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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7. 8. 13:40

시리자, 트로이카, 역설들 쟁점/15 OccupyWorld2015. 7. 8. 13:40


시리자, 트로이카, 역설들
Michael Roberts Blogㆍ2015년 6월 28일링크

시리자 정부가 ①긴축정책을 역전시키며 ②유로존에 남아 ③권력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삼각형'이다(로버츠 '시리자, 경제학자들, 불가능한 삼각형'ㆍ링크). 트로이카는 이 삼각형을 깨뜨릴 작정이다. 그리스 정부가 (불황 중에 정부 예산을 흑자로 운영하며) 모든 긴축 프로그램과 (노동권을 끝장내고 서비스와 금융 분야 규제를 완화하며 국가 자산을 사유화 하는) '구조조정'을 수행하는 것이 트로이카가 원하는 바다. 이전 사마라 정부는 이 같은 '조건들'을 대가로 긴급 구제금융을 받았다. 시리자가 이 조건들을 바꾸길 원하자, 트로이카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실제로 더 가혹한 정책들을 시리자 정부에 내걸었다.

이는 긴급구제가 연장된 다섯 달 동안 그리스 경제와 정부 수입이 더 악화돼 왔다는 데 어느 정도 원인이 있다. 여기에 또 국가재정의 긴축과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반대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시리자 정부의 실각을 트로이카가 원해서이기도 하다.
[시리자의] 이러한 태도가 다른 국가들을 '고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혹독한 이 조치들의 적용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했던 것은 (자신의 돈을 되돌려 받길 원하는) IMF를 포함해 독일 재무 장관인 쇼블레, 그리스보다 더 가난한 유로존의 작은 국가들, 그리고 자신의 유권자들에게 혹독한 긴축을 강요해 현재 자신의 국가 에서 반-긴축 운동에 직면한 포르투갈ㆍ아일랜드ㆍ스페인의 보수당 정권이다
[포르투갈 사회민주당 정부는 지난해 5월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종료한 후에도 긴축 정책을 고집하고 있어 대중적 저항에 직면했다. 사회민주당은 이름과 달리 우파 정당이다. 위키피디아에는 중도우파로 분류돼 있다. 아일랜드의 민족당ㆍFine Gael 정부는 2011년 집권한 이래 긴축정책을 펼치고 있다. 최저임금과 실업기금 등이 삭감됐고 부가세는 올랐다. 해고는 더 자유로워졌고 임금은 하락했다. 아일랜드 인민은 2014년부터 다시 정부의 긴축에 항의하는 투쟁에 나서고 있다. 포르투갈ㆍ이탈리아ㆍ그리스와 함께 유럽의 문제아로 치부되는 스페인에서도 2011년 이후 인민의 저항이 분출하고 있다. 스페인의 분노한 사람들ㆍIndignados 운동은 미국의 점령하라 운동, 아랍의 봄과 함께 2011년을 뜨겁게 달궜다. 최근 선거에서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는 포데모스는 시리자에 비견된다]. 이 모든 세력들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유럽 의회의 어떤 타협적 세력보다 더 크다.

이 고통스러운 협상과정은 그리스 인민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어떤 채무불이행도 없이 IMF와 ECB가 빌려준 돈을 돌려받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는 잔혹한 역설을 기억해야 한다. 지난 5년간 트로이카가 빌려준 돈의 90% 이상은 그리스 경제를 스쳐 지나가지도 않은 채 그리스 정부의 채권자들에게 다시 빨려 들어갔다
(로버츠 '그리스:제3세계 원조와 부채'ㆍ링크). 그리스 정부 채권을 예측 매수했다가 2012년 아주 약간을 '탕감'해준 후 상환받았던 이 채권자들은 주로 프랑스ㆍ독일의 은행과 헤지펀드들이다. 그 후 유로존과 IMF는 그리스 연금 기금에 부채를 책임지워 그 적립금을 빼앗아갔다.

시리자 정부는 그 자신이 원래 약속했던 모든 것들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왔다. 부채 탕감, 그리고 채무 절반의 삭감, 긴축 정책의 역전, 사유화 반대 등으로부터 말이다. 결국 시리자 정부는 협상을 위해 연간 3만3000달러 이상의 소득에 (즉 소득계층 순위에서 부자로 여겨지는 개인들에게-3만3000달러라는 기준선을 '부자'로 여기기엔 너무 낮다고 비꼬는 듯하다ㆍ옮긴이) 대한 세금 인상을 제안했다. 기본적인 음식과 서비스들의 부가가치세는 23%로 올렸다.
[그러나] 그리스의 관광산업에서 매우 중요한 섬들에 대한 특별 부가가치세율은 없앴다. 2016년을 시작으로 조기 퇴직 연령은 올리기로 했고 2018년부터는 저소득 연금 수당도 서서히 줄여나가기로 했다.

그러나 (IMF 수장과 독일 재무장관인) 크리스틴 라가르드와 볼프강 쇼블레의 2인조는 6월 25일 저소득 연금 수당을 2017년 완전히 끝내라고 요구했다. 국가 연금 체계를 전면적으로 뜯어고치게 될 이 제안을 그리스 정부가 받아들이게 되면 오늘날 한 달에 500유로(560달러)의 연금을 받는 - 그리스 연금 수급자의 절반 가까이가 공식 빈곤선 이하의 연금을 받는다 - 사람은 거의 200유로(223달러)를 덜 받게 될 것이다. 이는 치프라스와 시리자 지도자들에겐 너무한 것이다.

왜 그런지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언론 보도에서 그리스인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리스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테살로니키의 언론들로부터 모은 반응들을 살펴보겠다.

좌판에서 10유로짜리 청바지와 6유로짜리 셔츠, 저렴한 여름 드레스들을 늘어놓고 판매하는 54세의 미하일리스 나스토스는 실업률과 세금이 크게 오른 위기의 몇 년간 수입이 50% 이상 줄어드는 것을 지켜봐 왔다. 나스토스는 부가세 인상 제안이 가장 두렵다고 말한다. 간접세인 매출세는 가격 상승을 압박하고 모든 구매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들 대다수는 이미 이전의 세금 인상 효과에 힘겨워 하고 있다. "당연히 이미 꽤 높은 이 부가가치세는 연쇄적인 반응을 일으킬 것입니다. 작은 변화조차 사람들에게 확실히 영향을 미칩니다. 빵값이 오를 것입니다. 이건 매우 중요해요. 왜냐면 그리스 사람들은 여전히 많은 빵을 먹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깨빵 가격이 50센트에서 70센트로 올랐죠. 이건 정말 충격적인 일이에요. 포장비도 오를 거예요. 에너지, 파스타와 같은 기초재료 등도요. 소득이 적은 사람들은 감당할 수 없을 거예요.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되겠죠."

50세 때 퇴직한 84세의 전직 경찰관 미할리스 하지-아타나시아디스는 그의 연금이 한 달 1600유로에서 1000유로로 쪼그라들었고 가외 수입도 끊겼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사인 52세의 딸의 월급에 비하면 그의 연금은 여전히 높다. 그녀는 자신의 형제 부부처럼 부모 집에 함께 기거하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다. 하지-아타나시아디스는 "사람들은 굶주리고 있어요. 다섯 달 동안 나아진 건 하나도 없어요. 모든 곳에서 경기는 가라앉아 있어요.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았죠. 소득은 줄어는 데 구입 해야할 모든 것들의 세금은 더 높아졌죠"라고 말했다.

시장 근처에서 만난 50세 즈음의 한 여인은 자신의 주 수입을 암시장에서 발칸 담배를 파는 데서 얻는다고 말한다. 그녀는 전에 보통 5~6갑씩 사던 고객들이 어떻게 해서 현재는 한 갑 혹은 두 갑 밖에 구입하게 됐는지 설명해줬다. 그녀는 "삶이 끝장난 것 같아요"라며 "우리는 간신히 목숨줄을 이어나갈 뿐이에요"라고 토로했다. 점원으로 일하다 불황으로 직업을 잃은 그녀의 다 큰 자식 또한 그녀와 함께 살고 있다. 그녀는 "그들, 부자들 모두는 자신의 돈을 나라 밖으로 빼돌린 후 약자들만 남겨둔 채 도망쳐버린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GDP의 180%에 달하며 계속 늘고 있는 3000억 유로의 빚을 그리스 정부가 절대 되갚을 수 없다는 것을 IMF가 알고 있다는 게 그 다음 역설이다. 그리스는 더 많은 긴축에 동의하는 대가로 '부채 탕감'을 요구했다. 그리고 장기적인 계획을 요청했다. 트로이카는 이를 거절했다. 그들은 부채 탕감에 대한 고려를 거부하고 단지 다섯 달 동안 찔끔찔끔 제공되는, 따라서 그리스가 계속 침체와 빈곤에 시달리게 할 '긴급 구제' 자금만 제안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국민투표 제안에 이르렀다. 그리스 국민들은 트로이카가 내세운 복잡한 제안들에 대한 투표를 앞뒀다. 주어진 질문은 그들이 트로이카의 정책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닌가이다. 만약 받아들이겠다는 결과가 나온다면 아마도 시리자 정부는 브뤼셀로 되돌아가 어떤 제안이라도 그들은 수락하겠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스 국민들이 못 받아들이겠다고 답한다면, 정부 부채를 갚기 위한 더 이상의 지원이 멈추고, 수십 억
[유로]에 달하는 예금자들의 현금 인출 수요 증가에 직면한 그리스 은행들에 현재 자금을 대고 있는 유럽중앙은행과의 신용거래가 중단될 것이라는 전망을 그리스 국민들은 현실로 대할 것이다.



정부는 자금 이탈을 막기 위해 자본 통제를 도입해야만 할 것이다. 또 아마도 정부 공무원들과 연금 수급자들에게 지급하기 위한 차용증을 발행해야만 할 것이다. '실제' 유로화가 부족해지면서 이 '유로 차용증'들은 빠르게 가치를 잃어갈 것이다.

여기에 또 두 가지 역설이 있다. 우선 그리스 국민들이 트로이카의 정책들을 받아들이겠다고 투표한다고 해도 더 이상 동의할 그 어떤 정책들도 없다. 현재 긴급 구제 프로그램은 6월 30일 종료된다. 그 후 완전히 새로운 정책들을 두고 협상을 해야만 하고 트로이카는 시리자와 협상은 못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시리자가 권력을 잃어 말 잘 듣는 정부와 협상할 수 있길 바라고 있다.

둘째 그리스 국민들이 못 받아들이겠다고 투표하고 ECB에 의해 유로 신용거래가 중단됐을 때, 그리고 그리스가 자신의 모든 부채에 대해 채무 불이행을 선언했을 때에도 그들로부터 유로존 회원국 자격을 박탈할 실질적인 절차가 없다는 것이다. 규칙에 따르면 회원국이 탈퇴를 요청해야만 한다. 내쫓는 것은 불가능하다. 메르켈, 올랑드, 유로존 지도자들에게 이는 분명코 유례 없는 혼란이다.

그리스의 친트로이카 정당들은 치프라스가 국민투표를 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데 이용한다고 비판한다. 그가 유권자들 뒤에 숨으려 한다는 것이다. 여기엔 일말의 진실이 있다. 그렇지만 이는 완전한 진실은 아니다. 왜냐면 시리자는 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지라고 호소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해서 얻는 것은 무엇일까? 분명 정부는 이 고통스럽고 엉망진창인 상태를 중단시켜야만 한다. 그 '끔찍한' 트로이카의 빚을 승인하길 거부해야만 한다. 자본 통제를 도입해야만 한다. 따라서 그리스 은행들을 국유화해야만 한다. 경제 수장들이 지닌 지휘권 또한 노동자 통제 아래로 가져와야 한다. 그리스 국민들은 이 경제 위기의 반환점을 돌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 국민들이 이를 홀로 수행할 수는 없다. 경제 정책과 투자에서 자본가들이 향유하는 권력을 깨뜨리기 위한 유럽 노동자들의 연대가 필요하다.

나는 다른 글에서 그리스 경제상황을 분석할 것이다. 이와 함께 유럽을 위한 계획 내에서 이 경제상황의 개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다룰 것이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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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는 올해 출간될 '2008년의 대붕괴'의 초안으로 2014년 발표한 글[링크]에서 마르크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을 비판적으로 논했다. 이에 대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앤드루 클라이먼이 반박에 나서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아래는 앤드루 클라이먼의 첫 번째 하비 비판이다.

※ 'crisis'는 '위기'로 통일했습니다. 1847년과 1858년 공황과 관련해 마르크스의 용어를 검토하는 부분에서만 '공황'이라고 썼습니다. 인용 중 국역본이 있는 것은 이를 활용했습니다. 대괄호[ ]는 이해의 편의를 위해 추가한 것입니다. 잘못 옮긴 부분에 대한 지적을 기다립니다. 댓글로 달거나 메일(go24601@gmail.com)로 보내주십시오.

※ 6월 14일 수정. 김공회 선생의 꼼꼼한 충고를 반영해 수정했습니다. 단, 잘못 옮긴 것의 책임은 전적으로 제게 있습니다.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하비와 마르크스의 대결
1편: 마르크스를 오해하기

앤드루 클라이먼ㆍ2015년 3월 10일ㆍ링크
칼 마르크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은 대침체(the Great Recession)를 설명하고 미래의 중대한 경제위기들에 어떻게 대비할지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로 잘 알려진 데이비드 하비는 최근 발표한 논문(하비 2014ㆍ링크)에서 칼 마르크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LTFRP)의 ▲마르크스 자본주의 경제위기 이론 내 지위와 ▲대침체 그리고 지속되는 침체 여파와의 관련성을 격렬히 비판했다. 법칙은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 절약형 기술 진보로 인해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기술 혁신은 생산비용을 떨어뜨리면서 생산물 가격 상승을 저지하는 경향을 띠며, 이는 기업이 자신의 생산물 생산에 투자한 자본의 크기 만큼 이윤을 빠르게 증가시키는 걸 어렵게 한다.

이 과정이 대침체의 근본원인 중 하나인지 아닌지는 매우 큰 정치적 중요성을 지닌 문제다. 쟁점은 자본주의 작동방식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한 정책들-국가가 통제하는 자본주의로 신자유주의를 대체하고, 금융을 규제하고, 불평등을 줄이고 금융보다 생산에 더 친화적인 정책들 등-이 미래의 중대한 경제위기들을 막는 데 성공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LTFRP에 뿌리를 둔 위기 이론은 그와 같은 정책들이 궁극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고 암시한다. 왜냐면 그 정책들은 이윤 극대화를 위한 충동, 기술 진보와 수익성 하락 사이의 관계와 같은 자본주의의 모든 형태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거의 그대로 남겨두기 때문이다.

하비의 주된 불만은 LTFRP와 위기 이론이 일원인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상쇄 요인들에 더해 위기의 다른 원인들을 무시하고, 이 이론의 현 지지자들에 의해 '다른 가능성에 대한 의견을 배제'하는 전형적인 방식으로 제시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주장은 단지 허수아비 때리기일 뿐이라고 논할 것이다.

진정한 쟁점은 누군가가 일원인론을 옹호해왔다는 게 아니라 우리가 부재원인론
[앤드루 클라이먼은 'apousa-casual theory'라고 적고 있다. 'apousa'는 그리스어 'απουσα'의 알파벳 표기로 'absent'를 뜻한다. 하비가 이 단어를 사용했는지는 확인 못했다]이라고 불러야 할, LTFRP가 그 어떤 역할도 하지 않는 이론을 하비가 적극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도 어떤 의견을 배제하려 하는 사람 중 하나인 것이다. 자본주의의 '모순된 힘들의 소용돌이'와 '복합적인 모순과 위기 경향'에 대한 그의 강조에 비추어 보면 그가 그 어떤 것도 배제하지 않은 위기의 모든 잠재적 원인을 우리가 고려해야 한다고 충고하려는 것이라고 예상될 것이다. 그러나 하비는 위기의 다른 잠재적 원인을 LTFRP와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게 아니다. 그는 그 이론과 이에 기반한 위기 이론을 역사의 쓰레기통에 처박으려 단단히 결심한 것 같다. 그는 LTFRP가 진정한 법칙인지, 마르크스가 마침내 그 이론에 정말로 동의했는지, 이윤율이 하락한다는 타당한 증거가 있는지, 하락하는 경향을 언급하는 이 법칙 때문에 이윤율이 하락하는 것인지 의문을 던지는 데 논문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나는 이 모든 것에도 대답할 것이다.

하비 논문의 두 가지 다른 측면 또한 논할 것이다.

1. 하비는 1980년대 시작된 노동인구의 세계적 성장은 LTFRP가 작동되지 않음을 시사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 주장이 법칙에 대한 초보적인 오해에 기반해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2. 마르크스가 "만약 임금이 너무 낮으면 유효수요의 부족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 논했다고 하비는 주장한다. 나는 이것이 마르크스의 글에 대한 그의 최근 해석(하비 2012)과 모순됨을 보여주고 그의 앞선 입장이 옳음을 논할 것이다.

LTFRP에 대한 그의 태도는 나를 놀라게 하지도 않았고 특별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마르크스의 법칙에 기반한 위기 이론이 "마르크스주의자들 내에서 헛된 우상의 지위를 점하고 있다"고 썼고 사실 이보다 더한 모욕은 없다. 정치 영역에서 만큼 학계에서도 다른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좌파들은 소위 이론에서의 교조조의와 그 지지자들을 자주 격렬히 비난해 왔다. 그들은 또한 연구에서 그 이론을 배제하려 해왔다. 예를 들면 M. C. 하워드와 J. E. 킹 교수는 자신들의 책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역사(A History of Marxian Economics, 1992, ⅹⅲ)'에 LTFRP는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의 학문적 신뢰도에 큰 상처를 줘 왔다"고 적고 있고 크샤마 사완트의 조직 '노동자 인터내셔널을 위한 위원회[Committee for a Workers' InternationalㆍCWIㆍ영국에 시작된 트로츠키주의 조직. 영국 노동당 내 밀리턴트 경향에서 발원했으며 현재 세계 45개 나라에 조직을 두고 있다]'는 최근 '교조주의자' 두 명의 회원 자격을 정지시켰다. 연구에서 가능한 설명을 배제하려는 노력이 교조주의에 대한 반대로 표현되고 이런 편견이 그토록 자주 받아들여지는 게 특히 불쾌하다.

노동인구에 관한 데이터

하비는 고용이 현저히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세계 노동인구는 1980년에서 2005년 사이 11억 명이 증가했다-를 끌어들여 이를 세계적으로 이윤율이 하락하고 있다는 생각을 부정하는 증거로 사용하려 한다. 그는 이 주제에 천 단어 이상을 사용한 끝에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현 자본주의가 겪는 곤경들을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의 결과로 보는 사람들은 이러한 노동 참여의 증거로 인해 심각한 오류에 빠졌다는 판정받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잉여가치 생산과 추출이 압박받는 것이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증가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데이터는 확실히 잉여가치 또는 이윤이 - 절대적으로 - 크게 증가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여기서 쟁점은 이윤, 투자된 자본량에 대한 잉여가치 또는 이윤의 비율에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이다. 비율[분수]에서 분자의 증가는 비율 전체가 증가한다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이윤율에서 분모, 투자된 자본의 비율 증가가 분자의 비율 증가보다 훨씬 크다면 이윤율은 떨어진다. 분모가 더 큰 비율로 증가하지 않았음을 하비가 보여주지도 암시하지도 못한, 그가 끌어모은 통계는 이윤율이 증가했다는 증거가 아니다.

그럼에도 하비는 - 투자된 자본의 그 어떤 증가도 무시한 채 - 고용의 증가는 그 자체로 마르크스의 LTFRP가 1980년대 초부터는 작동하지 않아 왔다는 강력한 증거라고 주장한다. "만약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는 일반 이론이 옳다면 노동 절약형 기술 변화의 확산은 … 자본에 고용된 임금노동자 수가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는 뜻이 될 것이다. 이는 마르크스가 기꺼이 인정했던 바이기도 하다."

이게 바로 틀렸다. LTFRP가 고용 감소를 의미한다고 마르크스가 "기꺼이 인정했다"는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하비가 끌어온 구절은 실제로는 노동절약형 기술 변화('생산성 향상')가 "주어진 자본에 의해 고용되는 노동력의 양을 감소시키는 경향을 가진다"고 말한다(자본론 3권, 280쪽, 강조는 글쓴이). 예를 들어 만약 투자된 자본이 원래 100만 달러이고 노동자 10명을 고용했고 이후엔 400만 달러를 투자해 노동자 20명을 고용했다면 '주어진 자본에' 고용된 노동자 수는, 이를테면 100만 달러 당 10명에서 5명으로 감소했다. 즉 이는 하비가 설명하듯 고용 규모의 절대적 감소를 뜻하는 게 아니다. 절대적인 고용 규모는 10명에서 20명으로 두 배가 됐다.

게다가 마르크스가 LTFRP를 제시하는 앞 부분의 확장된 논의에서 그는 하비가 말한 "기꺼이 인정했다"는 것을 명백하게 거부하고 있다.

이윤율의 점진적 저하의 법칙은 … 사회적 자본에 의해 운동되고 착취되는 노동의 절대량, 그리고 또 사회적 자본에 의해 취득되는 잉여노동의 절대량이 증가하는 것을 결코 배제하지 않으며 …

이윤율의 저하는 총자본 중 가변적 구성분의 절대적 감소로부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 감소, 즉 불변적 구성부분에 대한 가변적 구성부분의 상대적 감소로부터 발생한다.

이윤의 절대량(그것의 총량)은, 이것과 총투하자본 사이의 비율의 비상한 감소에도 불구하고 50%나 증가한 것이다. 자본이 고용하는 노동자의 수, 즉 자본이 운동시키는 노동의 절대량, 그리고 또 자본이 흡수하는 잉여노동의 절대량, 즉 자본이 생산하는 잉여가치의 양, 이리하여 자본이 생산하는 이윤의 절대량은, 이윤율의 점진적인 저하에도 불구하고 증가할 수 있으며 그리고 점진적으로 증가한다. 이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바탕 위에서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일시적인 변동을 제외한다면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다.
-자본론 3권, 259~261쪽, 강조는 원문

요점을 좀 더 강조해 명확히 다시 말하자면 고용의 증가는 LTFRP에 반대되는 증거가 결코 아니다.

마르크스의 '분명한 동요와 양면성'

하비는 "그 법칙의 보편적 타당성에 관한" 자신의 "오랜 회의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마르크스가 자신의 발견을 법칙, 경향의 법칙 혹은 가끔 단지 경향이라고까지 부른다는 데서 그의 언어가 갈수록 동요하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고 썼다. 하비가 '경향'과 '법칙' 사이의 동요로 이해한 것은 사실 현실에서 일어난 일과 그것을 설명하는 것 사이의 불가피한 차이에서 비롯한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며 이 하락 경향을 설명하기 위해 법칙을 제안한다. [여기에] 동요는 어디에 있는가?[1]

마르크스는 LTFRP를 '법칙'으로 부르거나 '경향 법칙'이라고 부르는 것 사이에서 동요한 것도 아니다. 그는 모든 경제적 법칙을 경향의 법칙으로 여겼다. 예를 들면 그는 '자본론' 3권 10장에서 "우리는 이러한 일반적 잉여가치율을 모든 경제법칙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경향으로서 … 가정하고 있다."(자본론 3권, 207쪽)고 적었다. 핵심은 충분히 간단하다. 이윤율 같은 경제적 변수에서 모든 변동을 담아낼 법칙은 발견할 순 없다. 이러한 변동들이 순수하게 법칙을 따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모든 종류의 우연적 사건과 방해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우연적 사건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드러나는 변수들의 경향 법칙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여기에 하비는 마르크스가 LTFRP에 대해 양면적이었다는 자신의 믿음을 뒷받침하기 위해 추가적인 근거를 제시한다.
[그가 제시하는] 첫째는 "마르크스가 '프랑스 내전' 같은 그의 정치적 저작에서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에 대해 그 어떤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프랑스 내전'에서는 잉여노동이나 잉여가치와 같은 현상들도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하비는 이러한 부재를 잉여노동 또는 잉여가치의 존재에 대해 마르크스가 의심해왔다는 타당한 증거로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들의 일반적인 타당성에 대한 오래된 회의론"의 근거로 간주해야하는 것 아닐까?

더 나가 마르크스가 LTFRP에 대해 의구심을 표했다는 증거로 하비는 1848년과 1857년 공황들을 '상업과 금융 공황들(commercial and financial crises)'로 묘사하며 이윤율 하락에 관해서는 단지 지나가는 말로만 언급하는 마르크스의 분석을 지적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학자인 미하엘 크래티케는 비슷한 주장을 해왔다. 이는 경기후퇴와 불황을 위기(crises)라고 부르는 현재 통용되는 마르크스주의 학술용어에 익숙해진 이들에게 중요한 증거처럼 보일 수 있지만 용어의 사용법은 마르크스 시대 이후 크게 변해왔다. 그가 말한 경제위기들(economic crises)은 상업과 금융공황을 의미했다. 그는 경기변동의 연이은 국면들을 "중간 정도의 활황, 번영, 과잉생산, 공황, 불황" 또는 "평균수준의 호황ㆍ활황ㆍ공황ㆍ침체"(자본론 1권, 607쪽, 863쪽)로 묘사하며 이러한 위기들을 그것들이 초래한 경기하강과 구분한다.

게다가 마르크스는 이윤율 하락 경향을 상업 또는 금융위기들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간주하지도 않았다. 그는 이윤율의 감소는 간접적으로, 그리고 약간의 지체를 겪은 후 위기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이 경향은 과잉생산을 촉진한다(이를테면 생산적 투자수요의 침체를 통해). 또한 금융 투기와 사기도 조장한다. "이윤율이 저하하면 … 어떤 종류의 특별이윤이라도 얻기 위하여 새로운 생산방법, 새로운 투자 및 새로운 모험 등을 앞뒤 가리지 않고 시도하기 때문에 투기와 투기의 일반적 촉진이 나타난다." 오직 부채를 최종적으로 갚지 못할 때 위기-이 경우 금융위기-가 폭발하고 이 위기는 침체로 이어진다. "특정한 지불일이 붙어있는 지불의무의 연쇄는 여러 곳에서 끊어지는데, 이것은 자본과 함께 발전하여 온 신용제도의 동시적 붕괴에 의해 더욱 격화된다. 이 모든 것들이 격렬하고 첨예한 공황, 갑작스럽고 강력한 가치감소, 재생산과정의 현실적 정체와 교란, 따라서 또 재생산의 현실적 축소를 일으킨다."(자본론 3권, 289~291쪽, 310~311쪽, 305쪽)

마르크스가 상업과 금융 관계의 파국을 '위기'라는 단어를 사용해 표현하고, 그가 이윤율의 하락과 위기의 폭발 사이에 많은 중간매개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을 우리가 이해하면 그가 때론 이윤율의 하락 경향을 추상적으로만 다루며 위기들을 논한다는 게 놀랍거나 특별히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는 한 번에 모든 것을 다루려 하다가 혼란스러운 잡동사니를 만들어내기보다 한 번에 하나의 것을 다루기를 선호하는 오직 엄격하고 변증법적인 인물이었을 뿐이다.

또한 하비는 1868년 이후 "마르크스는 이윤율 하락 이론으로 결코 돌아가지 않았다"며 "마르크스가 일찌기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the Grundrises)'에서 '정치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법칙'이라고 강조했던 것을 그의 마지막 10여 년 간 연구에서 무시하는 선택을 내려야만 했던 것은 이상야릇하게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LTFRP를 '무시'했다는 추정에는 근거가 뒤따르지 않는다. 나는 이론적이거나 실증적인 문제를 만족스럽게 해결했을 때 더 이상 집요하게 그 문제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문제로] 관심을 옮긴다. 이는 내가 도달한 결론을 무시한다는 게 아니다. 주어진 대답을 받아들인 것이다. 마르크스도 비슷한 방식으로 작업했다는 증거가 내겐 있다. 하비는 어떤 식으로 작업하는가?

따라서 진정한 질문은 다른 문제로 나가기 전 마르크스가 이윤율이 하락하는 원인에 대한 자신의 해명에 만족했느냐는 것이다. 증거들엔 의심할 여지가 남아있지 않다. 미하엘 하인리히(그는 최근 하비와 비슷한 주장을 했다)에 대한 대답에서 나와 공저자는 "1865년부터 1877년 사이 마르크스의 편지들에서 그가 자신의 이론적 결론에 만족했으며 그가 출간한 첫째 권 뿐 아니라 출간하지 못한 채 남겨뒀던 다른 권들을 포함한 자본론을 이론적인 면에서 최종적인 결과물로 간주했다는 많은 증거"(클라이먼ㆍ프리먼ㆍ포츠ㆍ구세프ㆍ코니 2013)를 보여줬다. 하인리히는 이 증거에 답하지 않았고 하비는 이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피했다.

LTFRP가 정치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법칙이라는 마르크스의 관점은 초기에만 한 번 언급된 것도 아니고 이후 '무시'되지도 않았다. 그는 이를 1857~58년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뿐 아니라 1861~63년 원고에서도 단언했다. "정치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법칙인 이 법칙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에 따라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을 띤다는 것이다."(MECW Vol.33, 104쪽. 강조는 원문) 후에 마르크스는 3권을 쓸 때 LTFRP가 가장 중요한 법칙이라는 주장을 넘어선다. 그는 애덤 스미스 이후 모든 정치경제학은 이 법칙을 찾기 위해 움직여 왔을 만큼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법칙은 자본주의적 생산에 대하여 큰 중요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애덤 스미스 이래의 정치경제학 전체는 이 수수께끼의 해결을 둘러싸고 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자본론 3권, 255~256쪽)

신화적인 일원인론

또한 LTFRP 및 그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 위기이론은 일원인론이라는 그의 비난은 마르크스의 글에 대한 그의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한다. 마르크스의 법칙은 약간은 '엄격한' 가정에 기초한 '고도로 단순화된 모델'에서 유래했다고 하비는 주장한다. 그렇기에 현실에서 모든 가정이 꼭 들어맞을 때만 법칙은 유효하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들 때문에 법칙은 노동절약형 기술 변화 외에 수익성 하락의 모든 잠재적 원인들과 기술변화의 상쇄 효과로 인해 이윤율 하락을 저지할 수 있는 모든 요인들을 배제한다. 따라서 법칙은, 그리고 외부적 요인을 취사선택해 결합시키는 것 없이 그것을 채용한 어떤 위기 이론도 일원인론인 것이다.

물론 하비는 그 엄격한 가정을 마르크스의 글에서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1권에서 그의 가정을 꼼꼼하게 펼쳐내면서도 (3권의) 이윤율 하락 이론에 대해서는 그러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는 마르크스가 펼친 그 엄격한 가정을 어떻게 아는가?

그는 최소한 한 번은 명백히 틀렸다. 하비에 따르면 마르크스의 법칙은 모든 상품("노동력은 제외하고")이 구매되고 그 실제 가치, 이 가치와는 다른 가격이 아닌 가치 그대로 판매된다고 가정한다.
[2] 바로 이 경우가 틀렸다. 3권 3편의 주제가 그 법칙이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2편에서 이미 상품의 가치와 그것이 실제로 팔릴 때의 가격 사이에 큰 차이가 있겠지만 경제에서 산출물의 총 가격은 전체적으로 이 산출물의 총 가치와 같다(그리고 그에 따라 그 한계가 된다)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따라서 하나의 기업 또는 산업이 생산물의 가치를 넘어선 가격을 받을 때 이 이득은 순전히 다른 자본가들의 손실을 상쇄하는 대가가 된다. [손실을 입은] 이들의 생산물 가격은 그 가치보다 적다. 그리고 이로부터 첫째 총 이윤은 만들어진 총 잉여가치와 같다(그리고 그 한계가 된다)는 것, 둘째 가격과 가치 사이의 차이는 LTFRP와 관련해 경제 전반의 이윤율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결론이 이어진다.[3]

모든 상품이 그 가치대로 팔린다는 가정이 아니라 앞선 것과 같은 결론이 마르크스가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을 이끌어낸 기초적 조건이다(MECW Vol.33, 104쪽. 강조는 원문).

우리는 개별 자본의 이윤율이 투하자본 총량 대비 잉여가치의 비율과 다름을 살펴봤다. 그러나 자본가계급의 총 자본을 고려하면 평균적 이윤율은 이 총 자본에 계산되고 관련된 총 잉여가치 외에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도 … 보여줬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로부터 다시 한 번 다수 자본의 경쟁을 고려하지 않고도 자본이 [충분히] 발달된 것인 한 그 일반적 특성에서 직접적으로 일반적 법칙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견고한 기초를 갖게 된다. 정치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법칙인 이 법칙은 자본주의적 생산이 전개되면서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을 띤다는 것이다.

대개 하비는 마르크스의 법칙을 가능한 제한적인 해석에 따른 여러 한정적 추정들에 기댄 모델로 치부한다. 그는 3권 3편 전체가 아니라 마르크스가 법칙의 현상으로서 소위 "법칙 그 자체(das Gesetz als solches)"라고 부른 것을 다룬 부분들만 고려한다. 이는 그 법칙을 일원인론적이고 마르크스가 3편 뒷부분에서 논한 다른 현상ㆍ제도들과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게 한다. 법칙은 (내가 앞에서 논했 듯) 여러 상쇄 요인들 사이에서, 그리고 금융제도의 매개를 통해 작동하는 게 아니라 실제 세상의 그처럼 많은 요인들을 배제하고 무시한 상상속 조건에서만 오직 소환될 수 있는 딴 세상의 관념처럼 보인다.

하비는 마르크스가 그처럼 많은 "여러 제한적 (법칙의) 적용 가능성"을 "배제"했다고 말한다. 하비는 마르크스가 다른 현상과 제도들을 잇따라 분석에 도입했음을 알고 있지만, "법칙 그 자체"를 저지선 바깥으로 쳐냄으로써 그는 이런 사실을 LTFRP의 다원론적 성격의 증거로 인식하는 데 실패했다.
[그에겐] 추가적인 현상과 제도들의 도입은, 법칙이 자신을 드러내는 구체적 형태들 속에서 그 법칙을 묘사하는, 법칙의 변증법적 풍부화로 나타나기보다는, 법칙이 작동할 수 있기 위해 요구되는 조건들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암묵적인 시인으로 나타난다. 법칙은 온전히 남지 못한 것으로 비친다. [이제] 마르크스는 전과는 별개의 논의에, 즉 “법칙을 도출해낸 가정들이 제거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와 관련된 논의에 천착하고 있는 것처럼 나타난다. 그는 법칙의 지위에 의문을 나타내며 그의 "동요와 양면성"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우리에겐 전혀 다른 틀을 갖는 위기 이론이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그 어떤 내적 연관도 갖지 않는, 서로 너무 달라서 "어떤 일원인론으로 쑤셔넣는 것"이 불가능한 다수의 잠재적 설명 요인과 현상으로 가득찬 체계화되지 않은 하나의 공간이다.

그 글을 이런식으로 읽어선 안된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이런 부당한 독서는 적절한 해석 방법이 아니다.

일원인론이라는 딱지붙이기가 왜 잘못됐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정교한 방법론적 논의를 펼칠 필요는 없다.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보편적 중력법칙을, 바람과 같이 사과를 떨어뜨릴 수 있는 다른 요인 또는 공기 저항 같은 상쇄 요인을 언급하지 않은 채 내가 제안한다고 해서 이 다른 요인들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가정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내가 그것들을을 배제한, 그 대신 적용 가능성의 측면에서 엄격하게 제한적인 일원인론을 구성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중력법칙으로부터 뉴튼의 운동에 관한 제2법칙을 이끌어내 설명하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방정식에서 다른 요인들의 삽입을 삼간다고 해도 그런
[일원인론적인] 것은 아니다. 그런 다음 내가 공기 저항과 바람[에 대한 설명으로] 넘어간다고 해서 내가 내 양면성과 동요를 드러낸 것도 또는 보편적인 중력법칙이 오직 진공에서만 작용하고 실제 현실에선 작용하지 않는다고 시인한것도 아니다.[4]

마르크스의 법칙이 자본주의 동학의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고 지적한 점에서 하비는 옳다. 다시 말해 그것은 유일한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이윤율 궤적의 모든 일시적 변화를 해명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이는 그 법칙의 목적이 아니다. 그것의 목적은 '단지' 마르크스의 가치이론이, 그의 자본축적 이론과 결합하면,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는
[당시 경제학자들을 괴롭히던] 사실을 설명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비는 글의 대부분에서 오늘날 그가 비판하는 대상이 정확히 누구인지 매우 모호하다. 예를 들어 그는 LTFRP에 뿌리를 둔 위기 이론은 그 현대적인 지지자들 사이에서 "다른 가능성의 고려를 배제하는 식으로" "전형적으로 제시되"며, "많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은 "원인이 하나인 위기 이론"이 있다고 "주장하기를 좋아한다"고 단언한다. 이름을 언급하는 걸 삼갔다는 것 때문에 그의 비난에 답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 부분에서 그는 법칙의 "어떤 지지자들"이 "금융화는 2007~8년의 붕괴와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고 했을 뿐 아니라 "앤드루 클라이먼이 가장 단호하게 위기와 금융화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이를 단호하게 주장하지 않았다. 심지어 나는 내 선배들에 대해 존중을 표하기는 했어도 스스로 그것을 주장하지는 않았다.
[아니] 나는 정반대로 주장했다. "물론 금융위기가 불황을 촉발했고, 금융 부문의 특유한 현상들(과도한 레버리지, 위험한 모기지 대출 등)이 중요한 원인이었다."(클라이먼 2012, 24~25쪽)

내가 인용한 이 문장은 대침체의 근본적 원인으로 내 책의 첫 장에 나오는 것이다.
[5] 그 다음 장에선 "이윤율 저하를 최근의 경제위기와 침체에 연결하는 두 가지 중간매개 고리-낮은 수익성과 신용제도-에 집중한다".(클라이먼 2012, 40~41쪽) 그리고 3장은 2007~8년의 금융위기에 대한 다음과 같은 논의에 할애했다. ▲1990년대 닷컴 버블이 터진 이후 연방준비제도의 지나친 금융완화 정책 ▲모기지 대출의 자산 유동화 ▲서브프라임 대출 ▲주택 순자산 신용한도 대출 ▲증가하는 모기지론 주택담보대출비율 ▲대출자 레버리지 비율의 상승과 자금 수요의 감소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증가하는 가계대출 ▲닷컴과 주택가격 거품 부상의 심리학 ▲신용평가기관들의 비참할정도로 부정확한 전망 모델 ▲의회의 [금융위기] 초기 TARP(Troubled Assets Relief Programㆍ부실 자산 구제 프로그램) 거부 ▲미국으로 향한 해외로부터의 저축 유입. 이것이 금융화가 2007~8년 금융위기의 원인임을 부정[6]하는 혹은 일원인론적으로 접근하는 최선의 사례라면 나는 그의 다른 사례들을 [굳이]] 더 살펴보진 않을 것이다.

앤드루 클라이먼은 '자본주의 생산의 실패: 세계대침체의 원인'(정성진ㆍ하태규 옮김, 한울 2012), '마르크스 '자본론'의 복권: 모순이라는 신화에 대한 반박 Reclaiming Marx's 'Capital': A Refutation of the Myth of Inconsistency'(Lexington Books 2007)의 저자다. 페이스 대학(뉴욕)의 경제학 명예교수이며 '마르크스주의 휴머니스트 이니셔티브(the Marxist-Humanist Initiative)' 함께 정치적 활동을 하고 있다.


참고문헌
Harvey, David. 2012. History versus Theory: A Commentary on Marx's Method in Capital, Historical Materialism 20:2, 3-38.
_______. 2014. 'Crisis Theory and the Falling Rate of Profit'.
Howard, M. C. and J. E. King. 1992. A History of Marxian Economics: Volume II, 1929-1990. Princeton, NJ: Princeton Univ. Press.
Kliman, Andrew. 2007. Reclaiming Marx's 'Capital': A Refutation of the Myth of Inconsistency. Lanham, MD: Lexington Books.
_______. 2012. The Failure of Capitalist Production: Underlying Causes of the Great Recession. London: Pluto Books.('자본주의 생산의 실패: 세계대침체의 원인', 정성진ㆍ하태규 옮김, 한울 2012)
Kliman, Andrew, Alan Freeman, Nick Potts, Alexey Gusev, and Brendan Cooney. 2013. The Unmaking of Marx's Capital: Heinrichs Attempt to Eliminate Marxs Crisis Theory’.
Kliman, Andrew and Shannon D. Williams. 2014. Why 'Financialisation' Hasn't Depressed US Productive Investment, Cambridge Journal of Economics. Print version forthcoming.
Marx, Karl. 1990. Capital: A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Vol.Ⅰ. London: Penguin.('자본론: 정치경제학 비판 제1권 자본의 생산과정',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2004)
_______. 1991a. Capital: A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Vol.Ⅲ. London: Penguin.('자본론: 정치경제학 비판 제3권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 과정',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2008)
_______. 1991b. Karl Marx, Frederick Engels: Collected Works, Vol.33. New York: International Publishers.

주석
[1] 법칙의 함수에 대한 논의와, 이와 관련한 '법칙'의 의미에 대해서는 클라이먼ㆍ프리먼ㆍ포츠ㆍ구세프ㆍ코니(2013)을 보라.
[2] 그는 "(노동력을 제외한) 모든 상품은 그 가치대로 교환된다"는 자본론 1권과 2권 곳곳에서 중시한 가정이 3권에서도 유지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제의 그 가정은 노동력을 배제하지 않는다. 노동력 역시 그것의 모든 가치대로 구매된다는 가정에 따라 마르크스는 시장이 아니라 생산에서 이윤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상품교환이야 말로 "자유ㆍ평등ㆍ소유ㆍ벤담이 지배하는 … 천부인권의 참다운 낙원"(자본론 1권, 230쪽)이라는 생각을 포기하지 않은 채 설명할 수 있었다.
[3] 마르크스가 이런 결과를 이끌어낸 과정의 내적 모순이 입증됐다는 주장을 들은 바 있는 데 이는 단지 악의에 찬 신화일 뿐이다. 클라이먼(2007) 8장을 보라
[4] 이는 마르크스가 하나하나 엄격하게 절차를 밟아나가는 것과 비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력 법칙은 LTFRP와 비슷하다. 운동 제2법칙은 노동시간에 따른 가치 결정 법칙(가치법칙)과 유사하다.
[5] 하비는 그의 논문 어떤 곳에서 내 책을 끌어들이지만 내가 주장했다고 그가 말하는 어떤 증거 또는 인용도 제시하지 않는다.
[6] 샤넌 윌리엄스와 나는 금융화가 대침체가 진행된 10년간 미국에서 기업의 자본축적률 하락의 원인이 아님을 보여줬다.(클라이먼ㆍ윌리엄스 2014) 당연히 그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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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게으른도서관 2015.06.10 22: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사소한 의견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일원론'으로 번역하신 'mono-causal (theory)'는 철학적 일원론(monism, 一元論)과 구별하기 위해서 다른 말로 바꾸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깔끔한 대안을 제시하면 좋겠으나 풀어 쓰는 거 말고는 떠오르는 게 없네요. ㅠㅠ

  2. EM 2015.06.18 15: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후속 번역도 올라오는 것인가요? 잘 보았습니다 ^^

미국의 제국주의적 개입은 세계 곳곳에서 근본주의, 극단주의 무장 세력의 성장을 불러왔다. 그것이 꼭 반사작용으로서만 이뤄진 것은 아니다. 때론, 혹은 더 자주 미국 정부가 직접 개입해 무장 세력을 키워내곤 한다.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이슬람전사를 키워냈던 게 대표적 사례다. 그들이 키워낸 괴물은 9ㆍ11 테러로 응답했다. 아래 글은 이라크와 시리아를 휩쓸고 있는 이슬람국가(ISIS) 또한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최근 비밀 해제된 미 국방정보국(DIA)의 2012년 보고서는 이슬람국가의 성장을 정확히 예측했음에도 불구하고 미 정부는 그 위협을 무시했다. 당시 여러 분석은 시리아 저항세력 지원해 전장을 부추기는 미국의 행동이 이슬람국가를 도와줄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지적했다. 이 또한 무시당한 건 마찬가지다. 미국 대통령의 피부색은 바뀌었지만 그들의 제국주의적 속성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래 글은 상당한 오역이 포함돼 있을 수 있습니다. 'ISIS'는 'Islamic State'와 함께 일괄적으로 '이슬람국가'로 옮겼습니다. 일반적 의미에서 이슬람주의가 지도원리로 채택된 국가를 뜻할 땐 '이슬람 국가'로 옮겼습니다.


미국은 이슬람국가를 어떻게 도왔나

최근 비밀 해제된 문서는 이슬람국가의 부상에 미국이 공모했음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 데이비드 미즈너링크


지난 6월 시리아 라카 거리에서 이슬람국가 전사가 자신들의 깃발을 흔들고 있다. [Reuters]

2014년 10월 조 바이든 미 부통령은 이슬람국가를 후원하는 미국의 동맹국들을 비난했다. 그 전달엔 [마틴] 뎀프시 미 합참의장이 미국의 '아랍 동맹국들'이 그 단체에 자금을 대고 있다고 상원 군사위에서 말했다.

미국 고위 관계자들은 자신의 동맹국들이 이슬람국가를 후원하는 데 대해 엄격한 책임을 묻지 않으면서도 그러한 동맹의 행동으로부터 거리를 두려 해왔다. 바이든은 이슬람국가를 무장시키는 것이 그들의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라며 그들에게 재빠르게 사과했다.(뎀프시에 대한 대응으로 린지 그라함 상원의원은 실제로 그들을 옹호했다: "그들은 아사드에게 타격을 주기 위해 노력해 왔다. 나는 그들이 자신의 방법들이 어리석음을 깨달았다고 믿는다.")

이러한 완곡한 비판은 이슬람 국가 폭격 개시 결정을 설득하려는 미국 관리들의 노력 와중에 이루어졌다. 지금에 와선 이미 그 단체는 시리아 동부와 이라크 서부에서 굳건하게 자리잡았다. 그러나 지난 몇 달 혹은 몇 년간 오바마 행정부가 자신의 종속국들이 이슬람국가가 지역 패권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주는걸 막으려 노력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미국 스스로도 시리아에 무기를 계속 보냈었다. 그 중 일부가 이슬람국가의 손아귀에 들어갈 것이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2013년 이슬람국가 지도자 아부 아틸은 미국이 지원하고 있는 FSA(Free Syrian Armyㆍ자유시리아군)을 언급하며 "우리는 FSA 내의 우리 형제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슬람국가가 대공미사일과 대전차무기를 FSA로부터 구입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최근 비밀해제된 미군 기밀문서는 미국의 공모행위도 증언하고 있다. '비밀'로 보호되던 미 국방정보국(DIA) 2012년 8월 보고서는 보수단체인 사법감시단(Judicial Watch)이 얻은 한 묶음의 문서 사이에 있었다.

주류 언론과 공화당 정치인들은 그 문서들 중 2012년 벵가지에서 미 영사관이 공격받은 것과 관련된 것에 관심을 집중했다. 이슬람국가의 부상뿐 아니라 시리아에서 반대파 형성과 이의 외국인 후원자들과의 연관성에 관한 공식적인 설명을 부인하는 이 문서는 주요 고려 대상이 되지 못했다.

"2012년 8월 5일 DIA 보고서는 시리아 안팎의 적대자들에 관해 아사드가 말해온 모든 것을 확인해줬다"고 '테러 분석가' 막스 에이브람스는 말했다.

이 보고서는 이라크에서 폭력이 분출하던, [그럼에도] 미 언론에서 주요 화제로 삼길 그만두고 시리아에서의 전쟁 보도를 - 워싱턴에서의 논쟁 영향으로 - 아사드 정부에, 그에 맞선 세력들이 아닌 아사드에 초점을 맞추던 시기와 관련돼 있다. 이슬람국가가 미국 정부가 애용하는 괴물이 된 지금에 와선 납득하기 힘들지만 이 시기 시리아에 관한 오바마 대통령과 정부의 주요 발언에선 그 단체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었다.

2014년 1월 이슬람국가가 팔루자를 점령한 이후에도 그 단체에 관해 알려진 정부의 논의는 부족했다. [이슬람국가의] 전장에서 승리가 계속되고 서구인들에 대한 참수가 대대적으로 알려진 2014년 후반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이슬람국가는 제1의 공공의 적이 됐다.

미국 관리들은 이슬람국가의 영향력이 미 정보 당국에 갑작스럽게 눈에 띄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 정부에서 폭 넓게 회람된 2012년 보고서에서는 시리아 동부에서의 '이슬람 근본주의(Salafist) 국가'의 형성을 예견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또한 이라크에서의 이슬람국가는 "그들의 오래된 근거지인 모술과 라마디로 귀환"해 이라크 서부와 시리아 동부에서 '이슬람 국가'를 선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에 더해 보고서는 이슬람 국가의 형성은 바로 반대파를 지지하는 외국 정부 목표라고 설명한다.

만약 이러한 상황이 시리아 동부(하사카와 데이르조르)에서 선언되든 선언되지 않든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의 설립 가능성으로 이어진다면 이는 정확히 (이라크와 이란의) 시아파 확장에서 전략적 핵심으로 간주되는 시리아 정부의 고립을 위해 반대파에 힘을 실어주는 세력이 원하는 것이다. [DIA 보고서 중]

약간은 다른 문맥에서 이 문서는 이미 "서방 국가들과 걸프만 나라들, 터키"를 "지원 세력"으로 취급했다. 이 문서는 미국을 '지원 세력'에서 제외하고 있다는 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 정말 왜 미국의 정보요원들은 그들의 정부에 정책이 무엇임을 물어야만 했을까? - 미국의 종속 국가들이 '이슬람 국가' 형성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을 적어도 2012년 초에는 미국이 알고 있었음을 폭로하고 있다. 미국은 2년도 지나기 전에 저항세력에 우는 소리를 해야만 했다.

보다 명확히 말하자면 미국은 이라크에서 이슬람국가를 두 나라의 많은 지역을 망라한 - 그리고 휩쓴 - 지역 패권으로 전환시킨 시리아 정부에 대항한 전쟁에 참여했었다. 이와 같은 결과는 예측 가능했고 확실하게도 미국 정부 그 자신에 의해서 예견됐다.

미국 정치인들과 전문가들이 이슬람국가의 영향력에 대해 누리 알 말리키 이라크 전 총리와 아사드를 - 혹은 이라크에서의 미군 철수를 - 탓하는 동안 이슬람국가의 부상에서 핵심적 사건은 시리아에서 내란의 격화와 일치한다는 점을 DIA는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DIA 보고서를 분석한 첫 언론인인 레반트리포트의 브래드 호프는 이 문서가 "초기 이슬람국가는 오직 시리아 반란의 격화를 통해 현실적 존재가 됐다"는 점을 보여주며 "이라크에서 미군 철수가 이를 재촉했다는 언급은 없다"고 말했다.

말리키가 시리아에서의 전쟁에 이라크가 휩싸일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미국과 그 동맹은 반란을 계속 지원했다. 상대적으로 가볍고 산발적인 미국의 이슬람국가 폭격은 많은 이라크인들에게 미국이 그 단체의 격퇴를 원치 않는다는 믿음을 강화했을 뿐이다.

공식적 이야기에 따르면 미국은 시리아에서 저항세력 '중도파'를 지원함으로써 이슬람국가를 약화시키길 바라고 있다(시리아에서 반란군의 무장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저항세력을 무장시키지 않는다고 거듭 비판받고 있다).

미군이 스스로의 무력을 사용하겠다는 일련의 결정을 내린 것은 지원할 만한 중도파 단체를 발견할 수 없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로버트 포드 [시리아 주재] 전 미 대사는 "우리는 오랫동안 다른 방법을 찾아왔다"고 말하며 사실상 미국이 후원하는 단체가 알케아다와 제휴한 이라크 이슬람국가의 형제조직 알누스라전선과 함께 행동했다는 것을 시인했다. - "CIA가 후원하는 저항 부대를 포함해" - 많은 '중도파' 저항세력은 알누스라전선ㆍ이슬람국가와 동맹을 맺고 있다. 올해 초 미국이 후원하는 주요 단체인 하라캇알하즘도 알누스라전선에 타격을 줄수 없자 그들과 동맹을 맺었다.

2012년 DIA 문서는 초기부터 복고주의자들이 저항세력을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근본주의자(Salafist), 무슬림형제단, 이라크 알카에다가 시리아에서 반란을 몰아붙이는 주요 세력"이라고 문서에 적혀 있다. 이 문서는 또한 "이라크 알카에다는 시리아 저항세력을 시작부터 후원했다"고도 밝힌다.

시리아 전쟁의 초기 단계를 지난 후 시리아 정부에 맞선 전쟁을 지원하는 것은 이슬람국가를 돕는 것이라고 DIA 보고서가 강조한 것은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은 진실이다.

이슬람국가의 부상에 미국이 부상한 것이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 2차 세계대전으로부터 여러 번 - 가장 악명 높은 것은 1970년대와 80년대 아프가니스탄에서다 - 미국은 자신이 당면한 진정한 적들의 기반을 약화시키기 위해 이슬람전사(그리고 그들의 선도자)들을 무장시키고 동맹을 맺으며 힘을 실어줬다.

꼭 앞선 사건의 역사를 찾아볼 필요도 없다. 바로 지금, 미국은 급히 끌어모은 설립자들을 이용해 세력을 건설하기 위해 시리아에서 - 알누스라전선과 함께 행동하는 - 자신의 대리인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고, - 알누스라전선과 그밖에 반동적 단체들이 포함된 - 저항세력 동맹을 무장시켜 조정하려는 걸프 국가들과 터키의 새로운 노력을 승인했다.

미국이 이슬람국가와 알카에다의 격퇴를 진정 원한다면 그들을 무장시키는 행동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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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박근혜의 신년 기자회견이 있었다. 13일엔 정부 각 부처의 새해 업무보고가 이어졌다. 이 자리들에선 새롭진 않지만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려고 하는 정책들이 보다 구체적으로 다시 강력하게 천명됐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기업을 위해선 모든 걸 다 내주겠다는 것이다. 노동계급 인민의 삶을 희생해서 말이다. 몇 가지만 간단히 정리해본다.


1. 기업형 임대주택 뉴 스테이(New Stay)

조선일보는 이렇게 요약한다.

"대기업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양도소득세ㆍ법인세 등 각종 세금을 최대 75%까지 깎아주고 택지도 시세보다 20~30% 싸게 제공할 방침이다."
-조선일보 14일자 3면

그동안 LH에서 85㎡ 이하로만 공급하던 임대주택 시장을 민간 건설기업에게까지 열겠다는 것이다. 부동산시장 침체로 고통받고 있는 건설사들의 숨통을 틔워주기 위한 종합 선물 세트 같은 것이다. 굳이 어렵게 분양하려 하지 말고 임대해서 따박따박 월급에서 빼내가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도심 공공 택지를 최대한 싸게 많이 공급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세제 혜택도 대폭 확대한다. 85㎡ 이하 임대주택에 대해선 취득세 감면 비율을 현 25%에서 50%로 확대하고, 법인세와 소득세 감면비율은 현 20%에서 75%로 확대한다. 돈이 없으면 싼 값에 빌려주기도 한다. 국민주택기금 대출 금리를 현행보다 내리고 임대 기간이 8년을 넘을 경우 매해 0.1%씩 추가로 인하하겠다고 한다. 이 모든 혜택이 임대주택 사업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주택 문제로 고통받는 노동계급 인민이 아닌 기업에게 말이다.


2. 화이트칼라 이그젬프션(예외) 제도

박근혜 정부는 기업의 수익률 제고를 위해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고 있다. 해고를 더 쉽게 만들고 비정규직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임금은 깎겠다는 것이다. 기업의 부담을 최대한 줄여주겠다는 것.

대표적인 것이 화이트칼라 이그젬프션 제도 도입이다. 사무ㆍ연구ㆍ개발직 노동자들에 대해선 근로시간 규제를 없애겠다고 한다. 즉 이들 '화이트칼라'는 정해진 근무시간 이상을 일해도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하지 않도록 만들겠다는 것. 이들은 이를 '고액 연봉' 화이트칼라에게 적용할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중앙일보는 이 정책의 내심을 이렇게 드러내고 있다.

"해마다 자동으로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 대신 직무ㆍ성과급 임금체계로 바꾸는 실험을 고액 연봉 화이트칼라부터 해보자는 취지다."
-중앙일보 14일자 5면

공무원 연금 '개혁'이 공무원 연금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실제로 공공부문 노동자를 대상으로는 기존 2급 이상을 대상으로만 시행되던 성과연봉제를 7년 이상 근속 근무자에게까지 확대하겠다고 한다. 즉 대부분의 공공부문 노동자를 대상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겠다는 것. 이 뿐 아니라 그동안 줄기차게 추진해왔던 임금피크제 또한 활성화하겠다고 한다.


3. 해외 돈으로 내수 키우기

노동계급 임금을 올려줄 생각이 단 한 톨도 없는 박근혜 정부와 기업들은 경제의 기초체력인 내수를 키우기 위해 해외 자금을 끌어들이겠다고 한다. 조선일보의 표현이니 정부와 기업주들의 생각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올해 정부 정책의 키워드인 공공ㆍ노동ㆍ금융ㆍ교육 등 4대 부문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도 기초 체력인 '내수'가 튼튼해야 하는데, 내수 진작을 위해서는 외국 자금과 손님을 끌어들여야 하는 게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과다한 부채로 국내 가계 소비 여력이 제한되고, 기업들의 국내 투자도 좀처럼 늘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아 국내인과 국내 기업만의 수요로 내수를 키우기는 어렵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조선일보 14일자 4면

그렇다면 해외의 돈은 어떻게 끌어들이겠다는 것인가. 결국은 각종 규제 완화가 그들의 답일 수밖에 없다. 면세점 늘리는 거야 애교다. 이들은 크루즈 운항을 늘리기 위해 마리나를 확대하고 수산자원보호구역 3230㎢를 해제하겠다고 한다. 호텔을 늘리기 위해 부동산투자신탁도 확대하겠다고 한다.

더 중요한 것은 해외 환자 32만 명 유치 목표다. 조선일보는 이를 위해선 현재 경제자유구역에만 설치 가능한 '투자 개방형 의료법인'을 더 확대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뿐 아니라 민간 보험사의 환자 유치 활동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정부는 이런 내용을 포함한 '국제의료사업지원법'을 국회에 제출해놓은 상황이다.

이 모든 것이 단지 해외 자금을 끌어들이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이 정책들은 의료 민영화를 확대해 공적 의료를 파괴하고 자연 환경을 해치는 방향을 정확히 지시하고 있다.


4. "대한민국이 난리 났네 할 정도로 하라"

박근혜는 이 정책들을 강력하게 몰아부칠 계획이다. 실제로 그리할 수 있을지는 두고봐야 겠지만 신년 기자회견과 업무보고에서 그의 의중은 충분히 드러냈다.

"오늘 나온 얘기를 그냥 일시에 '대한민국에 난리 났네'라고 할 정도로 해버려야 성장 기반이 마련된다"
-조선일보 14일자 3면

그와 그의 기업인 친구들이 그리 할 수 있을지는 아마 우리에게 달려있을 것이다. 지난 2년여 간 결정적 순간마다 머뭇거리게 만든 건 바로 노동계급 투쟁이었다. 2013년 말 박근혜를 위기 직전까지 몰고갔던 철도노동자 파업이 대표적이었다. 공무원 연금 개혁도 공무원들의 강력한 반발 때문에 잠시 멈춰야만 했다(원래 지난해 내에 하겠다고 했었다. 지금 다시 강력하게 추진하려 한다). 그리고 노동계급 대중의 정서도 그리 만만치 만은 않다. 현대중공업에 민주노조가 들어선 것과 민주노총 첫 직선제 위원장으로 가장 투쟁적인 공약을 내세운 한상균씨가 뽑힌 것이 그 예일 것이다.

우리도 박근혜처럼 해야 한다. "대한민국에 난리 났네"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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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9일

앰네스티 협조로 만들어진 '아랍의 봄'(장 피에르 필리외 글, 시릴 포메스 그림,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이라는 만화가 지난 3월 번역돼 출간됐었다.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이 책은 '아랍의 봄'에 대한 오해와 왜곡으로 가득찬 책으로 읽지 않기를 강력히 권한다.

1. 이 책은 '아랍의 봄' 원인을 오직 독재와 권위주의 정치의 관점에서만 바라본다. 2008년 경제위기 후 곡물투기로 인한 국제 곡물가 상승이 아랍지역 인민의 생활수준 하락을 불러왔던 점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집트에서 몇년 전부터 성장하던 노동운동에 대해서도 침묵한다. 몇몇 훌리건 팬클럽 이야기는 다루면서도 말이다. 그러니 이 책이 아랍의 봄 이전 지역 국가들이 서구식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빅아들여왔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은 것도 당연하다.

2. 아랍의 독재ㆍ권위주의 정권과 서방 '민주주의' 국가의 협력적 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곳의 독재가 과거 제국주의의 유산일 뿐만 아니라 현재 제국주의 정책의 결과임을 다루지 않는다. 따라서 이책에 의하면 제거돼야 할 악은 오직 아랍의 독재자들과 그들 나라의 비민주적 관습일 뿐이다. 그러다보니 이스라엘의 봉쇄에 고통받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문제를 다루면서도 이스라엘과 서방보다는 하마스 비판에 더 열을 올린다. 그래서 아랍 인민의 서방에 대한 분노는 오직 음모론을 잘못 받아들인 결과로 설명한다.

3. 서방의 민주주의 국가를 아랍 독재자들과 상관없이 다루는 것은 물론 유럽의 리비아 폭격이 리비아 인민의 해방에 도움을 줬다는 식으로 다뤄진다. 서방의 이와 같은 개입들이 아랍과 그밖의 지역에서 반민주적 근본주의자들을 성장시켰음을 침묵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슬람국가의 성장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만 살펴도 충분히 가능성을 살필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바로 그 한 치 앞도 살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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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 7. 21:29

페이스북 백업 - 공무원연금 개악 관련 쟁점2015. 1. 7. 21:29

2014년 11월 5일

"어쨌든 개혁이 필요한 것 아닌가"라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탕으로 박근혜는 공무원노동자를 공격하고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생각을 좌파의 일부도 공유한다. JTBC에 나가 "어쨌든 공무원 연금은 개혁해야 한다"고 말한 유시민과 이런 좌파들의 생각은 얼마나 다른가.

그런 얘기를 하려면 우선 공무원 연금의 재정 부족에 정부의 불법, 탈법적 행위도 큰 책임이 있다는 걸 고려해야 한다. 세상에 연금공단 운영 비용을 연금에서 충당하고, 명예퇴직자들을 위한 퇴직금을 연금으로 주는 게 어딨나.

몇 번이나 했던 얘길 또 하자면, 공무원은 퇴직금이 없다. 퇴직수당이라는 게 있는데 이는 일반 노동자의 퇴직금에 턱없이 모자르는 금액이다. 다시 예를 들자면 내가 4년 근무하고 퇴직금 1000만원 좀 넘게 받았는데 나와 비슷한 기본급을 받는 교사 노동자는 10년째 근무하고 있지만 퇴직수당이 1000만원정도다.

국민연금과 비교해도 공무원은 훨씬 많은 금액을 스스로 부담하고 있다. 일반 노동자가 급여의 4.5%를 연금으로 내지만 공무원은 7%다. 도대체 "적게 내고 많이 받는다"는 생각은 어디서 비롯한 것인가.

공무원 연금 개혁이 문제가 아니라 용돈밖에 안되는 국민연금 개혁이 필요하다. 하향 평준화가 아니라 상향 평준화가 개혁의 방향이 돼야 한다. 일반 노동자들의 고용, 소득 불안정이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공무원이 '안정적'이란 '질시'의 감정이 커지고 있다. 좌파가 이런 '질시'의 감정에 타협하면서 '상향 평준화'를 이뤄낼 수 있는가. 이런 얘기 않고 "어쨌든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의 손을 들어주는 것일 수밖에 없다.

추가
"어쨌든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의 위험성 중 하나. 노무현에 친밀감을 느끼는 이들이 다수인 30~50대 남성 사무직 노동자 중심의 한 커뮤니티는 JTBC 유시민 발언 전까지만 해도 정부의 공무원 연금 개혁보다 국민 연금 개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더 많았고 목소리도 높았다. 지지도 많았다. 그런데 유시민 발언 이후 이런 입장은 위축되고 후퇴했다. 비록 특수한 경우이긴 하지만 이는 저 주장을 좌파가 받아들일 때 이 싸움에서 박근혜에 맞서 우리가 이길 수 없음을 미리 알려주는 사례 중 하나일 것이다.


2014년 11월 5일

11월 1일 여의도에서 열린 공무원연금 개악 반대 집회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문구는 '2007, 2009 참회 반성'이었다. 이 문구는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전공노보다 온건한 노조)의 몸벽보다. 2007년 국민연금 개악과 2009년 공무원연금 개악을 강건너 불보듯 방기했던 걸 반성한다는 뜻이다. 이들은 9월 집회에서 "지난 2007년 국민연금 개정으로 국민연금이 용돈 수준으로 전락했을 때 강 건너 불구경했으며, 공무원연금법 개정을 논의할 때 후배들을 방패막이로 삼아 선배들의 연금을 지켰다는 비난과 비판을 인정한다"며 삭발식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날 집회에는 공무원연금과 연관된 거의 모든 공무원 단체가 다 참여했다. 이들은 이날을 계기로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공동투쟁본부'를 구성해 공적연금 전반에 대해 함께 다루기로 결의했다('공적연금'이란 공무원연금을 뜻하는 게 아니라 국민연금 등 공적 성격을 지닌 모든 연금을 말한다).

즉 '어쨌든 개혁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이들이 상상하는 것과 다르게 이미 공무원 노동자들은 이 투쟁을 공적연금 전반의 개혁 문제로 이끌어가려 하고 있다.

물론 좌우파를 총망라한 대오를 분열시키기 위한 떡고물을 정부가 던져줄 수 있고 이는 투쟁에 큰 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다. 어쨌든 그런 것에 앞서 공무원노동자들 스스로 '사회적 연대'를 조직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다. 좌파라면 이러한 움직임을 고무하고 더 급진적으로 발전하게끔 함께해야 할 것이다.

제발 공무원 연금의 현실이 어떤지, 지금 공무원 노동자들이 무엇을 주장하며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살펴나 보고 말했으면 좋겠다.


2014년 11월 7일

1. 공무원 노동자인 지인과 오랜만에 통화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데 그가 속한 지부(구청)에서만 500명 넘게 1일 집회에 참여했었다고 한다. 파업과 같은 더 급진적 행동에 대해서도 긍정적 분위기가 많다고 한다. 오히려 기존 활동가들이 더 자신없어할 정도로 말이다. 교사 노동자인 지인의 이야기도 그리 다르지 않다. 딱히 열성 조합원도 아닌 분이 '파업' 얘기를 하더란다. 그래서일까 공무원 '집단 행동'을 자제해달라는 정홍원 국무총리의 대국민 담화는 상당히 수세적으로 들린다. 그것이 수세적이든 공격적이든 총리의 자제 발언에도 불구하고 공무원 노동자들은 오늘 광주에서 열린 정부의 '공무원 연금개혁 국민포럼' 개최를 흔들림 없이 저지했다.

2. 이는 매우 중요하다. 이제 곧 집권 3년차에 들어갈 박근혜는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고 있다. 각종 세금을 올리는 것을 비롯해 노동계급의 생활수준을 악화시키려는 시도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정부의 이런 시도를 저지해 공적연금 전반의 '개선'까지는 아니더라도, 공무원연금의 '개악'을 막아낼 수만 있더라도 이는 노동계급 대중 전반에 크나큰 자신감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 이후 전국적 쟁점에서 집권 우파의 공격을 막아낸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입버릇처럼 쏟아지는 "떠날 수 있다면 이민 가겠다"는 말은 그런 자신감 없음의 반증이다. 따라서 개악을 저지하고 현상황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승리일 수 있다.

3. 떠올려보면 노동계급의 투쟁은 일부의 시기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생존 조건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었다. 특히 1950년대와 60년대 자본주의 황금기 이후는 더 그렇다. 한국에서도 1987년부터 91년까지 사이의 시기를 제외하곤 거의 그랬던 듯싶다. 이걸 노동계급 투쟁의 본질적 특징이라고까지 말할자신은 없지만 최소한 경제 후퇴기 노동계급 투쟁의 일반적 특징이 아닐까 싶다. 즉 지금은 '지키는 것 자체'가 쟁점이고 우리의 요구가 될 수 있으며 승리다. 그리고 노동계급은 이런 투쟁을 통해서 이전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자본주의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깨뜨리며 새로운 전망에 눈을 뜨곤 한다.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의 '참회 반성'이라는 구호가 이를 잘 보여준다.

4. 우파 공무원 노동조합이 2007년 국민연금 개악을 도외시 했던데 대해 '참회 반성'을 말한다. 이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정부가 공무원연금의 기금고갈과 재정적자를 문제시 삼는데 이는 사실 동일하게 국민연금을 공격하는 논리기도 하다. 고령화 사회 진입 운운하며 기금 고갈을 얘기하며 국민연금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거부한 게 최근이다. 이러한 개악을 공무원 노동자들에게도 받아들이라고 하는 게 과연 '사회적 연대'를 구축하기 위한 길일까. 더 나은 '사례'가 있을 때 보다 더 나은 대안을 구축하기 위한 투쟁도 힘을 받는법 아닐까 싶다. 그리고 맘에 안들지라도 공무원 연금은 그러한 '더 나은 사례' 중 하나로 남아있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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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답답 2015.03.26 2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니 그러니까 그럴양이면 기존 8%내는거를 22% 25%씩 유럽처럼 내겠냐고 답답아.

    유시민이 그렇게 얘기하는데도 못알아처먹네 귀가없노 눈이없노 답답스럽네.

    국가가 땅파서 연금주나. 낸금액의 2.5배이상을 받아처먹는 현 공무원연금은 유지할수가없다고.

    생각좀 해 생각좀.

    • 때때로 2015.03.29 23: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과 같은 공적연금은 사적 보험의 원리와 달리합니다. 더구나 적금도 아니죠. 즉 '자신이 낸 만큼 가져가는 것'이 연금이 아닙니다. 물론 사적 보험조차도 그렇진 않죠. 공적 연대를 위한 체계가 보험과 연금 모두에 공통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국민연금은 국민 개인이 낸 기여금 만으로 구성되는 게 아니라 노동자를 고용한 사측이 똑같은 분량 만큼 연금에 기여하게 돼 있는 것입니다. 이 원리가 공무원 연금에 똒같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구요. 즉 사측의 기여금, 공무원 연금의 경우 국가의 기여금은 공무원 노동자를 고용하는 당연한 책무입니다. 당신은 일반 기업의 사측 기여금도 없애야 한다고 봅니까? 생각좀 할 사람은 당신인 것 같네요.

2014. 8. 19. 02:02

우크라이나, 좌파의 시험대 쟁점/14 OccupyWorld2014. 8. 19. 02:02

우크라이나 사태는 현대 제국주의에 대한 좌파의 리트머스다. 소련 붕괴 후 사라진 것으로 보였던 '진영주의'가 여러 다른 형태로 부활하고 있다. 미국 중심의 일극적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것에 익숙해진 여러 좌파가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침묵하거나 그것을 반파시즘적 행동으로 고려한다. 이는 훌륭한 반제국주의 저널리스트였던 존 필저가 푸틴을 파시스트에 맞선 유일한 유럽의 지도자로 추켜세우면서 절정에 달한다. 2001년 만들어져 미국의 아프가니스탄ㆍ이라크 침공에 맞선 반전 운동을 훌륭히 건설했던 전쟁저지연합의 태도는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 연합의 몇몇 지도자들은 돈바스 지역의 분리주의 운동을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에 빗대기도 한다.

결국 이 모든 혼란은 제국주의를 일국의 패권적 행위로 이해하는 데서 비롯한다. 이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일국이 패권을 휘두르는 현재의 제국주의보다 다극적 체제가 더 낫다고 이해하는 듯도 싶다. 그러나 제국주의는 무엇보다 자본주의 세계 체제다. 현재 미국 헤게모니 하에 조직돼있다고 하지만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본주의의 불균등한 발전은 언제나 도전하는 국가ㆍ민족경제를 예비해놓는다. 경제적 힘의 변동이 군사적 힘의 변화와 일치하진 않지만 이 둘은 긴장관계 속에 서로 떼놓을 수 없는 영향을 미친다. 특히 역사적인 지정학적 관계는 이러한 긴장을 급속도로 고조시키곤 한다. 한ㆍ중ㆍ일의 동아시아와 팔레스타인을 중심으로 한 중동, 흑해 연안 국가들과 발칸 지역이 그러한 곳이다.

하지만 지역에 따라서 제국주의적 갈등의 양상은 다르다. 이라크에서는 미국이, 팔레스타인에서는 미국의 경비견인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이곳에서 우리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반대하면 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다르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두 개의 충돌하는 제국주의의 행동에 의해 인민이 희생당하고 있다. 분명 러시아가 미국에 비하면 훨씬 약한 제국주의긴 하지만 말이다. 미국보다 협소하긴 하지만 러시아가 자국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지역 내에서 지정학적ㆍ경제적 이해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인터내셔널뷰포인트에 실린 '우크라이나의 제국주의적 분할: 좌파와 반전 운동은 어디에 서있나?'는 사회주의자가 제국주의에 대해 가져야 할 원칙을 짚으며 현재의 반전 운동과 좌파가 빠져있는 혼란을 분석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영국에서의 분열과 전쟁저지연합이 빠진 모순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한국의 좌파에게도 남의 일 만은 아닐 것이다.

※ 대괄호[]는 이해를 위해 옮긴이가 덧붙인 것입니다. 의역이 많고 오역이 있을 수 있으니 원문을 참고해주십시오. 의역과 오역에 대한 지적은 언제나 달게 받겠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제국주의적 분할: 좌파와 반전 운동은 어디에 서있나?
2014년 8월 12일 화요일, Fred Leplatㆍ링크

우크라이나의 제국주의적 분할이 러시아와 서방 제국주의 사이에 냉전 이후 볼 수 없었던 규모의 교착상태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또한 좌파 내부의 상당히 오래된 심각한 분열을 드러냈다. 어떤 부분은 1990년대 초 옛 유고슬라비아의 붕괴 후 이어진 전쟁 기간의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1].

좌파의 대부분은 러시아에서 푸틴과 그의 체제를 진보적인 것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난을 꺼리거나, 때론 침묵하기도 한다. 심지어 러시아의 크림 합병과 우크라이나 동부 개입을 지지하기까지 한다. 최근 출범한 우크라이나반파시스트연대
['Solidarity with the Antifascist Resistance in Ukraine'가 정식 명칭. 런던에서 6월 2일 출범했다. 이들은 자신의 목표로 ▷영국과 서방 정부의 키예프 극우 정부 후원 반대 ▷북대서양조약기구의 우크라이나 훈련 계획 반대 ▷5월 2일 오데사의 노동조합 건물에서 학살을 자행한 42명의 기소 ▷민주적 권리에 대한 공격과 좌파 조직에 대한 탄압 반대 ▷우크라이나에서의 반파시스트 저항에 대한 지원을 내걸고 있다. 홈페이지는 ukraineantifascistsolidarity.wordpress.com] 캠페인[2]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동부 개입을 제외하고 오직 영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서방과 관련한 것들만 반대하고 있다.

이는 "우크라이나에서 독립적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운동을 지원하며 그들과 직접 연결망을 건설"하고 "러시아와 서방 제국주의의 외부 개입으로부터 자유롭게 우크라이나 인민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를 지지"하는 것을 기본적인 목표로 하는 우크라이나사회주의연대
['the Ukraine Socialist Solidarity'는 노동당 하원의원 존 맥도넬의 후원으로 5월 12일 의회에서 열린 모임에서 출범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에서 제국주의의 개입과 배타적 민족주의에 맞서 민주적 권리를 옹호하고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조합 활동가들, 노동계급의 활동에 대한 지원과 정보 제공을 목표로 한다. 홈페이지는 www.ukrainesolidarity.co.uk] 캠페인과 극명하게 대비된다[3].

레프트유니티(Left Unity)와 사회주의노동자당(the Socialist Workers Party)
[4]은 영국과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위기에서 다시 또 NATO의 영역을 확장하고 전쟁 위협을 증가시킬 기회를 잡으려는 시도에 옳게도 반대해 왔다. 그리고 그들은 가능한한 우크라이나를 합병하려 한 러시아의 기도 또한 비난해 왔다.

레프트유니티는 3월 "미국과 NATO, 러시아, 유럽연합(EU) 어느 깃발 하에서든 군사적 개입은 오직 상황을 몇 배나 더 나쁘게 만들 뿐이다. 이것이 우크라이나
[상황이]다. 러시아가 국제법을 어겼다는 서방의 비난은 위선이다. 그렇지만 러시아 군대 역시 위기에 대한 어떤 해결책도 갖고 있지 않다"[5]고 발표하며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군사적이든 우크라이나에 대한 어떤 외세의 개입도 반대한다. 우크라이나 모든 인민에게 민주주의와 평등을."

푸틴은 우크라이나 일부를 합병하려는 자신의 야망을 노골적으로 표현해 왔다.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이 도피한 후 맺어진 러시아, 우크라이나, 미국, EU의 4월 17일 합의
[이 네 개 나라는 제네바에서 우크라이나 동부의 긴장 완화를 위한 조치에 합의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켜지지 않았다] 이후 푸틴은 "하르코프, 루한스크, 도네츠크, 오데사는 차르 하에서 우크라이나가 아니었다"며 "오직 신만이 그곳들이 1920년 [소비에트 러시아로] 이전한 이유를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러한 전환은 반혁명 장군 데니킨과 브랑겔을 물리치고 새로운 소비에트연방으로부터 모든 우크라이나인의 민족적 권리를 인정받으면서 이뤄졌다. 그 후 1954년 흐루쇼프는 다시 크림을 우크라이나로 되돌려줬다. 2014년 3월 러시아의 해군기지가 있는 세바스토폴을 포함한 크림의 합병은 타르투스에 해군기지를 허락한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살인 정권을 후원한 것과 마찬가지로 러시아 제국주의의 지정학적 이해관계에 강하게 결속돼 있다.

제국주의는, 그것이 유럽이든 다른 어느 곳이든 자신의 목적을 위해 그들을 전복시키기 위해 대중 운동에 개입하려 여러 차례 시도해 왔다. 1956년 헝가리와 1968년 프라하의 민주주의를 위한 거대한 대중운동은 신좌파와 트로츠키주의 전통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공산당은 이 운동들이 CIA의 조종을 받는다고 주장하며 반대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진정한 목적은 저 나라들과 소련의 '완충' 국가들을 지배하는 공산당들을 지지하는 것이었다.

2013년 말의 마이단은 때론 수십 만명을 동원한 사회 전반의 거대한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올리가르히와 야누코비치의 부패에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바라는 혁명적 열망이 반동적 성격의 민족주의, 그에 더해 번영과 민주적 권리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EU에 결부된 오해와 연결돼 있었다. 2013년 원래 야누코비치는 우크라이나의 파산으로부터 EU의 긴급 구제금융에 이끌렸었지만 이는 최근 러시아의 전략적 '완충지대'를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인 푸틴의 더 나은 제안으로 이어졌다. 그의 몰락은 마이단의 거대한 운동 결과지 서방이 조직한 '쿠데타'의 결과가 아니다.

강력한 좌파의 부재는 프라비 섹토르 등 파시스트를 포함한 극우파가 마이단 운동을 진보적 경로로부터 이탈시키는 것을 가능케 했다. 포로셴코의 대통령 당선은 세력균형을 보여줬다. 그는 권위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이며 신자유주의적인, 극우파 후원자들이 포함된 정부를 이끈다. 크림과 우크라이나 동부에는 마이단 규모의 대중 운동은 없었고 사태는 "'인민'으로 포장된 경찰 폭력배들의 쿠데타"로 묘사돼 왔다
[6].

우리는 대중 운동이 우리의 이론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제국주의에 조종받는다고 일축하기보다는 그 운동의 모순과 그에 수반한 세력을 이해하며 운동 자체로 다룰 필요가 있다. 맞불
[Counterfire. SWP에서 분리해 나간 급진 좌파 조직]의 지도적 회원 크리스 나인햄과 전쟁저지연합[the Stop the War Coalition. 2001년 9ㆍ11 테러 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ㆍ이라크 공격에 반대하며 조직된 영국의 전쟁 반대 공동전선]은 마이단 운동을 '조종당한 것'이라고, 거기에 더해 "몇몇 좌파가 우크라이나 혁명의 지지를 호소하고 모든 개입을 똑같이 비난하는 것은 의미 없는 행동보다도 더 나쁜 것"이라고 폄훼했다[7].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는 우크라이나의 현재 내전에 중립적일 수 없다. 우선 우리는 우리 정부의 개입에 반대하고 우크라이나의 자주권을 방어해야만 했다. 거기에 우리는 또한 민주주의와 사회적ㆍ경제적 정의를 위해 우크라이나 올리가르히, 러시아와 함께 서방 제국주의의 개입에 맞선 노동계급의 투쟁을 지지한다. 우크라이나 위기의 일부분은 스탈린과 소련의 붕괴가 남긴 해결되지 않은 민족주의적 문제다. 제4인터내셔널은 최근 "우크라이나에서 민족문제를 민족주의자들에게 떠넘긴 좌파는 그 스스로 앞선 실패에 대해 비난받아 마땅할 것이다. 민족주의 진영은 이미 현재 사회주의 좌파의 주변부에서 잇점을 차지하며 성장하고 있고 노동자들의 시야에 자본주의의 진보적 대안으로 보이려 한다"고 적고 있다
[8].

맞불과 영국 공산당(the Communist Party of Britain) 사회주의자행동
[Socialist Action. 1983년 SWP에서 분리된 그룹ㆍ9]의 접근법은 오늘날 주요 전쟁 위협은 서방 제국주의, 특히 세계의 주요 군사적 제국주의적 권력인 미국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본다. 여기에 유럽 동부를 향한 NATO의 확장과 군사훈련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을 연상시키는 위험의 확대다. 몇몇은 미국 헤게모니 하의 '단극적' 세계가 경쟁 국가들의 '다국적' 세계보다 더 위험하다고 믿는다[10]. 이러한 접근법의 결론은 푸틴 정부가 최선은 아닐지라도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 헤게모니의 평형추라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사회주의자들에게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정부가 전쟁에 돌입하는 것과 NATO의 확장을 중단시키는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비판은 물타기로 보인다. 이들 나라는 미국과 같이 위험한 전쟁광은 아니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복원되지 않은 몇몇 곳에서는 좌파와 진보적 동맹을 맺을 수 있다. 이는 소련이 존재하던 시절 좌파의 일부, 특히 공산당과 노동당에 영향을 미쳤던 '진영주의'의 부활이다.

분명 사회주의자는 그들 자신의 제국주의적 정부에 우선 반대해야 하지만 그들은 전 세계에서 노동 인민과 약소 민족ㆍ국가를 공격하는 제국주의 일반에도 반대해야 한다. 이는 NATO의 확장과 개입뿐 아니라 러시아의 크림 합병, EU와 러시아 양자에 의한 우크라이나 분할에도 반대해야 함을 뜻한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세계적으로 뒤엮인 미국 헤게모니 아래 통합된 체제
[11]고 이는 1914년과 다른 것이다. 20세기 두 번의 세계대전은 주로 세계에서 영역을 차지하거나 지배권을 지키기 위한 경쟁 제국주의간 전쟁이었다. 이들 전쟁의 결과 미국은 그 자신의 거대한 경제와 그보다 더 큰 군사적 힘, 세계은행ㆍIMFㆍNATO와 같은 기구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를 지배하는 세계에서 가장 압도적인 강대국 지위를 확고히 했다. 자본주의 세계 체제는 러시아와 중국에서 자본주의가 복권되면서 더 널리 확장됐다. 하지만 이것이 제국주의간 경쟁과 국지전 위협이 더이상 중요치 않다는 것을 뜻하진 않는다.

오늘날 작동하는 미국 헤게모니 형식은 더 약한 국가들이 미국의 핵심적 이해관계에 도전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군사적 개입을 포괄하는 자신의 제국주의적 야망과 지역의 지정학적 이익 추구를 허락한다. 러시아와 중국의 제국주의적 야망이 성취한 연약한 수준은 미국 제국주의에 어느 정도 비용을 치뤄야만 한다. 그들이 만약 선을 넘는다면 '불량' 국가가 돼 이라크의 경우처럼 군사적으로 점령당하거나, 이란과 현재 러시아에 부과된 것과 같은 제재를 받아야만 한다. 미국 제국주의는 자신의 틀 내에 약소국들을 잡아두기 위해선 무력을 이용해 많은 위협을 가해야만 한다. 이는 우크라이나에서 MH17기가 돌발적으로 추락한 것이나 1988년 미 해군에 의해 이란 항공기가 격추당해 269명의 목숨을 잃은 것과 같은 어떤 사건에 의해 급격히 전면적인 군사 대결을 고조시킬 수 있는 위험한 게임이고 이 게임의 규칙이 더 이상 미국 제국주의와 그 동맹자들의 손 안에만 있진 않을 것다. 그러나 무력을 이용한 위협을 두 번의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것과 같은 제국주의간 경쟁을 향한 역학과 헷갈려선 안 된다.

러시아가 지정학적 영역 내 지역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서방 제국주의(바로 미국과 NATO)는 러시아의 크림 합병에 크게 상관치 않는다. 러시아에 대한 몇몇 제재조치가 발표됐지만 지금까지는 - 주로 개인을 대상으로 한 - 상징적인 것일 뿐이다. 하지만 무기와 가스 거래, 자본주의 체제의 세계화 때문에 뿌리깊은 분열이 있고 이는 그것
[제재조치]들을 확대시킬 것이다. 러시아 자본주의에 피해를 줄 제재는 서방 자본주의에도 또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는 러시아가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에 계속해서 무기를 공급하면서 후원하는 것에 미국 제국주의가 게의치 않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두 나라 모두 바샤르 알 아사드의 실각을 원하지 않는 데 우연치 않게 이해관계가 일치한 것이다. 아사드 정권의 붕괴는 타르투스의 러시아 해군기지뿐 아니라
[중동] 지역에서 자신에 대한 신뢰를 재구축하려는 미국의 시도를 위협하는 중단된 '아랍의 봄'을 부활시켜 시리아와 이스라엘의 '평화적 공존'을 전복시킬 수도 있다.

미국과 러시아의 협력은 1989년 장벽의 붕괴로 거슬로 올라간다. 당시 고르바초프는 외국인 투자와 군비경쟁 축소를 암묵적인 대가로 독일의 재통일과 NATO로의 통합에 반대하지 않았다. 심지어 협력은 스탈린 치하 소련과 미국 제국주의 사이의 '평화적 공존' 시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혁명 운동은 소련의 외교정책상 필요에 종속돼 조종당했다. '일국에서의 사회주의 건설'은 제국주의와의 협조를 뜻했다.

제국주의 국가들의 계층구조에도 불구하고 미국 제국주의 아래 세계적으로 통합된 자본주의 체제라는 관점은, 미국 제국주의를 주요 위협으로 보며 다른 제국주의 국가를 차악으로 여기는, 따라서 "세계를 우리가 100년 전 목격한 폭력적 혼란으로 이끄는 국제적 대립"의 시기에 우리가 접어들었다고 믿는 저 사회주의자들의 입장과는 다르다
[12].

유감스럽게도 러시아ㆍ중국ㆍ쿠바ㆍ베트남에서와 같은 대규모의 사회주의 혁명적 격변, 즉
[변혁을] 저지하기 위해 대규모 군사적 개입이 필요했던 격변은 [우크라이나 동부에] 없다. 신자유주의적 긴축은 노동계급이 쟁취했던 것들을 파괴하고 새로운 생산관계를 만들어내면서 세계 곳곳에서 작은 저항들을 촉발시키고 있다.

따라서 미국 제국주의를 주요 위협으로 보는 이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개입에 맞서는 데 실패했고 몇몇은 친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이 그들을 이용하는 것을 허락하기까지 했다. 그들은 서방 제국주의에 맞서고 있는 노동계급과 쿠데타로 수립된 키예프의 '나치' 정권에 대한 이들의 투쟁에 지지를 선언하면서 이 민족주의자들에 신뢰를 보내고 있다.

존경받는 탐사보도 저널리스트인 존필저는 "분명한 것은 버락 오바마의 탐욕이다. 우크라이나에서의 무모한 쿠데타는 내전을 촉발시켰고 블라디미르 푸틴을 덫으로 내몰"고 있으며 "러시아 크림에서 (워싱턴의 쿠데타에 대한) 모스크바의 불가피한 응답은 자신의 흑해 함대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적었다
[13]. 민족주의와 신자유주의적 성격이 강할지라도 대중운동이 아닌 쿠데타가 있었다고 당신이 일단 믿는다면 러시아가 크림을 합병할 권리를 포함한 그 어떤 것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필저는 뒤에 쓴 글
[14]에서 "이들 폐쇄적 국가의 지도자들은 이란의 민주주의자 모하메드 모사데크[1953년 이란의 총리였던 모하메드 모사데크는 영국과의 합작 석유회사를 국유화하려 했다. 이에 미국 CIA는 '아약스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모사데크를 축출하는 데 성공한다], 과테말라의 아르벤스[1944년 혁명의 지도자. 1950년 대통령에 당선된다. 이후 미국의 다국적 기업 유나이티드푸르츠가 대부분 소유했던 경작지를 국유화한 후 인디오와 빈농에게 재분배하는 농지개혁을 시도한다. CIA는 '자유의 소리' 방송을 이용한 반정부 선전 공작을 펼치고 카를로스 아르마스의 쿠데타를 후원한다. 아르벤스 대통령은 1954년 6월 18일 쿠데타로 멕시코에 망명한다],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CIA가 후원한 피노체트 쿠데타로 1973년 9월 대통령궁에서 목숨을 잃는다]와 같이 대개 폭력적으로 제거되거나 콩고민주공화국의 파트리스 루뭄바[콩고민주공화국의 초대 총리. 벨기에로부터의 독립을 이끌었다. 친소적 행보 때문에 미국의 심기를 거슬렸다. 미국은 모부투의 쿠데타를 지지했고 루뭄바가 모부투 군대에 의해 총살당하는 것을 묵인했다]처럼 살해당했다. 이들 모두는 서방 언론에 의해 비난의 대상이 됐다. 피델 카스트로, 우고 차베스, 현재의 블라디미르 푸틴을 떠올려 보라"고 쓴다. 푸틴을 차베스나 카스트로와 비교하는 정치적 맹신으로 이어진다.

계속 이어진 글에서 그는 여기서 더 나가 "따뜻한 바다에 있는 러시아의 역사적이고 합법적인 크림 해군기지를 강탈하려는 계획으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키예프의 정부에 대해 2월 쿠데타를 배후조종한 워싱톤은 실패했다. 러시아는 그들이 지난 한 세기 동안 서방의 위협과 침략에 맞서 해왔듯이 그들 스스로 방어해 냈다"고 적고 있다. 워싱톤이 크림의 러시아 해군기지를 강탈하려 계획했다는 필저의 믿음은 그가 제정신인지 궁금케 만든다.

그러나 그는 같은 글에서 더 나아가 "독일에게 푸틴이 21세기 유럽에서 파시즘의 부상을 비난하는 유일한 지도자라는 것은 가슴 아픈 역설"이라고 적어 더욱 놀랍게 한다. 푸틴이 러시아와 유럽 전역에서 극우파나 파시스트와 협력했다는 증거는 풍부하다. 프랑스 국민전선(the Front National)의 마리 르 펜은 1월 두마에서 환영받았으며 두마 의장과 부총리를 만났다
[15]. 프라우다는 러시아가 유럽의회에서 파시스트를 지지함을 공개적으로 인정했다[16]. 나치는 메이데이에 모스크바에서 스탈린주의자들과 나란히 행진하는 걸 허락받았다[17].

필저의 이와 같은 글은 사실을 무시한 채 러시아 제국주의의
[크림] 합병을 지지하고 푸틴을 반파시스트로 덧칠한다. 이런 쓰레기 글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기이한 것은 이 글이 전쟁저지연합 홈페이지에 논평 없이 실렸다는 점이다.

유감스럽게도 필저가 러시아를 지지하는 유일한 사회주의자는 아니다. 에몬 맥캔은 올해 초 "만약 우리가 크림에서 어느 한 편을 들어야 한다면 그것은 러시아다"고 적었다. "이 경우 그런 측면에서 러시아가 서방보다 더 많은 권리를 가졌"기 때문이다
[18]. 사회주의자행동은 우크라이나에서의 사태를 러시아와, 제국주의가 아닌 것으로 명백히 그려지는 러시아와 제국주의 사이의 투쟁으로 바라본다('제국주의 공세가 우크라이나 비극의 원인', 폴 로버츠, 2014년 7월 22일ㆍ링크). 존 필저가 '독일인'에 대해 언급한 민족주의는 공산당의 "독일 독점자본이 우크라이나로의 경제적 확장을 준비하는 것은 분명하다"는 관점에 반복된다[19]. 사회주의자의호소[Socialist Appealㆍ국제마르크스주의경향(the International Marxist TendencyㆍIMT)의 신문. 테드 그란트가 1964년 영국 노동당 내 건설한 밀리턴트 경향의 후신ㆍ링크]와 노동자권력 또한 키예프의 파시스트에 맞선 투쟁을 응원하는 것으로 푸틴의 제국주의적 영토 강탈을 은폐한다.

우려스러운 것은 러시아 민족주의와 반동 세력이 러시아 좌파의 몇몇 또는 러시아 제국주의가 우크라이나 영토의 일부를 강탈한 것을 은폐하는 누군가와 협력하는 것이다. 7월 6~7일 (옛 우크라이나 영토이고 지금은 러시아에 합병된) 크림의 얄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에서의 갈등과 세계적 위기'라는 이름의 '국제 회의'가 있었다. 이 회의의 목적에는 '새로운 러시아
[Novorossiya] 건설 운동 지지를 위한 국제적 네트워크'의 설립을 포함하고 있다[20]. 회의는 러시아 사회주의자인 보리스 카갈리츠키와 몇몇 극우파 또는 파시스트 경향이 함께 조직했다. 이 중 다수는 체첸과 세르비아에서 싸웠고 백군 군주제의 옹호자인 '도네츠크인민공화국 국방장관' 스트렐코프의 지지자다[21]. 카갈리츠키가 책임자로 있는 세계화탐구와사회운동연구소[the Institute of Globalisation Studies and Social Movementsㆍ링크]를 제외하면 회의는 극우파인 새로운러시아를위한협력과지지센터[New Rus' Coordination and Support Centre]와 오스노바니펀드[the Osnovanye Fund]에 의해 조직됐다. 이 펀드는 분리주의 운동 지지를 위해 알렉산드르 프로하노프와 블라디슬라프 슈리긴(극우파 잡지 자브트라ㆍZavtra 편집자), 니콜라이 스타리코프(극우 위대한조국당의 지도자)와 같은 러시아 국적의 사람들에 의해 최근 설립됐다. 영국에서는 노동자권력의 리차드 브레너와 사회주의자행동의 알란 프리먼이 참여했다. 둘 모두 우크라이나반파시스트연대 캠페인 지지자다.

바로 러시아가 점령한 영역에서 반동 세력이 깊숙히 참여해 조직한 회의 밖에 사회주의자들은 머물러야만 했다. 8월 말 카디프에서 있을 NATO 대항-정상회의 발표에 보리스 카갈리츠키를 초대한 것도 실수다
[9월 영국 웨일즈에서 NATO 정상회담이 열린다. 이에 맞서 8월 31일부터 9월 1일까지 웨일즈 카디프에서 대항-정상회의가 열릴 계획이다. 보리스 카갈리츠키는 8월 31일 10시30분의 총회와 12시30분부터 열리는 워크숍에서 발표한다ㆍ링크].

우크라이나와 시리아에 대한 분열은 반전 운동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 당연히 나토의 확장과 우크라이나 개입에 우선순위를 두는 동안 전쟁저지연합은 '모든 외국 군대의 개입 반대'를
[이미] 성명으로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22] 아직까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개입에 공개적으로 방대하고 있지 않다. 또한 연합은 시리아에 대한 모든 외국의 개입에 맞서 시리아 인민의 자신의 미래에 대한 자유로운 결정권을 호소하는 서명을 거부하고 있다.

전쟁저지연합은 2001년 설립돼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략에 맞선 동원에서 전례 없는 역사적 역할을 했다. 연합은 세 가지 원칙에 기반해 설립됐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제국주의적 개입 반대 ▷민주주의 방어 ▷인종주의와 이슬람 혐오 반대. 반전 운동이 우리 자신의 나라의 제국주의적 개입에 맞서는 데 초점을 맞출 때는 옳았다. 하지만 시리아와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은 민주주의를 위해 민족주의에 의해 부추겨진 인종주의에 맞선 싸움이 이 나라들에 있음도 보여준다. 이 나라들의 인민이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민주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모든 외세의 철수를 호소하지 않음으로써 전쟁저지연합은 실패하고 있다.


각주

[1] 이를테면 좌파는 모든 제국주의 개입에 반대하는 이들과 보스니아를 돕기 위한 서방의 '인도주의적' 개입을 지지하는 이들로 분열했었다. 몇몇은 최선의 경우 무비판적으로 세르비아의 지도자 밀로셰비치를 어떻게든 유고슬라비아가 님긴 인간의 얼굴을 한 진보의 유산으로 지지했다.
[2] 우크라이나반파시스트연대는 영국공산당과 맞불, 사회주의자의호소, 노동자권력의 지지를 받는다(링크).
[3] 우크라이나사회주의연대 캠페인은 사회주의저항[Socialist Resistance], 하원의원 존 맥도넬, 노동자항의위원회[the Labour Representation Committee], RS21, 노동자자유의 지지를 받는다(링크).

[4] Imperial Delusions, Alex Callinicos, ISJ 142, 31 March, 2014(링크)
[5] Against nationalism, corruption, privatisation and war, Left Unity, 3 March 2014(링크)
[6] 러시아 아나키스트 단체 Avtonomnoe Deistvie 활동가 VT와의 인터뷰(링크)
[7] Ukraine: why being neutral won’t stop a war, Chris Nineham, 23 March 2014(링크)
[8] Ukraine: Popular Movements and Imperialisms, Fourth International, 7 June 2014(링크)
[9] 세 단체의 모든 지지자들이 전쟁저지연합을 주도하는 주요 세력이다.
[10] Seumas Milne, ‘Georgia is the graveyard of America’s unipolar world’, The Guardian,28 August(링크)
[11] 레오 파니치와 샘 긴딘의 'The Making of Global Capitalism - The Political Economy of American Empire' 참조. 이 책의 리뷰는 여기(링크).
[12] MH17 and the threat of a world war, Matt Carr, 22 July 2014, Counterfire(링크)
[13] Obama’s coup in Ukraine has ignited a civil war and lured Putin into a trap, John Pilger, 17 April 2014(링크)
[14] In Ukraine the US is dragging us towards war with Russia, John Pilger, 14 May 2014(링크)
[15] http://imrussia.org/en/russia-and-the-world/645-putins-far-right-friends-in-europe
[16] http://www.thenation.com/blog/179963/decrying-ukraines-fascists-putin-allying-europes-far-right
[17] 기사와 사진: http://anton-shekhovtsov.blogspot.de/2014/05/nazis-and-stalinists-thrive-on-may-1-in.html
[18] In the game of Great Power politics, if we have to pick a side over Crimea, let it be Russia, Eamonn McCann, 21 March 2014(링크)
[19] MH17 - Kiev regime stoking the fires of war, Communist Party of Britain, 23 July 2014(링크)
[20] 회의 전체는 여기서 읽을 수 있다: http://www.workersliberty.org/story/2014/07/23/popular-front-russian-nationalism
[21] 도네츠크인민공화국 총리 알렉산드르 보로다이는 스스로를 자원봉사자로서 우크라이나 동부를 위한 전문 컨설턴트라고 소개하는 모스크바 출신의 러시아 시민이다.
[22] The Crisis in Ukraine: Statement by Stop the War Coalition, 3 March 2014(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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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의 흑인 청년 마이크 브라운은 두 손을 들어 저항할 의사가 없었음을 밝혔음에도 경찰에게 두 발의 총격을 받고 목숨을 잃었다. 브라운의 죽음에 항의하는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시 주민이 'Hands up don't shoot #JusticeForMikeBrown'이란 팻말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8월 10일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시에서 18세의 청소년 마이크 브라운이 경찰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두 발의 총격을 받아 숨진 브라운은 경찰에 저항의 뜻이 없음을 표시하며 두 손을 들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흑인' 청소년이었다. 2012년 2월 자경단에 의해 살해당한 트레이본 마틴에 이어 미국에서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또 하나의 비극적 사건을 만들어낸 것이다.

퍼거슨시는 인구 2만1000명의 소도시로 그 중 3분의 2가 흑인이다. 지난해 이 도시의 경찰은 36명의 백인과 483명의 흑인을 체포했다. 인구 비례를 따져도 흑인이 압도적으로 많이 체포됐다. 검문검색의 92%와 차량 정지명령의 86%가 흑인이었다.

저항할 의사가 없음을 표시한 브라운을 경찰이 총격으로 살해한 데 시민들은 'Hands up don't shoot #JusticeForMikeBrown'이란 팻말을 들고 항의에 나섰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연방정부는 FBI가 직접 사건의 수사에 나서게 했다. 그러나 이것이 흑인들의 분노에 유화책을 펼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퍼거슨시는 군대 수준으로 무장한 경찰을 시위 진압에 투입했다. 장갑차와 총기로 무장했고 최루탄은 물론 고무총탄과 음향대포(LRAD)까지 사용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와 허핑턴 포스트의 기자 두 명이 취재 중 체포됐고 알자이지라 기자는 최루탄 공격을 받았다.

세계 곳곳에서 경찰국가를 자임하며 무력을 자랑하고 있는 미국은 국내에서도 국민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빌리 홀리데이가 노래한 '이상한 열매(Strange Fruit)'가 열리던 풍경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경찰 총격에 의한 흑인 청소년 사망 사건을 FBI가 직접 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FBI의 조사가 브라운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줄 수 있을까? 군대 수준으로 무장한 경찰이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있다.




Strange Fruit song by Billie Holiday

Southern trees bear a strange fruit
Blood on the leaves and blood at the root
Black bodies swinging in the Southern breeze
Strange fruit hanging from the poplar trees

Pastoral scene of the gallant South
The bulging eyes and the twisted mouth
Scent of magnolias, sweet and fresh
Then the sudden smell of burning flesh

Here is a fruit for the crows to pluck
For the rian to gather, for the wind to suck
For the sun to rot, for the trees to drop
Here is a strange and bitter cr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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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드림디퍼드] 내전으로 향하는 우크라이나: 반동적인 전투에서 어느 편도 지지할 수 없다(링크)
②[좌익반대파] 오직 노동자 운동 만이 우크라이나에 이는 전쟁의 불꽃을 멈출 수 있다(링크)
③[자율노동조합] 키예프 정권과 동부 군사정권 모두 반대한다!

※의역이 많고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잘못된 번역에 대한 지적은 언제든 환영합니다. 대괄호 안은 이해를 위해 추가한 것입니다.


키예프 정권과 동부 군사정권 모두 반대한다!
동부의 충돌에 대한 키예프 자율노동조합 성명서
키예프 자율노동조합(AWU)|2014년 5월 14일ㆍ링크

노동 인민 일부분을 다른 부분에 맞서 적대감을 갖게끔 속임수를 쓰고 있는 [우크라이나] 지역과 러시아의 지배계급 집단들 간의 대립이 계속되면서 우크라이나는 내전의 상황에 이르고 있다. 마리우폴 사건은 이러한 대립의 전형[적 결과]이다. 전투원과 시민, 징집된 병사와 장교, 뿐만 아니라 자원한 군인들까지 대립하는 양편의 많은 사람이 '반테러 작전'의 결과로 고통받아 왔다.

이는 노동자들에게 위기다. 정부는 모든 시위를 반(反)마이단 운동 취급하고 있다. 군인들은 자신이 누구를 쏘는지 알지 못하고 총에 맞는 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위해 죽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대립하고 있는 양편은 자신의 '보병'들에 특유의 냉소주의를 조장하고 있고 이 때문에 노동자들은 자신의 계급적 이해에 맞는 공통의 어떤 것도 지니지 않은 이념을 위해 싸우고 있다. 우크라이나 군대와 다른 무장 단체들은 조국애와 '국가의 통일'이라는 무의미한 이념을 위해 싸우고, 분리주의자들은 국가의 건설 또는 러시아와의 통합을 위해 싸운다. 이 모두는 관료ㆍ경찰ㆍ판사ㆍ교도소ㆍ자본가와 가난한 이들이 함께 존재하는 부르주아 민족국가를 목적으로 할 뿐이다.

이 두 반동적 운동의 충돌 결과로 지금 이미 수십 명이 희생당하고 목숨을 잃었다. 한편으로는 군사적 무능, 다른 한편으로는 전투원들의 부패가 피해를 크게 가중시키고 있다.

반마이단 운동의 고위 관계자들은 보통 퇴역 군인들과 이에 더해 전 정권에 충성심을 유지하고 있는 고위 경찰간부들로 구성돼 있다. 따라서 독재적인 법집행과 강제력에 의한, 진정 군사정권의 방식이 우크라이나 동부 '인민공화국'을 이끈다.

이 운동 내 파시스트 단체와 범죄자의 존재는 매우 반동적이고 동부 지역 노동 인민의 계급적 이해와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군사정권의 전반적 특징을 주조한다.

친러시아 선동에서는 분리주의 전투원들이 반파시즘 저항 투사로 묘사된다. 이러한 선동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정부가 개시한 '반테러 작전'은 '라이트 섹터
[프라비 섹토르ㆍPravy Sektor]'의 우크라이나 파시스트가 한 공격을 빼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러한 공격과 다른 많은 사건들에서 이들의 역할은 불안을 가중시키게끔 균형을 깨뜨리는 것이다.

'라이트 섹터'는 몇몇 극우파 단체의 형편없는 동맹이다. 그것의 사회적 구성은 극우 청년들과 범죄자 모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민공화국' 전투원의 사회적 구성도 주로 10대ㆍ깡패 등 하층계급의 일부로 비슷하게 이뤄져 있다. 현재 운동에서 '라이트 섹터'의 대중적 매력은 매우 낮다(완전히 신뢰를 잃은 우크라이나공산당ㆍCommunist Party of Ukraine보다도 낮다). 게다가 '라이트 섹터'는 우크라이나 정부와 비공식적인 전쟁을 치르고 있는 상태다.

국제 사회에서 계속되는 거짓 반파시스트 선전 때문에 '라이트 섹터'는 강력하게 조직돼 우크라이나 정부의 거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다는, 전혀 사실이 아닌 무시무시한 이미지를 얻었다. 물론 우리는 우크라이나에서 파시스트 운동의 문제를 과소평가하길 바라지 않는다. 극우파의 폭력, 특히 좌파를 표적으로 삼는 폭력은 야누코비치 정권 시절인 2012년 이미 확대되기 시작했다고 AWU
[자율노동조합]는 반복해서 강조했다. AWU 활동가 역시 공격받았었다. 우리 동지 중 한 명은 네오나치에 의해 칼로 공격받아 거의 죽음 직전에까지 갔었다. 또한 올해 노동절 행진 장소도 극우파와의 충돌 위협 때문에 변경됐었다.

우크라이에서 파시스트 운동에 맞서는 것은 오랫동안 아나키스트 운동의 주요 목표 중 하나였다. 서구에서 '반파시스트'를 자처하는 많은 스탈린주의 후예들과 달리 우리는 이 문제를 인터넷이 아닌 직접적인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와 우리 동지들은 노동절 아나키스트 행진을 사회주의ㆍ반자본주의ㆍ반민족주의를 주제로 키예프와 카리프, 지토미르에서 조직해냈다.

아나키스트는 나치와 우익 자유주의 정부에 양보할 의도가 없다.
[5월 12일 현재] 여당인 '바티키프쉬나[조국당]'에 맞서 급진 좌파적 저항 캠페인을 조직한 것도 바로 AWU다.

우리는 정부와 자본, 그리고 이들을 옹호하는 극우파에 맞선 싸움을 계속할 준비가 돼 있다. 그러나 이 투쟁은 정부ㆍ교회ㆍ경찰 구조와 파시스트 운동이 하나의 세력으로 단결했을 때 100배는 더 어렵다. 돈바스의 상황이 바로 그렇다.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군대'를 이끄는 것은 러시아 정부의 첩자이자 과거 차르 백위군의 열렬한 지지자인 이고르 스트렐코프다. '돈바스 정교회(Orthodox donbass)' 운동의 제안자로 국민투표를 제안한 이는 소비에트 해체 후 네오나치 운동을 이끈 것으로 유명한 알렉산드르 바르카쇼프와 협력하고 있다. 반마이단 운동의 활동가들은 유럽 파시스트의 또다른 상징인 알렉산드르 두긴을 존경하며 그와 연대를 표하고 있다.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정부'의 부의장인 데니스 푸실린은 공개적으로 1917년 혁명을 '유혈 참사'로 부르며 차르를 끝장낸 것에 대해 유감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선언과 문서들은 사회주의적 구호와 맞지 않는다. 그 문서들엔 계급 간 평화와 '소기업'의 이익에 관한 문장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동부의 범죄자들과 파시스트 군사정권은 현재 노동조합 활동가들의 납치와 고문을 자행하고 있다.

민족주의는 노동자들에게 치명적인 적이다. 이는 현재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노동계급을 물리적으로 제압하려는 지배계급을 양편의 파시스트들이 돕고 있다는 데서 입증됐다. 문제는 우크라이나 프롤레타리아트가 이를 깨닫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과 파괴를 겪어야만 할 것이냐다.

우리는 키예프 정부가 지금 즉시 도시에서 병력을 철수시킬 것을, 동부 군사정부는 평화적인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을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모든 전선에서 저항을 계속하는 것, 어떤 역경에도 혁명적 노동운동을 건설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우리는 영토를 지키거나 독립하기 위한 무의미한 싸움이 아니라 평화와 연대를 통해 계급의 공통된 이해를 중심으로 전선을 구축할 것을 우리 우크라이나 노동 인민 동지들에게 호소한다. 계급투쟁은 권력의 재분배를 위한 싸움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정부와 분리주의자의 대립에서 누가 승리하든 그것은 우리의 패배일 것이다. 이는 우리가 무엇보다
[양편 모두를] 거부하는 이유다. 정부의 결정을 무시하고 군사적 대결을 포기하는 것. 혁명적 노동운동과 파업을 조직하는 것. 바로 이것들이 우리를 이용하는 전쟁에 맞서 싸울 무기다. 우리는 오직 우리 자신, 그리고 다른 급진 좌파 조직과의 국제적 연대에만 의지할 수 있다. 우리가 지금 당장 일어서지 않는다면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다.

상품도, 주인도, 국가도, 국경도 모두 반대한다!
전 세계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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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드림디퍼드] 내전으로 향하는 우크라이나: 반동적인 전투에서 어느 편도 지지할 수 없다(링크)
②[좌익반대파] 오직 노동자 운동 만이 우크라이나에 이는 전쟁의 불꽃을 멈출 수 있다
③[자율노동조합] 키예프 정권과 동부 군사정권 모두 반대한다!(링크)

※의역이 많고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잘못된 번역에 대한 지적은 언제든 환영합니다. 대괄호 안은 이해를 위해 추가한 것입니다.


오직 노동자 운동 만이 우크라이나에 이는 전쟁의 불꽃을 멈출 수 있다
좌익반대파|자카르 포포비치|2014년 5월 12일ㆍ링크

※자카르 포포비치(Zakhar Popovych)는 우크라이나 정치단체 '좌익 반대파(Left Opposition)'의 지도적 회원이자 경제학자다. 좌익반대파 홈페이지는 gaslo.info.

2014년 5월 오데사에서 참혹한 충돌과 '노동조합 본부'의 화재로 4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폭력 행위는 대립하는 양편 모두에서 비롯했고 여기에는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다. 사태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선 매우 신중한 조사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는 단지 처음 받은 느낌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사건은 소위 친러시아 활동가들이 '우크라이나의 단결'을 위한 행진을 방해하면서 폭력이 유발된 것처럼 보인다. 5월 2일 전 오데사에서는 양편 모두 시위를 하기 위해 반대자들을 훼방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러한 행진 방해는 분명히 공격적인 행보다. 전에는 친러시아 시위가 방해받는 일이 절대 없었다. 두 시위대가 서로를 향해 날릴 단단한 돌멩이와 포석에 각각 다가갔을 때였다.

그 순간 '친러시아' 진영에서 먼저 총격이 있었다고 증언한 목격자를 우리는 확보했다. 오데사 친러시아 운동의 일부인 '보로트바(Borotba)'조차도 총격을 먼저 시작한 것이 그들 편은 아니라고 반박하지 않는다. 대부분 자동소총이었지만 게중에는 산탄총도 있었다.

당시 오데사 시내 소보르나야 광장의 '우크라이나의 단결' 시위대가 자신들 행진이 '친러시아' 진영에 의해 가로막혀있는 동안 총을 쐈다는 확실한 목격자는 찾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기관총이 발포됐다는 증거를 갖고 있다. 첫 사망자와 심각한 부상자가 기관총 사격에 의한 것이다. 목격자는 '친러시아' 진영에서의 총격이 경찰의 뒷편에서 그들의 비호 아래 이뤄졌다고 말한다. 여기서는 대부분의 목격자가 충돌에 참여했었고 사태를 매우 감정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걸 강조하는 게 중요하다. 이 사태에 대한 공정하고 편견 없는 조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편 총격 이후 '친러시아' 진영은 '친우크라이나' 시위대에 의해 잔인하게 구타당했다. 그들 중 많은 수가 심각하게 부상당했고 몇몇은 어쩌면 목숨을 잃었다. 게다가 '친우크라이나' 시위대는 오데사 주요 역 가까이의 쿨리코포 폴 광장의 '친러시아' 농성장을 야만스럽게 습격해 때려 부쉈다. 수분 만에 천막이 불타버렸다. 우리는 당시 '친우크라이나' 시위대 또한 총을 사용했다는 확실한 첫 목격자 또한 확보했다. 그 다음 '친러시아' 시위대는 '노동조합 본부'로 몸을 피했다. 밖에서 던져진 '화염병' 때문에 건물에 불이 붙었다(불이 건물 안에서부터 시작됐다는 이론은 매우 의심스러운 주장이다). 물론 우리는 경찰 첩자가 할 수 있는 역할의 가능성을 제외할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불길 속에서 숨이 막혀 죽거나 불에 타 목숨을 잃었다. 어떤 사람은 창문으로 뛰어내리다 목숨을 잃었다. 어떤 이는 화재 대비 사다리와 줄을 사용해 탈출했다. 제정신을 차리고 불길에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나선 '친우크라이나' 시위대가 있었다는 목격자도 있다. 그들은 사다리를 몇몇 창문에 대고 몇몇 창문 앞에는 땅과 충돌 시 충격을 줄이기 위한 타이어를 가져다 놓으려 시도했다.

그러나 사다리를 이용해 불길에서 탈출한 사람들과 이 사다리를 설치한 이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 증거 또한 있다. 불길로부터 벗어난 '친러시아' 시위대는 항복하길 원치 않았고 탈출을 위한 싸움을 시도했다. 몇몇 목격자는 저항하지 않은 몇몇 '친러시아' 시위대가 구타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증거들이 모순되기에 사건에 대한 편견 없는 조사 없이 무엇이 일어났는지 확신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1년여 전 공동행동에 참여했던 급진 좌파 활동가들이 지금은 서로의 목숨을 앗아간 양편의 행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27세 프로그래머이고 '보로트바'의 회원인 안드레이 브랴이프스키는 '노동조합 본부'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는 친러시아 준군사조직인 '오데스카야 드루지나 (Odesskaya druzhina)'에 소속돼 있었다. '반파시스트' 축구 팬 운동에 참여했던 또다른 청년은 소보르나야 광장에서 총격을 당했다.

모든 민족과 인종에서 우크라이나 노동계급 이해와 관련 없는 것이 명백한 전쟁에 좌파 활동가들이 총알받이 보병이 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좌파는 마이단 동안의 키예프 전투에서 경찰에 맞서다 목숨을 잃었었다(33세의 아나키스트 세르게이 켄스키가 2월 20일 인스티투츠카 거리에서 살해됐다는 것을 기억하라). 지금 반마이단 편에서 전투에 참여하고 있는 좌파들 또한 살해당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이 적대적 운동 중 어느 것에도 참여하지 않고 있고 그 때문에 두 운동은 계속해서 사회적ㆍ계급투쟁적 의제로부터 민족문화적인, 민족적인, 마침내 애국주의적인 것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양편에는 사회보장과 노동자 권리에 관한 모든 쟁점보다 우크라이나 국가의 존재의 정당성에 관한 질문이 더 중요하다.

노동자들은 자신이 참여하는 곳에서 폭력을 허용하지 않는다. 동부 또는 서부에 상관없이 우크라이나 모든 지역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산업도시 크리프이리(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 주)의 반마이단 세력이 마이단 활동가를 공격하고 구타하기 위해 용병을 사용하려 했을 때 광부들의 자기방어 조직은 선동가들을 진압하는 방법을 손쉽게 발견했고 그 누구도 목숨을 잃지 않았다.

크라스노돈(루간스크 주)의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가 봉기 기간 도시를 자신의 통제하에 효과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을 때 어떤 사망자도 없었다. 노동자들은 반마이단 또는 친마이단 세력 중 그 누구도 자신을 이용하게끔 놔두지 않았다. 그들은 '친러시아' 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에서 티모센코 또는 다른 어떤 부르주아 후보 지지에 자신들을 이용하도록 허락하지도 않았다.

크리프이리와 크라스노돈에는 노동자가 있지만 오데사ㆍ도네츠크ㆍ루간스크 또는 슬라뱐스크나 크라마토르스크의 거리엔 조직된 노동자가 없다. 대체적으로 노동자는 그 운동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 우리는 우크라이나 중부에서는 독립 노동조합과 연관된 몇몇 징조를 찾았지만 동부의 운동에 노동조합이 연관을 맺고 있다는 신호는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 우크라이나에 불타오르는 내전의 비극에서 핵심이다.

우크라이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균질하다. 우크라이나 전국 각지에 많은 러시아 민족과 우크라이나 민족이
[섞여] 있다. 그리고 그들을 싸우게 만드는 것은 전국 각지에서 민족적 대립이 벌어짐을 뜻할 것이다. 마이단과 반마이단 또는 소위 '친우크라이나'와 '친러시아' 운동의 사회적 구성을 추측해봤자 아무런 소용없다. 그것은 거의 같은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물론 룸펜과 푸티부르주아적 요소까지 양편 모두에 존재한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살고 있는 도시에서는 더 많은 노동자들이 마이단과 반마이단 양편에 참여한다.

여기엔 또한 많은 우파와 매우 약한 노동자 운동이 공존한다. 소련의 스탈린주의는 우리 나라에서 노동자의 자기-조직화 전통을 파괴했고 독립적인 노동운동은 현재 겨우 시작하는 수준이다. 그러함에도 이 단계는 중요하며, 총파업이 시위의 의제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이미 보여줬다.

그리고 이 전쟁을 중단시킬 유일한 힘은 권력으로부터 올리가르히 몰아내는 것과 사회 정의를 요구하는 것을 중심으로 연대한 노동자들의 운동에 있다. 우크라이나가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가능성은 여기에 있다.

우리는 경찰이 능력이 없을 뿐 아니라 그 누구도 보호할 수 없음이 오데사에서 입증되는 것을 목격했다. 우리는 노동자들에게 파업위원회의 통제를 받는 그들 자신의 독립적인 자기방어 조직을 구성할 것(루간스크에서처럼)과 크리프이리의 '광부' 수백 명처럼 독립적인 노동조합을 만들 것을 호소한다.

마이단과 우크라이나 정부의 차이

우리는 이 정부를 절대 지지하지 않아 왔다.

우리는 정부를 일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결코 지지하진 않는다. 여기서 이 정부를 군사 정부로 간주해선 안되는가라는 또다른 의문이 제기된다. 아직은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키예프는 군사정권은 아니지만 슬라뱐스크는 군사정권이 맞다. 키예프에서 당신은 분명히 적기를 들고 어떤 종류든 선전전단을 나눠주며 시위를 벌일 수 있다. 노동절 시위는 이를 명백히 보여줬다. 키예프에선 모든 민주적 자유가 보장되지만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에선 아니다. 아마 당신은 언론인과 평범한 사람들의 잦은 납치사건에 관해 들었을 것이다. 부활절에 나는 키예프로 표시된 등록증 때문에 기관총으로 무장한 사람들로부터 알몸 수색을 당했다. 나는 보석금을 내준 지역 주민에 의해 무사할 수 있었다. 내 어떤 친구는 슬라뱐스크의 SBU(the Security Service of Ukraineㆍ우크라이나 보안국) 건물 지하 어딘가에 아직도 갇혀있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을 위한 감옥으로 만들기 위해 행정관서를 이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키예프 중앙정부를 살펴보자면 이 정부는 우크라이나 동부의 그 누구도 대표하지 않기도 하지만 서부와 중부에서도 사실 많은 신뢰를 받고 있진 않다. 마이단은 정의, 우선순위의 첫째로 사회정의라는 사상에 고취돼 일어난 대중운동이었다. 우리가 1월과 2월 마이단에서 공개적으로 토론할 때 사람들은 이제 곧 야누코비치가 물러나 부패를 끝장내고 사회적 기준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사람들은 새 정부가 바로 야누코비치처럼 긴축정책과 복지의 삭감을 시행할 수 있다는 발상에 분노했다. 누구도 이를 믿지 않았지만 정부가 IMF 지원을 받기 위해 현재 하려고 하는 것이 정확히 이것이다.

정부는 지금 그 관심을 국가안보로 돌리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민족주의적 히스테리는 마이단과는 그 어떤 관계도 없다.

이 정부는 한때 마이단에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 정부는 분명 마이단이 받아들일 수 잇는 최악의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더 이상 친마이단이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2013년과 2014년 사이 겨울에 있었던 우리가 알고있는 마이단 운동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는 이제 마이단의 사회정의 의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는 정부를 마이단의 진정한 정수로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새로운 마이단, 노동자들의 마이단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현재 '프라비 섹토르'가 군대를 통제하거나 거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몇몇 우파 정당 회원이 개인적으로 군대에 참여할 수는 있지만 지금까지 그들은 그 속에서 작은 소수파일 뿐이다. '프라비 섹토르'는 거의 러시아 TV에만 존재하는 매우 작은 정당이다. 그러나 "러시아 침략으로부터 우크라이나 민족을 방어하자"는 민족주의적 의제로의 전환이 급진 우파를 더욱 더 중요하게, 그리고 군대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하게 만들 것이라는 점 또한 사실이다.

동부의 운동

동부의 운동이 키예프 마이단보다 더 적은 규모이며 덜 야단스럽다는 점은 분명하다. 예를 들면 그들은 지난달 도네츠크에서 강경파 1500명 이상이 참여한 한 대중적 가두행진을 조직하는 데 실패했다. 그 행진에는 매우 적은 전단과 신문만 배포됐고 사실상 어떤 토론도 없었다. 한달 전 슬라뱐스크와 크라마토르스크의 대중 시위에서조차 공개적인 토론장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현재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군대의 통제하에서 그와 같은 장소는 분명히 없다. 그들은 토론 대신 위성으로 중계되는 러시아 TV를 보는 공공장소를 만들고 있다.

러시아 시민이, 심지어 무장 단체까지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가장 적극적인 참여자들은 물론 지역 주민이다. 예를 들면 크라마토르스크에서는 두 개의 주요 지역 범죄단체가 '자기방어' 의용군의 지도적 역할을 맡고 있다. 슬라뱐스크 '그린맨' 부대에서 다수는 러시아 시민이고 몇몇은 러시아 보안군에서 퇴역한 군인 출신이다. 실제로 러시아 관계자 누군가가 개입하고 있을까? 물론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러시아 당국의 개입은 확실해 보인다.

다른 한편 운동이 시작될 때 조직화에 나선 주요 세력이 러시아 정부가 아니라 지역 올리가르히인 것은 분명하다. 야누코비치ㆍ모길레프ㆍ프숀카 등이 얼마만한 규모로 개입했는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우크라이나의 주요 올리가르히이고 사람들이 '돈바스의 주인'이라고 부르는 아흐메토프가 알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동의에 의해 시작된 것은 분명하다.

물론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특히 슬라뱐스크 군사 쿠데타를 지도한 것은 우파 배타적 애국주의자들이다.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군대 사령관은 의식적인 군주제 지지자이고 데니킨
[러시아 혁명 당시 백군의 지도자]의 열렬한 팬인 스트렐코프(전직 FSBㆍ러시아연방보안국 요원인 지르킨)다. 이 사람들 모두는 우크라이나 독립이 되돌려야 할 역사적 실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이해한 대로 이것은 대부분의 우크라이나인에게, 심지어 돈바스에서도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이 운동을 조금도 반파시스트 운동이라고 부를 수 없다. 이 운동은 마이단 운동보다 덜 파시즘적이지 않다. 내게는 지금 이들이 행동하는 방식에서 더 파시스트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주일 전 도네츠크에서 이 '반파시스트' 시위대가 '친우크라이나'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공격했던 것을 떠올려보라. 금속봉으로 잘 무장한 300명의 사람들이 800여 명의 더 강고한, 하지만 조금의 무장도 하지 않은 친마이단 시위를 공격했었다. 친마이단 편에서 모두 12명이 심각한 부상을 입어 여전히 병원에 있고 150명 이상이 구타를 당했다. 이 '반파시스트'들은 이른바 그들이 부르기로 '마이둔스(maiduns)'를 해산하고 구타를 끝낸 후 바로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원문에는 DNR이라고 쓰여있는 데 DPR의 오기인 듯싶다] 본부로 돌아갔다. 자신들을 숨기려는 어떤 노력도 없이 말이다.

이 운동에 참여하는 좌파는 이들의 배타적 애국주의 의제를 부추기고 있으며 이 운동을 어떠한 국제주의로도 끌어오는 데는 실패했다. 지금 이들은 러시아 제국주의가 미국보다는 덜 나쁘기에 "우리는 러시아 제국주의를 지지할 것"이라며 자신을 옹호하고 있다. 이는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좌파와 마이단' 콘퍼런스 결산

우크라이나에서 소위 '유로마이단' 운동은 복합적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은 한층 더 복잡하다. 우리는 마이단에 대한 것들을 정리하기 위해 4월 12일 키예프에서 콘퍼런스를 개최했다[1]. 물론 우리는 모든 점에서 마지막 결론에 도달하진 못했다. 그러나 나는 주요 내용을 두 가지로 요약해 보겠다.

▶ '마이단'은 분명 좌파적이지 않지만 본질적으로 좌파적 개념인 사회정의와 사회 변혁이라는 발상에 매우 예민했다. 마이단의 많은 사람은 매우 급진적인 좌파 구호인 올리가르히에 대한 누진세 적용, 공개적인 회계, 직접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노동자 통제와 심지어 부르주아지의 선거권 제한(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부자들의 선출과 정부 요직 임명 금지를 제안했다)까지도 지지했다.

▶ 좌파의 주요 문제는 자신의 사상을 충분히 표현하는 데 있어서의 무능력인 것으로 보인다. 좌파들은 흩어져 있다. 몇몇은 대중운동과 그 자신을 철저히 떨어뜨려 놓고 있고 다른 대부분은 그
[대중운동] 속에 녹아 사라졌다.

주요 실패는 협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보로트바 활동가 데니스 레빈이 마이단에서 네오나치에게 공격받던 시간에 그곳에선 두 개의 다른 좌파 행사가 있었다. 그곳으로부터 300m 떨어진 마이단의 중심부에선 '직접행동' 동맹에서 온 학생 30명이 학생의 자기조직화에 관한 발표를 준비하고 있었다. 500m 떨어진 곳에선 다른 좌파와 반파시스트 200명이 경찰 폭력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사실상 혼자 자신의 노동조합 전단을 나눠주던 데니스 레빈을 네오나치가 공격한 것은 놀랍지 않다. 그가 속한 보로트바는 그를 돕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가 그와 함께하기 위해 갔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었다.

2014년 5월 8일, 키예프에서

[1] "국가적인 배타적 애국주의와 성차별주의, 동성애 혐오증, 인종차별을 규탄하고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개입과, 좌파와 노동조합 활동가 또는 비무장한 시위대를 향한 모든 폭력에 항의하기 위한 좌파의 조직화와 계획"을 위한 이 콘퍼런스에는 크리프이리와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에서 온 자유노동조합연맹(the confederation of Free Trade Unions) 소속의 광부 몇 명을 포함해 다른 조직의 활동가 80명이 참여했다. 인터내셔널뷰포인트(International Viewpoint) 협력자 캐서린 사마리(Catherine Samary) 또한 발표했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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