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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ㆍ개혁세력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때때로 2009. 11. 23. 16:18

<2007년 3월 6일 DVDPrime '시사게시판'에 작성>

민주화 20년의 열망과 절망 : 진보ㆍ개혁의 위기를 말하다
경향신문 특별취재팀|후마니타스


진보ㆍ개혁세력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0. 최근 '진보논쟁'이 언론과 각종 게시판을 후끈 달아오르게 하고 있습니다. 최장집 교수의 한겨레 신문 인터뷰가 계기가 됐긴 했지만 그 본격적인 서막을 알린 것은 경향신문에서 2006년 9월 14일부터 12월 26일까지 연재된 '진보개혁의 위기-길 잃은 한국' 연재 기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연재기사가 최근 후마니타스(최장집 교수의 여러 저서를 펴낸 출판사)에서 묶여져 나왔습니다.

1. 학계와 좌파 내에서 노무현 정권의 성격에 대한 논쟁은 정권의 출범과 함께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처음에는 환경 문제들로부터 문제가 불거져 나왔습니다. 뒤를 이어 노동ㆍ평화ㆍ대미관계에서 비판적 입장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죠. 이 논의들이 의미가 없진 않았지만 여전히 학술적이거나 운동권 특유의 추상적 언어로 보통 사람들이 이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죠.(물론 좌파 학계에 대한 언론의 무관심도 한 몫 했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논쟁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의미가 없진 않지만 여전히 지나치게 높은 추상 수준에서 진행되던가 인상 비평이 주도하고 있죠.

오늘 소개하는 이 책은 저널리스트들이 주도해서 기획하고 쓴 글들로 그 간의 추상적 논의를 한 번에 날려버릴 정도로 충실한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학술적으로 엄밀한 이론 체계를 가지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언론 특유의 구체적 접근은 진보의 문제에 대해 매우 생생한 언어로 읽혀지게 합니다. 인터뷰를 통해 현실을 다양한 보통 사람들의 목소리로 드러낸 글은 매우 어려운 내용들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우리 자신의 문제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2. 이 책은 좌파와 '민주세력'에게 그 칼을 향하고 있습니다. 흔히 얘기되는 진보ㆍ개혁 세력에게 말입니다. 그 첫 대상은 당연히도 노무현 정부입니다. 최근의 논쟁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연재 중 청와대의 정면 반박(12월 6일자에 대한 반박)이 있었고 그에 경향신문 정치부는 지면의 한 면을 통째로 재반박에 할애했습니다.(12월 7일자 5면)

비판의 대상은 좌파 내부로도 향하고 그 비판은 더욱 뼈아프게 다가오곤 합니다. 민주노총, 전교조, 민주노동당, 시민단체에 대한 비판들은 눈을 감아버리고 싶게까지도 합니다.

이 책이 한나라당과 우파들을 비판하지 않는다고 뭐라 할 것은 없어 보입니다. 이 책은 이 사회의 진보와 발전은 진보ㆍ개혁세력의 임무라고 봅니다. 최근 보수 세력의 부활에 대한 장도 있지만 주된 서술 목표는 이른바 젊은 층의 '보수화'와 사회적으로 보수 이데올로기가 생산되고 유통되는 과정의 해명에 있습니다.

3. 이 책의 가장 빛나는 부분이자 아쉬운 부분은 '진보의 10대 의제'를 제시한 4부에 있습니다. 조세 개혁, 부동산, 교육 정상화, 재벌 개혁, 고령화ㆍ저출산, 소외된 소수(이주노동자와 장애인), 건강 불평등, 생태주의, 빈곤 문제 해소, 비정규직 10가지의 현실을 구체적 자료와 목소리로 제시합니다. 물론 명확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 의제들에 대한 좌파와 진보의 구체적 접근이 부족했던 현실(특히 조세와 고령화, 저출산, 부동산 문제)에 비추어 봤을 때 말 그대로 과제의 제출이라는 측면에서 훌륭합니다. 그 간극을 체우는 것은 진보세력의 임무가 될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진보 세력에게 희망은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겠지요.

아쉬운 것은 평화와 대미ㆍ대북관계에 대한 의제가 제출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한국은 더 이상 동방의 이름 없는 소국이 아닙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입니다. 또한 이라크에는 미국ㆍ영국에 이어 세번째 규모의 군대를 파병해 놓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도 우리 군대가 가 있죠. 레바논에도 곧 파병될 예정입니다. 세계의 주요 분쟁 지역에 우리 군대가 개입하고 있는 현실은 우리가 국제 분쟁에서 제 3자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바로 몇일 전에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우리 젊은이가 목숨을 달리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크게 보도가 되진 않았지만 미군 소속의 한국계 군인의 사망도 두 건이나 있었죠. 아프가니스탄ㆍ이라크 침략의 명분이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단지 미국의 패권적 군사전략의 산물인 것이죠. 이 전쟁에 주요 동맹국으로 한국이 참여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대미ㆍ대북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에 대해선 부연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문에 연재된 기사를 엮은 것이기에 증보판이 나올지 의문이긴 하지만 이후 증보된다고 한다면 이 부분에 대한 보충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4. 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 중에 하나는 진보가 무능하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런가? 저는 절반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전 기사화가 됐었지만 한나라당 보좌관 중 민주노동당 당원이 다수 있었습니다. 보도 전에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던 사실이었고요. 한나라당 의원은 유능하기에 고용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진정한 무능은 다양한 대안과 프로그램들을 현실화 시킬 수 있는 힘을 못 만들어낸다는 것이겠지요. 이 책에서는 그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족해 보입니다. 노무현이 진보입장에서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기존 체제의 헤게모니에 효과적으로 저항하지 못한데 있었죠.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이 주목받는 것은 그들이 똑똑하거나 훌륭한 프로그램, 대안을 제시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안다는데 있는 것이죠.

5. 이 책은 '진보논쟁'을 대중에게 가깝게 다가가게 할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대안을 제시하고 현실화 시킬 방법을 만들어내는 임무는 진보 세력에게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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