍은 허름한 주거를 개선하는 게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쫓아내는 것에 불과합니다.

정치 분야에서는 어쩔 수 없이 두 책을 꼽아야 할 것 같습니다. 슬라보예 지젝의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김성호 옮김|창비|링크)와 로버트 달의 '정치적 평등에 관하여'(김순영 옮김|후마니타스|링크)가 두 주인공입니다. 공산주의의 재발명을 말하는 지젝과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신념을 바탕으로 '평등'에 대해 탐구하는 달의 저작은 민주주의를 더 넓게 바라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경제에서는 조지프 E. 스티글리츠의 '끝나지 않은 추락'(장경덕 옮김|21세기북스|링크)을 추천합니다.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 가지'(김희정ㆍ안세민 옮김|부키|링크)와 함께 읽으면 더 좋죠. 이에 대해선 제가 전에 썼던 글로 소개를 대신합니다(링크).

이번에 소개할 책은 어디류 분류해야 할지 약간 난감하긴 합니다.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한중 옮김|한겨레출판|링크)과 안수찬 등 한겨레21 취재팀의 '4천원 인생'(한겨레출판|링크)이 바로 그 책입니다. 시대와 장소는 다르지만 이 두 책이 모두 '탐사보도'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것, '가난과 빈곤'을 정면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함께 추천합니다. 몇년 전부터 지속된 빈곤과 가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제3세계와 아프리카 등 먼 길을 거쳐 한국에 도착한 느낌입니다. 김수현, 이현주, 손병돈이 함께 쓴 '한국의 가난'(한울아카데미|링크)은 보다 전문적인 저술이지만 함께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그렇다고 딱딱한 논문은 아닙니다).

제가 10대가 아니기에 지금 추천하려는 이 책이 10대의 삶을 온전히 담았는지 확신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또다른 주인공인 한 '어른'이 10대(20대까지 포함됐지만 그 성장이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10대인)들을 대하는 태도에 씁쓸히 동감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 책을 만화 분야에서 올 한해 한국을 대표하는 책으로 감히 꼽습니다. 이 책은 바로 최규석의 '울기엔 좀 애매한'(사계절출판사|링크)입니다.

과학 분야의 저술에선 새로운 변화가 감지됩니다. 여전히 강세를 보인건 종교와의 싸움에 나선 책들입니다. 하지만 올해 눈에 띄는건 최근 큰 인기를 끌었던 '끈이론'의 퇴조입니다. 심지어 끈이론은 물론이고 '최종이론'의 존재까지 부정하는 책도 나왔습니다. 이 분야에서도 좋은 책들이 많지만 역시 최고의 책으로는 로저 펜로즈의 '실체에 이르는 길'(박병철 옮김|승산|링크) 1, 2권을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막대한 분량은 물론 수학을 피해가지 않는 서술은 최근의 교양 물리학 서적이 빠뜨리고 있는게 무엇인지를 알려줍니다.

올해 초 아이폰에 설치한 앱이 있습니다. 'i Read it Now'라는 프로그램이죠(소개 링크). 이 프로그램으로 읽은 책은 물론 각 월별로 몇권을 읽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따져보니 꼭 회사일이 가장 바쁜 때 독서량이 크게 늘더군요. 제 독서생활이 교양의 증진보다는 스트레스 해소용이라는게 반증되는 듯 싶어 얼굴이 화끈 거렸습니다. 바쁠 때 책을 읽는게 나쁜 건 아니지만 정작 여유있게 탐구할 수 있는 시간에 독서를 안한게 아쉽더군요. 내년엔 더 많은 여가를 책과 함께 할 수 있기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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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2 10:09

한겨레의 과도한 민족주의 언론스크랩2010.05.12 10:09

어제(5월 12일) LG가 한화의 류현진에게 대기록을 헌납했다. 한 게임 17K. 종전 9이닝 최다 탈삼진은 16개로 최동원, 선동열, 이대진이 갖고 있던 기록이 깨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병규의 홈런 한 방으로 '완봉'은 면한 것. 그래도 9이닝 동안 124개의 공을 던지고, 17K를 잡은 류현진은 정말 괴물이다.

마침 오늘 한겨레에 '신의 선물 퍼펙트게임'이라는 김동훈 기자의 칼럼이 나란히 실렸다. 시의적절한 칼럼이다. 그런데 눈에 거슬리는 것.


김동훈 기자의 직선타구 신의 선물 '퍼펙트게임'(링크) 일부
1950년 6월 28일 일본 아오모리 시영야구장. … 후지모토 히데오(당시 32)는 … 선발 예정이던 다다 후쿠조의 복통으로 갑자기 마운드에 섰다. … 일본 프로야구 최초의 퍼펙트게임이 달성되는 순간이었다. 후지모토는 한국인이었다. 1918년 부산에서 태어나 3살 때 부모를 따라 일본 시모노세키로 이주한 이팔용이 그다.

내가 인용한 부분 중 마지막 두 문장. 칼럼의 논지를 따라가는데 아무런 필요도 없는 부분이다. 오히려 방해만 할 뿐. 그가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퍼펙트게임'은 실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신의 선물'이라는 기자의 논지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1918년에 태어난 그가 한국인? 18년이면 이미 조선 혹은 대한제국은 몰락했던 때 아닌가? 설사 동시 불붙고 있던 독립운동과 임시정부를 논한다 하더라도 해방 후 두 개의 국가로 나뉜 상태다. 그 두 국가 중 어느 하나의 국호를 그에게 붙일 수 있단 말인가?

과도한 민족주의일 뿐. 이런 글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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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풍청년 2013.02.20 17: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겨레는 조중동과 논고만 다를 뿐 사회적인 위치나 행동양식은 똑같습니다. 쉽게 말해 진보/민주계의 조중동인 것이죠. 80년대~90년대 중반 까지만 해도 진보적인 언론이었으나 새누리당을 보수, 다른 세력을 통칭해 진보라고 묶는 사회의 프레임을 그대로 흡수해 진보(온건보)쪽의 매체가 된 것입니다. 일용직 노동자 등 진보적인 보도를 하는 건 맞지만 진보정치세력이나 운동진영에 대한 보도를 할 때는 철저히 온건보수 정도의 입장을 견지합니다. 행동도 웃긴것이 김류미 글은 하루가 멀다하고 실어주면서 이산가족이나 통일 등 민감한 문제는 외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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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휩커|남산

한겨레 창간 20돌을 맞아 7월 4일부터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매그넘 코리아' 사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매그넘 사진가 20명이 지난 1년간 한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을 전시하고 있는 거죠.

브레송과 카파의 뒤를 잇는 사진가들이 찍은 한국은 어떨까? 이런 궁금증에 지난 토요일(12일) 예술의 전당으로 향했습니다.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전시회를 관람하고 있었죠. 전시는 작가전과 주제전으로 나뉘어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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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앨런 하비|제주도 우도

역광과 유리의 반사를 이용한 아뤼 그뤼에르, 무채색의 유화적 느낌이 강했던 게오르기 핀카소프의 사진들은 분명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안겨줬습니다. 멀리 보이는 남산을 콘크리트 구조물의 프레임으로 감싼 토마스 휩커의 사진도 남산을 새롭게 바라보게 해줬죠. 그 느낌은 아마도 서울을 하늘에서 바라본 느낌이었을 겁니다. 잿빛 콘크리트 덩이들에 둘러쌓인 작은 섬의 처량함 그것을 날카롭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임신한 한 여성이 바다와 등대를 배경으로 관광 표지판 옆에 서있는 데이비드 앨런 하비의 사진은 깊이 있는 유머를 머금고 있었습니다. 그 관광 표지판에 그려진(또는 찍혀있는) 잠수정의 둥근 창을 통해 바다를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아이의 모습은 마치 그녀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을 태아를 연상케 했죠. 불교에 대한 조예가 깊은 스티브 매커리가 찍은 스님의 모습은 선을 향한 정진의 길에 대한 남다른 울림을 전해주기도 했습니다.

특히 알렉스 웹이 삼성생명 본관 앞에서 찍은 사진은 이번 전시회 전체에서 가장 한국에 대한 이해가 깊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삼성생명 앞에서 인도와 삼성 사유지의 경계를 나누고 있는 철제 구조물 사이로 세 남성이 서로 엇갈려서 다른 방향을 향해 움직이거나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 세 남자를 건물에 걸린 거대한 간판에 그려진 '눈'이 바라보고 있죠. 점점 더 빅브러더의 모습이 되가고 있는 삼성의 모습을 이보다 더 잘 잡아내진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만날 그 앞을 지나다니면서 어떻게 하면 삼성의 본질을 담아낼 수 있을까 고민하지만 이런 사진이 가능하리라곤 생각지 못했었습니다. 제가 이번 전시회에서 거둔 가장 큰 수확이죠.

하지만 딱 거기까지. 아쉽게도 전시장 벽을 가득 채운 사진들 속에 한국은 관광객이 찍은 사진 이상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거장들답게 그들 특유의 시선과 노하우로 잡아낸 한국의 곳곳은 흥미롭긴 했습니다. 하지만 몇몇 사진클럽 아마츄어 사진가들의 잘 찍은 사진 이상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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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매커리|충남 보령

특히 리즈 사르파티가 한국의 골목들을 배경으로 찍은 여인들의 사진은 그가 과연 한국이라는 배경과 한국 여인이라는 대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찍었는가 의문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정도의 사진이라면 당장 인터넷만 봐도 무수히 많이 찾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스티브 매커리가 보령에서 촬영한 여성의 포트레이트는 사람을 더 불편하게 만듭니다. 아마도 그것은 유색인종, 원주민에 대한 내셔널지오그래픽적, 백인적 시각 때문인 것 같네요. 마틴 파의 사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인 관광객들의 '특이한 모습'만 담았을 뿐 그로부터 한국적인 것에 대한 어떤 '통찰'을 발견하긴 어려웠습니다.

아마도 그들이 한국을 이해하기엔 한국에서 보낸 시간이 너무 짧았던 듯 싶습니다. 거장이라 불리긴 하지만 겨우 몇 일에서 몇 주일을 한국에서 머물렀던 이들에게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무리일 듯도 싶습니다.

하지만 더 아쉽게 했던 건 전시의 구성과 사진의 위치, 조명의 밝기와 위치 때문입니다. 작가전의 경우엔 그런대로 봐줄만 했습니다. 물론 강한 조명으로 인해 사진이 들어있는 유리 액자에 빛이 반사대곤 해서 거슬리긴 했지만요. 특히 주제전으로 가면서는 (부족한 공간 탓도 있겠지만) 적게는 수 장에서 많게는 수 십장의 작은 사진들을 여백도 없이 붙여놔 사진을 파악하기 힘들게 전시해놓았습니다. 또 맨 위에 전시된 사진은 조명을 바로 받아 거의 어떤 사진인지 파악하기 힘들었고, 아래쪽은 사진을 너무 낮게까지 걸어놔서 주저앉지 않고서는 제대로 보기 힘들었습니다. 주제의 구성도 그렇습니다. 특히 '사랑과 결혼'이란 주제들로 묶인 사진들은 절반 정도가 드레스 카페에 놀러온 여성들의 사진들로 채워졌더군요. 그들이 레즈비언 커플이었다면 제가 잘못 판단한 것일 수 있겠지만, 그 사진들이 결코 '사랑'에 관한 사진들로는 안보이더군요. '우정'도 '사랑'에 포함된다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요. 도대체 큐레이터는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전시를 해놨는지 모르겠네요.

이래저래 아쉬운 점이 많은 사진전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분명 매그넘의 사진가들이 한국을 담을 일이 그리 자주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한국에 대한 외국인들의 이해는 아직 그 수준이 많이 낮죠. 거장들로부터 시작해서 한국을 그 안에서 바라볼 기회를, 그리고 우리에겐 타인의 시선으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줬다는 점에서 한겨레의 이번 사진전은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겁니다. 전시는 8월 24일까지 열립니다. 불평을 많이 늘어놓긴 했어도 충분히 좋은 사진전이니 많은 분들이 가서 직접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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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이현의 서재. 사진=한겨레

어릴 때부터 서재를 갖는 게 꿈이었죠. 책이 많은 집에 가면 무척 부러웠어요. 금성사에서 나왔던 세계 위인전이라 던가 세계문학전집이라던가 심지어 만화책 보물섬까지 제 부모님은 어려웠던 가계 사정에도 책에 대한 투자만은 아끼지 않으셨죠. 그 영향 때문인지 '책 읽기'보다는 '책 모으기'에 흠뻑 빠졌었죠.

읽지 않지만 왠지 있어 보이는 책으로 지적 허영심을 때우는 건전한 습관은 이때부터 길들기 시작해 도무지 서문 끝까지도 독파가 요원한 푸코와 알튀세르와 <이론>지 따위로 책장을 채우던 대학시절 정점에 이르렀다. 저서 한 줄 안 읽었어도 들뢰즈를 만나면 선뜻 악수라도 요청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친근감을 불러 넣어준 <키노>를 책장에 차곡차곡 채워 넣는 것도 큰 재미였다.

하지만 가난한 학생의 주머니  사정에 만족할 만큼 책을 사진 못했죠. 학생 때는 본의 아니게 도서관에 많이 있었죠. 그리고 지금에 와서 고백하자면 서점에서 몰래 들고 나온 책들도 꽤나 됐었어요. 뭐 정당하지 못한 행위로 얻은 책이라서 그런지 그 책들은 지금은 모두 어딘가로 사라졌더군요. 그때에 대한 반성 때문인지 제가 취업을 하고 경제적으로 자립이 가능해지면서는 단 한 줄을 읽기 위해서라도 책을 사게 됐죠.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기억 때문일까요. 몇 번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사기도 했지만 전 여전히 오프라인 서점을 애용해요.

[소설가 정이현씨는] 배송을 기다리는 게 싫어 꼭 오프라인 서점에 가서 책 구경을 하고 표지를 열어 보고 대여섯 권씩 무겁게 들고 오는 과정과 읽기까지를 다 좋아하지만 책을 소유하고 싶은 욕구는 별로 없다.

물론 전 '소유' 자체를 굉장히 소중히 여기는 편이라 읽지 않는 책도 한무더기씩 쌓아놓곤 해요. 그나마 전 제가 책을 많이 읽고 많이 산다고 생각했어요. 출판사에 다니는 제 친구들과 선배들한테 제 덕에 먹고 산다고 큰소리도 치곤 했죠.

[영화평론가 이동진씨는] 특히나 책 수집에 대한 애정은 별나서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며 한 달에 100만원 가까운 돈을 책 사는 데 바쳐왔다. 30평 아파트는 모든 방과 거실, 베란다, 현관과 화장실 귀퉁이까지 살뜰하게 책장으로 꼭꼭 채웠다. 장식장과 책장 기능을 겸하는 보통 책장은 책과 칸막이 사이의 공간이 아까워 직접 사이즈를 맞춰 무려 8단짜리 책장을 짰다.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물론 연봉이 많은 직장에 다니신 분이긴 했지만 제가 같은 연봉을 받았어도 한 달에 100만원어치 책을 샀을까를 되물어보면 그렇다고 자신있게 말하진 못할 것 같네요.

책은 사는 것보다 읽는 게 중요하죠. 하지만 역시 실천에 옮기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부족한 '읽기'를 '수집'으로 대체하는 지금의 생활을 언제나 중단할 수 있을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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